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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05:24:51

기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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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기뢰의 모형(좌)과 기뢰가 폭발하는 장면(우).

1. 개요2. 유형
2.1. 설치방식2.2. 폭발방식2.3. 첨단방식2.4. 특수방식
3. 역사4. 유사 개념5. 장단점
5.1. 장점5.2. 단점
6. 부설7. 제거8. 여담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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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계수뢰(, naval mine), 약칭 기뢰(機雷) 또는 수뢰(水雷)는 선박을 파괴할 목적으로 수중에 설치하는 폭탄이다.

육지의 지뢰와 유사하나, 특정 해역에서의 작전을 통째로 봉쇄할 수 있는 기뢰는 전략 무기로도 분류될 정도로 뛰어난 효율을 발휘한다. 특히 섬나라 등 해운의 비중이 높은 국가의 연안에 기뢰가 쫙 깔려 버리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가격 대 성능비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최강급 무기다. 핵무기처럼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설치된 기뢰를 탐지하고 제거하는 것을 기뢰 소해(機雷掃海, minesweeping)라고 하며, 소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용 소해함, 소해헬기가 있다. 깊고 넓은 바다 속 여기저기에 교묘하게 짱박힌 폭탄들을 찾아내어 해체해야 하며, 그 와중에 소해함 자신도 그 눈먼 폭탄들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때문에 소해전은 상상 외로 어렵고 위험하며, 소해함과 소해헬기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비싸다. 반면 임무의 난이도 및 중요성, 장비의 단가에 비해서 해군력 부문에서 가장 덜 주목받는 분야가 소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운국이 소해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반드시 전쟁에서 처참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2. 유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Types_of_Naval_mine_001.svg.png
다양한 방식의 기뢰
기뢰의 경우에는 설치방식과 폭발방식에 따라 주로 구분된다. 그 외에도 첨단방식과 특수방식이 존재한다.

2.1. 설치방식

2.2. 폭발방식

2.3. 첨단방식

2.4. 특수방식

3. 역사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8세기 이슬람군이 유럽으로 쳐들어올 당시에도 동로마 제국에서 만들어낸 하늘의 불이라는 이름으로 쓰이던 것과 같이 바다에서도 이슬람군의 전투선이 닿으면 불이 붙었다는 기록이 있다. 14세기 중국에서도 왜구를 이렇게 공격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이후 여러 기록에서도 남아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인 데이비드 부쉬넬(1740~1824)이 1인용 소형 잠수함을 만들어 폭탄을 바다에 뿌리는 방법을 쓰기도 했지만 큰 활약을 하진 못했다. 이 함의 이름은 '터틀' 호로, 사실상 1인용 잠수정에 더 가까웠다. 18세기라는 시대상 이 함은 수동이었고 잠항시간은 30분을 겨우 넘을까말까 했지만 1776년 9월 17일, 이 함은 잠수함 공격의 역사에 첫 시발점을 끊을 뻔했다... 끊을 '뻔' 인 이유는 몰래 당시 영국 기함인 HMS 이글 호 하부에 접근, 페달로 돌아가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시한폭탄을 집어넣을 계획이었는데, 이글 호 하부갑판이 죄다 구리를 사용한 동판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수중폭파팀 침투를 예측한 것은 아니고, 따개비 같은 생물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영국 해군의 전통적인 돈지랄. 따개비가 배 밑창에 달라붙으면 속도가 3~4노트나 늦어지는데 다른 나라라고 함저를 동판으로 도배하면 좋다는 걸 모르지야 않지만 그럴만한 돈과 지원이 없었다. 어쨌건 들고 간 드릴로는 도저히 동판을 못 뚫었으며 들고갔던 폭탄은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글 호는 생채기 하나 안 났다(...). 그 후 여기저기 폭탄을 바다에 뿌려보지만 영국 해군 승무원 몇 죽인 것 말고는 전과도 없다가 영국군에 나포되었다. 이후 데이비드 부쉬넬의 편지에 따르면 영국군이 박살내버려 잔해만 겨우 발견했다나...

