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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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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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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seph_Overseer_of_the_Pharaohs_Granaries_(cropped).jpg
파라오의 곡물창고를 관리하는 요셉 (로렌스 알마 타데마 작(作))
출생지 밧단 아람
사망 이집트
가족 아버지 야곱, 어머니 라헬
형제자매 12명[1]
배우자 아스낫[2], 장남 므낫세, 차남 에브라임
종교 야훼 신앙(초기 유대교)

1. 개요2. 생애3. 특징
3.1. 예수와의 비교3.2. 지혜3.3. 성격3.4. 외모
4. 실존 여부5. 성공6. 대중 매체7. 색동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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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형들은 멀리서 알아보고 그가 다다르기 전에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 "야,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아무 구덩이에나 처넣고는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보자."
창세기 37장 18~20절 (공동번역 성서)
요셉이 그의 부모를 권좌에 모시니, 모두 엎드려 그에게 절을 하더라. 이때, 요셉이 "아버지, 이것은 이전 제 꿈의 해몽으로 주님께서 그 꿈을 실현시켰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은혜를 베푸사 감옥으로부터 구출하셨으며 사막으로부터 여러분을 오게 하셨습니다. 단지 사탄이 저와 제 형제 사이를 이간시킨 것뿐이었습니다. 실로 주님은 원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니, 실로 그분은 아심과 지혜로 충만하시나이다."
쿠란, 수라 유수프, 100아야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성경에서는 창세기의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은 '가 더하셨다'. 이 요셉의 이야기는 창세기의 가장 마지막 이야기이고, 그 다음은 출애굽기(탈출기)로 이어진다.

창세기 37장부터 나오는 요셉 이야기는 문학적 구성면에서 앞의 선조 이야기와 구분된다. 독립된 민담류의 단편적 이야기들로 짜인 앞의 이야기와 비교할 때, 요셉 이야기는 주제와 흐름이 매우 정교하고 일관되게 구성되어 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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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요셉은 노예 생활이라는 고난을 겪는 도중에도 보디발, 간수, 파라오 등 자신을 노예로 삼은 이집트의 사람들에게도 하나같이 신뢰를 받을 정도로 인복이 있고 인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요셉은 17살 때 자기 가족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 신학적인 해석에 따르면, 이 꿈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요셉이 하느님에게서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선택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3.1. 예수와의 비교

요셉의 생애를 살펴보면 예수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3] 행적이며 성품 등을 보면 다윗이 하느님 마음에 합한 자라 치면 요셉은 예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볼 수 있다.[4]

3.2. 지혜

꿈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가 해몽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바로에게 해몽을 해 준 직후 기근을 면할 방책까지 제시해 준 것[6]으로 보았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도 더불어 갖춘 것으로 묘사된다. 파라오 전권을 맡겨 통치를 시행하게 한 것으로 보아 정치 수완도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곡식을 많이 저장한 정도가 아니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치수와 개간, 농사 기술 개량까지 동원해 식량 생산에 국가의 총력을 쏟아부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집트판 관이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을 것이다.

창세기 47장에 보면 그가 기근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시행하는데, 차례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요셉의 정책은 일견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이는 일부 백성들에게만 이랬다는 것도 아니고 이집트의 모든 토지가 파라오의 소유가 되고 모든 백성들이 종이 되었다고 되어있다. 또한 성경 본문을 보면 이것이 창세기가 쓰여지는 시점까지도 이집트에서 시행되고 있는, 모든 농작물의 일부를 파라오에게 바치는 세금제도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는데, 즉 극심한 흉년기에 파라오가 모든 백성을 직접 먹여살리는 위업을 달성함으로써 파라오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고대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요셉은 다시 이 토지를 백성들에게 배분하고 종자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백성들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기보단 국가위기 후 재건 사업에 가깝다.

3.3. 성격

성서에는 현대적인 기준 혹은 당대 기준에서 봤을 때에도 굉장히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성인들 중에서도 많이 나오는 반면, 요셉은 현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도 별다른 죄를 짓지 않고 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다. 문제가 있다면 철없던 시절에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좀 우쭐하게 생활했던 정도로 그게 그다지 큰 죄라고 보기는 뭐한 데다 거기 대처하는 형들의 방법은 훨씬 더 죄악 되었던지라...

