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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2 02:35:40

장태


1. 조선시대에 쓰이던 닭장2. 동학농민군이 쓰던 방어구3. 출산 후 태(胎:태반과 탯줄)를 땅에 묻는 일

1. 조선시대에 쓰이던 닭장

파일:external/social.ktcu.or.kr/U82549_14162120625.jpg
전북 정읍 동학 농민 운동 기념관에 전시된 장태

대나무를 쪼개 죽부인처럼 원통형[1]으로 짜맞추되, 닭과 병아리를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기르거나 평상시엔 방목시키다 유사시 안으로 들일 목적으로 크게 만들었다.

또한 가운데엔 닭과 병아리, 알들을 꺼내거나 들일 수 있게 네모난 구멍이 나 있고, 이를 대나무 조각들을 끈으로 엮어만든 걸로 가리고 있다.참고자료

2. 동학농민군이 쓰던 방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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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접주(長興 接主) 이방언(李邦彦)이 고안 제작한 것으로, 문단 1번을 거대하게 만든 다음 안에다가 솜, 짚단 등을 채워넣고 을 꽂아 겉으로 날붙이가 튀어나와 부딪힌 적이 상처를 입게 만든 것이다.

파일:external/img.hani.co.kr/6000229819_20090501.jpg
사진 출처 한겨레 신문

그리고 이런 식으로 굴리면서 적을 향해서 전진한다. 이를 보면 중세 시대에 일본이 쓰던 이동식 대나무 방패와 비슷하다. 실제 사용된 것은 더 컸을 것이다. 정확한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용하던 탄환을 막아내는 데는 충분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시효과 정도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나이더 엔필드 라이플의 탄환 에너지는 약 1900~2000 줄로, 현대 돌격소총보다 탄환 모양은 나빴지만 에너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대나무통발에 짚단 정도 채워서 막을 수 있는 총알이 아니다. 사람을 시야에서 가려주는 효과와 운, 생소한 상황에 당황한 훈련도가 낮은 상대의 멘붕에 기대는 정도. 원래 화살을 막을 용도였던 면제갑옷을 입고 운좋으면 적탄을 막기를 기대했던 병인양요때와는 몇십 년 안 지났지만, 제식소총은 훨씬 발전해있는 상황이었다.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화승총의 사거리가 관군의 스나이더 소총 같은 신식총보다 짧았기 때문에 장태로 탄환을 방어하며 전진했다. 황토현 전투에서 처음 등장해 회선포로 무장한 관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고, 이후에도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도 쓰이는 등, 동학군이 전주를 함락할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다.

2차 봉기 때에도 우금치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동학군이 장태를 굴리면서 우금치 언덕을 오르기를 시도했으나 관군이 능선에서 신식 소총과 회선포를 쏴대자 속수무책이었다고[2] 한다.[3] 저렴하고 신속하게 화력의 열세를 타파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무기였지만, 이런 걸 제대로 써먹고 발전시키기에는 동학군에게는 군사적인 지식도, 연구할 시간도 없었던 것이 결국 발목을 잡은 셈이다. 탄환의 운동에너지를 들어 설명했듯이, 원래 상대가 당황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조준하면 무조건 관통되므로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도구였다. 궁여지책으로 써봤는데 운에 힘입어 이겼고 이겼으니 상성이 맞다고 생각해 계속 사용하다가 결국 대패의 원인이 된 것.

사실 이런 이동식 장애물을 쓰는 건 고금과 지역을 막론하고 흔한 전술이다. 당장 위에서 언급한 이동식 대나무 방패도 그렇고 고대 중국이나 보헤미아 반란 당시의 얀 지슈카가 수레를 이용해 대기병 방벽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혁명 프랑스 시기에도 술통을 굴려 일종의 이동식 바리케이드로 쓰기도 했다.[4]

드라마 녹두꽃에서도 등장한다. 다만 여기선 황룡촌 전투가 상당한 고증 오류를 보여준지라 이쪽도 영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흠.[5]

3. 출산 후 태(胎:태반과 탯줄)를 땅에 묻는 일

삼국시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으로 주로 왕실과 양반계층에서 행해졌다. 조선시대에는 태를 불에 태우거나, 물에 흘려보내거나, 땅에 묻었는데, 땅에 묻는 방식을 가장 선호했다 한다. 특히 장차 왕위에 오를 원자와 원손의 태(胎)는 왕실 차원에서 묻는 장소와 방법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태를 보관하는 장소를 태실(胎室)이라 한다. 원자가 왕위에 오르면 태봉(胎封)으로 격상시키고 주위의 석물을 추가로 설치했다.

태를 묻는 의례를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매번 그 과정과 절차, 필요한 인력과 물품 등의 내역을 빠짐없이 의궤(儀軌)나 등록(謄錄)으로 기록해두었다. 대표적으로 조선왕실의궤 장태의궤(藏胎儀軌).
[1] 다만 가운데가 항아리마냥 볼록 비대한 것도 있다.[2] 회선포는 현대의 기관총과 같은 방식으로 운용한다. 즉 점표적이 아니려 지역표적을 상대로 사격하는데, 가벼운 잡동사니를 채운 커다란 대나무통 뒤에 사람이 숨어봐야 의미없다. 처음에 회선포를 장비한 관군에게 이걸 써서 이겼다는 것은 순수하게 전술적인 기습이 뛰어났고 처음 보는 상대의 무기에 당황한 것을 잘 이용해 얻은 기승이었던 것.[3] 장태를 굴리기 용이한 개활지에서 펼쳐진 전투도 아니고, 장성 황룡촌 전투와는 반대로 여기서는 관군이 고지를 점거한 상태고 동학군이 장태를 굴리면서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훨씬 표적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게다가 앞 문단의 설명에서 겉에 칼과 낫을 꽂아 충돌한 적이 부상하도록 의도했다고 했는데, 이런 물건이면 약하게 경사진 아래로 굴리며 전진하기는 쉬워도 언덕을 오르며 굴리면서 전진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고 느리다. 위 사진에서 아이들이 손을 어디에 대고 굴리고 있는지 보자. 느릿느릿 올라오고 있으면 이미 이 무기에 익숙해진 상대에게도 위협적이지 못했을 것이다.[4] 당시 나폴레옹은 이에 대포 사격을 하는 것으로 맞섰다. 다른 전과와 함께 이 공적으로 나폴레옹은 크게 출세하게 된다.[5] 현실의 황룡촌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언덕 위에서 장태를 굴려 관군을 압박했으나 드라마에선 평지에서 싸운 것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