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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5 13:32:35

명군이 되어보세!/등장인물/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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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1. 개요2. 대한(大韓)
2.1. 역대 태황2.2. 황실
2.2.1. 재석의 가족
2.3. 소왕파2.4. 내관2.5. 조정2.6. 군인2.7. 기타 관원2.8. 심왕부2.9. 대명동2.10. 종교인
2.10.1. 천주교2.10.2. 불교2.10.3. 덕성도
2.11. 민간2.12. 유림2.13. 상인2.14. 발명가2.15. 연예2.16. 번국
2.16.1. 술루국2.16.2. 조홀국2.16.3. 하와국
2.16.3.1. 역대 국왕2.16.3.2. 왕실2.16.3.3. 하와인2.16.3.4. 한인
2.16.4. 유구국
2.16.4.1. 역대 황제 → 국왕2.16.4.2. 황실 → 왕실2.16.4.3. 신료
2.16.5. 불나이2.16.6. 사라왁 왕국2.16.7. 대남국 → 남월국
2.16.7.1. 역대 황제 → 국왕2.16.7.2. 황실 → 왕실2.16.7.3. 신료2.16.7.4. 기타2.16.7.5. 점파국
2.16.8. 중월국
2.17. 미주
2.17.1. 한인
2.17.1.1. 관료2.17.1.2. 공화주의자2.17.1.3. 원씨 가문2.17.1.4. 태원백 가문2.17.1.5. 기타 민간인
2.17.2. 토인2.17.3. 백인
2.17.3.1. 종교인
2.17.3.1.1. 후기 성도 교회
3. 대아주
3.1. 청
3.1.1. 역대 황제3.1.2. 황실3.1.3. 신료
3.2. 후금 → 실위
3.2.1. 역대 대칸 → 칸3.2.2. 황실 → 왕실3.2.3. 신료3.2.4. 성직자
3.3. 대진국 → 진왕부3.4. 후송
3.4.1. 역대 황제3.4.2. 황실3.4.3. 조정 신료3.4.4. 군부3.4.5. 기타3.4.6. 양광총독부 → 월왕부
3.5. 태평천국(배상제회/태평도/홍서당)
3.5.1. 왕실3.5.2. 신료
3.6. 서3.7. 일본
3.7.1. 역대 쇼군/내대신3.7.2. 도쿠가와 가문3.7.3. 천황가3.7.4. 좌막파3.7.5. 도막파3.7.6. 기타
3.8. 아모국3.9. 월남국(북월)3.10. 섬라국3.11. 진랍국3.12. 면전국3.13. 천축국 → 인도국3.14. 벵골 칸국3.15. 준가르 칸국3.16. 아체 술탄국3.17. 페르시아3.18. 파수둔
4. 대유주5. 대미주
5.1. 미주합중국
5.1.1. 역대 대총통5.1.2. 정치인과 정부 인사5.1.3. 군부5.1.4. 스미스&스크루지 상회(양수상회)5.1.5. 빅 존과 리틀 존5.1.6. 기타
5.2. 신불랑국5.3. 맥고국
6. 대삼주7. 대상주

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의 웹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4부의 등장인물들.
실존 인물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상인물

2. 대한(大韓)

2.1. 역대 태황

조선 제21대 국왕
대한 제7대 태황
영종 원평제 | 英宗 元平帝
영종익문선무장의희경영철현효태황
英宗 翼文宣武莊義熙敬英哲顯孝太皇
출생 1763년
대한 황도 한성부
즉위 1782년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829년 음력 6월 2일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
재위 대한 태황
1782년 ~ 1829년
(음력 1782년 ~ 음력 1829년)
연호 원평(元平)
황릉 양주 숭릉(崇陵)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금(昑)
부모 부황 목종 영태제, 모후 남양 홍씨
부인 황후 파평 윤씨 }}}}}}}}}
조선 제22대 국왕
대한 제8대 태황
헌종 광덕제 | 憲宗 廣德帝
헌종경문위무명인철효태황
憲宗 經文緯武明仁哲孝太皇
[2]
출생 1795년
대한 황도 한성부
즉위 1829년 음력 6월 2일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834년 음력 9월 17일
대한 황도 한성부 경희궁 침전
재위 대한 태황
1829년 ~ 1834년
(음력 1829년 ~ 음력 1834년)
연호 광덕(廣德)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순(峋)
부모 부황 영종 원평제, 모후 파평 윤씨
부인 추존 순원황후 안동 김씨, 황후 반남 박씨 }}}}}}}}}

2.2. 황실

2.2.1. 재석의 가족

2.3. 소왕파

2.4. 내관

2.5. 조정

2.6. 군인

2.7. 기타 관원

2.8. 심왕부

2.9. 대명동

2.10. 종교인

2.10.1. 천주교

2.10.2. 불교

2.10.3. 덕성도

2.11. 민간

2.12. 유림

2.13. 상인

2.14. 발명가

2.15. 연예

2.16. 번국

2.16.1. 술루국

2.16.2. 조홀국

2.16.3. 하와국

2.16.3.1. 역대 국왕
2.16.3.2. 왕실
2.16.3.3. 하와인
2.16.3.4. 한인

2.16.4. 유구국

2.16.4.1. 역대 황제 → 국왕
2.16.4.2. 황실 → 왕실
2.16.4.3. 신료

2.16.5. 불나이

2.16.6. 사라왁 왕국

2.16.7. 대남국 → 남월국

2.16.7.1. 역대 황제 → 국왕
2.16.7.2. 황실 → 왕실
2.16.7.3. 신료
2.16.7.4. 기타
2.16.7.5. 점파국

2.16.8. 중월국

2.17. 미주

2.17.1. 한인

2.17.1.1. 관료
2.17.1.2. 공화주의자
2.17.1.3. 원씨 가문
2.17.1.4. 태원백 가문
2.17.1.5. 기타 민간인

2.17.2. 토인

2.17.3. 백인

2.17.3.1. 종교인
2.17.3.1.1. 후기 성도 교회

3. 대아주

3.1.