특히 성경에 나오는 유명인들과 비교해도 요셉이 의로운 인물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10] 믿음이 있었지만 행실에 대해 논란이 있던 성경 등장인물들은 대략 아래와 같다.

3.4. 외모

그런데 요셉은 아주 깨끗하고 잘생긴 사나이여서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주인의 아내가 눈짓을 하며 자기 침실로 가자고 꾀는 것이었다.
창세기 39장 6~7절

워낙 옛날 인물이라 외모에 대해 추측할 만한 것은 거의 없으나, 창세기 39장에 의하면,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려 했을 정도로 매우 잘생겼었다고 한다.[15] 애초에 친어머니 라헬부터가 빼어난 미인이니 요셉의 외모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4. 실존 여부

기원전 1446년(마소라 사본)에 430년을 더한 기원전 1876년인 제12왕조 시절이 셈족 유목민들이 나일 삼각주 동부 국경 지대에 처음으로 정착하던 시절이고, 그들의 정착지인 아바리스가 형성되던 시기인 것을 고려하면 요셉의 이야기는 이 초기 이주민들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해당 시기를 요셉 이야기의 배경으로 보는 이들은 요셉의 파라오를 세누스레트 2세아메넴헤트 3세로 식별한다.

기원전 1446년(마소라 사본)/1406년(70인역 사본)에 215년을 더한[16] 기원전 1661년/1621년이 이집트 북부 지방을 팔레스타인에서 온 유목민이 지배하고 있던 힉소스 왕조 시대인 걸 보면 팔레스타인 유목민 출신이 관료로 출세할 가능성은 있다. 심지어 힉소스 왕조의 왕 중에는 야쿱-하르(Yaqub-Har, 야곱의 영광)이라는 이름의 왕도 있었다. 하지만 '야곱'이라는 이름은 딱히 히브리인들만 쓴 것이 아니라 당시 셈어족 전반에서 널리 쓰이던 이름이었기에 확신할 수는 없다.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고대 이집트에서 왕궁과 수도가 모두 고센 땅(아바리스를 포함한 나일 삼각주 지역)에 있었던 것은 힉소스 왕조뿐이었으며[17], 이집트에 전차가 전파되어 상용화된 것은 힉소스 시대와 그 이후부터였기에 힉소스 시대의 인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힉소스 왕 중 최전성기를 누린 왕인 아포피스/아페피(기원전 1575-1540년)의 동시대의 상이집트(제17왕조)의 파라오였던 세누스레트 4세가 "기근으로부터 도시를 구한 자"라고 불렸기에[18] 학자들은 요셉이 아포피스/아페피의 치세 동안에 재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대인들의 달력에서 출애굽은 기원전 1310년의 사건이며, 아브라함은 이로부터 430년 전인 기원전 1740년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고 한다는 것을 근거로 요셉을 힉소스 왕조 직후 시대인 제18왕조 초기의 인물이었다는 설이 있으며, 이를 따르는 유대인들과 유대계 학자들도 있다[19]. 당시의 이집트의 수도는 남쪽의 테베였지만, 고센 땅의 아바리스에 이집트의 왕궁이 있었고, 전차도 상용화되었으며, 멘프레드 비탁이 창세기의 이야기에는 반 셈족 정서가 드러난다는 것에 부합하는 시대[20][21], 곧, 힉소스를 혐오하여 패퇴한 이집트 제18왕조의 시대였기에 상당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기도 하다.

