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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19:39:30

이하응(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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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평가
3.1. 이형과의 관계

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로 이형의 아버지이자 섭정.

2. 행적

상당한 권력 중독자적인 면모를 보이며, 왕이 되자마자 자기 뜻과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아들놈 덕에 뒷골을 부여잡게 된 불쌍한 아버지. 알맹이가 뒤바뀐 아들내미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성질머리를 자랑한다. 아들에겐 정이 없었지만 원치 않을 만큼 자기를 닮은 면이 있는 아들에게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경쟁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3년 내로 근대화를 대강 해놓고 신식 군대를 창설해야 하는 조선의 사정상 우수한 행정가는 반드시 필요하기에 이형을 대신할 욕받이로서 거칠게 부려 먹히는 중.

초기부터 이형과 이런저런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키지 않는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형을 자신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점차 막 나가는 그의 행태에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이후 이형이 청과 대항할 것을 결정하자 분노하면서 이형과 함께 하기로 한다.[1] 본격적으로 제1차 조청전쟁이 발발하자 섭정으로서 한성을 위임받지만 김좌근이 반역을 일으킨 탓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결국 김좌근에게 끝까지 대항하다가 감금을 당하게 되고 이형이 도성으로 돌아와 김좌근을 처리하고 나서야 풀려난다.

이후 토지 개혁과 군제 개혁 때 계획은 이형의 주도이지만 표면적으론 이하응이 전면에 나섰고, 그 결과 유림계 최종 보스 최익현의 상소를 받은 이형이 일단 잠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양반 지주들의 결정적인 실책[2]와 농민들의 폭발적인 지지(+잔반들의 지지)로 곧 복귀.

이형이 망나니가 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가정교육은 완벽했다며, 아마도 타 먹인 한약이 잘못되었거나 태조 대왕의 피로 인해 망나니가 된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같다. 여담으로 자식 잘못 키웠다고 금위대장 허계를 비롯해 궁인들에게 눈초리를 받을 때마다 '차라리 진짜 나 때문에 저런 거였으면 좋겠다...' 라고 한탄한다.[3] 그래도, 주인공이 만주에서 대결한다고 오래 외유를 하고 있는걸 고맙게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사실상 조선의 모든 실무를 자신이 도맡아 하게 되었으니, 직위만 국왕이 아닐 뿐 실상은 국왕 행세를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여담으로 아들하고 너무 성격이 닮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비간섭으로 결과만 통보하는 암묵적인 규정이 있지만 실상은 서로가 무슨 짓을 할지 너무 뻔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작중 언급에 따르면 주인공 입장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이거 치사한데 싶으면 흥선군이 하고 있을 짓이고, 아버지 입장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다 싶으면 주인공이 하려고 하는 일이기 때문.
이형이 미래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군부의 철저한 충성,[4] 우호적인 해외 공사들을 바탕으로 외국과의 대화 루트와 행정부의 상당 부분을 쥐고 나라를 컨트롤한다면, 이하응은 보부청을 이용한 국내외의 정보망과 고종보다 더 뛰어난 한문 문해력[5]을 바탕으로 한 행정 실무에서는 그에 못지않은 실권을 쥐고 있다. 다만 행정계획과 예산안 등은 대부분 이형이 결정하고 통보한다면 이하응은 그것을 실행하면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하응의 수족인 보부청은 이하응이 잠시 실각했을 때 보부청을 익문사, 중앙은행, 상공청으로 나누었기에 이하응 맘대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이하응은 정보기관인 익문사를 주로 통솔하는 편.
무진 개혁에서 이형이 입헌군주제를 입법하자 격분해서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운다. 애당초 전주 이씨 왕가의 절대 집권을 바라는 이하응과 장래 절대 군주정은 유지될 수 없음을 아는 이형의 공생은 언젠가 끝날 일이었던 것. 박규수를 필두로 한 유학생들이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기 시작했기에 이하응의 수구파는 끝까지 대립각을 세우려 든다면 축출될 운명이다.[6] 여하튼 이하응은 숙청을 회피하기 위해 서방 열강들이 국내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 식민지를 만들어 불만을 잠재운다는 말을 박규수에게 듣고 식민지 확장론을 주창하지만 이형은 현재 식민지를 유지할 해군이 없다면서 거절한다. 하지만 바로 영국 공사관을 통해 군선을 주문하며 그의 말을 어느 정도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7]

