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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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אברהם | Abr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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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braham.jpg
로마 카타콤의 벽화에서 아들 이사악을 산 제물로 바치려 하는 아브라함의 모습. 야훼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인 이사악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했으며, 이를 아브라함이 이행하려 하는 장면이다. 그 후 하느님의 명으로 이사악 대신에 근처의 지나가는 숫양을 잡아서 제사드렸다.
파일:이브라힘.jpg
위에는 알라의 명에 따라 아들 이스마일[1]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이브라힘. 밑에는 우르파에서 님루드의 왕에 의해 화형에 처해진 이브라힘. 그러나 불이 물로, 땔감이 물고기로 변하며 살아난다. }}}}}}}}}
<colbgcolor=#000000><colcolor=#000> 이름 아브라함 Abraham / אברהם
출생지 갈대아 우르 (우르, 우르케쉬, 또는 우르파)
생몰년도 BC 2166?~BC 1991?[2]/BC 1911?-BC 1736?[3]/BC 1800?~BC 1700?[4][5]
부모 아버지 : 데라
배우자 사라, 하갈
형제자매 하란, 나홀
자녀 이삭, 이스마엘, 6형제
종교 야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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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0f0> 언어별 명칭
히브리어 אברהם
(Avrahám)
אברם
(Avrám)
고전 그리스어 Ἀβραάμ
(Abrāā́m)
아랍어 إبراهيم
(ʾibrāhīm)
영어 Abraham | Abram
한국어 아브라함 아브람 }}}}}}}}}

1. 개요2. 가족과 친척3. 생애4. 영향력5. 기타

[clearfix]

1. 개요

가 너와 계약을 맺는다.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 나는 너에게서 많은 자손이 태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느님이 되어주기로, 너와 대대로 네 뒤를 이을 후손들과 나 사이에 나의 계약을 세워 이를 영원한 계약으로 삼으리라. 네가 몸붙여 살고 있는 가나안 온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리라.
창세기 17장 4-8절 (공동번역성서)
<rowcolor=#000> 창세기 15장 1절[6]
אַחַ֣ר׀ הַדְּבָרִ֣ים הָאֵ֗לֶּה הָיָ֤ה דְבַר־יְהוָה֙ אֶל־אַבְרָ֔ם בַּֽמַּחֲזֶ֖ה לֵאמֹ֑ר אַל־תִּירָ֣א אַבְרָ֗ם אָנֹכִי֙ מָגֵ֣ן לָ֔ךְ שְׂכָרְךָ֖ הַרְבֵּ֥ה מְאֹֽד׃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가톨릭 새번역 개신교 개역개정
아브라함 혹은 이브라힘은 타나크(구약성경), 쿠란의 등장인물이며 히브리인아랍인, 에돔인의 공통된 조상으로 취급되며,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비교종교학에서는 이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고 한다.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은 99세 때 하느님으로부터 새로 받은 이름이며 본명은 '존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이다. 175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2. 가족과 친척

부친인 데라는 갈데아 우르 출신이었고, 그와 함께 하란으로 이주했다.

양자인 다마스쿠스 출신 하인 엘리에제르 외에 몸종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이스마엘, 사라와의 사이에서 차남 이사악을 낳았고, 사라와 먼저 사별한 후 말년에 맞아들인 후처 그두라에게서도 6명의 아들(시므란·욕산·므단·미디안·이스박·수아)를 얻었다. 조카로는 친형제 하란(הרן)의 자녀였던 밀가(מילכה), (לוֹט), 이스가(יסכה)가 있다. 여기서 밀가는 하란의 장녀로, 둘째 삼촌인 나홀(נחור)과 혼인하여 브두엘(בתואל)을 낳았다. 브두엘은 이사악의 부인인 리브가(רבקה)와 야곱의 장인인 라반(לבן)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나오는 내용을 보면 여러 이들은 기독교인들도 잘 모른다. 아브라함이 죽기 전 이들에게 재산을 쥐어주고 외지로 떠나게 했다는 내용밖에 없다. 자신의 사후 집안에서 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성격은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았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일은 저지르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창세기에서 나오는 내용을 보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깊고 견고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3. 생애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온 일족을 이끌고 고향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도시 우르케시딤(אוּר כַּשְׂדִּים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다. 아버지 데라(תרח, 테라흐)와 다른 친족들은 중간 지점인 하란에 남고, 아브라함과 롯의 가족만 가나안에 들어왔다가 기근이 들자 이집트로 떠났는데 아내 사라와 남매로 위장했다. 사실 이복 누이가 맞긴 하다.
"더구나 그 여자는 정말 나의 누이입니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달라서 내 아내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0장 12절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사라를 빼앗기면서 자기 목숨을 잃을까 봐 이런 비겁한 짓을 한 것이었고 아내를 파라오에게 맥없이 빼앗기고 만다. 이에 하느님이 파라오의 집에 저주를 내리자 파라오는 아브라함을 불러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질책을 한다. 그 후 나중에 그랄왕인 아비멜렉 앞에서도 똑같은 일을 저지른다.[7] 아비멜렉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져서 이때 사라가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을 밝힌다.

