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511208 0%, #7e2f22 20%, #7e2f22 80%, #511208)"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태조 | 정종 | 태종 | |||
| 안천부원군 한경 | 상산부원군 강윤성 | 월성부원군 김천서 | 여흥부원군 민제 | |||
|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 | |||
| 청천부원군 심온 | 화산부원군 권전 | 여량부원군 송현수 | 파평부원군 윤번 | |||
| 예종 | 예종, 성종 | 성종 | ||||
| 청천부원군 한백륜 | 상당부원군 한명회 | | 영원부원군 윤호 | |||
| 연산군 | 중종 | |||||
| 거창부원군 신승선 | 익창부원군 신수근 | 파원부원군 윤여필 | 파산부원군 윤지임 | |||
| 인종 | 명종 | 선조 | ||||
| 금성부원군 박용 | 청릉부원군 심강 | 반성부원군 박응순 | 연흥부원군 김제남 | |||
| 선조 | 광해군 | 인조 | ||||
| | | 서평부원군 한준겸 | 한원부원군 조창원 | |||
| 효종 | 현종 | 숙종 | ||||
| 신풍부원군 장유 | 청풍부원군 김우명 | 광성부원군 김만기 | 여양부원군 민유중 | |||
| 숙종 | 경종 | |||||
| | 경은부원군 김주신 | 청은부원군 심호 | 함원부원군 어유구 | |||
| 영조 | 정조 | 순조 | ||||
| 달성부원군 서종제 | 오흥부원군 김한구 | 청원부원군 김시묵 | 영안부원군 김조순 | |||
| 헌종 | 철종 | 고종 | ||||
| 영흥부원군 김조근 | 익풍부원군 홍재룡 | 영은부원군 김문근 | 여성부원군 민치록 | |||
| 순종 | ||||||
| 여은부원군 민태호 | 해풍부원군 윤택영 | |||||
| 추존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목조(이안사) | 익조(이행리) | 도조(이춘) | |||
| 이숙(이공숙) | 최기열 | 안변부원군 박광 | ||||
| 환조(이자춘) | 덕종(의경세자) | 원종(정원군) | ||||
| 영흥백 최한기 | 서원부원군 한확 | 능안부원군 구사맹 | ||||
| 진종(효장세자) | 장조(사도세자) | 문조(효명세자) | ||||
| 풍릉부원군 조문명 | 영풍부원군 홍봉한 | 풍은부원군 조만영 | }}} | |||
| 조선 왕비 · 조선 추존 왕비 · 대한제국의 국구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c00d45> 태조 | 조준 · 이화 · 이지란 · 조인옥 · 남재 · 이제 · 남은 |
| 정종 | 이방의 | |
| 태종 | 하륜 ·조영무 · 정탁 · 이천우 · 이래 | |
| 세종 | 황희 · 최윤덕 · 허조 · 신개 · 이수 · 이제 · 이보 | |
| 문종 | 하연 | |
| 세조 | 권람 · 한확 · 한명회 | |
| 예종 | 박원형 | |
| 성종 | 신숙주 · 정창손 · 홍응 | |
| 중종 | 박원종 · 성희안 · 류순정 · 정광필 | |
| 인종 | 홍언필 · 김안국 | |
| 명종 | 심연원 · ■ 이언적 | |
| 선조 | 이준경 · ■ 이황 · ■ 이이 | |
| 인조 | 이원익 · 신흠 · 김류 · 이귀 · 신경진 · 이서 · 이보 | |
| 효종 | 김상헌 · ■ 김집 · ■ 송시열 · 이요 · 민정중 · 민유중 | |
| 현종 | 정태화 · | |
| 숙종 | 남구만 · ■ 박세채 · 윤지완 · 최석정 · 김석주 · 김만중 | |
| 경종 | 이유 · 민진후 | |
| 영조 | 김창집 · 최규서 · 민진원 · 조문명 · 김재로 | |
| 장조 | 이종성 · 민백상 | |
| 정조 | 김종수 · 유언호 · 김조순 | |
| 순조 | 이시수 · 김재찬 · 김이교 · 조득영 · 이구 · 조만영 | |
| 문조 | 남공철 · 김로 · 조병구 | |
| 헌종 | 이상황 · 조인영 | |
| 철종 | 이헌구 · 이희 · 김수근 | |
| 고종 | 박규수 · 신응조 · 이돈우 · 민영환 | |
| 순종 | 송근수 · | |
| ■: 문묘 종사 동국 18현을 겸하는 6인 중 동무종향 ■: 문묘 종사 동국 18현을 겸하는 6인 중 서무종향 | ||
