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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9:38:45

사제왕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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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진실3. 전설들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라틴어: Presbyter Johannes(프레스비테르 요한네스)
영어: Prester John(프레스터 존)

사제왕 요한의 전설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 사제왕 요한이라고도 한다.

성모 마리아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다른 종파이긴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도이며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도에서 수평선 끝까지 정복하여 거대 기독교 왕국을 건설했다고 중세시대에 알려졌던 '가상의 인물'이다. 특히 당대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실패,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으로 이슬람 세력에 군사적, 정치적 위협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들의 너머에 존재하는 기독교 왕국에 대한 전설은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항해왕자 엔리케가 아프리카 탐험대를 조직하고 후원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프리카에 존재한다던 사제왕 요한의 기독교 왕국을 찾는 데 있었다. 바스코 다 가마가 엔리케 왕자의 편지를 들고 사제왕 요한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기독교 왕국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대신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여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된다.

2. 진실

1200년을 전후로 유럽인들은 동방에서 이슬람 국가들을 격파하는 어떤 나라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데 십자군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유럽 진영은 동쪽에서 태양으로부터 수평선의 끝까지를 정복하고 수많은 국가에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던 사제왕 요한인 줄 알았으나 몇 십 년 뒤 유럽인들이 맞이한 것은 동쪽에서 태양으로부터 수평선끝까지 정복하고자 이슬람 국가를 박살내고 온 칭기즈 칸몽골 제국이었다.

다만 먼 동방 몽골 초원에 기독교의 일파인 경교(네스토리우스파)를 믿는 케레이트, 나이만 등의 부족이 있었던 건 사실이긴 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유럽에선 이단 취급받고 있었고 몽골에서 현지화도 많이 진행되어 사제샤먼과 비슷해지는 등 유럽인들이 그들을 만났다면 기독교라고 생각은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케레이트의 지배자 토오릴 칸은 유럽까지 그 소문이 퍼져서 다분히 기독교 세계 군주처럼 유럽 예술품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근데 칭기즈 칸은 그런 경교를 믿는 부족을 모두 격파하고 몽골 고원을 통일한 뒤 서방으로 진격을 시작한 것이었으니...

귀위크 칸의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귀위크 칸은 기독교의 야훼와 텡그리의 천신을 동일한 존재로 해석했으며 이를 통해 몽골 제국의 정복전이 성공한게 신의 뜻과 도움이 있어서라고 교황에게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로 하느님(천신)에게 충실한 사제왕 귀위크가 된다(...). 물론 정복 대상이 유럽 기독교 문명도 포함되어 있지만 말이다.

몽골의 침입 이후 동방엔 기독교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사제왕 요한의 전설의 중심지는 어느새 아프리카로 이동해 있었다. 이교도 세계(아랍 이슬람권) 건너편에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므로 방향을 남쪽으로 돌린 것인데 역시 그 쪽에 에티오피아라는 기독교 왕국이 실제로 있었으므로 그저 환상만은 아니었긴 하다.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 목적에도 사제왕 요한의 왕국을 찾는 것이 들어 있었는데 당시 포르투갈 왕인 주앙 2세는 인도를 사제왕 요한의 왕국으로 알고 친서까지 써서 보냈다.[1] 놀라운 것은 인도에는 사도 토마스(도마)가 전파했다는 기독교 종파가 있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만 인상적인 사실이다.

3. 전설들

전설이지만 역사적 사료에는 사제왕 요한에 대한 몇몇 기록이 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이야나가 노부미,'幻の東洋:オリエンタリズムの系譜'[2] 프리드리히 1세 시대의 실존 인물로, 이 사람이 저술한 '연대기'에 최초로 사제왕 요한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