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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23:31:44

이재석(명군이 되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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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1. 개요2. 능력3. 성격4. 작중 행적
4.1. 1부: 무종 이융4.2. 2부: 장조 이윤4.3. 3부: 중종 건흥제 이현4.4. 4부: 흥선제 이진
5. 어록

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대체역사물 명군이 되어보세!주인공이자 화자.[1] 여주인공 김상희와 함께 둘 뿐인[2] 빙의자로, 김상희의 남편. 조선에 떨어지기 직전인 2017년에는 27세(1991년생) 공시생으로 시험에서 떨어진 속풀이로 같은 공시생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문득 떠오른 과거시험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조선시대의 왕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다가 '조선시대 왕이었으면 속 편했겠다.', '내가 왕이었다면 훨씬 더 잘했겠다.'는 내용으로 농담을 하고 돌아온 후, 술김에 할아버지의 유품인 연적에 대고 '왕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다가 천녀에 의해 윤회를 거듭하며 조선시대 왕으로 사는 운명에 처한다.

2. 능력

평범한 지방대 출신이고 9급 공무원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역사와 사회 전반에 대한 지식이 일반인은 물론 웬만한 준전문가 이상으로 꽤나 풍부하다.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의 후손으로,[3] 시골집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농사꾼 겸 한학자였던 덕분에 성리학농사 등에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 이를 요긴하게 사용한다.[4] 한문은 1급으로 매우 능숙해서 조선시대의 한문으로만 된 문서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 또한 학창시절에 연극부와 검도부를 했다고 하는데, 이 덕분에 남의 몸에 빙의해서 진짜인 척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현대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승마사냥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군 시절 담배와 초코파이 때문에 성당에 다닌 탓에 성서 지식도 있어서 2부에서 잘 활용한다. 읽다보면 이런 사람이 왜 9급을 떨어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5]

신체능력은 빙의된 몸을 많이 타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시절 원래 몸에 대한 언급은 군복무 시절 축구시합에서 부진해 선임들에게 갈굼당했던 경험이 있다 정도라서 알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에 오자마자 1부부터 오래 살려면 몸 관리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승마나 사격 등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고, 2부에서는 빙의 직후 경성군의 몸을 보고 운동이 부족한 놈이라며 한참 까기도 한다. 다만 이런 적극성은 전근대 특유의 부족한 취미 생활 때문에 반쯤 강제되었다는 언급도 있고, 2부 초반 이후 다시 운동에 소홀해졌다는 독백이 나오는 만큼 운동에 대한 호불호 역시 몸 주인의 성격을 탈 가능성도 있다. 물론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3부 시점 17살의 젊고 튼튼한 육체를 얻자 38년의 승마 및 사냥 경험까지 합쳐져 말을 달리며 총과 활로 사냥감을 잡는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호위를 데리고 다닐 수 없는 상황 탓에 호신술 삼아 검술도 연습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폴란드 기사를 상대로 한 마상창시합에서 승리하기도 했으며, 빈 포위전에 기병으로 참전하여 돌궐군 여럿을 직접 베기도 했다.

2부에서 현대에는 낙제생 수준이던 영어를 본토 영국인과 대화 가능할 정도로 다시 익히고 무려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서툴게나마 동시에 익혀 어느 정도는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덕분에 3부에서는 루이 14세 등 유럽인들과 무리없이 대화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유럽어가 공통된 조상을 지니고 있는 덕택에 비교적 익히기 쉽다지만, 이런 점을 보면 어학적 재능도 아예 없는 건 아닌 듯. 현대식 언어 교육과 맞지 않았거나, 시대 상 어쩔 수 없이 외국어를 접하며 문리가 트였을 수도 있다. 4부에서는 아예 독일어까지 추가로 습득한 만큼 언어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준은 지났다.

3번이나 군주를 하면서 수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강제적으로 경연에 참여해야 했던 탓에, 1부 시점 덜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던 과거와 달리 지나치게 익숙해진 3부 시점에선 온갖 유학 경서 내용을 전부 기억하여 경연관들 앞에서 책을 안 보고도 내용을 전부 암송해 버로우시키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4부에서는 아직 어린이인 몸에 빙의하면서 좀 난감해졌다. 이미 성리학 공부 경력만 수십년차인 재석은 천자문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을 지겨워하지만 그렇다고 배우는 족족 아는 티를 내며 잘 따라갔다가는 천재로 오해받고 태자의 견제를 받거나 공부 진도를 너무 빨리 빼버릴 가능성을 우려한다. 때문에 적당히 틀리면서 따라가려다가 일관성 있게 같은 방식으로 틀리는 연기도 어려워서 그냥 한 번 배우면 확실히 알지만 그 이상은 아닌 수재 연기 정도를 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태황이자 조부 앞에서 아직 배우지 않은 것으로 되어있는 논어의 내용을 말해버리는 실수를 한다. 충녕대군의 재림

이후 외교를 위해 타국으로 여러번 파견되었으며, 국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그대로 드러낸 결과 주변의 경탄을 받게 되었다. 에도 막부의 다이로 이이 나오아키는 여행 몇번으로 갖출 재주가 아니라며 하늘이 내린 인재라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검술 실력도 호위 사무라이와 대련해서 밀리지 않을 정도로 늘었음이 드러났다. 즉위한 후로는 4회차로 공부하는 게 이제 아주 지긋지긋해져서(...) 자신이 경연관들이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과목을 마스터했음을 드러내고, 경연 시간을 공부시간이 아니라 국정 자문위원회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빙의 전 재석은 그럭저럭 유능하지만 먼치킨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인재는 아니며, 성격은 대체로 호인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성인이나 대인이라고 불리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미래 지식을 제외하고 보면 나름 뛰어난 범군 수준의 인간상이고, 수많은 빙의를 통해 능력이 쌓인 지금도 성군이라 불리기엔 여러모로 하자가 있는 인물. 주인공이 명군이라고 불리는 건 미래의 지식들 덕분도 있지만, 빙의한 왕들이 하나같이 답도 없던 암군들이라 상대적으로 더 유능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도 있다. 1부의 연산군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암군의 대명사이고, 2부의 경성군은 실제 역사의 그 선조보다도 더 무능한 암군이었다. 3부의 성친왕은 만약 군주로 즉위했다면 충분히 막장 암군이 되고도 남았을 최악의 인간상이었다.

물론 상기한 설명은 어디까지나 작품 내적인 이야기. 본래 역사의 인물인 연산군은 그렇다고 쳐도, 독자들이 한두 줄로 슬쩍 언급만 나오던 본래 인물들과 주인공을 세밀하게 비교하는 건 어렵기 때문. 일단 주인공도 몸의 본래 주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타의 모범이 되는 행보를 보이고자 하는 편이다. 1부 시점 연산군처럼 흥청망청 놀지 않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쓰거나, 2부 시점 선조처럼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친정에 나서 국란 극복에 기여하는 등. 3부 시점의 원본 성친왕처럼 막장으로 놀아나지 않고 모범적인 황족으로 행동하여 결국 즉위하기도 했다. 애초부터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 대체역사물에서 군주로 빙의 혹은 환생한 주인공이 명군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한 사실이라 크게 대단하거나 의미를 둘 부분도 아니고(...), 빙의 초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미래 지식 활용으로부터 대략 1000편은 멀리 떨어진 본작의 현 상황에서 주인공은 충분한 명군감이기도 하다.[6]

실제로 주인공은 인재를 보는 눈도 있고, 군사적 식견도 나쁘지 않다.[7] 타인의 주장도 잘 귀담아 듣는 편이고, 전체적인 형세를 읽는 능력도 나쁘지 않다.[8] 무엇보다, 본인이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 또한 매우 충만하다. 사실 편하게 살고자 마음을 먹으면 대충 살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도 언제나 국익을 위해 힘쓴다. 심지어 미래의 자신이 타락할 경우까지 대비해 국가를 위한 시스템을 설계하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본인이 죄책감을 느끼더라도 죄 없는 이들을 처형하는 단호함과 국익에 해가 된다면 피붙이나 일가친척은 물론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는 냉혹함을 겸비하고 있다. 어찌 보면 태종한고제를 꽤 닮았다고 할 수 있다.[9]

재석이 자기 대에 워낙 일을 많이 벌리고 확장도 적극적으로 해서 뒤를 잇는 임금들은 2~3대 정도는 추가 확장은 꿈도 못꾸고 새로 얻은 지역의 안정적인 경영과 여민휴식에 전념하는 패턴이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장조의 뒤를 이은 경조와 선조는 북, 남, 서로 어마어마하게 확장된 영토를 경영하고 명 제국 이후의 동북아 질서재편에 전념하느라 재위기간 전부를 바쳤고,[10] 중종의 뒤를 이은 현종과 목종, 영종도 선황 시절에 얻은 누손과 뇌주를 관리하고 개편된 국제질서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바쁜 시절을 보냈다.[11]

단, 주인공의 이런 능력은 어디까지나 내치 및 내정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훈련이나 수많은 경험 등을 통해 전장에서 활약하기도 하지만 무력 특화형 주인공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수준도 아니고, 무자호란이나 경인왜란 도중 주인공이 보여주었던 전략적 판단도 제법 우수할지언정 역사적인 명장들을 능가할 수준은 아니다. 실제로 주인공의 능력을 가장 객관적으로 알고 있을 상희조차 미래 지식 없는 주인공이 노부나가와 전쟁을 벌여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주인공 또한 진짜 천재인 누르하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 혼인 동맹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덕분에 3부 이후 누르하치의 아들들이 세운 청과 후금은 여전히 대한의 믿음직한 우방 자리를 지키고 있다.[12]

이런 주인공의 능력은 여러 번 빙의한다는 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설정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 주인공의 능력으로도 조선을 강대국으로 이끄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다른 동네의 다 쓰러져가는 동방 소국을 무지막지한 통찰력과 카리스마 내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과 무력 등으로 순식간에 대제국으로 만드는 괴물 난쟁이군주의 서장자로 태어났음에도 기가막힌 통찰력과 역사 및 외교 지식으로 망국을 막고 국제 정세를 교묘하게 비틀어서 이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한 또라이 군주, 쇠락해서 멸망을 앞둔 제국을 인간을 초월한 듯한 정신력으로 부활시키는 괴물망국 직전의 나라를 무너트리고 신생 공화국을 일으켜 엄청난 통찰력과 무자비한 술수들로 전세계의 식민열강들을 파멸시킨 마귀 내지 인종차별이 극에 달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유색인종의 몸으로 태어나고도 비상한 두뇌와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행동과 책략들을 동원해 보란듯이 전쟁영웅으로 성공한 검은 머리 대원수 등과 비교하면 명백한 이야기. 아닌 말로, 재석이가 보유한 능력이 군사 쪽이었다면 주변국은 백년 단위로 나폴레옹이 튀어나오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이상 필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허구한 날 빡대가리라고 까이지만, 그런 농담을 진지하게 고려해도 곤란한 일. 물론 재석이가 상기 나열된 작품들 속으로 들어가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기야 힘들지만, 그건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군주가 아닌 쪽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국가 지도자라 하더라도 수백년 단위로 빙의하며 국가를 유지하고 이끄는 점에서 재석이보다 확실하게 낫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인물들 또한 드물다. 물론 순수하게 군사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조선이 아시아와 북미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거나 유럽 정벌까지 하는 주인공에 비하면 부족하겠지만, 애초에 저 둘이 본작의 주인공과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막연한 인상 외에 마땅한 근거가 없다. 당장 후자의 경우, 2부 내용 전체가 바로 그 재석이의 국가장악력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관찰자 시점 이야기다.[13]

실제로, 위에서 언급된 작품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어렵다. 당장 본작도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으로 넘어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비교가 된 작품들의 30년 사이 중국 혹은 세계정복이 정말로 가능한 흐름이냐 물으면 대다수는 고개를 젓기 마련이다. 완만한 전개가 특징인 본작도 편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데, 정말 재능 있는 미래 지식 보유자 한 명이 뚝 떨어진다고 당시 상황에서 그런 결과를 거두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로 이야기하는 건 다소 어색하기 때문. 구태여 말하자면 긴 호흡을 가져가는 본작과, 거기에 비하면 다소 짧은 호흡으로 군사적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상기 작품들은 최종적인 골인 지점이 다르니 주어진 능력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14]

또한 양육자, 멘토로서의 능력이 은근히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2부의 이성, 3부의 표트르와 알렉세이, 4부의 하진교 등 재석이 직접 멘토 노릇을 했던 이들은 모두 유능하게 성장했기 때문.

3. 성격

성격적으로는 약간 평이 갈린다.

일단 부모로서 재석은 1~4부로 내려오는 동안 태도가 꾸준히 바뀌었다. 1부에선 중전 소생인 세자 이황은 수시로 끼고 살며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었지만 서자 양평군은 자기 입으로도 이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자인했을 정도였고, 옹주는 2부에서 환생한 후 몇년만에 이름도 까먹었다.

