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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6:33:56

김현철(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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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BA8C><colcolor=#000> 김현철
金玄澈 | Kim Hyun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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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현철(가수).jpg|width=100%]]
출생 1969년 6월 14일 ([age(1969-06-1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73cm, 70kg, B형
배우자 이경은(2002.06.27 결혼 ~ 현재)
자녀 장남 김이안(2003년생)
차남 김정안(2005년생)
학력 리라초등학교 (전학)
서울청담국민학교 (졸업)
언북중학교 (졸업)
영동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전기제어공학 / 학사)
종교 개신교(예장통합)
데뷔 1989년 정규 1집 '김현철 Vol. 1'
소속 Fe&Me (대표)
그룹 주식회사 (2007)
장르 팝, 발라드
직업 가수, 싱어송라이터, 교수[5], 라디오 DJ[6]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대학 진학의 고배, 그 과정에서 가수 데뷔2.3. 1990년대 중후반, 전성기2.4. 2000년대 이후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음주운전3.2. 표절
4. 라디오 DJ5. 여담6. 음반 목록7. 수상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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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kim hyun chul 1989.jpg 파일:kim hyun chul 2020.jpg
1989년[7] 2020년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가수이자 MC 겸 라디오 DJ. 1969년 6월 14일 생으로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를 졸업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남 1녀 중 첫째아버지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자금 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어 김현철은 리라초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온 가족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하여, 초등학생 시절의 대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보냈다. 정확히는 2학년부터 6학년까지 5년간 체류했다고 한다.

귀국 뒤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이사를 와서 서울청담초등학교에서 학교 생활을 이어 갔다. 그의 1집 수록곡인 '동네'라는 노래가 그의 유년시절 당시 택지개발을 앞두고 있던 압구정의 시골같은 옛 모습을 회상하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작 중간에 해당 곡의 제목도 '압구정동'으로 될 뻔 했을 정도였다.

당시에 음악 말고도 축구를 유별나게 좋아해서 일화가 몇 가지 있다. 뚱뚱해서 축구 시합에 끼지 못했던 친구를 두고 "괜찮아. 얘는 골키퍼를 보면 다 함께 놀 수 있잖아!"라 친구들을 설득해 함께 축구를 했다고 한다.[8] 또 축구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났는데, 상대방이 학교 짱이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찬양 봉사 활동을 하며 음악과 가까이 자랐다. 본인 말로는 피아노 외에도 바이올린도 6살 때부터 5년간 배웠다고 한다.

2.2. 대학 진학의 고배, 그 과정에서 가수 데뷔

청담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언북중학교를 거쳐 영동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그의 음악 사랑은 계속되었고, 엄마에게 기타를 파손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공부도 제법 잘 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중 윤상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이라는 대선배들에게 연결시켜주는 등 꽤 교류가 있었다. 당시 윤상은 그 동네 독서실 멤버의 베이시스트 중 가장 곱상한 외모여서 뽑히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9] 그에게 안정적인 진로가 보장되는 의대를 권했고, 그걸 수도 없이 들은 그도 이를 당연시 여겨 고3 때 열심히 공부해서 고려대 의대에 지원했지만 아깝게 낙방한 뒤 재수했다.

고교 2학년이었던 1986년엔 친구들과 함께 '아침향기'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멤버들의 자작곡들을 모은 비공식 노래집도 만들고 자작곡 발표회 형식의 콘서트도 열었다. 밴드 '아침향기'는 김현철을 비롯하여 강승식, 강준모, 박용근, 윤필현 5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청소년들의 밴드라면 선망의 대상이었던 헤비메탈이나 해외 팝송을 커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이하게도 이들의 음악은 포크 발라드 성격이 강했으며 (밴드 구성에 드럼이 없었음), 대부분의 레퍼토리를 자신들의 자작곡으로 구성하는 등 나름의 음악적 색채와 창작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영동고 시절 동창생들에 의하면, 선생님들이 "저렇게 공부를 안 하고 잘하는 애 처음 봤다"고 말했다고. 재수학원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10], 어린이날에 함께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놀러 갔는데, 이날의 기억이 훗날 〈춘천 가는 기차〉의 모티브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수 생활도 망쳤는지, 전기 모집에서 연세대 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후기 모집에서는 안정하향지원을 하여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에 합격하게 된다[11]. 그 이후 한동안 그는 연고대 두 학교만 생각하면 이를 벅벅 간다고 한다.