3.1.1. 역대 황제

3.1.2. 황실

3.1.3. 신료

3.2. 후금 → 실위

3.2.1. 역대 대칸 → 칸

3.2.2. 황실 → 왕실

3.2.3. 신료

3.2.4. 성직자

3.3. 대진국 → 진왕부

3.4. 후송

3.4.1. 역대 황제

3.4.2. 황실

3.4.3. 조정 신료

3.4.4. 군부

3.4.5. 기타

3.4.6. 양광총독부 → 월왕부

3.5. 태평천국(배상제회/태평도/홍서당)

3.5.1. 왕실

3.5.2. 신료

3.6.

3.7. 일본

3.7.1. 역대 쇼군/내대신

3.7.2. 도쿠가와 가문

3.7.3. 천황가

3.7.4. 좌막파

3.7.5. 도막파

3.7.6. 기타

3.8. 아모국

3.9. 월남국(북월)

3.10. 섬라국

3.11. 진랍국

3.12. 면전국

3.13. 천축국 → 인도국

3.14. 벵골 칸국

3.15. 준가르 칸국

3.16. 아체 술탄국

3.17. 페르시아


3.18. 파수둔

4. 대유주

4.1. 루스국

4.1.1. 역대 차르

4.1.2. 황실

4.1.3. 기타

4.2. 서반아

4.3. 외수터국

4.4. 포뢰선

4.5. 도이치

4.6. 불랑국

4.6.1. 부르봉 왕가

4.6.2. 공화국 정부

4.6.3. 프랑스 제2제국

4.6.4. 기타

4.7. 잉글국

4.7.1. 역대 국왕

4.7.2. 왕실

4.7.3. 역대 총리

4.7.4. 정치인&정부 각료

4.7.5. 기타

4.8. 돌궐국

4.9. 수배국

4.10. 포도아국

4.11. 내달국

4.12. 벌기국

4.13. 양시칠리아 왕국

4.14.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4.15. 법왕국

4.15.1. 카타이 근위대

4.16. 그리스 왕국

4.17. 몰다비아 공국

5. 대미주

5.1. 미주합중국

5.1.1. 역대 대총통

5.1.2. 정치인과 정부 인사

5.1.3. 군부

5.1.4. 스미스&스크루지 상회(양수상회)

5.1.5. 빅 존과 리틀 존

이 두 캐릭터는 개그 에피소드와 함께 대한 외부의 상황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며 3부의 장호원-고구 콤비의 뒤를 잇는 감초같은 호감 조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유색인종 동성애자 커플로 소문나있다는 점 때문에 21세기가 되면 둘을 소재로 한 퀴어 영화나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는 드립도 자주 나온다.

5.1.6. 기타

5.2. 신불랑국[156]

5.2.1. 역대 황제, 집정관

5.2.2. 황실

5.2.3. 군부

5.2.3.1. 나폴레옹의 26 원수
5.2.3.2. 카리브 후작가
5.2.3.3. 기타

5.2.4. 관료

5.2.5. 정치인

5.2.6. 기타

5.3. 맥고국

6. 대삼주

6.1. 그란 콜롬비아

6.2. 브라질 제국

7. 대상주

7.1. 애집투[165]