본격적인 기뢰는 19세기에 등장했는데 크림 전쟁 당시 독일인 공학박사이자 발명가인 모리츠 폰 야코비(1801~1874)와 임마누엘 노벨(1801~1872/바로 알프레드 노벨의 아버지)이 개량시킨 기뢰가 러시아군에서 쓰이면서 1855년 영국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그 후 남북 전쟁, 오스만-러시아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 러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전에서 널리 쓰이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은 기뢰의 1차 전성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기뢰를 엄청나게 사용했다. 특히 북해, 발트해등은 주요 수로와 만 입구가 모조리 기뢰밭으로 포장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기뢰를 설치했다. 그 덕분에 종전 이후에 처리가 매우 곤란할 지경이었다. 이 시기부터 바다에서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접촉기뢰가 대량으로 양산 및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영국, 발트해 쪽은 아주 기뢰 바다였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항구봉쇄 작전인 '기아(Starvation)' 작전의 일환으로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B-29 폭격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기뢰가 투하되어 당시 일본 영해는 거대한 기뢰밭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미 육군 제21공군이 46회 임무 1,529소티로 12,135발의 기뢰를 26개 구역에 살포했다. 도쿄 대공습에 동원된 폭격기겨우 344기. 기뢰밭을 설치하는 작전기간 중 상실한 B-29는 15기였으나 이 작전으로 인해 일본측에서는 670척 125만톤의 선박이 격침/손상되었고, 애초에 배가 뜰 수가 없으므로 고베 같은 경우 물동량의 85%가 감소했다. 배가 가라앉으나 못 나오나 바다에 없는 건 마찬가지다.

영국 쪽도 U보트의 침투를 막기 위해 대량으로 살포했으나, 정작 영국을 말려죽이려고 기를 쓰던 독일은 기뢰를 별로 설치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사용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 기록상으로는 317개의 기뢰로 8개 항구를 총 40일 동안 폐쇄했다고 하며 타운급 경순양함 벨파스트가 기뢰에 접촉해 손상을 입기도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단 구형 유보트 일부가 기뢰전용이기는 했지만 코앞에 있는 영국 항구에 기뢰를 깔기보다는 드넓은 대서양을 헤매며 대서양 전투에서 죽을 고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토내해에 들이부으면 시모노세키에서 오사카까지 주요 공업지역과 핵심항로가 봉쇄되는 일본과 달리 다수의 주요 항구가 분산되어 있는 영국은 그만큼 기뢰설치의 효과가 낮았기 때문이다.

6.25 전쟁 당시 북한 해역도 해군력이라는 게 없어져버린 북한이 열심히 기뢰를 깔아댔고, 결국 원산 앞바다에는 3천발의 소련제 기뢰가 깔려서 미군일본해상보안청 소해부대를 동원했지만 결국 너무 시간이 걸려서 지상부대가 먼저 원산에 도착해버렸을 정도다. 원산 상륙작전의 이름은 원산급 기뢰부설함에 이어져 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기뢰전 함정들은 다들 한국전쟁에서 소해작전을 시행했던 지역명을 따 명명되고 있다.

냉전 종결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쿠웨이트 연안을 포함한 6개 구역에 수천 개의 접촉발화식 계류기뢰와 자기음향 감응형 기뢰를 설치했고, 접촉한 사례도 몇 건 있다.

4. 유사 개념

명칭상 폭뢰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기뢰도 폭뢰처럼 보통 자력으로 이동하지 않는 거대한 폭탄이며 잠수함을 노리는 기뢰도 존재하므로 관계자가 아니면 실물을 가져다 놓아도 폭뢰와 기뢰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폭뢰와 기뢰의 차이점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그리고 기뢰를 수중지뢰라고 부를 정도로 기뢰와 지뢰는 그 특징이 매우 흡사하다. 일단 설치하면 피아와 목표를 가리지 않고 걸릴 시 무조건 폭발하며, 구조도 간단해서 양산과 설치가 매우 쉽고 가격까지 매우 싸며, 깔아놓는 쪽은 편하지만 그걸 치우는 쪽은 죽을 맛이라는 것도 유사하다.

