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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5 14:12:43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
夢の雫、黄金の鳥籠
파일: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휴렘.png
장르 역사
작가 시노하라 치에
출판사 파일:일본 국기.svg 쇼가쿠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학산문화사
연재처 쁘띠 코믹
레이블 플라워 코믹스
연재 기간 2010. 05. 21. ~ 연재 중
단행본 권수 파일:일본 국기.svg 18권 (2023. 06. 0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7권 (2023. 01. 05.)

1. 개요2. 줄거리3. 발매 현황4. 등장인물
4.1. 하렘4.2. 황족4.3. 환관 및 궁녀4.4. 오스만 신료4.5. 기독교 국가4.6. 기타 인물
5. 비판
5.1. 재현 오류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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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시대극 만화. 작가는 시노하라 치에(篠原千絵).

우크라이나 출신 노예에서 오스만 제국의 황후가 된 실존 인물 휘렘 술탄[1]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순정만화다.

2. 줄거리

16세기 초, 우크라이나의 궁벽한 시골에 살던 정교회 성직자의 딸 '알렉산드라'는 고향 마을의 산 너머, 강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소녀이다.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 하는 알렉산드라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어머니, 할머니가 그래왔듯이 평생 고향에서 농사 짓고 사는 농민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타타르[2]의 침공으로 그녀의 삶은 예정되었던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타타르족에게 납치된 알렉산드라는 부모님과 헤어지고 노예가 되어 팔려나가게 될 처지가 되었다. 노예로서의 삶을 거부한 알렉산드라는 함께 납치된 친구 '올랴'와 탈출을 시도하지만 올랴 또 다른 노예 소녀인 엘리자베타의 밀고로 붙잡힐 절체 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흑발의 미청년이 알렉산드라를 구해준다. 자신을 '마테우스 라스카리스'라는 그리스 상인으로 소개한 그 청년은 낯선 땅에서 도망을 쳐도 소용이 없다고 조언을 해 주고 남쪽의 대국에서는 여자 노예라 할지라도 능력만 있으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학문과 교양을 익힐것을 권하며 알렉산드라를 다시 노예상에게 데려 간다.

얼마 후 노예선을 타고 흑해를 건넌 알렉산드라가 오스만 제국에서 노예 시장에서 팔려 나가려 할때 다시 나타난 마테우스는 알렉산드라를 사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마테우스는 알렉산드라에게 교양과 지식을 배울 기회를 주고 싶다면서 선대 황제 시절 하렘에 있던 '나심 부인'에게서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각종 지식과 예법, 예능을 전수 받는다. 마테우스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게 된 알렉산드라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것을 배우고 마테우스의 배우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마테우스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된다. 마테우스가 노예 알렉산드라를 사서 교육시킨 이유는 마테우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인에게 헌상할 여자를 바치기 위함이라고 말해준다.

알렉산드라가 하렘에 들어가는 날, 마테우스는 알렉산드라에게 두가지 선물을 준다. 하나는 '휴렘'이라는 이름, 또 다른 하나는 문이 없는 황금 새장, 어디에 있든 자유롭다는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의미로 준 것이다.

휴렘으로 불리게 된 알렉산드라가 이스탄불의 궁전에서 보게 된 자신의 주인인 술탄은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오스만 제국의 10대 황제 쉴레이만. 그리고 자신의 주인에게 휴렘을 바친 그리스 상인 마테우스의 정체는 역시 자신처럼 노예로 오스만으로 끌려 왔다가 쉴레이만의 시동장(侍童長)이 된 이브라힘. 쉴레이만에게서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들은 휴렘의 하렘 생활이 시작된다.

3. 발매 현황

쇼가쿠칸 계열 쁘띠 코믹(プチコミック)에서 2010년 5월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며 단행본은 플라워 코믹스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4. 등장인물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하렘

본 이야기의 주 배경인 오스만 제국 내 후궁들의 거처에 속한 사람들.

4.2. 황족

본 이야기의 배경인 오스만 제국 궁정의 종실.

