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 강혜장숙여비 한씨 - 성종의 외조부 한확의 누나이자, 명나라 영락제의 후궁. 빼어난 외모로 공녀에 뽑혀 영락제의 후궁이 된 뒤, 총애를 받았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기품있고 선연(嬋娟)한, 즉 품위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쉽게 말해 단아하고 귀티나는 미인이었던듯하다.
- 경빈 박씨 - 중종실록에 자색이 고와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 경화왕후 - 고려 예종의 1비로 용모와 태도가 단정하고 아름다워 왕에게 크게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 고려비(高麗妃) 한씨 - 명나라 홍무제의 후궁. 고려 인으로, 고려 출신 공녀로 보인다. 15황자 요간왕(遼簡王)과 14황녀 함산공주(含山公主)를 낳았다. 명나라 역사서인 명사(明史) 황자전(皇子传)의 요간왕 주식(朱植)편에서, 그의 생모 한씨를 언급하며 生母韓氏為高麗美女,姿色嬌美,受明太祖寵愛,被封為妃( 생모 한씨는 고려의 미인으로, 자색이 아리따워서 명나라 태조의 총애를 받아 비妃로 봉해졌다)' 라는 말을 덧붙여 그녀의 미모를 언급하고 있다. 홍무제의 후궁 중 사서(史書)에 성목귀비와 함께 유일하게 아름답다라는 평가가 적혀져있는 후궁이다.
- 공신태비 한씨 - 전술한 강혜장숙여비의 여동생이자 명나라 선덕제의 후궁. 역시나 언니처럼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명나라 선덕제의 총애를 받아 후궁으로 책봉하였다. 여담으로 그녀의 오빠 한확 역시 미남으로, 한확의 잘생긴 외모에 호감을 가진 영락제가 부마로 삼으려고했으나, 한확은 조선의 노모(老母)가 있다고하면서 거절하였다고한다.
- 관나부인 - 고구려 중천왕의 소실로 기록에 따르면 9자[1]나 되는 장발에 얼굴이 아름다워서 황후 연씨가 투기심에 "서위가[2] 장발미인을 찾으니, 관나부인을 갖다 바치라"고 했다고 한다. 중천왕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훗날 관나부인이 지나치게 왕후를 경계하여 참소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바다에 던져져서 죽였다.
- 귀비 - 박사화의 첩. 성종실록에 "자색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김정란 - 신라 원성왕 때 인물인데 당나라에 공녀로 바쳐졌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그녀는 신라 최고의 미녀였고 몸에선 향기가 났다고 한다.
- 남모와 준정 - 신라 진흥왕 시대에 두 여인을 원화로 뽑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놓고 신라 최고의 미녀라고 써 있다. 아이돌 비슷한 역할로 젊은이들을 모으기 위해 뽑았으니 당연한 일이다.[3] 하지만 서로 질투해 결국 준정이 남모를 죽이는 사고를 쳐서 결국 원화가 없어졌고, 여인 대신 곱상한 꽃미남을 대신 뽑은 게 화랑이다.
- 대씨 부인 - 대집성의 딸. 그녀의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녀가 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우가 계실로 맞아들였다고 한다.
- 덕녕궁주 - 고려 인종과 공예태후의 딸로 용모가 아름답고 거동이 우아했다고 한다.
- 도미 부인 - 기록에 따르면, 백제 개로왕이 "도미 부인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고 했다고 한다.
- 도화녀 - 삼국유사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사량부의 서녀로 미모가 뛰어나 '복숭아꽃 여자'라는 뜻에서 도화녀(桃花女)라도 불리었다고 한다. 예쁘다고 유명해 진지왕이 그녀를 불러 수청을 들라고 명했으나 그땐 이미 그녀는 유부녀인터라 "남편이 2명일 수는 없다"고 거절했지만 진지왕이 "그럼 네 남편이 죽으면 수청을 들겠냐"고 묻자 바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후 왕은 폐위되어 죽고 왕이 죽은 2년 뒤 그녀의 남편도 죽었다. 그 후 "약속을 지키라"며 그녀에게 진지왕의 귀신이 찾아오자 그녀는 전부 사실대로 부모에게 고하였고, 부모는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하여 딸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왕은 7일 동안 머물렀는데 7일 후에 자취가 별안간 없어졌으며 그때 그녀가 임신해서 낳은 아이가 비형랑이다.
- 동화 - 최충헌의 여종으로 고려사에 얼굴이 예뻤다고 기록되어 있다.
- 명성황후 - 그녀를 실제론 본 사람들이나 당시 기록에 따르면, "키가 좀 작긴 해도 흑발흑안에 흰 피부를 지닌 날카롭고 총명한 인상을 주는 우아한 미인"이라고 한다. 조선조 23대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 외증손녀 윤백영이 어릴 적 그녀를 실제로 본 어른들에게 "명성황후의 얼굴은 갸름하고, 콧날이 오똑하고, 입매가 야무지고, 눈이 가늘고, 살갗이 하얀 분이었는데 단지 눈동자에 실핏줄이 서 있는 바람에 오래 못 살 '언짢은 상'으로 어른들이 걱정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으며 그녀를 실제로 본 영국인 이자벨라 버드 비숍은 자신의 저서에 명성황후를 가리켜 "왕비는 40살을 넘긴 듯했고 퍽 우아한 자태의 늘씬한 여성이었다. 피부는 너무도 투명하여 꼭 진줏빛 가루를 뿌린 듯했다.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우며 예지가 빛나는 표정이었다"라고 기록했고 벙커부인은 "왕비의 얼굴은 미소 지을 때면 특히 아름다움에 가득 찼다"고 언급했다.
- 문명왕후 -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매줄 때, 그녀의 아름다움이 눈부실 지경이어서 김춘추가 한눈에 보고 반해 청혼했다고 한다. 문명왕후의 오빠인 김유신도 화랑 출신인 걸 보면 집안이 전체적으로 외모가 뛰어났던 모양.
- 선덕여왕 - 지귀 설화에 따르면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 선화공주 - 진평왕의 막내딸(삼녀)이자 백제 무왕의 왕후. 삼국유사에 외모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 있다.[4]
- 설씨녀 - 신라 진평왕 때의 인물. 경주 율리 출신으로 얌전한 성격에 용모가 아름답고 단정해, 그녀를 본 사람들은 전부 그녀에게 반했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군량미를 지키는 역으로 군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고민에 빠진 그녀를 위해 가실이란 착한 소년이 그녀의 아버지를 대신해 군대를 갔고 그녀와 거울을 나누며 약혼했다. 그러나 일이 생겨 제때 제대를 시켜주지 않는 바람에 3년이여야 할 군 생활이 6년으로 늘어나 가실이 돌아오지 못하자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딴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 했고 그녀는 억지로 결혼하느니 도망치려 했지만 다행히 결혼하기 전 가실이 돌아와 그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때 가실은 너무 고생해서인지 외모도 옷도 너무 초라해져 아무도 못 알아보았는데 군대 가기전 받은 거울 반쪽으로 인해 자신이 가실이란 걸 알릴 수 있었다고 한다.