대만에서 조선에 왕족을 청하자 자신의 맏아들이자 이형의 형인 흥친왕 이희를 천거하기도 한다. 결국 조선에 남아봤자 뒷방 늙은이 신세를 면할 수 없다 판단하고 자신의 세력을 일부 데리고 대만으로 떠나 새로이 성립된 대만 왕가를 보좌하기로 한다. 가기 전에 스스로 세력 정리를 하면서 이형의 수고를 덜어준다. 이하응은 이형이 분명 걸물이긴 하지만 너무 저돌적이기 때문에 언젠가 큰 실수를 할 것이고, 그때는 자신의 필요성을 실감할 테니 반드시 돌아와서 권력을 쥐겠다고 다짐하지만...[8]

그러나 독자들은 지금껏 서역과 접촉한 적도, 외국에 나가본 적도 거의 없는 이하응[9]이 열강의 각축장이 된 대만에서 저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부정적.[10]

아니나 다를까 이형이 범아시아 조약기구를 만들자 대한제국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경계한 영국에게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참가해서 자신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이 아닌 명령으로 받는다. 이후, 주인공과 불편한 재회를 한 상태에서 강남 쌀값 사태 같이 자신이 겪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영길리 혐성에 대한 탄식을 쏟아부었다. 어떻게든 영길리 혐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주인공 왈 '20년 뒤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일단 주인공이 미래지식을 동원해서 약간 밀어낼 수단을 하나 떠올렸지만, 주인공의 존재로 인한 나비효과로 유럽에 폭풍이 몰아치게 된 터라 어떻게 될지는 모를 판.

추석을 맞아 열린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첫 회담에는 대만 왕국의 대표로 참석했는데, "대만 왕국은 강남 사태에 대해 할 게(쓸 힘이) 없으니 나랑 같이 부용정에서 고량주나 마십시다."라는 투로 놀려대는 이형에게 "부용정 연못에 집어던져 줄까요?"라고 응수하는 등 아직 자신이 노쇠하지 않았음을 보이려 한다.

천명 대전 이후 난징에서 이형과 재회한다. 한청 연합군 vs 중화제국의 전쟁에서 한청 연합군이 승리를 거둬서 이형이 남경으로 행차하게 되자 오래간 만에 재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때 대한제국이 승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을 지배하지 않고, 오히려 중원을 여러 개로 분할하려는 이형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불만을 표출한다. 이에 이형은 어차피 대한제국이 중원을 차지해봤자 중원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들은 대한제국 황실을 동이의 오랑캐 왕조라고 멸시할 테니 기를 쓰고 쫓아내려고 할 것이며 설령 그렇게 안 된다고 하더라도 대한제국이 중원에 동화되어 그들의 부속품이 된 채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체급을 키우고 중원을 줄이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중원이 천하의 중심일 거라고 정확히 지적한다.

그러나 본인은 설령 언젠가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200년이나 300년 뒤의 얘기이며 하다못해 몽골조차도 100년은 버텨냈으니 중원의 천자로 등극하는 것이 이형에게 도움이 될 거라 반박한다. 그러나 이미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형의 결심은 확고하였고,[11] 아들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하응은 광동, 광서, 운남 세 개의 지역을 각각 따로 왕국으로 떼어내 9개로 만들고 오로지 대한제국 황족, 혹은 대한제국의 황녀와 결혼한 부마만이 그 번국의 왕을 삼을 것이며, 본래 주나라가 다스린 낙읍 지역은 대한제국 직할령으로 다스릴 것[12]이란 이형의 말에 이하응은 이형의 서형인 완은군 이재선을 왕으로 봉해달라는 부탁했고, 이에 이형은 이재선 외에도 아예 놀고 먹고 있는 일가 친척들인 덕안군 이재덕, 풍선군 이한용, 완림군 이재원, 완연군 이재긍, 인양군 이재근 등을 9개의 번국의 왕으로 삼게 된다.

그러다가 이형의 부재중에 대한제국군을 통솔하려다 한성근에게 턱도 없는 소리 말라며 쫓겨난다. 한성근은 이하응을 감시하다 선을 넘기면 제거할 생각도 하는 중.

그리고 중국인 선비를 뒤에서 사주한 배후인가 싶었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13] 오히려 이하응은 이형의 계책을 눈치챈다.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2차 회맹으로 이형을 만난 이하응은 저번에 이형의 내심을 들었음에도 그를 "중원의 패자가 되신 것을 경하드린다."라며 전주 이씨의 천자 즉위에 미련을 보인다. 그리고 이형이 이를 거절하자, 영국 공사가 전해준 동치제를 이용해 전주 이씨의 강남 통치권을 영원하게 만들고 천명을 움켜쥘 계략을 꾸민다. [14] 또한 황후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으며 대한제국 황실에서 황후의 영향력과 지지세력이 강력함을 실감하고 분수에 넘치는 배필이라고 웃는다. 궁중 내부에 숨은 황후의 수족들이 분명 자신과 원세개의 대화도 일러바치겠지만 어쨌든 전주 이씨의 천하만은 영원할 거라고 착각 웃는다.

