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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5091><colcolor=#E2D14F> | |||
출생 | 1755년 1월 11일[1] | ||
영국령 서인도 제도 네비스 섬 찰스타운 (現 세인트키츠 네비스 네비스 섬 찰스타운) | |||
사망 | 1804년 7월 12일 (향년 49세) |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
재임 | 초대 재무장관 | ||
1789년 9월 11일 – 1795년 1월 31일 | |||
미합중국 육군 사령관 | |||
1799년 12월 14일 – 1800년 6월 15일 | |||
연합회의 뉴욕주 대표 | |||
1788년 11월 3일 – 1789년 3월 2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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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 170cm | ||
정당 | [[연방당| 연방당 ]] | ||
부모 | 아버지 제임스 A. 해밀턴 어머니 레이첼 포셋 | ||
배우자 | 엘리자베스 스카일러 해밀턴 (1780년 결혼) | ||
자녀 | 필립 해밀턴[2](1782 ~ 1801) 안젤리카 해밀턴(1784 ~ 1857) 알렉산더 해밀턴 주니어(1786 ~ 1875) 제임스 알렉산더 해밀턴(1788 ~ 1878) 존 처치 해밀턴(1792 ~ 1882) 윌리엄 스티븐 해밀턴(1797 ~ 1850) 일라이자 해밀턴 홀리(1799 ~ 1859) 필립 해밀턴 2세[3](1802 ~ 1884) | ||
종교 | 성공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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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When America ceases to remember his greatness, America will no longer be great.
미국이 그의 위대함을 망각하는 때에, 미국은 더는 위대한 국가로 남지 못할 것이다.
캘빈 쿨리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 군인, 법률가, 정치가, 사상가이며, 미국 초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의 금융, 경제체계를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다. 덕분에 현 미국 10달러 지폐의 모델이기도 하다. 정치가로서는 독립 당시 13개 주의 느슨한 연방제를 개편하여 보다 강력한 중앙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다만 엘리트주의적 성향으로 반대파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미국이 그의 위대함을 망각하는 때에, 미국은 더는 위대한 국가로 남지 못할 것이다.
캘빈 쿨리지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알렉산더 해밀턴/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평가
분명한 것은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역사상 대통령에 오르지 않은 정치적 인물들 중 가장 중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심지어 수많은 역대 대통령들보다 더욱 크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해밀턴은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여러 역할을 해냈다. 그는 사상가임과 동시에 행동가였고, 재기 넘치는 이론가임과 동시에 수완 좋은 집행자였다. (중략) 제퍼슨이 미국 정치 담론의 정수가 될 만한 시를 썼다면, 해밀턴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경영에 대한 산문을 쓴 인물이다. 다른 그 어떤 건국의 아버지들도 장래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국력에 대해 그토록 명확하고 선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으며, 국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토록 기발한 메커니즘 역시 제시하지 못했다.
전기《알렉산더 해밀턴》서문 중
전기《알렉산더 해밀턴》서문 중
우선 정치사적으로 해밀턴은 그가 기고한 에세이들이나 문서들이 당대 건국의 아버지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주요 자료로 쓰이고 있으며, 현대 헌법 해석 이론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가 구상했던 강력한 중앙정부에 대한 이론은 차후 미 행정부 체계를 만들 때 반영이 되었다. 특히 미국이 주들의 연합체가 아닌 연방정부를 구성하게 된 것은 해밀턴 본인이 강력한 중앙정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이를 지지하는 이들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해밀턴을 인격적으로는 싫어했어도 연방주의안을 지지한 인사들이 있었던 것과 해밀턴의 선언만으로도 연방주의자들이 버가 아닌 제퍼슨을 대통령으로 지지한 점 등을 보면 그가 정치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상당한 능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 연방주의자(Federalist)들의 별칭이 해밀턴의 이름을 딴 해밀터니안(Hamiltonian. 해밀턴주의자)이란 것에서도 이를 옅볼 수 있다.