동시에 이를 달리 설명하면 하느님이 선택해서 쓰는 사람이 그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악하며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그 믿음을 의로 여기고 쓰신다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 전체를 관통하는 칭의 또는 의화를 대표하는 예 중의 하나이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와 네게브 지역에 거주했는데 롯과 땅 문제로 분쟁이 일자 아브라함이 롯에게 분가를 요청하여 롯은 소돔으로 떠나고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 다섯 나라의 왕들이 엘람

그돌라오멜[8][9]을 섬기다가 배반해서 그돌라오멜이 시날 왕[10], 엘라살 왕[11], 고임 왕[12]과 함께 다섯 왕을 싯딤 골짜기에서 무찌르고 소돔과 고모라를 약탈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롯도 이에 휘말려 포로가 되었다.[13] 아브라함은 동맹인 아모리인 마므레, 에스골, 아넬 형제와 손잡고 엘람 연합군의 뒤를 추격해 롯과 그 가족과 재산을 구출해냈다.[14] 이때 돌아오는 길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멜기세덱에게 노획물의 10분의 1을 주었는데, 이것이 십일조의 시초로 여겨진다.

하느님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하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말렸으나[15] , 하느님은 을 탈출시키고 두 도시를 멸하는 것으로 조치를 취했다. 천사가 탈출하면서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탈출하는 과정에서 롯의 처가 두고온 자신들의 재산이 아까워서인지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뒤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다.

훗날에 두 아들을 두는데 큰아들은 86세에 얻은 첩 하갈 소생의 아들 이스마엘, 작은 아들은 100세에 얻은 본처 사라 소생의 아들 이사악이다. 그 후 아이들이 성장하자 하느님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하여[16]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성경에서는 이사악, 쿠란에서는 이스마엘을 바치려 한다. 그러는 와중에 하느님께서 그의 상당한 믿음을 알고 천사를 보내서 그를 제지하고 대신할 제물인 흠 없는 숫양을 준 뒤[17]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많은 자손과, 그 자손들의 축복, 그리고 그 자손들의 나라에게도 축복을 해준다.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죽자, 사람들에게 자신은 외부인이자 나그네일 뿐이라 아내를 묻어 주기 위한 땅을 팔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위대한 지도자이며,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은 아무도 막지 않는다며 좋은 땅을 아무 곳이나 골라 써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부탁하여 막벨라 동굴을 팔게 해 달라고 한다. 마침 헷 사람들과 함께 있던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동굴이 있는 땅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줄 테니 장사를 지내라고 크게 소리친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절을 하고는 땅값을 받아야 아내를 묻을 수 있다며, 에브론이 마다하는데도 굳이 땅값을 치르려 하고, 에브론은 은 사백 세겔을 받고 마므레 동쪽의 막벨라에 있는 밭을 팔아 주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곳의 동굴에 아내를 묻었다. 이 동굴은 그 후 아브라함 집안의 가족묘가 된다.[18]

아브라함은 종손녀 리브가를 아들 이사악의 아내로 맞이하게 한 다음[19], 새 아내 그두라를 맞아들였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이사악에게 주었고, 죽기 전에 다른 아내의 아들들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동쪽으로 보내어 이사악과 멀리 떨어져 살게 했다. 아브라함은 175세의 나이로 평안히 살다 죽었고, 이사악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사라가 묻힌 막벨라 동굴에 묻어 주었다.

