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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妃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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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초기 및 중세 중국 명나라의 인물이자 한영정의 딸.한확의 누나로 소혜왕후의 고모였으며 명나라 제3대 성조 영락제 주체의 후궁으로 생전에 여비(麗妃)에 봉해졌다. 사후에는 '강혜장숙(康惠庄淑)'을 시호에 추가로 받아 공식 호칭이 '강혜장숙여비 한씨'가 되었다.
2. 생애
1417년, 공녀로 뽑혀 명나라에 갔다. 영락제는 그녀를 보고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며 함께 공녀로 보내진 황씨가 숫처녀가 아님이 밝혀지자[1] 이를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시키려던 영락제를 달래 겨우 무마시켰다.어여의 난[2] 당시 감금되었으나 지키던 환관이 그녀를 가엾게 여겨 음식을 몰래 주어 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락제가 세상을 떠나자 장릉에 묻힐 순장의 대상으로 뽑히게 되었고, 마지막 소원으로 자기의 유모였던 김흑을 조선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청한 뒤 목이 졸려 숨지고 나서 순장되었다.[3] 이때 유모 김흑에게 통곡하며 하고 마지막 말을 하려 했으나 교수형을 집행하던 환관이 발디딤 평상을 빼버리는 바람에 유언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새 황제인 인종 홍희제가 그녀의 청을 분명히 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흑이 명나라 황궁의 기밀, 즉 어여의 난의 진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로 조선으로 보내지 않았다. 김흑은 무려 10년 뒤에야 태황태후에게 간청해 다른 조선 여인들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기타
여동생인 한계란 역시 제5대 선종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다. 언니의 비극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명나라 황실과의 혼사를 회피하려고 노력했으나, 오빠인 한확의 강요에 끌려가다시피 하여 명나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사실을 알고 절망하여 앓아누운 상태로"누이 팔아먹어 부귀영화를 누리더니 이제 남은 누이까지 팔아먹는구나!"
하면서 오빠를 디스하곤, 애지중지하던 혼수품들인 비단이불을 칼로 찢어버리고 패물까지 죄다 내던져버려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음 고생은 어쩔 수가 없어 시름시름 앓아 예정된 시기보다 1년 늦게 명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한씨를 태운 가마가 명나라로 향하는 걸 보고 주변에서는 "언니가 생매장 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번엔 여동생이 산송장이 되어 떠나는구나''
라며 비통해 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히 이 여동생은 후에 제6대 영종 정통제의 황태자 주견심(훗날의 헌종 성화제)을 죽을 위기에서 보호한 공으로 공신태비(恭愼太妃, 혹은 공신부인)라는 존칭까지 받고 궁내 일을 잘 알아 여사(女師)라고 존경을 받으며 천수를 누렸다.4. 대중매체에서
2008년 드라마 대왕세종에서는 정유미(1984)가 여비를 맡았다.2019년 드라마 대명풍화에서는 조앵자가 여비를 맡았다.
2022년 드라마 상식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1] 가는 도중 배를 앓더니 유산을 했다.[2] 중국인 후궁 여씨가 조선인 여씨에게 원한을 품고, 그녀가 같은 조선 공녀 출신인 현인비 권씨를 독살했다고 무고하여, 조선인 여씨를 포함한 수백 명이 죽은 사건이다. 훗날 중국인 후궁 어씨와 여씨가 동성애를 하고, 환관과 간통한 사실이 발각되어 처리되는 과정에서, 현인비 권씨가 사실은 중국인 여씨에게 독살당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에 권씨를 총애했던 영락제가 격노하게 되었고, 대대적인 국문으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궁인이 사사되었다.[3] 조카인 소혜왕후의 일생을 다루는 드라마 <인수대비>에서는 고모가 비명횡사했다는 것으로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