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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6:23:50

계림유사

파일:계림유사 여언고.jpg
계림유사(雞林類事) 여언고(麗言攷)[1]의 모습.



1. 개요2. 내용3. 손목의 고려어 채록방식4. 고려인 저자설5. 원문
5.1. 토풍, 조제5.2. 방언
6. 외부 링크

1. 개요

중국 북송시대의 봉사고려국신서장관(奉使高麗國信書狀官)이던 손목(孫穆)이 1103년(고려 숙종 8년)에 서장관으로서 고려를 방문한 후 당시 자신이 고려에서 견문한 조정제도, 풍속 및 고려 방언 약 360여 개 어휘를 채록하여 저술한 견문록이자 어휘집. 총 3권. 현재 홍콩대학 펑핑산도서관(馮平山圖書館)과 대만국립중앙도서관(臺灣國立中央圖書館)에 소장되었다.

계림은 본래 경주시의 숲 이름으로 신라 왕조의 한 가지 별칭이었으나 신라 멸망 후에도 종종 쓰였다. 고려가 멸망한 후 조선시대에도 조선왕조를 간혹 고려라고 불렀듯이[2] 해외에서 칭하는 지명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2. 내용

1103년에 북송에서 고려로 사신 유규(劉逵)와 오식(吳拭)을 수행한 손목이란 중국인이 당시 고려에 체류하면서 겪은 일들과 자신이 체득한 고려어 365어휘를 기록하여 남긴 것이다. 총 3권으로 토풍(土風), 조제(朝制), 방언(方言)의 3부와 부록의 표문집(表文集)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방언 파트가 흥미로운데, 1100년대 초의 고려어 어휘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중국어, 정확히는 송나라 때 쓰인 중고한어 호칭이 한자로 쓰여 있고 '가로(되) 曰(왈)' 자 이후 고려어의 한자 음차 표기가 쓰여 있다. 예를 들어 "天曰漢捺(천왈한날)"은 "(중국어의) '天'은 (고려어로) '하ᄂᆞᆯ'이라고 한다."로 해석된다.

따라서 曰 자 다음에 쓰인 한자 표기는 사실 한국 한자음으로 읽을 게 아니라, 송나라 중고한어로 재구해야 한다. 물론 한국 한자음 자체가 당나라 장안음에 기반한 것으로 생각되고 장안음 역시 중고한어 시기 음가에 속하기에, 그렇게까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편의상 한국 한자음에 따른 독음을 달아 두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중세 한국어의 한자음도 각주로 첨기하였다.

음가를 추정할 때 유의할 점이 있는데, 계림유사의 음차 표기에는 연음변독현상(連音變讀現象)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다음 음절의 초성이 앞 음절의 종성에도 등장하게끔 음차되어 있다. 이를테면 漢捺(한날), 屈林(굴림), 孛纜(발람) 등에서 첫 음절의 종성이 없다고 보아야 하ᄂᆞᆯ(>하늘), 구롬/구룸(>구름), 바ᄅᆞᆷ(>바람)과 흡사해진다. 이런 음역법은 한역불경에서 산스크리트어 단어를 한자로 옮긴 경우에도 해당된다.

현재는 손목이 저술한 단행본은 전하지 않고 절록본(節錄本)으로 남아 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책의 이본(異本)은 약 20여 종에 이른다. 가장 오래된 고본은 홍콩대학 펑핑산(馮平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명나라 가정연간(嘉靖年間)에 제작된 설부본이다.

이 책에 실린 고려어의 문증 시기는 손목이 고려에 왔던 1103년이지만, 이는 기록 상의 연대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이전부터 언중들 사이에서 쓰여왔을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인 고려 전기 우리말 연구 및 한자음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하늘-한날, 구름-굴림, 할아버지-한아비, 손 씻어-손 시사, 구슬-구술 등 의외로 천 년 전의 어휘가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3. 손목의 고려어 채록방식

계림유사의 초기 중세 한국어 기록은 크게 손목이 고려인과의 직접적인 필담을 통해 기록한 항목과, 고려인 통역관과의 대화를 통해 들은 고려어를 자신의 중국어 발음에 의거해 적은 항목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계림유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 진태하는 동사 항목에서 높임말이 아닌 반말로 적은 단어들이 있는데, 이는 손목이 고려어에 서툰 중국인 통역관과 대화하여 단어를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이는 당시의 국어와 현대 국어의 높임말 체계가 달랐을 뿐일 가능성도 있다.

손목이 고려어 단어를 완벽히 채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단어를 채록하는 경우가 일부 있었다. 예) 虹曰陸橋, 電曰閃, 谷曰丁蓋, 臥曰乞寢, 기타 등등. 또한 실제 고유어가 따로 있는데도 당대 중국어와 동일한 한자어를 채록한 경우도 적잖게 나타난다. 예) 鹿鹿, , , 등. 이는 계림유사가 체계화된 언어 교재가 아닌 개인의 여행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한계점이다.

4. 고려인 저자설

손목은 서명을 빌려주었을 뿐이고, 실제로 고려인들이 고려어 발음에 의거해 한자로 고려어를 쓰고 그걸 손목에게 건네주었다는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왜냐하면 중국어 발음대로 적었다고 본다면 말이 안 되는 항목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콩을 뜻하는 太는 본래 한자어 大豆를 세로로 쓰다가 그것이 간략화된 필체인데, 원래 콩을 太로 쓰는 습관이 있던 고려인이 그걸 썼다고 하면 말이 되지만 "콩"이라는 고려어 발음을 듣고 손목이 그걸 太라고 썼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현대 한국어에서도 '서리태' 같은 복합어에 '태'라는 형태소가 입말로도 쓰이기도 하지만, 단독으로 콩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또한 을 뜻하는 고려어는 한국에서만 쓰이던 글자인 이두로 쓰여있는데, 손목은 주석에 '音達'이라 달았다. 해석은 '음을 달로 읽어라'이다. 즉 이는 손목이 자신이 귀로 들은 입말을 통해서가 아닌 누군가가 대신 적어준 글말을 통해서 계림유사를 집필했음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다.

한편 "늙은"을 뜻하는 단어는 刀斤이라 적혀있는데, "도근"이라 읽으면 중세국어에 대응하는 어휘가 없지만 刀를 刃의 오기로 보고 중세국어 "ᄂᆞᆶ" (날)로 훈독하면 "ᄂᆞᆯ근"이 되어 "늙은"과 음이 비슷해진다. 당연하지만 손목이 고려어를 직접 듣고 한자로 적었다면 고려어로 훈독해야만 말이 되는 한자를 썼을 리가 없다.