| 조선 종묘배향공신 | |
| <colbgcolor=#7e2f22><colcolor=#ffd400> | |
| 한확 묘 전경 | |
| 출생 | 1400년[1] (태종 즉위년) |
| 사망 | 1456년 10월 19일[2] (향년 55~56세) (음력 세조 2년 9월 11일) |
|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
| 봉호 | 서성부원군(西城府院君)[A] →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A] |
| 시호 | 양절(襄節) |
| 본관 | 청주 한씨 |
| 자 | 자유(子柔) |
| 호 | 간이재(簡易齋) |
| 부모 | 부친 - 한영정(韓永矴) 모친 - 의성 김씨 김영렬(金英烈)의 딸 |
| 형제자매 | 누나 - 강혜장숙여비 한씨[B] 남동생 - 한전(韓磌, 1408 ~ 1447) 여동생 - 공신부인 한씨[C] 남동생 - 한절(韓石+失) |
| 배우자 | 남양부부인(南陽府夫人) 남양 홍씨(1410 ~ 1456) |
| 자녀 | 9남 6녀
|
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조선 왕실과 명나라 황실의 외척이다. 소혜왕후(인수대비)의 부친이며[7], 강혜장숙여비 한씨[B]·공신부인 한씨[C]와 남매 관계이다. 양국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바탕으로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성종의 외조부이므로, 성종 이후의 모든 조선 국왕(10대 연산군~27대 순종)은 모두 한확의 후손이다.
2. 생애
'삼한갑족'이라 불렸던 전근대 한반도의 명가 중에서도 대성이었던 청주 한씨의 자손으로, 아버지가 의정부 영의정 서성부원군을 추증받은 한영정이었다. 가문의 명성 덕분에 이미 어린 나이에 음서로 관직에 나아가 종7품 부사정에 올랐다.당시 명나라가 후궁으로 들여보낼 공녀를 바치라는 요구를 조선에 해오자, 1차로 공녀들을 보냈으나 명나라 영락제는 미모가 없는 여자들만 골라보냈다며 다시 미모의 여자들을 골라 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2차 선발에선 심혈을 기울인 결과 한확의 누나 한씨를 비롯해 3명의 여자가 선발되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그녀가 떠나던 날 길가의 모든 이가 슬퍼하며 울었다고.
그리고 그 공녀로 바쳐진 누나가 바로 명나라 제3대 황제였던 성조 영락제 주체의 후궁 강혜장숙여비 한씨였다. 미색도 뛰어났지만 영락제의 비위를 잘 맞췄던 그녀는 총애를 받아 곧 비(妃)로 책봉되었고, 그 총애는 동생인 한확에까지 미쳤다. 이 때부터 한확의 입지는 그야말로 언터쳐블이 되는데, 역시 공녀로 뽑혀 명나라로 가던 황씨가 이미 외간 남자와 사통해 임신하고 있었음이 밝혀져 조선 사신단의 목숨은 물론 조명관계마저 위태로워질 지경이었으나 한씨 남매가 대노한 영락제를 달래어 겨우 넘어갈 수 있었다.[10] 이 시점에서 한확은 작게는 단신으로 황씨 일가와 진헌색 관리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고, 크게는 조선의 대명 외교 참사를 수습한 것이었다.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은 수시로 그를 영접하여 현안을 논의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영락제는 한술 더 떠 한확을 아예 정5품 봉의대부 광록시 소경에 봉하면서 조선의 신하임과 동시에 명나라의 신하가 되었고,[11] 그의 잘생긴 외모에도 호감을 가져 심지어 부마로 삼으려고도 했다고 한다.[12]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은 그의 외모를 가리켜 '미풍의(美風儀), 준정(峻整)'이라고 표현하였는데 번역하자면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로 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당대의 미남이었던 듯.