유대 역사학자인 게리 A. 렌즈버그 교수는 요셉을 제19왕조의 파라오 세티 1세( 기원전 1294-1279년) 시절에 활동한 인물로 보는데, 이는 당시 수도가 힉소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삼각주 북동부에 위치했었으며, 창세기 47:11에서도 "라암셋(람세스)"라는 지명을 언급하기 때문에 그 배경이 제19왕조 때였을 가능성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22]. 여기서 더 나아가 이스라엘 크놀 교수는 제19왕조의 기근의 때에 파라오 십타와 섭정을 하였던 셈족계열의 관료인 바야를 요셉과 관련지었다[23]. 물론, 메르넵타의 비문이 기원전 1208/1207년의 것이기에 모순되어 보이지만, 게리 A. 렌즈버그 교수는 메르넵타의 비문 속 이스라엘이 이집트 내 거주하는 이스라엘 족속을 의미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24]. 참고로, 아바리스와 고대 이집트의 셈족 연구 최고 권위자인 멘프레드 비탁 교수와 게리 A. 렌즈버그 교수는 세트나크테 보다는 람세스 3세를 출애굽의 파라오로 보고 있다[25]

Donald Redford 는 "[요셉 이야기]를 역사로 읽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하였으며[26], Megan Bishop Moore와 Brad E. Kelle를 포함한 대다수의 학자들은 요셉 이야기 또는 출애굽을 포함하여 창세기 사건에 대한 성경 외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였는데[27], 창세기 속 요셉 이야기에서 기원전 8-7세기가 되어서야 일반화된 아랍인들의 무역과 낙타를 기반으로 한 무역상들이 고무, 향유, 몰약을 나르는 것을 언급한다는 것은 요셉 이야기의 배경이 중왕국 시대나 힉소스 왕조 시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28]. 이렇듯 주류학계에서는 요셉 이야기의 역사성은 부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요셉과 관련한 전승이 셈족계 유목민족인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지배했던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요셉의 이야기와 시누헤의 이야기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이 존재하기에 후자로부터 전자가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의 섭리로 여겨지는 이집트인 시누헤는 시리아-가나안으로 도망쳐 지배 엘리트의 일원이 되고 아내와 가족을 얻은 후 이집트의 가족과 재회한다. 신의 섭리로 여겨지는 시리아-가나안인 요셉은 이집트로 끌려가 지배 엘리트의 일원이 되고 아내와 가족을 얻은 후 그의 시리아-가나안의 가족과 재회한다.[29]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이야기는 여러 유사점을 가진 고대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로부터 후대에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34].

현대 학계에서는 요셉 지파나 요셉의 집을 므나쎄나 에브라임과는 무관한 독립적 세력이자 아마르나 서신 속 이집트의 지배 아래 가나안(가나안의 중왕 집권화되지 않은 지역)에서 권력을 누렸던 다국적/다민족/다지파 조직이나 연합과 비슷한 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30]. 실제로, 스가랴 10:6을 포함한 구약의 여러 구절들(여호수아 17:17 제외)에서 요셉의 집을 유다의 집에 경쟁 세력으로 기록한 것을 근거로 요셉의 집을 므나쎄의 집이나 에브라임의 집과는 개별적인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사무엘하 19:20에서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면서, 심지어 북쪽 지역도 아닌 남쪽의 예루살렘 인근 지역인 바후림(Bahurim) 사람이면서, 자신을 요셉 족속이라 소개하기도 하는데, 당시에는 에브라임의 여로보암이 왕조를 개창하기도 이전이기에 유다를 제외한 이스라엘을 요셉의 집이나 요셉 족속이라 칭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한다 [31]. 그렇기에, 요셉 족속이 므나쎄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로만 이루어진 세력이 아니라 다국적/다민족/다지파 조직이나 연합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고 한다 [32]. 특히, 여로보암 1세가 파라오 시삭에게 피신한 것은 요셉의 집이라는 세력이 이집트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이집트의 지배 아래 가나안에서 권력을 누렸던 세력이었음을 암시한다 [33]. 학자들은 이집트를 통치한 히브리인 요셉의 원래 이야기(원형)는 요셉 가문(또는 요셉의 집)이 가나안에서 누렸던 권위에 대한 “합법화 신화(지배권의 정당성을 위한 신화)” 역할을 하기 위한 이야기였을 것이며, 이후의 문학적 발전에서 이스라엘은 부족 연합으로 재구현되었고 야곱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인물이 요셉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족장으로 여겨지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34]. 성서의 역대상 7:20-22은 이집트에 있어야 할 에브라임의 아들들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산간 지방에서 "내려와" 가나안의 블레셋의 도시 가드의 사람들과 분쟁했음을 기록하는데, 이는 고대 기억을 담은 초기 전통에서는 요셉 이야기나 이스라엘의 기원 이야기가 애굽과는 무관했음을 보여주며, 나아가 요셉 이야기의 원형 역시 가나안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해석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요셉의 이름이 새겨진,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동전이 발견되기도 했다'는 등, 아예 성경상의 전설에만 나오는 인물로 치부할 수만도 없는 듯하다. 이 동전에는 2가지의 상형 문자로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는 그의 원래 이름인 '요셉'으로, 다른 하나는 파라오가 재무 장관이 된 그에게 선사한 이집트식 이름인 '사바 사바니'[35]로 새겨져 있었다고. 발견자는 이슬람교도라고 한다.관련 기사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를 믿지 않는데, 고대 이집트에는 동전이 없었으며 물품 화폐와 금속 덩어리 화폐 정도만 쓰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는 일정한 중량의 구리 덩어리를 '데벤'이라는 단위로 화폐로 사용하기는 했다.