4. 영향력

파일:Children_of_Abraham.jpg
아브라함의 무릎에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슬림이 함께 앉아 있다.
12세기, 프랑스 Souvigny 성경 사본의 세밀화.
종교를 떠나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역사적 영향력을 고려해도 물론이거니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21세기에도 지구상 가장 강력한 교세를 자랑한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기독교가 24억 명, 그 다음으로 많은 이슬람의 18억 명인데 성경에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다."라고 약속하는데, 오늘날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들이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걸 생각하면 실제로 약속이 이루어진 셈이다.

학술적으로 조금 더 깊게 파고들자면, 창세기의 성조[20] 이야기부터가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여러 민족을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한 대가족으로 연결하는 모습을 보이며,[21] 특히 그중에서도 '이스라엘' 12지파의 선조로 묘사되는 야곱과 비교할 때, 아브라함은 특히나 민족'들'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더욱 부각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늘날 아브라함이 가진 상징적 위상과도 묘한 면에서 호환된다.

5. 기타

아브라함이 계속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라크(우르), 시리아 (우르케쉬) 또는 튀르키예(우르파)에 세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유대인들은 석유가 펑펑 나는 풍요로운 이라크 땅을 냅두고 왜 사막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면서 팔레스타인으로 옮겨가게 했냐고 불평한다.[22][23] 헌데 이스라엘 땅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된 상태.

아브라함은 이사야 41장 8절[24]에서 하나님의 친구라고 평가받고 있다. 아브라함이 죽어서 구원 받았다는 성경의 증언을 볼 때,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가 없어질 경우 수직적 관계에서 오는 권위에 의한 압박이 사라져 하나님과 인간은 친구 같이 격식 없는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25]

2020년 이스라엘 -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국교정상화 협정은 아브라함 협정으로 불리고 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서구권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데 아브라함과 아브람 둘 다 사용되고 있다. 아브라함을 사용한 유명한 인물은 단연 에이브러햄 링컨이고 아브람을 사용한 인물로는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및 주한미군 사령관을 역임한 크레이튼의 아들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등이 있다.