7.2. 알제리

7.3. 모로코

7.4. 애토피아



[1] 실제 역사상 영조와 휘와 묘호가 한자까지 동일하다.[2] 원 역사 헌종과 동일.[3] 실력이 더 좋은 일반 악공은 현지의 성격을 감당 못할 것이고, 현지에게 어른으로 대접받는 몇 안되는 인물이면서도 바이올린 연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화원장공주 뿐이기 때문이다.[4] 공부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낚시에 관한 구절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줄줄 꿰고 있는 걸 보면 정말로 머리가 나쁘진 않다. 그러면서도 낚시 하면 동양권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태공망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등 오해 받을 일을 피할 식견 정도는 가지고 있다.[5] 독자들은 굳이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을 보면 한 집에서 자란 홍천귀복과 이세연이 눈이 맞아 사고를 치게 된다는 복선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6] 실제 박지원은 아들을 셋만 두었다. 즉 4남 박종선의 자손은 가상인물이다.[7] 다만 아나스타샤를 옆에 두려 한 건 내명부 정치싸움보다는 그냥 아샤가 너무 귀여워서 곁에 두고 싶어서란 이유가 더 컸다. 본인이 프랑스어를 못하다 보니 아샤가 한국어를 할 줄 알기 전까진 크게 욕심 안 내고 권씨 쪽에 넘겼다.[8] 흥선제의 자식들 중 개혼인데다, 일국의 세자빈으로 시집가는 것이니 사실 당연했다.[9] 이걸 보면 광덕제가 여색에 쓴 돈이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심지어 그나마 아들이니 챙겼지, 딸을 낳으면 나 몰라라 한다고 하니 사생아는 더 많을 듯.[10] 훗날 2부에 등장한 정일한의 부친이자 정준석의 조부로 대남 정씨 및 조홀국 왕가의 시조가 된 인물로, 뱃속에 있을 때 무종이 죽었고 장조로 환생했을 때는 이미 죽은 뒤라서 평생 얼굴도 못 봤다.[11] 조부인 원평제부터가 후계자가 아닌 황손들은 그냥 쩌리 취급했다. 그나마 화원군주만 첫 손주 버프로 좀 예쁨받았을 뿐 나머지는 차별 대우해 태손인 재석이 창경궁 전체를 마음껏 사용하며 지내는 동안 이정 몫으로 주어진 공간은 겨우 낙선당의 방 한 칸이었으며 아버지 광덕제는 재석에게만 관심을 좀 보였지 총애가 식은 김 선시 소생인 이정에게는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고 대궐 밖에 자주 나가면서도 단 한 번도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12] 원평제의 진짜 친동생 수복공주보다도 더 남매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13] 그동안 몇 차례 혼담이 들어와도 맏손녀를 어딜 감히 그런 집안에 시집 보내냐고 걷어차 버렸다고 한다.[14] 첫 언급 시에는 권세현이라고 나왔었다.[15] 어릴 때부터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데다 모친이 태황의 절대적인 비호를 받는 터라 반항할 수도 없었다.[16] 나현이 직접 조모에게 같이 데려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미주 출신인 김씨를 데려가 미주 백성들의 지지를 올릴 목적이었으며 각각 북인, 동인 계열 집안 출신인 최씨와 송씨를 데려가지 않으면 각 계열에서 불만을 품을 수 있고 또 태손이 현지에서 여색을 탐하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17] 2부에서 원 역사의 선조가 되었어야 하는 하성군이 왕이 되지 못했고 임해군의 역모로 후손들이 멸족되면서 원 역사의 하성군의 후손들인 인조 이후의 조선왕들과 종친들이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원 역사의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물론 아들인 고종 이명복도 존재하지 않는다.[18] 여담으로 국혼이 치러지던 날 재석은 '이 세계에서 그 민씨는 대한 황실로 시집올 일이 없겠지?'란 독백을 하는데 우연인지 작중 국혼이 치러진 년도는 바로 원 역사에서 그 민씨가 태어난 년도이다. 애초에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의사가 아니었으면 왕비가 되기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에 본작에서는 당연히 논외다.[19] 유럽 사교계의 살벌함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여전히 여성들의 대외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대한에 비해 외유가 한결 자유로운 대신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뽐내고 사교계에 적합한 인사임을 인정받아야 하며 살짝이라도 삐끗하면 즉시 뒷담화 대상이 된다. 똑같은 실책이라도 남녀간 리스크 차이가 현격한 것은 덤. 그런 유럽 사교계의 정점에 있는 왕족이었으니 대한 후궁들의 어설픈 견제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수밖에.#[20] 사실 전근대 동양 사회에서 적통 공주가 정실도 아니고 후궁으로 보내지는 건 고증오류다. 원 역사의 왕소군의순공주를 보면 알겠지만 종친의 딸과 심지어 궁녀조차도 정실로 보내지는 게 관례였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히데요시의 조건 중 제일 반발한 게 "황제의 딸을 천황의 후궁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황제의 후궁이 된다면 조선에서 사대부의 딸을 명나라 황제들의 공녀로 보냈듯이 후송 사대부의 딸을 보내는 게 더 개연성이 있다.[21] 실존인물 콜레스타는 야카마족 추장인 카미아킨의 다섯 아내 중 하나였다. 치료사(의사보다는 샤먼에 가깝다.)이자 직접 곤봉을 들고 전장에서 싸우기도 하는 여전사였다.[22] 현실이고 창작물이고 다른 인종엔 그러지 않으면서 유독 인디언 인명만은 직역해버리는 차별(존 베이커를 빵 굽는 요한으로 직역해버리는 수준의)이 공공연하고 명군이 되어보세!의 인디언 등장인물도 여태 그런 전철을 밟아왔기에 이름이 공개되기 전까지 설왕설래가 조금 있었는데, 다행히 실존인물에 모티브를 가져와 제대로 지었다. 실제 인물은 1800년생이니 무려 한 세대쯤 늦게 태어난 셈.[23] 고향은 심양이다.[24] 3부 때 태황태후가 뽑은 후궁들도, 평범 이상이긴 했으나 절색까지는 아니었다.[25] 황비 홍씨, 동비 김씨, 선시 김씨와 홍씨. 유구왕비와 하와왕비. 선황의 후궁과 딸, 현황의 후궁과 딸, 미래 태황의 후궁들을 전부 보냈다.[26] 아버지는 모르지만 어릴 적 담을 넘어 놀러나간 적도 많다고 한다.