얼마 후, 이형의 예측대로 영국의 국채 가치가 크게 떨어지자 이하응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금괴 십만 돈으로 영국의 국채를 매입하기 보다는 세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한국으로 귀환하기 위해서 재산을 축적하려고 한다.[15] 그런데 하필이면 영국,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대만에 이권을 지닌 열강이 만든 주식회사인 포모사[16]를 통해 토지를 매입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포모사의 바지[17] 대표인 로베르트는 그 땅을 어디서 마련했냐면 이미 반쯤 소멸한 대만의 자영농들에게서 강제로 빼앗아서 얻어낸 것이다. 결국 이 때문에 대만의 국왕인 흥친왕 이희와 대립을 하게 된다. 이희는 어떻게든 주식회사 포모사에 맞서서 백성들과 대만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희는 비록 외국인이긴 하지만 대만인들을 진심으로 자기 백성으로 여기고, 자신 또한 대만의 진정한 국왕으로 인정받길 원하여 노력했거늘, 그것을 이하응이 수포로 만든 셈. 여담으로 토마스 공사를 통해 이하응이 땅을 사서 투기중이라는걸 알게 된 이형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라며 혀를 찼다. 덤으로 이형에게 설명중인 토마스 공사도 속으로는 '현 시점에서 가장 귀중한 현물인 황금을 고작 식민지의 농토를 사는데 쓰는 것 보다는 차라리 서양의 주식을 매수했으면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거다'라며 확신하고 있었다. 돈이 땅에 묶이게 되면서 조선으로 돌아올 기반은 현 세대에는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18] 또한 이형은 완전히 안동 김씨하고 똑같은 짓을 한다고 어이없어했다.

결국, 이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던 이형과 박규수 총리, 황후가 의논하여 꾸민 여론공작 결과, 최익현의 사설 형식 상소를 시작으로 수천 명의 유생들이 눈 오는 겨울날에 황궁 앞에서 흥선군 탄핵에 대한 주청을 올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잘못을 안 돌리고 흥선군만 표적으로 삼는 것을 확인한 이형이 탄핵 주청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형식으로 마무리하면서 대한제국의 국서를 받은 이희에 의해 대만의 별궁에 유폐당한다. 사실, 별궁이란 수준도 아닌 저택이고 대만에 유폐됐다는 점에서 흥선군에게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도 없을 듯. 그가 수탈한 토지는 모두 대만 왕실에 귀속되었고, 이희는 민심을 얻고자 땅이 없는 농민들에게 소작을 돌리도록 하되, 세금을 면해주기로 한다. 그렇지만, 그의 권력욕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어서 안동 김씨 치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실의에 빠진 노인네 연기를 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이형이 미국의 공화당 집권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려다가 가지 못하게 되자 대신 카네기와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효도관광을 빙자한 해외추방 사실 아들 아니었으면 이하응은 정확히 보름 뒤 며느리의 손에 의해 정치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영원히 은퇴 할 뻔 했는데 아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아들과 며느리가 참으로(불속성)효자

그렇게 마지못해서 온 미국이었지만 수천의 황인들이 이하응과 대한제국을 연호하는 모습에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전주 이씨의 황실을 일으키기 위해서만 신경을 썼을 뿐, 정작 하늘의 뜻과 같은 민심을 읽어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다. 나아가 이형이 왜 그렇게까지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는지 깨달은 건 덤.

이에 이하응은 자신을 연호하는 백성들의 곁에 남아있겠다는 생각에 같이 동행한 카네기에게 서부에 있겠다는 뜻을 밝혔다. 심지어, 서부에 있는 대한제국 백성들[19]을 돌보며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는 다짐하며 미서부에 거주하는 황인들에게 일자리 알선을 해 달라며 사업수주를 요청까지 했다.

그런데, 미국 언론에서 혹시 조선 황가는 사실 숨겨진 기독교인 아닌가? 라는 기사가 뜨니까 미국의 황인들을 위해서라면 천주교고 뭐고 써먹겠다는 일념으로 기사가 난 다음 날, 황인들과 다 같이 인근의 대형 장로교 교회를 찾아가서 합동 세례식을 받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역관의 초월통역오역[20][21]과 그 오역을 듣고 착각한 미국 언론들의 설레발+특종경쟁을 위한 사진조작등이 곁들여지면서 단숨에 이하응은 동방의 이교도 국가에서 평생 참된 신앙을 숨겨온 성인으로, 그리고 이형은 현대 동방 십자군의 황제라는 감투가 씌워지게 된다.