2부에서는 손자인 정일한을 만났을 때도 그 아버지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던 탓인가 충신에 대한 고마움은 느꼈어도 혈육의 정은 갖지 않았다. 자신이 빙의하기 전 태어난 경성군의 자녀들 12명은 어디까지나 경성군의 아이들이라며 후계자인 세자를 제외하면 선을 그었다.

독자 공인 '선택적 현대인'이다보니 1부에서 적서차별을 완화시킨 장본인이면서도 철저하게 적자와 서자의 대우를 차이를 두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특징. 이건 친자식이라도, 상희의 자식이라도 예외가 없다. 2부에서 상희 소생인 진안군 이욱은 아낌을 받지 않은 건 아니나 후계자 이성의 권위를 흔들 정도로 사랑 받은 적은 결코 없었고, 딸인 혜원과 혜연은 정략혼으로 조선을 떠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조치는 전제 왕조 국가에선 반드시 필요한 일인 만큼 재석이 마냥 나쁜 아버지였다고는 할 수 없다. 같은 서자녀라도 친왕 시절 서로 사랑해서 맺어진 올랭카 소생이며 딸이라서 분란의 소지도 없었던 루시아와 율리아는 사랑에 인색하지 않았고 각별히 신경을 써주기도 했다. 자신이 빙의하기 전 낳았던 자식들에게 비교적 소홀한 건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고.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1~2부 시점 재석은 전근대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럭저럭 괜찮은 아버지이자 군주라고 할 수 있다.[15]

상기한 문제점도 3부 시점에선 얼추 고쳐졌다. 당시 재석은 처음부터 임금 자리에 빙의했던 1~2부와 달리 10년 이상 친왕으로서 유럽과 미주를 돌아다녔고, 그 때 태어난 이은이나 이준 및 루시아는 여염집 아이들처럼 자라며 아낌 없는 사랑을 받았다. 늘그막에는 정략혼으로 맺어진 세 후궁의 소생인 아이들에게 잔치를 열어주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고, 태자 은의 죽음에 몇날 며칠을 통곡하거나 터무니없는 불효자인 넷째 홍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사망하기도 했다. 빙의 전 태어난 자식들을 좋게 말해도 데면데면하게, 나쁘게 말하면 통으로 무시했던 2부와 달리 성친왕이 낳은 사생아인 디에고에게도 아버지 노릇을 하며 아예 번국 왕으로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4부 시점 재석은 백수십년의 세월이 쌓이며 약간 고루한 기질은 있어도 적자건 서자건 고루고루 사랑하려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황녀 신분에 무희를 꿈꾸는 민지를 보고도 속으로만 혀를 찰 뿐 겉으로 뭐라하진 않았고, 학교에서 여왕 놀이하는 윤지도 점잖게 우려를 내비치는 선에서 끝내며 의사가 되겠다는 꿈도 지지해 준다. 3부 말년에 상희, 올렝카 소생들에게 눌려 지내던 활, 계, 희주를 보며 동등하게 대해주진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며 살 수 있게 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후회하고 미안해했는데 빈말로 그친게 아니라 정말 태도를 고쳐서 자기 체신 떨어지는 것도 감수하며 윤지의 꿈을 받쳐주었다.

태자 창이 학업에 짓눌려 생기를 잃어가자 신하들과 싸워가며 수업을 줄이고 바쁜 와중에 자식과 함께 하는 시간을 크게 늘리고 병약한 딸 현지는 아픈 손가락으로 여기며 직접 다트와 자전거를 제작해주기도 하는 등 각별히 신경을 썼다.

사적인 자리에선 권위 세우지 않고 소탈해서 이항복, 정호찬, 하진교처럼 군주와 신하라는 위치를 넘어서서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하나씩은 있어 곧잘 어울렸고 3부 시절 유구에 기항해 안면을 익힌 유구 세자 상순을 진심으로 벗으로 여겨 그 아들 상익이 칭제건원 하는 것까지 넘어가 주었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 세월로 따지면 어느덧 100년이 넘게 살아와 영락없는 노인이나 27살이던 현대의 기억이 고정된 탓인지, 경험한 세월에 비하면 영 철이 없는 행동을 자주 보인다. 일반적인 현대인들도 결혼 이후에 대부분 아내를 '여보', '당신' 등으로 부르는데, 아직도 아내인 상희를 친구처럼 '상희야' 하고 이름을 부르거나 '너'라고 부른다든가, 견서사와 미주탐험대가 귀환하자 체통머리 없이 개성으로 바로 가려고 한다든가. 꼰대 끼도 좀 있어서 담배가 현대에서 피우던 것 보다 너무 독해서 자신이 못피우니까 자신 앞에서 신하들도 못피게 담배 연기 싫은 티를 팍팍 낸다든가, 딸의 결혼식 이후에 세자와 왕자 및 부마 등이 모여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안 불렀다고 삐치기도 한다. 3부에서는 육체연령이 60세가 넘어 증손자를 볼 정도로 나이가 들었는데도 아래에 나온 것처럼 경솔한 언행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식도락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나 딱히 음식을 가리진 않는다.[16] 천녀의 특전으로 20대 기억이 쭉 유지되다보니 2010년대 한국 젊은이 입맛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 제일 좋아하는 게 치맥으로 그외에도 치킨, 부대찌개, 족발, 피자, 샌드위치, 소시지, 어묵, 삼겹살,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 전형적인 젊은 애 입맛이다. 조각별로 튀기는 치킨을 보편적으로 즐기던 세대이면서도 통째로 튀긴 통닭도 즐기거나, 2010년대에 이미 젊은이들에겐 잊혀졌던 개고기에 아무 거부감이 없고 곧잘 찾는 부분에선 시골에서 자란 티가 난다.

가장 선호하는 술은 도수가 높고 잔당을 남겨 달달하게 만들기 쉬운 남미주 성모곡(원역사의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산 주정강화 와인인 성모주. 2부에서 세스페데스 신부에게 선물로 달달한 와인을 받으며 아들과 둘이서 마시는 모습을 보면 원래부터 도수 높고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탕수육은 찍먹이라, 3부에서 재석이 찍먹으로 탕수육을 시작하는 바람에 원역사에서 볶먹이 원본인 탕수육의 전통이 찍먹이 되어 버린다.

위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각 부마다 보여주는 성격이 꽤 다르다. 단순한 독자들의 평가를 넘어, 작중에서도 상희의 입으로 전생과 이번 생에서의 재석은 거의 다른 사람 수준으로 성격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팬덤에선 재석 본인의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는 몸의 본래 주인과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 성격이 반영되는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으며, 이후 작가 또한 직접 호르몬 때문이라고 밝혔다.[17]

빙의한 육체가 지닌 특징을 제외하더라도,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잔인한 면이 있어 자칫 잘못하면 폭군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조선인들 기준으로도 잔인하다는 평이 몇 번이나 언급되며, 현대인이라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피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편. 덕분에 대역갤 등 팬덤에서는 사이코패스라고 깐다. 물론 현대적 윤리관은 있어서 조선식 고문을 줄이거나 능지형을 줄이고 되도록 참수로 끝내려 하기도 하는데, 반대로 죽이려 작정한 적은 최대한 잔인하게 죽인다. 1부에서는 왜구를 붙잡자 '성문 높이 매달아서 말려 죽이고 백골이 될 때까지 방치하라' 명령하고, 2부에서는 여진정벌 후 추장들의 머리를 수레 모서리 마다 매달고 포로들에게 수레를 끌게 하거나 임해군을 처분할 땐 명나라에서 능지형 기술자까지 초비해 능지형을 집행하는 등 잔인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특히 능지형은 아무리 역적이라지만 처벌이 너무 잔인하다며 충격을 받은 선비들이 상소를 올릴 정도.[21] 사지가 찢겨 죽는 거열형을 보면서도 약간 거북하다는 정도의 반응이고, 능지형 집행 때 주변 신하들이 기겁을 하며 자리를 뜰 핑계를 대는 와중에 주인공은 스스로도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긴 했으나 끝까지 본다. 1부 무종은 선비들에게 대놓고 잔인하다고 까이고, 2부에서도 세자가 수급 수레를 보고 기겁을 했다. 권율도 저런 왕을 보고 '주상께선 수급을 좋아하신다'고 착각?해서 왜군의 수급을 한수레 가득 실어서 보내기도 한다.

게다가 겉보기엔 제법 재밌고 유쾌해 보이지만 실상은 냉혹하고 비정한 측면이 제법 있다. 특히 1부는 현실 연산군만큼은 아니라지만 사화를 여러 번 일으켰으며, 왕권을 위협할 법한 이복형제들을 가차없이 숙청하기도 했다. 또 2부에선 성균관 유생들은 경인왜란에 종군하고서는 PTSD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와중 주인공은 전쟁에 대해 트라우마나 죄책감을 느끼는 묘사가 전혀 없다. 암행을 나가며 전쟁으로 괴로워하는 백성들 목소리를 듣게 되자 나름대로 신경을 쓰기도 하지만, 전쟁 의지를 꺾지는 않는다. 아군의 희생에 대해서는 '마음이 아프지만 부강한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 정도로 생각하며 넘어가고, 적군에 대해선 '놈들이 먼저 침략해서 반격한건데 당연하지 않나' 하는 식으로 자기합리화한다. 물론 미래를 알고 있는 주인공 입장 상 전쟁 준비를 멈출 수도 없고, 먼저 침략한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건 실제로도 자주 있는 일이기야 하다. 문제는 본인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명분을 찾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묘사되는 판국에 그런 자기합리화를 하니 괴리감이 크게 느껴지는 편.

3부 시점에선 군주 노릇을 거의 백년 쯤 하다보니 현대인임에도 점점 마인드가 신분제 사회의 특권층에 익숙해지고 있다. 자신도 언젠가 근대에 들어 권력을 내려놓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하고, 창관에서 성친왕의 사생아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천한 어미에서 난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 몰려들면 어쩔까?" 같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또한 부국강병만을 바라보고 나라를 이끌다보니 땅을 얻기 위해 적당한 전쟁 명분이 생기길 바란다든지, 대한의 종속국이 대한의 영향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움직임이 보인다면 무력으로 정권을 갈아치울 생각을 한다든지, 제국주의적 사고에 상당히 물든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4부에서는 대남 정씨가 사실 자신의 1부 때의 자손들이라 꺼려져서 딸과 혼인시키기 싫다고 하자 댓글에서 그렇게 따지면 러시아와 청 황실은 더 가까운 자손들의 후손[22]인데 왜 아들, 딸과 혼인시켰냐는 지적이 나왔다. 슈타인호프 작가는 답댓글로 딸은 출가외인이라 시집보낸 딸의 후손은 남의 집안이지만 아들의 후손은 아무리 수백년이 지났어도 시조가 같으니 같은 집안이라서 조선시대 사고방식으로는 저게 맞다고 답했다. 달리 말하면 현대인이었던 이재석은 어느새 뼛속까지 완전히 전근대식 사고방식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흥선제의 이복여동생이 대신 혼인한다.[23]

전근대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당시 사람들의 관점으로 봐야 하는데, 무조건 본인 눈으로만 본다.[24] 선비들을 싫어하는 이유가 현대에 있을때부터 '조선이 망한 건 성리학 때문이다'라는 흔한 인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데다, 무종으로 있을때는 임금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가 없다고 개갈굼을 먹어야 했기 때문. 그랬던 이재석도 전근대 생활이 100년을 넘어가자 본인도 사고방식이 전근대화되었다.