4.3. 환관 및 궁녀

하렘 내 후궁들의 시중을 들거나 심부름을 하는 집단. 보통 거세한 남성은 환관으로, 일반 여성은 궁녀로 들어가나 궁녀가 황제의 사랑을 얻은 경우 후궁으로 승격된다.

4.4. 오스만 신료

오스만 제국 내 술탄을 보필하며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들과 친위대인 예니체리로 구성된 집단.

4.5. 기독교 국가

오스만 제국과 적대하는 기독교계 국가들의 집단으로 작중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과 헝가리 연방 왕국이 주로 나온다.

4.6. 기타 인물

5. 비판

5.1. 재현 오류

순정 만화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이걸로 역사 공부하겠단 생각은 갖다 버리자. 모하치 전투나 로도스 공방전, 베오그라드 함락 같은 큰 사건들은 순서대로 다루지만 각색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이브라힘 파샤는, 상인 노릇을 한 적이 없다. 십대의 나이에 노예로 팔렸고, 그곳에서 쉴레이만을 만나 이후 그가 황제로 즉위할 때까지 늘 함께 했고. 그 후에는 지휘관으로서 전장에 나갈 때를 빼놓고는 늘상 콘스탄티노플에 있었기 때문. 즉 그가 휴렘을 쉴레이만에게 바치는 설정도, 있을 수 없다.

게다가, 휴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작가의 창작이다. 일개 성직자. 그것도 그다지 높지도 않은 계급의 성직자의 딸에 불과했던 어린 시절의 휴렘에게 관심을 갖는 역사가나 작가는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 역시 태어났을 당시에는 일개 부농의 딸에 불과했던 잔 다르크도, 태어난 날짜는 그만두고 몇년생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27]

그 외에도, 만화니까 특히 눈에 띄는 복장 재현 같은 부분도 아쉬운 점이 많다. 위에 서술된 것처럼 실제 역사에서는 19세기 이후 널리 사용된 페스가 작중에 등장한다거나, 샤샤(휴렘)가 사는 마을을 습격한 타타르 약탈자들이 무슨 튀르크족 스타일의 예복 비스무리한 옷을 입고 있다거나...[28] 전반적으로 제대로 재현했다기보다는 그냥 널리 알려진 오스만 제국이나 타타르의 이미지만 대강 차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하여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쉬워지면서 모리 카오루신부 이야기처럼 재현에 철저하게 만전을 기하는 작품들이 많아졌고, 이 때문에 독자들의 눈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생각한다면 영 아쉬운 부분.

그 밖에 휴렘과 이브라힘이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휴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이브라힘이었다거나 하는 등 세세한 재현 오류까지 지적하면 한이 없으므로, 이하생략.

