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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방시혁 | |||
경영진 · CEO · 총수 · 이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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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f00><colcolor=#000> HYBE 초대 총수 방시혁 房時爀|Bang Si-hyuk | |
예명 | "Hitman" Bang[1] |
출생 | 1972년 8월 9일 ([age(1972-08-09)]세) |
서울특별시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파르크한남[2] 로스앤젤레스 벨 에어 스트라델라 로드[3]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남양 방씨 (南陽 房氏)[4] |
혈액형 | O형 |
가족 | 아버지 방극윤, 어머니 최명자[5], 여동생[6] |
학력 | 서울신천국민학교 (졸업) 언북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87회 / 졸업)[7]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 91 / 학사)[8] 서울대학교 (경영학 / 명예박사)[9] |
직업 | 기업인, 작곡가, 프로듀서 |
현직 | HYBE 총수 HYBE 이사회 의장 |
병역 | 불명[10] |
데뷔 | 1994년 제6회 유재하가요제 동상 |
재산 | 29억 달러 (한화 약 4조 1천억 원) |
링크 | [11]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작곡가, 프로듀서. HYBE 총수이자 이사회 의장.2. 생애
어릴 때는 운동도 싫어하고 5살 때부터 한글을 깨쳐 집에서 하루종일 책만 읽던 소년이었고, 부모님이 사회 생활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이 되어 기타를 사줄 정도였다고 한다.[12] 다행히 기타에는 관심을 가졌고, 처음엔 그래도 좀 얌전한 클래식 기타로 시작했지만 뭔가 성이 안차 일렉트릭 기타로 바꾼 후, 어쩌다보니 헤비메탈 밴드로 처음 아마추어 무대에 입문했다고 한다. 당시 그룹명은 훗날 보면 좀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검치호였다고. 이때가 중학교 시절로 작사, 작곡도 이때부터 점차 한 것으로 보인다.명문대 나온 부모님 공부 머리를 물려받은 게 있어서인지 시험 공부라곤 1시간 남짓 했음에도 다 했다고 나와 또 다른 책을 읽어대는데 성적은 잘 나와 부모가 그런 쪽으론 걱정 안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방시혁 본인도 이 시절의 자신을 ‘친구들이 매우 재수없어 할 정도로 노력 대비 공부 잘하던 천재끼 있던 아이’로 기억했다.[13] 대학입시를 앞두고 서울대 법대 진학을 희망했으나, 딱히 선망이 있던건 아니었고 그냥 남들이 가라고 하니 뚜렷한 꿈도 없이 따르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법대 들어가기에는 점수가 간당간당한 김에 재수는 하기 싫어 법대 대신 일종의 안전빵으로 다른 과를 알아보던 중 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집에선 반대했지만 떨어지면 재수 안한다는 협박 끝에 결국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뭘 공부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들어간 학과였음에도 예술과 탁상공론을 좋아하던 본인 기질에 운좋게 맞아 떨어져 수업이 매우 재미있었고 이전에 하던 음악 공부도 한동안은 내팽개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 이후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매진, 원투의 오창훈이 활동했던 그룹인 체크와 김민승이라는 가수에게 곡을 주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다 1997년경 박진영에게 스카웃되어 2001년 8월부터 2005년 1월까지 JYP엔터테인먼트 수석 프로듀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14] 박진영이 작곡가 김형석에게 프로듀싱의 A to Z를 다 배웠다고 밝혔는데 방시혁도 박진영에게 프로듀싱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수상 소감으로 말하기도 했다.[15] 회사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인원이라곤 박진영과 방시혁, 회계 담당 직원 한명이 전부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JYP의 핵심 임원으로 출발한 셈이다. 방시혁이 JYP 2대 주주였던 적도 있었다. 이때 둘이 프로듀싱한 대표적인 그룹이 1세대 국민 아이돌로 불린 god였다.[16] 당시 어찌나 바빴던지 한 달만에 음반 1개 작업을 모두 마친 적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방시혁은 사회성도 없었고 성격도 원체 시크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쟤 원래 저래?"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본인 왈 신인 때부터 사람을 가려 사귀는 성격이었다고. 또 철학적인 얘기도 좋아해서 박진영이랑 작업할 당시 둘이 인간은 논리적으로 설득될 수 있는 존재인가? 친구라는 건 뭘까?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등 철학 논쟁을 새벽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토론 와중에 서로의 사고를 조금씩 수용하며 대중적 예술은 천박하다 따위의 편협한 사고를 고쳐나갔다고 한다.