[27] 대한에서는 왕이 자기 나라에 없다는 개념이 생소하지만 왕이 여러 작위를 겸하는 사례가 많았던 서양에선 흔하다. 한국사에서도 고려왕과 심왕을 겸직하며 대도에 머무른 충선왕의 사례가 있다.[28] 이쪽은 서자지만 장자라는 이유. 이미 성인이라 광덕제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다음 태황에 추대될 확률이 높기에, 동생이자 서자인 자기가 보위에 오르려면 얘도 없어지는 게 좋은 방해물이기 때문이다.[29]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 예왕이 대대적으로 재평가받았다.[30] 실존인물. 원 역사에선 헌종 시기 은언군의 손자를 왕으로 추대하고자 반란을 모의했다가 적발되어 처형당했다.[31] 원 역사에서의 한반도 최초의 폭탄 테러는 1875년 일어난 민승호 암살 사건이었다.[32] 정황상 폭탄을 만드는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이렇게 된 듯.[33] 핵심 가담자 30여 명은 참수형, 가담 정도가 아주 경미한 소수의 사람들은 석방되었고 나머지 단순 가담자 200여 명은 기념함 겸 예식용으로 몇 척 남아있던 거북선판옥선의 노 젓는 노예로 20년간 복무하는 벌을 받는다. 굳이 이런 처벌을 내린 데에는 광덕제의 서양 취향이 작용한 듯.[34] 재석이 몰래 읽는 '구대검협전'이란 무협지가 있는데, 제목이 비슷해서 그가 쓴 게 아닐까 라고 추정하고 있다. 김조순이 임종 전에 재석의 문안을 받았을 때 본인이 썼다고 인정한다.[35] 원평제 앞에서 학습을 점검하는 시간에선 배우지 않은 논어 구절을 물어서 재석을 낚고 진도를 더 빠르게 빼기도 한다. 이렇게 재석의 총명함을 이끌어내면 함박웃음을 짓는 걸 보면 즐기는 듯.[36] 만약 광덕제가 낙마할 때 곁에 있었다면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를 받을 수도 있었으니, 뒤로 밀려나 있던 게 박규원에게는 다행이었다.[37] 원 역사에서 본명은 신관호이고 나중에 신헌으로 개명했지만 작중에서는 처음부터 신헌으로 등장한다.[38] 총 9명[39] 이진용(보리스)을 시조로 분가한 본관으로 보로는 이진용의 고향 러시아 보로네시에서 유래한다.[40] 누손주 관군에 저항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을 점령한 후 저항한 모로족 일가를 집안에 가둔 채 불태워 죽이는데 시찰 온 재석이 어디서 살 타는 냄새가 난다며 눈치를 채자 불필요한 살상은 최대한 삼가고 있다고 둘러댄다.[41] 안남에 군용 전신선을 깔자마자 본국에 처음 보고한 소식이 전투 코끼리를 앞세운 안남군에게 아군이 패전했다는 패전 보고였다.[42] 다만 융통성이 모자라다는 평판을 역으로 이용하여 완씨 왕실의 장손인 완복응복을 중월국 건국 밑작업에 이용해먹는 등 지혜로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43] 이하 호위대도 오도리 출신인데 이유는 옹주와 눈맞을 가능성이 전무한 게 오도리이기 때문이다.[44] 태자가 국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태자비는 관심을 안 가졌다가 박규수가 감사 인사를 올리러 와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묘사를 보면 태자비와 본래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듯.[45] 재석은 외숙이 조롱당하면 결국 그 허물은 자기에게 돌아오는데다 비록 사기당해 산 것이지만 검 자체는 명검인 점을 고려해 태황에게는 장조의 아들 진안군이 사온 모조 장팔사모, 경조가 사온 모조 청룡언월도에 이어 쌍고검까지 갖춰서 삼국지 세트를 맞추기 위해 가품인 줄 알면서 샀다고 하자고 말을 맞춘다.[46] 원 역사에선 세도정치로 조선을 회생불가 상태로 만든 간신이었으나 이 세계에서 대한은 날이 갈수록 국운이 승천하는 중이고 외조카인 태황 재석도 권위와 능력 모두 출중해 세도정치의 가능성도 없으니 나라를 망칠 일 없이 그냥 태황의 외숙부로서 적당히 챙길 거 챙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47] 사실 장덕순의 잘못은 아닌게 조정에서 기밀을 유지한다고 장덕순에게는 종성공이라고 알려주지 않고 소왕네 머슴이라고만 알려줬기 때문에 일반 유배죄인 수준으로 느슨하게 감시했기 때문이다.[48] 다만 스승을 닮아 출세보다 학문에 더 관심 많은 성격인지 재석은 속으로 장덕순은 벌이 아니라 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49] 그래서 김대건 안드레아가 1호 신부가 되었다.[50] 작중 세계의 광해군.[51] 사실 새로운 산업을 찾으려는 이유는 본국에서 주석을 생산하면 자신이 주지육림을 더이상 못 누리게 되기 때문이란 이유가 컸지만, 정말로 어리석은 자였다면 자기 생전에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으니 생각을 정지하고 살던 대로 계속 살 수도 있었을테고 현실의 21세기의 자원 부국들 중에도 그런 생각으로 국가를 막장으로 밀어넣는 지도자들이 많다.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것을 보면 군주의 자질이 없진 않았다고 봐야 할 듯.[52] 1부 정호찬은 보상이 있건말건 우직히 충성하는 타입이었고 3부 정호찬도 충신이지만 나름 계산적이라 자기 이득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먹는 타입이었다.[53] 하민상의 뻘짓을 보고받은 광덕제가 "지금 자기 딸을 폐서인하는거냐"고 당장 하와국왕을 끌고오라고 했을 정도로 크게 분노했기 때문(심지어 재석도 광덕제가 분노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 재석과 조정 중신들은 물론이고 하진교도 이게 조롱이라는 걸 알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좋다고 먹는다.[54] 그 전까지는 하와국 전사들이 대한 본국 근위대로 파견갔다가 다시 누손으로 파병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하진교가 술루국처럼 정식으로 하와국 국군을 파병하기로 한 것.[55] 30년 후 태황이 된 재석이 30년 전 그 일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기겁하는걸 보면 본인도 어지간히 트라우마로 남은 듯하다.[56] 하진교는 하와인 중신들에겐 불만 있으면 전사로서 덤비라고 해서 중신들이 아무 말 못하지만, 이동연에게도 그럴 수는 없으니 말을 들어준다. 툴툴거리긴 해도 화내지는 않고, 적당히 놀리기만 한다.[57] 원 역사에서는 그의 동생 완복홍일이 제위에 오른 뒤 이 이름으로 개명했다.[58] 완복시가 어머니만은 살려달라고 비는 태도를 보고 아직 성리학적 가치관이 남아있는 대신들이 꼴에 효자기는 하다면서 동정 여론을 산 게 도움이 되었다.[59] 대한의 광덕제도 태자 시절엔 비슷했으나 부황의 건강이 안 좋아서 대리청정을 할 때는 눈치껏 유흥을 줄이고 나름 국정을 챙겼던 것과도 대비된다.