[1] 기독교에서는 이스마일이 아닌 이복형제인 이사악이 제물이다.[2] 마소라 본문(AD 9세기)의 족보를 바탕으로 한 연대[3] 70인역(LXX) 본문(기원전 3세기)과 사마리아 오경(기원전 3세기)의 족보를 바탕으로 한 연대[4] 유대인들의 달력에서 출애굽은 기원전 1310년의 사건이며, 아브라함은 이로부터 430년 전인 기원전 1740년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고 하기에 아브라함을 기원전 18세기의 인물로 보는 것은 유대인들의 연대기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대인들의 달력에서는 남유다의 멸망을 실제 멸망 시기보다 1세기 정도 이후로 보며, 유대인들 역시 이를 인정하지만, 이 이전의 시대의 연대들에 대해서는 실제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 없기에 유대인들의 연대기가 옳을 수도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며, 현대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기원전 18세기의 인물로 보고 있다. [5] 창세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문화적 특징들은 기원전 19-18세기 이후의 근동에서 확인되며, 고고학적 근거들은 창세기 속 아브라함의 이야기의 배경이 기원전 18세기임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6] 이 구절에서 아브라함이 받을 상이 큰 것인지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인지에 대해 번역이 갈리는데, 가톨릭 새번역, 개신교 새번역, 공동번역과 많은 현대 영어 번역(NRSV, RSV, NJB, NABRE, ESV, NLT)에서는 전자로 번역한다. 반면 개신교 번역본들 중에서 점유율이 가장 큰 개역성경, KJV, NIV에서는 후자로 번역한다. 이와 같이 번역이 갈리는 이유는 크다는 뜻을 가진 동사 'הַרְבֵּ֥ה'의 해석 방향이 다르기 때문인데, 전자의 해석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방패라는 말 다음에 오는 말을 별개의 문장으로 보고, 후자의 해석은 하느님 그 자체가 아브라함의 방패이고 상급인데 'הַרְבֵּ֥ה'를 그 상급에 대하여 부연설명하는 동사로 본다. 즉, 전자의 해석은 15장 2절에서 아브라함이 무엇을 줄 것이냐고 묻는 것의 문맥에 초점을 맞춘 번역이고, 후자의 해석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방패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상급 역시 방패와 병행하는 명사로 보는 번역이다. 아브라함의 반응을 볼 때 아브라함은 전자의 뜻으로 알아들었을 확률이 크지만, 어쩌면 시대적 한계로 현세 지향적 신앙을 가지고 있던 아브라함의 이해 수준에 맞춘 말인 동시에 지극히 큰 상급은 현세의 복이 아닌 하느님 그 자체라는 하느님의 본심을 표현한 중의적 표현일 수도 있다.[7] 나중에 이사악도 아비멜렉과 거의 같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같은 전승이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전승되다가 창세기에 함께 실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8] 엘람어와 아카드어로 기록된 문헌들이 발견됨에 따라, 그돌라오멜을 두고 원래 '구두르라가말'이 그 이름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라가말은 엘람족의 여신으로, 아슈르바니팔이 그 존재를 언급한다. 그돌라오멜은 '부하'를 의미하는 '구두르'와 '라가말'이 합쳐진 꼴로 '라가말의 부하'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대영박물관에 소장중인 기원전 7-6세기의 기록인 그돌라오멜 토판(Spartoli Tablets Collection)에서 구두르나훈테 2세(Kutir-Nahhunte II)를 구두르라가말로 기록하고 있다. 수칼마흐 왕조의 구두르나훈테 1세 (Kutir-Nahhunte I) 역시 구두르라가말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때문에 아브라함을 기원전 18세기의 인물로 보는 이들은 사실상 엘람이 성서 속 묘사대로 메소포타미아의 절대 권력 중 하나로서 군림했던 것은 구두르나훈테 1세와 그의 삼촌 시웨팔라르후파크(Siwe-Palar-Khuppak, 기원전 1778-1745년)가 통치하던 기원전 18세기가 유일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시웨팔라르후파크를 그돌라오멜과 동일시한다. 시웨팔라르후파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강한 왕이었으며, 마리의 짐리-림(Zimri-Lim, 기원전 1775-1761년), 바빌론의 함무라비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왕들이 그를 섬겼고, 마리의 짐리-림과 바빌론의 함무라비는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와 함께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국가인 에쉬눈나(Eshnunna)를 정벌하였다. 그의 치세 동안에만, 엘람이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에 광범위하게 간섭하며 전령과 사신들을 시리아의 에마르(Emar)와 카트나(Qatna)까지 먼 서쪽으로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정기적으로 가나안의 하솔(Hazor)까지 사절단을 보내고 가나안 지역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던 마리 왕국이 시웨팔라르후파크의 치세 동안 엘람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마리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가나안도 마리와 마찬가지로 엘람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한다[26]실제로, 당시인 엘람의 시웨팔라르후파크의 치세 동안 엘람의 사신은 에마르(Emar)에 이르러서, 그의 세 명의 종들을 카트나의 왕 아무트-피엘 2세(기원전 1772-1762년)에게로 보냈었고, 카트나의 왕 역시 엘람으로 두 명의 전령들을 보냈었다[27]. 