대학 합격자 발표 날 고모에게 김수철의 공연 티켓을 받아 관람하던 중, 후반부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룹 '어떤날'의 공연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그 그룹의 베이시스트조동익을 만나게 된다. 그는 말을 걸까 말까 고민했는데, 어느새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고 한다. 당황한 조동익은 전화번호를 남긴 뒤 연락하라고 했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기 뭐해 1달 뒤에 연락해 그의 집을 찾아갔으며 그런 김현철에게 조동익삼겹살을 구워주었다.

그렇게 조동익의 집을 자주 놀러가던 어느 날, 김현철은 조동익의 집에 있던 <오페라>[12]의 악보를 손 봐주고 가 버렸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난 조동익은 그 악보를 보고 어, 이거 누가 그렸어?라며 김현철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오라고 한 뒤, 그를 역삼동의 카페 「심플라이프」에 데려갔다. 그 카페는 가수 이장희의 전 부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당시 많은 가수들이 자주 찾았는데, 전인권, 최성원, 박학기 등을 만나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들에게 "얘 재작년에 세상 떠난 재하랑 비슷하지 않냐?"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이후 이들의 도움으로 그의 곡과 앨범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 것이 <우리노래 전시회> 3집. 당시 그는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 1학년 신입생이었지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13] 당연히 학교 생활은 뒷전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를 갔더니 동기들이 문제 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라고 라디오 프로에서 술회한 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대학교 졸업은 했다.

이후 그의 재능을 알아본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은 보자마자 골프 가방에 돈을 현찰로 담아서 가져가라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러나 당시 김현철은[14]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15] 이를 거부하게 된다. 21세의 가수 지망생에게 뻰찌를 맞아 자존심이 약간 상한 김영 사장은 김현철을 다시 만났을 때, 그 골프가방(보스턴 백)에 현금 3,000만 원(지금 가치로는 8,466만 원)[16]을 미리 넣어 두었다. 김현철은 바로 동아기획과 계약하게 된다.[17][18]

이 앨범이 바로 자신이 직접 앨범 전체를 작사, 작곡, 프로듀스하여 1989년에 발표한 1집 "김현철 Vol. 1"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춘천 가는 기차〉가 상당한 히트를 쳤다. 또한 동 앨범에 수록된 〈아침 향기〉[19]"라는 곡은 고등학교 시절 만든 곡을 다듬어서 수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동반자였던 포크가수 조동익도 받쳐 주는 등 세션 진영도 화려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꽤 이른 나이에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김현철의 1집과 2집은 비록 당시에는 아는 이들만 아는 앨범이었지만, 소년적인 감성을 세련된 퓨전 재즈 양식에 담아낸 명반으로 높이 평가 받았다. 김현철의 라디오 프로에 나온 이승환이 김현철씨가 1,2집 명반 만들 때 자신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적도 있는데, 자신은 이승환 1,2집 같은 미니멀한 음악 못 만든다고, 과찬이라고 김현철이 답했다.

데뷔 앨범은 대한민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1차 선정 27위, 2차 선정 17위, 3차 선정 12위에 선정되는 등, 당시의 명문 레이블인 동아기획의 마지막 흑자로 평가받으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인기를 누렸던 1집 활동을 마친 그는 1990년 5월에 콘서트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뇌출혈 등으로 2년 동안의 공백기를 가졌으며, 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2.3. 1990년대 중후반, 전성기

2년간의 공백기 후 1992년에 2집 32℃ 여름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재개한 그는 같은 해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OST를 작업했으며, 낯선사람들 출신의 이소라와 불렀던 동명의 곡이 큰 인기를 끌며 대중적 지명도를 높였다.

