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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사오

타나크에 따른 민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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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서 혹은 에사우 Esau
생몰 연도 ?~?
출생지 가나안
직업 사냥꾼
종교 야훼 신앙 → 가나안 다신교
부모님 이사악, 리브가
형제자매 야곱
자녀 5남
히브리어 עֵשָׂו
그리스어 Ἠσαῦ
영어 Esau
한국어 공동번역 성서 에사오
가톨릭 에사우
개신교 에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사악의 장남. 에돔 왕국의 시조.

2. 생애

창세기의 묘사를 보면 사냥을 좋아하고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어렸을 때 장자의 권리를 소홀히 여겨서 렌틸콩 수프[1]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쌍둥이 동생 야곱에게 팔았다.

아버지 이사악에게 편애를 받았는데, 어머니인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편애해서 후에 큰 비극의 시발점이 되었다. 에사오는 마흔 살이 되던 해 히타이트 사람 브에리의 딸 유딧과 히타이트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이는 이사악과 리브가에게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사악은 에사오가 장자이기에 그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리기 위해 야생 동물을 사냥해 별식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이를 엿들은 리브가가 양(염소 새끼)을 잡아서 별식을 만들고 야곱에게 양의 털(염소 새끼의 가죽)을 입혀서 보낸 것. 말년에 이사악은 눈이 매우 어두워져서 장님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에사오는 털이 많은 체질이었고, 야곱은 털이 없는 체질이라 그렇게 보낸 것. 야곱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 오자 이사악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기는 했다. 목소리는 야곱인데 만져보니 에사오라 하는 구절이 나온다. 하지만 이내 그에게 축복을 내려줬고, 뒤에 찾아온 에사오는 야곱이 어머니와 공모해서 자신의 축복을 가로챘음을 알고 슬퍼한다. 이에 이사악이 이리 대답한다.
39. 아버지 이사악이 아들에게 대답하였다. "네가 살 땅은 기름지지 않은 땅, 하늘에서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땅이다. 칼만이 너의 밥줄이 되리라.
40. 너는 아우를 섬겨야 할 몸, 너 스스로 힘을 길러 그가 씌워 준 멍에를 떨쳐 버려야 하리라."
창세기 27장 39절~40절
이에 분개한 에사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야곱을 죽일 것을 결심했다. 그것을 안 리브가는 이사악을 설득해 하란에 있는 자신의 오빠 라반에게 야곱을 피신시켰다. [2] 이때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 맞이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히타이트 출신 아내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본 에사오는 큰아버지 이스마엘을 찾아가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이스마엘의 장남)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야곱의 피신-재회 사이의 에사오의 행적은 창세기에 나오지 않지만,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여 큰 재산과 많은 부하를 거느린 세력가로 성장한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라반 밑에서 2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야곱은 우여곡절 끝에 두 아내와 수많은 하인, 대량의 가축을 소유한 대부호가 되었고,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아버지 이사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도중에 에돔 지방 세일 땅에 에사오가 있는 것을 알고 죽지 않을까 두려워하는데, 많은 선물들을 준비한 뒤 하느님에게 절실히 기도했다. 그날 밤 하느님과 씨름해 이스라엘로 개명하고, 에사오는 400명의 장정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나온다. 이스라엘은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다가갔고, 에사오는 야곱을 용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포옹하며 재회한다.

야곱은 에사오를 주인이라 부르며 선물을 줬는데, 에사오는 야곱이 귀향길에 갖고 온 선물[3]에 애착하지 않을 만큼 큰 부자가 되어 거절했지만, 자신의 호의를 받아들여주기를 바란다는 말에 선물을 받는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저를 아우로 여기시거든 제 선물(minchah)을 받아주십시오. 형님이 저를 이렇듯이 사랑으로 맞아주시니 형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마치 하느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잘 돌보아 주셔서 제 살림은 이렇게 넉넉하답니다. 그러니 제가 드리는 선물(berakah)을 받아주셔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33장 10-11절(공동번역)
여기서 minchah는 친구 특히 아랫사람이 드리는 선물을 일컫고, 여기까지야 야곱이 숙이는 입장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더 파격적인 표현은 선물과 축복을 동시에 일컫는 단어인 berakah이다. 이를 통해 야곱이 예전에 자신이 움켜쥐었던 축복의 선물을(27장 3-36절) 에사오에게 돌려주는 모양새로 화해가 되었다. 물론 야곱이 받은 축복이 취소되었다고 창세기 저자가 여겼을 리는 없지만, 형제간 불화의 결정적 원인이었던 축복 사건에 대해서 야곱이 용서를 청하는 방식으로 화해가 된 것.[4][5]