여기에 더해서 첨단기술을 적용하면 골치가 아프다는 것도 비슷하다. 예를 들자면 피아식별에 대한 기술력을 적용할 경우 기뢰의 경우 미리 아군 함선의 음문 데이터를 저장하여 피아 식별을 하는 경우가 존재하며, 기뢰나 지뢰 모두 조작 인원의 격발 명령에 의해서 기폭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크레모아와 같은 경우부터, 좀 더 복잡하게는 스파이더 스마트 지뢰 등을 생각하면 된다.

5. 장단점

5.1. 장점

기뢰는 선박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흘수선 아래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피해가 크다. 게다가 몇십 짜리 전차를 잡기 위해 깔아놓는 지뢰와 달리, 수천, 수만 톤에 해당하는 거대한 강철덩어리인 현대 군함, 수송선을 노리는 폭탄인 만큼 기뢰 자체가 덩치가 커서, 어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폭약을 많이(300kg 이상) 장전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대형 함선/선박이라도 단 1발의 기뢰에 격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로 천운이 따른다 해도, 선수나 선미가 완전 대파되어 예인선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는 게 고작이다.

당장 어뢰도 함포탄보단 제약사항이 덜하여 탄두중량을 더욱 키울 수 있어서 단발로 군함 격침 수준까지의 위력은 될 수준까지 올릴 수 있다. 그래도 물 속 부력과 잠수함의 수납 규격, 질주속도를 감안해서 중량 증가는 한계가 있고 외피도 포탄들처럼 압력을 버티기 위해 일정 수준의 두께가 필요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중량과 부피를 가지는 탄두는 장착하는 게 힘들다. 하지만 기뢰는 그냥 수면, 해저에 부유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군함의 수납 규격과 수압만 가능하면 어뢰의 몇배 수준으로 탄두 중량을 키울 수가 있다. 실제로 세계대전중에는 전함을 일격에 잡기 위해 TNT 1톤 수준의 폭발력을 자랑하는 수준으로 폭약을 무식하게 집어넣은 기뢰도 다수 존재했다.

그런데 기뢰는 이만한 위력에 비해 가격이 무척 싸다. 가격이 150만원 ~ 300만원 정도다.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별로 싸지 않게 보이지만 어뢰의 경우에는 밑에 달린 추진장치가 더럽게 비싸서 기본 수천만원, 현대식 유도어뢰는 억대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걸 생각한다면(대한민국의 홍상어 어뢰는 발당 17억 원 이상이다(...).), 비슷하거나 더 강한 기뢰의 가격인 백만원대는 군용무기의 기준에서는 거저먹는 거나 다름없는 가격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 해군의 무기별 격침효율성인 배수량 1톤을 격침시키는 데 들어간 돈은 잠수함의 톤당 55달러에 비해 기뢰는 톤당 6달러밖에 들지 않았다. 이것도 글자 그대로 잠수함의 톤당 효율만 감안한 것으로 잠수함이 발사하는 어뢰의 가격까지 고려한다면 1000달러를 넘어간다.

그리고 공병대전차지뢰 주변에 대인지뢰를 매설하여 지뢰지대의 개척을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기뢰 또한 여러 종류의 기뢰를 몇 겹으로 나눠서 설치해두면 소해 담당자들에게 헬게이트가 열린다.

