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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01:21:57

이형(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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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
2.1. 즉위 직후 ~ 제1차 조청전쟁2.2. 제2차 조청전쟁2.3. 조러전쟁2.4. 천명대전2.5. 러시아 침공2.6. 중원 대분열
3. 성격4. 능력5. 기타

1. 개요


대체역사소설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주인공.

본래 사학도 이원철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지는 중에 어머니도 잃고, 친구에게까지 손절당하여 술에 취해 절망을 토하다가 그만 맨홀에 빠져서 즉위 직전의 조선 제26대 국왕인 고종으로 빙의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기가 팔자에도 없는 왕 노릇을 하게 생겼다며 한탄하였고 차라리 민주공화정으로 체제를 전환할까 생각도 해본다.

허나 자신의 나라가 또 다시 열강들에 의해 비극을 겪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그는 조선이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빠르게 개화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충격요법을 다수 써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군주로서의 일을 다하려고 한다.

2. 행적

2.1. 즉위 직후 ~ 제1차 조청전쟁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맨홀에 빠져 죽은 뒤에 익성군 이명복으로 빙의했는데 즉위 직전이고, 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이 다시 힘없는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여러 가지 고심을 한 끝에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당당하게 조선을 극동의 강호로 그 명성을 떨치게 하여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즉위를 하기도 전에 "청나라는 더는 서역 오랑캐들로부터 천명을 지켜내지 못하였으니 청의 천하는 저물어간다. 이에 북적 오랑캐인 청나라를 몰아내고, 어버이인 주명의 원수를 갚자!"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대의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의 생부인 흥선군 이하응과 양어머니인 조대비까지도 말이다.

물론 청나라는 제대로 격노하여 조대비에게 "지금 국왕이 너무나도 부덕하고, 오만방자하여 왕이 될 자격이 없으니깐 당장 새로 뽑아!" 라고 압박을 행사했다. 하지만 2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의 여파와 태평천국의 일까지 겹치면서 혼란스러운 내부 사정 때문에 청나라는 서태후가 "여태까지 미친 소리한 거 눈감아줄 테니까 괜히 서역 오랑캐들과 어울려다니면서 사고칠 생각 말고 조용히 지내기나 해." 라는 뜻의 국서를 조선에 보내면서 순순히 이형을 조선의 왕으로 책봉해줬다.

그러다가 이제껏 전쟁에 반대했던 김좌근이 갑자기 태세를 바꿔서는 주전파로 전향하고, 흥선대원군의 사람들을 천거해주기까지 했는데 "여기까지 밀어줬는데 네가 과연 전쟁을 벌일 배짱이 있을까?" 라는 심보였다. 이에 김좌근의 측근들도 동조하면서 친정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정이라... 그것 참 좋구려. 그 옛날 태조 대왕께서도 말을 타고 만주 벌판을 누비고 다니셨거늘, 과인 또한 못할 것이 뭐가 있겠소? 당장 말을 알아보시오. 오늘부터 당장 승마를 연습하리다.

오히려 이형이 맞받아치며 판장을 가져와서 주전론자 명단 제일 위에다 김좌근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조대비는 혼절하고 말았다. 이는 이형의 다분히 계산적인 판단이다. 설령 김좌근이 자신을 죽이거나 폐위시킨다고 한들, 청나라가 김좌근을 내버려둘 리가 없어서다. 이때의 이형은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고, 실세는 김좌근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실권을 차지한 권신과 10대 꼬꼬마 국왕 중에서 저런 미친 소리를 내뱉을 사람으로 유력한 인물은 당연히 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은 후자가 그 말을 했다는 거다.

전쟁을 결심한 이형은 아주 열악한 조선의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서원을 철폐하고, 공명첩을 대거 발부하였으며 의병을 모집하는 한편,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를 통신사로 삼아 일본으로 보내 서역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한편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조선대목구장의 베르뇌 장 시메온을 불러들여 천주교 박해를 금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할 테니, 곧 있을 청과의 전쟁에서 조선의 정당함을 인정받고 싶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렇게 얼마 후, 베르뇌 주교가 불러들인 주청 프랑스 공사 앙리 벨로네와 통상 조약을 맺게 된다. 그런데 이때, 조선이 프랑스를 끌어들이면서까지 전쟁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태후는 분노하여 "조선의 국왕이 미혼이니 청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고 싶다."는 요청을 거부하고, 무리하게 전쟁을 개시한다. 청나라는 몽골의 친왕인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16만의 대군으로 압록강을 넘어 국경에서 조선과의 교전을 시작했다.

