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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헌화가(獻花歌)는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향가 14수 중 한 작품이다.삼국유사 기이편 중 '수로부인' 조에 실린 대략적인 설화는 이러하다. 신라 성덕왕 때에 김순정이란 사람이 강릉[1]태수로 부임하여 그의 부인인 수로부인과 함께 강릉에 가는 길이었다.[2] 그러던 중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는데, 절벽 위에 철쭉이 피어있는 것을 수로부인이 발견한다. 이에 수로부인이 "누가 따올래?"라고 물었는데 시종들이 하나같이 "사람이 갈 수 있는 데가 아닙니다."라고 하게 된다. 그때 웬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그 얘길 듣곤 그 꽃을 꺾어서 노래와 함께 바치는데, 이 노래가 바로 헌화가이다.
2. 원문
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2.1. 양주동의 해석
딛배 바회 ᄀᆞᇫᄒᆡ
자ᄇᆞ온 손 암쇼 노ᄒᆡ시고
나ᄒᆞᆯ 안디 븟ᄒᆞ리샤ᄃᆞᆫ
곶ᄒᆞᆯ 것가 받ᄌᆞᄫᅩ리ᅌᅵ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거든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자ᄇᆞ온 손 암쇼 노ᄒᆡ시고
나ᄒᆞᆯ 안디 븟ᄒᆞ리샤ᄃᆞᆫ
곶ᄒᆞᆯ 것가 받ᄌᆞᄫᅩ리ᅌᅵ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거든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2.2. 김완진의 해석
지뵈 바회 ᄀᆞᅀᅢ
자ᄇᆞ몬손 암쇼 노히시고
나ᄅᆞᆯ 안디 붓그리샤ᄃᆞᆫ
고ᄌᆞᆯ 것거 바도림다
자주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자ᄇᆞ몬손 암쇼 노히시고
나ᄅᆞᆯ 안디 붓그리샤ᄃᆞᆫ
고ᄌᆞᆯ 것거 바도림다
자주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2.3. 남풍현의 해석
ᄃᆞᆯ뵈 바회 ᄀᆞᄉᆡ
자ᄇᆞᆷ 혼 손 암쇼 노히시고
나ᄅᆞᆯ 안디 븟그리ᄉᆞᆫ ᄃᆞᆫ
고ᄌᆞᆯ 것거 바도리ᇝ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던 손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거든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자ᄇᆞᆷ 혼 손 암쇼 노히시고
나ᄅᆞᆯ 안디 븟그리ᄉᆞᆫ ᄃᆞᆫ
고ᄌᆞᆯ 것거 바도리ᇝ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던 손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거든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2.4. 비고
첫 부분의 '紫布'는 자주색을 뜻하는 옛 순우리말을 표기한 것으로, 고려시대 문헌 계림유사에 나타나는 '質背'와 같은 단어로 추정된다. 애석하게도 한글 창제 이후의 자료에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어형을 알 수 없다. 제2음절은 '뵈'로 해독하는 것이 정설이나, 제1음절의 음가에 대해서는 '딜', '딛', 'ᄃᆞᆯ' 등 여러 견해가 제기된다.흔히 양주동과 김완진의 해독이 잘 알려져 있지만, 이후 국어학계의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재구 형태가 수정된 부분이 존재한다. 일례로 '執音乎' 부분은 과거 '잡다'의 활용형으로 해석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중세 한국어의 '심기다'와 연관짓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바도림다'로 해독되던 마지막의 '獻乎理音如'는 안민가, 각종 석독구결 자료와 삼강행실도언해에서 '-ᇝ다(音叱如)'라는 어미가 공통적으로 나타남이 지적되면서 '叱'의 생략을 상정해 '바도림ㅅ다'로 읽는 견해가 주류로 자리잡았다.[3]
3. 관련 항목
[1] 원문에는 주석으로 명주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2] 오늘날 경주시인 서라벌에서 강릉인 하슬라로 가는 도중이므로, 7번 국도나 동해중부선 철도와 비슷한 경로로 동해안을 따라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3] 남풍현(2010), 헌화가의 해독, 구결연구, Vol.24, pp.5-35 참고. #[4] 구지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