한편 기존 그의 평가는 정치사적인 측면에 많이 집중되어 있지만, 사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서 미국에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라는 점이 있다. 그의 경제사적 업적은 비교적 근래에 재조명되고 있는데, 해밀턴은 독립전쟁 이후 남은 채무를 여러 정파들과의 협상 속에서, 남부의 입김이 닿는 워싱턴 DC를 수도로 하는 대신 중앙은행의 설립과 중앙정부가 진 빚을 각 주가 균등하게 갚게 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상주의 정책을 펼쳐 미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조치는 반연방주의자들에게 소수 부자들과 공업 기반의 북부에게만 유리한 정책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고, 채무를 탕감하는 과정에서 세수 확보를 위해 연방정부가 위스키에 세금을 매기자 분노한 농민들의 반발로 위스키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해밀턴은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사족으로 이런 중상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해밀턴은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한 미 해군 창설을 지지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알렉산더 해밀턴은 익히 알려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메디슨같은 미국 대통령들이나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거물들에 비하면 인지도는 떨어지고 미국사를 배울 때도 빨리 넘어가는 감이 있지만, 그가 생전 이룬 업적은 오늘날 연방 공화국인 미합중국[4]을 일궈내는데 기반이 되었다.
4. 사상
해밀턴은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비록 적으로 싸웠으나 당대 세계 최강국인 영국의 국력을 동경했고, 그 비결을 강력한 중앙집권과 엘리트들이 통치하는 정치체제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해밀턴은 대중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며 교육받은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통치되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허나 이러한 주장은 엘리트주의를 반대하고 대중에게 권력을 주어야 한다는 반대파나 각 주의 자율성을 중시하던 반대파에게 반발을 샀고, 결국 제임스 매디슨의 조정에 의해 미국은 지금의 삼권 분립 체계가 확립된다.이러한 사상적 차이는 외교 문제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프랑스 혁명이 터지고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돌입하자, 해밀턴을 비롯한 연방파는 프랑스 혁명을 자코뱅파의 악명 등으로 폭도들의 반란으로 봐 영국과의 관계개선을 중시한 반면 제퍼슨을 비롯한 반연방파는 프랑스 혁명을 미국에 이은 대중민주주의 정권의 탄생으로 보고 과거 독립운동에 도움을 받은 과거를 잊으면 안된다는 이유로 프랑스를 지지했다. 일단 조지 워싱턴 당시엔 중립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이때도 정파간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고 이는 훗날 미영전쟁의 불씨가 된다.
5. 관련 어록
A nation which can prefer disgrace to danger is prepared for a master and deserves one.
위험보다 치욕을 택하는 나라는 지배당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며 지배당해 마땅하다.
위험보다 치욕을 택하는 나라는 지배당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며 지배당해 마땅하다.
How does a bastard, orphan, son of a whore and a
Scotsman, dropped in the middle of a forgotten
Spot in the Caribbean by providence, impoverished, in squalor
Grow up to be a hero and a scholar?
어떻게 사생아에, 고아에, 창녀와 스코틀랜드 놈 사이에서 태어나
카리브해 한가운데 잊혀진 섬에 떨어져
신에게도 버림받아 빈곤과 비참함 속에 자란 아이가
영웅이자 위인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뮤지컬 해밀턴의 오프닝 넘버 中
Scotsman, dropped in the middle of a forgotten
Spot in the Caribbean by providence, impoverished, in squalor
Grow up to be a hero and a scholar?
어떻게 사생아에, 고아에, 창녀와 스코틀랜드 놈 사이에서 태어나
카리브해 한가운데 잊혀진 섬에 떨어져
신에게도 버림받아 빈곤과 비참함 속에 자란 아이가
영웅이자 위인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뮤지컬 해밀턴의 오프닝 넘버 中
Alexander Hamilton smote the rock of the national resources, and abundant streams of revenue gushed forth. He touched the dead corpse of the public credit, and it sprang upon its feet.
알렉산더 해밀턴이 국가자원의 바위를 치니 세입의 물줄기가 콸콸 솟구쳐 나왔다. 그가 공공신용의 시체를 만지자 공공신용이 제발로 벌떡 일어났다.
