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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1 13:30:04

명군이 되어보세!/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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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1. 개요2. 현대인
2.1. 이재석2.2. 김상희2.3. 기타 현대 인물
3. 천녀4. 사후세계5. 1부
5.1. 목록
6. 1, 2부 사이
6.1. 경성군 이윤6.2. 역대 국왕6.3. 왕실6.4. 기타
7. 2부
7.1. 목록
8. 2, 3부 사이
8.1. 성친왕 이현8.2. 조선 → 대한
8.2.1. 역대 국왕 → 태황8.2.2. 왕실8.2.3. 신료8.2.4. 기타
8.3. 8.4. 후송8.5. 고영상 계열8.6. 청8.7. 후금8.8. 일본
8.8.1. 에도 막부8.8.2. 다테가8.8.3. 기타
8.9. 기타
9. 3부
9.1. 목록
10. 3, 4부 사이
10.1. 황태손 이진(빙의 전)10.2. 대한
10.2.1. 심왕부10.2.2. 조홀국10.2.3. 술루국10.2.4. 하와국
10.3. 대아주
10.3.1. 서10.3.2. 후송10.3.3. 후금10.3.4. 청10.3.5. 일본10.3.6. 안남10.3.7. 유구10.3.8. 무굴 제국10.3.9. 벵골 칸국
10.4. 대유주
10.4.1. 프랑스10.4.2. 러시아10.4.3. 폴란드10.4.4. 프로이센10.4.5. 오스트리아10.4.6. 스웨덴10.4.7. 이탈리아10.4.8. 서반아10.4.9. 교황청10.4.10. 잉글국
10.5. 미주합중국
11. 4부
11.1. 목록

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의 웹소설, 명군이 되어보세!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문서.
실존 인물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상인물

비중이 높아 별개 문서로 분류된 조연들은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현대인

2.1. 이재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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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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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기타 현대 인물

3. 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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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후세계

5.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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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목록

6. 1, 2부 사이

6.1. 경성군 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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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역대 국왕

대한 황실 4대조
인조 | 仁祖
조선 제11대 국왕
인종 | 仁宗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
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
[A]
인조헌문의무장숙흠효태황
仁祖獻文懿武章肅欽孝太皇
[A]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인종(仁宗) → 인조(仁祖)
시호 조선 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
(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A]
대한 헌문의무장숙흠효태황
(獻文懿武章肅欽孝太皇)[A]
영정(榮靖)[A][B]
출생 1501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
즉위 1506년 11월 (음력 11월)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553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청연루[A]
능묘 효릉(孝陵)[15]
재위 조선 국왕
1506년 11월 ~ 1553년
(음력 1506년 11월 ~ 1553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전주(全州)
황(𩔇)
전호 영모전(永慕殿)[A]
부모 부왕 무종, 모후 성렬왕대비
부인 황후 유씨[17]}}}}}}}}}
대한 황실 3대조
명조 | 明祖
조선 제12대 국왕
명종 | 明宗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
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
[C]
명조헌의소문광숙경효태황
明祖獻毅昭文光肅敬孝太皇
[C]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명종(明宗) → 명조(明祖)
시호 조선 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
(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C]
대한 헌의소문광숙경효태황
(獻毅昭文光肅敬孝太皇)[C]
공헌(恭憲)[C][B]
출생 1528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D]
즉위 1553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C]
사망 1567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양심당[C]
능묘 강릉(康陵)[29]
재위 조선 왕세자
?? ~ 1553년
조선 국왕
1553년 ~ 1567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전주(全州)
환(酄)
전호 모의전(慕義殿)[C]
부모 부황 인조, 모후 유씨[31]
부인 인순황후 등 }}}}}}}}}

6.3. 왕실

6.4. 기타

7.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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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목록

8. 2, 3부 사이

8.1. 성친왕 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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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조선 → 대한

