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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6:14:07

평양냉면

물냉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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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平壤冷麵)
파일:옥류관 평양랭면.jpg
평양 옥류관의 평양랭면 (2018년 촬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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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피양의 평양냉면 순면 (순메밀면)
1. 개요2. 역사3. 평양냉면이란 무엇인가?
3.1. 평양냉면의 맛3.2. "평양" 냉면의 정통성3.3. 계속해서 변화하는 평양냉면3.4. 북한의 평양냉면
3.4.1. 심심하고 밍밍한 맛으로 먹는 것?
3.5. 대한민국의 평양냉면
3.5.1. 평양냉면 전문점 목록
4.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는 유명인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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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겨울, 조선 사람이 외국 가서 흔히 그리운 것이 김치 생각이라 하듯이 평양 사람이 타향에 가 있을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한 힘이 있으니, 이것은 겨울의 냉면 맛이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방안에는 바느질하시며 삼국지를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만 고요히 고요히 울리고 있다. 눈 앞의 글자 하나가 둘, 셋으로 보이고 어머니 말소리가 차차 가늘게 들려올 때 ‘국수요-’ 하는 큰 목소리와 같이 방문을 열고 들여놓는 것은 타래타래 지은 냉면(冷麵)이다. 꽁꽁 얼은 김치죽을 뚫고 살얼음이 뜬 김장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 이요! 상상이 어떻소!"
- 「별건곤(別乾坤)」 1929년 12월호, 김소저 作 《사시명물 평양냉면》 中
평안도 지역 냉면과 그것에서 유래한 대한민국 냉면의 일종. 전통적 현지의 발음은 ‘피양냉면’에 가까웠다.[2] 북한이 주민의 두음법칙과 사투리를 교정하며 '평양랭면'이 규범적인 발음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1월 30일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역사

2.1. 조선 시대 이전

평양냉면이라는 의미는 좁게 보면 평양 근교, 넓게 보면 평안남도 일대에서 유래한 냉면이다. 문헌적으로는 고려 초기에서 중기 때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며, 조선 중후기에 생산된 문헌들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1973년 북한에서 간행된 요리 서적에 의하면, 평양냉면은 현재 평양의 대동강구역 의암동 지역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며, 메밀 수제비 반죽을 국수로 뽑은 것이 시초라 한다. 고려 중기의 냉면을 기록한 고문헌에는 '찬 곡수[3](穀水)에 면을 말아 먹는다'는 내용의 기술이 있다.

다만 메밀글루텐 성분이 금방 날아가 국수를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운 작물이다. 이를 만드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며 손이 많이 드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극소수의 몇몇 문헌에서만 냉면과 비슷한 방식의 음식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나올 뿐, 17세기 이전까지는 냉면에 관한 기록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를 토대로 하면 조선 중기까지는 냉면 문화가 있었으나 소수 계층 및 지역에 한정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들어서 냉면이 보편적으로 퍼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4]

2.2. 조선 시대

앞서 설명했듯 17세기 중반까지는 냉면에 대한 기록이 거의 발견되지 않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우리 문헌에서 냉면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평양냉면은 대중 요리로 발전하게 되었고, 겨울철 별미로 사랑받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소수의 양반가에서나 먹던 고급 음식으로 취급받았지만, 17세기 후반 이후로 겨울철 평안남도 지역 대부분의 주막에서는 냉면을 사 먹을 수 있었고, 요정이나 관상같은 요릿집에서도 냉면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이처럼 평양냉면은 외식 음식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가정에서 흔히 해먹는 요리로 퍼져나가면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2018년 JTBC에서 북한의 촬영감독들과 공동 제작한 '서-평 두 도시 이야기'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18세기 평양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냉면가'가 버젓이 등장한다.[5]

조선 시대 각종 문헌을 찾아 보면, 조선 시대 평양냉면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메밀을 주 재료로 삼는 국수였다. 조선 시대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면 무조건 농사를 지었지만, 평안도 일대에서 농사가 주류 농업으로 정착된 것은 수리시설이 정비된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였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700~900mm 정도의 소우지(小雨地)였기 때문에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 물이 빠지지 않게 하는 진압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만큼 기후가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를 많이 재배하지 않았다.[6] 은 조선시대에도 보리의 보조적인 작물 취급을 받아도 제법 재배되기는 했지만 수차의 보급이 미비했던 조선의 사정 때문에 대량으로 제분하여 밀가루를 보급할 수 없어 국수를 만드는 용도로는 잘 쓰지 못했으며, 녹두 역시 녹두나화라는 국수 요리가 있긴 했지만 메밀로 만든 국수보다는 비주류였다.

겨울이 길고 몹시 추우며 동부와 북부는 온통 산악지형인 평안도 일대에서 가장 흔한 작물은 바로 메밀이었고, 이에 따라 메밀 수확 시기인 늦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국수를 해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이는 평양뿐만 아니라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등등 중부 지역까지도 보편적인 문화였다.[7] 1849년 <동국세시기>에서는 '냉면겨울음식으로 평양이 으뜸'이라 했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냉면을 먹었음을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함흥냉면과 공통점이 있다면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문화라는 점인데, 이것은 한반도 남부의 칼국수로 대표되는 뜨거온 온면 문화와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한반도 북부의 국수 문화가 차가운 냉면 형태였다는 점[8]은 이 지역 주요 작물이 메밀이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앞서 설명했지만 메밀 수확은 늦가을이라 겨울에 주로 구할 수 있는 작물이었고, 글루텐 성분이 금방 날아가는 메밀의 특성상 뜨거운 국물에 말면 아예 젓가락질을 못할 만큼 쉽게 끊어지기 때문에 그나마 형태를 보존할 수 있는 차가운 국수 형태로 발전한 것이 지금의 평양냉면이라 볼 수 있다. 추가로 수확 시기와 동시에 동치미를 같이 담그기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 평양냉면의 원형이며, 여기에 양반가나 상인처럼 부유계층이 동치미 대신에 고기육수를 사용한 냉면을 즐기면서 또 하나의 육수 형태가 추가된 것이다.

조선 시대 기록 중 대표적 예를 들면 1849년《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는 언급이 나오며, 1896년에 쓰인 《규곤요람》은 냉면에 대해 "싱거운 김치국에다 화청(和淸, 음식에 꿀을 탐.)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을 떨어나니라."라고 했다. 《시의전서》냉면 편에는 "청신한 나박김치나 좋은 동치미국물에 말아 화청하고 위에는 양지머리, 배와 배추통김치를 다져서 얹고 고춧가루을 얹어 먹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를 보면 지금과는 만드는 방식이 크게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메밀국수, 돼지고기, 김치[9]가 공통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냉면, 감홍로, 골동반평양의 명물로 소개했다.

평양냉면의 인기는 서울까지 퍼져, 조선 후기에는 이미 한성에서 대중화되어 18세기부터 양반들도 배달을 시켜 먹은 기록이 있다. 국왕 중에서는 순조, 헌종, 철종이 냉면을 좋아했으며 국왕 중 유명한 냉면 마니아로는 매운 걸 먹지 못하던 고종이 제일 유명하다. 순조도 한밤중에 냉면을 시켜먹은 기록이 있는데, 병사 하나가 따로 돼지고기를 사오는 것을 보고 혼자서 먹을 거 감춰놓은 모양이라고 냉면을 빼앗아버린 일화가 있다. # 출처마다 다르지만 숙종 때부터 이미 왕실에서 냉면을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

2.3. 일제강점기

근대에 들어서 평양냉면은 설렁탕과 함께 요식업계의 대표 메뉴로 자리잡아 갔다. 이 시기에는 냉면 문화가 완전히 뒤바뀐 중요한 변곡점이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여름에도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MSG의 사용을 들 수가 있다.

원래 평양냉면은 겨울철에만 만드는 음식이었다. 여름에는 냉면의 주 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힘들뿐 아니라 찬물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10년을 전후하여 서양에서 냉장고 문화가 도입되면서, 냉면 식당을 중심으로 여름에도 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냉면여름 음식으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10년대 일본에서 조미료아지노모도(味の素)가 발명되어 국물의 감칠맛을 풍부하게 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동치미 국물은 시원함에서는 으뜸일지 몰라도 밍숭맹숭한 맛이어서 현대의 자극적인 국물에 비교하면 맛이 떨어진다. 게다가 여름는 씁쓸한 맛이 나기 때문에 손님이 가장 붐비는 여름에 그 맛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고깃국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냉면 육수로 쓰기 위해서는 지방과 탁한 부분을 다 걷어내고 차게 식혀야 하는데, 이 과정이 감칠맛 성분을 날려버린다는 딜레마가 존재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를 더 넣고 우려내려 하면 냉면의 재룟값이 서민 음식에 맞지 않게 뛰어버리는 딜레마가 또 발생한다.