그러나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던 영락제는 곧 쇠약해졌고, 여비 한씨가 중국 역사상 희대의 궁중 암투인 어여의 난에 휘말리면서 유폐되더니 곧 죽어버린 영락제의 장릉에 순장되고 말았다. 단순히 외모가 뛰어나단 이유로 20대의 어린 나이에 정든 조국과 가족을 떠나 말도 안 통하는 명나라에 바쳐졌던 한확의 누나는 겨우 24살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죽을 때의 일화는 더욱 슬픈데 죽기 직전 여비 한씨는
"어머니, 저는 갑니다.. 어머니, 저는 갑니다..."
라고 울었지만, 도중에 집행관이 그녀의 목을 매달아 유언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한다.[13] 이렇게 한확의 권세는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으로 끈 떨어진 연이 되나 싶었으나...영락제의 뒤를 이은 인종 홍희제가 일찍 죽고, 그 다음 선종 선덕제가 즉위했을 때 조선 출신의 환관들이 여비 한씨의 막내 여동생인 한계란이 그녀만큼 절색이라고 운을 띄우자 이번엔 아예 한확의 막내 여동생을 공녀로 바치라고 딱 꼬집어서 지명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확은 누나의 비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얼씨구나 하며 그에 응했다. 1427년 5월 1일과 1428년 10월 4일 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한확은 재산이 넉넉하면서도 장차 공녀로 바치기 위해 혼기가 지난 누이를 시집보내지 않았다며 사람들이 누이를 슬피 여겼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사도 아닌 《조선왕조실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미루어보아 명나라에서의 지명도 있었겠지만, 한확 본인이 권력을 위해 누나에 이어 여동생마저 명나라에게 '진상'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당시 한확의 여동생 한씨는 절망하여 앓아누운 상태였는데 오라버니 한확이 약을 지어오자
"이미 누이 하나를 팔아 부귀가 지극하거늘 나까지 팔아 호사를 누리려는가?"
라며 울었다고 한다. 여동생 한씨 입장에서는 어린 나이에 시들어버린 언니의 죽음을 보고도 기어코 자신마저 명나라 황제의 후궁으로 보내 버리려는 오라버니 한확이 원망스러웠던 듯 하다. 자신이 공녀로 바쳐진다는 소리를 듣자 애지중지했던 혼수를 칼로 찢고 패물을 내던져 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시름시름 앓아 예정된 시기보다 1년 늦게 명나라로 가게 되었다. 한씨가 명나라로 떠나던 날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녀를 태운 가마가 명나라로 향하자, 이를 본 사람들은"언니가 생매장 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번엔 동생이 산송장이 되어 떠나는구나''
라며 비통해했다고 한다. 명나라로 떠나는 한씨의 모습을 보고 울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하지만 그녀는 비극적으로 죽었던 언니와는 달리 남편인 선덕제 사후에도 살아 남았으며, 영종 정통제가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에게 포로로 잡히고(토목의 변) 그의 동생이었던 대종 경태제가 황제가 되면서 폐태자가 되어 버린 정통제의 3살배기 어린 아들을 거두어 애지중지 보살피며 지냈는데... 8년 후 다시 정통제가 복귀하는데 성공했고(탈문의 변) 특히 그 폐태자가 복권되어 천자인 헌종 성화제로 즉위하면서 황실에 크게 기여한 웃어른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성종실록》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그녀의 입지 덕분에 오라비 한확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조카들까지 명나라를 왕래하며 호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이 한씨는 성화 연간 19년까지 천수를 누리고, 죽은 후에는 공신부인에 봉해졌다.