5. 성공

요셉은 국내 개신교계에서 기복신앙적인 인물 해석을 시도하는 것을 비판할 때 종종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요셉은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기 계발적인 설교 시간에 다니엘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요셉은 흔히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 큰 꿈과 비전(vision)을 받아 간직한 꿈꾸는 자' 로 소개되며, 유능하고 출중한 수재이지만 그만큼 많은 시기와 모함을 받고, 특히나 무고하게 강간 미수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한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지만, 끝까지 자신의 비전을 지켜낸 결과 마침내는 세계 최강대국 이집트의 최고의 실권자 자리까지 오르는 출세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설교의 마지막에는 늘 "너희들도 요셉 같은 위대한 신앙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는 당부가 뒤따른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성경 인물들 중 목사들의 대표적 롤모델이 바울이라면, 평신도들의 대표적 롤모델은 요셉과 다니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요셉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단지 이상야릇한 '꿈'(dream)으로 여겼을 뿐이지, 그것을 자신의 '사명' 내지는 '비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 꿈이 뭔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마음에 기억해 두었던 사람은 요셉이 아니라 아버지 야곱이었다. 사실, 요셉은 종살이를 하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출세의 욕심을 드러냈던 적이 없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그가 "나는 히브리 사람으로 감옥에 들어올 만한 잘못도 한 적이 없으니, 여기서 나가면 꼭 나를 이 집(보디발의 집)에서 구해내 달라"고 신신당부하던 대목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가 꿈꾸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절을 받는 성공한 삶이 아니라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와 상봉하고 형들에게 용서를 구한 후 예전처럼 오순도순 사는 소박한 삶이었다.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면 그가 자신의 성공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보디발의 아내나 술 맡은 관원장은 공통적으로 요셉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지칭하는데, 그가 이집트인들과 문화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켰음을 보여준다. 요셉에게 이집트는 자신이 출세할 무대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이역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파라오에게 7년의 흉년을 예언하면서도 요셉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그의 지혜에 경탄한 파라오와 신하들이 만장일치로 그를 총리로 임명했으니, 요셉은 그야말로 얼떨결에 생각지도 않았던 벼락출세를 한 것에 가깝다. 자신의 삶의 역경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파라오에게 하사받은 부인에게서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얻은 이후에야 비로소 이해하며,[36] 이때부터 비로소 그가 이집트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후 자신의 형들이 자기 앞에 머리를 조아렸을 때, 요셉은 그때서야 자신의 어릴 적 꿈을 다시 떠올리고 깜짝 놀라게 된다. 이것은 요셉이 흔히 알려진 것 같은 '비전의 사람'이 아니었음을 명백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6. 대중 매체

요셉을 다루는 작품에선 보디발의 아내를 간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부분을 재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로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커리어 초창기에 작곡한 '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라는 뮤지컬이 만들어져 한국에서도 공연하였다. 송창의, 조성모 등이 출연. 왜인지 우리나라에선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라는 발번역으로 붙인듯한 이름으로 공연되었다. 하지만 등장하는 노래들은 번역과 개사가 고퀄리티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시즌이 바뀌면서 점점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2012년도 공연의 가사가 가장 높은 평을 받았다.

