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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6:58:06

정관수술

1. 개요2. 특징3. 복원 수술4. 부작용
4.1. 자연적 복원4.2. 정관수술 후 만성 통증
5. 성 불구자와의 차이6. 정관수술을 받은 유명인7. 디젤 차량 불법 개조를 뜻하는 은어

1. 개요

/ vasectomy

남자정관을 수술을 통해 막아서 인공적으로 반영구적 불임을 만드는 수술.[1] 정관은 부고환에서 정낭으로 연결되는 통로이기 때문에 이를 막으면 정자는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다.

정관수술은 정자의 이동 통로를 막아 정액에 정자가 포함되지 않게 하는 수술이다. 정액은 아주 멀쩡하게 나온다. 정액의 배출 통로를 막거나 하는 시술이 아니기 때문에 사정하는 데 문제가 생길 확률은 극히 낮다. 고환의 남성 호르몬은 혈관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정관을 묶는다고 하여 남성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는다. 정자 자체도 정액에 섞여 나오지만 않을 뿐 정상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복원 수술로 가임 능력을 되찾거나 정자만 추출하여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있다.

2. 특징

찾아낸 정관을 묶기만 하면 정관이 유착하여 복원될 수 있으므로 자르고 동시에 양쪽 끝을 묶는 방법을 사용하며, 최근에는 정관을 절단하고 묶고나서 절단면을 레이저 또는 전기소작기[2]로 지져 3중차단을 하여 피임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 수술을 시행한다. 과거의 수술 방법은 시술 시 절개 면적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으므로 현재는 음낭 주변의 정관을 찾아낸 후에 이를 최소한의 피부 절개를 통해 간단히 정관을 절개하는 무도 정관수술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 방법은 시술 시간이 짧으며, 시술 후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고, 피부의 회복도 매우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성관계는 약 1주일 후부터 가능하지만 그때부터 바로 피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낭에 보관된 정자는 짧게는 1달에서 길게는 3달 이상의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남아있는 정자가 있는지 검사를 거쳐야 된다. 일반적으로 10~20회의 사정 또는 2~3개월 이후에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 병원에서 명확한 정자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콘돔이나 경구피임약 등의 기존 피임법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정관수술을 완전히 성공적으로 마쳤어도 성병 방지를 위해선 콘돔을 끼는 게 좋다.

영구적인 불임 시술의 경우 정관 수술 외에 여성의 난자의 이동을 방해하는 난관 수술이 존재하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므로 신체적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3] 비교적 시술에 가까운 정관수술이 간단하여 추천되는 편이지만 여성의 고질병 중 하나인 자궁근종 등의 수술을 받을 때 겸사겸사 난관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 예는 좀 다양할 수 있다. 물론 난관 수술 외에 여성의 피임 시술인 미레나, 루프, 임플라논은 시술 자체는 정관수술보다 간단한 편이다. 다만 이 경우는 3~5년이면 피임 효과가 사라지므로 기간이 다 되었는데 피임을 유지하고 싶다면 새로 시술을 받아야 한다. 장단점이 있겠으나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을 때 정관수술은 의료 시술 중 간단한 편에 속하고 또 반영구적인 것이 장점이라는 것.

2015년 통계상으로는 기혼자 중 가임기 기간 동안 피임 방법으로서 의료적 시술을 이용하는 경우를 보자면 남성(정관수술)이 23%, 여성(난관수술+자궁 내 장치)[4]가 20%로 비등비등하다. 통계청 자료.