이처럼 한확은 누나와 여동생을 희생시키고 조선 정계의 초대형 거물이 되었다. 특히 여동생은 명나라 황제들의 총애와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권세도 막강해졌다. 심지어 궁중의 궁녀와 통정하는 죄를 지었다가 발각되었는데도 세종조차
"이 사람은 (죄를 지어도) 내가 벌 줄 수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14] 이미 누나를 공녀로 바치고 돌아왔을 때부터 출세가도를 달려 한성판윤에 도관찰사, 장군절제사, 이조판서, 찬성, 의정에 이르기까지 고위직을 두루 해먹었으며, 간통 혐의로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왕이 처벌을 거부해서(...)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보고"누이들을 팔아 권세를 누리는 구나."
라며 욕을 했다고.이후 세조의 사돈이었던 만큼 계유정난에도 적극 협조하였고, 그 공적으로 우의정에 봉해졌다. 세조의 왕위 찬탈 직후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어 로비로 세조의 즉위를 인정받는 데 성공하고 귀국하던 중 객사했다.
그러나 한확이 단순히 명나라 빽만 믿고 안하무인하게 군 한량이었다면 언젠가 몰락했을 것이 분명했지만, 한확은 능력도 출중한 중요한 인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외척관계를 빼고도 함부로 내칠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중국어와 한문에 능통한 조선의 대중국 외교통이자 로비스트이기도 했으며, 선위사로서 조선을 대표해 황제 알현이나 사신 접대 업무를 수시로 도맡아 해서 환관 출신인 명나라 사신들의 횡포에 시달리던 초기의 조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고작 20살의 나이에 하연과 함께 명나라로 가서 태종 이래 추진했던 황금과 은의 조공을 면제받기도 했고, 공녀 차출도 없어졌다. 이런 인재를 고작 여자 관계 따위로 날려버렸다간 명에서 어떤 후폭풍이 불어 닥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명나라의 인정을 받아내어 정통성 없는 세조의 즉위를 완성시켰을 만큼 트러블은 일으킬지언정 외교 면에서 엄청난 능력을 가진 한확을 가능한 만큼 써먹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세종과 세조가 한확의 딸들을 며느리로 삼은 것에는 이러한 사실도 고려해서였을 것이다. 한 명은 세종의 서자였던 계양군의 아내였고, 다른 한 명은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였다. 한확의 3남이었던 한치례(韓致禮)는 세종의 적녀였던 정의공주의 차녀와 혼인했고 한확의 뒤를 이어 작은 고모 빽으로 중국에서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렸다.
묘지는 능내역 인근에 있다.
3. 가계
3.1. 친가(청주 한씨)
- 증조부: 서원군(西原君) 한방신(韓方信)
3.2. 배우자/자녀
- 정부인: 남양부부인 남양 홍씨(南陽府夫人 南陽 洪氏)[17]
- 첩부인: 성씨 미상
- 서장남: 한유산(韓榴山)
- 서차남: 한유산(韓柚山)
- 서3남: 한감산(韓柑山)
- 서4남: 한시산(韓枾山)
- 서5남: 한이산(韓梨山)
- 서6남 - 한도산(韓桃山)
4. 창작물
- <한명회(드라마)> - 박웅
강직하고 꼿꼿한 인물로 그려지며, 수빈의 아버지인 동시에 정신적인 스승으로 묘사된다. 계유정난 직후 수양(남성우 배우 역)이 의정부 3정승 인사를 논의할 때 정승 자리를 제안받자 도원군(수양의 아들 - 후일 의경세자 ; 성종의 아버지)이 자신의 사위라며, 세상 사람들이 웃는다고 사양한다.
