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처럼 음악처럼 | |
<colbgcolor=#F1C500><colcolor=#18140F> 가수 | 김현식 |
음반 | |
장르 | 피아노 록, 발라드 |
재생 시간 | 4:37 |
작사 | 박성식 |
작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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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 7월 1일 제4회 KBS FM 록 페스티벌에서의 무대[1] |
내 사랑 내 곁에와 함께 김현식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로, 198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명곡이자 지금도 비만 오면 라디오에서 제법 들려오는 노래이다. 작곡가인 박성식이 해군 홍보단 복무시절에 이별 통보를 받고 부대 연습실에서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훗날 박성식이 회고하길, 김현식이 처음 이 곡을 불렀더니 자기가 생각했던 곡과 전혀 다른 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웹진 음악취향 Y가 선정한 발라드 베스트 100 리스트 3위에 선정된 적이 있다.[3] 중반기 김현식의 거친 미성이 돋보이는[4] 가창과 비가 오는 날에 연인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그 추억을 음악에 비유하는 감성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 곡은 발매 직후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2년 뒤인 1988년 큰 인기를 끌었고[5] 현재까지 불후의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2. 원곡자 논쟁
들어가기 앞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곡의 원곡 가수는 가장 먼저 해당 곡을 발표한 김현식이 맞다. 다만 가장 먼저 곡을 받은 가수는 밴드 시나브로 출신의 문관철이다.[6] 이런 사실 때문에 일부 커뮤니티와 유튜브 댓글 등에서 원곡자 논쟁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문관철 버전 (1987년 2월 발표) |
이런 사실 때문에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이 '원래 이 곡의 원곡자는 문관철이다', '김현식은 탐욕에 눈이 멀어 문관철의 곡을 강탈했다'란 식으로 인터넷에서 악의적인 선동을 퍼트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작곡가가 인정한 원곡자는 김현식 단 한 명 뿐이며 문관철은 원곡자(최초 발표자)로써의 법적, 도의적 권리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발표 될 곡의 원곡자를 결정할 권리는 가수 본인이 아니라 곡의 원래 주인인 작곡가에게 있고, 문관철이 해당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거나 김현식보다 먼저 발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관철은 김현식에 이어 해당 곡을 발표했기 때문에 저작인접권자로써 권리만 있을 뿐, 최초로 발표한 원곡자로써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훗날 김현식이 사망한 후 문관철은 김현식 버전의 성공에 “강탈당한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는데, 후술하지만 이는 명백한 자격지심일 뿐이다.
현재도 작곡가는 여러 가수들에게 자신의 곡을 부르게 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버전을 골라 발표한다. 처음부터 곡에 대한 모든 권리는 작곡가에게 있기 때문에 가수가 본인이 녹음을 먼저했다고 그 곡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예로, 가수 김국환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 타타타는 본래 조용필이 부르기로 계획됐었고 실제로 녹음까지 마쳤었다.# 그러나 작곡가인 김희갑의 결정으로 결국 조용필 버전은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후 조용필과 목소리가 비슷한 가수 위일청이 1988년 드라마 OST로 먼저 불렀고, 이후 김국환이 1991년에 정식으로 앨범에 수록해 발표했다. 타타타는 조용필이 가장 먼저 녹음했지만 조용필은 '자기가 먼저 녹음했으니 자기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무엇보다 김현식은 앨범 발표 전, 문관철에게 직접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당시 김현식은 후배들에게 상당히 엄하고 괴팍한 선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김현식이 정말 문관철의 노래를 강탈하려 했다면 처음부터 사과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선배의 권위로 뭉개면 그만이었다. 김현식이 폭력과 권위주의가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사람임을 감안하면, 이 행동 하나로 김현식이 문관철의 곡을 '강탈'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신빙성을 잃게 된다. 