하지만, 역사적으로 엘람은 에쉬눈나를 정복한 뒤 더 서쪽으로 진출하려 하다가 함무라비와 마리의 연합군에 의해 저지당했고,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주도적인 세력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리게 되었다. 사실상 공식적으로는 마리를 넘어서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며, 가나안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추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계에서는 엘람은 역사상 단 한 번도 가나안을 지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돌라오멜 토판(Spartoli Tablets Collection) 속 그돌라오멜은 바빌론을 약탈하고 바빌론을 일시적으로 통치했었던 엘람 왕 기원전 12세기의 슈트룩-나훈테(Shutruk-Nakhunte; 구두르나훈테 2세의 부친이자 전임왕)에 대한 기억으로 여겨지며[28], 고임 왕 디달과 동일시되던 투둘라(Tudḫula 또는 mTu-ud-hul-a)는 히타이트 왕 투드할리야가 아니라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센나케립(기원전 705~681년)을, 아리옥과 동일시되던 에리아쿠는 림신 1세가 아니라 중-아시리아 제국의 왕 투쿨티-닌우르타 1세(Tukulti-Ninurta I, 기원전 1243-12~1207년)을 , 암라펠은 함무라비가 아니라 바빌론의 갈데아인 왕 므로닥-발라단(마르둑-아팔-이디나 2세 Marduk-apla-iddina II, 기원전 722~710년)을 가리켰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모두는 바빌론을 한 번씩은 다스렸거나 정복하였거나 압제하였거나 성소를 약탈하고 신전의 신상들이나 보화들을 훔쳤었고, 또, 모두 비극을 맞이하였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Michael Astour는 이를 근거로 하여 창세기 14장이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로니아 유수기 동안 유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반-바빌로니아 선전(프로파간다)의 산물이라 제안하였다 [29].[9] 아브라함을 기원전 21세기의 인물로 보는 설에서는 그를 아카드 제국이나 우르 제3왕조 시절의 인물로 보는데,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창세기 14장 속 엘람, 시날, 고임, 엘라살의 왕들이 모두 사실은 아시리아 제국의 왕의 장수들이었으며, 소돔을 포함한 가나안의 도시들은 엘람이 아니라 아시리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고 기록하였기에 (The Antiquities of the Jews, Chapter 9 - The Destruction Of The Sodomites By The Assyrian War), 엘람 왕은 엘람의 장수로 해석하고 당시 왕들이 섬기던 제국은 아카드 제국이나 우르 제3왕조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고대 근동 역사상 엘람은 단 한 번도 가나안을 지배하지 못했지만, 아카드 제국, 우르 제3왕조, 고바빌로니아 제국은 가나안을 지배하며, 그곳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참고로, 아카드 제국의 나람신 왕은 엘람의 왕 키타(Khita)와 동맹 조약을 맺었으며, 우르 제3왕조의 슐기 왕은 엘람의 왕 리바눅샤바쉬(Libanukshabash)과 결혼 동맹을 맺었었다.[10] 시날의 왕 암라펠/아므라벨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로 추정되어왔다. 아므라벨이라는 이름은 "아므라비-엘", 곧 "아무라피(Ammurāpi; 함무라비의 원발음)-일루(엘; '주님/신'이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함무라비는 (나의) 주님이다"를 뜻하는 이름이기에 함무라비가 아니라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남부(시날)의 왕국 중 하나의 왕이었거나 함무라비의 후계자들(예: 삼수일루나) 중 하나를 가리켰을 수도 있다. 또한 함무라비와 동시대에 활동한 에쉬눈나의 이발피엘 2세(기원전 1779년 ~ 1765년)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었다.[30] 그러나 얌하드와 우가리트에 함무라비라는 다른 왕이 있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주장은 아니다.[31][32] 그리고 이발피엘 2세는 구두르나훈테 1세의 삼촌인 엘람 왕 시웨팔라르후파크에게 살해당했기에 구두르나훈테 1세가 왕이 되기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다른 학자들은 암라벨을 후대의 크테시아스(Ctesias)의 바빌로니아 왕 목록에 있는 이름 중 하나이자 히에로니무스의 《연대기Chronicon》에서 아시리아의 26명의 왕들 중 5번째 왕으로 기록된 아랄리우스와 동일시했다. 학자들 중에는 암라펠이 셈어 이름이지만, 수메르의 왕이자 우르 제3왕조의 왕이었던 아마르-신의 이름에도 사용된 "아마르 Amar"라는 요소와 "아-프-엘 a-p-l"이라는 요소로, 총 두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이름이라 제시하는 이들도 있으며,[33]. 주류 학계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비평적인 학자인 존 반 세터스는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에서 암라펠의 역사성을 거부하고 부정했다.