하지만 계림유사가 조선관역어 같은 언어교재가 아닌 서긍의 고려도경처럼 손목이 남긴 기행문인 관계로 고려인이 고려어 발음에 의거한 단어로 보기 어려운 단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오히려 손목이 기록한 단어에 고려인이 감수와 교정을 한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5. 원문

5.1. 토풍, 조제

현재 전해지는 내용은 도종의가 임의로 발췌한 문장만 남아있다.
高麗王建, 自後唐長興中, 始代高氏爲君長. 傳位不欲與其子孫, 乃及于弟. 生女不與國臣爲姻, 而令兄弟自妻之, 言王姬之貴不當下嫁也. 國人婚嫁無聘財. 令人通說, 以米食爲定. 或男女相欲爲夫婦, 則爲之.
고려 왕건후당 장흥 연간(930~933)에 비로소 고씨의 대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그 자손에게 왕위를 주고자 아니하고 아우에게 이르게 했다. 딸을 낳으면 신하와 혼인하지 않으며 형제로 하여금 스스로 아내를 삼게 하고, 왕녀가 귀하므로 아랫사람에게 시집가면 부당할 뿐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혼인을 함에 있어서 재물을 가지고 맞아오지 않는다. 사람을 시켜서 혼담을 통하고, 쌀이나 음식으로 혼인을 정한다. 혹 남녀가 서로 부부가 되고자 하면 그렇게 하게 한다.

夏日群浴于溪流, 男女無別. 瀕海之人, 潮落舟遠, 則上下水中, 男女皆露. 形父母病閉于室中, 穴一孔與藥餌, 死不送. 國城三面負山, 北最高峻. 有溪曲折貫城中, 西南當下流, 故地稍平衍. 城周二十餘里, 雖雜沙礫築之, 勢亦堅壯.
여름철에는 시냇물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목욕하는데, 남녀의 구별이 없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조수(潮水)가 밀려 나가서 배가 멀어지면 물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남녀가 모두 맨몸을 드러낸다. 부모가 병이 들면 방 안에다 가두고 구멍 하나를 뚫어 그곳을 통해 약과 음식을 주며, 죽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고려의 국성은 삼면이 산을 등지고 있는데, 북쪽이 가장 높고 가파르다. 시내가 있어서 굽이굽이 성 안을 관통하여 흐르니, 서남쪽이 하류이므로 조금 넓고 평평하다. 성은 둘레가 20여 리이며, 모래와 자갈을 섞어서 쌓았으나 형세는 튼튼하고 장엄하다.

國官月六叅. 文班七百十員, 武班五百四十員, 六拜蹈舞而退, 國王躬身還禮. 稟事則膝行而前, 得㫖復膝行而退, 至當級乃步. 國人卑者見尊者亦如之. 其軍民見國官甚恭尋, 常則朝跪而坐. 官民子拜父, 父亦答以半禮, 女僧尼就地低頭對拜.
나라의 관리들은 한 달에 여섯 차례 조회(朝會)에 참석한다. 문반(文班)은 710명, 무반(武班)은 540명이며, 여섯 번 절하고 춤을 춘 다음 물러가면 임금이 몸을 구부려서 답례한다. 일을 아뢸 때는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분부를 듣고는 다시 무릎걸음으로 물러 나오다가 계단에 이르러서야 걸어나온다. 나라 사람들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뵈면 다음과 같이 한다. 그곳의 군민(軍民)들은 나라의 관원을 만나면 아주 공손하게 대하며, 평상시에는 조회할 때에 무릎을 꿇고서 앉는다. 관원이나 백성들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절을 하면 아버지 역시 반례(半禮)로써 답하며, 비구니들은 맨땅에 머리를 대고 마주 대해 절한다.

其俗不盜, 少爭訟. 國法至嚴, 追呼唯寸紙, 不至即罰. 凡人詣官府少, 亦費米數斗, 民貧甚憚之. 有犯不去巾衣, 但褫袍帶杖笞, 頗輕投束荊使自擇, 以牌記其杖數. 最苦執縳交臂反接, 量罪爲之自一至九, 又視輕重制其時刻而釋之.
그들의 습속은 도적질을 하지 않으며, 다투고 송사함이 적다. 국법이 아주 엄하여 관리가 세금과 부역을 독촉할 때는 오직 작은 쪽지로 하며, 오지 않으면 즉시 벌을 내린다. 관청에 가는 사람이 적으며, 비용 역시 쌀 몇 말이 들기 때문에 백성들은 가난하여 가기를 몹시 꺼린다. 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두건과 옷은 벗기지 않고 단지 포(袍)와 속대(束帶)만을 벗긴 채 곤장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데, 자못 가볍게 때리며, 형장(刑杖)을 묶은 다발을 던져서 스스로 고르게 하고, 패(牌)로써 곤장을 치는 숫자를 기록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은 팔뚝을 구부려서 교체시킨 다음 묶는 것인데, 죄를 헤아려서 한 번에서 아홉 번까지 하며, 또 죄의 경중을 보아 시각을 조절하여 풀어 준다.

惟死罪可久, 甚者髀骨相摩胸皮拆裂. 凡大罪亦刑部拘役也. 周歲待決終, 不逃其法. 惡逆及詈父母乃斬. 餘止杖肋亦不甚楚, 有賂或不免. 歲八月論囚, 諸州不殺咸送王府, 其性仁至期多赦宥. 或配送靑嶼黑山, 永不得還.
오직 죽을 죄에 대해서만 오랫동안 형벌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넓적다리 뼈가 으스러지고 가슴팍의 살갗이 터지기도 한다. 무릇 큰 죄를 범한 자도 역시 형부(刑部)에서 구금하며, 한 해 동안 판결이 나기를 기다리므로 끝내 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역을 행한 자와 부모를 욕한 자에 대해서는 참수한다. 그 나머지 죄수는 갈빗대를 때리는데 역시 심하게 때리지는 않으며, 뇌물을 주어도 이를 면하지는 못한다. 해마다 8월이면 가두어 둔 자들을 논죄(論罪)하는데, 여러 주(州)에서는 죄수를 죽이지 못하고 왕부(王府)로 이송하며, 사람들의 성품이 지극히 어질어서 대부분 사면(赦免)시킨다. 간혹 청서(靑嶼)나 흑산(黑山)으로 유배를 보내기도 하는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五穀皆有之梁最大. 無秫糯以粳米爲酒. 少絲蠶, 每羅一疋値銀十兩, 故國中多衣麻苧. 地瘠惟産人參·松子·龍鬚布·藤席·白硾紙. 日早晩爲市, 皆婦人挈一柳箱一小升有, 六合爲一刀【以升爲刀】.
오곡이 모두 있는데, 조가 가장 크다. 찹쌀이 없어서 멥쌀로 술을 만든다. 실을 뽑을 누에가 적어서 비단 1필당 값이 은 10냥이나 되므로,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삼베모시를 입는다. 땅이 메말라서 오직 인삼, 잣, 용수포, 등석, 백추지가 생산된다.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장이 열리며, 모든 부녀자들이 버드나무로 만든 상자 하나와 작은 승(升) 한 개를 가지고 있는데, 6홉[合]이 1되[刀]가 된다. 【승을 되라고 한다.】