이렇게 가성비가 좋은 병기인 만큼 군함이나 수송선을 운항하는 측에서는 기뢰에 대한 부담이 상상을 초월한다. 500억원짜리 윤영하급 고속함과 1조원짜리 세종대왕급 구축함이 기뢰 1발에 격침될 수 있다. 특히 만재된 수송선이 격침된다면 피해는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K-2 전차의 가격은 80억원/대인데 만재된 수송선에는 1개 대대(약 40여대)를 실을 수 있으므로 격침시 3,200억원 + 인명 손실이 발생한다. 1개 연대를 태운 만재된 수송선 격침시 약 1,500 ~ 2,000여명의 무장한 전투인력이 사망한다. 유류/탄약 등 보급물자 1만t을 실은 만재된 수송선 격침시 5.56mm 소총탄 5억발이 손실된다. 150 ~ 300만원짜리 기뢰 1발이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피격시 피난도 힘들다. 격침을 대비한 퇴함 훈련이 철저하다면 일반적인 피격과 침몰의 경우에는 인원만큼은 상당수는 생존할 수 있으나 어뢰 피격만 따져도 어뢰의 폭발력(+유폭)으로 즉사하거나, 하부 갑판의 급격한 침수로 인한 고립자들의 사망은 피할 수가 없는데 기뢰의 폭발이면 말 그대로 즉사피해와 고립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단 한 발만 피격되어도 발생하는 이런 엄청난 피해 때문에, 한 번 기뢰가 부설된 항만이나 수로는 소해부대가 몇 번이고 소해와 수색을 반복하여 확실하게 소해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륙함이나 수송선은 단 1척이라도 진입할 수 없다. 그야말로 한 전투, 심지어 한 전쟁 전체가 뒤집힐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위험 때문에 기뢰가 전략무기로 분류되는 것이다. 1944년 노르망디 해안이나 1950년 인천 바닷가에 기뢰가 잔뜩 깔려 있었다고 상상해 보면 이 말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 해군이 초수평선 상륙작전으로 교리를 바꾼 계기가 된 것도 기뢰의 이런 막대한 위험성 때문이다. 그러나 초수평선 상륙작전도 선봉상륙부대를 좀 더 빠르고 좀 더 많이 때려 박는 개념일 뿐, 1일 3만톤 이상[9]의 어마어마한 물량(후속부대/보급물자)이 꾸준하게 들어와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고, 그러려면 안전한 수로와 항만의 확보는 필수이다. 결국 빠르고 깨끗한 소해는 해군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숙제인 셈이다.

기뢰의 위력이 발휘된 실제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상술된 태평양 전쟁이지만, 또 다른 사례로 6.25 전쟁인천 상륙 작전 이후에 이어진 원산 상륙작전도 들 수 있다. 애초에 기뢰를 제대로 부설하지도 못 한 인천과 달리, 원산항 앞바다는 미리 소련 기술자들이 기뢰원을 체계적으로 부설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연합군의 원산상륙작전 개시일을 몇 주나 늦춰 버렸다. 그나마 삼팔선을 돌파해 북진한 대한민국 육군 병력이 먼저 원산에 진입해 버려 소련 기술자들이 도망갔기 때문에 이 기뢰원은 절반 정도 밖에 부설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양한 기뢰가 몇 겹에 걸쳐서 전개되어 있었고, 이를 소해하는 과정에서 몇 척의 소해함이 격침되었다. 만약 제대로 완성되었을 경우 연합군에게 얼마나 더 큰 애로사항이 꽃피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 만약 원산 상륙작전이 기뢰가 없는 상태에서 예정대로 수행되었다면 중/동부전선의 잔존 북한군은 퇴로를 차단당해 완전 섬멸을 당했을 것이고, 실제 역사보다 몇 주 빠른 북진도 가능하였다.

5.2. 단점

기뢰밭을 만들기는 쉬워도 그걸 치우는 과정인 소해가 너무 어렵다. 지뢰밭 까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걸 치우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소해 임무를 전담하는 부대가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한복판에 설치하기 때문에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순간 주변 해역이 모조리 부유기뢰 위험지역이 되는 것도 문제다. 보통 바다는 2개국 이상의 영해가 접하는 경우가 많고 국제항로도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국제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첨단기술이 적용된 비싼 기뢰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피아식별을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아군 선박이 안전항로를 살짝 벗어나도 기뢰에 접촉해서 폭발후 침몰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뢰밭 관리가 빡세진다.

