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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01:05:02

종신 감독

종신감독에서 넘어옴
1. 개요2. 사례3. 은어
3.1. 통상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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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終身監督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또는 창단과 해체를 끝까지 지켜볼 때까지 재직하는 스포츠단 감독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적을 옮기지 않고 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재직하는 감독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 구단의 내부 사정, 상대 구단의 갑작스러운 성장, 밸런스 조정 등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프로 스포츠 특성상 장기간 상위권에 머무르는 스포츠단은 많지 않기 때문에프로 스포츠에서 종신 감독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규모가 크고 인기 있는 리그일수록 감독 수명은 그와 반비례하며 한국프로야구도 21세기 들어서면서 한 구단에 5년 이상 감독으로 재임하면 장기 집권으로 인식한다.

2. 사례

한국 같은 경우는 고양 원더스김성근 감독이 있다. 가장 길게 했던 김응용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에서만 18년을 보냈지만 해태외환위기를 겪는 바람에 삼성 라이온즈로 옮긴 뒤 한화 이글스까지 갔기 때문에 종신감독은 아니다.[1][2] 일본 프로야구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종신 명예감독 정도다.[3]

20년 이상 한 팀에 장기집권을 한 스포츠팀 감독이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7년동안 있었던 알렉스 퍼거슨 정도가 유명하다. 아스날 FC아르센 벵거 또한 22년에 달하는 장기집권을 했었다. 프로 전체로 따지면 구단주 겸 감독으로 늙어 죽을때 까지 한[4]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코니 맥이 있으며, 그 외에 샌안토니오 스퍼스그렉 포포비치, 23년간 유타 재즈의 감독으로 지낸 제리 슬로언, 39년간 AJ 오세르를 지도한 기 루 감독이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인 신치용이 종신감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프로 스포츠가 아닌 아마추어 스포츠에서는 이런 것에서 훨씬 자유롭기 때문에 평생 직장, 정말로 죽을 때까지 감독하다가 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국 대학 미식축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Penn-State)의 전 헤드코치 조 파터노(Joe Paterno)는 1950년 어시스턴트 코치로 들어와 1966년 헤드코치로 승진한뒤 2011년 11월 자신의 밑에 있던 수비코치 제리 샌더스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방조한 죄로 해임되기까지 무려 45년동안 한 팀을 지도해 왔으며, 해임된지 2개월 만인 2012년 1월 폐암으로 숨졌기 때문에 사실상 펜스테잇의 종신 감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영화감독도 감독은 감독이라 이 단어가 언급되기도 한다. 이 경우 (보통은 "상대팀 팬"의 공격이라기보다는) 작품성 저조에도 시리즈물 감독을 계속 맡기는 것에 대한 비판인데 대표적으로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마이클 베이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DC 확장 유니버스가 만들어지고 승승장구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비해 애매한 평가를 받은 맨 오브 스틸에 이어 도저히 망할 수가 없는 영화를 정의닦이로 만들어낸 DC 확장 유니버스잭 스나이더감독이 마블팬들에게 종신감독으로 조롱받고 있다.

게임의 디렉터도 감독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를 포함시키자면, 대표적으로 메이플스토리의 강원기와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오오모리 시게루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무능하고 실망스러운 실적으로 1번 항목의 의미로 종신 디렉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3.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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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통상

팬덤에서 말하는 종신감독은 주로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의 감독을 타 팀 팬들이 영원히 그 팀의 감독으로 있어서 계속 말아먹어 달라는 뜻이다. 단순히 못하는 돌감독에서 그치지 않고 적당히 부진한 성적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게 승점을 퍼주되 너무 일방적으로 이팀 저팀에게 다 퍼주다 망하면 조기 경질되어 쫓겨나거나 여론에 못 이겨 사임하니까 아예 말아먹지는 말아야 한다. 여기에 트레이드 등으로 유망주를 마구 퍼주는 따위의 각종 자선사업을 하면 금상첨화.

