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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3 16:19:07

태창제(명군이 되어보세!)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태창제.

원 역사의 태창제는 만력제의 장남 주상락이었지만, 본편에서는 주상락이 귀비 정씨에게 암살당하여 주상순이 천계제가 되었다.

2. 작중 행적

만력제가 총애하던 서자로, 만력제가 20살이 돼서야 주상락을 책봉한 원인이 된다. 이 책봉 문제 때문에 양응룡의 난에서 만력제가 진안군의 앞길을 틀어막기도 했다. 그러다 원래 황태자였던 주상락이 죽은 뒤 만력제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된다.

원 역사와 달리 황태자였던 주상락이 의문사한 후[1] 만력제의 뒤를 이어 원 역사의 주상락 대신 명 제14대 황제가 되었다. 원 역사에서 형 주상락의 연호였던 태창제를 여기서는 주상순이 썼다.

만력제의 뒤를 이어 답이 없는 막장 행각을 이어가다 1630년 고영상의 반란군이 모문룡을 통해 뇌물을 바치려 하자 웅정필이 모문룡을 처형했고 고영상의 뇌물을 탐내던 중에 뇌물을 받을 길이 막혔다고 웅정필을 냅다 처형해버린다. 그 결과 명군이 붕괴하였고 주상순은 조선으로 탈출하려다가 고영상에게 붙잡힌다. 잡힌 뒤 산 채로 살이 저며졌고, 부황 만력제의 무덤인 장제전을 땔감 삼아 고깃국이 되어 반란군들에게 먹혀죽으면서 명이 멸망한다.

만약 조선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조선 입장에서 엄청난 민폐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뇌물이 바쳐지는 것을 막았다고 웅정필을 처형시킬 정도이니 조선을 상대로도 뇌물을 요구하는 건 기본에 황제라는 신분을 앞세워 오만방자하게 굴었을 것이고, 대국의 황제라는 명분 때문에 조선 사람들은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영상군한테 잡혀 죽은 것이 조선에게 다행인 셈.[2]

사후 명나라 황실의 대는 주상락의 아들 주유교(원 역사 천계제)만이 주씨 일족의 학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조선으로 도주, 대구 대명동에 자리잡아 대명공에 책봉되어 19세기까지 세습되고 있으며 주유교의 후손이 대를 잇고 있다고 한다.[3] 따라서 최종적으로 명나라 황실의 대는 주상락에게서 이어진다.

사후 화북에 자리잡아 북조가 된 청나라에서 태창제에게 영종이라는 묘호를 주었다. 청나라조차 태창제가 한심하게 보였는지 묘호인 '영종'은 시법에서 암군들에게 주는 영(靈)자를 써서 영종이다. 어느 세계에서나 잡아먹히는 황제..

3. 기타

원 역사에서는 초대 복왕(福王)으로 사후 장남 주유숭남명 초대 황제 홍광제가 되어 공종(恭宗)으로 추존되었지만, 본작에서는 황제 시절 주상순이 아버지 만력제의 실정으로 무너져가던 명나라에 결정타를 날려 몰락시켜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주씨 정권에 완전히 환멸을 느낀 백성들에 의해 명나라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만든 만악의 근원이다. 청나라조차 한심하게 여겨 북경을 함락시키고 화북에 자리잡은 뒤 암군에게 주로 내리는 영종(靈宗)을 묘호로 주며 주상순을 욕했을 정도.

원 역사에서 마찬가지로 암군이었던 천계제를 거쳤음에도 1627년에 즉위한 숭정제가 여러 실책을 벌여 멸망을 뒤집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644년에 명나라가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했음을 고려하면 혼자서 14년이나 빠르게 멸망하게 만들고, 원 역사와 달리 남명 정권이 생기지 못하고 주씨 일족이 주상락의 아들 주유교를 제외하고 모두 멸족당하게 만드는 등 정말로 문제가 심각한 암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띵군 2부는 재석 사망 시점에서 원 역사보다 조선과 건주위가 훨씬 강대하기는 했지만, 반대로 만력제가 누르하치를 건주군왕으로 책봉시킨 대가로 누르하치는 후금 황제를 자칭하지 않고 겉으로는 명나라의 천조 체제를 받아들여 연호도 쓰지 않고 조선 비슷한 방식으로 외왕내제하고 있었다.[4] 몽골 세력도 2부에서 조선과 건주위가 제압해서 약화된 것은 덤. 조선과 건주위가 명나라를 노리고 있기는 했지만, 반대로 이들의 계획도 어디까지나 명나라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명나라가 스스로의 모순과 부패로 자멸했을 때 천조 질서를 대신하자는 합의였다.

따라서 당장의 외부 정세가 안정된 이상 만력제의 후임이 얼마나 잘하냐에 따라서 국력을 회복시키고 조선과 건주의의 계획도 페이퍼 플랜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역사 만력제의 후임들인 1개월 만에 죽은 주상락, 마에스트로(...) 천계제, 노력은 했지만 결국 화를 자초한 숭정제 3명보다 14년 빨리, 그것도 혼자서 명나라를 원 역사보다 더 말아먹고 주유교(천계제)를 제외한 주원장의 후손들이 멸족당해 대가 끊어져 조선에서 대명공으로 간신히 대를 이어가게 만든 원흉이니, 따지고 보면 전대인 만력제 이상으로 답이 없는 중국사 최악의 암군이라 볼 수 있다. 원 역사의 남명도 20년 가까이는 있었는데, 본작에서는 남명이 아예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상순의 통치가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1] 정황상 주상순 일당에게 독살당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2] 라고 적기는 하지만 사실 대한의 입장에선 굳이 주상순을 살려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병사당했을 가능성이 높다.[3] 원 역사에서 주유교의 세 아들이 모두 요절해 동생 주유검이 숭정제로 즉위했는데, 아무래도 조선에서 다시 아들을 가져 대를 이은 걸로 보인다. 주유검의 존재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걸 보아 이쪽은 가능성이 떨어진다.[4] 조선의 전례에 따라 건주위가 누르하치에게 태조 묘호를 사용했고 명나라가 불쾌감을 느꼈지만 못 본 척해준 정도. 이것도 베트남의 외왕내제보다는 예의를 차려준 편이다.[5] 원 역사 조선이 고려 말부터 북벌을 여러 번 시도해 4군 6진을 개척하고 성종 대 두만강 이북 일시 진출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했지만, 뜻은 꺾지 않아 나라가 쇠퇴하던 구한말 시절에 망해가던 청나라를 공격해 간도를 장악하려다 일제에 의해서 실패했다. 반대로 현실적인 여건이 안 되면 북벌은 페이퍼 플랜으로 끝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