197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인구가 지나치게 많다고 판단되어 정부에서 산아 제한 정책의 일환으로 정관수술을 지원했다. 당시 정관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수술비 면제는 물론이고 예비군 훈련 면제와 같은 병역 혜택이나 청약 통장과 같은 기타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아파트 입주 추첨의 우선 대상이기도 했다. 지금은 버블킹으로 유명한 은마아파트(1979년 8월 입주)나 지금은 래미안 퍼스티지반포자이로 재건축된 반포주공 2, 3단지(1978년 입주) 등 1970년대 말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대부분 불임 수술 시술자에게 입주 우선권을 줬다. 이 정책 이후로 불임 수술 건수가 50% 이상 증가한 것을 보면 꽤 잘 먹혀든 제도였다. 그 때문인지 당시 강남 아파트들은 고자 아파트, 내시 아파트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5] 그런데 당시에는 정관수술보다 난관 수술 비율이 3배 가량 비쌌다.[6] 그래서 신혼 집을 구하려는데 불임 수술을 하라면 우리는 애도 낳지 말라는 거냐 하는 식의 반발도 있었고, 노후를 보낼 집을 구하기 위해서 심지어 환갑이 넘은 노인이 불임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7]

다만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시작된 연구 결과에 따라 노년층의 부양 인구가 급격하게 적어져 2000년대 이후 세수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판단되자 기존의 산아 제한 정책은 사라지고 새롭게 낳는 자녀에 대한 여러 혜택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에 시행하는 정관 수술은 정부의 별다른 지원 없이 개인의 선호로써 결정하며 주로 자녀 계획을 완성한 부부들의 임신의 걱정이 없는 성관계 유지 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미혼 남성에게는 유전성 질환과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시술을 해 주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8] 미혼 남성에 대한 정관수술 거부를 비판한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이러한 불문율이 언급되어 있다. 다만 자신의 신체에 대한 책임능력이 있는 성인이 스스로의 의지로 영구적 피임을 선택할 권리를 의사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으며, 특히 비혼 비출산을 원하는 남성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강하게 비판한다.

다만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데 신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뒤라면 이건 또 그것대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서 의사는 이것을 막을 윤리적 의무가 있기 때문에 미혼자에 대한 정관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만약에 예전에 수술 받았던 환자가 추후 변심해 후회하거나 복원수술을 받았다가 실패한 후 소송을 걸거나 병원을 뒤집어엎고 온갖 난리라는 난리는 다 피우는 행패를 부리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의사들이 미혼자에게 영구피임수술을 해주는 걸 꺼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실제로 젊은 20대 미혼 남성이 중년 기혼 남성에 비해 정관수술을 후회하고 복원수술을 받는 경우가 유자녀 기혼자의 경우에 비해 12.5배나 더 많으며, 이들이 전체 복원수술의 90% 이상의 비율을 차지한다.# 즉,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미혼자는 당장은 '마음이 확고하니 수술해달라'고 조르더라도 불과 몇 년 지나 후회하는 사례가 매우 많은 것을 경험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미혼자의 수술을 썩 내켜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보험사나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사전 교육에는 정관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시술 직후 피임이 바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추후 아이를 원할 경우 복원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다. 소송의 천국이라 과거 여러 판례 때문에 병원 측의 방어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는데, 교육 후에는 여러 가지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고 교육 내용 숙지 후 변심을 예상해서인지 시술은 교육으로부터 몇 달 이후에나 가능하도록 몇 겹의 안전 장치가 되어있다. 본인만 동의한다면 나이나 혼인 여부는 전혀 상관 없다.

일본 역시 법적으로는 혼인 여부나 연령과 관계없이 정관수술을 받을 수 있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병원 측이 자체적으로 나이가 젊은 미혼 남성에게는 시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흔하며, 무조건 거부를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미혼 남성이 시술을 받고자 하는 경우 왜 시술을 받으려고 하는지 사유를 들어본 뒤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9] 기혼자는 배우자의 동의가 있다면 대개는 자녀 여부나[10] 나이에 관계없이 시술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정관수술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아 전액을 자비로 부담해야 하며 인건비가 비싼 나라답게 시술 비용도 최소 10만엔을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심지어 부모가 강제로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아동 학대는 물론 중상해[11]에 해당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다. 정관수술을 받은 미혼 남성이 이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경우 재판상 이혼 사유가 된다.[12]