또한, 개개의 재현 오류를 넘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 연출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작가의 대표작인 하늘은 붉은 강가 같은 경우, 일단 작품 배경부터 역사라기보다는 신화나 전설처럼 인식되기 쉬운 고대 히타이트이고, 주술 등 판타지 요소도 많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역사가 배경이라는 인상을 별로 주지 않는 편이고, 이 덕분에 치밀한 재현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었다.[29] 게다가, 주인공인 유리 역시 현실에서 과거로 시간이동(또는 차원이동)했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대의 독자와 거의 같은 시점에서 작품 세계를 관찰할 수 있고, 이 덕분에 독자의 시점과 주인공의 시점 사이에서 거의 모순이나 괴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은 현대 독자들 사이에 알려진 바가 상당히 많은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일단 전작보다 재현 부담 자체가 클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주인공인 휴렘(샤샤) 역시 16세기 사람이기 때문에 현대인인 독자의 시점과 주인공의 시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작가의 고려가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샤사(휴렘)가 타타르족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게 되는 장면을 보자. 현대인인 독자의 윤리관에 따르면 사람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아먹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중범죄이고, 실제 그런 일을 겪는다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당혹스러워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6세기 당시 사람인 휴렘(샤샤)이라면? 납치당해 노예로 팔리게 된 처지에 분노하거나, 공포스러워하거나,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서 불안해 할 지언정,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불안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타타르족이 루테니아 일대의 슬라브족 거주지에서 잡아온 포로들을 노예로 판다는 것은 이 당시의 상식이었으니까.(...)[30] 하물며, 노예가 무엇인지 몰라서 물어본다거나, 사람이 돈으로 팔려가서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등의 반응은... 16세기 루테니아 시골 소녀의 반응이라기 보다는 어쩌다 16세기에 떨어진 현대 소녀의 반응에 훨씬 어울린다. 더구나 알렉산드라(휴렘)이 '직접 세계를 보고 싶어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똑똑하고 진취적인 인물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이는 더욱 해괴하게 읽힐 수 밖에 없다. 아니, 바깥 세상이 궁금하다는 사람이 정작 자기 주변에 대해서 저렇게까지 무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탈출을 시도하다가 나쁜 남자들에게 붙잡혀 강간당할 위기기에서 라스카리스(이브라힘)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후, 이브라힘에게 자신을 놓아준다면 자신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 아까 그 남자들이 하려던 짓을 해도 좋다는 거래를 시도하는 휴렘(알렉산드라)의 모습 역시, 진지한 독자라면 쓴웃음을 짓기 쉬운 부분이다. 물론 순정물의 장르적 논리에서 여주인공의 순결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자신의 순결을 바치면서까지 탈출하려고 하는 샤샤(휴렘)의 모습은 일반적인 순정 만화의 여주인공으로써 그녀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물로써는 이건 애초에 거래의 여지도 없는 순 어거지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에서 여자 노예의 순결이라는 것 자체가 주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일 뿐이었고, 도망 노예라는 위험한 입장까지 생각해 보면 휴렘(샤샤)가 해도 좋다고 허락하건 말건 상대는 원하면 얼마든지 알렉산드라(휴렘)을 범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당대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이건 '니 지갑에 있는 돈 너 줄테니까, 니가 차고 있는 시계 나한테 팔아라'라고 하는 수준의 얼토당토않은 억지였다는 것. 이런 면모들을 보면 작중에서 휴렘(알렉산드라)의 모습은 단순히 '시골 출신이라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수준을 넘어 그냥 백치급으로 자신이 사는 세상에 무지하다고 보일 정도이며, 이는 결국 작가가 작품 속에서 해당 인물이 차지하는 위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당대인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대 독자의 시선을 단순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휴렘(샤샤/알렉산드라)를 조형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는 이유는, (독자에게는 생경한) 작품의 배경 세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독자와 같은 눈높이의 작중 화자(주인공)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가지는 궁금증을 주변 인물들에게 물어보면 주변 인물들이 그에 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대표작인 하늘은 붉은 강가에서는 이런 방법을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현대에서 시간이동한 유리가 현대인과 같은 눈높이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리고, 이 작품의 경우에도 이런 방법을 어느정도는 사용할 수 있다. 시골 출신인 샤샤가 대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을 생경하게 여기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저 방법 하나에만 의존해서 작중 세계를 모두 설명하려고 하니, 샤샤는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적인 영역까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인물이 되고, 결국 위에 나온 것처럼 말로는 똑똑하고 세계를 알고 싶어한다고 하는데 가만보면 주변 세상에 대해 백치나 다름없다는 빈축을 사게 되는 것. 이는 결국 작가의 창작 태도가 지나치게 안이하고 불성실해서 작품의 특징에 적절한 표현 방법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만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아예 판타지 순정물의 특성이 강했던 전작에 비해, 역사물로써의 특성도 강하게 나타나는 해당 작품의 특성을 생각하면, 순정물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역사물의 분위기는 많이 포기했다는 아쉬움을 느낄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휴렘과 이브라힘이 어쩌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사건의 경우... 작중에서는 이것이 죽을 죄임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 문제를 (휴렘과 이브라힘을 신뢰하는) 쉴레이만에 대한 배신이라는 점, 즉 인간 대 인간의 신뢰와 애정에 대한 배신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혈통이 정통성의 담보가 되는 왕조국가에서 군주의 총희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군주의 암살을 시도한다거나, 군대를 이끌고 왕궁을 공격하는 정변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심각한 반역행위로써, 차라리 정치적 문제에 가깝다. 또한 오스만 황실과 지배층의 종교인 이슬람교의 율법 샤리아에서도 사형감이다. 물론 작중에서도 이 문제가 자신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임은 명확히 드러내고 있으니 사소한 트집잡기처럼 읽힐 수도 있겠으나, 어쨌건 역사물 치고는 좀 진지하지 못하다(...).