1993년에 발표한 3집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에선 〈달의 몰락〉이 50만장 이상의 판매고와 가요톱텐에서 3위까지 올라가면서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1994년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OST "끝난 건가요"와 프로듀싱해 준 장혜진 3집 "내게로"가 가요톱텐 4위까지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95년에 발표한 4집에서는 〈나를〉과 "왜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연달아 히트했고, 가요 프로그램에서 10위 권 안에 들 정도로 큰인기를 얻었지만, 당시 대중가요의 큰 화두였던 표절시비에서 '나를...'이 일본 노래 T-square의 'Twilight In Upper West'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었다.(커버곡에 가까울 정도로 연주 부분이 동일하다.) 앨범 프로듀싱 및 작곡가로 참여한 이소라의 1집" 난 행복해"가 100만장을 넘기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직접 곡과 가사를 맡았던 〈난 행복해〉는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는 물론, 가요톱텐 3주 1위를 차지하면서 마니아들만 알던 가수 이소라를 단숨에 전국구 가수로 끌어올렸다.

1996년 가을에 발표한 5집 <동야동조>의 타이틀곡 〈일생을〉과 수록곡인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등의 곡들이 모두 대중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나, 극도의 도회적 세련미를 추구한 그의 음악은 데뷔 당시의 것에서 너무도 멀어져 버려 아쉬워하는 초기 음악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휘성외 여럿 가수들도 여럿 리메이크 할 만큼, 이승환이 탐낼 만큼 곡의 완성도도 높고, 대중들은 상당히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가요계의 최동훈 참고로 김현철이 작곡하여, 이소라 2집 "영화에서처럼"에 수록된 "청혼"이 대성공했다.

1998년 6집 "거짓말도 보여요"는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1998년에 나온 유재하 10주기 추모 헌정 앨범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조용필, 신해철, 김동률, 이적, 유희열, 이소라, 조규찬, 정재형, 고찬용, 유영석등이 참여)에서도 원곡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현대적인 편곡과 프로듀스로 양질의 헌정 앨범을 만들었다는 평으로 IMF 때임에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 앨범 이후로 비슷한 류의 추모, 헌정 앨범들이 나왔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와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1999년에 나온 7집 "어느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는 김현철 밴드의 세션 중 1명인 이승환[20]과의 공동 제작으로 발표했다. 타이틀곡 "연애"가 성공했는데, 라디오 신청곡 1위, 음반 판매량 4위를 기록하면서, 잡지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집 이후 다시 프로듀스한 이소라의 앨범이 큰 성공을 이루었는데, 특히 4집 타이틀곡 제발이 대박을 쳤고, 이소라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꼽힌다.

2002년 8집 러빙유 (봄이와, 사랑하오가 대표 수록곡)와 베스트 앨범 "그대니까요"도 각각 15만 장 이상 판매량으로 꾸준한 인기를 보였다. 영화 시월애 OST "Must say goodbye"가 영화 서울 관객 50만이 넘는 성공과 더불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후술된 표절 시비와 맞물려 1990년대 중후반의 김현철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모습이었으며, 당시 대중음악 팬덤에서는 '만약 김현철이 요절했다면 유재하처럼 되었을 것이다' 와 같은 투의 분석을 낯설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절했네뭐네 얘기해도, 당시 브라스 편곡에 있어서만큼은 국내 뮤지션 중 김현철을 따를 자가 드물었다는 평가 또한 일반적이었다. 이 김현철의 브라스 세션에 영향을 받아 나온 대표적인 앨범이 박진영 3집 "그녀는 예뻤다". 이적김동률의 합동 프로젝트인 카니발이다. 여튼 항상 음악만은 열심히 해 왔던 셈이다.

윤상, 이승환, 토이, 전람회 등과 함께 1990년대 웰 메이드 음악의 전성기를 이끌던 한 축이었으나, 2006년에 발표한 9집 <결혼도 못 하고> 이후에는 라디오 DJ 활동과 교수직을 제외하면 음악 활동이 거의 없어서 동료들에 비해 긴 공백기를 지니고 있다. 2012년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10집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는데, 7년이 지난 2019년에야 발매되었다.