음악적으로는 주류 음악계에 활동하면서도 트렌드에서는 살짝 비켜가는 신선한 작곡을 했고, 당시 한국 가요와는 좀 다른 서구권 느낌이 나는 작곡으로 팬들과 평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몇 번의 실험적인 곡들이 히트에 실패한 이후로는 상업적인 히트를 목표로 작곡하는 경향이 짙어져 초기 활동 시절에 비해 비평적 평가는 떨어지고 있다.
2005년 2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법인상 現 HYBE)[17]를 설립했다.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JYP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회사에서 작곡 및 프로듀싱을 맡았다. SM엔터테인먼트의 보이그룹 블랙비트의 '날개'를 프로듀싱한 경력도 있다. 이때 필명은 현재도 앨범 크레딧에 사용하는 "hitman" bang이었다. 빅히트로 독립한 이후 JYP엔터테인먼트의 보컬그룹이였던 2AM의 매니지먼트를 2014년까지 전담했다.[18]
2009년에는 엠넷에서 런칭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의 본선에서 메인 작곡가 및 프로듀서를 맡아 첫 생방 미션곡들의 편곡을 담당했다. TOP6 작사미션에서는 작곡 파트너인 Pdogg이 당시 신인 작곡가로서 참여하기도 했으며, 결승전에서는 TOP2인 서인국과 조문근에게 미션곡이자 데뷔곡인 ‘부른다’를 작사, 작곡했다.
2010년에는 MBC에서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심사위원' 역을 담당했었다. 사진1, 사진2 사실 방시혁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 첫 프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음악 심사에선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 [19] 이중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얻게 되는데, 예를 들어 "싱어송라이터는 노래뿐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캐릭터가 된다. 미안하지만 외양에 좀 더 신경을 쓸 생각은 없나?"라든가, 3화에서 스스로를 힙합 프로듀서 라 칭한 점 등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뭔가 독기 있던 눈빛이 유독 돋보여 더 부각된 점도 있다.[20]
그리고 이때부터도 상업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해서, 상업화된 노선하곤 거리를 두는 참가자에 대해 그 상업음악 하시는 분들보다 많이 못 한 실력이라며 진짜 본인의 음악을 알릴 거면 실력부터 키우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이후 멘토로서 담당하고 있던 후보들이 그의 프로듀싱을 통해 되레 호불호가 갈리는 심한 변화를 겪어 시청자 평이 나뉘기도 했는데, 요컨대 자신이 담당하는 가수들을 음반 산업에 필요한 상품화 특성을 갖추는 쪽으로 채찍질하고 성형하는 방향성을 가졌었다. 물론 호평하는 쪽에선 다소 직설적이어서 그렇지 날카로운 심사평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프로 자체가 발라더를 찾는 프로였다 보니 뭔가 약간 안맞는 옷을 입은 느낌도 있었다.[21] 한편, 멘토들이 끝까지 자기 멘티만 뺀 나머지 참가자들의 심사위원 역할을 했던 프로그램 포맷상 다른 멘토인 이은미랑 파벌, 동맹 논란이 터지기도 했다. 여담으로 멘토스쿨에서 아직 데뷔 전이던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이름이 나왔다.
2011년에는 동요계에도 진출해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요집'이라는 것을 펴냈다. 이때 조권이 '원숭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유치원에서 많이들 들었다고 하는 걸 보면 꽤 인기를 끈 모양.
2011년, 백지연의 인사이드피플에 출연하여 살아온 인생 등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여기서 인정하는 아이돌팀이 있느냐는 질문에 노래, 춤, 외모, 몸매 다 되는 동방신기, 소녀시대 두 팀을 언급했고[22], 당시 신인이던 미쓰에이도 무대 장악력이나 라이브 안정성이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그리고 2세대 걸그룹의 모델을 제시한 원더걸스에 대해서도 창의적인 역량이 뛰어나며 K-POP가 비아시권에서도 뻗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또한 당시 나는 가수다의 흥행으로 아이돌 가수에 대해 나가수 팬덤을 위시한 일부 대중들의 비하가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 평소 지론과 마찬가지로 "한국 아이돌은 외모도 갖추면서 노래와 춤도 모두 잘해야 하는 그야말로 극한직업인데 정작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비난만 한다."는 식으로 나름의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2011년 4월 27일, 위의 발언의 연장선에서 서울대 ‘언론정보문화 포럼시리즈' 강의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등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범람에 대해 "대중들의 귀가 높아지며, 소위 '듣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그런 기류에 맞춰 아이돌계에서도 노래, 춤, 연주, 작사, 작곡에 능한 뮤지션돌, 즉 완전체 아이돌이 등장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기사) 당시에는 아이돌이 가수보단 외모만 믿고 활동하는 엔터테이너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인지 다 잘하면 아이돌이 아니라 다 잘하는 싱어송라이터 아니냐는 비웃음 섞인 반응도 있었으나[23], 애초에 방시혁은 발라드로 글로벌 시장은 한계가 있고[24] K-POP 한류에서는 댄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실제로 훗날 그가 제작한 방탄소년단이 아시아권을 넘어 서구권에서도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는 세계적 아티스트가 된 이후부턴 방시혁의 이런 소신 발언들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HYBE 사옥에서 CNN과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어는 리차드 퀘스트(Richard Quest).[25] 여기서 케이팝 시장이 지적받는 문제점과 앞으로 나가야 할 비전 등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얘기하면서, 현재의 K팝은 그 핫함에 비해서는 실제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때문에 여러 레이블과 매니지먼트 컴퍼니를 인수해 인프라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영상.
