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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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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오스만 제국
3.1. 하렘의 여성3.2. 비빈 및 궁인
4. 동물5. '할렘'과의 혼동6. 여담7. 대중매체8.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하렘.jpg
하렘의 모습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정하게 대처하여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2번, 또는 3번, 또는 4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그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손[1]이 소유할 것이거늘,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보다 적합한 것이라.
쿠란 4:3[2]
오스만어: Harem-i hümâyûn
한 명의 남성을 중심으로 여러 이성이 함께 호감을 갖는 상황 또는 그 집단을 뜻하는 말. '하렘(harem)'은 하람의 튀르키예식 발음으로, 정식 명칭은 Harem-i hümâyûn(하렘 이 휘마윤)으로 군주의 하렘이라는 뜻이다. 어원은 아랍어에서 금지된 것을 의미하는 '하람(حرم)'이다.

2. 상세

하람은 원래 쿠란 혹은 샤리아에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지만, 좁은 의미로는 각 가정에서 손님,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방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규방 내지는 안방. 전통적으로 아랍, 튀르키예 지역의 전통가옥에는 남성들의 구역인 셀람륵(selamlık)과 여성들의 구역인 하람륵(haramlık)이 존재하는데 궁전에도 예외가 없었다. 이것이 지금처럼 일부다처제의 상황이나 환경을 가리키는 말로 변질된 것은 오스만 제국의 하렘 제도가 무지한 유럽인들에게 잘못 인식된 것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오스만 제국의 하렘은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그저 생활공간에서 남녀를 격리하던 데서 유래한 것이었다.[3] 그 때문에 술탄의 궁전을 방문한 남성들은 하렘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지만, 여성들은 하렘에 들어가서 황후를 비롯한 후궁들을 알현할 수 있었다.[4] 물론, 마찬가지의 이유로 외부인 여성이 단독으로 셀람륵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보통의 경우 술탄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여럿이더라도 1명씩 정해진 절차를 거쳐 잠자리를 가졌고 애초에 황제의 어머니, 모후인 발리데 술탄이 골라 준 여인과 잠자리를 가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황제가 여성들이 모여 사는 하렘으로 직접 행차해 여인들을 취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미 선정된 하렘의 여인을 단장시켜 황제의 침실로 들여보내는 형태였다.

하지만 하렘이 물 건너 다른 문화권에 전해지면서 "수많은 미녀들이 단 1명의 남성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격리된 장소"라는 이미지로 왜곡되었다. 유럽남성들은 하렘을 질투와 선망, 경멸이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음탕하고 퇴폐적인 것으로 망상했지만, 당연히 그렇게 만들어진 하렘이란 개념은 실제로는 오스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옛날부터 현재까지 서민들보다 상류의 지배계층에서 더욱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피지배계층의 혼인과 번식은 지배자가 설계한 통치의 수단으로써 기능하는 바가 컸고 하렘과 비슷한 특별한 제도는 일종의 최상위 권력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서 자신이 독점하는 아름다운 성적 대상의 숫자부와 권력의 지표기 때문이다. 여왕이나 부유하고 권력있는 여성들 역시 그와 같았다.

최고 권력자가 성별만 달라질 뿐 애인이나 등을 많이 거느리는 모습은 인류 역사에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중국의 측천무후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황제도 잘생긴 남자들을 자유롭게 골라 여럿 거느리고 당대 기준으로 문란한 성생활을 즐길 수도 있었다. 페르시아에서도 부유층들이 가지고 있었는데 종교 개혁운동으로 나온 마즈다크교는 하람을 반대하여 거꾸로 일처다부제를 주장했고, 부유층 하람을 급습하여 여자들을 풀어주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다처제가 합법인 이슬람권에서도 실제 일부다처는 극히 소수의 상위 기득권층 남성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나 다름이 없으며 서민 남성들은 이루기 매우 힘든 일이다. 쿠란에서도 일부다처제가 가능한 경우를 서술하면서 '모든 아내에게 이러저러하게 불편이 없을 정도의 생활수준을 갖춰주고 모두 똑같은 대우를 해 줘야 하며 다른 첩을 들이려면 기존 정실부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애초에 세계적으로 유목민족의 일부다처제는 형제 등이 사망했을 경우 그 형제의 아내와 자식들을 부족원으로서 그대로 유지하여 재산을 보존하거나 가난한 과부와 고아를 거두어 사회적 약자가 생계수단을 잃어 아사 혹은 살해당하는 것을 막는 복지 목적으로 생겨난 제도이자 문화였으며, 통치자에게 공식적으로 다수의 배우자가 허락되는 것은 정치적 사정이거나 후계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함이니 별 가진 것 없는 일반인 남성과는 인연이 먼 이야기다.