[60] 완복시가 미친 짓거리로 대한의 침공을 유발해 나라를 말아먹긴 했지만 사실 이쪽이 즉위했어도 말아먹는 방향만 다를 뿐 똑같이 나라를 말아먹는 심각한 암군이 되었을 것이다.[61]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탈출 과정에서 혼란 속에 실종되었다. 난리가 평정된 후에도 끝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전쟁통에 객사했을 가능성이 크다.[62] 사덕제가 치를 떨 정도로 엽색 행각이 심각한, 아버지 이상 가는 색마로 자라났다. 명명제의 44녀, 즉 자신의 고모할머니(나이로는 겨우 12살 위였다) 완복유의(阮福柔儀)와 근친 불륜관계를 맺어 딸을 얻는 정신 나간 짓을 하질 않나.##[63] 살아남아 잡힌 안남국 왕족들 처우에 대해서도 동일한 지시가 내려졌다. 역대 안남국왕들이 씨를 너무 많이 뿌려서 방계까지 포함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보니 죽여봤자 저항할 자들은 다른 허수아비를 찾으면 그만이고, 이들에게 대한에 맞서 무언가를 할 만한 재능도 없었기 때문.[64] 2할은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고향인 중월국에 남기를 택했고, 1할은 완복시 외의 주인을 섬기지 않겠다며 자결하거나 벵골행을 택했다. 심지어는 북한산성에 유폐된 완복시를 보필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북한산성으로 들어간 이도 있다.[65] 그래도 이렇게 진지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인재라는 뜻이긴 하다.[66] 화번공주로 뽑히며 태황의 양녀로 입적되어 족보상으로 흥선제의 딸이다.[67] 실제로 작가가 이용갑을 이병갑이라고 오타를 내기도 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조병갑 + 이용태 설이 거의 정설이 되어있다.[68] 이 점은 1부의 박원종과 비슷하다.[69] 이 시점에선 양장을 입고 머리도 짧게 자른 서구화된 모습을 한다.[70] 시야는 좁았지만 감정적 이유는 충분했다. 아버지가 상소문에 헛소리를 적는 바람에 원한 적도 없는 군대에 가서 몇년동안 전방에서만 근무했다. 1년에 겨우 절반 들어오는 집에서는 애국하라면서 아예 말뚝 박을 걸 종용하는 아버지와 호시탐탐 자기 자리를 노리는 어린 계모와 부딪혔다. 그나마 예쁜 아내 때문에 마음을 잡고 가출까지는 참고 있었지만.[71] 공화주의의 혹했을 때 안 사람들일 수도 있긴 하지만 재석은 김주성에게 친구가 많았으니 그 중 공화당도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문제삼을 생각은 없어서 별탈 없이 넘길 수 있게 되었다.[72] 1년 이상 본국에 체류하면 군대 영장이 나온다(...)[73] 원 역사에서 스미스는 1844년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있던 중 반모르몬 폭도들과의 교전으로 사망하였고 스미스 사후 모르몬교의 지도자가 된 브리검 영이 모르몬교 신자들의 유타 정착을 이끈다.[74] 개신교는 가톨릭과 달리 교리와 조직의 특성상 18세기까지 선교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19세기부터 선교가 허락되었다. 개신교 목사들도 우선 대한령 미주에서 몇 년간 머물며 대한에 대해 공부를 하고 대처법을 익힌 뒤에 본토로 가서 선교하기 때문에 당장은 큰 트러블이 없어서 이미지가 나쁘지는 않았다.[75] 모르몬교 이주 당시 대한은 일부일처다첩제로 일부다처제와는 엄밀히 말해 다르지만 모르몬교 입장에서는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 모양.[76] 재석이 실내운동이라도 하라고 현대식 다트를 투후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줬는데, 다트를 꽂을 때 풍기는 살벌함이 나인들은 물론 동생 이창까지도 벌벌 떨게 만들 정도다. 숙부와 고모들도 친왕과 장공주(작중 언급은 화선장공주 뿐이지만 태후 소생이란 점에선 친왕까진 포함일 것이다.)나 숙부, 고모로 불러주고 후궁 소생은 군왕이나 옹주들은 숙부, 고모로 부르지도 않는다. 그나마 제대로 어른 대우한 건 친부모와 화원장공주 내외, 순친왕 내외, 김좌근 뿐이라 태후 소생 자녀들은 호칭만 존칭인 수준인 듯 하다.[77] 한자는 다르지만 일본어 훈독은 아버지의 이름과 같은 아키라이다.[78] 송태후가 자신의 딸인 영화공주를 대한 황태자의 후궁으로 보내려는 것에 대해 "대한과 전쟁을 하면 대한군이 후송의 도시를 불태우고 대한과 우호를 맺으면 대한이 후송의 재물을 쓸어가니 어느쪽이든 결과는 같다"는 말을 남긴 거 보면 그나마 시국을 어느 정도 볼 줄 알기는 아는데 그냥 본인이 일을 안 하는 성격이다.[79] 대한과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으니 당장은 불필요해진 요주, 항주, 명주 도통부를 먼저 군사적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강경한 구상을 내놓는다.[80] 폐태자 계획을 반대한 이 중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여 사실상 폐태자 반대파의 대표였다.[81] 원 역사를 아는 독자들은 임칙서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우려했지만 작중에서는 대한의 존재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도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고, 후송은 청과 끊임없이 싸워가며 발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82] 특히 대한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외교적으로도 매우 편해졌다. 비행선까지 구입할 수 있을 정도. 거기다가 번국들이 늘어나고, 대한에서도 후송과 관계를 고려하여 존중해야 하다보니 이전과 달리 후송을 설득할 때 후송이 만족할 선물을 안겨주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두고 대한의 존중을 받아내서 외교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외교개선의 가장 큰 이익효과라는 평가도 있다.[83] 그래서 섬라의 번국의 건도 무시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하필 황제가 그 때만 서류를 확인하고는 천자로서 자존심이라며 번국을 포기 말라고 명령했다보니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명이기도 하지만, 명분적으로도 옳은 것이라 반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 그리고 이 문제는 섬라의 인정으로 명분을 쥐어서 대한에서 명분 때문에 이를 인정하고, 후송이 대놓고 '최소한의 존중'을 요구하자 외교적으로 이득을 얻어내게 됐다.