以稗米定物之價而貿易之. 其地皆視此爲價之高下. 若其數多則以銀甁, 每重一一斤. 工人制造用銀十二兩半入銅二兩半作一斤, 以銅當工匠之直. 癸未年倣本朝鑄錢交易, 以海東重寶·三韓通寶爲記.
피쌀을 가지고 물건 값을 정하여 무역한다. 그 지역에서는 모두 이것과 비교해서 값의 높고 낮음을 따진다. 만약 수효가 많으면 은병(銀甁)을 가지고 정하는데, 한 개의 중량은 1근이다. 공인(工人)들이 은병을 만들 때는 은 12냥 반에 구리 2냥 반을 섞어 1근으로 만드는데, 구리는 공인들의 품삯에 해당한다. 계미년(1103년)에 본조를 모방하여 돈을 주조해서 교역하였는데, 해동중보(海東重寶), 삼한통보(三韓通寶)라고 새겨 기록하였다.

5.2. 방언

순번 한문 고려어(현대한국어 한자음) 중세 국어 현대 국어
1漢捺(한날)하ᄂᆞᆯ하늘
2黑隘切(해)[해-달] ᄒᆡ
3妲(달)[해-달][5]ᄃᆞᆯ
4屈林(굴림)구룸구름
5孛纜(발람)바ᄅᆞᆷ바람
6嫩(눈)
7霏微(비미)
8嫩耻(눈치)눈 디(다)[지다]눈 내리(다)
8-1耻(치)디(다)[지다]내리(다)
9天動(천동)텬동천둥
10霍(곽)[8]무뤼우박
11閃(섬)[9]번게번개
12率(솔)서리
13蒙(몽)[10]안개
14陸橋(육교)[11]므지게무지개
15幾心(기심)귀신·귓것귀신
16神通(신통)신통
神道(신도) 신도
17孛(발)(佛)
18遷人(천인)션ᅀᅵᆫ선인
仙人(선인)
19河屯(하둔)ᄒᆞ나하나
20途孛(도발)둘·두울[12]
21厮乃切(새)
22迺(내)
23打戌(타술)다ᄉᆞᆺ다섯
24逸戌(일술)여슷여섯
25一急(일급)닐굽일곱
26逸荅(일답)여듧여덟
27鴉好(아호)아홉
28噎(열)
29戌沒(술몰)스믈스물
30實漢(실한)셜흔서른
31麻刃(마인)[13]마ᅀᆞᆫ마흔
32舜(순)
33逸舜(일순)여쉰예순
34一短(일단)닐흔일흔
35逸頓(일둔)여든
36鴉訓(아훈)[14]아ᄒᆞᆫ아흔
37醞(온)
38千(천)즈믄
39萬(만)
40阿慘(아참)아ᄎᆞᆷ아침
41捻宰(념재)나ᄌᆡ
占捺(점날)[15]졈낫한낮
42占沒(점몰)져믈(다)저물(다)
43記載(기재)그제
44訖載(흘재)어제
於載(어재)
45烏捺(오날)오ᄂᆞᆯ오늘
46轄載(할재)[16]ᄂᆡᅀᅵᆯ내일
47母魯(모로)모뢰모레
48轄載烏受勢(할재오수세)ᄂᆡᅀᅵᆯ 오쇼셔내일 오소서
49烏受勢(오수세)오쇼셔오소서
50[17]ᄒᆡ, 봄, 녀름, ᄀᆞᅀᆞᆯ, 겨ᅀᅳᆯ, , 여름, 가을, 겨울
51頂(정)
52底(저)아래
53西[18]도ᇰ, 셔, 앏, 뒤, , ,
54轄希(할희)[19]ᄒᆞᆰ
55田(전)
56孛(발)
57每(매),
58突(돌)
59沒(몰)
60海(해)바ᄅᆞᆯ·바닿바다
61江(강)ᄀᆞᄅᆞᆷ
62溪(계)시내
63丁蓋(정개)[20]
64泉(천)ᄉᆡᆷ
65烏沒(오몰)우믈우물
66戌(술)[21]
67骨(골)[22]
68南記(남기)나ᇚ나무
69帶(대)
70[23]果(과)과실과일
71[24]檻切(팜)
72枝棘(지극)[25]복셩화복숭아
73鮓子南(자자남)[26]잣나모잣나무[27]
74胡桃渴來(갈래)ᄀᆞ래가래[28]
75坎(감)
76敗(패)ᄇᆡ
77悶子訃(민자부)[29]닝금능금(사과)
78黃漆(황칠)
79質姑(질고)[30] [31], 건초, 풀뿌리
80鶻試(골시)[32]
81暗(암)
82音達(달)ᄃᆞᆰ
83漢賽(한새)[33]한새황새
하야로비해오라기
85雉賽(치새)[34]ᄭᅯᆼ
84[35]于雄(우웅)비두리비둘기
86鴿弼陀里(필타리)[36]
87渴則寄(갈칙기)가치까치
88鶴(학)
89[37]馬鬼(가마귀)가마괴까마귀
90哭利弓幾(곡리궁기)[38]그려긔기러기
91雀譚(작담)[39]
92斯乃反(새)[40]ᄎᆞᆷ새참새
93蒲南切(팜)
94燒(소)
95羊(양)
96突(돌)[41]돼지
97家稀(가희)가히
98鬼尼(귀니)[42]고양이
99觜(취)
100鹿鹿(록)사ᄉᆞᆷ사슴
101末(말)ᄆᆞᆯ
102乘馬轄打(할타)ᄆᆞᆯ타(다)말타(다)
103渴翅(갈시)[43]가죽
104毛(모)
105角(각)ᄲᅳᆯ
106稱(칭)[44]미르
107水脫剔曰切(수탈)[45]믌고기물고기
슈달수달
108團(魚)(단(어))[46]자래자라
109慨(개)
110必(필)[47]ᄉᆡᆼ포전복
111蓋慨(개개)[48]쇼라소라
112蛇(사)ᄇᆞ얌
113蠅(승)ᄑᆞ리파리
114螻(루)[49] 개야미개미
115裾(거)[50]
116批勒(비륵)벼록벼룩
117側根施(측근시)[51]혀·석하서캐
118虼鋪(걸포)두텁두꺼비
[52]갈보(빈대)[53]
119人(인)사ᄅᆞᆷ사람
120主(주)쥬ᅀᅵᆫ주인
121孫命(손명)[54]손님
孫(손)