사실 이재석 자체는 전근대 기준으로 분명히 괜찮은 군주이고 딱히 나쁜 사람이라고 하긴 어려우며, 다른 국내 대체역사물과 비교해봐도 대통령 각하 만세조지원같은 명백한 악당과 비교하면 불필요한 피는 가급적 보지 않고 최소한의 선은 지키려하는 이재석은 비교적 선량한 편이다. 시간이 지나 다른 대체역사물의 극단적이거나 막나가는 성향의 주인공들과 본편과 다른 대체역사물에 등장했던 원 역사 속 실존인물, 단체, 국가들이 저지른 현대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각종 만행과 실제사건의 막장성들이 독자들에게 점차 알려지면서 이들과 비교해보니 오히려 이재석이 당대 기준으로 천사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무래도 연재 초기 슈타인호프 작가의 미흡한 감정 묘사로 인해 내로남불하는 모습을 보여 싸패 드립이 유행하며 밈화가 되자 작가가 이 밈에 호응해서 싸패스러운 캐릭터성을 밀고 나가려고 의도적으로 망언을 만들어 넣으며 지금과 같은 취급이 된 듯 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대역갤에서는 이재석은 싸패의 상징처럼 통하며 정신 기생체, 코른의 사도 등으로도 불린다.[25]

4. 작중 행적

4.1. 1부: 무종 이융

조선 제10대 국왕
무종 | 武宗
무종□□□□□□□□□효대왕
武宗□□□□□□□□□孝大王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무종(武宗)
시호 조선 □□□□□□□효대왕
(□□□□□□□孝大王)
□□(□□)
출생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0시 36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
즉위 1495년 1월 25일 (음력 12월 29일) 신시
조선 한성부 창덕궁 인정전
사망 1506년 11월 18일 (음력 11월 6일) 자시[26]
(29년 11개월 28일, 1만 953일)
조선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
능묘 무릉(茂陵)
재위 조선 왕세자
1483년 3월 14일 ~ 1495년 1월 25일
(음력 1483년 2월 6일 ~ 1494년 12월 29일)
조선 국왕
1495년 1월 25일 ~ 1506년 11월 18일
(음력 1494년 12월 29일 ~ 1506년 11월 6일)
(11년 9개월 24일, 4,3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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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1f2023>전주(全州)
융(㦕)
전호 □□전(□□殿)
부모 부왕 성종, 모후 제헌왕후
부인 성렬왕후, 숙의 이씨, 숙의 곽씨 }}}}}}}}}
눈을 뜨니 자신이 왕이 되어있는 난데없는 상황에 라면 찾으며 꿈이나 몰래카메라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술에 취해 돌아온 날 겪은 그것이 꿈이 아닌 진짜라는 걸 알고 기가 막혀한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조선시대 왕으로 살아보기로 하며 내관을 상대로 질의응답을 통해 우리에게 '연산군'으로 알려진 왕의 즉위 초에 빙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왕이 된 김에 자신의 지식을 기반으로 조선을 성리학밖에 모르는 꼴통국가가 아닌[27] 실용주의적 국가로 개혁하여 임진왜란병자호란을 막고 일제강점기가 오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성리학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못하고 정치라는 것을 해본 경험도 없기에 신하들을 이끄는 능력은 좀 모자라서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신하들을 정기적으로 사화를 일으켜 숙청하는 식으로 국정을 이끈다.[28]

조총 등 많은 발명품을 만들고, 사림을 제압해서 왕권을 강화하고, 수차례 전쟁에서 이겨서 권력을 더 공고히 하고 명나라와 적절히 협상해서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노비종모법, 서얼금고법, 과부재가금지법과 같은 악법들을 철폐하는 등 12년간 국정을 제법 훌륭하게 이끌었으나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대마도 출신 일본인 종성순에게 허무하게 암살당해 사망한다.[29]

재위기간은 1495년 ~ 1506년. 3부에서 조선이 칭제건원을 하지만 위로 4대조 까지라 그의 아들 앞에서 끊긴다. 요절하긴 했지만 원 역사에서처럼 반정으로 폐위를 당하지 않아서 몇달 더 오래 재위하였으며 시법으로는 중간 축에 드는 무(武)긴 하지만 '무종'이란 묘호를 받았다. 일부 사림파들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칭송을 받는 군주여서 무덤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복숭아를 심어주거나 무종 세대의 백성들이 자식, 손자 세대에게 강선총, 개선식 등의 업적을 이야기해 주는 것을 보면 준 개선식과 순행 덕에 백성들에게는 이미지 메이킹을 잘 한 셈이다. 한편 2부에서도 실용주의 성향이 강한 신하들은 무종을 고평가하기도 한다.[30] 3부를 보면 민간에선 원역사처럼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사화를 일으켰다는게 정설이 됐고 일본에도 그렇게 알려졌지만, 조정 고관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다 알고 있다.

현실 연산군에 비하면 충분히 명군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역사의 궤적을 크게 바꾸지는 못한 편. 2부의 등장인물들은 현실과 별 차이가 없고, 재석 본인도 그것을 들어 연산군 시절에는 역사를 아주 많이 바꾸진 못한거 같다고 생각한다. 일단 재위 기간 자체가 짧아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후계를 제대로 키울 시간도 없었다. 게다가 시대적, 사회적 한계[31]에도 많이 부딪혔다. 그래도 반정이 없어서 강화된 왕권은 유지됐고, 조총과 증기기관 같은 발명품은 명맥을 이어갔으며, 그의 시대에 폐지한 악법들 덕분에 인재풀이 더 넓어졌고, 재석이 심으려고 한 실용적인 사고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서 2부에서 경성군으로 재빙의하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전부 퇴행해서 현실 역사와 별 차이 없게 됐을 가능성이 클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그렇지만 무종시절 재석에게 행운이 따른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측근들이다. 조정에 자기 편이 없었던 관계로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하며 지원하던 중전의 오빠 신수근과, 원 역사의 중종반정을 의식해서 유자광, 임사홍, 성희안, 박원종 등 당시의 주역들을 후대했는데 이들은 각자 능력도 출중한데다가 신권을 억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던 재석의 의도에도 부합했고 무엇보다 재석에게 철저히 충성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비리나 비위는 눈 감고 키워줘서 어마어마한 권신들이 됐다. 이들은 재석의 급사 후 상황을 매끄럽게 수습하고 사림의 지지를 받던 진성대군이 아닌 5살 원자를 왕위에 올렸고,[32] 순수한 충심보다는 자신들의 권세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무종의 개혁 정책을 계속 이어갔다. 게다가 인조가 친정할 즈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자연사해버려서 국정을 농단할 일도 없어졌으니 후대에는 '죽음까지 충성한 충신들'로 알려질 것으로 보인다. 박원종의 경우는 본래 탐욕적이었고 무종 사후에도 엄청난 축재를 했으나 이는 포경과 모피산업을 개척해서 쌓은 것으로 상공업을 진흥시키고자 한 재석의 의도에 정확히 부합했다.

2부 경성군 대에는 무종 시절 닦은 기반들을 활용해서 더 큰 스노우볼링을 하게 되며, 이번에는 불가역적일 정도로 역사에 큰 변화를 주어서 3부에서는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가 현실과 딴판으로 흐르게 된다. 자세히 보면 왕권 강화, 영토 확장, 대외 원정, 상공업 진흥, 신무기 발명, 삼림 보호 등등 2부의 많은 것들은 무종 시대의 선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훗날 역사가들은 더 고평가할 군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후 조선이 대유주와의 교류를 시작하면서 무종의 업적도 대유주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유주에서는 피뢰침을 발명한 업적으로 '번개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무종이 발명한 보병지원용 경포를 '무종포', 미니에 탄을 '무종탄'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 독자가 올린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무종만화에 이 작품 세계선의 후손들이 본 무종의 모습이 요약되어 있다. 역시 호평을 받았던 팬픽 님께서 떠나신 뒤의 내용을 일부 반영하고,[33] 1부에서 재석이 시해당한 후에 있었을 법한 일을 2부에서 재석이 직접 확인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적절히 창작해서 독자들의 보는 재미를 더한다.[34] 마지막의 치트키까지 완벽하다

4.2. 2부: 장조 이윤

대한 황실 2대조
장조 | 莊祖
조선 제13대 국왕
장조 | 莊祖
장조소경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
莊祖昭敬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
[A]
장조현문의무성예달효태황
莊祖顯文毅武聖睿達孝太皇
[A]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장조(莊祖)
존호 정륜입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천희운
(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
계통광헌응도융조경명신력홍공융업
(啓統光憲凝道隆祚景命神曆弘功隆業)[A]
시호 조선 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
(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A]
대한 현문의무성예달효태황
(顯文毅武聖睿達孝太皇)[A]
소경(昭敬)[A][B]
출생 1551년
조선 한성부 은성군 사저
즉위 1567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C]
사망 1608년 12월 22일 (음력 11월 16일)[43]
조선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
능묘 장릉(莊陵)
재위 조선 국왕
1567년 ~ 1608년 12월 22일
(음력 1567년 ~ 1608년 11월 16일)[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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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전주(全州)
윤(鋆)
봉호 경성군(景城君)
전호 영모전(永慕殿)[A]
부모 생부 은성대원왕, 생모
의부 명조, 의모 인순황후
부인 의인황후, 인빈 조씨, 혜빈 강씨,
순빈 박씨, 귀인 김씨, 숙의 홍씨,
상빈 이씨, 숙원 정씨, 숙원 김씨
}}}}}}}}}
2부에서는 (무종 시절의 활약 덕분에) 역사가 바뀌며 등장한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왕 '경성군'에 빙의한다. 무려 76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다른 왕에 빙의했다는 사실에 절규하며 천녀를 원망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자신이 없는 동안 조선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2주 넘게 서재에 틀어박혀 지난 역사들을 되짚어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신이 1부에서 벌인 정책 상당수가 사장되지 않고 이어진 것에 안도하며, 10년 후 닥칠 왜란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 나선다.[46] 이 과정에서 이전까지 경성군이 추진했던 성리학적 가르침을 우선시한 정책들을 취소하고 성리학밖에 모르는 유교꼴통들을 숙청해가며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실용주의 개혁 정책을 밀어붙인다. 그래도 실제 역사의 임진왜란에서 헌신하여 입만 산 선비가 아니라는 걸 입증한 조헌, 김성일 같은 사람은 우대해주고, 성리학이 조선의 근본이념이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는데다가 유용성도 없진 않기에 대간에는 사림들을 남겨둔다. 유성룡, 이순신, 이항복 등의 위인으로 남은 인재들을 중용하는 것은 물론, 김명원, 정철처럼 능력이 있지만 과오가 더 크게 기억된 인물들도 알맞은 자리에 기용해 오명 쓸 일 없게 하며 잘 활용한다. 사화를 일으켜 사림들을 대거 죽이던 1부와 달리 기축옥사의 역 버전에 해당할 서인 숙청도 처벌을 전가사변 정도로만 하고, 윤두수, 정철 같은 인재는 공을 세우자 복귀시켜 준다.

1부에선 왕권 강화를 위해 정치 싸움을 하고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면, 2부에서는 국난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빙의 초부터 연속으로 이어지는 전란에 맞서 전쟁에 몰두하는 모습이 주로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의 선조를 반면교사로 삼아 친정을 나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등 책임감 있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며[47] 성공적으로 여진족과 북원,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고 반격에 나서 침략받기 전보다 영토를 넓히고 조선이 지역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다.

일본 보복 원정이 끝난 뒤에는 국력 강화를 위해 외국과의 전쟁보다는 교류를 확대하고 탐사와 개척으로 해외영토를 넓히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양응룡의 난은 얻을 것도 꽤 있고 왜인과 토인 외인부대를 주력으로 쓰면 피해도 적을 것이기에 참가했으나 스페인과는 충돌을 피하려 한다.

견서사가 유럽에 주인공을 소개할때는 서양식으로 유구왕국의 보호자이시며 야인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시고 대남도의 지배자시며 구주 왜인들의 심판자이자 대명천하의 굳센 수호자[48]이신 조선왕국 국왕이라고 소개하게 된다.

신체나이가 50대가 된 뒤론 피로감이 든다거나, 두통이 심하다거나, 성욕이 줄어 중전과 상희 외의 후궁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거나, 폐렴에 걸려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앓아눕기도 하는 등 건강악화 떡밥을 뿌렸고, 조선에 3년째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이어지자,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환구단공사를 명하고, 무리해서 기우제를 지낸 뒤 기적적으로 폭우가 쏟아지자 솜옷도 걸치지 않고 폐렴에 걸린 몸으로 비를 그대로 맞는다.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상희, 이순신, 이항복, 중전, 세자 등등 아끼는 인물들 앞에서 '우리에겐 우리의 하늘이 있으니 기회가 오면 꼭 붙잡아라'는 유언을 남긴 뒤, 상희를 거쳐 중전을 독대하고 숨을 거뒀다. 또한 자신의 죽음은 몸 관리를 똑바로 못한 제 책임이니 이에 대하여 죄를 청하지 말며 묻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49]

재위기간은 1567~1608년[50]이며, 이중 경성군 본인이 통치한 초기 15년을 제외하고 1582년부터 빙의해 26년간 통치했다. 묘호는 '장조'를 받는다.

이것저것 실리적인 일을 하긴 했지만 도리에 맞지 않다며 후세 유학자들에게 까인 무종과 달리, 이번 생에는 감히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명군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토록 가뭄이 이어졌어도 대규모 아사 사태 없이 어찌어찌 넘겼고, 유럽에서 작물과 가축을 도입해 백성들 먹고 사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고, 각종 문화 산업을 크게 증진시켰으며, 세 차례 전쟁에서 진두지휘해 승리를 이끈데다, 조선을 강대국으로 분류해도 될 정도로 영토를 크게 넓히고 국력을 증진했으며, 조선인들 스스로 사대주의를 버리고 자주정신을 기르게 했다. 말년에는 아예 목숨을 바쳐가며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기까지 했으니 후세에 두고두고 칭송받을 명군으로 불러도 부족할 정도다. 왁싱도 퍼뜨리고 말이지 아예 왕이 싫다는데도 신하들이 존호를 받으라고 강요했을 정도니 결과만 두고 따지면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현종대왕과 함께 '한민족 최고의 4대 명군'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조선 왕조의 모든 국왕들의 공식 시호에는 '대왕'이 들어가지만, 현대에서도 '대왕'이라고 굳이 불리는 왕은 세종뿐[51]인데, 그런 세종과 사실상 동격의 명군인 셈.