그 외에 정규 앨범이 아니어도 이소라와 진행한 공동 작업, 이소라 1999년 4집 "제발", 디즈니 "뮬란" OST(박정현), 박효신 3집 "그 흔한 남자여서", 영화 "가을로" OST(거미), 영화 시월애 OST, 이문세 10집 "화무" 등 꾸준히 여러 고급스러운 작업물을 내놓았다. 다만 이문세 10집은 후술하듯이 그의 흑역사 중 하나다.

2.4.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중반에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보급한다는 취지로 '키즈 팝'이라는 타이틀의 앨범 2장을 발매했다. 동요 앨범이지만, 성인이 꼼꼼히 듣기에도 음악적으로 나무랄 곳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즈 팝 활동 때 김현철과 함께 무대에 섰던 사람 중 한 명이 2013년에 데뷔한 혜이니다.

그의 앨범 특징이라면 거의 전 곡을 자작곡 내지는 공동 작업의 결과물로 배치하며, 가장 최근의 작업이었던 9집(2006년)을 제외하고는 전 앨범에 연주곡을 집어넣는 것 등 싱어송라이터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9집에서는 당시 데뷔도 하지 않았던 노 리플라이의 멤버 권순관의 재능을 알아보고 공동 작업을 했다.

2019년 5월 23일, 무려 13년 만에 신곡이 담긴 EP인 'Fe's 10th - Preview'를 발표한다. 그 동안 신곡을 내지 않은 이유가 "갑자기 음악이 재미없어져서"였다고... 그리고 클럽 공연에 섭외돼서 이 나이에 클럽 공연 해도 되나 싶었는데 어린 사람들이 떼창하는 것에 감명을 받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술한 정규 10집도 발표할 예정이며, 선공개 형식으로 내는 미니앨범이라고 한다.

2019년 11월 17일, 정규 10집 '돛'을 발표했다.

2020년 11월 30일, EP 'Brush'를 발표했고 이듬해 12인치 바이닐로 발매했다.

2021년 6월 14일, 정규 11집 'City Breeze & Love Song'을 발표했다.

2021년 7월 15일부터 9월 18일까지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가수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2023년 6월 14일, EP 미니앨범 12-1집 '투둑투둑'을 발표했다. 신곡 '투둑투둑'과 함께 '비'를 음악적 영감으로 삼은 예전 곡들을 리메이크 하여 담은 앨범이다. 12-2집은 '눈'을 주제로 할 것이며, 두 앨범을 합쳐 정규 12집을 완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3.1. 음주운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98년 4월 16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92%인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

3.2. 표절

나름대로 베테랑 뮤지션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발자취를 남겼지만 표절과 관련된 흑역사도 여럿 있다.

꽤 야심차게 준비한 앨범이었던 4집 《Who Stepped on it》의 타이틀곡인 〈나를〉의 후렴부가 일본의 퓨전 재즈 그룹인 티스퀘어의 연주곡 〈Twilight in upper west〉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완전히 베낀 것으로 판명되어 표절 시비가 일어났다.[21][22] 그 후에 나온 앨범들은 안타깝게도 4집, 5집 앨범의 성공을 넘어선 적이 없다.[23] 더불어 이문세가 부른 〈난 괜찮아〉[24]를 작곡했는데, 이 노래도 Bobby Caldwell이 부른 〈China〉의 표절설이 나면서 이문세의 경력에도 오점을 남기나 했지만 그후로도 작업을 했고, 표절 판정도 받지 않았다.[25] 다만 1997년에 KBS 심의실은 지난달 20일'난 괜찮아'가 미 팝가수 보비 콜드웰의 1989년 발표곡'China'의 도입부 네마디와 멜로디가 똑같고 그밖의 소절도 대부분 멜로디가 같다는 점을 들어 표절곡으로 판정하고 KBS 프로 내 방송금지 조치를 내렸다라는 기사를 보면, KBS에서 표절곡으로 판명받아 방송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김현철의 음악은 2집까지만 듣고 4집부터는 스킵해라"라는 얘기가 엄청 많이 나온다. 여기에 대한 어느 인터뷰 구절이 하나 있으며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자.
한때 '나를...'이라는 곡 코러스 라인이 티 스퀘어(T-Square)의 〈Twilight In Upper West〉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떠돌았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김현철씨의 입장은 어떠신지요?
김현철: 그게 음악을 좀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리크'(lick)라는 게 있어요. 일종의 '시퀀스'란 게 있는데, (직접 코러스 라인을 흥얼거리며) "띠라란~ 따리리라란~" 그게 이제 비슷하다는 건데. 티 스퀘어는 거기서 발전시켜 나갔고 저는 그 뒤에 리크를 갖고 발전시켜 나간 거죠. 그러니까 그건 어떻게 보면 우연의 일치일 수 있는데 그 뒷부분을 좀 보고 나름대로 "아, 저 사람이 저거 표절이 아니다. 나름대로 리크를 이렇게 이렇게 발전시켜 나갔구나", 근데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안 되어 있으니까 일단 멜로디가 똑같으면 다 똑같은 거고. 우리나라, 그렇잖아요. 하여튼 누구에게 나쁜 일이 생겼으면 다 자기가 전문가에요.(웃음) "그 노래 아냐?", "그 노래 그 노래하고 똑같지?" 뭐 이런 식으로. 저는 절대 그렇게 안 보구요. 그 다음에 그건 곡 자체 분위기도 틀렸고,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요즘에는 편곡을 베껴가지고, 그러니까 누구의 편곡을 쫙 베낀 뒤 거기에 노랫말만 다시 붙이는 저는 그런 게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일 수 있다고 봐요.

