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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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水雷砲조선에서 만든 기뢰. 1867년 훈련대장 신관호(신헌)이 만들었다.
2. 상세
『해국도지(海國圖誌)』를 기반으로 만든 무기로 수중에서 적함을 파괴하는 현대의 기뢰와 같은 무기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신무기 개발에 힘썼던 흥선대원군 시대의 산물 중 하나이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없으나 『훈국신조군기도설 (訓局新造軍器圖說)』에 설계도가 남아 있다.수뢰포는 크게 물 위에 떠 있는 부구, 물속에서 폭발하는 본체인 독, 부구와 독을 연결하는 끈으로 나뉜다. 독은 육각기둥 형태의 나무상자로 외부에 납으로 된 추 6개를 달아 물속에서 평형을 유지하도록 했다. 내부는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뉘는데 좌우는 폭약을 넣은 약창이고, 중앙에는 시한 격발장치를 넣은 기괄이다. 지금의 기뢰처럼 군함과 충돌 내지는 접근하면 폭발하는 구조가 아니라 안전핀 역할을 하는 마개를 제거하면 물이 들어와 시한 격발장치를 작동시키고, 움직인 공이가 뇌관을 때려[1] 격발하는 시한폭탄 형식이었다. 따라서 해전이 시작하기 전에 미리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가 시작되면 잠수부가 잠수해서 적선 주변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였다.
자세한 격발 방식은 다음과 같다. 잠수부가 마개를 제거하면 물이 직수관과 곡수관을 거쳐 수고라는 쇠가죽으로 만든 물탱크로 들어온다. 수고가 물을 받아 부풀어 오르면 강기판이라고 하는 판을 들어올린다. 그러면 강기판에 연결된 줄이 공이 역할을 하는 탄조가 누르고 있는 계판을 끌어올린다. 계판이 다 들어올려지면 탄조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면서 뇌관 역할을 하는 동화모를 격발시키고, 화염이 화탑과 약관을 통해 약창의 폭약으로 옮겨붙어 폭발하게 된다.
물 속에서 운용하는 특성상 방수기능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방수에 만전을 기울였다. 독의 표면을 생석회와 기름을 섞어 만든 유회로 막고 삼베로 싼 뒤 옷칠을 했고, 각 부분을 국엽과 나사로 결합하고 결합부위에는 혁점을 대어 물 한 방울도 못 들어오도록 했다.
조선군은 이 수뢰포를 18좌 생산하여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선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적선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일은 없었고 수뢰포는 단 한 번의 실전을 겪지 못한 채 잊혀졌다.
[1] 이 뇌관은 당시의 조선 기술로는 제작할 수 없어 중국에서 복제 생산한 '동화모'라는 서양의 화약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