122員理(원리)[55]원님
123寺儘切(신)[56]션ᄇᆡ·션븨선비
124主事(주사)주사
125行身(행신)쟝수행상, 상인
126把指(파지)-바지-바치[57]
127宰把指(재파지)[58]녀름짓다농사
128軍(군)
129福田(복전)[59]
130阿尼(아니)비구니
131浮浪人(부랑인)부랑인
132丐剝(개박)[60]거러치비렁뱅이
133水作(수작)[61] 광대, 기생
134婆兒(파아)[62]일버ᄋᆞ훔쳐
135[63]故作(고작)고쟈고자
136공인(工人)악공
137奴台[64](내)(1인칭)
138-1你(니)
138-2(飠婁)箇(누개)누고누구
139漢丫[65]秘(한아비)한아비할아버지
140丫秘(아비)[66]아비아버지
141丫彌[67](아미)어미어머니
142丫査秘(아사비)아자비아주버니[68]
143丫子彌(아자미)아ᄌᆞ미아주머니
144長官(장관)[69]
145長(官)漢吟(장(관)한음)[70]아ᄌᆞ미형수
146[71]𡞏妹(내매) 누나·언니
147丫兒(아아)[72]아ᅀᆞ아우
148丫慈(아자)아ᅀᆞ누의누이
149[73]喃(사남)ᄉᆞ나히사나이
150漢吟(한음)[74]겨집계집
151[75]沙會(사회)[76]사회사위
152漢吟(한음)[77]안해아내
153[78]細婢(세비)소첩(小妾)아내
陟臂(척비)[79]
154丫妲(아달)아ᄃᆞᆯ아들
婆記(파기)[80]*보기[81]사내아이
155寶妲[82](보달)[83]ᄯᆞᆯ
古召盲曹兒(고소맹조아)[84]꼬맹이
156[85]丫加(아가)아가
157丫村丫妲(아촌아달)아ᄎᆞᆫ아ᄃᆞᆯ손자
158漢丫秘(한아비)싀아비시아버지
159漢丫彌(한아미)싀어미시어머니
160丫村(아촌)[86]며느리
161[87][88]訓鬱(훈울)[89]어믜오라비외백부(큰 외삼촌)
이모
162[90][91]次鬱(차울) 외숙부(작은 외삼촌)
작은 이모
163丫子彌(아자미)아ᄌᆞ미이모 혹은 외숙모
164麻帝(마제)마리머리
165麻帝核試(마제핵시)[92]머리카락
166捺翅(날시)ᄂᆞᆾ
167嫩涉[93](눈섭)[94]눈섭눈썹
168嫩(눈)
169愧(괴)
170邑(읍)
171你(니)
172蝎(할)
173捺翅朝勳(날시조훈)ᄂᆞ치 됴흔낯이 좋은
174捺翅沒朝勳(날시몰조훈)ᄂᆞ치 몯 됴흔낯이 못 좋은
175心(심)마ᅀᆞᆷ마음
176門(문)
177軻(가)[95]가ᄉᆞᆷ가슴
178腿馬末(퇴마말)[96]
179擺(파)ᄇᆡ
180遜(손)
181潑(발)
182鹽骨眞[97](염골진)염글진여무진
鹽骨易成(염골이성)염글어셔여무져서
183安里鹽骨眞(안리염골진)아니염글진아니 여무진
184洗手遜時蛇(손시사)손 시서손 씻어
185洗濯時蛇(시사)시서씻어
186白米漢菩薩(한보살)ᄒᆡᄡᆞᆯ흰쌀
187田菩薩(전보살)조ᄡᆞᆯ좁쌀
188密(밀)
189(태)[98]
190麻帝骨(마제골)[99]곡셕곡식
191酥孛(수발)수을[100]
192生根(생근)[101] 새금(하다)[102]
193密祖(밀조)며주메주
194蘇甘(소감)소곰소금
195畿林(기림)기름
196姑記(고기)고기
197朴擧(박거)[103]
198謨做(모주)[104]
[105]먹다
199茶(차)
200湯水(탕수)
201飮酒酥孛麻蛇(수발마사)수을 마셔술 마셔
202麻蛇(마사)마셔
203蘇孛打里(소발타리)수을 다리(다)술 달이(다)
204打里(타리)[106]버리다
205打馬此(타마차)다 마셔
206蘇孛速(소발속)[107](술)취ᄒᆞ다(술)취하다
207本道安理麻蛇(본도안리마사)본ᄃᆡ 아니마셔본디 아니마셔
208泥根沒(니근몰)니근 믈익은 물[108]
209冷水時根沒(시근몰)시근 믈식은 물
210擺咱(파차)ᄇᆡᄎᆞ배 차(다)
211擺安理咱(파안리차)[109]ᄇᆡ 아니 ᄎᆞ배 아니 차(다)
212那論歲[110](나론세)누런쇠누런 쇠()
213區戌(구술)구슬
214漢歲(한세)ᄒᆡᆫᄉᆈ흰 쇠()
215銅(동)구리
216歲(세)ᄉᆈ
217絲(사)
218三(삼)
219速(속)[111]그물/비단
220錦(금)금(비단)
221菩薩(보살)[112]고로비단
222及(급)깁(비단)
223背(배)
224毛施(모시)모시
225毛施背(모시배)모시뵈모시 베
226幞頭(복두)복두
227帽(모)모자
228土捲(토권)두건
229袍(포)관ᄃᆡ옷핫옷
230腰帶(요대)요ᄃᆡ요대(허리띠)
謁子帶(알자대)[113]
231軻門(가문)[114]거믄 젹삼검은 적삼
232泥不(니불)니블이불
233珂背(가배)ᄀᆞ외고의[115]
234安海珂背(안해가배)안해 ᄀᆞ외안쪽 고의
235裙(군)추마치마
236盛(성)
237背成[116](배성)보션버선