8.2.1. 역대 국왕 → 태황

대한 황실 1대조
경조 | 景祖
조선 제14대 국왕
경종 | 景宗
경종□□□□□□□□□효대왕
景宗□□□□□□□□□孝大王
경조□□□□□□□효태황
景祖□□□□□□□孝太皇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경종(景宗) → 경조(景祖)
시호 조선 □□□□□□□효대왕
(□□□□□□□孝大王)
대한 □□□□□□□효태황
(□□□□□□□孝太皇)
□□(□□)[B]
출생 1572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
즉위 1608년 12월 22일 (음력 11월 16일)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626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D]
능묘 □릉(□陵)
재위 조선 왕세자
??[42] ~ 1608년 12월 22일
(음력 ?? ~ 1608년 11월 16일)
조선 국왕 대리청정
1588년, 1590년, 1608년
조선 국왕
1608년 12월 22일 ~ 1626년
(음력 1608년 11월 16일 ~ 1626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전주(全州)
성(𤁑)
전호 □□전(□□殿)
부모 부황 장조, 모후 의인황후
부인 인열황후 김씨(仁烈皇后 金氏),[43] 소훈 박씨 등 }}}}}}}}}
조선 제15대 국왕
선조 | 宣祖
대한 초대 태황
선조 건원제 | 宣祖 建元帝
선조□□□□□□□□□□□□□□□효태황
宣祖□□□□□□□□□□□□□□□孝太皇
묘호 선조(宣祖)
존호 □□□□□□□□(□□□□□□□□)
시호 □□□□□□□효태황
(□□□□□□□孝太皇)
출생 1595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자선당
즉위 1626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D]
사망 1650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D]
능묘 □릉(□陵)
절일 □□절(□□節)
재위 조선 왕세손
??[47] ~ 1608년
(음력 ?? ~ 1608년 11월 16일)
조선 왕세자
1608년 ~ 1626년
(음력 1608년 11월 17일 ~ 1626년)
조선 국왕
1626년 ~ 1632년
대한 태황
1632년 ~ 1650년
연호 건원(建元)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연(瑌)
전호 □□전(□□殿)
부모 부황 경조, 모후 김씨
부인 정후, 계후, 원빈 등 }}}}}}}}}
조선 제16대 국왕
대한 제2대 태황
열조 연가제 | 烈祖 延嘉帝
열조□□□□□□□효태황
烈祖□□□□□□□孝太皇
묘호 열조(烈祖)
시호 □□□□□□□효태황
(□□□□□□□孝太皇)
출생 1634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D]
즉위 1650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D]
사망 1678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D]
능묘 정릉(□陵)
절일 □□절(□□節)
재위 대한 황태자
?? ~ 1650년
대한 태황
1650년 ~ 1678년
연호 연가(延嘉)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전(壥)
전호 □□전(□□殿)
부모 부황 선조, 모후
부인 진성황후, 혜비 진씨 등 }}}}}}}}}

8.2.2. 왕실

8.2.3. 신료

8.2.4. 기타

8.3.

8.4. 후송

8.5. 고영상 계열

8.6.

8.7. 후금

8.8. 일본

8.8.1. 에도 막부

8.8.2. 다테가

8.8.3. 기타

8.9. 기타

9.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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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목록

10. 3, 4부 사이

10.1. 황태손 이진(빙의 전)

10.2. 대한

조선 제19대 국왕
대한 제5대 태황
현종 원강제 | 顯宗 元康帝
현종소휴연경돈덕수성순문숙무경인창효태황
顯宗昭休衍慶敦德綏成純文肅武敬仁彰孝太皇
[E]
출생 1717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자선당
즉위 1740년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775년
대한 한성부
재위 대한 황태손
1717년 ~ 1740년
대한 태황 대리청정
1739년 ~ 1740년
대한 태황
1740년 3월 8일 ~ 1775년
(음력 1740년 2월 10일 ~ 음력 1775년)
연호 원강(元康)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영(璟)
부모 부황 원종(사도태자), 모후 인목태후
부인 황후 유씨 }}}}}}}}}
조선 제20대 국왕
대한 제6대 태황
목종 영태제 | 穆宗 永泰帝
목종□□□□□□□□□태황
穆宗 □□□□□□□□□太皇
출생 1735년 10월 9일
대한 한성부 경희궁 태손궁
즉위 1775년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782년
대한 한성부
재위 대한 황태증손
1735년 ~ 1740년
대한 황태자
1740년 ~ 1775년
대한 태황
1775년 ~ 1782년
(음력 1775년 ~ 음력 1782년)
연호 영태(永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선(鍌)
부모 부황 현종, 모후 태후 유씨
부인 황후 남양 홍씨 }}}}}}}}}

10.2.1. 심왕부

10.2.2. 조홀국

10.2.3. 술루국

10.2.4. 하와국

10.3. 대아주

10.3.1.

10.3.2. 후송

10.3.3. 후금

10.3.4.