재위초기 15년의 무능함은 불비불명(不飛不鳴), 즉 장조의 큰 그림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장조는 재위초기 별다른 업무를 안하다가 북방에서 전쟁이 나면서 본격적으로 각성해서 능력을 발휘했는데, '초기에는 방계에서 들어와 왕이 되어 부족한 정통성 때문에 숨죽이고 대간들을 그대로 따르며 물밑에서 힘을 기르다가, 북방의 정세 변화를 캐치하고 일부러 성격이 포악한 신립을 보내서 여진족을 도발, 연속된 전쟁을 일으켰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52] 실제로 전쟁에 승리하여 왕권이 강해지자 마자 자신이 하고 싶은 여러정책을 순식간에 밀어붙였을 뿐만 아니라[53] 자신이 원하는 인재들을 순식간에 높은 자리로 끌어올려서 국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조선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지략가로 여겨질 것이다.

손자가 칭제건원하며 황제로 추존되어 3부에서는 장조대제라고 불린다. 대유주에서는 수 차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점과 펠리페 2세에게 호랑이를 선물했다는 점 때문에 '맹호왕'으로 불리고 있다.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 독자가 올린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장조만화에 이 작품 세계선에서 후손들이 본 장조의 모습이 요약되어 있다.[54]

4.3. 3부: 중종 건흥제 이현

조선 제18대 국왕
대한 제4대 태황
중종 건흥제 | 中宗 建興帝
중종지행순덕영모의열익문선무희경현효태황
中宗至行純德英謨毅烈翼文宣武熙敬顯孝太皇
[D]
묘호 중종(中宗)
존호 지행순덕영모의열
(至行純德英謨毅烈)[D][57]
시호 익문선무희경현효태황
(翼文宣武熙敬顯孝太皇)[D][59]
출생 1665년
대한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C]
즉위 1699년 3월 27일 (음력 2월 26일)
대한 한성부 창덕궁 인정전
사망 1740년 3월 8일 (음력 2월 10일)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
능묘 효릉(孝陵)
절일 □□절(□□節)
재위 대한 황태제
1698년 12월 4일 ~ 1699년 3월 27일
(음력 1698년 11월 3일 ~ 1699년 2월 26일)
대한 태황 대리청정
1698년 11월 24일 ~ 1699년 3월 27일
(음력 1698년 10월 22일 ~ 1699년 2월 26일)
대한 태황
1699년 3월 27일 ~ 1740년 3월 8일
(음력 1699년 2월 26일 ~ 1740년 2월 10일)
연호 건흥(建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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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全州)
현(鑦)
왕호 성친왕(□親王)
부모 부황 열조, 모후 진성황후
부인 인선황후 강씨, 인현황후 민씨,
황귀비 소씨, 정비 김씨, 희비 박씨, 귀비 홍씨
자녀 8남 4녀. 원종 이은, 심왕 이준,
정친왕 이권, 선친왕 이홍, 의명공주 이연주,
수빈공주 이명주, 수명공주 이향주,
기왕 이활, 회왕 이계, 황자 이전, 의선옹주 이희주,
술루국왕 이진서, 의원공주[61]
}}}}}}}}}
재회한 천녀에게 또다시 바보노릇을 할 수는 없다며 최소한 빙의당하는 사람이 원래 알던 사람은 알아보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천녀는 이 청을 수락하지만[62] 대신 조건이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3부는 대한 태황 건복제의 아우, '성친왕 이현'으로 빙의했으며, 74년을 건너뛴 1682년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10년 만의 모닝 발기를 기뻐하며 폴란드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사생아 올렝카와 동침한 상태[63]에서 깨어난다.[64] 처음에는 외국 땅에서 군주가 아닌 사람으로 깨어난 것 때문에 이번 생애는 쉬어가는 셈 치고 유럽 유람이나 다니며 즐기면서 살려고 했지만, 곧 자신이 빙의한 성친왕이 동복 형인 태황의 노여움을 산 탓도 있지만 이복형이자 야심가인 예왕의 모함에 빠져 사실상 추방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긴장하게 되었다. 주변에 금위사와 예왕의 첩자가 분명히 있을텐데 너무 막 놀면 예왕이 태황에게 자신을 참소해 죽이거나 진짜 유배를 보내버릴 명분을 주는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똑똑한 모습을 보이면 견서사 속에 있을 예왕의 첩자가 자신을 암살할 수도 있다는 것.[65] 때문에 '원래 망나니였던 내가 모범적인 명군 루이 14세를 보고 감명받아 개과천선하기로 했다'는 설정으로 유흥을 줄이고 대한에 보낼 고문단을 모으고 선물로 귀금속을 보내는 등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암살 위협을 막기 위해 견서사 관원들에게 인망을 쌓고 첩자를 색출해내려 한다.

그 후 루스국으로 가다가 들린 폴란드에서 제2차 빈 공방전에 폴수국 지휘관으로 참전하여[66] 돌궐군 총지휘관 카라 무스타파 파샤의 천막을 점령하는 큰 공을 세우고 보상으로 올렝카와 혼인과 약 21만 두카트의 전리품을 받는다.[67] 큰 재물을 얻은 것에 더해서 익위사 무관 김종건을 빈 전투 중 구해줬는데 이에 감동한 김종건이 자신이 암살 밀명을 받은 예왕의 첩자라고 고백하고 재석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암살 위협에서도 어느정도 벗어난다.

루스에 방문하여 표트르 대제와 친분을 쌓고, 이형준의 사생아인 보리스와 그 의형제들을 호위로 삼는다. 표트르 대제에게 같이 유럽을 여행하자고 설득하여 약 3년에 걸쳐 스웨덴, 네덜란드, 잉글랜드를 차례로 방문한다. 그 후 건복제에게 귀국하는 대신 미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변관리사 벼슬을 받는다. 그리고 본국의 태후가 새 친왕비를 간택해서 보내주는데... 새 친왕비는 상희였다. 함께 깨를 볶는 시간을 보내면서, 하와이 정복, 아파치 토벌, 광업 진흥, 중미주 신설 등의 업적을 세운다. 그러던 중 본국에서 태자가 사망하며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지자 동변관리사에서 해임되고 급히 귀국 명령을 받는다.[68] 이 과정에서 두번째 암살자였던 이진원이 재석을 암살하려다 포기하고 자수를 하여 암살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귀국 후 후계자 자리를 놓고[69] 예왕과 경쟁을 벌이는데 과거의 나쁜 평판 때문에 초기에는 위기였으나 재석 개인이 처신을 잘했고 성친왕의 편에 선 사람들이 옹호해주는 동시에 결정적으로 태황이 개과천선한 아우 성친왕을 태제로 책봉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어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한양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선에서 뛰면서 화재를 진압하고 많은 인명을 구출하는 공을 세웠고, 이를 계기로 건복제에게 대리청정을 명령받으면서 사실상 황태제로 가책봉되며 후계자 경쟁은 재석의 승리로 끝난다. 이에 궁지에 몰린 예왕이 일으킨 무인지변으로 목숨의 위기[70]를 겪었으나 반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건복제의 인가까지 받으며 무인지변을 성공적으로 제압하고 정식으로 황태제로 책봉되고,[71] 1699년 3월 27일 건복제가 사망하면서 태황으로 즉위한다. 연호는 고구려 장수왕, 발해 선왕이 사용했고, 제갈량 시절 한 회제 유선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건흥[72]으로 정한다.

즉위 후 동촌과 남촌의 재개발을 마무리하고 용산별궁 공사를 시작하는 등 치세를 토목으로 시작한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틈타 필리핀을 획득할 명분을 짜내는데 고심하며, 표트르 1세의 부탁으로 루스 태자 알렉세이를 맡아 교육시키면서 대북방전쟁도 관심을 두고 있다. 아들을 모두 잃어 후사가 불안한 태황태후와 황태후의 권유를 따라 후궁을 3명 추가로 들인다. 그리고 후송이 요구한 국교 수립에 대해서도 일단 받아들이되 건주를 배신하지는 않기로 한다. 스페인에서 재석 빙의 전 성친왕이 원나잇으로 만든 사생아 디에고가 찾아오고, 황실에 스페인 세력이 침투해 분란을 일으킬 씨앗이 되리라 우려하면서도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백작위를 내린다. 그러던 와중에 원래 천연두로 요절한 카를로스 2세의 원 후계자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종두를 맞고 살아남아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게 됨과 동시에 신서반아 부왕대리의 오판으로 필리핀에 불법체류중인 한인들이 학살당하자 이를 빌미로 스페인에 선전포고, 필리핀 정복에 나선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스페인이 정신 없는 사이 순조롭게 마닐라를 함락시키고 필리핀을 점령한 후 전쟁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공을 탐한 이홍권의 독단으로 인해 잉글랜드-네덜란드 동군연합과의 원치 않는 전쟁으로 확전된다. 다급히 국력을 총동원해 대한에 없는 전열함을 건조하는 한편, 왕가군, 정가군 해적과 프랑스 사략함대를 이용해 통상파괴전을 벌이고 전장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대해 미주에서 누에바에스파냐를 공격한다. 미주에서 대한 육군이 스페인군에게 승리를 거두고 급하게 양성한 전열함 함대도 잉글랜드-네덜란드 연합함대와의 해전에서 무승부를 거두어 잉글랜드-네덜란드와의 강화를 이끌어내면서 스페인을 압박하는데 성공, 원래 목표였던 필리핀에 추가로 캘리포니아 반도까지 획득하며 승리를 거둔다.

그 와중에 필리핀에서 군사들 사이에 말라리아가 퍼지는 것을 본 서장자 디에고가 페루 부왕령에 침투해 키니네의 원료인 친초목을 구해오고 필리핀 전역에 참전해 술루 술탄국 술탄까지 잡아오는 공을 세우자 디에고를 번왕인 술루국왕으로 임명하고 숙부들과의 계승분쟁에서 패해 정가군에서 쫓겨났다가 조호르 내전에 개입한 정가군 수장 정주신을 지원해 조호르 술탄국을 차지하게 만들고 그를 조홀국왕으로 책봉해 번국을 2개 늘린다.

장조 때와 달리 이번 생에서는 딸들을 외국으로 정략결혼 보내지 않고 시집보낸 이후에도 근처에서 끼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사생아로 구박받았던 설움에 자신의 딸들은 어떻게든 황후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올렝카의 설득으로 올렝카 소생의 장녀 루시아를 러시아 황태자 알렉세이에게, 차녀 이리나를 후금 패륵 부수에게 각각 시집보낸다. 나중에 이 일을 두고 상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 연주가 자기도 언니들처럼 외국 황실로 시집가겠다 고집을 부려 잠시 갈등이 있었으나 재석과 상희가 설득해 결국 박문수와 혼인하는 걸로 해결된다.

본인이 3번의 삶을 쏟아 가꾸고 키운 대한을 거의 본인의 소유물로 여기며, 북미에 대한 본국을 압도하는 강대국의 출현을 견제하거나, 제정 타도나 민주화 요구 시위 때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등, 가까운 미래에 전제군주제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1, 2부와 다르게 10대 후반의 건강한 몸을 얻었고 38년간의 승마와 사격 경험이 쌓여 신체 능력으로 활약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냥에서 총과 활을 백발백중하거나 연습도 없이 마상창시합에서 승리하는 등. 사범을 구해서 검술을 배우기도 하고[73] 기병 지휘관이 되며 처음으로 실전 참가와 전술 지휘를 해보는 등 더 레벨업한다. 귀국 후 무인지변에서도 반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가족과 함께 탈출하기도 하고, 패배한 반란군을 추격하면서 선봉에 서는 등 장수로써도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1724년 상희가 췌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1부, 2부와 달리 자신이 홀로 남아 여생을 보내게 된다. 상희의 상을 치르고 한 달 가까이 실의에 빠져 태자와 신하들에게 술꼬장을 부리기도 했으나 정신을 다잡고 다시 국사에 전념한다. 다만 똘끼는 여전한지 경종 독살설이 진짜였는지 확인해본답시고 게장과 생감으로 식사를 하는 자가 인체 실험도 했다. 연로하긴 했어도 몸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설사나 좀 하고 말았다고...

문제는 태자 이은이 술을 너무 즐기다가 간경화가 생겨 결국 세상을 떠나고, 원 역사의 영조처럼 아들을 먼저 보내게 되어 손자에게 제위를 물려줄 판이다. 이은이 사망한 이후 자신의 건강 문제를 빌미로 손자 이영에게 대리청정을 명해 외교권과 군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권한을 물려주고 사실상 권좌에서 물러날 준비를 함과 동시에 손자의 권위를 키워주는데 집중하다, 1740년 3월 8일 종성후 이적과 대화 중 사남 이홍이 울릉도에서 흰 향유고래를 잡으려다 실종된 소식을 듣고 뇌졸중이 일어나 쓰러졌고 결국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재위기간은 1699~1740년으로 총 41년을 통치하여 인조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 재위했으며 향년 75세로 3부 완결 기준 역대 조선과 대한의 군주들 가운데 가장 장수했다.[74] 사후에는,

이 모든 업적을 전부 달성한, 고금을 통틀어 대한 역사에 유례가 없는 명군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평소 대한이 칭제건원한 이후 '조'를 받은 임금들이 너무 많다는 것[75]이 마음에 걸려 황태손과 신하들에게 나에게는 '종' 묘호를 올리라고 당부했고, 승하한 후 조정에서는 공적이 너무 많으나 예왕의 난을 진압하고 종사를 바로잡은 공이 가장 먼저라고 하여 중종을 묘호로 올렸다.