그후 미국에서 검계라는 조직을 편성하면서 현지의 갱스터들과 맞서면서 새크라멘토의 성자 겸 소수민족의 아버지가 되어 유유하게 살아가던 중에[22] 대한제국 황태자 이원철을 만나게 되고, 아들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한 끝에 다시 대한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898년[23]에 병으로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병문안을 온 이형과의 마지막 독대를 하게 된다.
이하응: 황상께서는 사실 미래를 훔쳐보는 재주를 지니신 것 아니오?

이형: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오?

이하응: 역시나, 하고 웃어넘어기리다. 항상 의문이었지. 내가 저 아이를 분명 어렸을 적부터 봐왔을 텐데. 젖을 먹이고, 걸음마를 하고, 옹알이하는 걸 곁에서 보면서 길렀을 텐데. 내가 저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없을 텐데 왜 저 아이가 낯설게 변한 걸까, 하고.

이형: 궁에 들어오는 바람에 마음고생이 심해져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소. 혹은, 왕좌에 앉고서 헛바람이 들었다던가.

이하응: 그래, 그랬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소. 어차피 왜 변하셨는가는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내게 무엇보다도 의문이었던 건 왜 변하셨는가, 하는 게 아니었소. 왜 이 늙은 놈도 모르는 걸 저 조막만 한 아이가 알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 더 늙기 전에 이만 비결을 가르쳐주시겠소?

이형: 사실은 내가 미래에서 온 귀신이라오.

이하응: 그럴 줄 알았지.

아들 아니, 귀신이 35년 가까이 숨겨왔던 비밀을 듣고, 어쩐지 속이 후련해진 듯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 이하응은 유전적으로는 친아들인 이형이 갑자기 뒤바뀐 것을 권력이 지닌 마성의 힘 때문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아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비로소 마음을 놓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도 그렇듯이 황실의 무한한 홍복은 이하응의 가장 큰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인 줄로만 알았던 귀신이 계속 대한제국을 다스리는 한, 제국의 영광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고.[24]

3. 평가

일단 권력에 대한 야심이 크긴 하지만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데, 이형이 대외적 관계를 수립하는 동안 대내의 문제를 책임진 게 이하응이기 때문. 초기의 이형의 개혁에 가장 힘을 보태준 것도 다름 아닌 이하응이었다. 특히 이형의 즉위 초기에만 해도 반란으로 멸문한 안동 김 씨 일가를 제외해도 유림들과 세도가의 힘은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었는데 이들의 비난을 정면에서 맞는 욕받이이자, 반란을 유도했다가 단숨에 팔천 여명의 수급과 재산을 거두어 왕실의 힘을 증강시키는 작전에 그의 조력이 컸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형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식견도 가지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나름대로 능력자였던 것을 반영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섭정으로서도 개혁가로서도 괜찮았지만 이하응은 결국 왕의 밑에서 섭정이자 재상으로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강력하고 영원한 전제군주정을 원한다는 시점에서 이형과는 성격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야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권력 때문에 아들과 적대하며 나라의 발전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더 중시하던 태도를 보여왔는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열강의 개로 전락해서 오히려 대한 황실의 종친이란 직위를 방패 삼아 기생하는 모양새[25]가 나는 바람에 독자들의 평가는 더없이 추락했다. 게다가 미리 속내를 듣지 않고 가입시켜 줬다면 아시아 조약기구를 등에 업고 영국과 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26] 비책을 알려준다니 그걸 훔칠 궁리부터 하는 등... 결국 그가 원하던 영국의 추방은 그 이상의 재앙과 함께 밀려오게 되었다.

그나마 원 역사와는 달리 일을 저지를 건더기는 보이지가 않으니 [27] 이대로라면 대만에서 그냥저냥 늙어 죽을 듯 평가는 박하겠지만 원 역사에서처럼 을미사변 가담자 같은 불미스러운 딱지도 없을 듯... 했으나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대만으로 쫒겨났음에도 이형의 계획과 정반대인 영국 공사가 전해준 동치제를 이용해 전주 이씨의 강남 통치권을 영원하게 만들고 천명을 움켜쥘 계략을 꾸미고 있다.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정 축재를 일삼고, 대만인들을 핍박하게 되었으니 이를 통해 이하응 본인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꼴이 되었다.