4. 라디오 DJ

1994년 4월부터 3년간 신성우의 뒤를 이어 MBC FM에서 심야시간대에 <김현철의 디스크쇼>를 진행했다. 방송 초기 시간은 밤 11시부터 1시까지였으나, 1996년 심야 시간대에 <FM 음악도시>가 편성되면서 방송시간이 한시간 앞당겨져 밤 10시부터 자정까지로 바뀌었다. 1995년 당시 앞시간대인 <FM데이트>(밤 9시-11시) 진행자가 고소영이었는데, 이들은 서로를 "이웃", "옆집 총각"으로 부르며 친분을 과시했다.[26] 4집 수록곡 <왜 그래>의 중반부에 나오는 "그만 만나"라는 여성의 나레이션은 고소영이고, 김현철 본인의 노래를 샘플링한 노래를 FM데이트의 중간 삽입곡으로 쓰기도 했을 정도로 FM데이트와 디스크쇼 청취자들과 스텝들은 이웃 같은 그런 분위기를 자랑했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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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경쟁 프로그램이던 KBS 2FM의 <FM인기가요>[28]유영석이, SBS 라디오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윤종신이 진행했다. 1995년 9월 7일 동아일보에서 'DJ 3파전'이라고 소개될 정도였다. 한편 김현철은 자신을 국가대표 DJ라고 칭했다.[29][30]

하여간 당시 '밤의 문교부장관'이라 불리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다음으로 인기 많았던 게 이 디스크쇼였다. 응답하라 1994에서 조윤진이 서태지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에서 <김현철의 디스크쇼> 당시 방송 일부분이 나온다.

이후 2000년~2002년경 KBS 2FM에서 자정시간대에 <뮤직플러스>를 진행했고, 2007년 MBC FM4U로 돌아와 오후 4~6시에 김원희가 하던 <오후의 발견>을 반년가량 진행했다.

이후 조용하다가 2013년 9월부터 다시 <오후의 발견>의 DJ로 복귀해, 1980~1990년대 추억의 가요들을 리퀘스트 형식으로 틀어주며 호응을 얻고 있는 중. 그의 라디오 진행은 <디스크쇼> 때부터 즉흥적인 멘트구사, 이른바 개드립에 특화되어 느끼하다가도 엉뚱한 데서 웃기는 데 매력이 있었다.

이후 오후 4시대의 편안한 오빠의 컨셉으로 이어가다 2018년 10월 7일을 끝으로 DJ석에서 하차했다. 사유는 2019년 내년 상반기 발매 예정인 10집 음반 작업을 위해서라고 하며 후임은 이지혜. 이후 6개월 만에 이루마의 후임으로 2019년 4월 1일 MBC FM4U의 봄개편으로 <골든디스크>의 DJ에 복귀했다.