아지노모도MSG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고기국물보다 훨씬 간단하게 국물을 만들 수 있을뿐 아니라 훨씬 깊은 감칠맛과 짠맛, 단맛을 낼 수 있었다. 따라서 평양냉면에 드는 인건비와 시간을 크게 줄이는 데 일조했고, 냉면 맛도 이전보다 자극적으로 변화하면서 평양냉면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까지도 이름만 대면 아는 대부분 평양냉면 노포들의 레시피에는 MSG가 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아지노모도로 국물맛을 내는 풍조가 보편화되고 장사가 하도 잘되다 보니깐, 아지노모도 본사에서 직접 냉면집을 경영하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노인들이 기억하는 '진짜 평양냉면' 맛이란 사실 MSG맛(!)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1930년대 중반) 일제강점기 조선방송협회 경성방송국(JODK) 라디오의 일일연속극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때 아지노모도스폰서를 넣었다. 그리고 연속극 성우들은 실제로 종로 한일관에서 냉면을 주문배달해서 생방송 중 먹으며 아지노모도 PPL을 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방송 초창기를 그린 영화 <라듸오 데이즈>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10]

그리고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면 배달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이 시기엔 설렁탕과 함께 배달 음식의 양대산맥이 되었으며, 오로지 메밀로만 만든 국수발에 , 감자, 고구마 녹말 등이 이 시기부터 혼합되기 시작했다. 즉, 지금의 우리가 먹는 냉면과 그 형태가 조금씩 비슷해져갔다는 이야기이다.

3. 평양냉면이란 무엇인가?

평양냉면의 정의 자체는 아주 간결하게 동치미를 섞은 고깃국물로 맛을 낸 차가운 메밀국수다. 여기서 고깃국물(육수)을 섞었다는 기록은 1900년 즈음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의전서에 처음 소개되었다.

고깃국물에 동치미를 섞은 후 메밀면을 넣어 차갑게 먹는 국수기만 하면 일단은 남북 따질 거 없이 사람들이 '평양냉면'으로 생각하는 그 '냉면'은 맞는 셈이다.

3.1. 평양냉면의 맛

평양냉면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평양냉면의 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꽤 어렵다.

현재 남한에서 판매되는 평양냉면, 이른바 남한식 평양냉면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육향, 메밀향, 염도, 감칠맛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평양냉면 전문점들은 위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전술하였듯이 귀중한 밀면을 쓰는 대신, 온면으로 조리가 불가능한 메밀로 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뭐든 손에 잡히는대로 차가운 국물에 담가 먹던 것에서, 적당히 있는 재료 선에서 이리저리 개조되어 온 것이 냉면이다. 훗날 아지노모도가 들어오면서 MSG를 첨가해 비싼 고기와 맛없는 여름 동치미라는 문제를 무마한 것에서 '동치미 섞은 고깃국물로 맛을 낸 차가운 메밀국수'가 '평양냉면'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일종의 조리법에 대한 수렴과 발산을 반복하면서 복잡하게 발전해온 음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지간한 요리들은 다 정립이 끝나서 더 개조할 것도 없다는 현대에조차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요리인지라, 평양냉면의 명확한 '맛'을 정의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기본적인 구성이 정해져 있으면 맛은 다 어느정도 통일성이 있기 마련이고 그 이유 때문에 현대에는 새로운 요리가 거의 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냉면만은 몇 없는 예외다. '차가운 고깃국물'을 만드는 방법에서 골머리가 깨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차가운 고깃국물을 만들기 위해[11] 수많은 발상이 있어왔고 그 결과는 이북의 김씨 왕조도 뭐가 맞다고 못 정해줄, 수없이 많은 종류의 평양'냉면'들이다.

세계적으로 차가운 국수 자체가 꽤 드문 편일 뿐더러 차가운 국물, 그것도 차가운 고깃국물은 더 찾기 힘든 조합이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평양냉면은 일반적인 고기국수와는 꽤나 다른 맛을 내는 면 요리다. '차갑다'는 것 때문에 적당히 기름지면서도 고소하고 담백한 고기국수의 공통적은 그 '맛'을 유지하는 것이 대책없이 복잡해지게 된다.

뜨근한 국수라면야 느끼해지더라도 향신료를 쳐서 무마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차가운 국수'이기 때문에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보통 세계에서 '기름진 것'과 함께 쓰는 향신료란 대체로 뜨끈한 요리에 쓰라고 있는 물건이지 차가운 요리에 쓰라고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찬 요리와 뜨거운 요리 모두에 쓰이는 향신료, 아니스나 육두구 뭐 이런 것을 쓰면 되지 않나 싶지만, 또다른 맛 강제 요소인 동치미에서 이 접근이 막혀버리게 된다.

달리 말하면, 지금의 평양 냉면에 동치미 혹은 동치미 '맛'이 들어가는 것은, 한반도에 육두구, 정향, 메이스, 아니스 같은 향신료가 흔치 않거나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치미 자체의 맛이 좀 애매했을 뿐만 아니라, 여름 동치미는 참 맛이 없어서 아지노모토를 쳐서 냉면을 만들게 되었으니, 평양냉면의 맛은 더욱 미궁에 빠지게 되어버린다.

본래 냉면의 역사 자체가 애매한 맛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며 한반도의 제한적인 조미료 산출 안에서 최대한 어떻게든 조미 요소들을 쥐어짜서 저렴하면서도 맛있게 만들려 연구하던 것이고, 그나마 평양냉면이라는 몇 없는 정체성은 바로 MSG가 비용 문제와 제철 문제를 싸그리 날려버린 덕분에 모두가 MSG를 넣는 것으로 수렴하여 탄생된 것이다.

남북 모두에서 교차 검증되는 것은, 고깃국물 맛을 찾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동치미나 동치미 "맛" 국수로는 그냥 "냉면"이고, 고깃국물 맛이 나긴 해야 평양냉면이라는 그 애매한 정체성에 포함해볼 수 있게 된다. 엄연히 고깃국물 국수이므로 아주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술했듯 이 고깃국물을 동치미와 합친다는 기묘한 조합 때문에 평범하게 뜨끈한 고깃국물과는 전혀 다르고, 뜨끈한 고깃국물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면 그 시점에서 평양냉면의 고유 특성이 상실되어 그냥 고기국수가 되어버린다. 이러다보니 고깃국물 맛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물건이 나오게 된다.

여기에서 귀중한 "고기"에 더 집중하면 진하지만 깔끔한 육수 맛이 정체성이 되는 것이고, "불명확한 맛"에 더 집중하면, 남한에서 대체로 중요하게 여기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육수 맛이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둘 다 모순적인 맛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고깃국물 맛이라는 미스터리 맛이 평양냉면 고유의 정체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냉면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퍼진 시기가 MSG가 도입된 시기다. 때문에 평양냉면에서 조미료가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이 조미료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서 맛이 또 천차만별이 된다. 요컨대 같은 MSG라 해도 얼마나 넣냐 따라 맛이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는 것.

결국 동치미, 육수, 차가움, 메밀국수란 매우 단순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평양냉면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다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탓에 평양냉면이 도대체 무슨 맛이냐는 논쟁은 대한민국 요리에 있어서 최대의 미스터리가 되어 지금까지 논란이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3.2. "평양" 냉면의 정통성