마지막으로 다른 해상용 병기보다 침수나 부식에 강하지만 무적상태는 아니다. 그러므로 관리 부실로 인해 유사시 작동하지 않거나 불발탄 같이 변해버리는 기뢰도 다수 존재한다. 그래서 정기적인 점검과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6. 부설

크게 선박, 항공기, 사람을 이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7. 제거

기뢰를 제거하는 데에는 소해함이나 소해헬기, 때로는 잠수부나 훈련된 해양동물까지 동원하며 매우 비싸고 힘들고 위험한 직종에 속한다.

모함에서 조종하는 ROV(Remotely Operated vehicle)을 이용한 기뢰 제거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중 체류 시간이 길고 사고시에도 인명피해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AN/SLQ-48, Sea fox C가 대표적이며, 해군은 2016년 말부터 유도탄 형태의 자폭형 기뢰제거처리기(ROV)를 운용한다. 기사

소해능력으로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세계 탑클래스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군이 해체된 상황에서 해자대의 전신인 해상보안청 소해부대가 기뢰제거 임무로 6.25 전쟁에 참전한 바 있으며(명목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전쟁 중 일본 해군이 부설한 기뢰를 소해'한다는 것으로 핑계를 둘러대면서) 전후 냉전기간에도 미국이 해상자위대를 극동에서의 소련중국을 견제하는 주요 전력 및 요충지로 삼아 대잠, 소해 전력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도 섬나라인 자국 특성상 항구의 안전확보가 매우 중요했으니 이를 마다할 이유도 없고. 동아시아에는 소수의 국가가 서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섬나라인 일본이 주요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고 지리적 특성을 반영해서 소해, 대잠전력을 집중적으로 담당하게 된 것. 마찬가지로 항공자위대는 요격임무 및 대수상 공격능력이 핵심이 된다.[11]

간혹 유실된 기뢰가 해안가에 떠밀려 오는 경우도 있는데, 보면 절대 접촉하지 말고 즉시 경찰이나 군부대에 신고해야 한다.

8. 여담

9. 관련 문서



[1] 상어들의 일명 '채식주의자'모임이 침몰한 미 해군 가토급 잠수함(추정)에서 이뤄지는데 근처에 기뢰가 잔뜩 깔아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 기뢰를 건드려 침몰한 모양이다.[2] 전쟁에 패배해서 재판에 회부될 경우 이것까지 다 죄목에 올라온다.[3] 사실 명나라 때 화약무기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이론상으로는 비범한데, 실제 성능은 떨어지는 물건들이 많았다. 이것과 비슷한 예로는 신화비아나 적을 공격하고 다시 돌아오는 재사용 화전, 휴대용 다연장 화전발사기(다발화전) 등이 있었다.[4] 이런 비판을 한 문헌은 바로 명말청초 때의 중국에 존재하던 각종 과학기술을 집대성한 과학기술서적인 천공개물. 참고로 혼강용과 거의 같은 시기 씌어진 책으로, 개발 당시부터 못써먹을 물건 소리를 들은 거다(...).[5] 미국은 이미 1945년도부터 저주파 감지나 수압감지 기뢰를 찍어내 일본에 뿌리고 있었다.[6] 특수부대원들이 기뢰를 몰래 부설할 때 소해함의 소나에만 반응하도록 신관을 세팅했다.[7] Mk.67 SLMM의 경우 16k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8] 기행 문서에 가보면 알겠지만, 윈스턴 처칠과 관련된 무기가 좀 된다.[9] 2003년 이라크 전쟁 기준.[10] 무게와 투하 궤적도 동일하다.[11] 비슷한 경우가 바르샤바 조약군의 지상군을 최우선적으로 상대하게 되는 독일냉전시기 동안 핵무기 사용을 전제한 대규모 지상전을 고려하여 무기체계와 교리가 집중채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