대니얼 웹스터[5]
알렉산더 해밀턴이 국가자원의 바위를 치니 세입의 물줄기가 콸콸 솟구쳐 나왔다. 그가 공공신용의 시체를 만지자 공공신용이 제발로 벌떡 일어났다.
대니얼 웹스터[5]
If Jefferson provided the essential poetry of American political discourse, Hamilton established the prose of American statecraft.
제퍼슨이 미국의 정치적 담론을 본질적 운문으로 규정했다면, 해밀턴은 미국의 경영을 산문으로 확립했다.
론 처노[6]
제퍼슨이 미국의 정치적 담론을 본질적 운문으로 규정했다면, 해밀턴은 미국의 경영을 산문으로 확립했다.
론 처노[6]
When America ceases to remember his greatness, America will no longer be great.
미국이 그의 위대함을 망각하는 때에, 미국은 더는 위대한 국가로 남지 못할 것이다.
캘빈 쿨리지
미국이 그의 위대함을 망각하는 때에, 미국은 더는 위대한 국가로 남지 못할 것이다.
캘빈 쿨리지
Hamilton was not only the greatest administrative genius of his generation in America but one of the great administrators of all time.
해밀턴은 당대 미국에서 가장 빼어난 행정 천재였을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행정가의 일원이었다.
레너드 D. 화이트(미국의 역사학자)
해밀턴은 당대 미국에서 가장 빼어난 행정 천재였을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행정가의 일원이었다.
레너드 D. 화이트(미국의 역사학자)
A national debt, if it is not excessive, will be to us a national blessing.
국가 부채란 너무 많지만 않다면 국가적인 은총이다.
국가 부채란 너무 많지만 않다면 국가적인 은총이다.
The voice of the people has been said to be the voice of God; and, however generally this maxim has been quoted and believed, it is not true to fact. The people are turbulent and changing, they seldom judge or determine right.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있다. 널리 인용되고 사실로 믿어지는 것과 달리, 이 금언은 사실이 아니다. 군중은 난폭하고 변덕스러워, 올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드물다.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있다. 널리 인용되고 사실로 믿어지는 것과 달리, 이 금언은 사실이 아니다. 군중은 난폭하고 변덕스러워, 올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드물다.
The sacred rights of mankind are not to be rummaged for among old parchments or musty records. They are written, as with a sunbeam, in the whole volume of human nature, by the hand of the divinity itself; and can never be erased or obscured by mortal power.
인류의 신성한 권리는 낡은 문서나 케케묵은 기록을 뒤져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본성의 총체에서 신의 손이 한 가닥 햇살로 써낸 것이다. 이는 인력으로 지우거나 흐려질 수 없다.
<파머 반론(The Farmer Refuted)>[7]
인류의 신성한 권리는 낡은 문서나 케케묵은 기록을 뒤져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본성의 총체에서 신의 손이 한 가닥 햇살로 써낸 것이다. 이는 인력으로 지우거나 흐려질 수 없다.
<파머 반론(The Farmer Refuted)>[7]
In politics, as in religion, it is equally absurd to aim at making proselytes by fire and sword. Heresies in either can rarely be cured by persecution.
종교에서도 그렇듯, 정치에서 불과 칼로 전향자를 만들려는 시도는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박해는 이단을 해결할 수 없다.
<연방주의자 논고> 1번 중에서
종교에서도 그렇듯, 정치에서 불과 칼로 전향자를 만들려는 시도는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박해는 이단을 해결할 수 없다.
<연방주의자 논고> 1번 중에서
When the sword is once drawn, the passions of men observe no bounds of moderation.
한 번 칼을 뽑으면, 인간의 격정은 중용의 경계를 보지 못한다.
<연방주의자 논고> 16번 중에서
한 번 칼을 뽑으면, 인간의 격정은 중용의 경계를 보지 못한다.