- 소혜왕후 - 덕종의 왕비이자, 성종의 모후. 그녀의 외모를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이 빼닮았다고하는데, 월산대군은 동생 성종이 외모 찬양 시[5]를 쓸 만큼 당대의 미남이었다. 소혜왕후의 아버지 한확 역시 미남이며,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두 고모들도 빼어난 미인이었다.
- 소용 임씨 - 광해군의 후궁. 광해군 일기에 따르면 자색이 있고 아첨을 잘해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 소원 신씨 - 광해군의 후궁. 광해군 일기에 따르면 인빈 김씨의 조카로, 미색이 있는데다 총명해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 수로부인 - 신라 시대 성덕왕때의 진골 귀족인 김순정의 부인. 헌화가, 해가가 그녀 때문에 지어진 향가. 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모가 매우 뛰어나 용과 같은 신물들에게 자주 납치당했다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람의 딸은 경덕왕의 왕비였다가 아들을 못 낳고 폐비가 되었다.
- 숙의 나씨 - 어려서부터 온유한 성품과 고운 자질,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외모로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하였으며 이것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1507년(중종 1) 중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 순빈 봉씨 - 실록에 따르면 "목이 길어 품위가 있고, 허리는 버들처럼 가늘어 세유유하고, 특히 살결이 고와 부드럽기가 비단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자빈로 간택될 당시 이전 세자빈의 일[6] 때문에 외모를 상당히 신경 써, 대놓고 미모도 간택기준에 들어갔다고 한다.[7]
- 승평부대부인 박씨 - 월산대군의 부인. 연산군일기 의하면 미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 어리 -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색이 있다고 기록했다. 양녕대군과 스캔들을 일으켜 아이까지 낳았지만 훗날 자살한다.
- 어우동 - 조선시대 성종 때의 인물로 수많은 남자들과 간통을 해 사형에 처해졌다. 동시대의 학자였던 성현이 썼던 용재총화[8]에 자색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녀를 따르던 계집종도 미인이었다고 적혀있다.
- 애복 - 조선시대 금구현의 아전의 딸로 실록에 그녀가 뛰어난 자색을 가졌으며 미인이라고 소문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연창궁주 노씨 - 고려 정종의 후궁으로 그녀가 매우 아름다워서 정종이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 영빈 이씨 - 조선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의 어머니이자, 정조의 할머니. 영조의 후궁 중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그녀의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화협옹주가 어머니 선희궁을 닮아 미색이었다' 라는 대목이 있다.
- 옥례 - 열녀로 실은 평범한 민가의 아낙네였는데 장업동이 그녀를 강간하려하자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다가 딸과 죽었다고 한다. 숙종실록에 자색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 이난향 - 구한말의 인물로 명월관 출신의 명기이자 하규일의 제자였으며 조선권번의 대표이사. 기록에 따르면 얼굴이 잘나고 걸음거리가 예쁜데다가 목소리가 맑을 뿐만 아니라 하나 물으면 열을 알 정도로 머리도 좋았다고 한다.
- 정원과 포정 - 신라시대 성덕왕 때의 인물들로 둘 다 정사기록에 미녀라고 명시되어있다. 정원은 대사 충훈의 딸이고 포정은 천승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둘 다 왕족이었으며 당나라에 공녀로 바쳐졌다고 한다.
- 정난정 - 명종실록에 영리하고 미모가 뛰어났으며 재치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 진덕여왕 - 기록에서 그녀의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적혀있다.
- 초요갱 - 조선의 기생으로 박연의 제자이자 평원대군의 첩. 남편이던 평원대군은 물론 시숙인 화의군과 계양군이 그녀를 좋아해 시숙인 그들과 간통한데다가 그녀의 남편인 평원대군은 의처증이 심해 그녀와 같이 있었단 이유로 노비까지 죽였다고 전해지며 그것덕분에 실록에 16번이나 등장한다.[9] 세종실록에 따르면 옥부향, 자동선, 양대랑 더불어 조선 최고의 기생이었다고 한다.
- 한주 - 삼국시대 인물로 안장왕의 아내이자 고구려 왕후였다. 정사인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편에서 그녀를 미녀라고 명시했으며 야사집인 서곽잡록과 해상잡록에서는 그녀를 절세미녀라고 칭했다.
- 홍천기 - 용재총화에서 당대절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화비 홍씨 - 고려 충혜왕의 후궁으로 그녀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의 아버지인 홍탁에게 옷과 술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 화협옹주 - 한중록에서, '선희궁을 닮아 미색이다' 라는 대목이 있다.
- 후녀 - 고구려의 인물로 산상왕의 소후이자 동천왕의 모친. 고구려 관노부 주통촌 출신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얼굴이 아름다웠다고 하며 도망간 제사용 돼지를 잡아줘 이를 눈 여겨본 신하가 산상왕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줘 산상왕과 동침했다고 한다. 산상왕의 첫째 왕후인 왕후 우씨가 질투해 자객을 보내서 임신한 그녀를 죽이려 했지만 그녀는 자객에게 너희들이 왕의 아이를 임신한 나를 죽이면 역모죄나 다름없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죽이지 못했다고 한다.
- 희빈 장씨 - 외모를 잘 언급하지 않는데다, 언급하더라도 평가가 매우 박한 조선왕조실록에서 그녀를 가리켜 미색이 있었다던가 얼굴이 꽤 아름다웠다라고 언급할 만큼의 미녀다.[10] 그녀가 후궁으로 들어올 때 선비들이 숙종에게 미인이니 그녀를 경계하라고 자주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를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한 인현왕후전에서조차도 주인공 버프로 굉장한 미녀로 묘사된 인현왕후를 능가한 경국지색으로 표현하며 미모 하나는 인정했다.[11]
2. 중국
- 중국 4대 미녀 - 《삼국지》의 등장인물인 초선은 가상의 인물이므로, 현실의 인물인 전한 성제의 황후인 효성황후 조비연이 대신 들어갈 때도 있으며, 혹은 《초한지》의 등장인물이자 항우의 연인인 우희(우미인)가 초선을 대신해 중국 4대 미녀에 꼽히기도 한다.
- 중국 4대 팜 파탈
- 포사
- 달기 - 야사에 따르면 그녀의 외모에 홀려 다들 사형을 못하자 사형수로 고자인 늙은이를 썼으나 그 노인조차 서게 할 정도로의 미모를 가졌다고 하며, 결국 보자기를 뒤집어 씌워서 사형을 시켰다고 하는데 그 보자기에서도 빛이 났다고 한다.