[84] 구원군을 안보낸건 아니지만 전부 막혔고 본인은 조정에서 장사 사수를 강요받았다[85] 작품 외적으로 본다면 원래 서태후처럼 무개념 행보를 계속하며 나라를 말아먹는 캐릭터로 기획된 송태후가 일생을 바쳐 자기가 싸놓은 똥을 열심히 치우는 캐릭터로 변경되면서 등장이 사라졌을 듯하다.[86] 실제 풍운산과 홍수전이 사촌 관계였는지는 설만 있을 뿐 확실하진 않은데 작중에서는 실제 홍수전의 고종사촌인 것으로 설정되었다.[87] 다만 원 역사의 무츠히토(메이지 덴노)는 측실 나카야마 요시코가 낳은 서자라서 무츠히토 자체는 존재할 수도 있다.[88] 원 역사에서 나루히토의 모친은 다카쓰카사 요시코이다. 작중 이에츠구의 누이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보아 원 역사와 이름만 같은 다른 인물이다.[89] 이유도 다른 이유 없고 그저 돈지랄 대결에서 졌기 때문(...)[90] 대한이 일본과의 합의를 어기고 아모국 내정에 간섭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지만, 부족장이 친일파니 일본에게는 오히려 이득이라 그냥 넘어갔다.[91] 원 역사 후 레 왕조의 마지막 왕인 민제 여유기랑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지만 민제는 여유조의 장남 여유의의 아들이다. 또한 실제로는 여유근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없어 족보를 조작했거나 가상인물인 것으로 보인다.[92] 후송의 종주권을 부인할 경우 대한한테 '신의가 없는 나라'로 찍혀 안남처럼 대한과 후송한테 응징당할 것이고 대한의 번국이 되겠다고 할 경우 명목상 상국이지만 섬라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후송과 달리 대한은 충분히 그럴만 한 힘이 있고 그 결과 양국의 관계가 상호적인 교섭이 아닌 일방적인 상명하복로 격하되어 대한에게 이리저리 휘둘릴 것이기 때문이다.[93] 무타구치 렌야의 이름인 '牟田口廉也'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모전구렴야'가 되는데 이름 맨 앞의 두 글자를 양탄자를 가리키는 한자어 '毛氈'으로 말장난을 했다. 다만 일본에서는 '毛氈'을 훈음이 아니라 독음인 '모센(もうせん)'으로 읽는다.[94] 네덜란드는 얼마 전까지 적국이였던 아체를 일본과 충돌하며 도울 이유가 없었고, 페르시아는 자기 코가 석자라 지원을 거절했다. 오스만은 그래도 이슬람의 종주국이란 체면 때문에 일본에 경고 서한을 보냈지만 씹혔고, 이에 대한에 일본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대한 역시 일본을 막을 생각이 없어서 거절했다.[95] 원 역사의 알렉산드르 2세와 동명이인이다. 3부에서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가 살아남아 황위를 이어서 작중 러시아 왕조는 표트르 1세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 한편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의 시조가 되는 표트르 3세는 대신 스웨덴 왕이 되었는데, 파벨 1세가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서 알렉산드르 1세~니콜라이 2세 계보도 삭제된다.[96] 원 역사에서 마리아 요제파는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1세와 혼인 예정이었으나 천연두로 사망해 원래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혼인 예정이었던 마리아 카롤리나가 페르디난도 1세와 혼인하고 마리아 안토니아(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간다.[97] 마리아 카롤리나는 억울하게 죽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달리 원 역사에서 그랬듯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며 혁명 세력을 탄압했기 때문에 이쪽은 억울하게 죽은 건 아니었다.[98] 원 역사에서는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이다.[99] 원 역사에서는 흑해함대를 자침시켜 영불 함대의 만 진입을 막아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열약했지만 여기서는 원 역사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상황의 러시아인 만큼 기뢰에 해안포, 장갑함, 비행선 등을 활용해 훨씬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100] 명군이 되어보세! 2부에서부터 계속 가르시아라는 이름의 스페인인 캐릭터가 대한에 반대하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4부의 가르시아는 이 사람과 멕시코인 도적 두목이고 각각 4번째, 5번째 가르시아이다.[101] 신대륙의 유일한 황제가 구대륙의 여러 황제 중 하나에게 억울하게 억류된 황족을 되찾겠다는 식으로 썼다고 한다.[A] 원 역사에서 프란츠 2세의 부인 마리아 테레사의 친모인 마리아 카롤리나가 원 역사와 다르게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기에 원 역사의 마리아 카롤리나의 후손들은 태어나지 못 했다.[A] [A] [105] 현실에서도 배우자가 바람 났을 때 이혼하면 상대가 바로 바람 난 상대와 재혼할 게 뻔하다는 이유로 안 해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A] [107] 제롬의 처가가 나폴레옹을 배신한 전적이 있어서 제외되었으며 제롬의 사생아는 유럽계 특성상 계승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사생아 계승이 가능했으면 나폴레옹의 사생아인 샤를 레옹 드누엘이나 알렉상드르 콜로나발레프스키를 후계자로 삼았을 것이다.[108] 이후 나폴레옹은 로마왕이 사망한 후에도 끝까지 조카를 후계자로 삼지 않고 아예 집정관제로 바꾼 뒤 외젠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을 보아 어지간히도 저평가한 모양이다. 이후 행적을 보면 정확한 판단이 맞긴 했지만. 이미 유럽에서 가족들에게 왕 자리 나눠줬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전적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109] 주변국들은 이제 나폴레옹은 유럽에 위협이 안 되니 돌려보내도 되지 않겠냐고 프란츠 2세를 설득했지만, 프란츠 2세는 귀여운 외손자를 보내기 싫어서, 메테르니히는 재수 없는 나폴레옹의 왕조가 이어지기를 원하지 않아서 라이히슈타트 공작을 가두고 끝까지 보내지 않았다.