비용은 비급여 항목이라 병원마다 제각각이지만 무도 레이저 시술을 기준으로 저렴한 곳은 30만원, 비싼 곳은 40만원 정도 한다. 2004년 말에 건보급여가 폐지되었는데, 막차 당시 수술비는 2만 원 정도였다. 당시 치킨 한 마리 가격이 1만 2천 원 정도 했음을 감안하면 거의 공짜에 해준 셈이다. 수술 중에서 본인부담금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3. 복원 수술

일단 정관 수술을 받았던 남성이 원할 경우 정관 복원 시술을 다시 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므로 가능하면 아이를 먼저 낳고 난 다음에 복원 수술이 필요 없다고 판단 되면 정관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

복원 수술 성공 확률은 90%다. 정관수술을 시행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복원 수술의 성공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지만 보통 5년 안에 복원 수술을 시행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복원수술을 시행한다면 울혈, 부종 및 각종 후유증이 발생하거나 연결 부위가 좁아져 정관이 폐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관 수술을 한 지 3년 이후라면 성공률이 88% 이하로 떨어지고 복원수술을 성공하더라도 임신 확률이 낮아진다. 생산되는 정자의 양도 줄어든다. 참고

과거에는 정관 복원 비용이 약 200만 원이었지만 요즘에는 정관 복원 수술에 의료 보험 적용이 되니 큰 가격 부담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출산을 권장하는 추세이다 보니 과거와는 반대로 정관 수술이 의료 보험 적용이 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정관수술을 하더라도 통로만 막혔을 뿐 정자는 지속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굳이 다시 아이를 갖고 싶다면 시험관 시술을 하면 된다. 하반신마비 강원래도 시험관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 시험관 시술은 가격이 비싸기에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하는데, 정자를 냉동보관해두는 방법도 있다. 5년에 10만원 정도로 부담되는 가격이 아니다.

4. 부작용

가벼운 부작용으로는


등이 있으며 다른 부작용들은 아래와 같다.

4.1. 자연적 복원

일단 분명하게 수술을 했지만 신체의 내부 재생력이 높아서 폐쇄된 정관이 결합하여 연결되거나 새로운 정관이 재생해서 원상복귀 되는 경우도 매우 희귀한 케이스지만 존재한다. 대략 4천 명 중 한 명 꼴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영국 비뇨기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대략 1-5%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분명 정관수술을 했고 여러 달 동안 확실하게 정자가 빠진 것을 확인했는데도 임신을 하여 바람을 피웠다고 판단을 내려서 종종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위의 경우처럼 정관이 말끔하게 복원되는 사례 중에는 의사가 실수로 정관 2개 중 하나를 2번 막거나, 수술에 실패해서 임신이 되는 상황도 포함된다고 한다. 따라서 수술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만 했다면, 아주 드물게 저절로 재생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구피임에 성공한다. 따라서 수술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정액 검사를 받아서 수술 성공 여부를 확인해야만 확실한 영구적 피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덕분에 정관수술 받은 지 몇 주 안 되어 부부 관계를 가졌다가 아내가 임신하자 바람 피운 것으로 오해한 나머지 가정 파탄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의사도 3개월 정도는 피임 수단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이후 정액 검사에서 정자가 검출되지 않으면 수술이 잘 되었다고 판정한다.

4.2. 정관수술 후 만성 통증

정관수술 후 만성 통증(Post Vasectomy Pain Syndrome)에 시달릴 수 있다. 보통 수술 직후 3개월까지는 가벼운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이상 지속될 경우 만성 통증으로 정의한다. 논문에 따라 통계가 다르지만 아주 드물게 발생하기에 만성 통증의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

만성 통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부분 부고환의 확장이다. 정자는 고환에서 생성되고 부고환에서 성숙하여 정관을 통해 전립선으로 이동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연결되어 있어야 할 정관이 폐쇄되어 생성된 정자가 나갈 통로가 없으므로 부고환에 정자가 몰려서 확장되고 붓게 된다. 이렇게 모인 정자는 보통 부고환 내에서 자연 흡수된다고 하지만 개인차에 따라 정자가 생성되는 양과 부고환이 최대치로 확장되는 정도가 다르다. 공급 과잉으로 부고환 확장이 한계에 직면하면 부고환 조직이 파열되어 밖으로 정자가 유출되며 이 파열된 부분이 아물면서 정자 육아종이라는 상처가 남는다. 정자 육아종은 개인차에 따라 통증을 느낄 수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에 의하여 많은 환자는 수술 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가지만, 드물게 어떤 환자는 불편한 통증을 주기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만약 증상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정관 복원수술이나 부고환 절제술을 받게 된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구글 스콜라, 비뇨기과 의사 블로그, 하이닥 의학백과, 영문 위키피디아, 만성 통증 경험자 포럼을 참고하자.