3. 경력
3.1. 수상 경력
방시혁의 수상 이력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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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2019 {{{#white Billboard}}} Music's New Power Generation: 25 Top Innovators}}}[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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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 제6회 유재하 가요제 동상[28]
- 2009 제1회 melon music award song writer상
- 2010 제4회 Mnet 20's Choice 가장 영향력있는 스타 20인
- 2011 제1회 한국음악저작권대상 작품상
- 2011 제1회 한국음악저작권대상 발라드부문 작사가상, 작곡가상
- 2016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베스트 프로듀서상
- 2016 제8회 멜론뮤직어워드 song writer상
- 2016 Mnet Asian Music Award 베스트 프로듀서상
- 2017 제31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제작자상
- 2017 제6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 올해의 프로듀서상
- 2017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해외진출유공 부문 대통령 표창
- 2018 제27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제작자상
- 2018 제5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프런티어상
- 2019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베스트 제작자상
- 2020 제34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제작자상
- 2020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 아티스트 프로듀서 부문
3.2. 커리어
- 2005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설립
- 2006 mbc 대학가요제 심사위원
- 2018 Billboard International Power Players 선정
- 2018 Variety International Music Leader 선정
- 2019 Billboard Music’s New Power Generation: 25 Top Innovators 선정
- 2019 Billboard International Power Players 2년 연속 선정
- 2019 Variety International Music Leader 2년 연속 선정
- 2019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29]
- 2020 Billboard Power List에 선정
- 2020 I-LAND 프로듀서
3.3. 대표곡
- 김건모 - 하룻밤의 꿈
- 임창정 - 니가 날 버린 날
- god - '니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Friday Night', '하늘색 풍선', '니가 필요해', '사랑이 영원하다면', '왜', '장미의 전쟁', ‘True East Side’
- 박지윤 - '달빛의 노래', '난 사랑에 빠졌죠'[30], 'DJ'
- 별 - '왜 모르니'[31], '안부', '눈물샘'
- 박진영 - '창살없는 감옥'
- 바나나걸 - '엉덩이'[32], '부비부비', '쵸콜렛', '미쳐미쳐미쳐', '키스해죠'
- 파이브(F-iv) - 'I'm Sorry'
- 블랙비트 - '날개'
- 비 - '나쁜 남자', 'I Do'
- 한나 - 'Bounce', '유혹의 기술'
- 임정희 - '사랑아 가지마', '사랑에 미치면', '진짜일 리 없어', '헤어지러 가는 길', 'Golden Lady', '시계 태엽'
- 빅 마마 - 현대자동차 i30 광고 음악
- 제이 - '술과 순정'
- 8eight - '사랑을 잃고 난 노래하네', '심장이 없어', '잘가요 내 사랑', '울고 싶어 우는 사람이 있겠어', '이별이 온다'
- 배슬기 - '슬기 Say'
- 문지은 - '몰라 몰라', 'Hibiye Hibiyo'
- 백지영 - '총 맞은 것처럼', '입술을 주고', '내 귀에 캔디', '보통', 'Woo Ah’
- 소리 - '입술이 정말'
- 박기영 - '녹화된 테잎을 감듯이'
- 방탄소년단 - 'I NEED U', 'RUN', '불타오르네', '피 땀 눈물', '봄날', 'DNA', 'FAKE LOVE', 'IDOL',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 등
- HOMME By 'Hitman'Bang - '밥만 잘 먹더라'[33]
- 서인국 - '부른다'
- 슈프림팀 - '나만 모르게'
- 장혜진 - '한번만 울고 말자'
- 틴탑 - '향수 뿌리지마'
- 티아라 - '처음처럼'
- 소연(티아라) - '뭐라고 끝낼까'
- 양파 - '령혼'
- 여자친구 - Apple, MAGO 등.