전쟁은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졸전들이 이어지는 가운데[1] 결국 조선 군대보다도 통제가 안 되는 쪽이었던 청나라가 후퇴를 하게 되면서 조선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이후 이형은 권력욕에 노망이 든 김좌근이 일으킨 반역까지 진압하면서 왕권을 공고히 다졌다.

2.2. 제2차 조청전쟁

이형은 제1차 조청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봉천 조약을 맺고서 서태후로부터 심양-봉천부, 그리고 심왕 작위를 받고, 공친왕 혁흔의 친딸 영수고륜공주까지 왕비로 맞이한다.

그러면서 봉천 조약이 체결되던 시기에 아무르강 이남으로 남하하던 러시아를 경계하여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시작한다. 얼마 후, 프랑스로부터 파리 외방선교회의 선교사 겸 역관과 함께 루이 베르그송이 이끄는 11명의 프랑스 군사고문단이 조선에 도착하게 된다. 그렇게 조선은 총 3천정의 미니에 소총과 12문의 야포, 이 모든 화기들을 1주일 간 사용할 수 있는 탄약까지 함께 갖고 온 그들의 지도를 받게 된다.

그리고 조선은 청나라로부터 받게 된 전쟁배상금 중 2백만 냥으로 소총 공장과 탄약 공장을 짓게 하며 군대부터 근대화 작업을 착수한다. 허나 상투를 자르고 오랑캐옷(군사 제복)을 입으라는 프랑스 고문단의 요청에 반발한 조선군 시위대를 본 이형은 스스로 자기 상투를 잘라버리고는 스스로 대충 벗어던져있던 군대 제복을 입었고[2], 그 후 그 누구도 상투를 자르고 서구식 복장을 입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서태후가 러시아를 끌어들이면서까지 봉천 조약을 어기고 있다는 걸 보게 된 이형은 청나라가 서태후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청나라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청과의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제1차 조청전쟁보다도 상태가 심각해진 청나라의 군대는 조선군을 막지도 못하고 알아서 항복하면서 조선군은 심양성부터 북경까지 무혈 입성하게 되었다.

2.3. 조러전쟁

제2차 조청전쟁에서 이긴 후, 이형은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4개국 열강들을 불러서 이번 승전에서 얻게 된 이득을 그들과 함께 나누게 된다. 다른 나라들은 이형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족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신장과 몽골의 지배를 인정할 테니 아무르강 이남 만주 일대에 있는 병력들을 철수시키고, 심요를 포함한 만주 전역의 조선의 지배를 인정해달라는 이형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서 이형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만주의 동북 평원에서 조선 1만 vs 러시아 1만의 결투를 벌이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이형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만주를 날로 먹기 위해 만주의 칸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면서 봉천에 머무른 채로 본격적으로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전투 당일. 고량주와 모르핀을 흡입하면서 기병 돌격을 일삼은 끝에 러시아군을 궤멸시켰으며 이 덕분에 서양 열강들과 맺은 각종 불평등조약을 폐기했다.

2.4. 천명대전

조러전쟁이 끝나고, 흥친왕 이희가 대만의 국왕이 되면서 이하응과 함께 대만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장강 이남을 장악한 중화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게 된다.

이 시기의 대한제국은 중원에는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중국인 중산층과 지식인들이 대거 이민을 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이 중화제국이 대만을 되찾을까 경계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대만의 쌀값을 대폭 내려서 대만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강남 일대의 곡창지에서 쌀을 엄청나게 사들여 대만에 싸게 공급했다.