- <왕과 비> - 남일우
명나라 황제의 처남인지라 이 작품 최고의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수양대군 앞에서도 여유롭게 할 말을 다하는 거의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심지어 수양대군 자신의 사돈이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어려운 상대이긴 하다.
- <인수대비(드라마)> - 장용
본래 딸 인수대비를 명나라 황제에게 시집보내기로 약속한 상태였지만, 딸이 처음부터 수양대군의 며느리가 되고 싶어하는 걸 알고 혼처를 바꿔줄 정도로 딸바보스러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냥 딸을 아끼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여주는 반면에 사돈이 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는 등 정치적인 면모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사대부 명문가의 규수로 살면서 남들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면 응당 그에 대한 댓가를 치를 줄 알아야 한다며 인수대비가 도원군의 부인이던 시절에 은장도를 주는 등, 여러방면의 이미지를 그려나갔다. 또한 작중 등장인물들에게 누이를 팔아 명나라의 관직과 부를 축적한 인물로 평가되어 당시 시대상으로 그가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20] 설상가상으로 도원군 부인 한씨(후일의 인수대비/티아라 출신 함은정 배우 역)는 아버지가 뺨을 맞고 모욕을 당하는 과정을 모두 생생하게 지켜보고 들었다.
양녕대군(박웅 배우 역)은 한확을 면박 준 다음 종손자며느리인 한씨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지나가고 시아버지 수양대군(김영호 배우 역)과 남편 도원군(백성현 배우 역)은 한씨 부인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5. 둘러보기
| <colbgcolor=#c00d45,#c00d45><colcolor=#f0ad73,#f0ad73> 조선 좌·우의정 태조 ~ 연산군 | ||||||||
|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calc(1.5em + 6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좌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문하좌시중 | 문하좌정승 | }}} | |||||
배극렴 | 조준 | |||||||
| ||||||||
| <bgcolor=#c00d45,#c00d45> 문하좌정승 | ||||||||
조준 | 심덕부 | 성석린 | 민제 |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문하좌정승 | 좌정승 | }}} | |||||
이거이 | 김사형 | 하륜 | 조준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좌정승 | 판의정부사 | 좌의정 | }}} | ||||
하륜 | 성석린 | 하륜 | 남재 | |||||
| <nopad> 좌의정 | ||||||||
하륜 | 류정현 | 박은 | ||||||
| ||||||||
박은 | 이원 | 류정현 | 이직 | |||||
황희 | 맹사성 | 최윤덕 | 허조 | |||||
신개 | 하연 | 황보인 | ||||||
| ||||||||
황보인 | 남지 |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남지 | 김종서 | 정인지 | }}} | ||||
| ||||||||
한확 | 이사철 | 정창손 | 강맹경 | |||||
신숙주 | 권람 | 한명회 | 구치관 | |||||
황수신 | 심회 | 최항 | 조석문 | |||||
홍달손 | 박원형 | |||||||
| ||||||||
박원형 | 김질 | 홍윤성 | 윤자운 | |||||
| ||||||||
윤자운 | 김국광 | 최항 | 한명회 | |||||
조석문 | 심회 | 윤필상 | 홍응 | |||||
노사신 | ||||||||
| ||||||||
신승선 | 정괄 | 어세겸 | 한치형 | |||||
성준 | 이극균 | 류순 | 허침 | |||||
박숭질 | 신수근 | |||||||
| <colbgcolor=#c00d45,#c00d45> 역대 좌·우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 ||||||||
