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이교 | |
대교 | 소교 |
조조가 일찍이 맹서하기를, '내 한 가지 소원은 사해(천하)를 소평(평정)해 제업(帝業)을 이루는 것이오. 다른 한 가지 소원은 강동이교(江東二喬)를 얻어 동작대에 두고 만년을 즐기는 것이니 그렇게만 된다면 비록 죽어도 한이 없으리다.'라고 했소.
操曾發誓曰, '吾一願掃平四海, 以成帝業, 一願得江東二喬, 置之銅雀臺, 以樂晚年, 雖死無恨' 矣。
- 삼국지연의 44회
操曾發誓曰, '吾一願掃平四海, 以成帝業, 一願得江東二喬, 置之銅雀臺, 以樂晚年, 雖死無恨' 矣。
- 삼국지연의 44회
江東二喬
1. 개요
삼국지 시대의 미녀 자매 대교와 소교를 묶어서 부르는 병칭(竝稱). 기록도 거의 없지만 미녀였다는 이유만으로 후대에도 주목을 받았다.2. 설명
정사 삼국지에서는 교공의 두 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그냥 성씨 앞에 각각 大, 小자를 붙여 대교, 소교 따로 부르고 있다. 이교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으며, 둘을 묶어서 부르더라도 그냥 '교공의 두 딸'이라고 적혀있다. 이교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정사가 아니라 두목의 문학 작품 '적벽'이다.정사에서 이교의 성씨는 다리 교(橋)지만, 연의에서는 성씨 글자가 높을 교(喬)로 나온다. 비슷한 글자지만 약간 다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문학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대교, 소교 자매를 이교(二喬)라고 묶어 부르고 있으며, 제갈량의 대사 중 강동이교(江東二喬)라는 단어가 언급이 된다.
야사에 따르면 둘 다 요절 징크스의 피해자다. 대교는 손책이 죽고 얼마 안돼 최대 16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고 소교는 주유가 죽자 영전에서 최대 25세의 나이로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