다만 이형은 이하응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 분야에 대해선 절대 믿고 맡기지 않는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당백전이라는 대참사를 일으킨 원흉이 바로 이하응이기 때문이다.[28] 아무리 골머리가 터져도 자신이 직접 경제를 담당하려 하지 이하응에게 맡기지는 않았다. 실제로 세계 대공황 시기에서 이하응이 대만에서 모은 황금으로 땅을 사는데 집중해 버린 탓에 스스로 자신의 돈을 대만에 묶어버리면서 원한까지 사 버린걸 보면 올바른 선택이다.[29]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민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유자라는 것을 보면 당연한 일. 그러면서도 그 특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바탕으로 개신교 세례까지 받는 유연함을 보여준다.[30]

결국 이런 수완과 능력을 토대로 미국 개신교의 지지[31] + 미주 아시아인들의 대부 + 카네기와의 영합[32] + 대한제국 황제의 지지[33]를 얻어 큰 권위와 권력을 쥐게 될 기회를 얻게 된다.

3.1. 이형과의 관계

'피만 이어진' 남보다 못한 아버지로 지금까지의 행적들을 보면 허계나 박규수가 이하응보다 더 이형에게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육체가 아니라 정신과 영혼만으로 따지면 빙의된 이형의 진짜 아버지도 아니다.[34] 하지만 이형과는 누구보다도 서로의 속내를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아들에게 '정이 없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아예 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중 계속해서 자신이 '뭘 잘 못 먹였나?, 잘 못 가르쳤나? 내 핏줄이 맞는가?' 하면서 혈연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에게 열등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진단 시점에서 남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모든 것에 자신의 권력욕이 우선한다. 아들의 비범한 면을 인정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이형을 깎아내리며 자신이 없으면 조선은 안된다고 착각하고 있으며,[35] 보부청의 경우처럼 이형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움직일 만한 세력을 손에 넣고 싶어 한다. [36] 이형은 인간 심리에 둔감함에도 역사적 지식만이 아닌 자신의 통찰력만 가지고도 이하응의 속내를 간파하고 있었다. 인간의 계산적인 면모와 어두운 속내를 간파하는 것에 능한 이형다운 면.[37]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있어서, 이형이 미제 권총을 가진 암살자에 의해 죽을 뻔했을 때는 이하응이 암살자를 뒤에서 사주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사실은 다른 제3자가 누명을 씌운 것으로 밝혀져 최소한 아들 암살하고 권좌 차지하려는 막장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자신의 아들의 대단함을 나름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38][39] 그러나 자기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는 여전해서 아직도 언젠가 이형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다시 부를 것이란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대만에 밀려나서 온갖 고생을 다하고 이형의 천명 질서관 파괴 선언에도 여전히 천명이란 구시대의 권위에 집착하며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 사실상 반역에 준하는 짓까지 계획 중인 것, 그리고 대만에서 부정축재를 일삼아 본인이 그렇게나 증오하던 안동 김씨, 영길리와 다름없는 행위를 저지르며 평가는 다시 폭락했다. 애당초 이하응이 그들을 증오한 것도 권력지향적인 성품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나와 전주 이씨가 지배해야 하는 걸 빼앗아간 자들에 대한 증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아들을 폭군, 패왕으로 치부하면서 정작 자신의 성품이 실제 역사의 서초패왕인지라 결말이 비관적이다.

행적들을 총평가해보면 이하응은 천명에 근거한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문제는 천명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상당히 소중화적인 모습까지도 보인다. 제일 앞 민족에 한족 대신에 새로이 떠오른 대한제국을 집어넣었을 뿐 그런 면에서 보면 마치 일본 제국 시절의 모습과 다름없는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고 쳐도 과언이 아닌데 이형의 행보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안중근동양평화론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일본 제국의 아시아주의, 대동아공영권과도 좀 다르다.(정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아시아주의에 가깝긴 하나 원 역사대로 일본이 다 먹는 것은 아닌 나름대로 지분을 양보하며 대신 대한제국이 최대 지분을 가지며 주도적으로 끌고가는 정도다.

물론 이는 일본 제국의 실패를 알고 있는 이형이 일부러 다 먹을려는 태도 대신 일부 지분을 양보하는 대신 대한제국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지분을 지키려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만 일단 이형의 행보는 영토확대보다는 패권유지에 있는 듯하다. 아시아의 각국이나 세력들을 대한제국에 맞설 수 없는 수준으로만 만들어놓고 존속은 시켜주는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속셈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하응이 어찌저찌해서 이형 대신에 대한제국을 이끌게 되었다고 치면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특히 대한제국은 기반이 일본 제국보다도 영 좋지 않아(일본 제국은 그나마 서구화된 인물들이 많았지 대한제국은 말 그대로 이형 1인의 역량에 따라 유지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예 각지역에서 분리주의가 판을 쳐 고종 즉위 이전의 조선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현재 모습을 보면 이하응이 변하거나 현 정세가 이하응에게 유리하게 급변하지 않는 이상은 본인이 연기하고 있는 그대로 '실의에 빠진 늙은이'로 살게 될 수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형은 이하응이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했을 뿐이지 능력은 있는 걸물이라는 건 인정한다. 이하응을 미국으로 보낸다고 결정을 내리기 전, 혹시나 이하응이 정신 못 차리고 뻘짓거리해서 미국인들의 비웃음거리라도 된다면 찝찝할 거라고 생각하며, 미국 방문을 계기로 시야가 좀 트여서 생각이 바뀐다면 좋겠지만 만약 미국에 다녀와서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린다면 그 때는 나름대로 이하응을 위한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해 줄 생각이다.