<정통 평양냉면은 없다>

정통 평양냉면 레시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옥류관은 전후 최승희 무용원이 있던 자리인데 1960년 최승희가 숙청당하고 냉면집이 됐습니다.
김일성이 해방 후 평양에서 먹었던 냉면 중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 집 주방장 노인을 데려와 만들었습니다.
즉 현 옥류관 냉면은 김일성의 입맛이었다는 뜻이죠. 물론 평양에서 해방 후 아주 잘 나가는 냉면집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이후 시대별로 맛이 달라졌습니다.
평양에는 10여개의 대표적인 냉면집이 있는데, 맛이 다 다릅니다.
다 나름 훌륭해서 평양 사람들도 옥류관파, 고려호텔파, 장령식당파 등 자기가 좋아하는 냉면 맛이 다릅니다. 우리가 우래옥파, 을지면옥파, 을밀대파 등으로 갈라지듯이 말입니다.
참고로 저의 경우는 북한 서성구역 인민무력부 청사 구내에서 장령(장성) 및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식표로 운영되는 장령식당의 냉면이 참 좋았습니다. 이 식당은 민간인들이 갈 수 없는데, 재료를 제일 아낌없이 쓰는 식당이었습니다. 저는 식표를 몰래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어 대여섯 번 갔었습니다.
우래옥은 해방전 평양냉면의 한 분파였을 겁니다. 어쩌면 을지면옥과 더불어 80년 동안 최초의 맛을 잘 보존해왔을 수도 있죠.
그런데 이들도 정통이냐 하면, 그렇진 않고 위에 설명한 이유로 해방전 평양냉면집의 한 분파에 해당될 겁니다. 원래 오리지널 정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평양냉면은 왜 유명한가?
이건 설명이 좀 길지만, 1920년대 동아일보 기사엔 당시 우리나라엔 3대 냉면으로 평양(메밀기반) 함흥(감자농마) 진주(녹두?)를 꼽았습니다. 또 기자는 "왜 서울엔 한일관 빼고 변변한 냉면집이 없냐"고 탄식하면서, 평양냉면 맛의 핵심은 메밀면이 아니라 평안도 육우를 쓴 육수라고 했더라고요. 하긴 그때 메밀 재배지는 경기도 북부에 광범위하게 분포됐기에, 많은 북부 지방에서 메일로 면을 만들었을 것인데, 이중 평양냉면을 특별하게 만든 비결이 평안도 육우라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육수를 만들게 한 평안도 육우도 일제 강점기에 대거 일본에 실려가 씨가 말랐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1920년대 동아 기자의 기준으로 따질 경우 우래옥은 평안도 육우의 육수를 쓰지 않으니 정통 평양냉면이 아니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평양냉면이 가장 맛있을까?
제 기준으로 대답은 이렇습니다.
“각자가 평양냉면의 맛에 눈을 떴던 바로 그 식당의 맛이 가장 최고이다.”
저의 기준은 옥류관입니다.
-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페이스북
일단 이름에 "평양"이 들어가는 이상 평양냉면이란 이름에 대한 정통성은 당연히 실제 평양에 있다. 그런데, 그 정통성을 쥔 평양이 현재 북한의 수도이고 남북 간의 교류가 끊겨있기 때문에, 지리적 기준으로 보면 남한에서 먹는 냉면은, 설령 미묘한 고깃국물을 추구하는 냉면이라도, 애초에 평양이 아니니까 완전한 의미의 평양냉면은 아니다. 새콤달콤한 맛이든 밋밋하게 느껴지는 고깃국물이든, 엄밀히 말하면 평양에서 만든 냉면이 아니므로, "남한식" 평양냉면, "서울식" 평양냉면, "평양식" 서울냉면 같은 타이틀이 붙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맛이 같다는 것으로 평양 타이틀을 공유할 만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술했듯 만들기 나름인 요리였고 지금도 그렇고 북한에서조차 그렇기 때문에 "평양"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냉면을 평양냉면이라고 하기로 규정하는 게 아니고서야, 일단 "고깃국물에 동치미 넣고 메밀국수 말아서 차갑게 먹으면" 다 평양냉면...이긴 한 것이다.

설령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서 평양에 직접 갈 수 있게 되어도 평양냉면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남한에 이북에서 월남해서 정착한 사람들도 많고, 지속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이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냉면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논쟁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옥류관 출신 탈북 셰프도 평양냉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한다.

남한에서 통용되는 인식을 모아보면, 최소한 "평양식"이라 하면, 새콤달콤한 맛의 냉면이 아니라, 은은한 고깃국물을 가진 맛을 가진 냉국수, 그중에서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맛이 나는 것을 최고로 친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메밀이 제대로 들어간 국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것은 (적어도 남쪽 생각으론) 평양 현지에서도 통용되는 개념으로 여겨졌고, 김정일 때까지는 교차검증 가능한 사실이기도 했다. 일단 이런저런 루트로 방북한 이들로 인해, 진짜 평양냉면의 국물은 새콤달콤한 국물이 아니라 고깃국물이란 점만큼은 교차검증이 됐었기에, 평양이 아닌 곳에서도 진정한 평양냉면이 뭔지를 두고 어느 정도 갑론을박을 할 수 있었다.

3.3. 계속해서 변화하는 평양냉면

최근 평양냉면의 대표격인 옥류관의 풍조가 "양념을 적당히 쳐서 먹는" 것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통설이 위태로워졌다. 물론 국물 자체는 기존의 은은한, 혹은 오묘한, 찬 고깃국물만이 가능한 그 "독특함"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듯하나, 원래 안 넣던 양념을 추가로 넣어 먹기 시작한 시점에서, 평양 현지에서는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옥류관 냉면의 이러한 변화가 남한식 평양냉면을 작게든 크게든 의식한 결과인지, 우연의 일치에 의한 수렴 진화인지는 불명. 북한 식당에서는 면발에 식초를 뿌리는 방법을 선전하며 '김일성의 발명'이라고 주장하는데#, 진짜로 김일성이 북한에 처음 도입한 발명(?)인지는 불분명하나 그들의 취향이 없으면 나오기 힘든 소리는 맞다.

물론 옥류관이 전부는 아니다. 지리적 기준으로 본다 해도 평양냉면은 음식점 하나가 레시피를 독점하고 표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양이라는 광범위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식문화일 뿐이다. 곧, 옥류관의 평양냉면이란 "옥류관식" 평양냉면이라 하는 게 맞다.

한편, 실향민들과 이북 출신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남북단절 이후 남한에서는 교조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예로 면의 메밀 함량을 일정 비율 이상을 준수하는 남한식 평양냉면에 비해,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옥류관의 면은 이미 메밀은 포기한 지 오래이다.[12]

오히려 남한의 평양냉면이 더 옛날 맛을 지키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무리한 추정이 아니며, 다른 음식 중 예시를 들자면, 돈가스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 현대 일본식 돈가스보단 한국식 돈가스가 오히려 전통적인 돈가스 제조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런 형태의 분화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옥류관 역시 남북 단절 이후 개업한 지 [age(1960-08-13)]년이 지났다. 지배계층의 취향 등[13] 시대의 변화로 옥류관이 [age(1960-08-13)]년 전의 당시의 조리법과 맛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고 보기엔 크게 무리가 있는 상황에서 남과 북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보아야 한다.

평양냉면 우월주의자들이 북한과 남한의 차이를 부정하고 '무조건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교조적 인식을 강요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역으로 현재의 옥류관이 평양에 위치해있다는 이유로 그것이 절대적 정의라 맹신하며 "거기서는 양념도 넣어먹고 식초도 친다던데?" 라는 식으로 남한의 평양냉면은 평양냉면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등 공격적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남북의 단절이 가져온 변화의 방향성 차이로 인해 통일 이후에는 더더욱 풍조가 바뀌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이리 되면 "평양사람들이 즐겨먹는 그 어떤 냉국수"와 지금 남쪽에서 생각하는 원조 평양냉면은 전혀 다른 스타일로 분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평양냉면이란 이름에는 결국 '평양'이 들어가기 때문에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의 정체성 역시 평양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지만, 만약 통일 후 평양쪽의 냉면 맛이 확 변하거나 계속해서 다른 길을 가게 된다면 과연 진정한 평양냉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생활수준과 계층에 따른 분화는 적어도 북한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 "평양"에서 특권 계층이나 가끔 먹는 귀한 요리라는 개념으로서의 평양냉면은 점점 동치미란 정체성이 탈락하고 고깃국물에 집중하게 되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반면, 비교적 "평범한" 별식이란 개념으로서의 평양냉면은 남한이 아는 그 "밍밍한 듯 안 밍밍한 오묘한 맛"으로 분화되고 있다. 한편, 최대한 저렴한 값으로 명목상 "북한 요리"를 파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의 외화벌이용 북한 요리점은 남한에서 아는 그 특정 불가능한 맛을 넘어 그냥 밍밍한 맛이 나는 냉면들을 파는 경우가 흔하는 등, 북한에서조차 분열되고 있는 요리인지라, 차라리 남한에서 통일성을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이런 요리의 분열 현상은 현대 요리의 사조에서도 발견된다. 누벨 퀴진과 오트 퀴진으로 대표되는 분열 등...

3.4. 북한의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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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랭면은 메밀을 기본원료로 하고 이름난 동치미국물이나 육수에 말기 때문에 다른 지방의 메밀국수보다 감칠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국수를 말 때에는 시원한감을 주는 놋대접에 국물을 조금 두고 국수를 사려서 수북이 담은 다음 그우에 고기, 닭알, 오이, 배 등을 순서로 꾸미를 얹고 고명한 후 육수를 부어냅니다. -옥류관 료리사 리문태


금강산 관광을 가면 코스로 옥류관에 들러서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었다. 단, 맛이 남한의 일반적인 조미료 냉면과는 전혀 다르니 일반적으로 먹었던 냉면의 맛을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제대로 된 평양냉면 집에서 먹었다면 북한의 평양냉면이라 해서 그다지 낯선 맛은 아니다.

다만 '평양냉면'이라는 종류의 냉면을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정말 생소할 정도의 맛이 될 수 있다. 비 온 날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14]와 흡사한 향이 나기 때문이다. 가이드 왈, "남한에서는 조미료를 쓰지만 이북에서는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기 때문에 맛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15] 이 맛이 생소할지 모르는 관광객을 위해 특제 소스를 준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넣으나 안 넣으나 비슷하다고.