빈 포위전에 참전하여 랜스 차징을 한 일화 때문에 대유주에서 '기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4부에 언급되기로는 알렉산드르 푸시킨, 알렉상드르 뒤마 등 대 문호들도 기사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는 등 대유주에서도 호평하고 있다. 원 역사와 비교했을 때 1부가 연산군, 2부가 선조 위치에 해당되는 동시에 안티테제인 군주였다면 전체적으로 3부에서의 모습은 원 역사의 영조 위치에 해당되지만 생애와 성향은 안티테제에 가까운 모습이다.

덕분에 3부는 사랑하는 아내들과 믿고 의지했던 형, 동고동락한 벗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던 아들 등 소중한 사람들을 차례차례 떠나보내며 메말라가는 내면을 다룬 피폐물이란 평가도 받는다.

대체역사 갤러리의 독자가 박시백 패러디 만화 건흥제편을 올려 중종의 치세 전체를 요약하였다.

4.4. 4부: 흥선제 이진

조선 제23대 국왕
대한 제9대 태황
흥선제 | 興宣帝[76]
□□□□□□□□□태황
□□□□□□□□□太皇
출생 1816년
대한 황도 한성부
즉위 1834년 음력 9월 17일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재위 대한 태황
1834년 ~
(음력 1834년 ~ )
연호 흥선(興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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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全州)
진(昣)
부모 부황 헌종 광덕제, 모후 순원황후 김씨
부인 황후 권나현 }}}}}}}}}

건흥제로서 사망한 이후, 다시 만난 천녀가 이번에는 본래 주인의 유산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이뤄나가게 해준다고 제안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4부에서는 대한 태황 원평제의 적손인 황태손 이진(李昣)에 빙의하는데, 82년을 건너뛴 1822년 마차 사고를 당해 어머니를 눈 앞에서 잃은 직후인 상태에서 깨어나 패닉에 빠진다. 어머니가 태자비, 본인이 태손임과 내관이 쉽게 들쳐업을 수 있을만큼 어린아이임을 알게 되고 천녀를 저주한다.

마차 사고는 부친인 황태자 이순이 만취 상태로 마부를 발로 차 던져버리고 직접 마차를 음주운전하다가 돌을 밟고 일으킨 것이었다.[77]

부친인 이순이 입헌군주제를 원할 정도로 상당히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지만 동시에 위정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라곤 없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여서 아내[78]를 죽게 만들고도 근신하라고 준 1년 동안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도 모자라 어린 아들이 (재석의 빙의로)갑자기 똑똑해지자 의심하다가도 이내 자신이 즉위하면 모든 국사를 아들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놀 궁리부터 하는 막장스런 모습에 분노하지만,[79] 유교문화권인 대한에서 혈연상 부친인 태자에게 대들 수 없기에[80] 일단은 참고 있지만 저런 개막장 인성을 가진 자가 태황이 되면 나라를 망칠 것이 분명하기에 자신이 그렇게 되도록 두고보지 않겠다 다짐한다. 한편 태자가 새로 맞은 태자비 박씨가 아들을 둘이나 낳았고 부귀영화 욕심에 자기 소생 아들을 보위에 앉힐 생각을 하고 있어 원역사의 조선 인종과도 같은 상황에도 처하게 되었다.

성친왕에 빙의했을 때 같은 주변 사람을 보면 알아보는 능력은 이번에도 주어졌으나, 아무래도 본래 이진과 행동이 똑같을 수는 없는지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어린 나이에 큰 사고를 당해 기억을 일부 잃고 성격도 좀 변한 것으로 여겨서 딱히 의심받지는 않는다.

태자의 후처인 박씨가 자신의 아들을 태손으로 삼기 위해 재석을 해칠 요량으로 태손을 미주로 보내 미주 백성들을 위무하게 하라고 하고, 태자는 박씨의 검은 속을 알지만 태손이 미주에 가서 신불랑 황제 나폴레옹 1세와 국경조약을 맺는 업적을 세우면 태손의 입지가 더 공고해져 나중에 자신이 즉위하면 대리청정을 맡기고 놀기가 더 낫겠다는 생각에 그 의견을 태황에게 상주하여 갑자기 12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미주로 가게 된다. 당연히 상희가 태손빈으로 올것이라는 생각에 방심했다가 태손빈으로 맞은 권나현이 상희가 아니라는 사실에 크게 멘붕한 상태로, 강단있는 성격의 태손빈이 재석의 미주행에 후궁 3명까지 모두 이끌고 따라붙는 바람에 미주에서 상희를 찾아보자는 생각도 꿈으로만 그치게 된다.

성친왕 시절 이후 다시 찾은 미주 땅에서 과거 상희와 올렝카, 이은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기도 하고, 태자 이순과 달리 성실하게 미주 백성들을 위무하여 인망을 얻고, 나폴레옹 등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보고 태손빈과 후궁들과의 관계를 쌓는 등 여러 경험을 하며 국경조약 체결 후 귀국길에 오르지만, 하와국에 들렀을 때 조부 원평제가 붕어했단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하는데 새로운 태황 광덕제로 즉위한 이순이 재석에게 상주 역을 떠넘기고 바로 태자 책봉을 서두르는 등 자신의 후계자 지위를 공고히 해주는 행보에 조만간 자신에게 주요 국사는 떠넘기고 놀려고 저러는 것이라 예상한다.

예상대로 이순의 명으로 대리청정은 기본에 외교교섭을 위해 건주 양국과 일본에 유구 등 주변국들을 방문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어 외치와 내치 모두 말끔하게 수행하고 기술 발전에도 힘을 쏟아 조야에서 큰 신뢰를 받고 있다.

초창기에는 어린 태손으로 시작하고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에 순조헌종을 모티브로 할 것으로 추측되었으나, 이번 생에서 재석의 조부인 원평제의 이름이 마침 원역사 영조와 같은 이금이고 답이 없는 아들대신 총명한 손자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점에서 정조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부친인 광덕제 이순이 정상적으로 왕위를 승계받아 정조와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 광덕제가 원역사 순조처럼 김조순의 사위이고 아들에게 국사를 떠맡기려 해 어린 나이에 일찍 국정에 참여하게 생긴 점에서, 효명세자를 모티브로 한 삶을 살 것으로 예상되었었다.[81] 하지만 광덕제가 낙마사고로 39세의 나이에 급사하여 결국 재석이 만 18세의 나이로 태황에 오르게 되었다.[82] 연호는 이전까지 이미 중국에서 사용했던 연호와 같은 것을 쓰던 것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림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국을 포함해 이제껏 아무도 쓴 적이 없는 연호인 '흥선'을 쓰게 된다.[83]

임금 인생 4회차이기 때문에 모든 국정에 막힘이 없으며 학문도 경연관들이 경연을 두려워할 정도여서 사람들에게는 일세의 천재 군주로 알려져 있다. 1840년에는 현직 태황 최초로 미주를 방문하여 신불랑 황제 나폴레옹과 정상회담을 한다.

지금까지는 빙의대상이 성인일때 빙의하여 그 외모 그대로 살아갔지만 이번에는 어린 나이에 빙의했으므로 지금까지의 상희가 그랬듯이 재석의 원래 모습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상희와 만나면 이번에 처음으로 재석의 진짜 얼굴을 보는 셈. 그러나 성인이 되도록 상희는 나타나지 않았고 재석의 외모 관련 묘사도 딱히 없다.

2부에서 조선에 담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한 번 피워보고 현대 궐련보다 맛이 없다며 피우지 않았는데, 상희를 만나지 못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4부에서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쉽게 피로해진다는 묘사도 있었고 흡연까지 하기에 1부 때처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추측이 다시 나왔다. 그러나 조모상 소식을 듣고 흥분한 탓도 있지만 오도리 호위기병들보다 더 빨리 말을 몰고, 잠행나갔다가 마주친 왈패를 가볍게 제압하기도 하는 등 신체조건이 뛰어나단 묘사도 있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즉위 후 30대가 될 때까지 건강 문제는 보이지 않아 몸이 약해서 요절한다는 추측은 사라졌다.

1850년대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등장한 주요 떡밥은

등이 있다. 여기에 루이 샤를 나폴레옹의 확장과 러시아의 남하로 영프 vs 한러 대결 구도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1차 대전이 대폭 당겨져 4부에서 크림 전쟁과 맞물려 치루어지고, 그 영향으로 2차 대전은 대폭 미루어져 45년보다 이후에 터질 가능성도 제기중이다. 그간 도의적 문제로 경성군처럼 아예 피가 안 이어졌거나, 손자의 손자 성친왕처럼 대수 차이가 꽤 나는 상대에게 빙의해 왔는데 요절하지 않는다면 원역 2차 대전과의 갭이 너무 좁아져 할아버지가 손자 아들의 몸을 빼앗거나 부득이 대한 황실에 대가 끊어지는 분란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 명군이 4부까지 진행되며 실존 인물들 비중이 (특히 대한에서)대폭 낮아졌기도 하고.

작가가 크림전쟁과 안남 정벌의 나비 효과를 엮어서 점전 판을 벌려가고 있어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서 부르는 별명은 비행선에서 따온 비행왕.

5. 어록

사실상 작가 공인으로 철없는 캐릭터인 관계로 어록은 사실상 대부분 망언록이다. 이를 모은 망언 목록은 수시로 갱신되고 있으며, 재석이 어록콘도 2종류나 출시되어 있다. #1, #2
"이 좆 같은 새끼들아! 니 좆이나 자르고 그따위로 지껄여라. 서얼이 더럽다고 욕하는데, 아무데나 싸질러서 그 더럽다는 서얼을 줄줄이 만든 네놈들 좆대가리가 좆나게 더 더럽다!"
1부, 서얼금고법 폐지를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내뱉은 쌍욕. 성리학 교조주의자 사림들을 닥치게 만든 일갈이라 사이다 대사에 가깝지만, 본인이 직접 서얼들을 생산해댄 이후 행적들 때문에 망언으로도 취급된다. 당연하지만 저걸 그대로 실록에 실을 순 없었기에 실록에는 '차마 듣지 못 할 하교'라고 기록되었지만 4부 시점에서는 일반 백성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그래서인지 본인도 흑역사로 취급한다.
(전략) 각성할 때마다 왕이 된 내가 첫 번째로 수행할 과제는 '그 새끼'를 찾아서 죽이는 일이 될 거다. 상희가 여자라 그러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2부, 자신의 아내이자 영원한 파트너 상희가 여자라서 다행인데 만일 남자였으면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내용.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랑하는 자기 아내에 대해 생각하면서 태연하게 남자였으면 죽인다고 독백하는 것 때문에 싸이코패스 밈이 더 굳어졌다.

다만 자기 외의 남자 빙의자는 다 죽인다는 건 아니고, 전제조건이 몇 개 있다.

1. 재석처럼 환생을 반복하는 남자가 있다.
2. 재석은 계속 임금이고 그 동반자는 계속 신하이다.
3. 동반자가 이에 앙심을 품고 재석에게 칼을 들이민다.