[110] 원 역사에서도 둘이 불륜 관계였고 막시밀리아노 1세가 이 둘 사이에서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 즈음 프란츠 2세가 라이히슈타트 공작의 혼인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숙모와 불륜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111] 공식적으로는 총기 손질 중 오발 사고사로 발표되었다.[112] 원 역사에서는 프랑스 침공 후 프랑스를 점령한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로 이루어졌다.[113] 1815년생으로 4부의 이재석이 빙의한 흥선제보다 1살 연상이다.[114] 세종이 편찬한 농사직설을 장조 때 해외와 교류한다고 번역판을 보냈는데 그 번역판 중 하나가 그라이프스발트 대학에서 수백 년간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환경이 달라서 써먹지는 못했지만 재미있었다고.[115] 조선계 사대부들은 조선시대 영향으로 여전히 농업을 정체성으로 둬서 직접 농사를 짓는 수준은 아니라도 농장 경영을 지휘하거나 농서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약용의 장남 정학연과 정학유도 농서를 썼는데 정약용 본인은 하도 바빠서 못 썼다고. 이 때문에 조선계 양반들은 가문의 장남은 제사와 지주 일에 전념하고 차남 이하부터 장사와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관습이라고 한다.[116] 원 역사에서는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는데 작중 세계에서는 이미 3부에서 상희에 의해 경구수액이 일찍 등장했기에 그 영향으로 생존한 것으로 보인다.[117] 본작에서는 3부 시점부터 유학이 서양에 퍼진 상태였고, 4부에서 유럽 지배층들이 유학의 고사를 인용하는 등 유학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마르크스가 유학 공부를 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118] 본작에서는 루이 15세의 둘째 형(1707년생)이 루이 16세로 즉위했고(그랑 도팽 루이가 종두법으로 살아남아서 루이 15세가 되었다. 프티 도팽 루이는 홍역으로 사망했지만) 그 후손으로 가계가 이어져서 동명이인이다.[119] 이때 루이지애나로 갈 것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신불랑국을 건국해서 재기할 수 있었다.[120] 다만 아주 틀린 건 아닌 게 누벨프랑스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군사를 상륙시킬 역량은 부족하므로 프랑스를 되찾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121] 실제 루이 19세라 불리는 인물은 앙굴렘 공작 루이 앙투안이다. 루이 18세의 동생 샤를 10세의 아들.[A] [123] 원역사에서 푸시킨을 결투로 죽여버린 사람이다.[124] 다만 국혼은 진지하게 추진한 게 아니라 혹시 가능할까 수준으로 필 총리와 얘기해본 정도인 데다가, 남편 앨버트가 그토록 좋아하는 애들을 멀리 보낼 리 없다는 이유로 곧 생각을 접는다.[125]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엘리자베스 블랙웰의 호소를 받아들여 '여학생들을 위한 의대' 설립에 동의한 것도 여성의 사회진출을 긍정해서가 아닌, 어디까지나 정숙해야 할 여자들이 외간남자와 접촉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조선/대한에서 의녀를 양성한 이유와도 일치하기 때문에 한국의 예를 본받는 격이기도 하다.[126] 하지만 순친왕 등 다른 황실 남자들은 조지가 대머리라는 점도 있어서 싫어한다.[127] 물론 필의 주장에도 합리적인 근거는 있었다. 두 나라의 문화가 너무나 이질적이고, 대한 황실은 후사를 빨리 보기 위해 조혼을 하는데 아나스타샤는 너무 어리다는 것. 저런 근거만 봐도 필 본인 역시 대한의 문화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문제는 예상을 깨고 재석이 국혼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모든게 어그러진 것.[128]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이 한국에게 막혀 그 힘이 오스만을 향하고, 러시아군이 한국산 최신 무기까지 사용하는 상황이 불만족스럽기는 하나, 자국 영토를 지키는 것과 돈 주고 상품을 파는 건 당연한 일일 뿐이라는 건 잘 알기 때문에 한국을 원망하지는 않는다.[129] 이게 유명해져 훗날 동아시아 순방을 온 케임브리지 공은 겨울 동안은 추위를 피해 한양을 떠나 일본에 머물렀다.[130] 이 세계에서는 대한 학자들이 거북섬의 생물군에 대한 논문을 먼저 발표하여 영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였다.[131] 우리 안에 동산과 정원을 조성하는 등 21세기의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동물원이라 19세기 기준으로는 대단히 선진적이었다.[132] 현대에는 멸종한 호랑이 아종들도 있는데, 영종은 동물에 돈을 쓰지 않았지만 광덕제와 재석은 호랑이 수집에 관심이 많아 내수사의 돈으로 사들였다.[133] 즉 두 사람은 사촌간 혼인 관계로, 별개로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는 당시는 물론 현대까지도 사촌간 혼인이 합법이다. 물론 합법과는 별개로 사촌간 혼인에 대한 인식은 별로 좋지는 않다.[134] 아무래도 대한을 일본의 상국 즈음으로 여긴 모양이다.[135] 러시아와 대한이 매우 친하기는 하나 공식적인 군사 동맹 관계는 아니며, 흥선제가 오랜 혈맹인 청에 딸을 시집 보내는 것과 동시에 오랫동안 적국이었던 후송과 화해하고 후송의 황녀를 후궁으로 들이는 등의 행동을 보고 오스만 제국도 대한이 러시아 황녀를 황태자비로 들이기는 했지만 오스만 제국과도 혼맥을 틀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대한의 내명부를 오스만 제국의 하렘과 동일하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압뒬메지트 1세도 같은 이유로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136] 무슬림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무함마드가 만든 율법이다. 이슬람은 일부일처제를 권하기는 해도 일부다처제가 가능하기 때문.[137] 자기보다 24살이나 연하라는 말을 듣고 딸 같은 아이를 침소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138] 정황상 3~4부 사이에 프랑스 왕실에게서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A] [140] 러시아 황실은 3부에서 대한 공주 루시아가 시집온 후로 효도를 큰 가치로 받들게 되었다고 한다.