허나 문제는 강남 일대의 쌀값이 폭등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게다가 '풍년'이 들어 수확량이 대폭 증가하자, 영국 상인들도 상황을 알고는 폭등한 쌀값을 지불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지주들은 쌀값의 폭락을 막기 위해 논과 밭를 불태우는 짓까지 일삼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던 농민들은 황금빛으로 물든 논에 불을 붙이는 지주와 상인들, 그리고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어가는 가족들을 보고 이성을 잃는다.

그리고 이형은 청나라와 조약을 맺기 위해 공친왕과 만나게 된다. 공친왕은 울면서 강남 일대의 대재앙에 대해 하소연하고, 이형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일단 이형은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첫 업무를 '강남의 구호물자 보급'으로 삼고, 청국과 일본이 난민 수십만을 받아들이는데 주력했다. 한편으로는 주한 프랑스 대사 앙리 벨로네에게 황제가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부탁하여 프랑스 극동본부가 베트남에서 풍년으로 수확한 쌀을 대량으로 공출해 수십만 명은 되는 난민을 구제하기까지 한다.

얼마 후, 중화제국이 이 모든 재앙들이 다 대한제국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억지를 부리면서 청나라를 침공하자 이형은 총병력 50만의 대군을 끌고 청나라로 향하였다.

오자마자 이홍장과 설전을 벌이고나서 청군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파악한 이형은 단시간에 승부를 보기 위해 포로들을 이용한 사면초가 작전을 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함정에 걸린 중화제국군이 말 그대로 도륙을 당하였고, 이홍장은 최후의 발악 중에 이형의 칼에 목이 잘리고 중화제국군은 항복하게 되면서 중원은 완벽하게 대한제국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2.5. 러시아 침공

난징에서 어느 정도 전후처리를 끝낸 이형은 몽골 부족을 이끌고 러시아령 중앙아시아를 침공하게 되고, 대한제국군도 이에 맞추어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극동 러시아로 침공해 들어간다. 중간중간에 중원을 분열하겠다는 이형의 선포에 그를 암살하려는 자객들과 암살자들이 습격했지만 모두 퇴치한다. 그리고 과거 진나라의 수도 장안성에 도달했을 때, 자객의 공격을 받지만 전봉준이 스스로를 방패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전봉준이 융태에 빠진다. 전봉준은 신숭겸을 언급하며 의식을 잃는다. 이형은 그말을 듣고 자신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굉장히 위급한 상황이라고 소문을 퍼트린다. 가짜 황제 역할을 한 전봉준이 의식을 차릴 때까지 부대들은 대기했으며 동시에 장안성의 관광을 즐긴다.

2.6. 중원 대분열

몽골에서의 일을 매듭지은 이형은 자기 입으로 이하응에게 중원을 몇 개의 큰 조각으로 쪼갤 생각이라고 말한 걸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형은 중원을 영구 분단시킬 작정으로 자신과 같은 전주 이씨의 황실 종친들을 중원의 번왕으로 삼고, 각 번국의 문화와 특색을 파악하고 신경을 써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다가 이형이 진시황릉을 발굴하고 직접 제사를 올린 뒤 천하분열은 당연한 것이라는 식의 비석을 세우면서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니 중원의 민족주의자들은 그야말로 자기들끼리 분열되면서 씨가 마르게 되었다.

3. 성격

2010년대 대체역사물에 한 획을 그은 파천황 또라이 주인공이다.[3] 일단 사학도라서 과거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다 알고 있기에 조선이 살아남으려면 우선 2차례나 아편전쟁에서 패배하여 추락하는 청나라에게 시비를 털어서 전쟁을 유도하고, 승리한 다음에 청에게 온갖 이권을 뜯어서 근대화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조러전쟁 준비 시기에 모르핀으로 쓸 아편과 고량주를 준비해서 전투 당일에 그걸 기병대와 함께 복용하고 돌격한 것에서 절정을 찍었다.[4]

환생 전에 꽤 힘들게 살아온 탓에 다른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는 편이라 의외로 타인에게 순수한 호의를 받으면 얼떨떨한 반응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천주교 박해를 금하자 베르뇌 주교가 항상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니 속으로 "저 할아버지 왜 저러지?" 라고 생각했다. 다만 공감 능력은 환생 이전에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전생에도 힘든 삶을 살고 친구에게도 손절 당한 게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그러는 것이며 사회만의 탓이 아닌 본인의 성격 탓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나마 자식이 생기면서 조금 누그러지긴 했으나 그럼에도 좋은 성격은 아니다.