238子母蓋(자모개)[117]머리쓰개[118]
239板捺(판날)바ᄂᆞᆯ바늘
240[119]男木子蓋(남목자개)[120]ᄂᆞᄆᆞᆾ주머니
241實帶(실대)실ᄯᅴ실띠
242[121]實(실)
243繡(수)
244漢(한)ᄒᆡᆫ
245那論(나론)누런
246靑(청)프를푸른
247質背(질배)[122]ᄌᆞ디/ᄌᆞ딛자주
248黑(흑)거믈-
249赤(적)블글-
250眞紅(진홍)진홍
251緋(비)블글-
252沒涕里(몰체[123]리)믈드리(다)물들이(다)
253雌孛(자발)저울
254作(작)
255音堆(퇴)
256抹(말)
257印(인)인(印)도장
258車(거)술위수레
259擺(파)ᄇᆡ
260[124]音登席(등석)등메[125]
261質薦(질천)지즑기직[126]
262椅子[127]馬(타마)[128]도마
교으, 교의(交椅)의자
263卓子食床(식상)밥상
264[129]牀(상)평상(침상)
265火炬(화거)[130]
266音發(발)
267活黃(활황)[131]
268箔恥具囉(발치구라)발티거라발 치거라
269枯孛(고발)[132][133]고리
270聚笠(취립)슈룹우산
271孛采(발채)부체부채
272[134]音渴(갈)[135]
273音必(필)[136]
274[137]頻希(빈희)빈혀비녀
275養支(양지)양지양치
276合子(합자)
277盤(반)소반/쟁반
278甁(병)
279蘇乳(소유)[138]은병
280甁砣(병타)[139] 술주자
281[140]臺盤(대반)[141] 잔반
282枯吃反(글)[142]가마
283雅數耶(아수야)[143]동ᄒᆡ동이
284窣(솔)[144]
285巳顯(사현)[145]바리, 바리때사발, 주발
286楪至(접지)뎝시접시
287大耶(대야)다야대야
288戌(술)숟가락[146]
289茶戌(차술)차술찻숟가락
290折(절)젓가락[147]
291[148]戌羅(술라)소라소래[149]
敖耶(오야)[150]
292皮盧(피로)벼로벼루
293皮盧(피로)[151]
294捶(추)[152]죠ᄒᆡ종이
295墨(묵)
296割(할)
297割子蓋(할자개)ᄀᆞᇫ애[153]가위
298節(절)[154]쇄ᅀᆞ[155]주사위
299鞭(편)채찍
300末鞍(말안)기ᄅᆞ마안장
301轡(비)곳비고삐
302濮(복)
303旗(기)
304活(활)
305虄(살)화살
矢(시)
306長刀(장도)[156]
307[157]割刀(할도)[158]대도(박도)
訓刀(훈도)
308[159]子蓋(조[160]자개)돗귀도끼
309蘇戌(소술)
310孛南木(불남목)블나모불나무(땔나무)
311寸(촌)[161]향기
312郍(나)노끈
朴(박)[162]
313郍木香(나목향)[163]노 뭇거노끈 묶어
314活索(활삭)활쏘(다)
315讀書乞鋪(걸포)글보(다)(독서)
316乞核薩(걸핵살)글그ᅀᅳᆯ글 그을[164]
317乞林(걸림)그림
318栢子(백자)[165]방(榜)
319作之(작지)자디(을) 자지
320你之(니지)니디[166]일어나지
321阿則家囉(아즉가라)안ᄌᆞ거라앉거라
322立(립)셔다서다
323乞寢(걸침)[167]눕다
324欺臨(기림)거름걸음
325連音打(련음타)[168]ᄃᆞᆮ(다)닫(다)[169]
326烏囉(오라)오라
327匿家入囉(닉가입[170]라)니거지라다닐 것이라
328胡住(호주)[171]우ᅀᅮᆷ웃음
329胡臨(호림)[172]우룸울음
330孫烏囉(손오라)손 오라손님 오라
331孫集移室(손집이실)손 집 이실손님이 집에 있을
332屋裏坐少時(옥리좌소시)오ᄅᆞ주쇼셔올라 주소서
333替里受勢(체[173]리수세)드르쇼셔들으소서
334[174] 屋打理(옥타리)[175]시다리다시달리다
室打里(실타리)
335[176]滅知衣底(멸지의저)[177]혜다세다
336皮離受勢(피리수세)빌리쇼셔빌리소서
337[178]審(몰심)므슴무슨
338念受勢(염수세)[179]-쇼셔-소서
339密翅易成(밀[180]시이성)며치 이셔몇이 있어
340都囉(도라)도라달라
341羅戲少時(라희소시)여희쇼셔여의소서
342[181]得(득)[182]
343[183]雅蓋(아개)[184]위문, 위로
344生(생)
345死(사)
346刀斤(도근)[185]늘근늙은
347亞退(아퇴)애티/앳되(다)
348薩囉(살라)사라-살아(있다)
349朱幾(주기)주기-죽이(다)
350移實(이실)이실있을
351烏不[186]實(오부실)업슬없을
352黑根(흑근)[187]
353胡根(호근)효근[188]작은
354釁何支(흔하지)흔ᄒᆞ디흔하지
355阿捺(아날)져글적은
356那奔(나분)노픈높은
357捺則(날즉)ᄂᆞᄌᆞᆨ(ᄒᆞ다)나즉(하다)
358及欣(급흔)기픈깊은
359泥底(니저[189])녀터[190]옅어