그렇지만, 미국 순방을 계기로 이형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개심하고는, 미국 서부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며 현지의 대한제국 출신 백성들을 보호하는 데 힘쓰기로 결심한 터라 이형 내외로서는 그를 후원하게 되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은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하응이 죽은 후 마지막 반전이 있었으니, 사후에 그는 이형에 의해 황제로 추숭되면서 고종이라는 묘호를 받는다.[40] 시호 역시도 원역사의 고종과 같은 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統天隆運肇極敦倫正聖光義明功大德堯峻舜徽禹謨湯敬應命立紀至化神烈巍勳洪業啓基宣曆乾行坤定英毅弘休壽康文憲武章仁翼貞孝太皇帝).

즉, 이 소설의 제목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주인공폭군도 아니고, 묘호가 고종도 아니고, 황제국이니 대왕 또한 아니게 된 아이러니한 엔딩을 맞이한 셈이다.


[1] 이때 이형도 이하응도 만약 일이 실패할 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2] 농민들은 5년만 소작하면 자기 땅이 되기 때문에 양반 지주들이 한양으로 올라가려는 걸 입대 반대 때문에 가는 것보다 토지 분배를 반대하러 간다고 믿었다. 물론 이런 소문을 부채질한 건 이하응이 이끄는 보부상들. 게다가 그걸 막던 농민들을 양반 지주들이 조금 과하게 손을 썼는데, 이게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면서 살이 붙어서 누구는 죽었네, 누구는 사람 병신 되었네.라는 식으로 퍼지면서 단숨에 민심이 폭발했다.[3] 나중에 이형이 만주의 카칸이라고 선언하며 청을 완전히 뒤집어놓으니 3국 공사들에게까지 '자식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라는 의심을 사게 된다. 정작 본인은 그런 시선에 억울하다며 한탄할 뿐.[4] 대한제국의 군부는 이하응이 국내에서 국왕 행세를 하던 당시에도 군부를 포섭한다는 생각을 못할 정도로 이형에 대한 철저한 충성을 보이고 있다. 무진 개혁 당시 이하응이 입헌군주제 관련으로 이형과 분쟁할 당시 이를 막기 위해 이형을 암살하거나 쿠데타라도 벌이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눈이 돌아간 군부에 의해 도륙 날 거라고 생각할 정도다.[5] 아직까지는 한글이 공식 언어로 자리잡지 못해서 상주문 등의 결재서류를 한문으로 기록해서 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골치 아픈 거 질색이라며 한문 공부를 놔버리고 친정을 이유로 밖으로 쏘다니며 망나니 짓만 하고 다닌 통에 흥선군이 오히려 국정 운영 공부를 하는 꼴을 당했다.[6]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이하응 본인이 자신이 아직 목숨을 붙어있는 걸 보고 아직 이형에게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여길 정도로, 이형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었다.[7] 다만, 이후 일본 및 유구 문제로 영국과 벌인 회담에서는 '철저하게 대륙(러시아)의 견제에만 집중하며 바다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겠다.' 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점이나 그렇게 구입한 군함이 고작 포함 몇 척과 호위함 한두 척으로 원양항해 능력이 없는 배인 걸 감안하면, 이형에게 식민지 쟁탈전에 끼어들 의사가 없는 게 확실하다. 기본적인 해안 방어를 위한 함선인 듯.[8]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하응이 이형과 대한제국에 다시 중용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근대화에 크게 반대하지 않고 일정 부분 필요성을 인정하는 이하응이라 티가 덜 났을 뿐, 결국 이하응도 전주 이씨의 유교적 전제군주국이라는 과거의 조선을 원하는 인물로서 궁극적으로는 입헌군주정을 지향하는 이형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인물이기 때문. 괜히 이하응을 수구파라고 하는 게 아니다.[9] 이하응이 만난 서구 열강들은 누구보다 열강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환생 고종을 거쳐 순화된 정도에 불과하다.[10] 당장 미래지식이라는 치트와 주인공 보정까지 조금 받은 저 빙의 고종조차도 극동의 노랑 원숭이 처지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몇 번에 걸친 목숨 건 도박에서의 승리로 사실상 최단코스를 밟았음에도 몇 년이나 걸렸다. 