- 다비치 - '시간아 멈춰라'
- 2AM - '죽어도 못 보내'[34], '잘못했어', '바보처럼', 'LOVE', '전활 받지 않는 너에게', '미친 듯이', '가까이 있어서 몰랐어'
- 조권 - 'I'm Da One (Feat. Zion.T)
- 이승기 - '사랑이 술을 가르쳐', '친구잖아'
- 간미연 - '파파라치', '미쳐가', '옛날 여자'
- 엄정화 - 'Come 2 Me'
- GLAM - 'Party (XXO)', 'I Like That', '거울 앞에서'
- See U[35] - 'Love Story'
- 홈플러스 CM송
- 세븐틴 - Ready to love
- 프로미스나인 - Bring It On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0X1=LOVESONG, Good Boy Gone Bad 등.
- ENHYPEN - Given-Taken, Tamed-Dashed, Future Perfect 등.
- LE SSERAFIM - FEARLESS, ANTIFRAGILE, Perfect Night, EASY 등.
- &TEAM - バズ恋 (BUZZ LOVE) 등.
3.4. CF
- 2011년 미투데이 '나, 오늘, 지금' 캠페인
4.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는 아티스트
4.1. 총괄 프로듀서
방시혁 총괄 프로듀싱 아티스트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rowcolor=#fff,#000> 데뷔 연도 | 아티스트 | 비고 |
2013년 | 방탄소년단 | 빅히트 뮤직, 보이그룹 | |
2019년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빅히트 뮤직, 보이그룹 | |
2020년 | ENHYPEN | 빌리프랩, 보이그룹, 서바이벌 I LAND로 데뷔 | |
2022년 | LE SSERAFIM | 쏘스뮤직, 걸그룹 | |
&TEAM | HYBE LABELS JAPAN, 일본 현지화 보이그룹, 서바이벌 &AUDITION-The Howling으로 데뷔 | ||
2024년 | ILLIT | 빌리프랩, 걸그룹, 서바이벌 알유넥스트로 데뷔 | |
KATSEYE | 하이브 유니버설, 미국 현지화 걸그룹, 서바이벌 The Debut: Dream Academy로 데뷔 |
방시혁이 총괄 프로듀싱하는 대부분의 곡 정보(Credit)에는 작사 또는 작곡 한 쪽에만 참여해도 작사, 작곡에 똑같이 이름을 올린다. 그 이유는 저작권료를 나눌 때 지분이 작사 50%, 작곡 50%인데 보통 작사나 작곡의 공동 작업자 수가 달라서 사람 수가 적은 쪽이 돈을 더 많이 가져간다.[36] 그래서 참여한 작사, 작곡진을 전부 한꺼번에 같이 올려서 한 곡 당 기여한 비중대로 저작권료를 배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있고 해외에서도 팀으로 작업하는 경우 'songwriter'로 묶어서 곡 정보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공통적으로 매년 1년간 '아티스트 실록'이라 불릴 정도로 방대한 양의 비하인드 영상 기록들을 가득 담은 DVD와 포토북이 포함된 메모리즈를 판매하며, 매년 데뷔일 기념으로 약 1~2주 동안 미공개 사진 및 영상을 공개하는 콘텐츠 대잔치 축제기간이 있고, 웹툰 및 소설 세계관이 존재한다.
참고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는 과거에 8eight, 2AM,
4.2. 기타
5. 논란 및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방시혁/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 2022년 4월 28일, 경영학 정식 교육과정을 이수한 적은 없지만 HYBE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대한민국 문화 예술 산업을 확장하고, 혁신하는데 기여한 점을 고려하여 서울대에서 경영학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 본인과 연이 없던 음악산업계에 젊은 시절 투신해 성공한 점만 놓고 보면 자수성가한 셈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집안 내력도 좋다. 상기되어 있듯 부모 모두 명문대 출신에 부친인 방극윤은 노동 분야 고위 공무원 출신이고, 외가 쪽도 어머니 형제가 7남매인데 그중 5명이 서울대 출신일 만큼 공부 머리는 타고나서, 소위 '신흥 재벌' 중 방시혁만큼의 집안을 가진 사람도 드물 정도다.