평양 대동강에 있는 홀인 옥류관에서 나오는 평양냉면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등을 우려내고 여기에 동치미를 섞은 육수에다 메밀과 전분으로 반죽한 면을 쓰는데, 방문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맛있다고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냉면 국물이 어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국물이 얼면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16] 그래도 국물은 상당히 차가운 편이다. 한국에 있는 평양냉면 전문점도 국물에 얼음을 띄워서 주지는 않는다.[17] 또한 북한에서는 냉면을 잘라먹지 않는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남한의 냉면집에서 냉면을 잘라주는 모습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고.[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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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의 평양냉면과 쟁반국수, 고기쟁반국수

북한 영상에 비친 옥류관북한의 주요 음식점에서의 냉면에는 넓적한 그릇에 담아서 내오는 일반적인 평양냉면 말고도 '쟁반국수'란 이름의 냉면도 있는데, 신선로 그릇처럼 높고 얕은 그릇에 담아서 보통의 평양냉면의 맑은 국물이 아니라 양념을 넣어 붉게 만들어 먹는다. 직원들이 계속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육수를 부어주는 모양.[19] 또한 어복쟁반을 기초로 하여 닭고기를 사용해 만든 냉면인 '고기쟁반국수'란 메뉴도 있다.

평양옥류관김일성이 공인한 평양냉면의 본가이긴 하지만 평양에서 냉면을 제일 잘하는 집은 고려호텔 1층에 있는 불고기 식당에서 파는 냉면이다. 평양의 옥류관은 북한의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어 있고 그만큼 음식의 단가도 낮다. 반면 북한 내 특권층과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고려호텔 식당의 냉면은 그 질이 옥류관의 냉면의 질과 차원이 다르다[20].

베이징,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가보면 북한식당[21]이 제법 있는데 이곳에서도 남한의 때(?)가 묻지 않은 원조 북한식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다. 다만 맛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한국에서 흔히 아는 그 냉면과는 차갑고 국수라는 점만 빼면 완벽하게 다른 음식인데 메밀면이 아니라 무슨 밀가루 국수를 말아다 주는 데다가 국물도 맹물에 가깝다. 조리법이 발달하여 육수를 가두는 방법이 여럿 개발되자 삼투압으로 육즙을 잡아놓기 위해 하던 기본 소금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냉면의 맛은 어떨지 몰라도 방식은 원조에 가까울 것이다. 아무래도 북한 사람이 직접 만든 냉면이니까. 한국에서도 원조 평양냉면의 국물 맛을 살린 고급 면옥집에 가면 국물이 거의 '이렇다 할 만한 맛이 안 난다'고 할 정도로 맛이 나지 않는다.

한국 음식점에서 먹는 육수의 풍부한 맛을 기대하고 먹을 경우 상대적으로 심심하다는 평과 함께 호불호가 갈린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냉면은 현대 한국인 혀에 착착 감기게 개량된 것이고, 평생 이런 것만 먹던 한국인에게 맛없게 느껴지는 건 당연지사. 2016년 8월 탈북한 태영호 공사가 “남한의 평양냉면은 너무 달아서 이북 맛이 나지 않는다”고 평하기도 했다. #

심심한 국물을 즐기고 싶다면 의정부시서울시 장충동에 있는 식당에 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평양 본토의 냉면보다는 간이 있다. 일례로, 논현동의 유명한 평양냉면집(장충동 파)인 이곳의정부시의 역사 깊은 평양냉면집(의정부 파)인 이곳네이버 평을 한번 보자. "국물 맛이 밍밍해서 맛이 없다"는 의견과 "이 맛이 평양냉면의 본래 맛인데 도대체 무슨 맛을 기대하고 온 거냐"는 두 의견 사이의 키배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종로 근처의 오래된 식당(예를 들면 식객에 나온 모 식당 등)의 냉면도 마찬가지. 수요미식회에서 이곳이곳이곳(식객)을 다뤘다고 한다. 그나마 서울 토박이들은 애초에 음식 간을 심하게 하지 않아선지 그럭저럭 먹는데, 간을 강하게 치는 경상도, 전라도 출신일수록 이런 냉면을 받아들이길 어려워한다.[22]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23]에 가면 '동무밥상'이라는 북한 요리 전문점이 있다. 이곳의 오너 셰프는 옥류관에서 요리를 배웠고 일을 하다가 1998년에 북한을 떠난 요리사 윤종철 씨가 운영한다.[24] 현재 한국에서 파는 자칭 평양냉면 중에는 가장 원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25] 그런데 여태까지 평양냉면을 먹어왔으며 맛 품평을 하던 사람들이 여길 가서 먹어보고 '뭐야 이건!?' 같은 반응을 생각보다 자주 보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북 출신 전문 요리사가 원조 평양냉면을 내주었는데 정작 남한 사람이 그걸 부정한다는 어이없는 개그가...[26]

반면 똑같이 탈북민 출신 주방장을 두고 있는 서초역 근방 '설눈'이란 음식점은 동무밥상에 비해 꽤나 간이 진하게 되어 있다. 이 곳은 평양 고려호텔 출신이라고 알려졌는데, 실제로 북한에서도 옥류관 vs 고려호텔로 유파가 갈리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북의 현재 평양냉면도 남한처럼 서로 다른 갈래로 진화를 하는 모양이다. 설눈의 경우는 흡사 진주냉면과 흡사한 맛을 내는데 특권층 및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양고려호텔의 특수성 덕에 육수에 갖은 재료를 다 때려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념(다데기)까지 풀어넣어서 얼큰하게 먹는 것을 보면 1970년대에 발달한 동대문 쪽 매운 냉면의 계보와도 비슷하다. 남북이 분단된 이후 근 70년간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도 비슷한 맛으로 발전하게 된 것을 볼 때, 어찌 보면 수렴진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탈북민 가수 김용이 운영하는 '모란각'의 평양냉면도 설눈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비슷한 곳으로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역(일산호수공원) 근방에 있는 '양각도' 라는 식당이 있다.[27] 북한 국영식당 총괄책임자 출신의 한식대첩 북한 팀으로 참가한 윤선희가 개업한 식당으로, 역시 원조 평양냉면 맛을 낸다. 이 집의 특징이 있다면 현재 북한의 옥류관에서 판매하는 쟁반국수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이다.[28] 한국에는 저런 그릇이 없어서 금형을 짜서 주문제작했다고 한다.

탈북자 출신의 기자주성하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닐 때 같은 학급 사람의 여자친구가 옥류관에서 근무해서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먹어봤다고 하는데, 그가 먹어본 남한의 냉면 중에서는 서울에 유명한 냉면가게가 많지만 부산 남포동의 원산면옥이 옥류관 냉면과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부산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집으로도 유명한데, 부산에서 즐겨먹는 매콤새콤한 밀면과는 극과 극으로 심심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평양냉면”들보다는 간이 확실히 센데, 을지로의 남포면옥같은 느낌으로 단 맛이나 남포면옥보다도 더 달다. 정말 맛있는 냉면은 맞지만 과연 이것은 남한 기준의 평양냉면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생길 수도 있는 맛.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만찬의 주요 메뉴로 등장했다. 남측에서 평양냉면을 메뉴로 먼저 제안했고, 북측에서 제안을 받아들여 판문점 통일각에 제면기를 설치하고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직접 와서 면을 뽑아 만들었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중계하던 외신들도 평양냉면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평양냉면에 대하여 보도했다. CNN의 경우에는 가수 출신 재미 요리사 이지연[29]를 초빙해 평양냉면을 직접 제조하고 이를 맛보는 먹방까지 연출했다. #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지의 경우에는 “평양냉면은 평화의 상징”이라는 제목으로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다. 'Cold noodles are peace symbol': summit to savour for euphoric Koreans JTBC 뉴스의 팩트체크에 의하면 사실 정상회담에서 나왔던 빨간 냉면은 평양냉면이 아니라 앞서 소개한 앙념을 넣어 붉게 만든 쟁반국수이다. 물론 빨간 국물의 쟁반국수와 별개로 평양냉면도 같이 나왔다.

남북평화의 상징적인 음식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북한한국 정부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가운데 비난의 소재로 냉면까지 동원되었는데, 옥류관의 요리사 오수봉은 “평양에 와서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다.#

김정은과 핵심계층이 먹는 평양냉면의 육수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로 만들어지는데, 육수생산에 사용되는 고기들은 특수목장으로 유명한 운곡목장에서 약초와 특별사료로 먹인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가 사용된다. 소고기는 목심의 하단부위에서 경추 골의 아래 부분에 위치한 제비추리와 견갑골 앞쪽(목방향)을 덮고 있는 꾸리살을, 돼지고기는 등심에서 머리 쪽으로 이어지는 부위인 목심살, 닭은 닭다리만을 넣어서 만든다. 이 특수부위의 고기들은 육수로서 가장 맛이 좋은 부위로서, 신덕샘물로 깨끗이 씻은 후에 끓여 낸다. 충분한 가열과정을 거친 후 식혀서 웃물에 뜨는 기름들은 제거한다. 2차 가열을 진행해 푹 끓여진 육수에서 고기들을 분리하고 방치한다. 바닥에 가라앉은 앙금을 웃물육수와 분리하여 맑은 육수원액을 얻는다. 스테인레스 탱크에 담겨진 육수원액은 진공펌프를 통과해 노즐을 거쳐 가열회전 가마에 분사된다. 둥근 큰 독모양의 가열회전 가마는 전열선으로 가열되게 되어 있다. 진공펌프로 빨아 올린 육수원액은 강한 압력의 분사구를 거치면서 뽀얀 기체 상태로 뿜어져 나온다. 이 육수기체는 가열되어 회전하는 가마안 벽에 닿아 순간적으로 가루가 되어 가마 아래의 수집 통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된 육수 파우더는 진공포장되어 납품된다.