에사오는 "나와 동행한 사람들 가운데 몇을 너에게 남겨 주어야 하겠구나" 하고 말했지만 야곱은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인께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시기만 하면 저는 충분합니다"라며 거절했다. 에사오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수꼿(숙곳)으로 가서 집을 짓고 가축들을 위한 초막들을 만들었다. 후에 이사악이 죽은 후 둘이서 아버지를 집안의 가족묘 막벨라 굴에 안장했다.

성경에 따르면 에사오는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아내들을 맞이했다. 히타이트 사람 엘론의 딸 아다, 호리 사람 시브온의 손녀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바스맛이 그들이다. 아다 사이에서 엘리파즈가 있었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으며, 오홀리바마는 여우스, 야을람, 코라를 낳았다. 이들이 가나안에서 태어난 에사오의 아들들이다.

에사오는 자신의 식솔들을 데리고 야곱에게서 떨어져 세일의 산악 지방에 자리잡는데, 에사오가 후에 에돔이 된다고 한다. 에돔에 있는 동안 엘리파즈는 데만, 오말, 스보, 가아담, 크나즈라는 아들이 있었고 소실 딤나에게서 아말렉이 있었다. 르우엘은 나핫, 제라, 삼마, 미짜가 있었다. 에돔의 족장들은 에사오의 손자들이었다. 또 세일 땅은 호리 사람 세일의 자손인 로탄, 소발, 시브온, 아나, 디손, 에제르, 디산이 호리족을 이끌고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임금이 다스리기 전부터 에돔 땅은 다른 임금들이 다스렸다.

딤나, 알와, 여뎃, 오홀리바마, 엘라, 비논, 크나즈, 데만, 밉살, 막디엘, 이람이라는 족장이 거주지에 따라 본 에돔의 조상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사오는 축복을 잃어버린 당사자였지만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야곱의 선물에도 큰 관심이 없을 정도로 부유했고, 최소한 400명 이상의 무장한 장정이 그의 휘하에 있었다. 이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롯을 구할 때 동원한 장정 318명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반면에 야곱은 아버지에게 축복을 얻어냈지만 외삼촌 밑에서 14년 동안 부당한 노동 착취는 물론이고 결혼 사기까지 당하면서 에사오와는 판이하게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심지어 말년에는 편애하던 아들 하나를 애굽으로 떠나보내서 수년간 속앓이를 해야 했다.

멀리 본다면 최후의 승자는 후손을 잘 둔 야곱이겠지만 현세만 보면 축복에 어울리는 당사자는 에사오였다. 또한 이스라엘이 훗날 크나안을 정복하러 갈 때 에돔, 모압, 암몬은 이스라엘과 계통이 가까워 정복 대상으로 허락받지 못했는데 때문에 여호슈아 정복에서도 피해 본 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에돔 왕국은 이스라엘 왕국이 들어서자 내내 밀리다가 다윗 왕국에게 속국으로 복속당하고 말아 이사악의 예언은 거의 몇 백 년 만이긴 했었도 어쨌든 성취되고 말았다. 에돔이 적어도 이스라엘보다 문화적, 정치적, 군사적 진보가 대단히 빨랐던 걸 돌이켜볼 때 이는 에돔인들에게도 매우 의아스런 결과였을 텐데, 이유는 그래도 주도적인 지파 밑에서 연합하다가 한 왕조 밑에서 뭉친 이스라엘과는 달리, 에돔은 너무 오랫동안 집단 지도 체제가 지속되어 힘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게 주원인으로 파악된다.[6] 에돔 왕국의 상대적 약세는 생각보다 격차가 커서 이스라엘-유다 분리가 이뤄진 이후에도 내내 유다 왕국에게 대체로는 복속된 상태였다.