|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우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문하우시중 | 문하우정승 | }}} | |||||
조준 | 김사형 | |||||||
| ||||||||
| <nopad> 문하우정승 | ||||||||
김사형 | 성석린 | 민제 | 하륜 | |||||
| ||||||||
| 문하우정승 | 우정승 | |||||||
하륜 | 이서 | 이무 | 성석린 | |||||
| 우정승 | ||||||||
이서 | 조영무 | 이무 | 이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우정승 | 판의정부사 | 우의정 | }}} | ||||
조영무 | 남재 | 이직 | 류량 | |||||
| 우의정 | ||||||||
남재 | 박은 | 한상경 | 이원 | |||||
| ||||||||
이원 | 정탁 | 류관 | 조연 | |||||
황희 | 맹사성 | 권진 | 최윤덕 | |||||
노한 | 허조 | 신개 | 하연 | |||||
황보인 | 남지 | |||||||
| ||||||||
남지 | 김종서 |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김종서 | 정분 | 한확 | }}} | ||||
| ||||||||
이사철 | 정창손 | 강맹경 | 신숙주 | |||||
권람 | 한명회 | 구치관 | 황수신 | |||||
박원형 | 황수신 | 최항 | 홍윤성 | |||||
강순 | 김질 | |||||||
| ||||||||
김질 | 윤사분 | 윤자운 | 김국광 | |||||
| ||||||||
김국광 | 한백륜 | 성봉조 | 김질 | |||||
윤사흔 | 윤자운 | 윤필상 | 홍응 | |||||
이극배 | 노사신 | 허종 | 윤호 | |||||
신승선 | ||||||||
| ||||||||
정괄 | 어세겸 | 정문형 | 한치형 | |||||
성준 | 이극균 | 류순 | 허침 | |||||
박숭질 | 강귀손 | 신수근 | 김수동 | |||||
| <colbgcolor=#c00d45,#c00d45> 역대 좌·우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 ||||||||
|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 }}}}}}}}}}}} | |||||||
#!style
.왕{display: inline; padding: 3px 5px; background: #ffd400; border-radius: 3px; font-size: .9em}
.정승{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ackground: #c00d45; border-radius: 3px; font-size: .7em}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1453년 11월 8일 단종 책록 | ||||||||
| 수충위사협찬정난공신 (1등) | |||||||||
| 권람 | 김효성 | 박종우 | 박중손 | ||||||
| 이계전 | 이사철 | 이유 | 정인지 | ||||||
| 최항 | 한명회 | 한확 | 홍달손 | ||||||
| 수충협책정난공신 (2등) | |||||||||
| 곽연성 | 권준 | 류수 | 류하 | ||||||
| 봉석주 | 신숙주 | | 엄자치 | ||||||
| 윤사윤 | 전균 | 홍윤성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수충정난공신 (3등) | |||||
| 강곤 | 권경 | 권언 | | 류사 | |||||
| 류서 | 류자환 | 설계조 | 성삼문 | 송익손 | |||||
| 안경손 | 이몽가 | 이예장 | 이흥상 | 임자번 | |||||
| | 한명진 | 한서구 | 홍순로 | 홍순손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1455년 9월 5일 세조 책록 | ||||||||
| 수충위사동덕좌익공신 (1등) | |||||||||
| 권람 | 신숙주 | 윤사로 | 이곤 | ||||||
| 한명회[1] | 한확 | 이증[2]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수충경절좌익공신 (2등) | |||||
| 강맹경 | 권반 | | 윤암 | 이계린 | |||||
| 이계전 | 이사철 | 전균 | 정인지[1] | 정창손[1][4] | |||||
| 최항 | 홍달손 | 윤형[5] | |||||||
| 추충좌익공신 (3등) | |||||||||
| 구치관 | 권공 | 권자신[6][7] | 박강 | 박원형 | |||||
| 성삼문[6][8] | 원효연 | 윤사윤 | 윤자운 | | |||||