미국의 한 의사는 "본인도 정관수술 후 PVPS를 경험하고 있고, 만성 통증의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의사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으며, 만성 통증을 완화하는데 약물 요법은 비효율적이고 정관 복원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터뷰하였다.

5. 성 불구자와의 차이

정관수술은 반영구 피임 수술이지[15] 거세 수술이 아니다. 정액에 정자만 없을 뿐이다.[16]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정관수술을 하면 발기가 되지 않는다거나, 발기는 되더라도 사정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정자가 바깥으로 배출이 안 될 뿐 사정액 자체는 색깔도 양도 점도도 아무런 변화 없이 멀쩡하게 나오며, 평범하게 섹스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다고 정액이 묽어진다거나 무슨 외형적인 변화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정자가 정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개 3% 정도로, 이를 외형만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관수술로 인해 정력이 사라지지도, 성욕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아마도 정관수술하는 사람들이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지고, 성욕이 줄어들 때인 중년기에 주로 시술을 받기 때문에 생긴 오해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시기가 겹쳐 함께 우연히 벌어진다는 상관성이 있을 뿐 둘 사이에 인과성은 없는 것이다. 다만 정관수술로 자신의 남성 능력이 상실되었거나 손상되었을 거라고 오해한 나머지 심리적인 영향으로 성적 능력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결국 기분 탓.

정관수술을 하면 고환에서 정자 생산이 중단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고환에서 정자는 계속 생산되고 오래된 정자는 효소에 의해 자연 분해되어 다시 몸으로 흡수된다.

6. 정관수술을 받은 유명인

거의 대부분은 이미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더 이상 자녀를 갖지 않으려고 받지만 자녀가 없는 상태임에도 앞으로도 쭉 자녀를 가지지 않고 살기 위해(주로 딩크족) 받는 경우도 있다.

취소선 처리는 정관 복원 수술을 받은 경우이다. + 표시는 정관 수술에 실패한 경우이다. @ 표시는 자녀를 가지지 않고 정관 수술을 받은 경우이다.

7. 디젤 차량 불법 개조를 뜻하는 은어

원래 디젤차는 환경오염물질 배출량이 많은지라 요소수를 이용하여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쓰는데 당연히 요소수를 채워놓지 않았다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차를 뜯어서 요소수를 채우지 않아도 시동이 걸리게 개조하는 것.