어쨌든 간에 오스만 제국을 그렇게 욕하면서도 유럽의 군주들을 비롯한 기득권 계층들의 남성들은 허상 속의 하렘을 부러워했다. 유럽은 기독교의 가르침대로 철저한 일부일처제에 설사 왕에게 애인이 생기더라도 총희, 즉 공식적인 정부 정도가 한계였지 결혼이나 사생아 자녀의 법적 인정은 불가, 사람에 대한 소유권 따윈 없었다. 결국 술자리에서 이야기할 때 단골로 뒷담화처럼 씹을 거리나 되었을 뿐. 그러나 슬쩍 하렘 제도를 모방하는 사례도 생기긴 했다.[5]

그러다가 18세기 유럽 귀부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Mary Wortley Montagu, 1689-1762)[6]오스만 제국 여성들의 삶을 전하고 19세기 옐레나 디미트리예비치(Jelena Dimitrijević, 1862~1945)[7] 라는 세르비아 여성이 오스만 제국 황실의 허락을 받아 하렘에서 아예 1년여 동안 살면서 하렘에 사는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적어 유럽으로 와 발행한 책자에서 "하렘은 그리스도교수녀원과 다름없는 곳"이라 하는 등 하렘의 실상이 알려지자, 유럽 남성들은 놀라워했고 그 귀족 여성이 거짓으로 왜곡해 썼을 것이라며 믿지 않으려 드는 남자들도 가득했다.

당대 유럽인들이 품었던 망상을 엿보려면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Grande Odalisque)[8] 같은 그림에서 몽환적이고 에로틱한 이미지들을 찾아 보자. 참고1참고 2 이후 오리엔트-아시아 국가들의 궁궐에서 여성들이 기거하는 곳은 모두 하렘이라고 부르는 관행이 생겼다.

동아시아의 후궁의 거처 역시 오스만 제국이 보면 전형적인 하렘이다. 여성들만의 거처와 일을 관장하는 부서가 따로 존재하고, 거세내시와 여성 관리들이 일하며, 궁궐의 제일 윗 어른으로서 통치자의 어머니와 아내인 대비와 중전이 후궁/궁녀들을 다스리고 왕의 밤일과 후계 생산, 유사시 통치 대리 등을 주관하며 외부인 남성들의 접근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 등은 중국이나 한국의 내명부도 하렘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누구나 알듯이 이러한 궁궐 내명부의 분위기란 환락적, 퇴폐적이기는커녕 엄격한 규율들과 품위 유지, 각 정치세력들의 물밑 암투로 인해 살 떨리고 숨막히는 장소일 뿐이다. 하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주의 하렘의 관습은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주로 튀르크 문화권에서만 발견된다.[9] 오스만 제국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무굴 제국 역시 하렘과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이슬람 율법으로는 배우자는 '정부인만 최대 4명까지' 둘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아예 소속원이 노예 신분인[10] 하렘에서만 여성을 만나고, 이렇게 해서 공식 배우자를 지정하지 않아 법적으로는 평생 미혼 상태를 유지하면서 황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이 금기를 피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후계자를 낳은 여성들은 신분이 상승할 수밖에 없었고[11] 일정한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이 중 대표적인 예시가 서구권에 살던 평민이다가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 하렘에 들어간 후 결국 첫 공식 '황후'까지 된 휘렘 술탄이다.

휘렘 술탄을 황후로 맞아들인 쉴레이만 1세[12] 시대에는[13] 황후도 있고 하렘의 여인들도 있는 이상한 상태로 잠시 변질되었지만, 그때는 술탄에게 함부로 대들었다간 바로 짓밟혀서 대숙청하는 절대권력의 오스만 제국 최전성기였기 때문에[14] 이슬람 율법이고 뭐고 그 누구도 쉴레이만 1세를 막을 수 없었다.[15]

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신적 지주 정도 되는 이븐 와하브도 당대 오스만 제국의 퇴폐현상이라고 쓰고 세속화라고 읽는다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근대 이전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권 헤게모니를 장악하던 시절에는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던 것보다 율법적으로 풀려 있던 시대였다.[16]

3. 오스만 제국

3.1. 하렘의 여성

역대 오스만 제국 군주들의 어머니나 배우자, 후궁 란을 보면 튀르크인의 수보다 유럽(캅카스 포함) 출신들이 많은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하렘 제도와 연관되어 있다.