2020년 7월 1일 MBC 라디오 브론즈 마우스를 수상했다. 2022년에는 골든디스크가 종영되면서 이석훈과 자리를 맞바꿔 MBC 표준FM <원더풀라디오>의 DJ로 이동했다.

2023년 10월 20일에 MBC 라디오 가을개편으로 24년만에 부활한 <김현철의 디스크쇼>의 DJ를 26년만에 다시 맡게 되었으며 MBC 표준FM을 통해 22:05~24:00까지 방송된다.[31]

5. 여담

6.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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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상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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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부 지역 자체 방송.[A] [A] [A] [5] 현재 홍익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실용음악전공 교수. 이전에는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에서 교편을 잡았었다. 복면가왕강민경이 출연했을 당시, 학과 교수님이라고 소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다비치 두명 외에 규현도 김현철 밑에서 배운 것으로 확인된다. 규현도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출신.[6] 2018년 10월까지 오후의 발견 김현철입니다를 진행했었고 골든디스크, 원더풀라디오를 거쳐 현재는 밤의 디스크쇼를 맡고 있다.[7] 1집 음반 김현철 Vol. 1의 속지에 있는 사진이다.[8] 이 이야기는 1990년대 당시 TV는 사랑을 싣고에 소개되었는데, 수필가 장영희의 《괜찮아》에 수록되어 있다.[9] 다만 아버지가 딱히 거센 반대는 하지 않은 듯하며, 지금은 희귀템이 된 신디사이저를 출장 중에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10] 같은 해 가을 무렵 이 여자친구와는 헤어졌다고. 헤어진 후 다시 춘천에 가면서 '춘천 가는 기차'를 본격적으로 떠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11] 공교롭게도 본인과 동명이인이었던 김현철은 가수 김현철의 대학 동기인 전 야구선수 최규하와 고등학교(충암고) 동창이었다.[12] 나중에 가수 김장훈이 부른 그 노래다.[13] 사실 데뷔 자체는 비공식적으로 한 번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활동하던 밴드 아침향기 맴버들과 함께 데모테잎을 만들어 동네 음반가게에서 판적이 한번있었다고. 가게에 테잎을 틀어대고 며칠 안 가 앨범이 전부 동이 나버렸다고 한다는 전설이 있다. 인근 여고 축제에도 초청밴드로 불려갔었다고 하니 나름 동네 연예인이었던 셈. 장필순에게도 곡을 준 적이 있는데 가사부터가 신인이 써내릴, 어리디 어린 그 학생이 어떻게 그런 내공의 가사를 썼는지 심히 미스테리일 정도로 싹이 보였던 어린 시절이었다.[14] 바닥치는 성적에 김현철을 불렀는데, 그 동안 교수가 번 돈보다 더 많이 벌고 있는 걸 듣고 그냥 음악 열심히 하라고 놓아 줬다고 한다.[15] 당시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넣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다.[16] 그 당시에 3,000만 원이면, 쏘나타를 3대나 살 수 있었다.[17] 이때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유영석도 함께 들어갔다. 이 둘은 당시 동아기획의 차기 핵심 멤버로 꼽힌 기대주였고 기대에 부응하듯 차례차례 히트치게 된다.[18] 김현철은 그 돈을 받고 어찌할 줄 몰라 일단 침대 밑에 넣어뒀는데, 그 돈을 방을 청소하던 어머니가 발견해서 집안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아들이 은행강도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현철아, 너 똑바로 말해. 엄마가 뭐라하지 않을게. 이제 네가 한 말 듣고, 경찰서에 가서 자수만 하면 돼."라고 말할 정도. 그래서 어찌저찌 김현철이 자초지종을 설명을 드리고 상황은 일단락됐다.[19] '아침향기'는 김현철이 고교 시절 활동하던 밴드명으로, 6집의 '아침의 그 노래는'이라는 곡도 이 당시에 썼던 곡이다.[20] 1965년생 이승환과는 동명이인. 이쪽은 1973년생이다.[21] 참고로 그 곡은 작곡가 황세준이 편곡했다.