3.4.1. 심심하고 밍밍한 맛으로 먹는 것?

일반적으로 '북한의 평양냉면'이라고 하면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심심하고 밍밍한 맛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그래서 생애 한 번도 평양에 가지 않은 사람이라도 평양냉면을 먹을 때는 심심하게 먹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아무 조미료를 넣지 않고 오직 육수와 면의 맛으로만 심심하게 먹어야 진짜 평양냉면이라는 것.[30] 이 때문에 평양냉면이 맛없다는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 있기도 하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평양냉면에 겨자를 넣는 것은 평양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부터, 메밀로 만든 면에 쇠가 닿으면 맛이 변질된다며 평양냉면 전용 나무젓가락까지 가지고 다니던 사람들이 나타난 바 있다. 사실 나무젓가락이 더 좋다는 논리가 엉터리인 것이, 나무는 썩기 쉽기 때문에 1회용이 아니라면 코팅이나 약품처리를 해야 한다. 약품 처리를 한 나무젓가락이 좋다고 쪽쪽 빨면서, 수술할 때에도 사용되는 스테인리스가 안 좋다고 생각하는 논리는 그 자체로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식재료는 청동 수저에서 놋쇠, 은수저 등으로 발전해왔고, 이런 금속 기술이 부족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무 수저를 사용해 왔다고 보는게 맞다. 하지만, 냉면은 엄연히 양반 문화가 키운 음식이므로 나무 수저를 사용했을 리는 전무하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도 콜레라(호열자로 불림)의 유행을 두려워하여 초(식초)를 많이 쳐서 먹는다는 기사가 있었고, 1926년에는 서울의 '국수'가 평양의 국수나 냉면보다 국물 맛이 진하지 못하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그러니까 평양에서는 여름에는 고기를 많이 넣고 기름과 깨소금을 넣은 국수를 먹을 수 있었고, 겨울에는 동치미 국물의 냉면을 먹을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고깃국물이라도 맹물에 간장을 탄 맛의 냉면 국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 평양의 냉면도 사실 여러 요리법을 거쳐 제공되었는데, 분단 직전 콜레라 등의 영향으로 고깃국물을 꺼리게 된 사건이나 실향민이 서울 사람들에게 고향에서는 듬뿍 넣던 고기 등을 전쟁 직후의 열악한 경제 사정 때문에 구하지 못해 심심한 맛의 냉면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분단 전에는 남남북녀라는 말이 나온 것이 평양 등의 북부는 외부와의 교역이 쉬웠던 곳이라서 경제력이 높아서 풍류를 많이 즐겼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고, 이런 경제력 때문에 음식 문화에도 재료를 많이 쓰는 모습이 있었다.

소위 "대중들은 알지 못하는 진정한 평양냉면의 맛을 아는 특별한 나" 컨셉에 진심으로 취해있었던 사람들이었는데, 하단에 서술될 2018년 옥류관 냉면 영상이 자칭 평양냉면 전문가들의 냉면부심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이후 평양냉면은 그저 먹는사람 입맛에 맞게 취향대로 먹으면 된다는 분위기가 생겨나니까 인터넷상의 평양냉면 전문가들이 싹 사라졌다.

인터넷상의 평양냉면 전문가들이 사라진 수준을 넘어서, 기존의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인터넷에서 조롱당하는 분위기도 있다. 기존의 평양냉면 마니아들 중 일부가 평양냉면의 심심한 맛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저급한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로 몰아갔고, 요리연구가나 맛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방송과 유튜브에서 이와 비슷한 논지의 말을 했던 것에 대한 반발심리가 원인으로 보인다.



함경도 출신 옥류관 요리사였던 윤종철이 한 인터뷰에 따르면 북한의 평양냉면은 이러한 밍밍한 맛에 가깝다고 한다. 원래 겨자는 넣지 않아야 한다, 김치를 넣어서 먹으면 식초와 겨자를 넣지 않고도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다만 옥류관에 김일성이 냉면 먹는 방법을 써 놨는데, 냉면 면발에 식초를 적셔 먹으면 맛있다고 써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윤종철은 평양 한 번 갔다 온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한답시고 젓가락 위에 면을 올려놓고 식초 뿌리는 걸 보고 '아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식초는 옥류관의 식초와 다르기 때문. 옥류관의 식초는 시큼한 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더 나는 맛[31]이라, 면에다 듬뿍 적셔도 식초 특유의 시고 쿰쿰한 맛이 나지 않는다. 원래 면에 식초를 뿌려 먹는 방식은 전통방식이 아니라, 김일성이 그렇게 먹어야 맛있다고 교지를 내려서 전해지는 방식이다. 권력자들이 자연스레 미식을 즐기게되는 점을 생각해볼 때 마냥 헛소리로 취급할 수준은 아니며, 실제로 면에 식초를 살짝 발라 먹어봤더니 나쁘지 않다는 반응도 많다.



그런데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참석팀이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영상이 올라오자 평양냉면 마니아들에게 일대 대충격을 주었다. 옥류관 직원이 "그냥 먹으면 맛이 없다"면서 면에 식초와 양념장, 겨자를 듬뿍 넣는 장면이 드러난 것이다. 평양냉면은 심심하게 먹는 것이라는 공식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자료 영상을 보면 모든 손님들에게 직원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가르쳐 주는데, 모두 식초와 양념장, 겨자를 듬뿍 넣어 먹는다.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 그 자리에서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다. 백지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먹는 평양냉면과 맛이 다르다고 평했다. 다만, 고려해야 될 점은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방문했을 때 먹는 모습과도 너무 달라진 느낌이다. 그때에는 종업원이 면에 식초를 살짝 뿌려서 먹으라고 했는데, 2018년에는 양념장까지 넣어 먹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평양냉면의 전통이 지켜지고 있다고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2019년 6월 18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실제 평양냉면은 고기육수 맛이 진하면서도 깔끔해야 한다는 점을 볼 때 단순히 밍밍하다는 것은 '옥류관'과 서울의 평양냉면 전문점들을 통해 퍼진 편견으로 보이며, 오히려 북한에서는 맛간장과 식초를 종종 치는 등 원래부터 간을 상당히 강하게 해서 먹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북한의 평양냉면은 동치미 국물 내지 고깃국물을 사용하여 어떤 요리법에서는 맛간장과 고급식초를 자주 사용했으나, 한국의 평양냉면은 실향민들의 경험과 기억이 분단 직전과 직후의 어떤 사건과 결합하여 탄생한 밍밍한 맛이 그대로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와,[32] 그 맛을 선호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추어 양념 등의 추가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던 저러던 결국 평양냉면을 식초, 겨자를 쳐서 먹든 그냥 아무 것도 안 넣든 간에 그것은 냉면을 먹는 사람의 자유다.[33] 굳이 평양냉면부심을 부리면서 강요할 필요가 없는 것. 탕수육은 하나를 여러 사람이 같이 먹기 때문에 부먹 vs 찍먹 논쟁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냉면은 보통 1인 1그릇이 기본이기 때문에 싸울 필요 없이 넣고 싶으면 넣고, 말고 싶으면 말면 된다.

평양냉면 논란은 통일 이전까지 한국 음식계의 영원한 떡밥이자 뜨거운 감자이다. 수요미식회에서는 평양냉면은 무조건 심심하게 먹어야 한다는 면스플레인인 황교익과 직접 평양냉면을 먹고 온 윤상이 출연했다. 윤상은 평양냉면을 먹고 온 후일담을 남겼고, 황교익은 그렇게도 방송을 통해서 그 맛이 진리인냥 강요하던 자신의 신조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해당 논란은 시간에 따라 진화된 냉면의 여러 모습 때문에 논란이 발생한 경우이다. 남한에서 오래된 우래옥의 초대 요리사는 당시 냉면으로 유명했던 평양 명월관 출신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수많은 취재진들이 옥류관 냉면을 취재했지만 이번 만큼 극적으로 다르다는 취재 기사를 낸 적이 없었다.