오스만 황제들의 배우자나 후궁이 된 여인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초창기에는 동로마나 세르비아 등의 공주, 튀르크 베이(족장)의 딸 등 비교적 신분이 높은 여성들이 눈에 띄지만 오스만 제국이 동유럽과 중동을 정복한 중기부터는 유럽 기독교도 출신 노예나 신하들이 헌상한 발칸 반도 영토 출신 그리스인, 슬라브족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22] 이들은 한미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입궁하기 이전의 기록이 부실한 경우가 대다수이며 아예 출신지까지 불명확한 경우도 많다.

배우자나 후궁이 된 사례 이외에도 하렘에 있던 모든 여인들의 경우 체르케스, 조지아, 압하지야캅카스 출신들과 그리스, 왈라키아, 발칸반도, 폴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러시아 등 동유럽 및 남유럽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몰타 출신 여성도 있었으며 드물게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출처]

우크라이나 일대 슬라브인 노예 사냥으로 악명높던 크림 칸국이 멸망하고 오스만 제국의 국력도 약화된 19세기 이후에는 그리스를 비롯한 남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독립하면서 그리스, 슬라브, 알바니아 여성들은 다소 줄어들고 체르케스캅카스 출신들이 주를 이루게 되는데 노예가 아닌 지역 유지, 명문가 출신들이 입궁한 경우가 적지 않다.

3.2. 비빈 및 궁인

4. 동물

일부 동물들도 하렘이나 일부다처와 비슷한 번식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동물로 코끼리물범, 사자, 몽골야생말, 고릴라 등이 있다.

보통 수컷 1~2마리가 모계로 이어진 암컷 여러 마리가 이룬 한 그룹 전체와 독점적인 짝짓기를 하며, 이런 시스템에서 어린 새끼 수컷들은 성장하면 엄마이모자매들의 그룹에서 쫒겨나 다른 영역의 수컷과 싸우는 도전자가 되어서 이겨 그 자리를 빼앗아야 번식을 하고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당연히 경쟁에서 승리하는 극소수의 알파 수컷은 대개 크고 강한 우수한 개체로서 암컷을 통해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를 누리게 되지만, 패배한 떠돌이 수컷들도 포기하지 않고 연합해서 알파를 공격하거나 불륜을 시도하며 암컷을 차지할 기회를 노린다. 게다가 하렘의 집권 기간은 상당히 짧은지라 알파 수컷들은 자주 교체되며[25] 이런 식으로 유전자 풀의 협소화를 방지한다.

5. '할렘'과의 혼동

할렘과 하렘은 다르다. 할렘은 Harlem이나 Haarlem로 표기되는 지명이다. 전자는 미국 뉴욕에 있고, 후자는 네덜란드에 있다. 할렘 지구라고 하면 뉴욕 맨해튼의 할렘이라는 장소, 할렘 게임이라고 하면 네덜란드 할렘에서 2년마다 한번씩 개최되는 국제 야구대회이다. 영어 발음으로 하렘(Harem)은 하렘과 하림(영국식), 헤럼(미국식)이며 할렘(Harlem)은 할럼에 가깝게 발음된다. 둘 다 엑센트는 1음절.

이 두 단어를 헷갈린 탓인지 1999년에 이탈리아와 튀르키예가 합작해서 만든 영화 하렘 수아레(Harem Suare, 이탈리아어로 '하렘의 밤'이란 뜻)가 한국에 개봉되었을 때 할렘 슈어라는 괴상한 제목으로 나왔다. 일본에서 하렘 소재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ㄹ'받침이 잘 안 돼 탈락시키는 경향이 있는 만큼(ex. 콜라 → 코-라) 하렘이 할렘인 줄 착각하는 사례인 듯하다.

6. 여담

이슬람이 꽤 폐쇄적이어서 별의 별 이야기가 전해지곤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유럽 백인 여자도 납치해서 데리고 산다는 이야기로, 이건 도시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고 수도 없이 많은 유럽 여성들이 납치당했다. 바르바리 해적 참고[26]

하렘의 위치와 가까운 보스포루스 해협은 문제를 일으킨 하렘 구성원들의 처형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

일본 아키히토 덴노의 차남인 후미히토 친왕도 가쿠슈인대학 재학 시절인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일종의 하렘을 거느렸다는 소문이 있다. 겉으로는 "1년 후배인 가와시마 키코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다가 캠퍼스 커플이 되어 결혼했다."고 선전되었으나, 사실 그 동아리는 후미히토 친왕의 하렘이라는 것이다. 후미히토 친왕은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보면 부하를 시켜서 동아리에 가입하게 만들었고 그녀들 중에서 끝까지 남아 결혼에까지 이른 인물이 가와시마 키코였다는 것이다.