이 상태는 신바빌로니아에게 유대와 함께 병탄당해 사이좋게 나라 없는 백성이 될 때까지 무려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끝내 에사오의 후손들은 마카베오 전쟁 당시 하스몬 왕조에게 병탄당하고 전원 유대교로 강제 개종되어 유다에게 흡수되었고, 그것으로 에사오의 후손들은 독자적 정체성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즉 민족과 역사 자체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헤로데 왕조가 에돔 혈통이라고 공격당했던 건 이들이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왕조 자체를 죄악시하는 중상층 지식인들의 공격이 주된 이유였고 중하층은 헤로데 왕조의 혈통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해서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이사악의 예언은 성취된 게 맞다. 때문에 그의 삶은 오늘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이삭의 계보에서 태어난 장남이었음에도 그런 구별됨을 가볍게 여겼다. 얼마나 세상의 하나님 밖의 삶을 즐겼던지 장자권을 가벼이 여겨 팔아먹겠다는 말을 하고, 성적으로도 방탕한 삶을 살았다. 히브리서 12:17에선 에서가 슬피 울며 구해도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마음이 너무나 멀어져서 하나님의 죄로부터 사람을 억제해 주는 영향력, 양심을 자극해주는 힘이 점점 약해질 정도로 죄를 짓고 즐기는 삶 속에 거하였다는 것이다.[7] 그러다보니 울면서 비는 속에서조차 진실하게 반성하고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는 게 아닌 자기 연민, 세상 속 재물 같은 것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탈선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에서만의 문제가 아닌 전 인류의 공통된 문제이다. 그렇기에 전 인류를 위한 희생 제물로서 어린양(예수)이 필요했던 것이다.