더군다나 김현식은 곡의 본래 주인이자 작곡가인 박성식에게 가장 먼저 부탁을 했고, 뒤이어 발표 직전 문관철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다. 이것은 상식선에서 봐도 무언가를 강탈하려는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일부 악질 선동꾼들 중에는 김현식이 박성식을 협박해서 곡을 갈취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정작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관철이 한 인터뷰에서 김현식 버전의 성공에 강탈당한 느낌이었다는 자격지심을 부리자, 일부 문관철 옹호자들은 "김현식이 대형기획사를 등에 업고 횡포를 부려 문관철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근거 없는 감성팔이식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현식 버전은 발표 당시인 1986년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2년 뒤 1988년 골든 디스크 본상을 받고 나서야 인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김현식 버전이 문관철 버전보다 먼저 발표됐다고 처음부터 인기가 생긴 것이 아니란 뜻이다. 문관철 버전은 김현식의 앨범 발표일과 고작 2~3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김현식 버전의 부진으로 문관철 버전이 주목받을 기회가 더 많이 있었다. 그러나 발표 당시 문관철 버전은 철저히 대중들에게 외면받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문관철이 앨범을 빨리 발표했다 하더라도 해당곡이 지금처럼 명곡으로 인정 받을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정적으로 1집 타이틀 곡이자 문관철의 대표곡인 오페라부터 훗날 김장훈이 리메이크하기 전까지는 대중적 인지도가 전혀 없었다. 이후 발표한 2, 3집도 마찬가지로 실패를 거듭했다. 문관철은 음악계의 횡포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아니라, 대중에게 선택받지 못한 운 없는 가수일 뿐이다. 문관철의 별명인 '비운의 가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3. 가사
비처럼 음악처럼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7]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그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8] |
4. 커버
자세한 내용은 비처럼 음악처럼/커버 문서 참고하십시오.5. 기타
- 요한 일렉트릭 바흐가 초창기에 발표한 곡중 <White Hands>(백수)라는 곡은 일렉트로 하우스 리듬에 본 곡을 샘플링으로 썼다. 곡 제목값은 해야 하는지 후크 부분에서 '하루를 그냥 보내요' 부분을 반복시키는게 인상적.
- 최고음은 2옥타브 라(A4). 마냥 쉽지만은 않은 곡이다.
- 저드의 정규 2집 앨범 BOMM 수록곡 Like Rain, Like Music 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1] 사망 4개월 전 김현식의 마지막 비처럼 음악처럼 공연이다. 펑퍼짐한 복장과 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건강이 아주 좋지 않던 시점이라 가창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 빛과 소금의 키보디스트로 이 곡을 작곡할 때에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소속이었다.[3] 여담으로 1위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2위는 015B의 텅 빈 거리에서이다. 다만 현대 발라드 시작은 유재하로부터 보는게 일반적이라 비처럼 음악처럼은 과도기적 형태에 있던 발라드 프로토타입곡 정도 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4] 김현식은 원래 데뷔 초창기 때에는 맑은 미성으로 유명한 가수였다. 그러다 김현식 본인의 음색을 바꾸려는 노력과 술, 담배의 영향이 겹쳐 이 앨범부터 음색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5] 당시에는 음반 발매 후 실제 인기가 절정에 오르기까지 텀이 보통 몇 개월은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 이를 감안해도 늦게 주목을 받은 건 사실이다.[6] 참고로 문관철이 발표하기로 예정된 곡 중에는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도 있었다. 이 곡은 본래 작곡가인 유재하가 문관철을 염두에 두고 쓴 곡이었는데, 후에 유재하가 문관철에게 곡을 준 사실을 까먹고 이문세에게 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7] 문관철 버전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 난 당신이 보고파요 / 당신의 떠나시던 모습은 / 그렇게 젖어 있었죠[8] 김현식 버전은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마무리된다. 반면, 문관철 버전은 꾸밈음 없이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개인 취향에 따라 선호도에 차이가 있지만, 대중들은 곡의 완성도와 곡과 보컬이 잘 어울리는 김현식 버전을 더 선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