중국서진 왕조의 초대 황제인 사마염오나라를 정복하고 중국 통일을 이루는 데 성공하자 곧바로 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궁녀들로 구성된 하렘을 세웠는데, 매일마다 하렘 내부를 염소[27]가 끄는 수레를 타고 행차하면 수레를 끄는 염소가 멈추는 곳의 처소에 기거하는 궁녀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해서 황제의 아이를 임신하면 단번에 정식 후궁으로 지위가 승격되었으므로[28], 궁녀들이 일부러 자기 처소 앞에다가 소금물이나 댓잎 같은 염소가 좋아할 만한 것을 뿌려놓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만화나 게임에서는 1명의 남성에 많은 수의 미소녀 캐릭터가 몰려들어 경합을 벌이는 연애 전개를 의미한다. 하렘물 문서 참고.

하렘계 작품의 원조가 한국이라는 설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구운몽 참조. 타입이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의자왕삼천궁녀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 연구에 의하면, 의자왕의 삼천궁녀 이야기는 승리자인 나당연합군이 의자왕을 모욕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궁녀가 3000명일 수가 없으며 아마 전투 중 낙상하거나 절망에 빠진 백성들이 투신한 경우가 와전되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의자왕의 삼천궁녀는 그냥 관용구 정도로만 여길 것.[29]

종종 사나이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100가지 일, 남자의 로망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현실에서 하렘을 만들려면 "1. 여자들을 다 먹여살릴 엄청난 경제력 2.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는 두 조건 모두를 만족해야한다.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매우 힘들다. 일부다처제 문서 참고.

여기에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가 일부다처로 해석될 수 있는 괴논리로 여성신도들을 휘어잡고 있다 보니 하렘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좋지 않다.

1980년대 스포츠서울에 연재하던 <세계의 진기한 성>이라는 기사에선 콩고민주공화국에 존재하던 소왕국인 쿠바 왕국(Kuba kingdom)의 르켕 왕이 정말로 하렘을 이룩한 실화를 쓴 바 있는데, 60년대만 해도 르켕 왕은 800명이나 되는 아내들을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이런 일은 이제 기록으로만 전해진다고 서술되었다. 르켕 왕은 결사거부했지만 결국 아내들에게 뜻을 밝혔더니 740명이 넘는 아내들이 떠나고 싶다, 즉 이혼하고 싶다고 하여 결국 그렇게 대량 이혼이 이뤄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이것을 실제로 이룩한 용자가 나타났다. # 부인 4명에 자녀들이 17명인 대가족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등 일부 종교는 교주 등이 일부다처제를 주장하고 실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2023년에 아내를 9명이나 둔 70대 남성이 붙잡혔는데, 죄목은 10대 여성에게 "나와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외계인에게 잡아먹힌다고 협박해서라고 한다. 아내들은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

반대로 한 여자를 두고 여러 남자가 몰려드는 것은 거꾸로 역(逆)자를 써서 역하렘이라고 한다. 여성향 쪽에서는 전통의 대세. 그러나 성적인 관계까지 다수와 맺고 소유하기를 망상하는 남성향 하렘물에 비해 여성향에선 진짜 연애상대 및 결말은 보통 한 명과만 이루어지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남는 것이 대부분.

7. 대중매체

이슬람이나 아랍 문화권이 아닌 경우는 하렘물 문서 참조.