- 넷마블 방준혁 의장과 방시혁 의장은 먼 친척 관계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촌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사촌 관계는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넷마블은 HYBE의 2대 주주이며,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24년 방시혁 의장이 대기업 집단 총수로 지정되면서, 방준혁 의장과 함께 친척 사이에서 각각 자수성가로 대기업 총수가 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38]
- 2003년경 미국에서 박진영과 팝가수들의 곡 작업을 하던 당시[39] 같이 살던 방시혁이 세탁을 담당했는데, 박진영이 세탁할 양말을 안 뒤집고 내놓아서 이에 욱한 방시혁이 박진영과 싸운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내면은 당시 잘 진행되지 않던 일에 스트레스가 쌓이던 중 이런 사소한 일이 기폭제가 된거였지만, 하여튼 방시혁은 다음날 미안하다며 한국으로 떠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40] 이 사건 이후 박진영은 양말을 꼭 뒤집는다고. # 그러나 크게 사이가 틀어지진 않은 듯. 지금도 JYP와는 사적으로도 회사 차원으로도 긴밀히 교류하고 있다. # #
- 2010년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 프로듀서로 출연했을 때 "세상에 어떤 가수가 노래 부를 때 발로 리듬을 타?"라며 참가 연습생을 면박 준 일이 있었는데, 이후 임창정, 김범수, 윤민수, 이승환, 이수 등 내로라하는 발라드 가수들이 발로 리듬을 타며 노래한 영상들이 발굴되어 네티즌에게 조롱당하기도 했다. #
- 2011년 인터뷰에서 K-POP에 올인할 생각이고 궁극적으로는 SM, YG, JYP를 넘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한 적 있다. 또한 발라드로 글로벌 시장은 어렵고 K-POP 한류에서는 댄스가 중요하다고 말해, 이러한 생각들을 방탄소년단 기획에도 반영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K-POP 시장에 있어서 당시에 남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여자는 소녀시대, 원더걸스를 넘을 정도로 준비해서 팀을 데뷔시키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후 데뷔한 두 팀이 GLAM과 방탄소년단.
- 2011년 4월 14일, 블랙 데이에 가수 임정희를 비롯한 빅히트 직원들과 중화요리 집을 찾아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미투데이 계정에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현재 빅히트의 글로벌 CEO인 윤석준과 2011년 초 빅히트에 입사해 영상팀에서 활동하다가 쏘스뮤직으로 이적해 여자친구 관련 영상 업무를 담당했던 이순민 팀장의 모습이 담겨 있다.
- 여자친구의 소속사인 쏘스뮤직과 합작으로 3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에 그룹 GLAM을 데뷔시켰다. 빅히트가 프로듀싱을 맡고 쏘스뮤직이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그룹이었으나, 2014년 벌어진 한 멤버의 범죄로 인해 결국 2015년 1월 중순에 해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성진 대표와의 두터운 친분 덕인지 방시혁은 여자친구를 응원하는 SNS를 여러 번 게시했고 빅히트 인력들이 여자친구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결국 2019년 7월 28일 여자친구의 소속사 쏘스뮤직을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아졌고, 편입 후 나온 미니 8집에서 수록곡의 작사가로 참여했다. 해당 곡은 음악방송 3주차에 후속곡으로 활동했다. 이후 5달 뒤에 나온 미니 9집부터는 타이틀곡 작곡가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 과거에 연습생을 뽑는 Hit It Audition 영상에서 랩을 선보였지만, 사람들이 오글거린다며 "오글랩"이라고 부른다.(2011) 지금까지도 오글랩은 재밌어서 인기가 많으며 방시혁도 "오글랩"이라고 자칭한다. 그 이후에 한 차례 더 했다.(2015) 영상.
- 신나라판 2000 대한민국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2000 Luv', '형 미안해' 두 곡의 작곡 및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이 중 2000 Luv에서는 "Hitman" Bang 명의로 김진표와 함께 직접 랩을 선보이고 있다. 이 곡은 2004년 김진표의 베스트 앨범에도 수록됐으며 이 때는 조원선과 The Hitman 'Bang' 피처링으로 표기되었다.
- 래퍼 빈지노가 더 콰이엇의 2015년 발매곡 '할렐루야'의 가사 중 "언더 시절 어떤 프로듀서가 내게 그런 말 했네, 그와 함께하면 어떤 일을 해도 모두 다 된대, 마지막이 Punch Line, 날더러 턱 좀 깎고 하면 되겠대, I don't need ur bullet proof, 그렇게 나는 그의 소년이 되기를 거부했고"에 대해 힙합플레이야 라디오의 '황치와 넉치' 제 21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빈지노는 방시혁과 음악적으로 접근하려고 했지만 방시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빈지노는 그게 기분 나빴다고 한다. 방시혁은 지금은 꽤 알려져있다시피 2000년대 후반쯤 방탄소년단을 만들 구상을 할땐 원래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정통 힙합 그룹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이 시절 언더그라운드에서 잘나가던 루키였던 아이언, 베이식에게도 합류 제의를 했었다는 사실은 힙합 커뮤니티에서도 꽤 유명하다. 이 시기 자료들을 보면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이 2010년 전후로 이미 쓰이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가 여러 이유로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지금의 힙합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나오게 되었다.