[22] 후렴부뿐만 아니라 이곡의 도입부는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명곡 Arthur's Theme의 도입부와도 매우 유사하다.[23] 여기에 대해서는 그의 브라스 활용이 절정에 달했던 6집이나, 데뷔 시절의 감성을 일정 부분 회복했다고 평가받는 9집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24]조조할인〉이 수록된 이문세 10집 《화무》에 수록된 곡으로, 이문세의 9~11집을 김현철이 프로듀싱했다.[25] 특이하게도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절대동안 황신혜가 출연했다. 아울러 1997년 3월 5일 KBS 2TV 가요톱10에서 손범수 MC가 매우 심각한 어조로 이 소식을 전했다.[26] 이후 이 호칭은 FM데이트의 후임 DJ 박소현이 물려받는다.[27] 2023년 11월 20일 MBC 라디오 개편으로 FM데이트와 디스크쇼가 부활하면서 이 구도가 다시 재현되었으나 채널, 제작 부서, 스튜디오가 다르기 때문에 예전처럼 친분이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28] 수도권에만 방송되는 KBS 2FM에서 방송되었지만 지방에서도 지역국 FM방송을 통해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당시 2FM이 광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1FM과 2FM을 교차 편성하여 방송했다. 2001년 3월 KBS 제2라디오로 이관되었다가 종영되었다.[29] 팬들은 다 알겠지만, 이 세 명은 서로 격없이 친하며 서로간의 음악세계를 누구보다 인정해주는 친우. 노총각이란 기믹으로 이현우, 윤상, 김현철, 윤종신 등이 함께 했던 적이 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 김현철은 방송 등에 유영석과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둘은 학창 시절부터 친해 호형호제하는 사이.[30] 그로부터 20년 후 유영석과 김현철은 4시 시간대에서 라디오 DJ로 다시 경쟁하고 있다.[31] 이와 동시에 별이 빛나는 밤에MBC FM4U로 이동하여, 양 채널의 인기 프로였던 서로가 채널을 스와핑하게 되었다.[32] 장남을 미국에서 출산하여, 원정출산이라는 논란을 낳았다. 김현철 부모님이 미국에서 살고 있어서 시댁에 가서 낳았다는게 알려졌지만, 그 당시 원정출산에 관련하여 민감했던 시기였고 귀국한 시기가 장기체류가 아니여서 한동안 비판을 들어야했다. 논란을 의식했는지 차남은 한국에서 출산했다.[33] 본인과 처가 모두 재산이 좀 있는 집안이다. 김현철의 부친이 건설회사 중역이라면, 장인은 화학자재회사 사장. 애초에 부인이 발레리나로 미국 유학을 갔고, 김현철과 아내가 만난 것도 미국 교민 연회장이었다.[34] 참고로 김구라 역시 삼성 라이온즈이다. 방송에서 인천 토박이 출신임을 강조해 SK 와이번스넥센 히어로즈의 팬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본인이 마리텔 시험방송에서 직접 삼성 팬임을 인증했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35] 2015년 당시 GMTV에서 편성된 바 있다.[36] 모자이크는 1994년에 활동했던 밴드 그룹이며, <자유시대>(박보영이 부른 그 곡)는 가요 차트에서 10~20위권에 있었던 곡이다. 아마 김현철도 모자이크라는 그룹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다.[37] 해당 곡은 2004년 발매 된 김현철의 Kid’s Pop ‘Love is…’ 의 3번 수록곡인 ‘아빠와 함께 왈츠를’. 곡 감상후 인교진은 "아빠, 나도 나중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아빠는 나에게 뭐라고 말해줄까? 그 사람은 참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일거야” 라는 딸의 노래가사에 울컥하였다고 밝혔다. “커헉.. 그런게 슬픈겨!!” 라는 말로 큰 웃음을 주고, 이를 너무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소이현의 표정이 포인트.[38] 80년대 후반의 김현식은 술과 담배로 인해 건강 문제가 심각한 상태였다. 그리고 1990년 11월 1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39] 윤종신과 김현철은 1969년생 동갑내기인데, 윤종신은 윤상을 형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족보 브레이커가 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