7. 색동옷

요셉이 입었다는 "케토넷 파심"은 사실 색동옷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케토넷 파심의 올바른 의미는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오는, 소매와 옷자락이 매우 긴 외투"이며, 당시에는 신관이나 집안의 장자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야곱은 라헬을 정실(첫째 부인) 취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첫째 부인이 레아였음에도 레아가 낳은 아이들의 이름에서 레아가 박대받는 듯한 묘사가 있고, 야곱이 함께 잘 사람을 라헬이 결정하거나 라헬이 남편을 차지하였다고 레아가 말하는 부분도 있으며, 야곱이 라반에게서 벗어날 때에도 아내들을 부를 때 '라헬과 레아'를 불렀다고 언급되는 등 라헬이 정실인 듯한 묘사가 등장하고 있다. 요셉은 이러한 라헬이 직접 낳은 첫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요셉을 마음 속으로는 장자로 여기고 있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후 야곱이 요셉에게 죽기 전 유언을 할 때, 요셉의 아들인 므낫쎄, 에브라임에게 축복을 내리면서 장자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41]

그러니 야곱이 요셉에게 케토넷 파심을 입혔을 때 형들이 분노한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은 순서로 따지면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는데 11번째 아들이 10명의 형들을 제치고 장자 취급을 받으며 심지어는 형들과 부모가 요셉에게 절을 한다는 꿈까지 말했으니 형들에게 적잖은 미움을 불러 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당시에는 염색 기술이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었으며, 로마인들조차도 수백 년 후에야 보라색 염료를 발견하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정도였는데, 유대 민족이 "수많은 색"으로 염색된 옷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만 어찌 되었든 야곱이 요셉에게 준 옷이 형들의 옷에 비하면 분명 화려했을 것이며, 야곱이 형들보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던 것은 확실하다.

심지어 라헬의 아들들을 향한 야곱의 편애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져서 아들들이 이집트에 곡물을 사러 다녀오게 할 때에도 라헬의 다른 아들이자 당시 10명의 아들을 키우고 있을 정도로 장성했던 33세의 베냐민을 제외하고 보냈다.[42] 또한 이집트의 총리가 야곱의 다른 아들인 시므온을 마치 인질인 것처럼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을 때에도 야곱은 베냐민만은 계속 보내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먹을 게 없어서 다들 굶어 죽기 직전이 되었을 때에야 베냐민을 보내게 되었으며 이 때에도 베냐민을 무사히 데려오겠다는 유다의 보증까지 받고 보냈다.[43]