[1] 복원수술만 안한다면 충분히 영구적이긴 하지만 복원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구적이라기 보다는 반영구적이라고 봐야 한다.[2] 일명 보비[3] 물론 칼로 복부를 절개했던 기존의 수술 방식이 복강경 수술로 대체되면서 흉터가 적고 수술과 회복 시간이 빨라졌다. 수술 시간은 20분~30분이며 입원도 필요 없다. 산부인과 수술 중에선 꽤 난이도가 낮은 편이나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다.[4] 난관수술이 7.6%, 자궁 내 장치가 12.4%.[5] 임철우의 1980년대작 단편소설 <수박촌 사람들>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래 행정명은 행복동이지만 거주자가 죄 '씨 없는 수박'이라는 소문에 수박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MBC타임머신에서 '남성 상실의 시대(12회, 2002년 02월 03일 방송분)'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와 채널A충격실화극 싸인에서 각색되어 다루어지기도 했다.[6] 당시에도 정관수술은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수술을 받아온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간단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정관수술을 하면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발기부전이나 동맥경화가 온다'는 오해가 있어서 남자들이 수술받는 걸 기피하는 풍토가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 대신 가정주부인 아내가 수술 받는 게 당연히 더 낫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임신이 부담스러운 여성들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난관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신마취 사고나 자궁 외 임신의 리스크가 적은 확률이나마 존재하는 난관수술에 비해 정관수술이 더 안전하고 복원수술 시 성공 확률도 높다며 정관수술을 권유하는 의사들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는 그런 오해가 많이 타파된 상태다.[7] 신혼 집이나 노후를 보낼 집을 강남에 사는 게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당시의 강남은 지금으로 치면 막 개발된 신도시 같은 곳이었다. 아파트 옆에 논밭이 펼쳐져 있는 등 주변에 편의 시설도 별로 없었다. 강남 8학군도 강남 입주를 부추기기 위해서 명문고들을 반 강제로 이전시키면서 만들어졌다.[8] 물론 이는 법적인 제한이 아니라 병원의 자체적인 방침이기 때문에 병원마다 차이가 있다. 실제로 시술에 대한 안내를 받은 뒤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돈만 잘 내면 딱히 개인의 사정을 캐 묻지 않고 시술을 해 주는 병원도 없지 않다.[9] '결혼하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살고 싶어서'와 같이 다수의 이성과 성적 접촉을 전제로 하는 사유라면 시술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절대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본인의 확고한 인생관이 있다거나, 경제적 문제 등의 사유는 경우에 따라 다르고,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인 예비 배우자와 합의를 본 경우라면 대부분은 시술을 받을 수 있다.[10] 단, 일부 보수적인 성향의 병원에서는 기혼자라고 해도 자녀가 없으면 시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11] 정관복원수술이 잘 안 되었다면? 말 그대로 생식 불구가 되는 거다. 앞으로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것이 아닌 이상 성 기능은 신체 기능 중에서도 보는 것, 걷는 것만큼 고도로 중요한 기능이므로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훼손한 경우 일반상해가 아닌 중상해에 해당한다.[12] 사전에 알린 경우 내지는 정관 회복에 대한 시도가 있음이 확인되면 재판상 이혼 사유가 아니다(89므365; 해당 사례는 혼인신고 자궁 적출로 인한 불임 관련 사건).[13] 다만 이 경우에는 정관수술이 직접적인 원인인 경우보다는 심리적인 요인,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정력, 성욕이 감소하는 건데 정관수술 때문에 성욕이 감소했다고 오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일종의 오비이락. 정관수술은 보통 자녀 계획이 끝난 뒤 35~40살 정도에 받는다. 이 나이대라면 정관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자연적으로 정력과 성욕이 감퇴할 확률이 높다.[14]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만으로도 해당 내용이 쏟아져 나온다.[15] 앞에서 설명했지만 충분히 수술로도 복원이 가능하다.[16]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고자는 탄창이 없는 거고, 정관수술은 공포탄을 장전한 것이다.[17] 기막힌외출에 출연하여 자녀가 셋 있으니 정관수술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정관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간 게 방송으로 나갔다.[18] 사귀던 여성이 낙태하자 죄책감에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자서전에 썼다.[19] 2010년 셋째 라오가 태어날 무렵에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씨 없는 수박이 된 느낌이라고 한다.[20] 늦둥이를 가지기 위해 정관 복원 수술을 받았다.[21] 이쪽은 아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렸다. 정관수술 후토크 영상.[22] 수술을 했으나 실패했다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밝혔다.[23] 아이 둘끼리 노는 것을 핵무기끼리 경쟁하는 것에 비유하며 JGSS 조약으로 더 이상의 핵을 만들 수 없다고 밝혔다.
파일:20191221_123918.jpg
[24] 정관수술을 했는데 아이를 갖게 되자, 하나님이 주신 아이라고 이름을 다니엘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형제들은 평범한 한자 이름.[25] 살림남 3에서 밝혀졌다.[26] 카펜터즈의 보컬이던 캐런 카펜터의 전 남편이었다.[27] 과거 수술을 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 아이를 두 명 가지며 수술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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