- 2009년 KBO 한국시리즈 종료 직후, 8eight의 이현이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KIA 타이거즈가 우승을 했다'고 말하자 "그러면 나지완이 VIP 되는 거야?"라고 질문했다.
- 프로야구 응원가를 직접 작곡한 적도 있다. 2007년 SK 와이번스가 스포테인먼트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로 새 응원가를 제작하기로 하고 작곡을 방시혁에게 맡겼다. 그 결과 나온 곡이 불꽃투혼 SK라는 곡이다. 응원가 듣기. 응원가 뮤직비디오도 있다. 레이지본이 이 노래를 불렀고 당시 와이번스걸로 활동했던 이현지도 함께 불렀다. 이 노래는 현재까지도 SK 와이번스 홈구장인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꾸준히 재생되고 있으며, SK 야구단 대표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이 노래가 나온다. 아울러 경기장은 물론 문학경기장역에서 야구장까지 이르는 길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나오고 있다.
-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해 일체의 리메이크를 용인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임재범의 리메이크 요청도 거부한 것으로 나름 유명하다.[41] 본인의 소신으로 보인다. 참고로 방시혁만 이러는 것은 아니고 리메이크를 용인하지 않는 아티스트가 여럿 있다.[42][43]
- 빅히트 시절엔 꽤나 엄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티스트에 대한 자율성과 별개로, 녹음 작업 땐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노래 가사를 틀리는 등 산만한 모습을 보이면 욕설 섞인 질책까지 하며 엄하게 대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하이브 의장이 된 지금은 애초에 프로듀싱보다 경영에 더 전념하고 있기도 하고 인터뷰를 봐도 과거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진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와 별개로 방탄소년단과 방시혁이 서로 다정히 사진을 찍거나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방시혁을 친근하게 대하는[44] 영상을 많이 볼 수 있는 걸 보면 마냥 아이들을 엄하게만 대하는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또 의외로 섬세한 면이 있어서 자기 전엔 꼭 순정만화를 본다거나 로맨스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기도 한다고 한다. # 특이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 그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어느 순간부턴 방탄소년단 뿐만 아니라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마도 경영자가 되면서 어법 자체를 바꾼 것이거나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연예인들에게는 존중의 의미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듯 하다.
- 2010년대 후반 이후 고도비만이 되어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 부친도 애가 어릴 적부터 방구석에서 책만 하루종일 읽어서 일부러 밖에서 활동 좀 하라고 기타를 사줬다고 할 정도라, 뭔가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경영 스트레스 등으로 몸집도 불어난 것 같아 관리가 필요해보인다. 2021년 11월에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한 사실이 알려졌다. # 그래도 이후부턴 어느 정도 다시 관리를 해서 상대적으로 슬림해진 편이다.
- G-DRAGON에 대해 "마치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처럼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45] 당시에는 아무리 비유라고 해도 G-DRAGON이나 방시혁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같은 거장들과 언급되기에는 현대 음악계에서의 위치가 한참 모자란데 자신감이 너무 높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다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비유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여러 많은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에 대한 질투심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말처럼 방시혁은 본인들과 거장들을 비교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만을 놓고 비유한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도 비유일 뿐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비유가 너무 오글거린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지금 와서 보면 별로 이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 발언 당시와 현재의 그들의 위상 차이를 생각해보면 왜 저런 반응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46]
- 방시혁은 차세대 K-POP 아티스트의 조건으로 팀에 대해 얼마나 공헌하는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책임지는가, 미래 가능성이 보이는가를 꼽았고, 춤과 노래를 하면서도 개인의 매력까지 잘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것을 개인의 노력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무대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
- 빌리프랩의 보이그룹을 선발하는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I-LAND의 총괄 프로듀서로 출연했었던 방시혁 대표는 최종회에서 마지막에 탈락한 케이와 다니엘 2명에게 "데뷔의 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추구한다면 분명히 이룰 수 있으며, 반드시 조력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HYBE LABELS 중에 케이는 HYBE LABELS JAPAN으로 가서 &TEAM으로 데뷔했고, 다니엘은 비슷하게 플레디스에 가서 차기 보이그룹 데뷔조 연습생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원래 방시혁 대표는 공연(Concert) 시장을 노리기 위해 초창기 방탄소년단의 주요 타겟을 중국 시장으로 봤었다. 2013년 당시만 해도 브라질은 비행기 값도 안 나올 것 같고 일본 시장은 이미 디폴트라고 봤기 때문이다. 일본에 이어 중국 시장도 개척하는 SM을 보면서 '역시 SM이다!'라며 막 박수까지 쳤다고 한다. 2013년 인터뷰. 하지만 3년 뒤 한한령이 터져버렸고 그와 동시에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200 및 빌보드 소셜차트에서 급부상하더니 미국으로 강제진출하게 된다. 물론 2014년 LA KCON 참여를 비롯하여 미국에서 소규모 공연을 한 적은 있지만 주요 타겟으로 삼지는 않았었다. 애초에 K팝이 서구권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한게 방탄소년단이 서구권에서 뜬 2017년 이후부터였으니, 사실 방시혁도 이런 대성공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 2017년에 "K-POP 가수 모두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 프로듀서나 미국 회사와 계약해 미국 가수가 되자는 것은 K-POP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47] 그런데 Dynamite는 영어로만 이루어진 곡이고, 작곡가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작사가 제시카 아곰바르는 영국인이다.