8. 관련 문서


[1] 주류 해석은 이 구절을 전쟁 포로, 하녀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이기 때문. 이런 해석에 충실한 집단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다만 이슬람 율법에서는 결혼관계가 아닌 성관계는 전부 간통으로 간주하고, 그 처벌은 사형이다. 그리고 결혼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남녀의 자유의지로 결혼계약서에 서명하고, 남자가 여자에게 신부대를 지불하고, 이를 율법학자나 법정에서 공증받아야만 결혼이 성립하기 때문에 여성노예를 아내로 얻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녀를 자유인으로 풀어주어야 성립된다. 애초에 이슬람법대로라면 성노예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역사적인 사례로 해당 구절을 인용할 때에는 하디스에 따라 포로나 하녀와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이는 반드시 결혼을 전제로 해야 했고, 결혼을 위해서는 그녀를 반드시 해방시켜야 한다. 그리고 만약에 여성 노예가 자진해서 이슬람으로 개종할 경우에도 그 노예는 무조건 해방되어야 한다. 무슬림을 노예로 부리는 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며, 실제로 오스만 제국 초기 결혼을 하지 않은 군인들이 이런 식으로 피정복지의 여성들을 잡아서 해방 및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 결혼한 사례가 많이 보인다. 이후 서술되지만, 사실 하렘 제도는 FM대로 따지면 율법에 완전히 어긋난다.[2] 4장 129절에서는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 모두를 공정하게 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의 아내에 만족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3] 한국에서도 조선시대 사대부의 가옥에서 흔히 바깥에 행랑과 사랑채, 안쪽은 안채와 후원을 두어 가족 내에서도 남녀의 주된 생활공간을 자연스레 나누었다. 마나님이 자리하는 안채에 외부인, 특히 외간 남자는 들어설 수도 엿봐서도 안 되는 것도 동일하다.[4] 이 때문에 황제의 애첩이나 황제의 모후 등과 거래하는 보석상이나 장신구 상인 등은 모조리 여성들이었으며, 오스만이 쇠퇴기에 접어들어 황제 대신 모후나 애첩 등이 정치를 맡게 된 후에는 오스만의 적국 가운데 하나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 상인들을 연락망으로 삼아 모후나 애첩과 연락하기도 했다.[5] 대표적으로 루이 15세의 하렘인 사슴정원이 있겠는데, 이 일시적 하렘은 루이 15세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 그 총희 마담 드 퐁파두르가 루이 15세와 제대로 된 성관계가 힘들자 선물삼아 만들어준 것이다. 특별한 정원을 꾸미고 자신이 골라 데려온 창부들을 흩어놓아 왕이 정원을 돌아다니다 자유롭게 만나도록 했다고 한다.[6] 영국 대사의 아내로, 22년동안 오스만 제국동유럽에서 지내면서 현지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아 글을 남겼다.[7] 1890년대의 하렘에서 지낸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8] 튀르키예어로 각 방의 시녀를 의미하는 오달륵(Odalık)에서 비롯된 말.[9] 다만, 유대교를 믿었던 하자르 칸국의 칸도 하렘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10] 율법상 양쪽이 모두 자유민이고 자유 의사가 따라야 결혼이 성사된다.[11] 이슬람 문화권은 전반적인 여성의 지위와 권리 자체는 낮을지 몰라도 '어머니'는 대단히 존중했다. 황자에게 그의 어머니는 일생의 조언자이자 받들어 모시는 하렘의 통치자가 되었다.[12] 쉴레이만 1세는 외모마저도 엄친아였다. 인상도 또렷하며 패션 센스마저 특출한 옥골선풍형의 훈남이었다고 한다. 다만 그가 입던 옷들을 살펴보면 기록과 달리 키가 크진 않았다고 한다.[13] 황후를 가리키는 칭호가 하세키 술탄(Haseki Sultan)이라는 것인데, 쉴레이만 이후에도 이 칭호가 쓰이기는 쓰이되 황제의 유일한 배우자인 황후가 아니라 황자를 생산한 후궁을 이렇게 불렀으며, 18세기 이후에는 바쉬 카든에펜디(Baş kadınefendi)로 불린다.[14] 실제로 일개 신민은 물론이고 재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들의 생사여탈권은 황제 한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이것은 이후 19세기에 접어들어 입헌군주정으로 개혁될 때까지 명목상으로나마 유지된다.[15] 오스만 황제는 종교수장인 칼리파 또한 겸하고 있었다. 즉 이슬람 율법에 대한 해석이나 법률에 관한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오스만 황제는 칼리파란 직위를 자기를 수식하는 하나의 타이틀 중 하나로 여겼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16] 종교수장인 칼리파가 세속적으로 사니 국가자체가 세속화되는 건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17] 장자상속이 엄격했던 후기 조선 같은 경우도 있는데 왜? 