이렇게 되면 다음 생을 시작할 때마다 먼저 찾아서 죽여야 할 거라는 뜻이었다. 독자들에게 전달이 이상하게 꼬인 사례. 실제로 4부에서 재석의 아버지였던 헌종 광덕제가 죽으면서 자신도 원역사에서 온 빙의자임을 암시하고 죽자, 재석은 광덕제는 놀기 좋아할 뿐 권력욕이 많거나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니 다음 생에 만나도 먼저 죽일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혼자 전공을 독점하고픈 신립이 내세운 핑계라고 생각한다.
2부, 신립의 오위군이 일본군에게 참패하고 신립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의 독백. 신립이 잘못된 지휘로 명을 재촉한 것은 맞지만, 신립에게 '원군을 이끌고 동래성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내린 본인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신립을 탓하는 듯한 독백을 한다. 바로 다음 연재분에서는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하면서 신립을 탓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내용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제모 여부를 확인할 생각으로 지나가는 예쁜 나인 하나를 불러 벗겨 놓고 보니, 이 상황을 마무리하는 방법이 동침 밖에 없는 것 아닌가.
2부, 상희로부터 시작된 제모 유행이 궁녀들에게 퍼졌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명목으로 지나가던 궁녀를 벗긴 뒤 덮쳐놓고 독백으로 한 변명. 그냥 후궁을 더 들였다고 해도 될 것을 구차하게 변명하는 것이 웃기면서도 이재석다워서 밈으로 유행했다.
추운 북방에서 오래 고생했으니 이번엔 따뜻한 남방으로 옮겨 줘야지.
2부에서 추운 북방에서 고생한 정일한을 곧바로 극남방 대남도 변방 개척으로 뺑뺑이 돌리면서 마치 선심쓰는것마냥 뱉은 대사. 정일한이 평범한 신하도 아니고, 전생의 자신의 숨겨진 손자인데도 이런 말을 했다. 정일한 본인은 워낙 돌부처같은 성격이라 재석이 공적도 많이 세운 자신을 이따위로 변방 뺑뺑이를 돌려도 충성심이 흔들리지 않았으나, 그 아들 정준석은 한동안 재석에게 역심을 품기까지 했다. 재석도 내심 켕겼는지 이후 정일한의 자손이 된 자신이 한양을 불바다로 만들며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악몽을 꿨고 그제서야 정일한을 본국으로 불러들인다.
3부, 예쁘고 착하고 자신을 잘 따르는 올렝카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올렝카의 몸에 상희의 영혼이 빙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즉 올렝카의 아름다운 몸만 필요하고 올렝카의 몸만 즐길 수 있으면 올렝카의 영혼은 죽어도 상관없으니 상희를 보고싶다고 생각하는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줬다. 줄여서 올몸상혼. 독자들이 난리가 나자 몇 시간 후에 내용이 수정되었으나 그 여파는 아직도 남아서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재석이 이 발언을 한 것을 반쯤 정사로 취급하며 놀리고 있다. 작가 본인도 이 부분은 뼈저리게 흑역사로 여기는지 추후 연재본에서 이렇게 착한 올렝카에게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은 천벌을 받아도 싸다고 올렝카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독백이 나오긴 했다. 매번 빙의를 반복하는 놈이 한 말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나마 스페인 귀족 집안 여자가 낳은 애라서 다행이다. 항구의 창녀 같은 정말로 천한 어미 몸에서 태어나 막 구르며 살던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 줄줄이 몰려온다면…
3부, 스페인에서 빙의 전 성친왕이 잉태시킨 사생아 디에고가 찾아왔을 때 했던 독백. 1부에서 본인 입으로 더러운 것은 서얼이 아니라 서얼을 만드는 좆대가리라고 말했던 재석 본인이 사생아들을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라고 칭한 것 때문에, 재석은 결국 좆대가리가 더러운 놈이 되고 말았다. 재석 입장에서는 빙의 전 성친왕이 만든 사생아들을 자기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억울해서 한 말이지만, 이 발언을 한 시점부터 재석이 과거의 발언과 모순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무종대왕이 이재석에게 팩트폭격을 한다'는 밈이 시작되었다.
아, 젠장. 이번 생은 진짜 전쟁 안 하고 싶었는데. 왜 난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걸까?
3부, 계미남변 도중 스페인 함대를 쫓아 바타비아로 쳐들어간 이홍권의 독단으로 인해 잉글랜드-네덜란드 연합함대와의 전쟁에 말려들어가자 내뱉은 독백. 계미남변 발발 직전까지만 해도 필리핀을 먹고 싶어서 스페인 쪽에서 전쟁 명분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전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놓고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말려들어가자 마자 뻔뻔하게 평화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내가 착한 사람인 줄은 요시무네도 아나 보군.
3부, 일본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와의 정상 회담 조율 과정에서의 독백. 역모를 조작하고 전쟁을 유도하는 등 혐성짓은 죄다 저질러놓고 진심으로 이렇게 뻔뻔하게 생각한다는 것 때문에 웃음거리가 된 대목이다.
"부령 이영선의 딸도 네가 좋다고 하였느냐? 아니면 네가 대한의 태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그 아이에게 후궁 자리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였느냐?"
3부, 태자 이은이 카자크 소꿉친구 안나를 후궁으로 맞고 싶다고 하자 꺼낸 말. 물론 태황이자 아버지로서 당연히 지적할 수 있는 말이지만 본인이 과거 겨털 제모했는지 확인한답시고 지나가던 궁녀의 옷을 벗겨버린 뒤에 덮쳤던 전적이 있는지라 웃음거리가 되었다. 다만 여기서는 안나가 보통 여염집 처녀가 아니라 재석을 형제처럼 따르던 카자크 형제들의 딸, 즉 자기 친구 딸인 셈이므로 입궁 시점에서 이미 왕의 여자로 취급되는 일반 궁녀보다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할 개연성은 있다.
"사람은 역시 일을 그만두면 빨리 늙는다."
3부, 국상 최석정이 늙어 은퇴를 청했으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윤허하지 않고 단지 재택근무만을 허용했는데, 오랜만에 최석정을 만났을 때 늙은 모습을 보고 뻔뻔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최석정은 그날 퇴근 후 수면 중 사망(...). 게다가 최석정을 부려먹을 때 절대 내각승상은 시키지 않고 은퇴하게 해주겠다고 하고는 내각승상을 국무총리대신으로 명칭을 바꾸어 최석정을 임명하고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뻔뻔함까지 보인다. 한참 후 자신이 늙어 손자 이영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물러난 뒤 자신도 일을 그만둬서 더 늙는 것 같다고 자평하기도 한 것을 보면 진심으로 원래부터 갖고있던 고정관념인 듯.
"내가 작정하고 역적을 찾기 시작하면 이 도성에서 단 하루 사이에 3백 명도 찾아낼 수 있느니라."
3부, 조회에서 후금 내전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온 발언으로 이 말을 하자마자 신하들이 얼어붙었다. 역모 혐의를 조작해서 숙청하는 것을 몇 번이나 직접 해봤던 당사자가 직접 한 말이라 임팩트가 더욱 강했는데, 며칠 후 연재분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자책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4부에서 소왕의 역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역적을 300명 가까이 찾아내며 이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상하게 정권 잡느라 신하들 상대로 철권을 휘두르거나 전쟁을 벌여서 숱한 사람 죽이거나 했던 건 지금 그다지 후회가 안 되는데, 순박하게 살던 사람들을 타락시킨 건 좀 후회된다.
3부, 아모국 지도층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온 독백. 일단 북방 원주민들을 복속시킨 제국주의적 행보에 대해 나름대로 반성하면서 나온 말이긴 한데, 재석 스스로 철권통치와 전쟁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증하며 독자들 사이에서는 사이코패스 밈만 더 굳어졌다.
그래서 주범인 견성군 말고는 거의 귀양보내고... 나중에 죽였던가, 안 죽였던가. 안 죽였었지?
4부, 무종 시절 본인이 일으켰던 사화를 회상하며 한 독백. 물론 재석이 그동안 죽인 사람 숫자가 수천 명이 넘을 것이고 본인 기준 백여년 전 일이니 누구를 죽였는지 가물가물할 수도 있는데, 본인이 숙청했던 사람들에 대해 회상하면서 가벼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 참 이재석답다는 평을 들었다. 심지어 예왕 때와 다르게 이 때는 별 권력도 없던 이복형제들을 재석이 직접 증거를 조작하고 누명을 씌워서 죽인 것이었다.
하려고만 한다면야 불가능한 건 아니리라. 태황은 요즘도 수시로 대궐 밖에 나가서 놀다 들어오니까. 종성순처럼 하려고만 하면 할 기회는 있다. 하려고만 하면.
4부, 태자 시절 자신의 아버지인 태황 광덕제가 무리하게 유구 병합을 추진하자 진지하게 암살을 고민하면서 한 독백. 광덕제는 여러모로 결함이 많은 인간이지만 나라를 위태롭게 할 큰 실책은 저지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재석 본인에게는 나름 자상한 아버지 노릇을 해주려는데도 이렇게 진지하게 암살, 존속살해를 고민했다.
거참 개복치같은 인간일세, 유구 황실 후계자들은 다 이런가.
4부에서 아버지 광덕제가 유구의 독립을 박탈하고 합병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과의 밀약 및 유구에 대한 최후통첩을 태자 재석에게 맡겨 재석이 유구 태자 상육에게 최후통첩을 하게 된다. 그 전날 잔치 자리에서 재석이 너무나 태연하게 잔치를 즐기자 안심하고 있던 상육이 국권 박탈이라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듣고 혼절하자 재석이 품은 생각이다. 물론 유구 도착 직후 유구에서 재석을 극진하게 접대하는 것을 보고 재석이 유구가 자신들의 운명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후 최후의 만찬 격으로 접대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 생긴 것이긴 한데 독자들이 역시 재석이는 싸패라는 반응을 보이자 다음날 연재분에서는 2부에서 장조 시절 자신도 밀양강 대패 소식을 듣고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을 기억하며 후회하는 모습이 묘사되긴 했다.
그런 짓을 하면 선황으로 만들어버릴 테다.
4부, 태자 시절 부황 광덕제의 명으로 일본과 유구에 다녀온 후 다시 한 번 더 해외로 보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생각한 독백. 이 직후에 실제로 자신이 반역을 일으킬 수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지만 '해외출장 보내면 아비를 죽이겠다'라는 싸패스러운 생각을 또 한번 아무렇지 않게 했다. "선황을 만들어주마"로 변형되어 쓰인다. 며칠 후의 회차에서 태황의 호위들은 무예가 뛰어나니 암살하려면 폭탄 테러를 하거나 기생집에 갔을 때 방화를 해야한다고 독백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보면 실제로 진지하게 암살 수단까지 고민해봤던 듯.
혹시 정말 태황이 내개 남변관리사 따위 직책을 맡겨서 뉴기니로 보내려고 하면, 차라리 후송과 전쟁을 일으켜 버리고 말테다.
4부, 유구 복속을 축하하는 축하연 자리에서 후송 공사가 대한과 일본을 이간질시키려고 대한이 대동양을 완전히 차지하려면 집어먹을 나라 하나가 남았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싸해지자 재빨리 그곳은 뉴기니라고 발뺌했는데, 재석은 혹시라도 부황 광덕제가 이 말에 혹해 자신을 뉴기니 개척에 보낼까봐 짜증이 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자기가 풍토병과 정글이 가득한 곳에 가기 싫다고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을 전쟁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전쟁광적인 면모가 또 드러났다.
이 세계는 내 세계니까
4부, 죽은 광덕제가 자신과 같은 현대인 빙의자였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며 나온 독백. '내 세계'라는 표현 때문에 대한이라는 나라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있던 재석이 어느새 이 우주 자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게 되었음이 드러나 밈이 되었다.
부친처럼 진중한 성품이라면 좋겠다. 나는 아무래도 경망스러운 사람들한테는 호감이 잘 안생기니 말이다.
4부,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죽고 그 다음 차르인 니콜라이 1세에 대해 예상해 보며 나온 독백. 독자들 사이에서 작중 가장 경망스럽고, 경박하고, 경솔하다고 평가받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내로남불스러운 말이 나오니 웃음거리가 됐다. 이 문서를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4부는 몰라도 1~3부 내내 경망스러운 짓을 많이 했다.
그나저나... 올렝카와 율리아한테 미안하기는 하네. (중략) 얼굴이 안 닮아서 그런가.
4부, 청과 함께 후금 내전에 개입하여 후금 영토를 한 웅큼 뜯어내고 청의 번국으로 전락시킨 후 한 말. 이후 만일 후금 황족들이 올렝카, 율리아와 닮은 외모였으면 그들이 생각나서 좀 도와줬을텐데 닮지 않아서 도와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구차한 말을 더했다. 겨털 사건과 마찬가지로 그냥 솔직하게 전생의 가족보다는 현재의 국익을 우선했다고 말하면 될 것을 구차한 이유를 덧붙였다.
안됐구먼, 젊은 것들이.
4부, 잠행 중 1년이었던 군 복무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 것에 대해 유생들이 불만을 늘어놓자 한 말. 여러 이유로 군 복무 연장이 적절한 조치였던 것은 맞으나 자기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는 인상을 준다.
다만 굳이 시멘트를 작게 포장할 필요가 있기는 할 지 모르겠다.
4부, 대부분 농촌 출신이라 육체노동에 익숙한 병사들이 40kg짜리 시멘트 포대를 쉽게 옮길 수 있으니 굳이 소분해서 포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발언했다.
그동안 나는 비행선을 폭탄이나 공수부대를 싣는 도구로만 생각하느라고 꽃가루를 실어서 뿌릴 생각 같은 건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현대의 상식'이 없는 다른 이들이 도리어 훨씬 자유롭게 이 새로운 장비의 활용 방안을 생각하는 듯하다.
4부, 재석 본인이 군사용으로만 생각했던 비행선을 행사용으로 쓰자는 계획을 듣고 한 독백. 하지만 실제 비행선은 재석이 말하는 현대로부터 100년 전인 1차 대전 시절에 군사용으로는 이미 도태되어버렸고, 광고관광 등 행사 목적으로만 쓰이는 것이 바로 '현대의 상식'이다. 즉 현대의 상식 운운은 헛소리고 본인이 항상 전쟁 생각만 하는 전쟁광이었던 거 아니냐는 놀림을 받았다.
아, 나 말고 경제학 공부하고 와서 지식이 풍부한 친구 하나 있으면 참 좋을텐데.
4부, 중앙은행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재석 본인이 경제학에 대해 잘 몰라 중앙은행 설립에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아쉬워 하면서 한 독백. 2부에서는 상희에 대해 생각하면서 상희가 남자 빙의자였으면 바로 죽였다고 태연하게 생각해놓고선 정작 자기가 잘 모르는 지식에 대해서는 바로 빙의자를 찾는 내로남불을 보이면서 웃음벨이 되었다. 경제왕 연산군 연재 이후 명군의 되어보세의 경제 고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던 참이라 이걸 의식한 대사이기도 하다. 그 뒤에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자꾸 필요해지니까 전공자 한두 명 정도가 아니라 차원을 넘어온 대학교 하나가 통째로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잠깐. 그때 나는 그냥 히데요시를 죽이고 싶었던 것도 있는데... 나는 그냥 처음부터 무슨 짓을 했든 안 했든 그놈 죽이고 싶었다고.
4부, 안남 정벌전에서 안남인의 대한인 학살에 대해 보고받고 '왜추 수길처럼 안남국왕에게 학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한 독백. 물론 히데요시가 경인왜란에서 조선인 포로들을 인간방패로 삼는, 죽을 만한 짓거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나중에 을미동정에서 잡혀 죽긴 했지만 히데요시가 학살을 안 했더라도 원 역사에서 했던 짓 때문에 죽이고 싶다고 말하며 역시 코른의 사도답다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3부에서 재석은 원 역사에서 역적이었던 이인좌는 오히려 역사가 바뀐 증거로 생각해서 더 아끼고 중용했던 적도 있어서 내로남불이기도 하다.[85]
왠지 그때가 이번 회차까지 네 차례에 걸친 내 왕생 중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 것 같은 건 내 변덕이려나.
4부, 참파의 처우에 대해 논하며 2부 장조 시절에 완씨의 참파 정벌에 인력과 물자를 지원한 대가로 받아온 코끼리를 생각하면서 한 독백. 대사 자체야 평범하다면 평범한 과거회상이고 장조 시절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도 맞기는 하지만 하필 독자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2부 장조는 무자호란 개선식의 수급 수레, 임해군 능지형, 히데요시 책형, 경인왜란과 을미동정에서 거둔 왜장 수급 박제 등 엽기적인 퍼포먼스로 기억되고 있었기에 무슨 그런 걸 했던 시기를 가장 빛나는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니 역시 재석이다라는 반응이 주류를 차지했다. 그런 엽기적인 퍼포먼스들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장조 시절은 거의 대부분을 전쟁으로 보냈던 시기인 만큼 그런 시절을 빛나는 시기로 꼽다니 역시 전쟁광이라는 반응이 나올만 했다.