6. 외부 링크



[1] 계림유사의 초기 중세 한국어를 연구한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가 1925년에 발표한 논문이다.[2] 물론 일본제국이 대한제국 황제를 고려국왕이라는 멸칭으로 부른 사례도 있지만[해-달] 원문에는 '日曰姮, 月曰契'로 거꾸로 쓰여있다.[해-달] [5] 원문에는 姮(항)으로 오기된 것을 교감.[지다] 용비어천가에 나올 만큼(하ᄂᆞᆳ〮 벼〮리〮 눈〯ᄀᆞᆮ〮 디니〯ᅌᅵ다〮) 중세 국어까지도 쓰였으나 현재는 해가 지다 등으로 용례가 한정되었다.[지다] [8] 당시 발음은 '확'. 방종현은 雹(박)의 오기이거나 혹은 雨雹(우박) 또는 雨朴(우박)으로 적었는데, 雨(우)자가 탈락되었다고 하였다. 진태하는 원래는 霰霍(산곽)으로 적었는데, 霰(산)자가 탈락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재구음을 '싸락'으로 보고, 싸락눈을 설명한 것이라고 하였다. 霍을 세로로 파자한 雨隹를 霧堆(무퇴)의 오기로 여기고 중세 한국어 '무뤼'와 연관짓기도 한다.[9] 번쩍할 섬 자로 당시 발음은 '셤'이다. '섬뜩'을 표현했다고 하기에는 '섬뜩하다'는 19세기에 '셤ᄯᅳᆰᄒᆞ다'로 처음 확인된다.[10] 霧는 집운에서 발음이 몽(謨蓬切, 音蒙)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몽은 고려의 고유어가 아니라 霧의 한자음일 가능성이 높다.[11] 무지개의 모습을 육교에 빗댄 것을 잘못 기록하였거나, '虹橋(홍교)'가 오기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무지개의 어원은 '믈[水\]'과 '지게[戶\]'의 합성어인데, 여기서 '물'과 발음이 비슷한 '뭍[陸\]' 및 '지게'와 뜻이 비슷한 '다리[橋\]'를 합쳐 '육교(陸橋)'라고 훈차 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12] < *두ᄫᅳᆯ[13] 麻兩(마량)을 교감. 당대 한국 한자음으로는 마ᅀᅵᆫ에 가깝다.[14] 鴉順(아순)을 교감.[15] 원문에는 暮에 들어가 있다.[16] 재구음이 'ᄒᆞ제'나 '하제'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 문서를 참조.[17] 년, 춘, 하, 추, 동은 같다.[18] 동, 서, 남, 북은 같다.[19] 당시까지만 해도 ㄱ과 ㅎ의 구분이 모호했기 때문에 실제 발음은 '할기' 정도로 추정된다.[20] 방종현은 丁자를 오기로 보고 '골개'로 풀이하였다. 하지만 진태하는 산의 등줄기의 다른말인 '등갱이'로 보고, '등개' 혹은 '등갱이'로 풀이하였다.[21] 진태하는 풀의 옛말이자 다른말인 '프서리' 혹은 '플서리'에서 따온 말이라고 추정하였다.[22] 당대 한자음으로는 '곧'에 가깝다.[23] 명초본(明鈔本)에는 실려 있으나, 후대의 판본에는 누락되었다.[24] 원문의 銷(소)를 鋪(포)로 교감.[25] 진태하는 攴捒(복송)의 오기로 보았다.[26] 잣 + 나ᇚ(나무)[27] 松(송)은 본래 소나무이나, 소나무잣나무는 같은 과·속으로 구분이 어렵다.[28] 가래나무를 가리킨다. 가래나무호두나무와 같은 과·속의 나무로 열매도 비슷하다.[29] 訃(부) 자를 연문으로 보고 '悶子(민자)'로 해독하여 사과의 옛말인 '멎'으로 재구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 또한 '문ㅅ배'로 해독하여 문배나무의 열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30] 진태하는 慈姑(자고)의 오기로 보았다.[31] 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풀.[32] 마에마 교사쿠는 髓試(수시)의 오기로 보았다. 방종현은 鶻(골)자가 연문으로 보았다.[33] 아마도 황새와 해오라기 혹은 백로를 구분이 어려워서 해오라기와 백로를 황새로 잘못 적은 듯하다.[34] 마에마 교사쿠는 치새로 해석하였고, 방종현은 티새로 해석하였다.[35] 초기 설부 명초본(明鈔本)에서는 비둘기 구(鳩)와 집비둘기 합(鴿)이 같이 서술되어 있으나, 후대인들이 설부를 재판할때 이 항목을 중복이라고 보고 삭제하였다. 진태하는 고려시대에는 비둘기와 집비둘기를 구분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분별이 사라졌다고 하였다.[36] 진태하는 재구음을 '비다리'로 추정하였다.[37] 원문에는 打(타)인데 柯(가)로 교감.[38] 진태하는 器利兮畿(기리혜기)의 오기로 보았다.[39] 뒷 항목인 雀과 이어지면서 오기된 듯하다. 훈몽자회에는 '禽 새 금', '雀 새 작'으로 나온다. 진태하는 雀譚(작담)을 賽(새)로 교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40] 진태하는 賽斯乃反(새)를 譚崔斯乃反(담새)로 교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41] 당대 한자음으로는 '돋'에 가깝다.[42] 실제 발음은 '고니' 정도로 추정된다. 이후 어중의 ㄴ이 탈락되며 고이 → 괴 → 고양이로 변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43] 갈(渴)의 중고한어 발음은 '갇'에 가깝기에 '갇시', 즉 '갗'+'이'를 표기한 것이라 볼 수 있다.[44] 稱(칭)이 아닌 珍(진)으로 된 판본이 있어서 즉 (다섯째지지, 용)을 가리킨다.[45] 물고기를 기록해야 될 것을 수달로 잘못 착각하여 기록한 듯.[46] 자라의 이명.[47] 진태하는 包(포)의 오기로 추정하였다.[48] 진태하는 差慨(차개)의 오기로 추정하였고, 재구음을 '자개' 혹은 '쟈개'로 추정하였다.[49] 진태하는 한자어 螻蟻(루의) 혹은 螘(의)의 오기라고 보았다.[50] 진태하는 柅(니)의 오기로 추정하였다.[51] 마에마 교사쿠는 재구음을 '주근니'로 추정하였다. 진태하는 割稂柅(할랑니)의 오기로 보았고, 재구음을 '가랑니'로 풀이하였다.[52] 진태하는 원문의 蟇(마)를 종서로 쓰인 臭虫(취충)의 오기로 보았다. 臭虫은 빈대를 뜻한다. 앞에 이, 벼룩, 서캐 등 해충을 나열했으므로 어휘 배열 상으로도 빈대가 더 유력하다.[53] 갈보는 보통 창녀의 뜻이지만,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에 빈대의 속어로도 수록되어 있다. 