- 말희 - 주지육림을 만든 주인공으로 자신의 일족과 복수를 위해 스스로 악녀가 된 케이스다.[12]
- 하희
- 진회팔염 -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 때의 인물들이다. 진회하 일대에 사는 8명의 미인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전부 이름난 기생이었으며, 재색을 겸비한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 고미생 - 명나라 말기의 기생으로 본명은 고미이며 자는 미생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녀의 외모를 묘사한 기록에 따르면 "허리가 가늘고 발이 작은데다가 아름답고 우아하였으며 풍모가 아주 뛰어나 도화꽃이 핀 것 같았다"고 한다.
- 유여시 - 명나라 말기의 명기. 성격이 매우 도도하고 강직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청산을 보면 아름답다고 여기니 청산도 나를 보면 똑같이 느끼겠지"란 시를 남긴 걸로도 유명하다.
- 진원원 -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의 기생이며 역사를 바꾼 오삼계의 첩이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가무에 뛰어났다고 하는데 전비가 당시 명나라 황제인 숭정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불렀고 곧 그녀는 황제의 환심을 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미인이란 이유로 어의들이 황제에게 몸을 망칠 수 있다고 간언하자 황제는 오양에게 그녀를 하사했고 오양은 자신의 아들인 오삼계에게 그녀를 줬다고 한다. 참고로 오삼계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한데다가 그녀가 미인이라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하고 숭정제가 자결했을때 진원원도 이자성에게 끌려가 겁탈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오삼계는 "이자성을 따르느니 오랑캐를 따르겠다"고 청나라에 투항했다.
- 동소완
- 마상란
- 변옥경
- 이향군
- 구백문
- 강동이교(대교와 소교) 자매 - 《삼국지》 <오서> -주유전-에 두 자매가 모두 국색, 즉 나라 최고의 미인이었다고 적혀있다. 《삼국지연의》에선 조조가 이 자매를 탐낸다는 시를 썼다는 말을 제갈량이 해 주유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다만 제갈량이 한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 기황후 - 원나라 혜종의 세 번째 황후. 원래는 고려인으로 《원사》 <후비열전>에 따르면 기황후는 살구 같은 얼굴, 복숭아 같은 뺨, 버들 같은 허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얼굴이 예쁘고 영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오죽 아름다웠으면 "원나라의 황후는 몽골인으로 뽑아야 한다"는 전례를 깨고 황후가 되었을 정도였다.
- 광열황후 - 후한을 세운 광무제의 두 번째 황후. 정사 《후한서》에 아름다운 데다가 성품이 관대하며 어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광무제가 신야현에 갔을 때, 음려화의 아름다움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무척 기뻐했다고 하며 당시 “벼슬을 한다면 마땅히 집금오여야 하고, 아내를 맞는다면 마땅히 음려화여야 하리라.”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 괵국부인 - 양귀비의 언니이자 당현종의 내연녀로, 매우 사치스러웠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얼굴이 아름답고 피부가 고와 화장 하나 하지 않은 쌩얼로 당현종을 만났다고 한다.
- 노씨부인 - 장로의 어머니. 정사 《삼국지》 <유언전>에 젊은 용모가 있다, 즉 어려보이는 미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녹주 - 서진시대의 인물로 석숭의 애첩. 기록에 따르면 피리를 잘 보는 요염한 미인이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성이 양씨고, 백주 출신이었다고 전해진다. 조왕 사마륜이 집권했을 때 사마륜의 부하였던 손수가 그녀를 탐내 석숭에게 그녀를 달라고 했지만 석숭은 거절했고 이에 화가 난 손수가 석숭을 회남왕 사마윤과 한 패라고 무고해 석숭을 체포하자 그녀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병사들이 집 문 앞에 왔을 때 누대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한다.
- 단원비 - 후연의 황후이자 모용수의 아내. 《진서》 <열녀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부드럽고 총명한데다가 아름다워 여동생인 단계비더러 자신은 평범한 남자의 아내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 두씨 부인 - 《삼국지》 <위서> -명제기- 주석 <헌제전>과 <관우전> 주석 《촉기》에 따르면 여포의 수하인 진의록의 아내로 엄청난 미인이라 관우가 조조에게 계속 졸랐으나 조조가 얼굴을 보고 너무 예뻐 자기 첩으로 삼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관우는 아들까지 딸린 유부남이었다.
- 등부인 - 삼국시대 동오의 손화의 첩.
- 려희 - 춘추시대 려융국의 왕녀이자 진헌공의 비로 뛰어난 미색을 가졌다고 한다.
- 매비 강씨 - 본명은 강채평이며 당현종의 후궁. 기록에 따르면 시를 잘 짓고 옷을 우아하게 잘 입으며 자태가 아름다워 현종의 총애를 받은데다가 매화를 좋아해 현종이 매화의 요정같단 이유로 그녀에게 매비란 칭호를 내렸다고 하는데, 살집이 있고 풍만한 체형이었던 양귀비와는 달리 요정같이 날씬하고 청초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 모장 - 서시와 동시대 인물이자 월왕의 애첩으로 중국 고서에 그녀와 서시의 미모를 칭찬하는 문구가 있다.
- 무열황후 오씨 - 손견의 아내이자 손책과 손권의 어머니. 정사 《삼국지》 <오부인전>에 손견이 그녀의 용모와 재주가 뛰어나단 이야기를 듣고 청혼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무혜비 - 측천무후의 손질녀로 당현종의 후궁. 후에 정순황후로 추증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자색이 뛰어나고 가무에 능했으며 총명했지만 굉장히 오만방자했는데 후에 현종의 조강지처였던 왕씨 황후를 폐위시키고 냉궁으로 쫒아내 죽게 만들었다.
- 문강 -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로 제나라 희공의 딸이자 제양공, 제환공의 누이. 당대에는 언니인 선강, 여동생인 애강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미녀로 이름을 날렸다. 식부인, 하희, 서시와 더불어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미인으로 손꼽힌다.
- 문목황후 왕씨 - 위진남북조시대의 인물로 유송 효무제의 부인이자 유자업과 산음공주의 모후.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하며 딸인 산음공주 역시 그녀를 빼닮아 미녀였다고 한다.
- 문소황후 견씨 - 조비가 얼굴을 보고 감탄해 자기 아내로 삼았으며 《세설신어》에 따르면 천하절색이라 조조가 부르려 했다고 한다. 참고로 조비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굉장히 심했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한눈에 반해 정실로 삼았다는 것부터 그녀가 엄청난 미인이었단 걸 알 수 있다.
- 반부인 - 손권의 아내. 《습유기》에 미녀라고 나온다.