16세기임에도 불구하고 19세기부터 근대화개혁의 일환으로 착용하기 시작한 페스 비슷한 모자를 쓴 인물들이 간혹 보인다.

의상 재현과 별개로 당대의 풍습, 톱카프 궁전같은 당대의 건축물 내부와 외부 모습, 그 당시 사용되던 물건 등, 배경 묘사와 재현은 굉장히 잘 된 편이다.

6. 기타


[1] 유럽에서는 록셀라나, 록셀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한국에서도 휴렘 술탄이라는 이름 보다는 록셀라나, 혹은 록셀란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황후.[2] 실제 역사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이었던 크림 칸국이었다. 이 부분은 굳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만들 필요가 없으므로, 이 '타타르족'에 대해 달리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면 크림 칸국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3] 현 황제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용어.[4]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이기에 분명히 해 두면, 휘렘 술탄과 마히데브란 술탄의 분쟁을 억제한 것은 모후랍시고 꼴사납게 나선 게 아니다. 후궁들 사이의 분쟁을 억제하는 것이 발리데 술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이로 인해 발리데의 권력이 강대해져서 쾨셈 대에 이르러서 하나의 권력집단이 된다.[5] 이브라힘이 샤피크를 보내서 못 가게 막았다.[6] 'Hatice'를 '하티세'로 읽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튀르키예어에서 c는 dʒ 발음으로 읽는다. 즉 '하티세'보다 '하티제'에 가깝다.[7] 황태자가 아니라 황자가 맞다. 오스만에서는 황위를 이을 태자를 공식적으로 책봉하지 않았기 때문. 오스만어로도 셰자데(Şehzade고라고 해서 황자를 가리키는 단어만 있지 여러 셰자데 가운데 하나를 특별하게 지칭하는 말은 없었다.[8] 다만 마히데브란과 휘렘의 다툼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건 괜찮은 각색이지만, 황위 계승 과정 운운은 지나쳤다. 쉴레이만은 셀림 1세의 외아들이라 형제를 살해하는 관습이 자리잡은 이래 처음으로 평화롭게 황위를 계승했기 때문. 더 나가자면 사실 외아들은 아니고 위베이스라는 이복동생이 있었는데, 그 친모가 행실에 문제가 많다 하여 하렘에서 쫓겨나 재혼한 뒤에 위베이스를 낳았고 이 경우 황위 계승권이 없었다. 이 덕에 위베이스는 목숨을 건졌고, 생물학적 아버지인 셀림과 이복형 쉴레이만의 보호를 받았다. 특히 쉴레이만은 위베이스에게 관직을 하사해 바그다드 대총독에 이르게 했고, 이후 위베이스가 예멘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다 전사하자 동생이 죽었다고 통곡했다. 즉 오히려 각색하기에 따라서는 위베이스 파샤를 등장시켜 화목한 가정을 묘사하다가, 마히데브란과 휘렘의 갈등이 격해지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도 있다.[9] 그런 무스타파를 본 휴렘은 우크라이나 시절, 바깥 세상을 보고 싶어 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무스타파를 애틋하게 생각하게 되고, 휴렘이 권력을 자기 손에 거머지되 무스타파를 포함한 그 누구도 죽이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하는 계기가 된다.[10] 실제 역사에서 셀림과 달리 휘렘의 장남 메메드 왕자는 무스타파하고 친하게 지냈다.[11] 실제 역사에서, 차기 황제감을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란이 일어났을 정도. 이 반란은 오래가지 않아 진압되었지만, 쉴레이만은 당시의 재상이자 휘렘 술탄의 사위로 무스타파 처형을 주도했던 뤼스템 파샤를 파직하여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다만 자신의 사위가 재상이 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휘렘 술탄의 음모로 신임 재상은 취임 2년만에 처형당하고, 다시 뤼스템이 복직.[12] 오스만 제국이 쇠퇴한 가장 큰 원인 세 가지를 들라면 내부의 부패와 민족주의의 발흥으로 인한 발칸 반도에서의 반란들, 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들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내부의 부패'는 다시 재상들의 정권 농단과 하렘 세력의 정치 개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쉴레이만 치세에 싹이 터서 셀림 2세 시대에 무럭무럭 자라났다.