구한말 민속학자 이능화가 저술한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에 "몸파는 유녀를 가리켜 갈보(蝎甫)라 하는데, 그 뜻은 피를 빠는 빈대"라고 해설했다.[54] 진태하는 孫吟(손음)의 오기로 보고, 손님으로 풀이하였다.[55] 마에마 교사쿠는 理(리)를 주격조사로 보고 원-이로 풀이하였다. 방종현은 理(리)를 연문으로 보고 원(員)으로 풀이하였다. 진태하는 員吟(원음)의 오기로 보고, 재구음을 '원님'으로 풀이하였다.[56] 뒷단어가 누락된 듯하다.[57] 물건을 만들거나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로, 갖바치, 노릇바치 등에 쓰인다.[58] 진태하는 불에 타고 남은 찌꺼기인 재를 가지고 농사짓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하였다.[59] 불교용어. 공양하고 선행을 쌓아서 내생(來生)의 복을 마련하는 일.[60] 丐(개)를 乞(걸)로 치환하면 걸박이 되는데, 이는 충청도 사투리인 '걸박시' 혹은 '걸방이'에 대응한다.[61] 고려시대에 있었던 천민집단인 수척(水尺)을 뜻한다. 진태하는 재구음을 '슈자이'로 추정하였다.[62] 진태하는 盜兒(도아)의 오기로 보았다.[63] 광대의 아들.[64] 切 또는 反이 누락되었다.[65] 원문에는 了(료)이나 丫(아)로 교감. 이하 모두 같다.[66] 원문에는 子了秘(자료비)이나 丫秘(아비)로 교감.[67] 원문에는 了秘(료비)이나 丫彌(아미)로 교감.[68] 이전에는 숙부, 삼촌과 같은 뜻이었지만 지금은 의미가 변화하여 남편의 형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69] 말뜻을 고구려의 관직명인 대형(大兄), 소형(小兄)으로 잘못 이해하여 기록한 것 같다. 진태하는 '장형(長兄)'의 오기로 추정하였다.[70] 방종현은 재구음을 '댱관하님'으로 풀이하였다. 진태하는 長兄滿吟(장형만음)의 오기로 보았다.[71] 원문에는 娣(제)이나 姊(자)로 교감.[72] 당대 한자음으로는 아ᅀᆞ에 가깝다.[73] 원문에는 吵(초,묘)이나 沙(사)로 교감.[74] 재구음은 '하님'인데, 이 단어의 현재의 뜻은 여자 종 혹은 하녀들이 서로 높여 부르던 말. 다만 진태하는 하님이라는 단어가 비칭이라는 이유로 漢(한)이 滿(만)의 오기라고 보았고, 만음(滿吟)으로 교정한 뒤 '마님'으로 풀이하였다.[75] 남편이 자신을 칭할 때.[76] 한국어에서는 남편이 자신을 칭하는 명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손목이 딸의 남편이라는 뜻인 사위라는 단어를 기록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사위'의 의미가 시간에 따라 변화한 것일 가능성이 존재한다.[77] 앞 항목인 여자 항목 주석을 참조.[78] 아내가 자신을 칭할 때.[79] 진태하는 충청도 사투리 중에 아내의 별칭으로 '덕배(德配)'라는 단어가 있다고 하였다. 척비라는 단어가 덕배의 음차가 아닌가 추정하였다.[80] 婆의 송나라 당시 한자음은 '보'에 가까웠다.[81]태종실록》에서 '巴只'라는 차자표기로 문증되는데, 신라 및 고려시대 문헌에서도 伏, 巴, 福, 巴只 등 다양한 표기로 등장한다.[82] 원문의 姐(저)를 교감.[83] 實妲(실달)의 오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84] 진태하는 古盲兒(고맹아)의 오기로 보고 있다.[85]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는 말.[86] 재구음은 '아ᄎᆞᆫ'. 뒷 글자가 누락되어 보인다.[87] 원문의 子(자)를 교감.[88] 진태하는 이 항목을 큰 외삼촌으로 보았다.[89] 진태하는 재구음을 '한울'로 풀이하였다. 그리고 어형을 보면 뒷글자인 '아비' 또는 '압'이 누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90] 원문의 子(자)를 교감.[91] 진태하는 이 항목을 작은 외삼촌으로 보았다.[92] 진태하는 '머리카락'의 사투리인 '머리끄생이'로 추정하였다.[93] 원문의 踈步(소보)를 교감.[94] 마에마 교사쿠는 원문인 踈步(소보)를 교감하지 않고 그대로 보고 재구음을 '섭'으로 풀이하였다.[95] 뒷단어가 누락된 듯하다.[96] 腿(퇴)는 '뒤'를 음차하여 기록한 것 같고, 馬末(마말)이라는 단어가 어떤 단어를 음차한건지 모르지만 진태하는 이 단어를 접미사로 보았다.[97] 원문의 骨鹽眞(골염진)을 교감.[98] 한국 한정으로 太(태)를 콩의 뜻으로 써 왔다. 예컨대 청태, 흑태, 두태, 서목태 등.[99] 강신항은 재구음을 '마디곡'으로 풀이하였다.[100] <*수ᄫᅳᆯ[101] 진태하는 재구음을 '싱걷(신것)'으로 풀이하였다.[102] '새큼하다'의 여린말이다.[103] 마에마 교사쿠는 擧(거)를 不(불)자의 오자 혹은 연문이라고 하였다. 방종현은 擧(거)를 業(업)자의 오자로 보았다. 진태하는 '밥'의 한자로 음차할 음가가 없어서 부득히 하게 '朴(박)'자를 사용하였다고 보았다.[104] 마에마 교사쿠는 諸故(제고)의 오기로 보고 재구음을 '죽'이라고 풀이하였다. 방종현은 문자 그대로 재구음을 '모주'로 풀이하였다. 진태하의 주장이 맞을 경우에는 謨做(모주)가 잘못된 표기이고, 謨故(모고)가 맞는 표기일 수도 있다. 모고가 동사 활용형인 '먹어'로 해독되기 때문이다.[105] 진태하는 본 항목이 이 아닌 본래 식사를 설명하는 항목인데, 도정(陶珽)이라는 사람이 도종의(陶宗儀)의 설부(說郛)를 재판할 때 오기가 되어서 현재까지 잘못 전해져왔다고 말하였다.[106] 진태하는 伐里(벌리)의 오기로 보았다.[107] 진태하는 速(속)이 追(추)의 오기로 보았다.[108] 뜨거운 물.[109] 원문의 擺咱安理(파차안리)를 교감.[110] 원문의 義(의)를 교감.[111] 마에마 교사쿠는 剌(랄)의 오기로 보았다.[112] 진태하는 苦隆(고륭)의 오기로 보았다.[113] 마에마 교사쿠는 재구음을 '허리ᄯᅴ'로 풀이하였다. 진태하는 褐子帶(갈자대)의 오기를 보았고, 재구음을 '허리띠'의 방언인 '헐띠' 혹은 '헐지띠'로 풀이하였다.[114] 진태하는 가문 뒤에 적삼을 뜻하는 단어인 삼(衫)이 누락되었다고 하였다.[115] 남자의 여름 홑바지.[116] 원문은 戌(술)을 교감.[117] 진태하는 재구음을 '싀우개'로 풀이하였다.[118] 왕비와 귀부인 등이 국상 때 사용한 머리쓰개.[119] 귀중한 물건이나 문건을 넣어 두는 자그마한 자루. 진태하는 이 항목을 주머니로 보았다. 진태하는 男子夾袋(남자협대)로 교정하였다.