- 보연사 - 손권의 아내. 정사의 기록인 <보부인전>에서 아름답고 고와서 손권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번씨 - 조범의 형수. 《삼국지》 <촉서> -조운전- 주석 <조운별전>에 따르면 뛰어난 미모였다고 한다.
- 범희 - 동오의 여성으로 범신의 딸.
- 산음공주
- 상관완아 - 당나라의 궁녀이자 시인. 기록에 따르면 용모가 청려[13]하고 총명하며 공부를 좋아한데다가 권모술수에 능한 달필이었다고 한다.
- 상풍 - 석숭의 첩.
- 선강 -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로 제나라 희공의 딸이자 제양공, 제환공의 누이. 당대에는 여동생인 문강, 애강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미녀로 이름을 날렸다.
- 설영운 - 위나라의 인물로 설엽의 딸. 용모가 매우 빼어나 그녀를 보기 위해 남정네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 손수 - 후한의 인물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다고 전해지나 사치가 심했고 특이한 화장법과 걸음걸이 그리고 머리모앙을 유행시켰다고 한다.
- 순채 - 순욱의 사촌. 《후한서》에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아직 젊고 아름다웠기에 집에서 재혼을 요구하는게 아닌가 염려하여 굳게 몸을 지키고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 식부인 - 춘추시대의 인물로 미모가 복사꽃처럼 아름다워 도화부인이라고 불렸으며 그때문에 본의 아니게 둘씩이나 남편을 잃고 나라를 멸망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 비운의 여인이었다. 이백과 두보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시를 쓰기도 했다.
- 신채공주 - 문제 유의륭의 딸이자 효무제의 여동생. 이름은 유영미이며, 볼이 발그레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 안락공주 - 측천무후의 손녀.
- 애강 -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로 제나라 희공의 딸이자 제양공, 제환공의 누이. 당대에는 언니인 선강, 문강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미녀로 이름을 날렸다.
- 양민황후 - 후량의 효명제인 소규의 딸이자 수양제 양광의 황후. 기록에 따르면 용모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 여태후 - 전한의 초대 황후이자 유방의 아내로 본명은 여치다. 기록에 따르면 미인이지만 기가 세고 야심이 있었으며 성격이 매우 잔혹했다고 한다.
- 여희 - 춘추시대의 인물로 진헌공의 애첩. 미모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잠기게 하고,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고 떨어지게 만들만큼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그녀로 인해 유래된 말이 침어낙안과 폐월수화다.[14]
- 영사황후 하씨 - 흔히 하태후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로, 기록에 의하면 키가 크고 피부가 희고 고운 미인이라고 나와 있으며 본래 백정 집안 출신이었지만 미모 하나로 인해 후한 영제의 총애를 받고 본인의 가족들도 관직에 오르게 할 정도였으면 그 외모가 얼마나 뛰어났을지 짐작 가능하다.
- 예종 - 후한시대의 인물로 황보규의 후처이자 황보숭의 숙모. 젊고 미인이라서 동탁이 자신의 첩으로 삼으려 했다고 한다.
- 유씨 - 여범의 아내.
- 이부인 - 전한 한무제 때 이연년이란 악사가 자기 동생을 가리켜 한번 보면 성이, 두번 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시를 지어서 한무제가 직접 보니 가히 경국지색이라 자기 후궁으로 삼았다고 한다.
- 이사사 - 북송 휘종의 총애를 받은 기녀.
- 장덕황후 - 정사 《삼국지》 와《후한서》에 따르면 그녀의 풍채와 용모가 매우 성숙했다고 하며 장제는 그녀가 재주와 미모가 있다는 말을 듣고 몇 차례나 후궁의 여러 보모들을 불러 그녀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 장미인 - 장포의 딸이자 손호의 후궁. 정사 《삼국지 》<하희전> 주석 <강표전>에 손호가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며 실력있는 장인에게 그녀의 모습을 본떠 나무를 깍아 미인 형상의 인형을 만들도록 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전혜해 - 《삼국지》 정사 기록인 <오록>에 용모와 자색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정단 - 동시대 인물인 서시에게 가려졌을뿐 기록상으론 오자서에게 성을 자빠뜨릴 미인이라는 평을 받은 상당한 미녀다.
- 정평여(정핑루) - 1918~1940. 영화 <색계>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자 중국판 마타하리였다. 1930년대 당시 그녀는 잡지 표지모델이자, 사교계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외모가 미인이었고, 중•일 혼혈이어서 일본어도 잘했다. 국민당에서 정보기관 소속 스파이로 스카웃되었고 왕징웨이 정권의 첩보기관 고위급 인물이자 친일파인 딩모춘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오히려 딩모춘 일당에게 체포당해 사형을 당했다. 당시 나이가 22살.
- 조씨 부인 - 조홍의 딸이자 순찬의 아내. 정사 《삼국지》 <전양추>라는 기록에 미색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 조희 - 정사 기록인 《사기》의 <여불위 열전> 에서 그녀를 가리켜 매우 아름답고 춤을 잘 추는 여자라고 소개했다.
- 척부인 - 기록에서 미모가 뛰어났다고 적혀 있다.
- 추씨[15] - 장제의 아내. 원굉의 《후한기》 29권에 국색(國色, 나라에서 으뜸가는 미인)이라는 기록이 있다.
- 측천무후 - 기록에 따르면 당태종이 그녀에게 '무미랑'(武媚娘 무씨 성의 예쁜이)이란 별명을 내려줬을 정도로 젊은 시절에 미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 탁문군 - 전한시대의 인물로 사마상여[16]의 부인. 《서경잡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얼굴이 아주 아름다웠으며 눈썹의 색이 멀리서 산을 보는 듯 했고 뺨은 연꽃같은데다가 피붓결이 기름처럼 부드럽고 매끈거렸다고 하는데 사마상여가 그녀의 미모에 빠져 여색에 허우적대느라 병이 심해져 죽었다고 한다.
- 풍씨 - 풍방의 딸이자 원술의 첩. 《구주춘추》에 천하절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조합덕 - 전한시대의 황후인 조비연의 동생으로 기록에 따르면 조비연을 능가하는 미모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 형씨 부인 - 손일의 처. 정사 《삼국지》 <손일전>에 외모가 아름다웠지만 질투가 심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호씨 - 유염의 처. 정사 《삼국지》 <유염전>에 미녀라고 나온다.
- 효현순황후 - 청나라때의 인물로 고종 건륭제의 황후. 미인에 성품이 너그럽고 후궁들을 질투하지 않았는데다가 또 대단히 검소해 건륭제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 효환황후 등씨 - 후한시대 환제의 황후. 정사 《삼국지》 와《후한서》에 외모가 아름다워 손수가 궁으로 들여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일본
- 가라샤(호소카와 가라샤) - 센코쿠 시대를 상징하는 미인 중 한명으로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가라샤를 죽게 한 이시다 미츠나리는 전국적인 분노를 사게 된다.