권력욕보다는 시대 상황을 아는 사람이다. 시대상황을 모를 리 없기에 입헌군주정을 궁극적으로 추진하는데 이것 때문에 친아버지 이하응과 척을 지게 된다. 후속작인 대통령 각하 만세의 주인공 조지원은 전 세계를 불행하게 만들어서라도 한국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숭배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반면 이형의 목적은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세우고 거대한 대제국을 일궈야만 자신의 후손들이 황위에서 쫓겨나지 않고 끝까지 국민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에 어떻게든 그에 걸맞은 업적을 세우려고 한다.

우생학과 관련돼서는 정말 신랄한데 원래 부정적인 것은 둘 째치고 민족이 잘나서 여기까지 온게 아니라 내가 잘나서 여기 까지 올 수 있었는데 의미가 있냐고 대놓고 깔 정도.

4. 능력

사학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어떤 시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다 기억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정치나 외교, 전쟁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어떻게든 이루어내며, 본바탕이 현대인인 만큼 과학기술과 사회제도를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개발하고 도입할 수 있다는 점이 독보적인 장점이다.

군신[5]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다. 7화의 내용대로 평화기의 폭군의 자질이 난세를 만나 명군으로 탈바꿈했을 만큼 압도적인 전과를 뽐낸다. 즉위하자마자 청나라에게 시비를 걸어서 제1차 조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속성으로 배운 승마술과 사격술, 조러전쟁 직전에 익힌 마상검술로 크나큰 활약을 했다. 비단 일신의 무력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나간 전략전술로 친정한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하였으니 그의 활약상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군인들에 이어 군부 전체가 광적인 충성을 보내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중세시대에 초원을 달리던 몽골 제국의 칸으로 살았으면 잘 살았을 텐데 21세기에 살았기에 불행한 삶을 살아온 거라며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주인공도 겁 없이 적에 맞서고, 말 위에서 대군을 호령하며 그들과 술잔을 나누어 마시는 카칸의 자질을 타고났다며 자평하는 면이다.

5. 기타

이 소설의 제목은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지만 제목과 그 실체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일단 주인공인 이형은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폭군일지는 몰라도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군주는 전혀 아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묘호는 대한 고황제 고조이며 고종이라는 묘호는 이하응에게 붙였다.


[1] 조선군이나 청군이나 둘 다 개판인 건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군대가 조금 덜 개판이기도 했고 홈그라운드+친정 버프를 받아 조선이 이긴 것.[2] 고문단의 루이 베르그송 대령은 이런 이형의 모습에 감동하여 일국의 왕이 병사의 옷을 입을 수는 없다며 급한대로 대령인 자신의 옷을 벗어 입게 해준 후에 따로 대원수복을 주문한다.[3] 아닌 게 아니라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가 전무후무한 흥행을 한 이후로 한동안 또라이 주인공이 범람하였다. 그리고 모두 처절하게 실패했고.물론 같은 작가신작빼고.[4] 이때 외친 '끼리릭, 끼릭, 끼효오옷!'은 이 작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작품을 대표하는 대사가 되었다.[5] 즉위와 동시에 그 조그마한 조선으로 청과 싸워 이기고, 천하무적인 줄만 알았던 서역의 강성한 열강, 노서아를 쓰러뜨리고 마침내는 이홍장과 중원의 천명을 두고 다투어 마침내 중원을 제패하였다. 만일 그것이 다른 이름난 장수들을 부려 얻어낸 성과였다면 역시나 그 명성은 빛을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달랐다. 즉위 이후로 지난 7년여간 쉴 새도 없이 이어진 수차례의 전쟁에서, 황제는 매번 몸소 전장에 나서 군을 이끌며 그의 적을 패배시켜 왔다. 단 한 차례의 패전도 없었으며, 하다못해 무승부나 아슬아슬한 승리 같은 것도 없었다. 매번 전장에 나설 때마다 대승.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 끝에 제위를 꿰찬,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군신이라고 불릴법한 젊은 황제였다.
167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