[120] 원문의 男子木蓋(남자목개)를 교감. 진태하는 木蓋(목개)로 교정하였다.[121] (선)의 오기인 듯하다. 앞에서 絲(사)를 언급했기 때문에 線(선)을 설명하는 항목으로 보인다.[122] 진태하는 質背(질배)가 자주색 베를 의미하는 紫布(자포)라고 풀이하였다. 마에마 교사쿠는 재구음을 'ᄌᆞ지뵈'로 풀이하였다.[123] 구개음화 전 "톄".[124] 진태하는 우산 등(簦)이 아닌 등나무 등(藤)이 맞는 표기라고 하였다.[125] 헝겊으로 가선을 두르고 뒤에 부들자리를 대서 만든 돗자리.[126] 왕골껍질이나 부들 잎으로 짚을 싸서 엮은 돗자리.[127] 원문의 馳(치)를 교감.[128] 진태하는 당시의 중국인과 고려인들이 의자와 도마를 구분하는 단어가 달랐다고 주장했다.[129] 원문의 林(림)을 교감.[130] 진태하는 燭(촉)의 또 다른 한자어라고 하였다.[131] 진태하는 호롱불의 '호롱'과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풀이하였다.[132] 진태하는 枯李(고리)의 오기로 보았다.[133] <고을<고블.[134] 진태하는 盍(합)의 오기로 보았다.[135] 당대 발음은 '갇'에 가까웠다.[136] 이 또한 당대 발음은 '핃'에 가까웠다.[137] 원문의 篦(비)를 교감.[138] 진태하는 '소용'의 단어의 음가가 비슷한 점이 있으나 확실한 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139] 진태하는 甁碗(병완)의 오기로 보고, 고려인들이 스스로 만든 한자어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마에마 교사쿠는 이 단어가 동사라고 보고 따로 풀이하지 않았다. 방종현은 甁砣(병타)라는 단어의 뜻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140]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술잔과 받침.[141] 방종현은 재구음을 'ᄃᆡ반'으로 풀이하였다. 진태하는 고려인들이 스스로 만든 한자어라고 주장하였다.[142] 진태하는 이 항목의 반절음이 이상하다고 하였다.[143] 진태하는 鴉敖耶(아오야)의 오기로 보고 있지만, 아오야라는 그릇이 어떤 그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144] 당대 발음은 '솓'에 가까웠다.[145] 진태하는 巴頼(파뢰)의 오기로 보고 있다.[146] 술+ㅅ+가락[147] 져+ㅅ+가락[148] 세수할 때 사용하는 그릇.#[149] 운두가 조금 높고 굽이 없는 접시 모양으로 생긴 넓은 질그릇.[150] 진태하는 그릇이 어떤 그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151] 벼루와 중복되어 오기된 듯하다.[152] 뒷글자가 빠져서 기록된 것 같다.[153] ← ᄀᆞᇫ + -개[154] 진태하는 節(절)자가 당시 고려시대에 骰(투)자의 한국음이라고 추정하였다.[155] 주사위를 뜻하는 중국어 色兒(색아)에서 온 말이다.[156] 장도(粧刀)를 뜻한다. 진태하, 마에마 교사쿠와 방종현은 문자 그대로 장도(긴 칼)로 풀이한 것이 劍의 본뜻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하였다.[157] 大刀(대도)의 오기.[158] 진태하는 환도(環刀)로 풀이하였다.[159] 원문은 烏(오)이나 鳥(조)로 교감.[160] 구개음화 이전 음은 "됴".[161] 香(향)의 오기.[162] 볏짚, 삼, 칡 따위를 꼬아 만든 줄을 '바'라고 한다.[163] 김철헌은 郍木沓(나목답)의 오기로 보았고, '노뭗다'로 풀이하였다. 진태하는 郍木皆(나목개)의 오기로 보았다.[164] 글씨를 긋다.[165] 진태하는 額子(액자)의 오기로 보았다. 덧붙혀서 손목이 방(傍)자의 동사인 '게시하다'를 말했는데, 질문받은 사람(고려인)이 명사인 액자를 잘못 대답한 것이 아닌지 추측하였다.[166] 닐다: 일어나다의 옛말.[167] 손목이 엉뚱한 단어인 '걸치다'의 활용형인 '걸침'으로 잘못 기록한 것 같다.[168] 打를 연음(連音)하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打打(타타)가 되어 'ᄃᆞᆮ(다)'로 해독된다. 음차로 파악하여 '녀ᄂᆞᆷㅅ다'로 해독하기도 한다. 아니면 전사과정에서 오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連(연)→達(달), 音(음)→里(리)로 교정하면 達里打(달리타)가 되어 사동사 '달리다'로 해독되기 때문이다.[169] 빨리 달리다.[170] 당대 발음은 "ᅀᅵᆸ".[171] 원문에서 胡臨(호림)과 위치가 바뀌어 있던 것을 교감.[172] 원문에서 胡住(호주)와 위치가 바뀌어 있던 것을 교감.[173] 구개음화 전 "톄".[174] 진태하는 繫考(계고)가 맞고, 擊考(격고)가 오기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繫考(계고)라는 단어를 직역한 한국어는 없으나, 그 단어에 해당하는 뜻은 '시달리다'라는 단어라고 하였다.[175] 마에마 교사쿠는 재구음을 '두드리'로 풀이하였고, 방종현은 재구음을 '옥다리'로 풀이하였다.[176] 죄를 지으면 처벌을 함. 진태하는 죄를 처벌하는 행위가 아니고, 양(量), 숫자(數), 셈(計)의 뜻이라고 하였다.[177] 진태하는 濊衣底(예의저)의 오기로 보고, 재구음을 '혜이디'로 풀이하였다.[178] 원문의 設(설)에서 교감.[179] 진태하는 怎受勢(즘수세)의 오기로 보고, 재구음을 '좀쥬셰'로 풀이하였다.[180] 당대 발음은 '밑'.[181] 진태하는 다른 학자들이 다른 글자를 제외하고 皆(개)자만 해석하는 것이 잘못이고, 전체 단어를 해석하여 '일을 다 마쳤을 때'로 해야 맞다고 하였다.[182] 진태하는 재구음을 '닥' 혹은 '독'으로 풀이하였다.[183] 임금이 신하를 위문함.[184] 방종현과 강신항은 감탄사로 보았다.[185] 力斤(력근) 또는 乃斤(내근)으로 보는 견해, 훈독과 음독이 결합한 刃斤(날근)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186] 원문의 不鳥(불조) 교감.[187] 黑은 ㅋ의 유기음을 나타낸다. 즉, ㅎ+근.[188] '횩다'는 '작다'의 옛말이다.[189] 구개음화 전에는 "뎌".[190] '옅다'의 고어로 기본형 '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