- 쿠죠 다케코 -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의 인물. 야나기하라 뱌쿠렌, 에기 킨킨(江木欣々), 하야시 키무코(林きむ子)와 더불어 다이쇼 시대를 상징하는 미인으로, 문학가이자 교토여자대학을 설립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 교코쿠 타츠코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 코마히메 - 모가미 요시아키의 딸이자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측실 중 한명으로 오이마노카타라고도 불린다. 당시 토고쿠 최고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 소토오리히메 - 세기의 미녀라서 당시 "아름다움이 옷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소토오리히메[17]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따라 해당하는 이가 갈린다. 현재 일본에서 오노노 코마치와 더불어 전설적인 미녀의 대명사로 쓰이는 인물 중 하나다.
- 스와고료닌 - 다케다 신겐의 측실.
- 아자이 3자매(요도도노, 아자이 하츠, 아자이 고우) -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노가타의 딸들로 센코쿠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 중 한명이다.
- 야나기하라 뱌쿠렌 - 메이지 시대에서 다이쇼, 쇼와 시대에 걸쳐 살았던 인물이며, 와카(和歌) 작사, 시인. 본명은 야나기하라 아키코(柳原燁子)로, 뱌쿠렌(白蓮)은 집필 활동을 할 당시의 필명이다. 백작 야나기하라 사키미쓰와 기생 오쿠쓰 료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로 구조 다케코 그리고 에기 킨킨 혹은 하야시 키무코와 더불어 다이쇼 시대의 3대 미인이라 불린다. 뱌쿠렌의 고모 야나기하라 나루코는 다이쇼 덴노의 어머니이다.
- 에기 킨킨 -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18] 때의 인물로 뱌쿠렌, 다케코, 키무코와 더불어 다이쇼 시대를 상징하는 미인이다. 본명은 에이코로 에히메 현령인 세키 신페이와 후지타니 하나코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로 전자 회사 샤프의 창업자가 바로 그녀의 이부동생이다. 서녀로 태어나 다른 집에 양녀로 들어갔지만 양녀로 들어간 집도 가난해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려고 유곽의 견습 게이샤로 들어간다. 16세 때 규슈의 호소카와 가문의 가신 수장인 아리요시 남작의 정실 부인이 되지만 남편이 1년 만에 죽어 아리요시 가를 나와 다시 화류계에 되돌아왔고 신바시로 옮겨간 그녀는 마쓰야에서 다시 '모란'이라는 이름의 게이샤로 활동했다. 신바시에서 미모의 기생으로 빨리 이름을 알렸고 곧 메이지 시대의 법률학자 에기 마코토(江木衷)와 결혼했다. 에이코는 자택에서 관계자를 모아 파티를 열고 그 곳은 저절로 사교장이 되었는데 시, 서, 화, 전각, 노래 등 폭 넓은 취미와 재능을 보여 사교계의 꽃이 되었지만 1925년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1930년 오사카에 있는 이부 남동생의 집에서 목을 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 오나베노가타 - 오다 노부나가의 측실로 상당히 아름다웠다고 한다.
- 오노노 코마치 - 헤이안 시대 여류 시인. 예전에는 절세 미녀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했으며 당시 고대 미녀 중 하나인 소토오리히메의 미모에 견줄만 한 절세미녀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 오이치노가타 - 오다 노부나가의 누이, 아자이 나가마사, 시바타 가쓰이에의 아내로 당시 키도 크고 절세미녀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녀의 딸들도 미인이라고 하며 색골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녀를 탐냈다고 전해진다.
- 오이누노가타 - 묘신지 44대 주지가 남긴 글에 그녀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있다.
- 오타 줄리아 - 원래는 조선인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고아가 되고,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양녀로 거두어져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절세미인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우에스기 키쿠히메 - 다케다 신겐의 딸이자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정실부인으로 당시 재색겸비 현모양처로 유명했다고 한다.
- 잇 오후지 - 에도 시대 중기 때의 인물로 당시 미인이라고 소문나 남자들이 핑계를 대서라도 그녀를 보러 찾아오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 지옥다유(地獄太夫) - 무로마치 시대의 유녀로, 본래 무가의 여식이었지만 여의산(如意山) 산적에게 납치당해 유녀로 팔리고, 사카이의 갑부 쥬메이(珠名)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본인은 이를 전생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 불심에 전념하면서도 옷에 지옥도를 수놓아입고 저속한 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본 출생덕에 문학과 시 문답에도 뛰어났는데, 훗날 사카이에 온 잇큐 소준과 우연히 만났고, 서로 주고받은 시를 계기로 서로 사제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 타치바나노 카치코 - 헤이안 시대의 일본 황후. 용모가 아름다웠던 것으로 유명한데, 승려나 신관들조차 그 용모를 보고 제대로 수행에 정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카치코는 죽기 전에 자신의 시신을 땅에 묻지 말고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서 썩어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제행무상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깨닫게 해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과정을 그린 그림이 '단림황후구상도회(檀林皇后九相圖會)'.
- 토키와 고젠 - 헤이안 말기 때의 인물로 미나모토노 요시모토의 측실이자 젠세에, 키엔, 요시츠네의 어머니. 그녀의 남편이 패하자 그녀는 아들 셋을 살리기 위해 적장인 타이라노 키요모리에게 찾아갔는데 키요모리가 그녀의 모성애와 미모에 감탄해 그녀의 아들들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 하야시 키무코 -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19]때의 인물로 여성해방을 외치면서 <신진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지를 통해 평론, 시, 수필, 번역 등을 발표하고 여성해방운동에서 제외되는 대상이었던 기생이나 창녀에 대해 '마음의 자유, 항상 따뜻하게 살아서 호흡하는 마음'이라며 깊은 이해와 공감을 보임과 동시에 매독 등 성병을 얻은 남자의 결혼 금지를 법제화시킬 것을 주장하고 결과적으로 기생이나 창녀를 '성의 방파제'로밖에 보지 않는 시선에 맞선 인물이자 겐지모노가타리 등 고전에 대한 깊은 조예를 일본 여자의 기본 교양으로 삼아 일본무용과 동요무용을 가르치는 무용가로 활동하며 새 고전 무용이라는 분야를 만들었던 인물. 에기 킨킨, 구조 다케코, 야나기하라 뱌쿠렌과 더불어 다이쇼 시대의 대표적인 미인인데, 호리호리한 전통적인 일본 미인상이던 킨킨, 다케코, 뱌쿠렌과 달리 풍만한 몸매의 서구적인 미인상이었다고 한다. 도쿄 야나기바시 출생이며 게이샤인 우치하 하나의 양녀였는데, 친부모는 인기 연예인이었다고 한다. 자신보다 14살이나 연상인 대부호 히나타 데루타케 의원의 부인이었는데 당시 그녀는 데루타케의 부인이자 6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이자 동시에 일본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 등 3개의 학교를 다니며 가집과 소설을 집필해 교양과 미모를 모두 갖춘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했다고 하지만 남편이 '오우라 사건'이라는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되어 의원직을 잃고 화병으로 죽자 거의 반강제로 집을 나오고 자택을 처분해 자신의 미모를 앞세워 화장품을 만들거나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다[20]. 남편이 죽은 뒤 1년 만에 하야시 류하란 9살 연하의 시인과 재혼했는데 당시 그녀의 행동은 유부남 애인인 시마무라를 따라 자살한 마쓰이 스미코 사건과 비교되는 '다이쇼 스캔들'로 비난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이혼은 안 했다지만 부부 사이는 멀어져 그녀의 딸이던 미도리가 죽을 때 류하는 딴 여자랑 바람이 나 사생아를 낳았다고 한다.