실제 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평양냉면을 먹고 나서 '만들다 만 것 같은' 맛이라고 평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2000년대에 출간된 조선향토대백과에 따르면 평양냉면의 국수는 '쩡하고[34]', 감칠맛이 있다고 하였다. 동치미 국물의 재료에는 마늘, 생강, 준치젓, 실고추, 배 등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학자들이 조사한 바로도 '슴슴한' 맛은 아니고 매우 시원하고 감칠맛이 있는 맛이라는 것이다. 다른 지방의 메밀국수보다 시원하고, 달며, 새큼한 맛이라고 한다.

물론 반드시 전통적인 방식의 요리법만이 옳냐는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돈가스도 일본식 돈가스를 선호하느냐 한국식 돈가스를 선호하느냐는 개인의 취향 차이인 만큼, 평양냉면 또한 무엇이 옳느냐는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3.5. 대한민국의 평양냉면

[인포그래픽 기획]너도 옳고 나도 옳다···내 취향저격 평양냉면 찾기

유명한 냉면집은 서울특별시에 밀집해 있지만 평양과 거리가 먼 남부지방에도 평양냉면을 팔고 있는 집들이 드문드문 있다. 그것도 꽤 오래 된 노포들이 많은데, 실은 흥남 철수작전 당시 LST를 타고 온 피난민들이 시작한 집들이다. 그리고 메밀보다 미국이 원조한 밀가루푸대를 훨씬 구하기 쉬웠던 부산광역시에서는 밀면이 대세가 되었으며, 산비탈 밭에서 메밀을 심어 경작할 수 있는 곳들[35]에서는 메밀을 계속 공급받아 평양냉면 장사를 그대로 이어온다.

현대 한국의 평양냉면에는 전분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는데, 전분을 폭넓게 활용하는 대한민국의 함흥냉면과 대비된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메밀 제면을 내세우는 경향이 강하지만, 정작 순메밀 100%로 국수를 만드는 집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메밀면이라고 광고하는 가게들을 가봐도 최소 (메밀) 3:7 (밀) 정도로 배합을 해서 국수를 뽑는다. 왜 밀가루를 넣는가 하니, 탄성이 낮은 메밀의 특성상 온전히 메밀로만 국수를 만들면 젓가락질을 하기 힘들 만큼 쉽게 끊어져 소비자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순메밀 100%로도 질감이 괜찮은 국수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조라고 볼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는 메밀 껍질을 온전히 벗겨내는 기술이 없었기에 아이보리색 면에 거무스름한 껍질이 군데군데 박힌 형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원도막국수가 현재의 평양냉면보다도 훨씬 냉면 면발의 원형에 가깝다.

메밀을 사용하는 형태에 따라 면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난다. 메밀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면은 메밀 가루에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반죽을 한 뒤 유압으로 압출한다. 메밀은 글루텐이 적어 반죽에 용이한 곡물이 아니며, 알칼리도도 낮아 반죽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메밀 가루에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반죽 형성과 반죽 유지를 꾀하는 것이다.[36]

하지만 종종 메밀가루만으로 반죽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메밀 가루만으로 반죽하는 소위 '순면'이라는 것은 식감이 수더분하고 고소한 반면 질감이 거칠고 매끈한 맛이 부족하며 탄력이 크지 않아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00% 메밀로 만든 반죽은 미리 만들어 놓고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그때그때 반죽하여 면을 뽑는다. 따라서 냉면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전분을 섞은 면에 비해 몇천 원 비싸지만, 메밀 특유의 향과 툭툭 끊어지는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메밀의 껍질을 벗기는 여부와 메밀 가루의 취급 여부는 면의 색과 맛에 영향을 준다. 메밀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가루를 내는 경우에는 면이 짙은 색으로 나오고, 흔히 메밀 맛이라 생각하는 그 맛이 나오게 된다. 메밀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가루를 낸 경우에는 가급적 그 가루를 빨리 사용해야 한다. 다만, 가루를 내기 전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로 말린 경우에는 가루를 내어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러한 가루로 만든 면은 매우 짙은 색을 보인다.[37]

메밀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내는 경우에는 면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고, 단지 잘 끊길 뿐이다.[38] 또한, 껍질이 벗겨졌다면 알곡을 건조해 사용할 수도 있다. 껍질을 벗겨 건조하지 않고 가루를 내는 경우에는 푸르스름한 색의 면[39]이 나오고, 껍질을 벗긴 후 건조하여 가루를 내었다면 하얀 면이 나온다.

국물은 고기 육수가 베이스이며, 여기에 동치미 국물을 활용하는 곳이 꽤 된다. 고기 육수도 천차만별이라 고기의 맛을 완전히 남겨서 텁텁한 맛이 나게 하는 경우도 있고, 고기의 맛을 다 날려보내서 고기 육수인지 맹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맛이 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고기 종류도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소고기 육수를 사용하여 양지나 사태, 사골 등의 부위로 육수를 우려내나 간혹 돼지고기 육수를 섞거나 닭고기 육수를 섞는 경우도 있다.[40]

평양의 원조 방식에 기인하여 꿩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예도 드문드문 있다.[41] 동치미 국물 역시 활용 방법이 다양하다. 동치미 국물만을 냉면 국물로 사용할 수도 있고,[42] 고기 육수와 섞어 고기 육수의 텁텁한 맛을 잡거나, 동치미의 새콤한 맛을 살리면서 고기 육수를 소량 섞어 감칠맛을 더하는 정도로 제한할 수도 있다. 어떤 곳은 처음부터 동치미를 담글 때 고기육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미원이나 MSG 등의 인공 조미료를 섞기도 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고기 육수의 텁텁한 뒷맛을 제거하고 원재료가 가지는 감칠맛을 보강하기 위함으로 인공 조미료만으로 맛을 내는 공장제 육수의 사용법과는 전혀 다르다.[43]

냉면 국물과 관련해서는 원조나 정통 논란이 많은데, 이러한 논의는 무의미하다. 일단, 식객[44]이나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런 논란을 부추기는데, 그러한 주장 중에는 평양냉면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 하지도 않고 내뱉는 것들이 많다.

평양냉면은 어느 한 동네를 특정할 수 있는 장소에서 먹던 음식이 아니라 평안도 남부와 황해도 북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식문화였다. 따라서 하나의 음식에 따라 당연히 다양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고, 이들 중에서 무엇이 정통이고 원조인지를 가리거나 논하기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를 김치에 비유하자면, 같은 지방의 김치라도 공통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집집마다 맛은 다르지만, 그 중에서 어떤 특정한 방식의 김치만이 정통은 아닌 것과 같다. 또한, 이 논쟁과 관련해서 평양냉면이 고급 요리였다[45]는 식으로 엮는 것은 무지의 발로인 것이다.

2018년 4월에 한국가수들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 옥류관의 평양냉면이 매체에 소개되는 계기가 생겼는데 한국의 평양냉면과는 맛이 다르다고 한다. 원래부터 음식 조리법이라는 게 영구히 고정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민족적 비극으로 인해 수십 년간 다른 길을 걸어온 음식이다보니 다양한 조리법으로 분화될 수밖에 없고, 맛이 같았으면 오히려 그게 더 신기한 일이다. 다만 평양 및 근교의 냉면을 정통파라고 보겠다면, 작금의 남한식 평양냉면은 북한식 평양냉면과 다른('틀린'이 아니다!) 요리라고밖에 말할 수 없고, 이 경우에는 어쩌면 서울냉면이라고 불리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4월 11일 강적들 E230 40분 즈음에 평양 출신의 탈북자가 말하기를, 평양냉면은 개인 식성에 맞게 간을 더 하는 등 조미를 해서 먹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즉, 밍밍하게 나오는 것은 마치 순대국에 다대기나 소금을 손님이 간해서 먹는 것처럼 간이 안 된 상태에서 나오는 냉면을 개인 식성에 맞춰서 먹는 음식이라는 것.

평양냉면의 인기 상승으로 서울에서만 100개에 육박하는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판매한다.

서울 평양냉면 지도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주요 메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갑자기 평양냉면의 인기가 치솟았다.# 평양냉면집은 오후나 돼야 먹을 수 있을 듯한 줄이 늘어선 곳이 많았는데, SNS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라온 냉면집 알바나 주인들 이야기에 따르면 덕분에 일반냉면 집도 꽤나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점심시간 내에 평양냉면을 먹을 수가 없는 직장인들이 "그냥 냉면이라도 먹자." 하고 아쉬움을 달랜 모양.

평양냉면은 비싸서# 오히려 국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듯도 하다. #

3.5.1. 평양냉면 전문점 목록

현재 대한민국, 특히 수도권에는 수많은 평양냉면 전문 면옥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중적 지명도와 뛰어난 맛을 바탕으로 수십년 째 운영해오고 있는 노포도 상당수 존재한다.