[13] 다만 "황자에게 예를 갖추지 않는다 = 내 아이라고 주장하는 것 = 대역죄를 자인하는 것 = 처형"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므로, 설령 메메드가 이브라힘의 아들이라고 친다 하더라도 황자로 대하지 않는 건 성대하게 자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작가가 이브라힘과 휘렘의 사이를 갈라놓을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 듯.[14] 역대 황제들은 모후에게 품위 유지비를 지급했고 모후는 이 자금으로 모스크를 짓거나 자선사업을 하거나 했는데, 휘렘 술탄이 정치에 처음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이 유지비가 정치 자금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휘렘이 쉴레이만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갔으므로, 셀림 2세 시대의 "퍼스트 레이디" 는 누나 미리마였다.[15]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셀림은 쉴레이만이 명을 내리면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로 일관했던 반면 바예지드는 이게 무슨 뜻인가, 나한테 이득이 되나 재보고 나서야 움직였다.[16] 취소선이 쳐져 있듯, 셀림은 명목상으로만 참전하고 모든 일은 소콜루가 알아서 처리했다. 제아무리 재상이라고는 해도 황자들 간의 황위 계승전에 일개 관료가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건 이것이 처음이었으며, 이후 황위 계승법이 변질되고 이윽고 폐지되는 첫 단계가 된다.[17] 재현 오류. 일단 오스만이 흑인 환관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기 시작한 것은 쉴레이만 시대 이후인 무라드 3세 시대(1574~1595)부터이며, 반세기 가량 앞당겼다고 하더라도 흑인 환관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면 맞지만 '흑인 환관만이 들어올 수 있는'이라 해서는 안 된다. 당장 같은 주제를 다룬 터키 사극 위대한 세기를 봐도 하렘에서 일하는 환관인 '쉼뷜 아아'는 흑인이 아니다. 또한 보안상의 이유로 벙어리를 황궁 시종으로 쓴 경우는 많으나, 귀머거리를 기용했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오스만 제국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시종이라고 하면 주인의 말을 즉시 알아듣고 이행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도 차고 넘치는데 굳이 귀머거리를 써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18] 참고로 왜 흑인 환관이 하렘에 주류로 들어오냐면, 백인 환관들은 고환만을 제거하고 들어오지만 흑인 환관들은 고환 뿐 아니라 음경까지 모두 잘라냈기 때문에 여성들을 건드릴 수 없어 하렘에 주로 이용되었고 백인들은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하렘에 들어서지 못하고 술탄의 직속으로 임명되었다.[19] 수라를 들기 전에 독이 있나 없나 미리 확인을 하는 검식관.[20] 당시 오스만 제국은 왕위 계승 다툼의 여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황태자를 제외한 나머지 황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잔인한 방법을 쓰고 있었다.[21] 오스만 제국의 재상 제도는 조금 독특했는데, 처음부터 재상(Vezir)이 여러 명이었다. 이는 초창기(구체적으로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이 여러 투르크계 부족들의 연합정권 비슷하게 운영되었기 때문인데, 이 재상들 가운데 한 명이 황제의 옥새를 보관하는 역할을 맡은 것을 계기로 힘이 강화되기 시작하여 '대(大)재상(Vezir-i Azam 또는 Sadrazam)'으로 불리게 된다. '제4 재상'이라는 것은 대재상이 아니라 여러 재상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뜻.[22] 루멜리아. 다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 유럽 지역=루멜리아'라 보면 곤란하고, 혹시나 오스만 제국의 에야레트 체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항목(영어) 참고.[23] 고위 관직에 오르고자 하는 자는 재상에게 '선물'부터 해야 했는데, 좋게 말해 선물이지 관직 매매라 봐도 무방하다.