- 히젠도노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4. 동양
5. 서양
- 나탈리야 곤차로바 -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아내로 당시 러시아 상류층에서 미인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 미모 때문에 푸쉬킨은 결투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 네페르티티 - 고대 이집트의 왕비로 아케나톤왕의 2번째 부인이자 투탕카멘의 의붓어머니이며 이름 뜻 자체가 무려 "미녀가 왔다" 일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네페르티티 흉상으로 그 미모가 남아있다. 현재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이집트 역사상 최고 미녀로 평가받는다.[21]
-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에드워드 7세의 왕비. 당시 세기의 미녀라 불린 오스트리아의 황후 시씨와 견줄 미녀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알렉산드라의 맏아들인 앨버트 빅터 왕자도 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뒤바리 부인 - 루이 15세의 마지막 애첩으로 당시 프랑스에서 미녀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래의 마담 드 퐁파두르의 후임
- 레티치아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어머니로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 롤라 몬테즈 - 바이에른 왕국 루트비히 1세의 애첩. 당대 유럽 최고의 미녀 중 하나로 손꼽혔으며 남아있는 초상화와 사진도 많다.
- 루크레치아 보르자 - 당대 유럽 최고의 미인으로 유명했으며 오빠인 체사레 보르자도 미남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서양에서 팜 파탈의 대명사 중 한 명이 된 여인이다.
- 루 살로메 - 독일의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 당시 지적인데다가 교양이 있었고 미인이라서 여러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러시아에서 온 뮤즈란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 마거릿 로즈 -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비의 차녀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동생으로 당시 미인으로 유명하여 영국 왕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라고 불렸다.
- 마담 드 퐁파두르 - 루이 15세의 애첩으로 미인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교양있고 지적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위의 뒤바리 부인의 선임.
- 마리 투셰 - 당대의 모든 문헌에 미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목구비에서 몸매까지 완벽한 미인이라는 기록도 있다.
- 마리아 거닝 - 1773년도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으로 코벤트리 백작의 부인이다. 당시 더블린 상류사회에서 미모로 유명했다고 하며 그녀가 가는 곳마다 그녀를 보려는 관중들이 쫒아다니는 바람에 12명의 경비원이 그녀를 항상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화장품 납중독으로 인해 이빨이 다 빠지고 탈모증상이 와서 미모를 잃게 되고 27살이란 나이에 요절했다.
- 마리아 발레브스카 - 나폴레옹의 2번째 애인. 미인으로 유명하며 나폴레옹도 그녀의 미모에 감탄했다.
- 마리아 안나 요제파 안토니아 요한나 - 마리아 테레지아의 차녀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22] 미인이라고 명시된 기록이 남아있다.
- 마리아 엘리자베트 요제파 요한나 안토니아 - 마리아 테리지아의 5녀로 그녀의 딸들 중 최고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 마리아 아말리아 요제파 요한나 안토니아 - 마리아 테리지아의 6녀로 그림을 잘 그리고 예뻤다고 전한다.
- 마리아 요제파 가브리엘라 요한나 안토니아 안나 - 마리아 테레지아의 9녀로 예쁘고 유순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 마리아 테레지아 - 당시 유럽에서 엄청난 미인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마타 하리 - 미녀 스파이의 원조격이자 대표인 인물. 실제로 스파이로선 무능했지만 미인 무용수로는 상당히 이름을 알렸다.
- 메리 불린 - 앤 불린의 언니이자 헨리 8세의 정부. 소문과 달리 미인이 아니었던 동생과는 달리[23] 금발에 흰 피부를 지닌 미인이라 인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 메리 여왕 - 스코틀랜드의 여왕. 당대의 미인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평균 신장이 지금보다도 훨씬 낮은 시기에 180cm를 넘는 엄청난 장신이었다고 한다.
- 메리 워틀리 몬태규 - 1689년도에 영국에서 태어난 여류시인이자 시간문작가로 터키의 하렘의 비밀을 처음으로 서구에 알린 인물. 당시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미모로 유명했다고 하지만 화장품 부작용과 천연두 후유증으로 인해 미모를 잃고 말았다.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왕비. 장신의 미녀로 유명해서 당대 프로이센에서 남편보다 인기가 많았다. 장녀 프로이센의 샤를로테도 어머니를 닮은 상당한 미녀였으며, 외손녀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도 외조모를 닮은 미녀로 유명했다.
- 몽테스팡 후작부인 - 루이 14세의 정부.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여겨졌다. 마흔까지 변함없는 미모를 유지했다고 한다.
- 바바라 팔머 - 찰스 2세의 정부. 당시 영국 귀족 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손꼽혔다고 한다.
- 바토리 에르제베트 - 우리가 아는 자기 피부관리한다고 처녀들을 잔혹하게 죽여 그 피로 목욕했다는 연쇄살인마 악녀가 맞다. 젊은 시절 대단한 미녀로 유명했다고 한다.
-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 파벨 1세의 황후. 당대 왕족들 중에서 훤칠한 키와[24] 뛰어난 외모로 유명했다. 조피 도로테아의 3남인 니콜라이 1세를 포함한 로마노프 왕조에게 잘생긴 뷔르템베르크의 외모를 물려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소 안토니아 - 안토니우스와 소 옥타비아의 딸들 중 하나로, 당대 뛰어난 미녀로 유명했다고 한다.
- 소 옥타비아 - 뛰어난 미모와 겸손, 자상함 등을 갖춘 최고의 신붓감으로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다.