[1] 본작은 기본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가끔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다른 등장인물들을 화자로 한 1인칭 관찰자 시점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주인공 재석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2] 공식적으로는 둘 뿐이나 4부에서 재석의 아버지였던 헌종 광덕제도 빙의자임이 거의 확실하고 4부에서 태평천국을 세운 천왕 홍수전도 중국 공산당 출신 빙의자일 가능성이 높다.[3] 재석의 할아버지에 의하면 진짜라고 하지만 정작 재석 본인은 할아버지가 언급한 족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전주 이씨의 숫자는 무려 260만명이 넘지만 그 중 대다수가 조선 말기에 족보를 위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재석이 자신이 전주 이씨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인 듯하다. 저승에서 잡귀놈 족치려고 벼르는 태조 고황제를 생각하면 진짜인게 좋을 텐데?[4] 물론 성리학은 할아버지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이 발에 채이는 사회라 한동안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경연은 아예 실력 부족이 들통날까 싶어 잘 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 지식조차 없었으면 대화를 따라가지도 못해서 임금 연기조차 불가능했으니 감지덕지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재석에게는 문자 치트가 없었기 때문(...). 1부에서 십년 넘게 왕 노릇하며 학문을 익힌 덕분에 2부에 와서 관련 지식 부족으로 고생하는 묘사는 없다. 2부 말에 가서는 38년간 임금 노릇하는 동안 경연관에게 시달리면서 대학, 중용, 십삼경을 강제로 마스터한다. 그래서 이후에는 오히려 어린나이에 유학에 통달한 천재 취급을 받게 되었다.[5] 묘사에 의하면 시험에 불합격했던 이유는 영어 과락 때문이다. 학창 시절 수포자였다는 언급까지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수학이나 영어에서 물을 먹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 작가 왈, 아예 공시 준비를 제대로 한 건 아니라고. 애초에 공무원 시험도 남들이 한다니까 그냥 적당히 교육행정직으로, 심지어 그조차도 가장 덜 귀찮답시고 선택 과목을 과학과 사회로 적당히 준비했다고 한다. 실제로 본인 또한 성균관 학생들이 카페인에 찌들며 공부할 때 자신은 그렇게 되기 전 조선으로 왔다는 식으로 독백하기도 했다.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하는 유행이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만 열심히 파는 성향으로 추측된다.[6] 대표적인 게 업무 처리 및 장악 능력. 대체역사물 독자들의 주요 관심 분야가 아니라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으니 그렇지, 3~4부 시점 주인공은 별 이유 없이 역모를 조작하거나 한 정치 세력을 날려버리고도 후환 하나 없다는 정치 노괴다. 업무 처리 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데, 잠깐잠깐 묘사되는 부분만 고려하더라도 주인공은 태평양 제국을 문제 없이 관리하며 자기 시간까지 만드는 정신 나간 업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처리한 결과가 나쁘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윤회를 반복하며 역사가 너무 많이 바뀌어 미래 지식 치트를 쓸 수 없게되었음에도 매 순간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며 꾸준히 명군이라 불리고 있다. 여타 대체역사물이 그런 중요한 분기점을 미래 지식이라는 치트로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석의 이런 판단력은 틀림없이 장점이라고 할 법하다.[7] 미래 지식을 제외하더라도 마찬가지. 주인공이 등용하거나 아낀 인물들은 대체로 유능하며 충직하다. 물론 2부 시점은 역사적으로 봐도 워낙 천재가 많아서 좀 묻히는 감이 있지만, 가상 인물들만 놓고 보더라도 주인공이 뽑은 신하와 경성군이 뽑은 신하들은 명백히 수준 차이가 나는 편.[8] 1부나 2부 시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무조건 강행하기도 했지만, 당시 재석이 강행한 부분은 미래인으로서 반드시 대비가 필요한 지점이었다. 실제로 그 외에는 대체로 신하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편이었으며, 3부나 4부 시점에 들어선 신하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절충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해 관계를 적당히 조정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보고 본인에게 능력이 없으니까 신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의견을 조율하려면 그 의견이 옳은 건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꾸준히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을 내렸으며, 그 책임을 회피하거나 결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아니었던 만큼 충분히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9] 이런 모습을 두고 '미래의 자신이 누릴 자산이니까' 노력하는 게 아니냐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점을 고려해도 충분히 대단한 편이다. 당장 대다수 사람들은 퇴근 후 '미래의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간단한 운동조차 하기 힘들며, 수많은 정치가들 또한 연령 이전에 의욕이 다하여 은퇴하는 경우 역시 수두룩하다. 사람인 이상 의욕에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비록 여러 번의 빙의를 통해 육체가 젊어진다지만 거의 200년 가까운 세월을 꾸준히 정무에 임하고 있는 셈. 비단 현실적인 예시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불로불사계 대체역사 작품에서도 상기한 이유로 손을 놓고 일선에서 물러서는 작품이 대다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인공의 이런 점은 상당한 자산이다. 물론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노욕 쩐다(...)는 생각을 안 하기 힘든 게 문제라면 문제.[10] 선조 이후의 임금인 열조와 숙조는 각각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이란 미증유의 재앙을 만났고 숙조는 본인과 태자의 건강 문제까지 더해져 바깥에 눈 돌릴 상황이 아니었다.[11] 청, 후금과는 심양회맹으로 관계를 더 돈독히 했는데 후송과도 관계 개선이 이뤄져 건주와 후송 중 한쪽 편을 들어주기 애매한 상황이 늘어났다. 국경을 마주한 유일한 유주 국가이자 표트르와 중종 이래 우호국인 러시아가 나폴레옹 전쟁을 맞이하자 지원해야 했고, 광동진남으로 기껏 살려준 서나라가 망해버려 여기에도 대책이 필요했으며, 번국이 3개나 생겨서 이들의 내부 사정(특히 피 비린내 나는 쟁투가 벌어진 하와)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12] 반대로 관련 분야의 능력은 다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재석이의 내정 능력은 실제로 압도적이다. 당장 역사 속 수많은 명군들이 50년 내내 암군으로 전락하지 않는 일도 드문데, 재석이는 매 시대마다 명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은 매 시대마다 빙의를 반복하며 수많은 경험 및 성공 체험을 거쳤고, 천녀라는 비현실적 요소까지 더해졌으니 자신만 특별하다는 아집이 생길 법도 한데 언제나 그 시대의 흐름을 꾸준히 파악해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생각에 빠지기 쉬운 전제군주국의 왕이며, 실제로도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초인적인 판단력. 전근대 특유의 느린 발전상을 고려해도 외부 정세 등 변화를 고려하면 10년 전 판단이 옳다고 하기 힘든데, 주인공은 각 빙의마다 축적된 기억으로 인한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매번 결과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의 이런 업무 파악 능력이나 200년간 꾸준히 반복했다지만 상한선 없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처리 능력은 일종의 치트나 다름없다. 나비효과를 꾸준히 반영하는 트렌드의 작품이 아닌 탓에 미래의 인물이나 기술의 발전 방향성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본작 특유의 부족한 미래 지식 활용이 역으로 주인공의 능력을 반증하는 셈이다.[13] 누군가는 후자 등 작품의 주제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하겠지만, 그건 본작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부터 본작은 소위 말하는 만따먹이나 정복 계통의 작품이 아니며, 실제로 각 부마다 전쟁은 일종의 대규모 이벤트에 가깝다. 그런데도 군사적인 확장을 시도하는 작품과 비교되는 건 까놓고 태평양을 제국의 호수로 만들겠다는 주인공의 노욕(...)이 빚은 영토가 하도 창대하다보니 발생하는 일인데, 그런 관점에서 말하자면 본작은 애초부터 그런 계통의 작품이 아니라는 대답이 나와야 한다. 한 쪽 작품의 입장에서 던진 농담을 진심으로 해석하니 발생하는 문제.[14] 당장 독자들을 빡치게 만든 1부의 급사 전개는 임진왜란의 대체역사를 위한 2부의 빌드업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며, 실제로 2부는 온갖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실 역사의 인물들이 줄줄이 나오는 등 실제 역사와 매우 유사하게 흐른다. 변화가 비교적 부족했던 초기 시점이라 그렇다 하기도 어려운 게, 3~4부 시점에서도 그로 인한 변화가 매우 적어 주인공이 없으면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냐고 까이기도 했다. 물론 작가도 그런 점을 의식해 주인공의 간섭 없이 변화한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반응을 잠재웠지만, 나비효과에 의한 기상천외한 전개를 특징으로 삼는 최신 대체역사물과 비교하면 다소 부자연스러울 만큼 변화가 적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15] 물론 그런 말을 듣는 당사자가 현대인인 만큼(...), 순수한 칭찬이라고 하긴 힘들다.[16] 와인을 한국 요리에 곁들이는 묘사도 있는데, 별로 좋지 않은 조합이다.[17] 다만 4부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의 몸에 빙의한 만큼 원본의 성격이 어땠다고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18] 물론 실제로 암살 기도를 당한 만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19] 이 때 재석이 지었던 건 실제 연산군이 남긴 시였다. 재석이 현대에서 보고 기억해서 읊은 게 아니라 창작을 했지만 똑같은 시가 나왔다는 뜻.[20] 대표적인 것이 하남벌 전투 대패 이후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신립만 욕하면서 잘못을 뒤집어씌우던 것. 그러나 바로 다음 화에서 생각해보니 신립에게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21] 조선 시대에 역적을 옹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하면 이 처벌이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22] 작중 로마노프 왕조는 3부 건흥제의 딸 루시아의 후손이고 청은 2부 장조의 딸의 후손이고 이후 건흥제의 딸과 혼인한 후금 대칸 부수의 후손하고도 국혼을 하여 건흥제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대남 정씨는 1부 무종의 비공식 후손이라 혈연적으로는 훨씬 멀다.[23] 이복여동생도 전주이씨에 본인이 빙의한 3부의 건흥제의 직계 후손으로 비공식적으로 동성동본이라 내로남불이라는 말이나왔다.[24] 주인공이 직접 친정한 북벌 중에 사대부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현께서 이르기를 처자는 의복과 같으니 어찌 의복의 명운에 관심을 가지겠나이까?"라며 처자에 대한 걱정은 버렸다면서 정작 부모의 안위는 챙기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저 말은 유비가 서주성을 잃고 도망쳐온 장비에게 한 '형제여수족처자여의복/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이다. 초한지에서는 팽성에서 도망치던 유방이 자식들을 마차 밖으로 내던졌고, 삼국지에서는 교현이 인질로 잡힌 아들을 버렸으며, 유비가 장판에서 유선보다 조운을 더 크게 아꼈을 정도로 고대 중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났고, 또한 고대 중국인들의 가치관이라서 옆의 영향을 받는건 당연했다. 이에 주인공은 현대인의 시선으로만 봐서 기가 차 인격적으로도 문제인 이런 놈을 남편으로 둔 처자가 불쌍하다고 더욱 깐다.[25]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망언은 무겁고 지루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도 한다. 