한국어 번역판에는 '장신구를 단 옷'(공동번역성서), '화려한 옷'(새번역), '채색옷(개역한글)'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때때옷'[44]으로 되어 있는 번역도 보인다. 가톨릭 성경에는 '긴 저고리'라고 되어 있다.
[1] 친동생 베냐민과 이복 형 10명, 이복누나 디나가 있다.[2] 이집트의 대사제 보디베라의 딸.[3] 아벨이나 이사악, 모세, 다윗, 요나, 예레미야 등 구약의 인물들도 예수와 흡사한 면도 있지만, 요셉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자세하게 나타낸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4] 공교롭게도 예수의 아버지 또한 이름이 요셉이다.[5]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팔았던 넷째 형 유다가 예수의 조상이다.[6]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해 이집트 땅을 돌보게 한 다음, 풍년 동안 곡물을 예비해 흉년을 막도록 제안한다.[7] 곡식을 주는 대신 백성들을 파라오의 종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8] 유대교 전설을 담은 책인 <미드라쉬>에서는 이름이 '줄레이카'라고도 한다. 이집트 왕자 2: 요셉 이야기에서도 해당 이름으로 잠시 언급된다.[9]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형들을 용서해 준 사실로 미루어 봤을 때 보디발의 아내에게도 복수하지 않고 용서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특히 구약에는 음녀는 처벌이 엄청나다. 요셉이 직접 처벌하지 않았을테지만 보디발이 아내와 더이상 동침하지 않았던가 직접 처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셉에게 잘보이기 위해[10] 다른 한 명은 선지자 다니엘이 있는데, 그도 요셉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적이 있었다. 바빌론으로 끌러왔을 때 세 친구들과 함께 궁중의 술과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물과 채식만 했다.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꿈과 벨사자르의 궁궐에 기록된 문장을 해석하여 총리대신으로 올라갔다. 말년에 다리우스 1세 때 신하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던졌으나 하느님이 보낸 천사의 보호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11] 다윗이 가장 평가가 좋고 그다음은 그나마 요시야 정도가 '다윗과 같았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그 다윗조차 평가는 높아도 이런저런 실책을 저질렀다고 기록된 반면 요시야는 비판점이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도 요시야는 시대도 잘 타고 시류도 잘 읽었기에 잘하면 명군이 될 수 있었는데 므깃도에서 허망하게 죽었고 자식들이 개판이었다.[12] 이에 대해서 역사적으로는 결혼 동맹이라고 많이들 본다.[13] 그나마도 아버지인 다윗이 열심히 하느님을 섬겨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리는 거로 끝난 거라고 한다.[14] 요시야 대에 이르러서 옛 이스라엘 왕국을 수복하려는 시도를 해보기는 했는데 이에 노한 이집트 왕이 요시야를 죽여버려 이루지 못했다.[15] 그외에도 성경에서 외모가 준수하다고 언급된 인물들은 요셉, 다윗, 엘리압, 압살롬 등등이 있다.[16] 바울은 아브라함의 언약으로부터 모세의 출애굽까지가 430년이라 기록했으며, 마소라 사본보다 900년이나 더 이전의 기록인 70인역 사본에는 애굽에서의 거주 기간이 아니라 "가나안"과 애굽에서의 거주 기간이 약 430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언약으로부터 야곱의 애굽으로의 이주가 215년(아브라함의 언약~이삭의 출생: 25년 + 이삭의 출생~야곱의 출생: 60년 + 야곱의 출생~야곱의 애굽으로의 이주: 130년)이기에 야곱의 애굽으로의 이주로부터 출애굽까지의 기간은 215년(430 - 215 = 215)이 된다.[17] 제19왕조 역시 왕궁과 수도가 모두 고센 땅에 있었으며, 성서에서 람세스의 땅이라고 언급하기에 람세스 2세나 메르넵타의 치세 때 가나안에서 기근을 피해 이주한 셈족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18] 물론, 제16왕조의 파라오인 네페르호테프 3세(기원전 1629-1628년)도 "기근으로부터 도시를 구한 자"라고 불렸다.[19] [20] 물론, 멘프레드 비탁은 요셉 이야기의 배경이 외국인 혐오 정책을 펼쳤던 제20왕조의 세트나크테 (1189–1186 BC)의 치세 동안에 부합한다고 주장하였다.[21] Bietak, Manfred (2015). "On the Historicity of the Exodus: What Egyptology Today Can Contribute to Assessing the Biblical Account of the Sojourn in Egypt". In Thomas E. Levy; Thomas Schneider; William H.C. Propp (eds.). Israel's Exodus in Transdisciplinary Perspective: Text, Archaeology, Culture, and Geoscience. Springer. p. 20. ISBN 978-3-319-04768-3.[22] Rendsburg, Gary. "The Pharaoh of the Exodus – Rameses III - TheTorah.com". www.thetorah.com[23] Israel Knohl, "Joseph and the Famine: The Story’s Origins in Egyptian History" TheTorah.com (2019).[24] Gary Rendsburg, “The Date of the Exodus and the Conquest/Settlement: The Case for the 1100’s,” Vetus Testamentum 42 (1992), pp. 510-527.[25] Bietak, Manfred (2015). "On the Historicity of the Exodus: What Egyptology Today Can Contribute to Assessing the Biblical Account of the Sojourn in Egypt". In Levy, Thomas E.; Schneider, Thomas; Propp, William H. C. (eds.). Israel's Exodus in Transdisciplinary Perspective: Text, Archaeology, Culture, and Geoscience. Springer. pp. 17–37. ISBN 978-3-319-04768-3.