- 시모네타 베스푸치 - 르네상스 때의 인물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고 하며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25] 당시 그녀를 칭송하지 않은 피렌체인은 가짜 피렌체인이란 말이 있었을 정도였으며 그녀가 죽자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를 더 보게 하자고 얼굴에 천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 테오파노 - 동로마 제국 황제 로마노스 2세, 니키포로스 2세의 황후. 여관집 딸이었으나 미모만으로 황후에 올랐고, 남편을 잃은 후 두 아들들(바실리오스 2세와 콘스탄티노스 8세)의 제위를 보장하기 위해 재혼한 니키포로스 2세의 마음도 빼앗았다. 그뿐만 아니라 니키포로스 2세의 조카 요안니스 1세도 홀려서 인심을 잃은 니키포로스 2세를 암살하고 요안니스와 재혼하려 했으나, 총대주교가 반대하는 바람에 요안니스에게 버림받고 몰락, 유배됐다.
- 스타테이라 1세 - 다리우스 3세의 아내. 적대국인 그리스인들조차도 아시아 제일 미녀라고 칭송했던 기록이 있다. 그녀의 딸들 역시 미녀들로 유명했다. 동일한 이름을 물려 받은 딸 스타테이라 2세는 알렉산드로스 3세와 결혼했다.
- 아녜스 소렐 - 샤를 7세의 정부. 금발에 하얀 피부, 붉은 입술을 가진 미인이였다고 한다. 별칭은 '아름다움의 여인(Dame de beauté / Lady of beauty)'.
- 아라곤의 카탈리나 -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 키는 매우 작았으나 고전적인 미인의 조건인 새하얀 피부, 치렁치렁한 금발, 푸른 눈동자를 모두 겸비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 안케세나멘 - 고대 이집트의 왕비로 투탕카멘의 부인이자 이복누이.[26] 모친이 이집트 최고 미녀였던 네페르티티라서 그런지 딸인 본인도 엄청난 미녀였다고 한다. 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가 바로 미이라 시리즈의 아낙수나문이다.
- 엘레오노르 다키텐
- 엘레오노르 드누엘 - 나폴레옹의 애인으로 미인이라 고위층 남성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엘리자베스 1세 - 아름다운 여성보다는 잘생긴 여장부에 가까운 얼굴이였다고 한다. 존 헤이워드 경의 말에 따르면 '호리호리하고 자세가 곧았다. 머리카락은 연한 금발에 가까웠고, 이마가 넓고 매끈했으며, 눈은 근시였으나 생기가 넘치며 상냥했고, 코는 약간 매부리코였다. 얼굴형은 좀 길었으나 감탄할 만한 미모를 자랑했고, 위엄과 수줍음이 적절이 조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키가 상당히 커서 170cm 정도는 가볍게 넘어가는 장신이었다.
- 엘리자베스 우드빌 - 에드워드 4세의 왕비. 당대 잉글랜드 최고의 미인으로 꼽혔으며 이런 뛰어난 미모 덕분에, 에드워드 4세의 눈에 들어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왕비가 되었다.
-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 키가 크고 늘씬한 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생전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왕족 여성으로 이름이 높았고 현대에도 미녀 왕비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녀의 친정인 비텔스바흐 가문에도 장신과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하다.
- 엠마 해밀턴 - 윌리엄 해밀턴 경의 아내이자 호레이쇼 넬슨의 정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영국 최고의 미인으로 유명했다.
- 잔 다르크 - 실제 그녀에 대한 기록 중에서 외모가 아름다웠다고 하는 기록이 여럿 있다.
- 제인 그레이 - 아름다운 외모에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라틴어를 구사할만큼 두뇌가 명석하고 학구적인 성격이란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막장 부모인 도셋 후작 헨리 그레이와 레이디 프랜시스 브랜든 때문에 길보트 더들리[27]와 강제로 결혼해서 학대받으며 살다가[28], 끝내 권력에 미친 시아버지 노섬벌랜드 공작과 부모에 의해 강제로 여왕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민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적법하게 왕위에 오른 메리 1세에 의해 즉위한지 고작 9일만에 폐위당했고 반역자가 되어 남편과 런던탑에 유폐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을 못차린 아버지 도셋 후작이 토마스 와이어트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하면서 결국 반역의 원인으로 낙인 찍혀 고작 16살 때 참수로 처형당했다.[29] 무능한 주제에 야심만 많은 막장부모와 시가에게 온갖 학대와 이용만 당하다가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인. 오죽하면 비공개로 처형당할 당시 그 자리에 참석했던 제인의 시녀들부터 메리 1세가 처형을 감독하라고 보낸 신하들과 메리 1세 본인조차 제인을 동정할 지경이었다고.[30]
- 조제핀 드 보아르네 - 미모로 한가닥하는 여자들로 우글거리던 당시의 파리 사교계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었다고 한다.
- 카테리나 스포르차 - 당시 이탈리아의 여자 귀족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했다.
- 캐서린 하워드 - 기록에 의하면 미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 클레오파트라 7세 - 그 유명한 이집트의 여왕.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인으로 유명한 인물로 현재 미인과 팜므파탈의 대명사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31]
- 클라라 슈만 -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이며 가장 우아하고 기품있는 태도를 가졌다고 한다.
-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차녀. 당시 사람들에게 "차르(러시아의 황제)의 4명의 딸들 중 가장 아름답고 조각 같다"고 알려져 있었다. 황실에서 무도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남자 귀족들은 서로 타티아나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보려고 줄을 섰고, 유럽의 내로라 하는 왕국에서도 많은 혼담이 들어왔다고 한다.
- 테오도라 - 매춘부였으나 미인인데다가 총명해서 동로마 제국 황후까지 올랐다고 한다.
- 포파이아 사비나 - 그 유명한 네로 황제의 후처. 당대의 여러 역사가들도 그녀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면서도 상당한 미인이라고 평했다.
- 폴린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의 여동생으로 자매들 중 최고의 미인이었으며 당시 하얀 여신이란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 프리네 - 기원전 4세기 경 고대 그리스의 고급 창녀였다고 한다. 그녀가 엘리우시스의 신비극이란 한 연극에 전라로 출현한 것 때문에 신성모독죄[32]로 법정에 섰을 때 그녀의 애인이자 변호사인 히피리데스가 이렇게 아름다우니 신성모독을 할 수 있겠냐며 그녀를 용서해달라고 재판원들 앞에서 옷을 벗기자 그걸 본 재판원들은 그녀를 보고 "저렇게 예쁘니 분명 선하고 신성한 존재일 거"라는 등 아프로디테의 현신이라며 무죄선고를 내렸다고 한다.[33] 사실상 공식적으로 기록된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의 시초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 프랑스의 이자벨 - 에드워드 2세의 아내. 아버지인 미남왕(the fair) 필리프 4세를 닮아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남편인 에드워드 2세가 아름다운 이사벨라(Isabella the fair)라고 불렀을 정도.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 상당한 미녀여서 구혼자들도 많았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고 직업에 전념하며 살았다.