[34] 참고로, 그돌라오멜 토판(Spartoli Tablets Collection) 속 그돌라오멜은 바빌론을 약탈하고 바빌론을 일시적으로 통치했었던 엘람 왕 기원전 12세기의 슈트룩-나훈테(Shutruk-Nakhunte; 구두르나훈테 2세의 부친이자 전임왕)에 대한 기억으로 여겨지며[35], 고임 왕 디달과 동일시되던 투둘라(Tudḫula 또는 mTu-ud-hul-a)는 히타이트 왕 투드할리야가 아니라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센나케립(기원전 705~681년)을, 아리옥과 동일시되던 에리아쿠는 림신 1세가 아니라 중-아시리아 제국의 왕 투쿨티-닌우르타 1세(Tukulti-Ninurta I, 기원전 1243-12~1207년)을 , 암라펠은 함무라비가 아니라 바빌론의 갈데아인 왕 므로닥-발라단(마르둑-아팔-이디나 2세 Marduk-apla-iddina II, 기원전 722~710년)을 가리켰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모두는 바빌론을 한 번씩은 다스렸거나 정복하였거나 압제하였거나 성소를 약탈하고 신전의 신상들이나 보화들을 훔쳤었고, 또, 모두 비극을 맞이하였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11] 엘라살의 왕 아리옥은 수메르의 도시 라르사의 왕으로 추정되어왔는데, 엘라살은 라르사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오기된 것으로 본다. 아브라함을 기원전 18세기의 인물로 보는 이들은 아리옥은 라르사의 왕 중 함무라비와 동시대 인물인 림-신 1세가 아리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림-신(또는 그의 형제 와라드-신)의 별칭이 아리옥과 유사한 발음의 이름인 에리-아구/아쿠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아리옥은 마리 문서에서 함무라비와 동시대 인물인 짐리-림의 부하로 언급되는 아리욱(Arriwuk)으로, 엘라살은 같은 시기의 마리 문서에서 일란-수라(Ilan-Sura)로 언급되는 마리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해 문서의 라멕 계시록/창세기 외경(Genesis Apocryphon, col. 21)에서는 아리옥을 카파토키아(Kappatuk; Cappadocia)의 왕으로 기록한다. 참고로, 그돌라오멜 토판(Spartoli Tablets Collection) 속 그돌라오멜은 바빌론을 약탈하고 바빌론을 일시적으로 통치했었던 엘람 왕 기원전 12세기의 슈트룩-나훈테(Shutruk-Nakhunte; 구두르나훈테 2세의 부친이자 전임왕)에 대한 기억으로 여겨지며[36], 고임 왕 디달과 동일시되던 투둘라(Tudḫula 또는 mTu-ud-hul-a)는 히타이트 왕 투드할리야가 아니라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센나케립(기원전 705~681년)을, 아리옥과 동일시되던 에리아쿠는 림신 1세가 아니라 중-아시리아 제국의 왕 투쿨티-닌우르타 1세(Tukulti-Ninurta I, 기원전 1243-12~1207년)을 , 암라펠은 함무라비가 아니라 바빌론의 갈데아인 왕 므로닥-발라단(마르둑-아팔-이디나 2세 Marduk-apla-iddina II, 기원전 722~710년)을 가리켰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모두는 바빌론을 한 번씩은 다스렸거나 정복하였거나 압제하였거나 성소를 약탈하고 신전의 신상들이나 보화들을 훔쳤었고, 또, 모두 비극을 맞이하였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12] 아브라함을 기원전 18세기의 인물로 보는 이들은 고임 왕 디달을 히타이트 신왕국의 초대왕 투드할리야 1세(기원전 17세기)나 히타이트 형성 이전의 투드할리야 왕의 오표기로 추정하며, 아브라함을 기원전 21세기의 인물로 보는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자그로스 산맥의 야만족인 구티(구티움; 구티족)의 왕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실제로, 구약 학자 월톤과 같이 고임이 구티움을 의미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37]. 사해 문서의 라멕 계시록/창세기 외경(Genesis Apocryphon, col. 21)에서는 고임을 메소포타미아 내에 있었던 국가로 기록한다. 참고로, 그돌라오멜 토판(Spartoli Tablets Collection) 속 그돌라오멜은 바빌론을 약탈하고 바빌론을 일시적으로 통치했었던 엘람 왕 기원전 12세기의 슈트룩-나훈테(Shutruk-Nakhunte; 구두르나훈테 2세의 부친이자 전임왕)에 대한 기억으로 여겨지며[38], 고임 왕 디달과 동일시되던 투둘라(Tudḫula 또는 mTu-ud-hul-a)는 히타이트 왕 투드할리야가 아니라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센나케립(기원전 705~681년)을, 아리옥과 동일시되던 에리아쿠는 림신 1세가 아니라 중-아시리아 제국의 왕 투쿨티-닌우르타 1세(Tukulti-Ninurta I, 기원전 1243-12~1207년)을 , 암라펠은 함무라비가 아니라 바빌론의 갈데아인 왕 므로닥-발라단(마르둑-아팔-이디나 2세 Marduk-apla-iddina II, 기원전 722~710년)을 가리켰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모두는 바빌론을 한 번씩은 다스렸거나 정복하였거나 압제하였거나 성소를 약탈하고 신전의 신상들이나 보화들을 훔쳤었고, 또, 모두 비극을 맞이하였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13] 나라 수만 세면 5:4지만, 엘람과 바빌로니아는 고대 근동의 손꼽히는 강국인 반면 저 다섯 왕은 사해 근처의 성읍국가들에 불과했다.[14] 수메르의 기록에 이것과 매우 흡사한 전투가 기록되어 있으며 거기서 활약한 사람으로 데라의 아들까지 언급하고 있으므로 전투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15] 처음에 감히 여호와 상대로 흥정을 했다. 의인 5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이 염치없게 자꾸 빌어서 50명에서 겨우겨우 10명까지 깎였지만 의 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타락한지 오래라 이미 구원하기 틀렸었다.[16]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다.[17] 여호와 이레(주님께서 준비하신다.)가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다. 야살의 책에서는 최초의 숫양이라고 기록되어있다.