10.3.5. 일본

10.3.6. 안남

10.3.7. 유구

10.3.8. 무굴 제국

10.3.9. 벵골 칸국

10.4. 대유주

10.4.1. 프랑스

10.4.2. 러시아

10.4.3. 폴란드

10.4.4. 프로이센

10.4.5. 오스트리아

10.4.6. 스웨덴

10.4.7. 이탈리아

10.4.8. 서반아

10.4.9. 교황청

10.4.10. 잉글국

10.5. 미주합중국

11.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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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목록



[1] 1부 1장 5화에 이재석이라고 풀네임이 처음 언급된다. 상희도 본명을 알지만 더 이상 연산군이 아닌 2부 이후에도 연산이라고 부른다. 이는 '재석'이란 이름은 이 세상에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연산군이라는 명칭은 이 세상에서 무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이융이 반정으로 폐위된 뒤 붙은 군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주인공과 상희 단 둘만 아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는 1부 진행중에는 '빙의된 연산'이라는 뜻으로 빙산이라고 불렸으나 연산군이 아니게 된 2부부터는 한동안 빙성군(빙의 경성군)이라고 부르다가 주로 재석이(변형으로 재서기, 재슥이, 재스기 등이 있다.)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착되었다.[2] 상희도 딱히 사명감을 가지고 한의대에 간 것이 아니라 재수를 뒷바라지 해 줄 수 없는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의대에 진학한 것이기 때문에 한의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3] 상희가 이 일을 언급하며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질색하는 묘사가 나와서 상희가 외국에서 지도교수에게 강간당했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작가가 직접 강간까지는 당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4] 물론 역사가 바뀌었다해도 일부 인물들은 그대로 태어나는 걸 생각하면 이 인물들도 그대로 태어날 가능성은 존재하며 만일 이들과 상희가 다시 만난다면 벌어질 사이다 복수극도 독자들은 주목하고 있다.[5] 그래도 할아버지에게까지 갈굼 당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기껏 욕먹어가며 기틀을 다지고 왕권을 강화했는데, 그걸 손자놈이 자기 따라한답시고 죄다 망쳐버렸으니......물론 태종 역시 세조를 보면 분통이 터지겠지만 본인도 업보가 있어 눈치가 보이니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6] 그나마 세조에게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원 역사에서는 생전에 패륜과 찬탈행위 말고도 조선을 병들게 만든 여러 적폐들을 남기고 떠나 후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비판받았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생전에 남기고 간 적폐들을 재석이 전부 해결하였고 조선이 다른 나라들도 부러워할 정도의 강대국 대한으로 거듭났기에 적어도 이승 한정으로는 욕먹을 일이 줄었다는거지만, 문제는 그 때문에 증조할아버지인 태조의 폭행이 이전보다 심해졌다.[7] 공부를 진짜로 좋아해서 계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슬슬 지쳐서 그만하고 싶어도 수십대조의 조상들이 단체로 갈구기 때문에 사대부 집안 출신인 이상 공부를 영원히 고통받으며 계속할 수밖에 없다.[A]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 인종에 대응해서 추정.[A] [A] [A] [A] [B] 황제 추존과 동시에 폐지 추정.[A] [15] 원 역사 인종의 능호.[A] [17] 유순정의 손녀.[18] 연산군의 실제 아들인 이황(이고)과 같은 한자를 쓰지만 출생 연도가 다르고 행적도 다르기에 실존인물이 아닌 동명의 가상인물로 봐야 한다.[19] 2, 3부 사이에 선조 이연이 칭제건원하면서 4대조인 인종 이황을 태황으로 추존하며 묘호를 '조'로 올렸다.[C]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 명종에 대응해서 추정.[C] [C] [C] [C] [B] [D] 작중 묘사 없음. 추정.[C] [C] [29] 원 역사 명종의 능호.[C] [31] 유순정의 손녀[32] 2, 3부 사이에 선조 이연이 칭제건원하면서 3대조인 명종 이환을 태황으로 추존하며 묘호를 '조'로 올렸다.