[26] Redford, Donald B. (1992). Egypt, Canaan, and Israel in Ancient Tim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978-0-691-03606-9. p. 429.[27] Moore, Megan Bishop; Kelle, Brad E (2011). Biblical History and Israel's Past: The Changing Study of the Bible and History. Wm. B. Eerdmans Publishing. ISBN 978-0-8028-6260-0. p. 93.[28] Finkelstein, Israel; Silberman, Neil Asher (2002). The Bible Unearthed. Free Press. ISBN 978-0684869124. p. 37.[29] Meltzer, Edmund S. "In search of Sinuhe: "What's in a Name?"".[30] Lauren Monroe. “Stripping off the Robe: New Light on ‘Joseph the Hebrew’ and the bet-yosef”, in The Joseph Story between Egypt and Israel. 2021.[31] Lauren Monroe. “Stripping off the Robe: New Light on ‘Joseph the Hebrew’ and the bet-yosef”, in The Joseph Story between Egypt and Israel. 2021.[32] Lauren Monroe. “Stripping off the Robe: New Light on ‘Joseph the Hebrew’ and the bet-yosef”, in The Joseph Story between Egypt and Israel. 2021.[33] Lauren Monroe. “Stripping off the Robe: New Light on ‘Joseph the Hebrew’ and the bet-yosef”, in The Joseph Story between Egypt and Israel. 2021.[34] Lauren Monroe. “Stripping off the Robe: New Light on ‘Joseph the Hebrew’ and the bet-yosef”, in The Joseph Story between Egypt and Israel. 2021.[35]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사브낫바네아로, 가톨릭 성경에서는 '차프낫 파네아'로 나온다. 이름의 의미는 야훼 하느님께서 듣고 계시다라는 뜻이라고. 당시 파라오가 요셉이 믿고 있는 하느님을 그만큼 믿고 있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36] 뒤집어 말하자면 이때까지 요셉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성공하고자 하는 호승심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 철없던 시절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었다. 자녀를 얻고 자기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요셉은 그를 옭아매고 있었던 과거의 아픔을 비로소 극복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무대가 가나안이 아니라 바로 이 이집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37] 한국에서는 <이집트 왕자 2: 요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38] 요셉의 아내 아스낫이 메인 히로인으로, 장인어른 보디베라 대사제는 반동 인물로 등장했다.[39] 이 사람은 요셉의 장인어른 보디베라 대사제의 부하로, 보디발 부부와 안면이 있었다. 이집트로 끌러온 요셉을 지나치게 괴롭힌 데다가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살인 미수를 저지르기까지 했다.[40] 그 시기에는 요셉이 형제들과 화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41] 장자에게는 2배의 유산을 주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요셉의 두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상속하듯 축복을 내렸다. 이 때의 에피소드로, 원래라면 장자인 므낫쎄에게 오른손으로 축복해 장자로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요셉도 오른쪽에 므낫쎄를, 왼쪽에 에브라임을 데려갔지만 야곱은 손을 교차해서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에게 축복을 내렸다. 이는 이후 이스라엘 왕국에서 에브라임 지파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42] 야곱은 요셉의 아우 베냐민만은 형들에게 딸려 보내지 않았다. 베냐민을 같이 보냈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할까 보아, 겁이 났기 때문이다.(새번역 성경 창세기 42:4)[43] 유다가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말하였다. "제가 막내를 데리고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곧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우리도, 아버지도, 우리의 어린 것들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아이에 대해서는, 저에게 책임을 물어 주십시오. 제가 그 아이를 아버지께로 다시 데리고 와서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한다면, 그 죄를 제가 평생 달게 받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지 않았으면, 벌써 두 번도 더 다녀왔을 것입니다."(새번역 창세기 43:8-10)[44] '꼬까옷'과 비슷한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