- 휴렘 술탄 - 오스만 제국의 황후. 기독교인 노예 출신이었으나[34] 쉴레이만 1세로 하여금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공식적으로 황후를 두지 않는다'는 관례조차 깨게끔 만든 한 인물로 그녀의 남편이 그녀더러 "무힙비. 네 아름다움의 꽃밭에서 종달새는 아침이 되도록 그렇듯 너를 찬미하고 있구나"라고 미모를 칭찬한 적 있다.
- 이사벨 1세 - 카스티아의 여왕. 하얀 피부에 금발을 지닌 조신하고 단아한 청순한 미인이었다고 전해지며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1세, 비잔티움의 테오도라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군주로 평가받는다.
- 후아나 -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여왕이자 바로 위에 나온 이사벨 1세의 차녀다. 초상화나 당대 기록에서 일관되게 어머니를 닮은 미녀였다고 나온다.
- 트라페준타의 마리아 - 동로마 제국의 황제 요안니스 8세의 세번째 황후로 준수한 미모에 성격도 온화하고 자상해서 남편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1] 현대식으로 환산하면 무려 2m다![2] 남북조 시대의 서위가 아닌 삼국시대의 위나라를 말한다. 당시 위나라가 고구려에 비해 서쪽에 있었으니 이렇게 불러도 이상하진 않다.[3] 이 당시 신라의 인재를 뽑는 제도 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을 어울려 놀게 한 후 행동거지가 좋은 사람을 가려 뽑는 제도"였으니, 당연히 그 사람들을 모을 사람은 확 띄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4] 그런데 2009년에 발견된 미륵사지 석탑의 금제사리봉안기에서는 백제 유력가문인 사택씨 가문의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라는 내용이 나와있어서 선화공주가 정말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다. 현재는 보완 차원에서 무왕의 왕비가 여러 명이었거나, 사택왕후는 선화공주 이후 뒤에 들인 후처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참조[5] 어제망원정(御製望遠亭)이라 칭하는 성종의 어제시[6] 그 전 세자빈인 휘빈 김씨가 너무 못생겨서 문종과 사이가 좋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엔 훨씬 더 큰 문제가 있다.[7] 이때 정승이었던 허조는 "미모만 보면 덕은 따지지 않게 됩니다." 라며 반대했지만 세종대왕이 "잠깐 보고 덕을 알 수 없으니 결국 미모로 뽑을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8] 저자가 어우동과 동시대 인물이었다는 점과 당시 상황을 아주 자세히 묘사해놨다는 걸로 보아 자료의 신빙성은 높은 편이다.[9] 그 둘을 빼도 그녀와 사통한 자가 꽤 있었다.[10] 사관이 인정한 미인이다.[11] 이 작품에선 인현왕후가 엄청나게 아름답고 우아한 절세미인으로 나오긴 하지만 작품이 정사가 아닌데다가 지나치게 인현왕후를 찬양하고 미화한단 점, 선악양분법이 지나치게 명확하고 장희빈을 일방적으로 악인으로 몰은 걸로 보아 사료적 가치는 아예 없으며 실제로 그들을 봤는지는 커녕 궁중에서 썼는지도 의심을 받기 때문에 인현왕후가 미인인지는 불분명하다.[12] 다만 이쪽은 진위여부가 있다.[13] 지금으로 따지면 청순가련한 미인 스타일이었다.[14] 사실 처음엔 우리 인간이 보기엔 예쁘지만 다른 동•식물이 봐도 미인일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지만 지금은 전설적인 절세미인을 상징하는 미사여구가 되었다.[15] 장제의 아내는 실존 인물이 맞다. 다만 정사에서는 그녀의 성명이 나오지 않았고 '추씨'는 《삼국지연의》에서 창작된 성씨이다.[16] 전한시대의 문인으로 뛰어난 글솜씨로 인해 송옥, 가의, 매승 등에 이어 '이소재변의 부'라고 일컬어졌다고 한다.[17] 기존 각주에 오리히메는 직녀라는 뜻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토오리히메의 이름 구성은 소+토오리+히메,이기 때문에 오리히메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한국어 발음표기의 유사성만 보고 착오 기재한 듯 하다.[18] 1877년 1월 30일 생이나 1897년 생이란 설도 있다.[19] 1884~1967 2월 2일[20] 현재 그녀는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의 미용술의 고안자로 여겨진다.[21] 사실 클레오파트라는 미인이 아니란 설도 있기 때문에 이쪽만을 최고 미녀로 선정하는 경우도 많다.[22] 언니와 다르게 동생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절세미녀로 표현된 것과 별개로 피부가 좋고 우아하고 매력적이긴 해도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23] 사실 따지고 보면 앤 불린의 외모는 당시 고전적인 미인상이 아니었을 뿐 이국적인 외모의 미인상에 가까웠다.[24] 남편 파벨 1세보다도 더 컸다고 한다.[25] 일설에 따르면 보티첼리는 그녀를 짝사랑했다고 하며 '비너스의 탄생'을 제외한 다른 작품에도 그녀를 모델로 썼다고 한다.[26] 엄마가 다르다.[27]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의 아들.[28] 기록에 따르면 부모는 사소한 일에도 제인을 매질하거나 가뒀고, 남편은 그녀를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한다.[29] 남편인 길보트 더들리도 같은 날에 처형당했다.[30] 당시 메리 1세는 제인의 아버지인 도셋 후작이 반역을 일으키기 전까진 신하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저 런던탑에 제인과 그녀의 남편 길보트를 감금하기만 할 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 자신이 결혼해 왕권이 안정되면 제인과 길보트를 사면시키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할 생각이었다고. 게다가 토마스 와이어트의 반역이 일어난 뒤에도 제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주겠다"면서 기회를 줬고, 사형선고를 내린 뒤에도 어떻게든 살려주기 위해 제인에게 산파를 보내 임신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다.[31] 일각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라는 경제 대국의 통치자였기 때문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도 그 경제력에 반했을 뿐이지 미인은 아니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 가능성은 낮다. 확실히 이집트를 위시한 클레오파트라의 경제력은 누가 봐도 탐낼 수준이었지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그녀에게 코가 꿰여서 본래 아내이자 당대 권력자이던 옥타비아누스의 누나인 소 옥타비아도 버리고, 자진해서 키프로스와 레반트 지역 및 소아시아 일부 지역 등의 알짜배기 땅을 이집트에 할양했을 정도니 클레오파트라는 알려진 그대로 세기의 미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작 미모와는 별개로 군사적 능력은 변변치않아서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내전에서 패배하고 몰락하여 안토니우스와 나란히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32] 당시 신성모독은 사형을 시켜도 할 말 없는 중범죄였다.[33] 실제로 고대 아테나에선 미모가 출중하다고 무죄선고를 내리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34] 사실 이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원래 오스만의 하렘 여인들은 상당수가 이민족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