<연방주의자 논고> 16번 중에서
I never expect to see a perfect work from imperfect man. The result of the deliberations of all collective bodies must necessarily be a compound, as well of the errors and prejudices, as of the good sense and wisdom, of the individuals of whom they are composed.
나는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완전한 작품이 나오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모든 집단이 숙고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오류와 편견, 양식과 지혜, 그리고 이를 자아낸 개인의 혼합물이기 마련이다.
<연방주의자 논고> 85번 중에서
나는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완전한 작품이 나오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모든 집단이 숙고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오류와 편견, 양식과 지혜, 그리고 이를 자아낸 개인의 혼합물이기 마련이다.
<연방주의자 논고> 85번 중에서
Men give me credit for some genius. All the genius I have lies in this; when I have a subject in hand, I study it profoundly. Day and night it is before me. My mind becomes pervaded with it. Then the effort that I have made is what people are pleased to call the fruit of genius. It is the fruit of labor and thought.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 부른다. 모든 천재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사안을 다루어야 할 때면 이를 깊게 공부한다. 낮이고 밤이고 쉴새 없이. 머릿속이 그 주제로 가득 차는 것이다. 그 다음에야 사람들이 천재성의 결과물이라며 감탄하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는 노력과 사고의 결실이다.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 부른다. 모든 천재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사안을 다루어야 할 때면 이를 깊게 공부한다. 낮이고 밤이고 쉴새 없이. 머릿속이 그 주제로 가득 차는 것이다. 그 다음에야 사람들이 천재성의 결과물이라며 감탄하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는 노력과 사고의 결실이다.
6. 기타
- 10달러 지폐 속 초상화
- 그의 장남 필립도 결투로 목숨을 잃었다. 그가 죽기 3년 전이었던 1801년이었으며, 결투 장소도 해밀턴 본인이 죽은 곳과 같은 장소였다. 장남의 결투 상대자는 아버지를 비난하던 정적인 변호사 조지 이커였다.[8][9]
장남이 죽은 지 약 1년 후에 태어난 그의 막내 자식은 장남의 이름을 따서 필립 2세로 이름 붙었다.
- 그의 묘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명소인 트리니티 교회에 있다.
- 몇몇 다른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노예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이건 그가 뉴욕 사람인 것도 있다. 당시 미국의 노예제는 지역(주)마다 달랐는데, 뉴욕은 그중 산업에 가까운 주였기 때문에 노예제를 운영하는 다른 주에 비하면 노예의 필요성이 떨어졌다. 노예제를 유지하는데 높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차라리 임금 노동자들이 더 많이 필요했던 것.
- 직접 혁명의 수장이 되기보다는 각자의 건국자를 도와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그 국가의 운영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면, 그리고 강력한 중앙정부를 희망했다는 점에서 정도전과 어느 정도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지만, 작품을 통한 재조명이란 점에선 비슷한 부분도 있긴 하다.
- 10달러 지폐에 그려진 초상화에도 표현되었듯이 당대에서도 인물 하나는 잘 빠졌다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요즘도 외모에 대한 평가는 여전한지 가장 섹시한 건국의 아버지를 랭크하면 항상 상위권 안에 든다. 론 처노의 전기에 의하면 호리호리한 체형에 혈색좋고 적갈색 머리카락과 남자색(藍紫色 - violet-blue) 눈동자를 가진, 딱 스코틀랜드인처럼 생긴 외형이었다고 한다. 유년 시절의 그를 기억하던 서인도 제도의 유력자는 책벌레에 유약해보이는 소년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얼굴값을 못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성격이 성격이니까.
-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정치적 업적에 비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대통령까지 한 정적들이 있어서 '10달러에 나온 사람', '결투하다 죽은 사람'으로만 알던 사람이 많을 정도로 정적들에 비하면 유명한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활약한 분야도 정치, 행정, 경제 관련 분야라서 그런지 과학 관련 교양서적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벤자민 프랭클린과는 인지도가 넘사벽으로 차이가 날 정도.