[33] 진성대군이 이황 대신 왕위에 올랐다면, 눈이 돌아간 무종의 총신들과 군부에 의해 어머니 자순왕대비와 함께 초고속으로 역적으로 몰려 능지형으로 생을 마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왕위를 양보한 건 자순왕대비가 내란을 막고자 적당히 배려한 것[34] 물론 그가 왕이 되지 못했으니 작중 세계에서는 빈 작호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35] 1부에서 주인공이 '조광조는 이제 김굉필 제자가 될 수 없을 텐데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어이 제자가 되어버렸다. 2부에서 주인공은 내가 알았으면 참수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인조는 품계를 두 단계 깎는 관대한 처벌을 했다.[36] 아이러니한 건 원 역사에서 이 때 이장곤과 조광조는 사이가 좋았다. 이 세계에서는 본인을 좋게 대우해주고 사랑하는 아내도 만나게 해 준 선왕의 업적 대다수를 비난, 축소하려했을 조광조는 이장곤에게 친구는커녕 최악의 정적이었을 것이다. 이는 남곤 역시 마찬가지.[37] 사실 무묘는 인조의 부왕이 만들었고, 처조부인 유순정이 배향된 곳이다. 그걸 폐지하자고 주장한 것은 보기에 따라선 제대로 왕의 심기를 건드려 이 세계에서도 기묘사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인조가 정말 인자한 왕이라서 부여주에서 야인 자제를 교육하는 정도로 끝난 것이다.[38]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39] 다만 윤원형은 정난정과 짜고 조강지처 김씨를 살해한 적이 있는데, 바뀐 역사에서도 그 악행을 저질렀다면 용서 받지 못하고 처벌 받았을 것이다. 무종 시절 초반에 전 초계군수 유인홍의 첩이 본처의 딸을 죽인 일이 있는데, 이를 은폐한 유인홍과 첩이 모두 처벌당했기 때문(실제 역사에서도 연산군 때 벌어진 실제 사건이다).[B] [D] [42] 재석 빙의 시점인 1582년 이전.[43] 좌의정을 지낸 김모의 손녀. 연배를 따져보면 1520년생인 김귀영의 손녀로 추정.[44] 2, 3부 사이에 선조 이연이 칭제건원하면서 부왕인 경종 이성을 태황으로 추존하며 묘호를 '조'로 올림.[D] [D] [47] 1605년 이전.[D] [D] [D] [51] 이 부하들 중 하나는 대유주에서 병사했다고 알려졌는데 실은 전사한 것이거나 이괄의 성품을 생각해보면 용병 일이나 약탈 행위에 반대하다가 이괄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높다. 또 다른 부하 한 명이 바로 임경업이었다고 한다.[52] 원 역사에서는 1627년 고작 21세에 사망했는데 본작에서는 1630년까지 살아있던 것으로 보아 황제가 되지 않아서 황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이 때문에 더 오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 역사에서의 주유교의 사인이 뱃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생긴 병이었다는 가설이 있는데 이 세계관에서는 물에 빠질 일 자체가 없었다고 생각하면 원 역사 대비 수명이 늘어난 것이 딱히 이상하지는 않다.[53] 사실 아버지인 주상락이 원역사보다 더 일찍 죽었기에 원역사에서 1611년생인 주유검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54] 김세룡이 예왕파에 붙으면서 시기만 미뤄졌을 뿐 결국 가문이 몰살당할 뻔 했지만, 김세룡이 빠른 판단으로 예왕을 손절하면서 가문은 살아남고 오히려 평난공신이 되었다.[55]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의원들의 연합세력과 병균학 토론을 벌이는 등 이야깃거리가 많은 삶이어서 후대에 창작물의 단골 소잿거리가 될 만한 인물이다. 이 세계에선 동의보감이 유럽에도 전파되어 허준의 명성이 실제보다 국제적으로도 알려졌지만, 김인황은 병리학의 시조격으로 훗날 그의 이름을 딴 의대나 상이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어 허준보다 더 높은 위상을 차지할만하다.[56] 실제로는 남명 안종의 연호.[57] 북송-남송에서 英宗, 寧宗이라는 묘호를 쓰는 황제가 둘이나 있었으니, 북송, 남송과 후송을 같은 나라로 본다면 송나라에는 영종만 3명이 된다. 물론 한자는 모두 다르다.[58] 실제 남명 소종의 연호.[59] 대한에서는 화북을 영지로 내린 것은 후송이 절대 중원일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상징으로 보고 있다.[60] 원역사에서 이자성은 본래 고영상의 부관이었다가 고영상의 세력을 물려받는다.[61] 땔감으로 만력제의 무덤인 장제전을 허물어 나온 목재를 썼다.