역사가 제일 깊은 냉면집은 의외로 대구에 있다. 1905년 평양에서 개업한 안면옥 일가가 피난와서 재창업한 부산안면옥. 워낙 역사가 복잡하니 다음 초대 사장 인터뷰를 읽어보자.#1 #2 #3

평양냉면은 각 전문 식당마다 맛의 편차(맛있고 없음의 여부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맛의 차이)가 큰 음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맛의 대척점에 서 있는 식당들끼리 비교할 경우 아예 다른 음식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이렇듯 점포마다 맛의 차이가 나는 데 영향을 주는 요인은 육수, 면, 고명 등이 있다.

먼저 육수는, 소 육수만을 사용하는가, 소고기돼지고기, 노계을 함께 사용하는가, 동치미 국물을 얼마나 블렌딩하는가(배합하는가) 등에 따라 염도와 당도, 감칠맛, 슴슴함 등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다음으로 면의 경우 메밀가루와 전분의 배합 함량[46]에서부터 면발의 굵기, 삶기, 곡향의 정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고명 역시 동치미 무절임, 오이절임, 오이채, 김치, , 고추, 고춧가루, 등의 유무에 따라 맛에 큰 차이가 난다. 특히 달걀을 주는 방식이 다양한데, 흔히 떠오르는 냉면의 이미지처럼 삶은 달걀 반쪽을 주는 경우[47]도 많고, 달걀 지단으로 대체하는 경우[48]도 있으며, 계란 고명을 과감히 생략하는 경우[49]도 종종 있다. 삶은 달걀과 지단 고명을 동시에 제공하는 집도 물론 있다.[50]

이 외에도 각 집들마다 각자의 노하우철학, 지향점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스타일 별로 호불호가 확고하게 갈리는 경향이 있다.

다음은 전국에 존재하는 유명 평양냉면 전문점들이다.[51]
1세대 평양냉면, 또는 노포(최소 30년 이상)
2세대 이후의 면옥, 신흥 강자, 또는 분류 미상