- 방탄소년단 리더 RM 또한 2019년 기자회견에서 '100% 영어로만 노래를 부른다면 그건 방탄소년단이 아니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영어 노래를 냈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시에 그건 진짜 제 진심이었어요. 지금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는 걸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바이러스도 그렇고 팬데믹 상황도 그렇죠. 이런 상황 때문에 저희가 더 이상 콘서트나 무대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많은 부분이 바뀌다 보니 저희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바뀐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제 저희도 'Dynamite' 이름처럼 미친듯이 한 번 해보는 거예요. 'Dynamite' 데모를 처음 들었을 때 저도 사실 곡 제목이나 가사를 한국어로 바꿔서 만들려고 했었어요. 랩 파트부터 작사를 해 봤는데 과정이 순탄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뭐, 좋아. 그냥 이대로(영어 가사로) 가면 안 돼?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해서 이 곡을 냈어요. 2020년이잖아요. 좀 미친 짓 같지만 괜찮지 않나요. 전 항상 깊은 생각과 힘든 걱정, 혼돈 같은 감정을 가사에 담아내는데 그걸 영어로 쓸지 아님 한국어로 쓸지 고민해요. 'I'm hungry'라는 말도 한국말로 하면 '배고파'인데 소리와 파동이 전혀 다르죠. 전 언어가 각자 가진 질감이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래도 마찬가지로 어떤 언어로 쓰냐에 따라 멜로디에 어울리는 소리와 질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번역
- 원래 방탄소년단은 2020년 초에 MAP OF THE SOUL : 7 앨범만 내고 이후 연말까지 콘서트만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으면 'Dynamite'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즉,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모든 상황이 바뀐 것이다.
- 2020년에 발표한 영어곡 'Dynamite'로 그래미 어워드에 첫 노미네이트 되었는데 2021년에도 영어곡 'Butter'를 내면서 그래미 수상에 다시 도전한다고 밝혔다. #
- 2023년 방시혁은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K팝이 그 핫함에 비해 전세계 음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방탄소년단을 빼고 나면 생각보다 낮다"면서 "K팝이 진짜 글로벌화되려면 'K가 빠질 각오'도 해야 된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더 이상은 딱히 언어 문제로 크게 집착하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하이브 소속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LE SSERAFIM 등이 이미 영어 음원을 발표한 바 있고, 정국도 7월 솔로곡 Seven을 영어곡으로 발표했다.
- 포브스에서 발표한 2021년 한국의 50대 부자 목록에 27억 달러의 재산으로 16위에 랭크된 인물이기도 하다. 역대 한국 연예계 종사자 중에 수 조원 단위의 재산을 소유한 억만장자는 그가 유일하다. 2024년 한국 재벌 총수 주식 재산 순위에서 6위로 파악되었다.#
- 한때 엔터사업이 잘 안 되면 에그타르트집이나 차릴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차린 HYBE의 용산 신사옥에 베이커리 사업부 Bang & Baker's를 만들고 거기서 만든 에그타르트까지 호평을 받아서 사내에 입점시켜서 결국 엔터사업과 에그타르트 둘 다 성공했다.