대역 특성상 상황 설명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세계관이 커지면서 각지의 정세도 설명해야 한다. 다소 따분할 수 있는 부분에 망언을 한 두 마디 집어넣으면 그런 문제는 해결되는 셈.[26] 음력 11월 5일에 궐문(광화문 추정) 앞에서 칼을 맞고 재석의 혼은 바로 천녀를 만나러 갔으며, 이융의 몸은 침전으로 후송된 뒤 자정을 넘기자마자 사망.[27] 그래선지 사림을 매우 싫어한다. 무슨 실용주의적인 개혁만 하려고 하면 꼭 성리학적 도리를 운운하면서 열의 아홉은 반대하고 들기 때문에. 다만 사림에서도 뛰어난 인재는 중용하는 편. 조광조도 똑똑하긴 한 인물이니 잘 교육시켜 실무형 관료로 만들 생각도 했었다. 조헌, 김성일처럼 실제 역사에서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헌신하여 입만 산 선비가 아니라는 걸 몸소 입증한 사람도 우대한다. 애초에 주인공도 현실을 보려하지 않고 성리학적 이상밖에 모르는 꽉 막힌 사림들을 싫어할 뿐 성리학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28] 그래도 경험이 쌓이면서 성리학적 도리를 적절히 언급하며 그럴듯한 명분을 제시하는 모습도 보인다.[29] 원래 결말에서는 연산군이 이 날 사망해서 그 몸은 무조건 그 날 죽을 운명이었다는 설정이 있었으나, 너무 욕을 많이 먹어서 이 설정은 폐기되었고 대신 종성순이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 행동들을 자초해 끝내 폭발하게 해놓은 주제에 별 생각 없이 갑옷이나 호위도 없이 돌아다녀서 죽은 것이 되었다.[30] 정여립, 이항복, 유성룡 등. 정여립은 아예 '위대한 무종대왕'이라고 생각하고, 이항복도 사림들의 꽉 막힌 면모를 비판하면서 무종이 숙청하지 않았다면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을거라는 의견을 피력한다.[31] 1부 말을 보면 해외 무역을 하려거 일본인들을 통해 남만 항로를 알아보고 있긴 했지만 명나라는 해금령을 유지하고 있으며 항해기술도 부족했다. 농업 생산력을 늘이려고 해도 신대륙의 신작물이 없다. 화폐 경제를 시작하려고 해도 귀금속이 없다. 실용주의 사상을 기르려고 해도 이미 조선 초부터 성종 시대까지 사림 세력이 계속 성장해왔다. 재석은 조선 후기에 일어나는 변화를 연산군 대에 미리 일으키려고 했으나, 대동법조차 시범 시행하다가 1~2부 사이에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32] 이 측근들의 명성은 2백년 가까이 지난 3부 시점에서도 대한 황실에서 언급될 정도. 장성한 진성대군을 제치고 5살 꼬마인 원자가 즉위한 건 이 측근들의 존재 때문이라는 게 정설로 자리잡았다.[33] 자순대비가 무종의 원자를 국왕으로 올리기로 결정한 후, 무종의 총신들과 사림들이 권력을 두고 신사협정을 맺는게 주 내용.[34] 본작에서는 자순대비는 진성대군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나, 무종의 총신들이 무력을 동원해 은근한 협박을 가해서 원자를 왕위에 올렸다는 가정을 채택했다.[A] 원 역사 선조와 동일.[A] [A] [A] [A] [A] [B] 황제 추존과 동시에 폐지.[C] 작중 묘사 없음. 추정.[43] 작중 제삿날은 음력 11월 15일. 제사는 사망하는 날이 시작하는 자시, 즉 사망 전날 23시~사망 당일 새벽 1시에 지내는 것이 원칙이므로 이를 이용해 환산.[44] 재위 연도는 원역사의 선조와 동일하다. 다만 선조는 1608년 음력 2월 1일에 사망했기에 실제 선조보다는 약 9개월 정도 더 길게 재위했다.[A] [46] 조선은 태종-세종-문종으로 이어지는 초기 전성기를 지나 세조 시절에 공신 대량양산과 군사력 대폭 약화를 겪었고 성종 치세부터 성리학 교조화의 씨앗이 나왔으며, 이후 연산군의 폭정과 문정왕후 시절의 부패, 지속적으로 문약해져가는 군사력으로 말미암아 선조 시기 대재앙이 일어난다. 다행히 주인공이 연산군에 빙의하여 세조 이후의 똥들을 치우고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상공업의 기본을 다져놓고 죽었으며 이후 인종과 명종이 유지를 잘 이어나갔기 때문에 원역사의 조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건강하다.[47] 상희가 친정 나가는 걸 말릴 때도 나는 후세 사람들에게 선조 같은 비겁한 도망자로 기억되기 싫다며 강행한다.[48] 조선 내부적으로는 명나라를 돕는 제1번국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하고 유럽에 대해서는 세상의 빛과 질서를 수호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49] 국상 이후 신하들이 "임금을 살려내지 못한 죄인"이라며 어의들의 처벌을 요구하고, 새 임금 역시 불가항력임을 알아도 이를 아예 거부하면 아버지의 죽음에 영향을 끼친 이들을 내버려두는 불효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어 유배형을 내렸다가 복귀시키는 일이 흔했다. 물론 효종처럼 의료사고가 직접적 사인인 경우는 얄짤없이 처형됐다.[50] 작가가 기상 상태는 실제 역사의 기록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밝혔으므로 주인공을 죽음에 이르게 한 폭우는 1608년 11월 9일에 기록된 폭우로 보인다. 이후 며칠 지나서 사망했으니 1608년 11월 중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장조가 죽은 날짜가 1608년 11월 21일이라는 드립도 나왔다.[51] 가끔 정조도 대왕을 붙여 부르긴 하지만 세종대왕보다는 인지도가 훨씬 떨어진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도정치의 원인을 제공한 원흉으로 찍히면서 점점 평가가 안좋아지는 추세.[52] 장조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 바로 인재등용과 활용능력이라는 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53] 공신전 회수, 이순신 등용 및 중앙군 강화, 대 서양 외교 등등.[54]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형식을 빌려서 2부 주인공 장조대제를 그린 패러디 만화인데, 마치 작품 속 평행우주원작자 본인이 그린 것 같은 미친 퀄리티를 자랑한다. 작가도 보고 감탄한 나머지 당일 문피아 연재분에 아침 7시 40분 예약을 걸어놓는 것을 깜빡해서 자정에 공개될 정도였다(...).[D] 원 역사 영조와 동일.[D] [57] 작중에서는 영조의 시호를 존호로 언급하므로 영조가 가장 처음 받은 존호 표기.[D] [59] 작중에서는 영조의 시호를 존호로 언급하는데, 오류로 추정.[C] [61] 본래 건흥제의 사촌인 경흥왕의 딸이나 화번공주로 조홀국에 가기위해 5촌 당숙 건흥제의 딸로 입적된다.[62] 그러나 재석이 빙의한 성친왕 이현이 일행인 견서사를 제외하고는 전부 모르는 사람들뿐인 대유주에 체류하던 중이었기에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십수년동안 이 능력을 사용하는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63] 수정 전의 3부 1화는 재석이 올렝카에게 핸드잡을 해서 올렝카가 오르가즘 끝에 실신해버리는 내용이었는데, 슈타인호프 작가의 영 좋지 못한 로맨스 묘사 때문에 야하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은 애매한 내용이 되어버렸고, 문피아 측에서 문제를 삼아서 결국 말로 올렝카를 다그치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이후 문피아 남성향 검열 논란이 터지자 슈타인호프 작가가 당시 상황에 대해 밝혔는데, 문피아 측에서 수위와 더불어 올렝카가 현대 대한민국 기준으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성행위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아청법에 걸릴 수 있다고 하여 수정한 것이라고 한다. #[64] 2부에서 재석은 원래 역사보다 개방적인 국가로 변화하는 조선을 보면서 '다음 생애에서는 나도 유럽에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는데 망상이 현실이 되었다.[65] 재석이는 자기도 무종, 장조 시절에 남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 일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잘 알아서 더 걱정을 하고 있다.[66] 원래 참전할 생각은 없었으나 차르니에츠키가 시비를 걸면서 얼떨결에 휘말렸다.[67] 21만 4528 두카트. 연재일인 2020년 7월 22일 기준 금 시세가 1g 당 71,170.07원이므로 약 523억원의 거액이다.[68] 여담으로 이 귀국을 끝으로 재석은 세계일주를 달성했고 나중에 건복제 사후 태황 자리에 오르면서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달성한 군주'라는 타이틀도 획득한다.[69] 원래 재석은 상희를 소망대로 본부인으로 두게 되었으니 황위에 미련을 버리고 미주에서 쭉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국한 이상, 예왕이 즉위하면 자신을 숙청할 것이 확실하기에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권력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되었다.[70] 하루만에 실패로 끝난 무인지변에서 예왕에게 가장 희망적이었던 시나리오는 거사 시작과 동시에 성친왕 일가를 몰살시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재석이 탈출하면서 사실상 성공은 물건너간다.[71] 건복제가 붕어하기 6일 전 마지막으로 독대했을 때 건복제가 장조에게 무종의 혼이 깃들었다는 괴담을 언급하자, '자신은 현대인이고 무종, 장조, 성친왕에게 차례로 빙의했다'는 고백을 하나 건복제는 아우가 자신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그럴듯한 재담을 꾸며냈다고 웃어 넘긴다. 현대인처럼 합리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상 건복제가 믿지 않을 것이고, 설령 이를 믿고 이야기를 퍼트리더라도 주변에서는 오늘내일하는 건복제가 헛소리를 한다고 여길 것이라는 계산까지 하고 한 얘기였다. 그러나 애초에 성친왕이 변했다는걸 제일 먼저 눈치챈게 건복제인 만큼, 진짜 믿고 안심하고 갔다는 해석도 있다. 어차피 가자마자(?) 바로 사실을 알겠지만 판단은 독자의 몫.[72] 무난한 것으로 골랐다고 하는데 재석 본인이 삼국지 덕후인 영향도 있는듯.[73] 언제 예왕의 첩자에게 암살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부에서 종성순에게 참살당할 때 칼을 뽑아 갖다대기는 했는데 힘이 부족해 막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베인 것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74] 원 역사의 조선에서 가장 장수한 왕인 영조(81세)보다는 단명했지만 그래도 영조 다음으로 장수한 태조(72세)보다 더 오래 살았다.[75] 선조는 칭제건원을 한 당사자이니 당연히 '조'를 받았고, 칭제건원하면서 선조의 4대조인 인종과 명종, 경종이 인'조'와 명'조', 경'조'로 추존되었고, 열조는 경신대기근, 숙조는 을병대기근을 극복한 공로로 각각 '조'를 받았다.[76] 원래 작가가 설정한 연호는 흥녕(興寧)이었으나, 독자들 사이에서 연호에 대한 불만이 자주 나왔고 결국 4부 364화에서 작가가 설정을 변경하여 연호가 흥선(興宣)이었던 것으로 수정되었다.[77] 4부 연재 이전에는 암살 시도나 테러일 것으로 추정하는 독자들이 많았다.[78] 김조순의 딸로 원역사에서도 순조 비 순원왕후가 된다.[79] 사실 태자는 그런 막장스런 의도도 있지만, 어린 아들이 조부 때문에 과도한 공부에 시달리는 것이 안타까운 진심도 있었으나 재석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다.[80]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손꼽히는 충효를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차기 군주이자 아비인 태자에게 맞서는 건 최악의 불효이자 불충인 동시에 본인의 정통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원 역사의 광해군과 사도세자가 부왕인 선조와 영조의 가혹한 핍박과 견제 속에서 저항 한 번 못 해 보고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한 몫 했었다.[81]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4부에선 재석이 태황에 즉위하지 못하고 효명세자처럼 요절하는 식으로 4부가 생각보다 일찍 종료되고 세계대전기를 다룰 5부로 건너뛰지 않을까란 의견이 있었다. 상희도 등장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82] 조부 원평제가 3부의 재석이 빙의했던 중종처럼 원 역사의 영조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나오고 부친 이순이 원 역사의 사도세자, 순조, 헌종을 각각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을 가진 것처럼 4부의 재석도 원 역사의 정조와 효명세자 등 실존인물 여러 명에서 모티브를 따와 합친걸로 보인다.[83] 재석은 원 역사의 흥선대원군이 떠올라 쓰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흥선대원군의 존재 자체가 삭제되었기에 거부할 수 있는 타당한 논리를 댈 수 없어 결국 흥선 연호를 쓸 수밖에 없었다.[84] 정확한 원문 대사는 아니다.[85] 이를 두고 독자들 사이에서 나중에 재석이 이완용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는 의견들이 있다. 워낙 이완용이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한데다 원 역사의 행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재석이 그 이완용의 존재를 알았을 때 그냥 넘어갈 리 있겠냐는 반응과, 이 세계 대한은 일찍이 강대국으로 거듭났기에 이완용도 매국노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데 원 역사에서 악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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