4.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는 유명인

5. 관련 문서



[1] 2018 남북정상회담 당시 촬영된 사진이다. 본문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과거에 비해 면의 색이 상당히 짙어졌다. 위 사진이 게재된 기사 참고.[2] 북한이 생기기 전에는 한반도 전역에 두음법칙이 있었다. 서북 방언 문서에는 여섯 륙을 '눅'으로 발음하는 탈북자가 나온다.[3] '국수'가 '곡수'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4] 출처: 음식업 중앙회[5] 재미있는 것은 현 옥류관의 위치가 조선시대 냉면거리가 있던 곳이라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6] 그래서 수리 시설이 정비되기 이전인 1910년대까지는 전국 모든 지역의 생산량이 50%를 넘기지 못했으며, 일제강점기 말에도 평양평야의 생산량은 여전히 20% 미만이었다! 다만 간척으로 만들어진 안주평야는 쌀 생산량이 50%를 육박했지만, 이 또한 일제강점기간척된 땅이다. 마찬가지로 호남평야의 상당수, 재령평야, 연백평야, 김해평야, 김포평야, 예당평야, 안주평야 등은 1910~20년대까지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는 뻘밭 또는 습지였다.[7] 조선왕실양반가에서 냉면 먹었다는 기록이 숱하게 나오지만, 이것이 평양냉면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단지 평양에서 만드는 냉면조선 시대부터 유명세를 탄 것이다. 경기도 일대에서도 냉면 문화가 독자적으로 존재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국수를 만들 때 주로 메밀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원도 대표적 국수 문화인 막국수 역시 메밀이 주 재료이며, 냉면과 독자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데에서 한반도 중부와 북부의 국수 문화는 '메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원도 영서평안도 서남부의 겨울 기온은 굉장히 비슷하며, 평안도 산악 지대와 강원도 영서 지역은 지형, 강수량이 비슷해 재배 가능한 작물이 온전히 겹친다.[8] 다만 함경도에서는 메밀 수확마저 힘들어서 감자, 옥수수 등의 녹말을 이용한다.[9] 여기서 말하는 김치동치미, 백김치 등을 말함[10] 실제로는 JODK는 인원수가 매우 적어서 전문 성우가 아니라 아나운서를 겸하는 방송국 직원이 성우를 겸했다. 일부는 시내 기생집에서 기생을 데려와 녹음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오정세 배우아나운서 역으로 분했는데 마이크 앞에서 냉면을 정말 찰지게 소화한다.[11] 맛있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대한 저렴하게(...)[12]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 메밀로 국수를 만들던 이유는 순전히 밀이 귀해서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메밀 맛도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북에서는 그 정체성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보지는 않게 된 듯하다.[13] 옥류관은 평양의 최고 호화 식당은 아니어도, 엄연히 북한의 특권계층을 위한 식당, 곧 북한의 자원을 독점중인 자들의 식당이므로 서민이 만드는 인조고기 마냥 재료난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아랫문단에서 보듯 특권계층은 식량난에 구애받지 않았다. 서민은 근처에도 못 가기도 하는 고난의 행군 이미지와 매우 다른 곳이다.[14] 버섯 종류의 냄새의 가능성이 크다.[15] 물론 조미료는 넣는다. 문화어로는 ‘맛내기’라 부르며, 정확히 말해서 미원이다. 북한이 펴낸 공식 요리법 책자에 나오는 평양냉면 재료들에는 '꿩고기, 동치미,..., 맛내기 조금'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6] 국물을 얼리면 얼음은 소금기가 빠지고 국물은 진해지며, 그릇에서 녹아 감에 따라 국물 맛이 계속 변한다.[17] 을밀대처럼 얼린 국물을 섞어주는 집도 있다. 이런 집에선 거냉을 부탁하면 얼리지 않은 국물만 준다고 한다.[18] 무병장수, 백년해로를 비는 의미로 생일, 결혼식, 환갑 등 잔치에 국수를 먹는데, 남한에서도 이 때엔 절대 면을 잘라서 먹지 않는다. 남쪽에서는 많이 희석되었지만 국수는 원래 그런 의미가 있는 음식이라 어느 때건 잘라 먹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냉면을 잘라 먹는 것은 질긴 면을 사용하는 현대식 냉면을 쉽고 간편하게 먹기 위함일 뿐, 질긴 면이 아닌 밀가루나 메밀로 만든 면의 경우는 역시 잘라서 먹지 않는다. 그리고 함흥 신흥관에서 만드는 원조 함흥냉면농마국수 역시 면이 질기지만 잘라 먹지 않는다. 비슷한 메밀면을 이용하는 소바 역시 자르지 않는 것처럼.[19] 쟁반국수의 경우 일반 평양냉면과 달리 고명이 별로 안 보이는데, 하지만 이게 진짜 원조 평양식 냉면이라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전통 있는 남한의 냉면집들도 원조에 가까울수록 고명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으며 아예 고명이 없고 면과 국물만 파는 '민짜'란 메뉴가 따로 있기도 하다.[20] 김정은 정권 들어서 북한 내국인의 외화 사용 제한이 철폐되기 전까진 웬만한 특권층아 아니고서 외화만을 받는 호텔 식당을 함부로 드나들단 목아지가 달아나기 일수였다. 그만큼 핵심 특권층에 맞춰져 있다.[21] 그 유명한 옥류관 북경 지점 등등.[22] 이 때문인지 냉면에서 파생된 음식인 부산의 밀면은 단맛, 짠맛, 매운맛이 강한 편이다. 물론 밀면이 아닌 냉면도 함흥이 속한 함경도를 제외한 남부로 내려갈수록 간이 세진다. 다만 남쪽으로 갈수록 상하기 쉬워 간이 세진다는 주장이 많이 돌았지만, 함경도를 감안하면 평양이 속한 평안도의 이미지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파생된 오해다. 북한에서는 평안도가 싱겁고 함경도가 양념을 많이 넣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23] 원래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합정역 근처에 있었으나 2022년 말 이전했다.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경의중앙선 백마역이며, 100번을 타고 은행마을3단지에 내리면 된다. 또는 3호선 원당역에서 097번, 098번, 7728번, 567번, 999번, 703번을 타고 일산자이센트리지에 내려도 된다. 이 곳에 가려고 합정역에서 내렸다면, 6호선을 타고 증산역이나 새절역에서 7728번으로, 혹은 불광역에서 703번이나 567번으로 갈아타면 쉽게 갈 수 있다. 771번원당동 투어를 하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강남 쪽에서 가는 경우에는 9600번을 이용하면 된다. 아니면 50번, 81번, 95번, 98번, 1900번, 099번을 타고 동국대병원사거리에 내려서 걸어오는 방법도 있다.[24] 수요미식회한식대첩에 출연하기도 했다.[25] 물론, 남한의 요리가 오랫동안 변화해 온 만큼 북한 요리도 시간이 지나서 맛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일단 오랜 경력의 북한 출신 전문 요리사가 만든다. 결코 이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1950년대에 전쟁 피난민으로 탈북했던 사람들의 레시피는 이미 어떤 면에서든지 수십 년 동안 남한 요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원조와는 꽤나 멀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무형문화재가 아니라 요식업계 경영인이기 때문에 손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남한 사람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26] 물론 이는 그만큼 남한 사람들이 현지화(?)한 평양냉면 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한 예로 봐야 할 것이다.[27] 원래 대화역 근방 먹자골목에 있었는데 일산 반대편인 백석역 인근으로 이전했다가, 2022년 현 위치로 다시 이전했다.[28] 다만 위에 나왔던 것처럼 붉은 양념이 들어간 냉면은 아니고 보통 평양냉면이라고 한다.[29] 80년대 후반에 청순 이미지로 <바람아 멈추어다오>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고 돌연 잠적하신 그 분이다.[30] 정작 평양의 음식점에는 냉면에 넣을 양념이 준비되어 있으며 양념을 더하는데 아무런 거부감도 없다.[31] 다시마를 넣어 MSG를 추출한 다시마 식초를 사용하기 때문이다.[32] '양식의 양식'에서는 양념이 강해진 북한식과 슴슴한 맛으로 먹는 남한식을 비교하며, 여타 다른 음식들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고객층이 바뀌고 그들의 입맛을 따라가야 했던" 북한식에 비해 "일반 대중보다는 실향민들이 실향민을 대상으로 영업해왔고 그들의 기억과 취향이 기준이라 오히려 레시피를 바꾸기가 어려웠던" 남한식의 차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평양냉면집 중 냉면집을 운영 또는 근무했거나 냉면집 자손인 경우가 꽤 많다. 옛날에 만들던대로 고향의 맛을 즐기러 온 사람들을 주로 상대했다는 것인데, 과거의 신문 기사에서는 진한 고깃 국물 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이런 요리법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미루어보면 그들의 취향도 종종 전쟁 직후의 사정이나 전쟁 직전의 고깃국물이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던 콜레라 유행 등으로 못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시판 냉면 육수 역시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물건도 아닐 것이고 맛도 어느 정도는 근본에 가깝기에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냉면 육수"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을 텐데 아무도 이 점에 주목하지 않는 것 역시 미스테리. 식초를 많이 치는 요리법이 1930년대에도 있었으니 이런 요리법이 분단 이후에 미약하게 남아 있다가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33] 물론 평양냉면의 본고장 평양에서 저렇게 먹는 것이 드러나버린 이상(...) 심심하게 먹는 것이 평양냉면이라고 부르는 것은 안될 것이다.[34]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시원하다는 뜻이다. 많은 탈북민은 이 표현을 잘 알고 있다. 북한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엄연히 한국식 표준어에도 해당된다. 북한 요리가 심심하다는 설이 많이 퍼져 있기는 하지만, 사실 평양이 아닌 함경도는 이런 곳보다 심하게 예전부터 다대기가 함경도 사투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매운 맛도 오히려 좋아하였고, 북한 전역에는 이런 '쩡한 맛'의 김치 등이 알려져 있다.[35] 전라도경상도 산골 지역의 논농사 짓기 애매한 곳에는 휴경 삼아 메밀을 심어서 나쁠 것 없다. 어차피 겨울에 보리농사를 짓기 때문이다.[36] 전분을 이용한 탄력의 증대는 식감의 증대로도 이어진다. 전문 평양냉면집에서는 보통 메밀과 전분의 비율을 6:4에서 8:2까지 조절한다.[37] 현대 북한의 냉면은 이 형태를 따른다. 한국에서는 동두천시 생연동에 위치한 모 냉면 전문 식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38] 일본의 소바가 이런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면에서 아무런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면을 찍어 먹는 간장이 발달하였다.[39] 서울특별시 중구와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소재한 모 냉면 전문 식당이 이 예를 따른다.[40]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모 냉면 전문 식당은 3가지 고기육수를 함께 섞는다.[41] 대전의 숯골원냉면이나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모 냉면 전문 식당이 대표적이다.[42] 몇몇 평양냉면 면옥은 아예 동치미 국물만을 육수로 사용하는데, 달고 짜고 감칠맛까지 나는 신묘한 맛이 나는 공장제 동치미 국물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먹기에는 너무 심심한 맛이라서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유명한 면옥들에서는 동치미 국물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아예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명에 투자해서 맛을 보완해 주는 편.[43] 공장제 육수가 아닌 직접 고기를 우린 육수를 사용하는 가게들의 MSG 사용량은 극히 소량이다. 서울 대표 평양냉면 식당이라는 명성을 가진 곳들을 다수 TV 프로그램에서 몰래 취재한 결과 200L에서 600L당 MSG 1kg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냉면집에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육수에 아지노모도를 써왔으니 오히려 전통에 맞을 수도 있다.[44] 이 만화는 식제사 전공자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까이는 것으로, 작가 개인의 주관에 의해 기술된 측면이 강하다. 실존하는 객관적 문헌과 반대되는 경우도 많고, 특정 조리법을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재해석 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평양냉면 부분과 관련해서는 ‘메밀’ 면발을 삶고 나서는 곧바로 살얼음이 얼 정도로 찬 물에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로 메밀의 맛과 풍미를 살리기 위함을 들고 있다. 이는 작가가 면 요리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삶은 면을 곧바로 찬 물에 씻는 것은 면의 탄성을 극대화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은 밀가루로 제면한 경우에는 적절할지 몰라도 메밀 면에는 부적절한 방식이다(《메밀과 밀가루 혼합분의 물성 특성》, 김복란 외 2인,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2000). 메밀 면의 풍미와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찬 물이 아니라 상온의 물에 씻어야 하며, 실제로 현대 대한민국의 많은 평양냉면 전문 식당에서는 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상온의 물에 면을 씻는다.[45] 이러한 주장은 식제사(食制史)나 사회사 전공자가 아닌 자칭 음식 평론가의 개인적 소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평론가는 조선 말기 한 양반이 냉면을 사 먹었다는 기술에 집착해 저런 주장을 펼치는데, 전근대 사회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외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 배경이 보장된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주장을 좇아 평양냉면이 소위 '양반들의 음식'임을 인정한다면, 현재 한국인이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들 중 냉면 외의 비슷한 기술을 보이는 음식들 역시 같은 궤변에 빠지게 된다. 영국 왕족이 햄버거를 먹었다고 햄버거가 캐비어나 푸아그라 같은 고급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46] 7:3인 경우도 많고 순메밀면도 많다. 순면의 경우 가격이 좀더 붙는 편이다.[47] 의정부파, 장충동파, 을밀대 등 다수[48] 능라도, 봉피양, 진영면옥, 서관면옥 등[49] 우래옥, 봉밀가, 우주옥 등[50] 봉래면옥 등[51] 각 지방에도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정착한 곳에는 냉면집들이 있다. 특히 부산이나 마산 등에는 밀면만 있는 게 아니라 정통 평양냉면 하는 집도 의외로몇 군데 있는데, 흥남 철수 당시 LST가 정박한 곳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이 때 월남하신 분 중에 냉면집을 유명 노포로 일구어 놓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52] 2022년 기준으로 열 곳이 훌쩍 넘는다[53] 사실 봉피양 자체를 노포라고 볼 수는 없는데, 봉피양 자체는 설립된 지 30여 년이 좀 안 된 집이다. 다만 그 이전부터 있었던 벽제갈비 시절의 냉면까지 포함한다면 노포에 포함되고도 남는다.[54] 불법건축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북면옥은 머지 않아 사업자 등록이 취소될 수도 있다. 특히, 육수 조리장은 사실상 노천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환경이며, 인근 주차장에서 배기가스가 직접 유입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사실 이 정도면 식중독 문제가 안 터진 게 신기할 정도. 지역 주민들에겐 지금 처럼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땐 구청에서 지적한 뒤쪽 공간 도로변에 김장포를 깔아두고 만두소를 버무리고 만두를 빚은 적이 있을 정도로 위생관념이 엉망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지역 주민 중 일부는 이런 것에 학을 떼고 안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주는 삶의 터전, 소상공인 운운하고 있는데 이는 장사 잘 되고 단골 많으니까 대놓고 실정법을 무시하겠단 의도밖엔 안 된다.[55] 안목천이 운영한 부산의 부산안면옥은 도박으로 망한 이후 대구 부산안면옥으로 합류했고, 안차천이 개업한 대동면옥은 주인이 수차례 바뀌었다.#[56] 한우 ‘투뿔’로 끓인다고 홍보하고 있다.[57] 상호부터가 그냥 평양냉면이며 이쪽은 전형적인 슴슴파[58] KIPRIS에서 확인 가능한 상표 출원인의 주소는 울산 남구로 되어 있다.[59] 사리를 5번 추가해 먹었다고 한다.[60]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의 리더[61] 의정부평양면옥, 능라도 강남점, 염리동 을밀대, 여의도 정인면옥, 주교동 우래옥, 갈현동 만포면옥, 독산동 진영면옥, 해운대 부다면옥. 당인동의 국수공장에서 맛본 들기름냉면까지 합치면 9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