에서가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빼앗긴 축복을 되돌려 받기 위한 눈물의 기도로부터 외면당했다는 것이다.(히12:17) 하지만 에서가 눈물로 갈구한 축복이란 결국 '지상에서의 축복'이었는데, 그 부분은 문서에 나와있듯 오히려 야곱보다 월등히 나았다. 즉, 정작 본인이 뺏긴 줄 알았던 축복은 사실은 받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후에 복을 받았다고 해놓고도 개고생(?)한 야곱을 보며 마음이 누그러져 용서가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님이 에서를 버렸다는 것은, 현생에서의 복을 거둬들인다기보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에서 에서를 주인공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아야 타당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적 역사란, 야곱을 봐도 알 수 있듯 매우 험난한 현생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에서가 바랐던 바도 아니었을 터이다. 결과적으로 에서 입장에서 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본인 대신 이어가 준 덕분에 본인이 그토록 원했던 풍족한 현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마태와 마가복음에선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제외한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동시에 고린도전서 6:9에선 속지 말 것을 강조하며 죄 속에 사는 자는 하나님 나라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을 가르친다. 자신이 모태 신앙이었건 얼마나 진지하게 기도를 한 적이 있건 간에 새로운 존재가 되어 구별된 삶을 살지 않고 여기에 나열된 죄를 상습적으로 짓고 있다면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8]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예수 믿고 천국 가면 되겠네” 같은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에서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부류들을 정면으로 저격한다. 디엘 무디의 일화#와 같이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설령 평범한 임종을 맞는다 해도, 지금 돌이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하지 뭐” 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죽기 전까지 무법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은 없다는 가치관의 세상과 매체와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 죽기 전이 되면 갑자기 예수를 믿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때즘이면 다음이 더욱 완고해져서 무신론자가 돼 있거나[9] 아니면 예수를 믿어보려 해도 회개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회개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기 쉽지만 이는 하나님의 선물에 해당한다.(행11:18, 히12:17) 또한 회개는 자신의 죄 됨과 구주의 필요성을 고백하지 않는 이에게는 주어지지 않으며, 거듭되는 죄는 그런 감각을 무디게 한다. 따라서 만약 자신이 복음을 접할 기회가 왔다면 그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당장 반응하고, 자신이 명목상 신자이긴 하지만 죄짓고 사는 생활이 교회 밖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1] 개신교 성경에선 팥죽이라고 번역했고 가톨릭 성경에서는 불콩죽이라고 옮겼는데, 팥죽은 개신교 성경 번역 당시 렌틸콩이 조선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에 색이 비슷한 팥으로 의역한 것이며 불콩은 렌틸콩의 한국 번역어이다. 렌틸콩이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2014년경부터 이른바 "수퍼푸드" 마케팅에 힘입은 것으로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고대 중동에서는 농경이 시작될 무렵 고대부터 중동에서 먹은 유서 깊은 음식이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죽이라고 하고 영어 성경에서는 스튜라고 하는데 사실 중동식 렌틸콩 수프들을 보면 죽 같기도하고 심하면 스프레드 같기도 한 묘한 질감이다.[2] 물론 명목상으론 이 고장 여자들에게 장가를 들지 말고 친척인 라반의 딸들 중에 아내를 맞으란 거였고, 덕분에 야곱은 단순히 도망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면서 떠났다.[3] 야곱이 에사오에게 바친 선물은 염소 220마리, 양 220마리, 낙타 30마리, 염소 40마리, 황소 10마리, 나귀 30마리 등 큰 선물이었다.[4] 사실 물질적으로만 봐도 기원전 유목민 시대에 짐승 550마리는 엄청난 선물이다.(참고: 욥 1장 3절)[5] 에사오가 야곱을 증오했던 이유 중 하나가 축복권을 가져감으로서 아버지의 재산 상속마저 빼앗겼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야곱은 20년 넘게 숙부의 집에 거주하여 자신의 재산을 불리긴 했지만 정작 아버지 이사악의 재산을 전혀 상속받지 않았고, 이 때문에 재산을 무사히 상속받은 에사오의 화가 누그러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20년이면 재산권은 에사오에게 완전히 귀속되었고 20년 전의 일을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해 주는 게 당연하다.[6] 에트루리아가 로마, 가야가 신라에게 결국 밀려버린 것과 근본적으로 이유가 같다.[7] 성경에 따르면 인격은 전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어떤 선도 행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돌아가고 사회질서도 존재하는 것은 죄를 어느 정도 선에서 억제하며 악한 자에게도 오래 참으며 억을 것을 주어 후대하는 신의 은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구원의 특별한 은혜와 대비되는 누구에게나 베풀어지는 은혜라 하여 일반 은혜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양심을 억누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나 하고 싶어 하는 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거짓을 스스로 믿기를 즐겨 한다면 그런 은혜를 점점 거두어들이고 말 그대로 자기 맘대로 살게 놔 두어 버리는데 이는 가장 무서운 형태의 심판에 해당한다. 모세가 앞에 섰던 파라오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완고하게(옛 성경엔 강퍅하게) 한다는(hardening) 묘사가 나오는데 이가 그런 케이스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도 이런 부분은 느끼는데, 그래서 인디언의 마음속 양심의 삼각형 이야기나 ‘죄도 1번 짓기가 어렵지 2번 짓기는 쉽다’는 말이 도는 것이다. 성경에서 늬우치지 않고 사는 이들을 가리켜 심판 날에 올 진노를 “쌓는다” 고 표현하는데, 각자의 소행에 따라 벌을 받을 것이라 이렇게 완고한 마음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다가올 심판이 더욱 클 것을 의미한다.[8] 에사우는 다들 알듯이 아브라함-이삭의 자손이고, 아담의 아들 카인은 아예 하나님과 1:1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였으나 회개하지 않고 지옥에 갔다.하나님의 역사는 사망의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회개했는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나마 카인의 경우는 아벨을 죽일 땐 악한 자에 속해 있었다고 묘사되며(요일 3:12) 그 후 방랑하다가 성경에서 묘사되지 않은 삶에서 하나님에게 돌아왔을 여지가 약간 존재하지만, 에사오는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고 하니 확정적이다.이는 하나님의 역사에서 등재될 기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미이지, 그 한 구절로 지옥 여부까지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예컨대,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이스라엘(원 가지)가 잘려나가 '버림받고' 이방의민족(접붙인 가지)으로 대신되었다고 나오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원가지인 본래의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스라엘의 타락은 이방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큰그림이었다는 표현까지 암시적으로 나온다(히11:25). 어느 한 구절의 표현으로 대상의 결과까지 예단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오류이다.[9] 무신론이 근대 국가의 형법상의 죄는 아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죄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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