[18] 그 후 이 동굴에는 사라에 이어, 아브라함, 이사악과 그의 아내 레베카, 야곱의 첫 부인 레아와 야곱이 순서대로 묻혔다. 야곱이 사랑하던 둘째 부인인 라헬의 무덤은 베들레헴 외곽에 있다.[19] 아브라함이 사망할 당시의 나이는 175살. 이삭이 60살에 에사우와 야곱 형제를 낳았으니 이 들의 소년기 때까지는 함께한 셈이다.[20]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21] 예: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의 후손이다", "아람은 이스라엘의 장인의 후손이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이다".[22] 그런데 터키는 평야 혹은 교통이 발달한 지역이다. 즉, 외부의 침입을 받기 쉬운 지역이라는 뜻이다. 당장 봐도 터키는 동로마 제국에서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13번이나 공격당했던 곳이다. 그렇기에 만약 현대 시리아 혹 터키 지역에 유대 국가가 세워졌다면, 비교적 구석탱이인 팔레스타인에서와 달리 배타적인 유대인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 자체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23]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집트와 근동을 잇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와 같은 오리엔트의 강대국들과 이집트 사이의 각축장이 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기에 결코 유리한 지형은 아니며 실제로도 팔레스타인에 존재했던 에돔이나 암몬 같은 여러 민족들이 정체성을 잃고 아예 소멸했던 바 있다.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여러 나라들로 흩어진 후에도 유대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오래 유지한걸 보면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단순한 지리적 접근만으로 해석하기는 힘들다.[24]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25] 요한복음 15장 14절(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역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질서와 조화 안에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싶으시나,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에게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면 안 좋은 길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26] Kenneth Anderson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Wm. B. Eerdmans Publishing, 2003, p. 321.[27] Charpin, Dominique (2010). Writing, Law, and Kingship in Old Babylonian Mesopotamia. Translated by Todd, Jane Mari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SBN 978-0-226-10159-0. p. 124.[28] Hindel, Ronald (1994). "Finding Historical Memories in the Patriarchal Narrative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1 (4): 52–59, 70–72.[29] The Anchor Bible Dictionary, s.v. "Chedorlaomer"[30] Micael Roaf "Cambridge Atlas of Archaeology - king lists p 111[31] Robert North (1993). "Abraham". In Bruce M. Metzger; Michael D. Coogan (eds.). The Oxford Companion to the Bibl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 5. ISBN 0-19-504645-5.[32] Gard Granerød (26 March 2010). Abraham and Melchizedek: Scribal Activity of Second Temple Times in Genesis 14 and Psalm 110. Walter de Gruyter. p. 120. ISBN 978-3-11-022346-0.[33] Walton, John H., and Craig S. Keener. NRS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 Bringing to Life the Ancient World of Scripture. Zondervan, 2019. p. 39.[34] Seters, John Van (March 2014).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Echo Point Books and Media. ISBN 978-1-62654-910-4.[35] Hindel, Ronald (1994). "Finding Historical Memories in the Patriarchal Narrative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1 (4): 52–59, 70–72.[36] Hindel, Ronald (1994). "Finding Historical Memories in the Patriarchal Narrative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1 (4): 52–59, 70–72.[37] Walton, p. 39[38] Hindel, Ronald (1994). "Finding Historical Memories in the Patriarchal Narrative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1 (4): 52–59, 7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