[141] 원 역사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외조부인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의 어머니 스페인의 마리아 루이사는 3부에서 스페인에 보르본 왕조 대신 바비에라 왕조가 세워지면서 태어나지 못했다.[142] 원역사에서는 매국노 정명수의 만주 이름이 굴마훈이었다.[143] 원 역사에서는 1830년 그리스 독립 때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본인이 거절했고 1831년 벨기에 왕위를 받아들인다.[144] 일반적으로 특명전권대사는 본국에서 가까울수록 선호도가 높고 관계의 비중이 클수록 요직인데 바로 이웃나라에 관계도 밀접한 누벨 프랑스 주재대사라면 국무장관을 지낸 거물이 가는 어마어마한 요직이라도 이상하지 않다.[145] 원래대로라면 '인디언 독립국' 계획으로 악화된 여론으로 인해 대선 패배가 확실했으나 타이밍 좋게 대선 직전 쿠바 마탄사스에서 미국인 노예 밀수꾼이 강도살인을 당한 마탄사스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 반전에 성공했다.[146] 원 역사에선 퇴임 후 민주당 지도부의 요청을 받아 남부 지역을 순회여행하던 와중에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유행하던 콜레라에 걸려 1849년 사망했지만 여기선 1852년 기준으로도 여전히 살아있다. 역사가 바뀌어 뉴올리언스에 가지 않았거나 설령 걸렸더라도 이미 3부에서 상희가 경구수액을 개발해 퍼뜨렸기에 그 덕택에 콜레라를 극복하여 사망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147] 진출방향이 서쪽에서 남쪽으로 바뀌었을 뿐 원 역사와 비슷하게 명백한 운명을 명분으로 내세운다.[148] 그 나폴레옹이 있는 누벨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이길 수 있다고 내세운 논리가 "나폴레옹은 영국에게 패배했고 자신들은 그 영국과 싸워 이겼으니 질 리가 없다"는 지극이 단순한 근자감이었다.[149] 당시 미국인들은 누벨프랑스에 대해 몇몇 불만은 있었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었다. 누벨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정신의 연장선으로 탄생한 나라로 유럽 시절과 달리 아메리카로 이주한 뒤에는 혁명의 초심이 강화된 양상을 띄었다. 본작에서도 미국 독립은 프랑스의 다대한 지원을 받았고, 프랑스 혁명은 미국 독립 정신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당시 미국인들은 누벨프랑스를 '프랑스 혁명이 만들어낸 형제국에 준하는 나라'로 여겼다. WASP우월주의자들도 당시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 때문에 프랑스인들을 나름 높게 쳐주기도 했고.[150] 다만 잭슨은 명백한 운명 타령을 하는 와중에도 당시 자원 발굴이 안 되었고 얼음덩어리뿐인 캐나다와 로키 산맥을 넘어야 하는 대한령 미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인종차별과 영토 확장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151] 그 외에도 누벨프랑스로 이주한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하던 대로 원주민 땅을 빼앗으려다 오히려 귀족이었던 원주민들에게 막히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있던 것도 원인이었다. 상대가 귀족이니까 당연히 법원에서는 원주민 편을 들어 줬고.[152] 여기서 지지세력을 설득할 때 스페인은 유럽 열강도 아닌 대한 '따위'에게 패배해 필리핀을 뜯긴 나라니 별거 아니란 말을 하는데 작중 영국도 강대국으로 인정하는 대한을 우습게 안다. 그가 식견이 좁고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편협한 인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153] 명백한 운명 타령을 하는 포크도 서부는 도저히 답이 없다며 미서전쟁으로 선회했는데 이 양반 하는 짓 보면 양국과 전쟁까지 가도 이상하지 않다.[154] 운 좋은 괴짜 졸부로 유명한 티머시 덱스터 경을 동향 출신 선배 상인이라며 존경한다.[155] 하지만 이런 그도 존 화이트 앞에서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두고 게으르고 더러운 족속들이라 대놓고 비하하면서 인종주의가 아예 없지는 않다는 걸 보여줬는데, 이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선 스크루지가 존 화이트를 자신의 사위로 인정한 이유도 단순히 그가 유능해서만이 아니라 작중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 중 대한만 자신들과 동급이라 여긴다는 묘사를 근거로 존 화이트가 대한(명예백인국가) 출신이라서 마지못해 인정해준 걸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있다.[156] 프랑스어로는 누벨 프랑스 제국, 원미주에 위치.[157] 훙크파파 지파는 원 역사에서 웅크린 황소의 부족이었다.[158] 유럽에 남은 원수들까지 포함하면 오귀스트 마르몽이 가장 장수했으나 배신자를 그를 나폴레옹의 원수로 쳐주는 사람은 없었다.[159] 4부 초반 '추포를 할 정도로 큰 일은 아니었다'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것. 원 역사의 홍경래의 난 같은 대규모 반란이나 3부의 장길산 정도만 됐어도 홍경래가 죽거나 숙청당하지 않는 이상 신불랑과의 협상은 불가능했겠지만 대한에선 '공부하기 싫은 놈들이 벌인 난리'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홍경래도 재석을 만났을 때 정중한 예를 표했고, 사대부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김유근이나 못마땅해 할 정도였다.[160] 덕분에 재석이 알아볼까 속으로 전전긍긍하던 이훈이 재석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본의 아니게 도왔다.[161] 다만 이 드라마는 90년대 현대가 배경.[162] 기해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 중 남명혁 다미아노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163] 나폴레옹은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사의 어려움을 쉽게 짐작하고 대륙횡단철도가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A] [165] 埃集骰[166] 파리채 사건은 원 역사에서도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