비록 대원군이 조선을 정상화한 실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선의 사정을 꿰고 있으며, 전제군주국의 왕이 전적으로 뒷배가 되어줬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감안하면, 현지 사정을 처음부터 알아봐야 한다는 상황에 왕에 대한 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지 사정, 열강 혐성을 상식적인 수준으로 거슬러줄 방파제가 없다는 외교 상황이라는 3중고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기댈 만한 건 결국 대한제국뿐이지만, 대한제국은 바다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천명한 상태인 데다가 이하응과 그 패거리는 사실상 대한제국에서 내쫓긴 거나 다름없으니 실질적인 지원은 없을 것이 뻔하고, 그런 상황인 건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금방 알 수 있으니 자연히 열강에게 제대로 된 취급을 받을 리가 없다.[11] 당장 중원을 차지했던 민족들(흉노, 강, 저, 선비, 갈, 거란, 여진, 몽골, 만주) 중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건 강족, 만주족(이쪽은 그나마 여진에서 계승되었다.), 몽골족 정도고 그 중에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건 강족과 몽골족 또 그중에서 독립 국가인 것은 몽골족 뿐이다. 심지어 몽골족마저 소련의 개입으로 자체적인 공산 국가가 탄생해서 그런 면이 있지 자체적인 역량으로는 어려운 일인지라 북쪽의 티베트를 찍을 뻔했다. 흥선군 말대로 100~300년 동안 패권을 유지한다 친들 그 100~300년 뒤에는 몽골족이나 여진족처럼 쫓겨나면 다행이고, 흉노 저, 선비, 갈, 거란처럼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그나마 거란은 한동안 유지되기라도 했다.) 아예 한족에 흡수될 수 있다.(즉, 한민족은 말 그대로 죽 쒀서 장기적으로는 한족에게 갖다바친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대한제국은 한민족 최후의 국가가 되는 것이고.) 그 점에서 보면 흥선군은 근시안적인 발상을 한 셈.[12] 황하와 장강 사이에 있는 화중 일대에 둔전을 돌리기 시작한 이상 중원의 중심을 자신이 직접 통치하여 청나라가 다스리는 화북과 한족이 있는 화남의 완충지대를 만들고, 반항하는 무리들을 신속히 토벌하는 등 중국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인프라를 조성하려는 듯하다.[13] 사실 너무 티나게 이하응을 몰아넣은 묘사도 있었는 데다가 객관적으로 봐도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형이 죽으면 군부에서 들고일어날 수 있기에 이하응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게 아니다.[14] 당연히 이형에 대한 반역에 준하는 중죄다. 이형이 그려낸 큰 그림을 사적인 욕망으로 망치는 셈. 애당초 이형이 절대 왕권에 관심 없이 경제, 외교, 문화를 이용해 아시아의 질서를 통치하려는 계획을 전혀 이해 못했다.[15] 그나마도 신문을 통해서 금값이 치솟고, 이형이 영국의 국채를 사들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늦게 정보를 얻은 것이다.[16] 단순히 회사가 아니라 대리통치용 국영기업이다.[17] 이름 뿐인 사장이라고 대놓고 언급되었다.[18] 어떻게 보면 구시대적인 발상에 묶인 이하응다운 실패기도 하다. 세계 경제는 금본위제니 은본위제니 하고 돌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땅에 투자하면 된다는 발상을 하고 있으니... 그것도 그게 그냥 지방에 짱박혀서 지내기 위함이라면 모를까 더 큰 목적이라면 어림도 없다.[19] 정확히는 미주 지역으로 이민 온 중국인 노동자들.[20] 역관이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고 기독교 종파개념을 잘 몰라서 이하응이 "미리견이 천주의 나라인가"라고 물었는데 천주교를 "Catholic"이라 하지 않고 "Christian"이라고 통역한다거나 했다. 여담으로 작중에서도 분명 오역이라고 언급되었으나, 오역이 겹치다보니 초월통역이라고 언급된다.[21] '오역'인 부분도 있지만 '오해'인 부분도 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명칭 부분에 대해서는 문서 참고.[22] 이 시점에서 자신이 생각해온 것과는 다르지만 아주 천하가 전주 이씨의 천하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이형의 치세에 더 이상 반감을 가지진 않게 되었다.[23] 원 역사에서 흥선대원군이 사망한 해다.[24] 어떻게 보면 왕실의 가장 큰어른이었던 그 다운 면으로 왕실의 큰어른인 만큼 지금 내 눈앞에 있는게 진짜 내 아들인지보다는 그가 내가 속한 왕실을 이어가고 번영시킬 수 있는지가 더 크게 중요한데 어쨌든 미래를 훤히 내다보고 있는 자가 왕실의 수장으로 있다면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왕실이 보전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 '미래'가 어디까지를 의미할지는 몰라도 그 수준을 보면 근미래가 아닌 상당한 미래(적어도 2, 3세대 정도까지도 내다볼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니 그가 죽은 뒤의 일도 다 예상해두고 준비해둘 것이니 이하응 입장에서는 더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진 것이다.