[24]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데브시르메 제도로 非투르크인들을 관료들과 장교로 기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역대 오스만 재상 절반 이상이 非투르크인이며, 메메드 2세 시대부터 쉴레이만 시대까지는 90%가 넘는다고 봐도 좋다) 제국 후기로 가면 프랑스인이나 독일인에게도 관직을 부여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랍인은 비교적 대우를 못 받은 편. 애초에 오스만 제국의 국법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고려되어 있지 않았으며(민족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혈통이 아니라 고향과 모국어로 대충 구분해놓은 것에 불과했다. 당연히 큰 의미가 부여되지는 않았고, 민족 따위보다 훨씬 중요했던 건 무슬림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바르바리 해적들로 이루어진 오스만 제국 해군에는 이탈리아 출신 지휘관도 있었으니, 알비제의 생각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25] 참고로 당시 헝가리 국왕의 권위란 바닥으로 추락해 있었으므로, 신하들. 즉 귀족들의 입장에서 이런 로요슈의 태도는 웃기지도 않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베오그라드 공방전 당시에도 군대를 보내라는 왕명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군사를 보낸 귀족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이로부터 5년 뒤에 벌어진 모하치 전투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어 국왕이 제일 먼저 군사 집결지로 향해야 했다.[26] 즉 페르디난트 1세는 러요시 2세에게 형님 겸 매형인 샘이며 훗날 이 사실을 근거로 페르디난트 1세가 헝가리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한다.[27] 보통 1412년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훗날 잉글랜드군에 사로잡혀 재판을 받을 때에 '나이는 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마 열 아홉 쯤?'이라고 대답한 것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리고 나이라는 게 오늘날에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개 농민이 정확한 나이는 기억해서 뭐에 썼겠는가.[28] 약탈당하는 마을 주민들도 마냥 무기력하게 약탈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기나 하다못해 농기구라도 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고, 이 때문에 당시의 유목민 약탈자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과 투구등을 착용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약탈은 꽤나 위험한 사업(...)인데 방어구 없이 달랑 천옷만 입고 마을에 쳐들어갈 리가 없다.(...)[29] 최소한, 히타이트의 경우 오스만 제국에 비해 생활상이나 문화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적고, 그만큼 재현이 틀렸다고 딴지 걸 사람도 드물다.[30] 여기에서 나오는 '타타르인'은 구체적으로 오스만의 신하국이었던 크림 칸국인데, 노예를 잡아 오스만에 내다 파는 것이 '원래 불법이지만 칸이 눈감아주는 사업'조차도 아니고 아예 국가 1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정도였다.[31] 黄金の鳥籠에서 'の'를 '의'로 그대로 읽은 듯. 역시나 일본에서 소개된 눈의 여왕과 비슷한 사례인데, 일본어의 の는 원칙상 명사와 명사 사이에 반드시 집어넣어 주어야 한다. 즉 한문의 어조사와 마찬가지로,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물론, '君のもの(너의 것)'처럼 '~의'로 번역해야 함이 분명한데도 번역하지 않는 것도 문제. 사실 이런 걸 잘 알고 정확히 적용. 나아가서는 한국어로 되도록 자연스럽게 옮기는 것이, 번역가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32] 이쪽이 실제 역사 속의 휴렘과 더 비슷한데, 대략 기황후 비슷한 인물이었다고 보면 된다. 어느 막장 드라마에서의 기황후가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의 유능한 황위 계승 후계자를 죽여버리고 자신의 아들로 갈아끼운데다 이브라힘 파샤를 비롯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유능한 관료들을 여럿 때려(?) 잡은 행적 덕분에 시청자들에게 쌍X 소리를 들었지만, 그 미모 때문에(...) 마냥 미워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