| 이극배 | 이예장 | 이징석 | | 정수충 | |||||
| 조득림 | 조석문 | 조효문 | 최유 | 한계미 | |||||
| 한종손 | 황수신 | 황효원 | 홍윤성[10] | 김질[11] | |||||
| [1] 1504년 갑자사화로 제명, 1506년 중종 시기 복권 [2] 1458년 6월 29일 세조에 의해 책록 [3] 1466년 연회에서 세조에게 양위를 종용한 혐의로 제명 [4] 1456년 7월 3일 세조에 의해 3등에서 2등으로 책록 [5] 1455년 10월 22일 세조에 의해 책록 [6]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으로 제명 [7] 1699년 숙종 때 복권 [8] 1691년 숙종 때 복권 [9] 1504년 아들 이세좌와의 연좌로 인한 제명 [10] 1455년 11월 12일 세조에 의해 책록 [11] 1456년 7월 3일 세조에 의해 책록 | }}}}}}}}} | ||||||||
| 훈구파 勳舊派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관학파 | ||||
| 세조 - 예종 (1455 ~ 1469) | |||||
| 구치관 | 권람 | 김질 | 신숙주 | 양성지 | |
| 양정 | 이사철 | 정인지 | 정창손 | 한명회 | |
| 한확 | 홍윤성 | 이석형 | 한계미 | 현석규 | |
| 성종 - 연산군 (1469 ~ 1506) | |||||
| 부중파 | 궁중파 | ||||
| 노사신 | 성준 | 윤필상 | 이극돈 | 신수근 | |
| 한치형 | 허종 | 홍귀달 | 이세좌 | 임사홍 | |
| 중종 (1506 ~ 1544) | |||||
| 성희안 | 박원종 | 류순 | 류순정 | 류자광 | |
| 정광필 | 정윤겸 | 홍경주 | 신준 | 심정 | |
| 인종 - 명종 (1544 ~ 1567) | |||||
| 소윤 | 서인 | ||||
| 윤원로 | 윤원형 | 이기 | 임백령 | 심연원 | |
| 선조 (1567 ~ ) | |||||
| ▼ 서인 | |||||
| 조선의 붕당 (관학파 · 훈구파 · 사림파 · 동인 · 서인 · 남인 · 북인 · 소론 · 노론 · 개화당 · 수구파 · 정동파 · 위정척사파 · 급진개화파 · 온건개화파) | |||||
[1] 1403년생이라는 설도 있으나, 비명과 묘지명에는 향년 57세로 기록되어 있다.[2] 율리우스력 10월 10일[A] 단, 이 작위는 국구의 자격이 아닌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 자격으로 받은 것이다.[A] [B] 명 제3대 황제 영락제의 후궁.[C] 명 제5대 황제 선덕제의 후궁.[7] 세종의 서차남 계양군의 부인 정선군부인의 부친이기도 하다.[B] [C] [10] 공녀인 한씨가 마음에 들어서 그 남동생인 한확을 죽이지 않으려고 불문에 부친 것으로 추정된다.[11] 당시 한확의 나이는 겨우 15살 또는 18살이었는데 진사시도 볼까말까한 애송이를 천조국 재무부에 5급 부원장으로 꽂은 것이었다. 게다가 조선에서는 이등체강이 적용되니 의전상 정3품 하계의 대우를 받는다! 영감 소리만 못 들을 뿐이지 그야말로 벼락출세가 따로 없다.[12]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9월 11일 무인 5번째 기사 . "황제가 인종 황제(仁宗皇帝)의 딸로 아내를 삼게 하려 하니, 한확이 노모(老母)가 집에 있음으로써 사양하여 그만두었다."[13]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장영실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한다연'(정유미 役)이 이 여비 한씨를 모티브로 한 인물로 보인다. 한다연 역시 영락제의 후궁이 되어 순장당한다.[14] 궁녀는 국왕과 육체관계가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이 관념적으로는 모두 왕의 여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니 궁녀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왕의 여자를 건드린 셈이 되니 보통 사람이라면 반역죄인에 준하는 죄인으로 사형을 당할 일이지만, 한확의 경우 어쨌든 반역죄는 아니기에 처벌되지 않았다.[B] 명 제3대 황제 영락제의 후궁.[C] 명 제5대 황제 선덕제의 후궁.[17] 홍여방(洪汝方)의 딸.[18] 사후 성종에 의해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었다.[19] 세종의 적차녀[20] 양녕대군에게 뺨맞는 장면이 그 대목을 알려주는 쪽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