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조선도 엄연한 일부일처(+다첩)제로서 정식 아내는 오직 한 명이며 그 아내가 낳은 장자만 적법하게 인정된다. 왕실만이 핑계 좋게 본처인 왕비 소생 적자가 없는 경우 서자가 그 자리를 대체 가능한 것뿐이며 이때도 계승권을 획득한 왕자는 왕비의 양자로 들어감으로서 법적으로 정실의 자식이 되었다. 왕가 외의 모든 계층에서 장차구분, 적서차별은 갈수록 매우 엄격해져 장자 아닌 차자, 첩 소생의 서자가 본처 소생 장자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었다. 예송논쟁이나 광해군이 이미 세자로 책봉된 데다 업적과 압도적인 나이차 등 모든 왕위계승 조건을 구비하고도 고작 갓난아기인 영창대군의 어머니가 정궁이라는 적서문제 때문에 오래 쌓아 온 지위가 다 흔들렸고 결국 본인이 불안해져 벌인 사건들로 폐위에까지 이른 것만 봐도...[18] 비슷하게 청나라 황실도 황제가 여러 황자 중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자를 지명하는 제도가 있었다. 튀르크와는 가까운 유목민족의 후예라는 공통성이 있다.[19] 하렘을 방문하고 싶다는 외제니 황후의 요청을 술탄 압뒬아지즈가 승낙했는데 압뒬아지즈의 모후이자 당시 오스만 제국의 태후였던 페르테브니얄 술탄이 감히 외국인이 하렘에 들어오냐며 외제니 황후의 따귀를 때리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긴 했다. 때문에 압뒬하미트 1세는 어머니를 달래면서 외제니 황후한테 어머니의 잘못을 대신 사과했다.[20] 다만 마차 안의 사람들은 바깥을 볼 수 있지만, 마차 밖에서는 안에 누가 탔는지 알 수 없는 구조이다. 이는 하렘의 건축물에서도 종종 보이는데, 기하학적인 창살들로 채워진 창문에서 하렘 안 여성들은 바깥을 내다볼 수 있었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21] 이 때문에 젠타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에 패배했을 때는 황제와 같이 있던 하렘 후궁들이 포로가 되기도 했다.[22] 그 중 예외는 오스만 2세의 사실상의 정실 부인인 아킬레 하늠으로,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들 중 황제를 제외하면 최고위직인 셰이휼이슬람(대율법사) 호자자데 에사드 에펜디의 딸이었다. 이렇게 신분이 높은 여인이었기 때문에 하렘에 적응하지 못하고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출처] Life After the Harem: Female Palace Slaves, Patronage and the Imperial Ottoman Court, Betül İpşirli Argit저[24] 하툰의 칭호가 붙기도 한다.[25] 사자의 경우 프라이드 집권이 보통 2년, 4년 이상은 매우 우수한 성적이다.[26]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프랑스 출신 나크시딜 술탄. 수녀원에 가는 도중에 해적에게 납치되었는데 프랑스황후였던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사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여겨지며, 조제핀 황후의 사촌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저 위에 언급된 휘렘 술탄도 원래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여성이었는데 크림 칸국의 약탈군에게 납치되어 하렘에 넘겨지는 바람에 강제로 술탄의 후궁으로 살게 된 케이스였다.[27] 한자로는 羊인데 고대 중국에서는 양과 염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지만 양은 거의 기르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고문서에서 양이라고 하면 대부분 염소라고 봐야 한다.[28] 조선내명부에서도 이런 식으로 왕의 승은을 입은 사람은 즉각 후궁에 준하는 신분인 승은상궁이 되었다. 문제는 왕이 하룻밤 잠만 자놓고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좀 있어서... 이를 보다 못한 중전이 그들을 정식 후궁으로 봉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을 정도였다.[29] 애당초 백제 정도 규모의 고대 국가에서 왕이 독점하는 궁녀를 3000명이나 데리고 있었다면 나당 연합군이 오기 전에 먼저 백성들이 일으킨 내란으로 망했을 것이다.[30] 참고삼아 적자면 미치광이는 맞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한다거나 하는 등의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다만 모후와 애첩들에게 휘둘리며 황제 노릇은 제대로 하지 못했고,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전쟁으로 중과세를 거둔 탓에 반란이 일어나 폐위당했다.[31] भाग्यदां प्रसन्नवदनां सौभाग्यदां अभयप्रदां मणिगणैर्नानाविधैर्भूषिताम् । सदा शक्तिभिः ॥ सदा शक्तिभिः ॥ शक्तिभि → (발)번역: 내가 연꽃을 들며, 행복한 얼굴을 지니며, 좋은 운과 운명을 주며, 그리고 자세로 두려움을 물리치며, 그리고 많은 보석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치장되며 항상 힘이 있는 (락쉬미)에게 경배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