하지만 이종운, 허문회처럼 감독이 온갖 구설수를 일으키는 막장짓을 하면 한마음 한뜻으로 꺼지라고 비난하므로 종신감독에서 탈락이다. 즉 종신감독이란 얘기는 역으로 말하면 자기팀 프로팀 1군 감독만 아니면 괜찮은 사람이란 뜻도 된다. 실제로 종신감독 소리 듣다가 정작 작전, 투수코치 등으로 날아다닌 사람들도 많고, 프런트로 성공한 사람도 많다. 또는 그냥 인성이 좋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종신감독 드립의 기원은 200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이었던 차범근으로부터 시작한다. 2008년 우승 이후 2009년 수원이 급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면서,[5] 수원과 수원 팬덤에 반감을 갖고 있던 국내 축구 갤러리 비 수원팬 유저들이 수원이 지는 날마다 "☆★차붐을 수원 종신감독으로☆★" 따위의 글로 국내 축구 갤러리를 도배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차범근이 수원 감독에서 물러난 후, 후임 감독으로 취임한 윤성효에게도 해당 기믹은 그대로 이어졌다. 세제믿윤과 함께 붙었던 별명이 성효종신. 윤성효의 경우는 정확하게는 당시 듣보였던 윤감독을 까기 위해 타팀팬들이 만든 별명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예능을 보여주던 2011 시즌 이후로 종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부산으로 감독직을 옮긴 뒤로는 그런 소리가 안나온다.

윤성효 이후로는 서정원이나 최순호를 제외하면 크게 종신 소리를 듣는 감독이 없었다. 그러나 2019시즌과 2020시즌에 수원, 전북, 울산이라는 인기팀의 감독들인 이임생, 김도훈, 주제 모라이스가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이자 이들 세명을 묶어서 종신 삼대장이라는 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6][7]

파일:종신 삼대장.png

4. 관련 문서



[1]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오히려 종신감독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면, 그 감독은 머지않아 잘린다. 프로야구 초창기 구단주와 유달리 친했던 OB 김성근이 그랬고, 빙그레 이글스의 김영덕도 그랬다. 종신감독 이야기가 나온 감독들은 100% 수석코치와 대립했고, 팀 분위기와 성적이 엉망이 되면서 해임되는 루트를 탔다.[2] 다만 K리그로 눈을 돌리면 막장운영의 끝을 보여준 고양 자이크로 FC의 사례가 눈에 띄는데, 이 경우는 이영무가 축구를 선교의 일환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구단이라 사실상 종신감독일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이영무가 감독직을 내려놓더라도 단장이나 다른 프런트 자리로 잠시 대피했다가 다시 감독직 복귀하는 레퍼토리를 보여줘, K리그 챌린지에 있었던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리그팬들로 하여금 아연실색하게 한 적이 있었다.[3] 이 쪽도 좋은 의미로 종신감독이 된 건 아니다. 원래 좀 기행으로 유명한데 팀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라 능력에 상관없이 감독을 맡았고 역시나 성적이 좋지 않자 짤렸다가 팬들의 반발로 다시 감독에 복귀하나 역시나 성적은 또 좋지않고 짜르면 팬들이 반발하니 타협책으로 종신명예감독으로 은퇴한 것이다. 이 사람의 기행은 항목을 참조하라. 나가시마 감독은 1차 부임 때 구단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리그 꼴찌를 한 건 흑역사이긴 한데 2차 시대 때는 성적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3년에 한번은 리그우승을 했다. 워낙 맴버가 빠방하고 지원이 좋았던 시절이라 1차 부임시절 변명을 하자면 9년연속 재팬시리즈를 우승 주니치에 간발에 차로 v10 실패 이 다음 시즌 감독을 맡았는데 맴버들이 노쇠화 되고 매너리즘에 번아웃까지 된 상황이었다. 2차 때는 부침이 있었지만 주니치와 최종전 동률에서 이기고 우승 94년도에는 지긋지긋하게 재팬시리즈에서 지던 세이부를 누르고 우승 96년도 리그 우승 2000년에는 히로시마와 엄청난 게임차를 누르고 역전우승 메이크 드라마우승 등. 성적이 나름 괜찮았다. 성적이 연속으로 계속 안 좋았다면 요미우리 특성상 감독을 10년 정도 할수도 없다. 게다가 마츠이 히데끼를 드래프트에서 추첨으로 뽑기도 했고, 이때 맴버는 각팀에 4번타자들을 수집하는 식으로 드림팀급 맴버였다.[4] 정확히는 1901년부터 죽기 6년전인 1950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감독으로 있었다.[5] 최종 순위 10위[6] 다만 저 세명 모두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재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이임생은 FA컵 우승을 남기기도 했고 인성면에서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7] 김도훈은 연속된 리그 준우승과 쫄보축구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선물하면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모라이스도 리그 2연패와 FA컵 우승을 비롯한 각종 미담들을 남기며 훈훈한 이별이라는 말이 대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