[25] 영국이 이하응에게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참가하라고 명령을 한 이유가 바로 이하응이 이형의 아버지인 만큼 단호하게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26] 이미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만에 대한제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이 대만에 파고들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을 정도.[27] 그러려면 이형에 대한 지지가 낮아야 하는데 이미 대한제국 사람은 이형을 확고히 지지하니 무리다.[28] "땡전 한 푼 없다."는 관용어의 '땡전'이 바로 당백전이다. '(매우 저급한 돈인) 당백전 한 닢조차 갖고 있지 않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29] 토마스 공사는 차라리 주식을 샀으면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텐데, 언제 개발될지도 모르는 땅을 사서 언제 돈을 벌어 조선으로 돌아오겠냐며 터무니 없을 정도로 근시안적인 생각에 혀를 찼다.[30]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분명 비판받을 일이지만 평생을 미국 서부에 머무르기로 결심한 이하응으로서는 오히려 커다란 교회의 권위를 빌려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기 때문에 세례를 받아들였다.[31] 프레스터 존의 전설과 연관되어 자그마치 성자로 격상되어 불린다.[32] 카네기가 미 서부에 강철의 제국을 세울 토대를 제공하는 형태인지라 더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엔간해선 깨질 일이 없을 듯하다[33] 이를 통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앞으로 영프 아프리카 식민분쟁으로 촉발될 2차 세계대전을 미국의 중재로 막으려는 그림을 그리는 이형 입장에서는 강력한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34] 때문에 친모나 친형, 특히 친형 이희(이재면)에 대해서는 그가 친일파였던 것을 알기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코웃음까지 치는 장면까지 나왔다. 즉 혈육에 대한 정 같은건 차라리 아내인 소양공주와 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라면 모를까 친가 쪽과는 그런게 없고 기대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어머니인 부대부인 민씨와는 원만한게 용할 뿐이다.[35] 냉정하게 말해 이형에게 이하응의 필요성은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중앙권력을 형성한 시점에서 다한 거나 다름없다.[36] 이는 반은 성공해서 보부청의 인력은 이하응이 독자적으로 부릴 수 있었지만, 이형이 이하응이 낙향한 사이 더 체계적이고 세분화된 3개 기관으로 나누어서 통제권을 약화시켜버린다. 이 일을 이하응이 없을 때 속전속결로 해치워버렸단 점에서 이형 역시 이하응을 전혀 믿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37] 이형은 소양공주나 부대부인 민씨 같은 아내와 모친처럼 정을 드러내는 이들은 오히려 자신 쪽에서 당황하곤 했다.[38] 실제 역사에서는 막 나가서 아들 폐위시키려고 아주 혈안이 된 듯한 행보를 보였다. 그것과 비교해보면 여기서는 나름 나은 셈. 불만은 가지고 착각을 하고 살고 있긴 하지만 탈법적 행위는 안 하고 있으니까[39] 다만 이하응이 인정하는 이형은 어디까지나 이하응 자신이 받쳐주는 이형이다. 다시 말해 이형 개인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으면 실패할 인물로 보고 있다는 것. 이점은 대만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변하질 않는다.[40] 헌데 사실 종법질서상으로는 의외이긴 하다. 일단 호적상 고종(이형)은 효명세자의 아들로 입적되어 이하응과는 혈연적 관계만 있고 족보상으로는 남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종법질서상 효장세자가 추숭되면 추숭되었지 이하응은 추숭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도 현실의 흥선대원군은 흥선헌의대원왕이 되긴 했지만 이마저 대한제국이 선포되며 따라 올라간 것에 불과하다. 즉 어떻게 보면 고증오류. 물론 굳이 구태여 보면 추숭이라는게 왕 의중에 달린 것인 만큼 억지로 고집부려가며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근대화로 종법질서가 약해져가고 있으니 종법질서상에서의 아버지보다 혈육으로서의 아버지를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올린다면 아주 말도 안 되는건 아니다. 실제로 명나라에서도 방계혈통으로 즉위한 가정제홍치제의 양자로 입적된 것을 근거로 황위를 이은 상태에서 친부의 명예를 위해 묘호와 시호를 억지로 밀어붙여 추존한 정확히 똑같은 사례가 존재함으로 중요한것은 황제의 의중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