[62] 수성이 아닌 야전을 택한 이유는 주상순을 죽여서 사기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전투를 미루면 사기가 감소한다는 점, 민심을 얻기 위해 북경의 창고를 개방해서 농성을 벌일 군량이 없었다는 점, 건주군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해서 질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는 점 등이다.[63] 실제 장헌충이 사용한 연호와 같다.[64] 실제로는 청태종 홍타이지의 연호이다.[65] 이씨(李氏)였다 만주족으로 귀화한 가문이다.[66] 실제 홍타이지가 후금 때 쓴 연호와 같다.[67] 금장종의 연호와 같다.[68] 금희종의 연호와 같다.[69] 원역사의 도쿠가와 이에미츠와는 다른 인물이다.[70] 요시시게와 미쓰쿠니가 서로 후계자를 교환했다. 즉 2대 타카마쓰 번주의 친부가 미쓰쿠니이다.[71] 실존 그림 한복 입은 남자는 네덜란드를 방문한 흥포라는 명나라 상인이 한푸를 입은 모습을 루벤스가 그린 그림을 현대에 와서 조선 한복으로 오해하여 그런 제목이 붙은 것인데, 작중의 한복 입은 남자는 진짜로 한복 입은 남자 그림이 되었다.[72] 현실적으로는 당시 러시아가 대홍수에 개입 중이어서 시베리아 방면에 제대로 신경쓸 수 없었다는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E] 원 역사 조선 현종과 동일 추정.[74] 다만 미국 독립전쟁은 거리도 멀 뿐만이 아니라 대한으로서는 딱히 개입할 실익이 없었고, 서나라 패망에는 후송 뿐만 아니라 형제국인 청나라도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입하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 애초에 서나라 패망은 암군이 국력을 갉아먹고 안남에 양광군을 파병해서 원정을 말아먹은게 크기 때문에 이 시점에선 개입할 수 없었고, 복건군이 양광을 침공했을 때 사천군 투입 전에 남경 일대를 강습해서 군을 돌리게 하는 방법이 유일했을텐데 그래봤자 암군의 치세 동안 약화된 사천군이 청군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고 기근 와중에 최소 수만명의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또한 하와국 문제는 하와국의 내정에 간섭한다는 반발을 불러올수도 있었다. 그래서 후세엔 결과는 좋았다로 재평가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75] 하원식의 재위기간에 죽은 사람이 23년 동안 170명, 그것도 대부분 자기들끼리 죽인 거라 직접 처형한 건 그중 70명 정도인데 본인은 단 3년만에 5백여명을 직접 죽였다.[76] 사실 서나라는 운이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제국을 망하게 한 대부분의 원인을 따지고 보면 이질적인 운남, 사천, 양광을 포괄하는 다민족국가라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 크다.[77] 원 역사 청나라에서도 가경제 재위 시절인 1813년 자금성에 백련교 자객들이 침입하여 왕자 시절의 도광제가 직접 총을 들고 싸웠던 일이 있었다.[78] 후송으로 도망친 것으로 추정된다지만 진실은 불명.[79] 여기까지는 실제 역사와 같다.[80] 원래 자무카가 칭했던 왕호였다.[81] 원역사 루이 15세의 요절한 친형이다.[82] 대한에서는 황제령의 군주가 마리아 테레지아이기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를 여제라고 부른다.[83] 본작에서는 루이 16세(원 역사 루이 15세의 형)의 로얄 미스트리스지만 루이 16세는 정사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인물이라 조언자에 머물렀다.[84] 본래는 표트르 2세의 장손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알렉산드로 1세의 장남)와 혼인시키려 했지만 요절하면서 차남인 표트르 3세와 혼인하였다.[85] 그나마 나폴레옹이 자비를 베풀어 둘의 자식들은 영국 망명을 허락해 훗날 부르봉 왕정복고로 이어진다.[86] 마리아 테레지아는 1차 폴란드 분할 당시에는 개입하지 않았는데, 폴란드의 카타지나 왕비에게 도움 받은 것이 많은 입장이었기에 대놓고 배신하면 곤란한 처지였기 때문이다.[87] 원 역사와는 달리 스스로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다.[88] 단 본작에서는 3부에서 재석의 조언으로 표트르 1세가 황위 계승법을 바꿔서 원 역사처럼 조피 프레데리케가 직접 황제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89] 파벨 1세의 부인이 바뀌어 알렉산드르 1세는 태어나지 못했다.[90] 사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김치는 자우어크라우트와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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