- 미국에선 해밀턴 평전이 책으로 나와있다. 전미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s) 수상 후보에 지목되고, 조지워싱턴도서상(George Washington Book Prize)을 수상한 수작. 문제라면 분량이 818쪽에 달해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한다는 점. 린 마누엘 미란다가 뮤지컬 해밀턴의 영감을 얻은 전기가 바로 이 책. 국내에도 번역, 발매되었는데, 원서가 원서인지라 대단한 두께를 자랑한다.
- 2015년 그의 일대기를 조명한 해밀턴이라는 힙합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올라오며 신드롬을 일으켜, 해밀턴이라는 인물 자체의 재평가를 불러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뮤지컬 개봉 당시 인지도가 떨어지는 해밀턴은 10달러에서 탈락하고 다른 사람의 초상화를 넣자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진행되고 있던 터였는데, 이 뮤지컬이 히트친후에 해당 계획이 전면 백지화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고. 주인공 보정으로 실존인물처럼 다혈질이고 좀 찌질하긴 하지만 본성은 선인이며 애국자로 묘사되었다. 가끔 교활한 면도 묘사되는데, 특히 정적 애런 버의 시점인 "The Room Where It Happens"에서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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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치인 | 조지 워싱턴 · 제임스 매디슨 · 에런 버 | ||
평가 | 평가 | ||
사건 · 사고 | 에런 버와 알렉산더 해밀턴의 결투 | ||
기타 | 해밀턴 칼리지 · 뮤지컬 · 영화 | ||
보수주의 |
[1] 출생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어느 문서에는 1755년이라고 적혀 있고 어느 문서에는 1757년이라 적혀 있어서 정확한 출생년도는 불명이다. 정황 증거는 1757년쪽이 더 많고 본인은 13식민지에 처음 상륙하고 작성한 서류에 1757년이라고 적었으나, 확실한 출생년도 1755년이 더 가깝다.[2] 1801년 7월 4일 변호사 조지 이커가 알렉산더 해밀턴이 토마스 제퍼슨의 대통령직을 힘으로 뒤엎을 의도가 있다는 모욕적인 주장을 하였다. 1801년 11월 20일 이를 빌미로 스티븐 프라이스와 함께 극장으로 찾아가 결투 신청을 하였고 사흘 후 이커와의 두 번째 결투에서 우측 엉덩이 위로 총알이 몸을 관통하고 왼쪽 팔에 꽂히게 되었다. 14시간 후 1802년 11월 24일 오전 5시에 고모인 안젤리카 스카일러 처치의 자택에서 치료 중 끝내 사망했다.[3] 결투로 죽은 장남 필립 해밀턴을 추억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작은 필(Little Phil)'이라 불렸다.[4] 합중국: 합성 국가의 하나. 두 개 이상의 나라 또는 주(州)가 같은 주권하에 결합하여 단일한 외교권을 행사하는 나라. (정의 출처: Oxford Languages)[5] 민수기 20장 11절과 열왕기(하) 13장 21절을 차용한 문장이다. 이 말은 미국 재무부 청사 남쪽에 자리한 해밀턴 동상에도 새겨져 있다.[6] 후술할 해밀턴 평전을 지은 전기 작가다.[7] A. W. 파머(Farmer)란 필명의 인물이 대륙회의를 글로 비난하자, 이에 반박하기 위해 발표한 글이다. 파머의 정체는 성직자인 왕당파 새뮤얼 시버리로, 독립 후 미국 성공회의 초대 주교가 된다.[8] 조지 이커는 1801년 7월 4일 알렉산더 해밀턴이 토마스 제퍼슨의 대통령직을 힘으로 뒤엎을 의도가 있다는 모욕적인 주장을 하였다.[9] 1801년 11월 20일 이커의 주장을 빌미로 스티븐 프라이스와 함께 극장으로 찾아가 결투 신청을 하였고 사흘 후 이커와의 두 번째 결투에서 우측 엉덩이 위로 총알이 몸을 관통하고 왼쪽 팔에 꽂히게 되었다. 14시간 후 1802년 11월 24일 오전 5시에 고모인 안젤리카 스카일러 처치의 자택에서 치료 중 끝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