- 202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욕실만 9개인 350억원에 달하는 대저택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 집이었는데 샀다고 한다. 저택 사진 기사. 하이브의 미국 시장 확장을 위해 미국 체류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택도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 2024년 4월, 방시혁과 민희진과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방시혁이 음악 산업의 부조리함을 꼬집은 5년 전 서울대 축사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
[1] 방시혁이 예전 JYP 프로듀서일 때 당시 박진영이 지어준 이름이다. #[2] 기사[3] 기사[4] 창평공파(昌平公派) 29대손 ◯혁(○爀) 항렬이다.[5] 전주 최씨.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출신. 남동생은 최규식 전 국회의원.[6] 이화여자대학교 작곡과 출신.[7] 유태웅, 김성민과 고교 동기생이다. 강원래, 주영훈의 중학교-고등학교 직속 후배다.[8]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김지하, 진중권, 변희재 등과 동문이며, 인문대 차석으로 졸업했다. 당시 졸업식에 축하하러 갔던 박진영이 밝힌 바로는 방시혁은 본인과 같이 작업을 하느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차석을 받은 것을 보고 언제 공부를 했느냐고 물어봤는데 방시혁이 '공부 안 했어'라고 대답하자 엄청 꼴보기 싫었다고 한다. #[9] 한국인으로는 13번째로 서울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10] 전시근로역이나 병역면제로 추정된다. 1991년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 연예계 데뷔 이후 대학교 졸업 및 연예계 커리어가 공백 기간 없이 촘촘히 이어진다. 또는 병역 특례일 수도 있다.[11] 2018년 9월 9일 이후 트윗이 업데이트되지 않는다.[12] 부친 인터뷰.[13] 심지어 밤새 공부하는 게 쿨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시험 전에 쓱 흝어보고 만점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집안 분위기가 분위기라 공부를 아예 안 하진 않은 듯. 공부보단 오히려 프로 음악계 입문 이후 박진영, 신승훈, 김건모, 김형석 같은 당대 천재 싱어송라이터, 작곡가들을 보며 절망감을 맛봤다고 한다. 그래서 이땐 진짜 미친듯이 노력했다고.[14] 한국에 '신인개발팀'이라는 게 처음 생길 때부터 참여했으며, JYP에 있을 때 A&R, 매니지먼트 등 시스템적인 노하우를 많이 접했다고 한다. 2013년 인터뷰.[15] 2016년 AAA 시상식 프로듀싱상 수상소감 참고. 또 이후 2023년 예능 유퀴즈에 둘이 함께 출연해 말한 바에 따르면 이때 본인이 박진영 곡을 대신 써준다는 고스트라이터 루머가 있기도 했는데, 당시만 해도 본인은 작곡 능력이 딸려 1곡 다 완성시키기도 버거워했던 터에 오히려 박진영이 본인을 도와주고 그냥 니가 다 쓴걸로 하라고 할 정도였다고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필명인 'hitman bang'이란 표현도 박진영이 밝히길, 방시혁의 성이 Bang이었기에 미국 활동 당시 소개할 때 그냥 Bang이라고만 소개하기 뭐해서 Bang과 의미가 통하는 hitman을 붙인 거라 한다. 즉, 고스트라이터랑은 무관하고 단순히 히트곡을 많이 냈다는 의미일 뿐이다.[16] 여담으로 god 4집 Chapter 4의 수록곡 '모르죠'가 당시 방시혁이 겪은 사랑 이야기였다고 한다.[17] 실질적으로는 빅히트 뮤직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후신이다.[18] 2AM을 처음 매니지먼트 했던 회사는 2008년까지 JYP엔터테인먼트 사장을 역임했다가 독립했던 홍승성의 큐브엔터테인먼트였다. 하지만, JYP와 큐브의 사이가 어느 순간 나빠지게 되었고 2AM의 매니지먼트는 빅히트로 넘어가게 되었다.[19] K팝스타는 위대한 탄생 이후에 방영했다.[20] 훗날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방시혁은 딱히 야망은 없었지만 불만은 많던 사람이던 자신을 설명하면서, 이 당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참가자들을 보며 분노하던 본인피셜 비호감이던 자신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그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며 지금은 그렇게 분노하진 않지만, 여전히 자신의 상식에 맞지 않거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선 불만을 가지고 이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21] 물론 방시혁도 싱어송라이터나 발라더들을 키운 적은 있다. 진주, 케이윌, 임정희, 에이트 등이 대표적.[22] 사족으로 방탄소년단은 신인 시절 빅뱅을 롤모델로 언급한 바 있다. 방시혁 본인도 후술되어있듯 빅뱅 리더 GD의 작곡, 프로듀싱 능력을 극찬했다.[23] 물론 이건 오늘날도 비슷한 시선은 있다. 다만 연예인의 실력에 따라 나뉘는 것 뿐이다. 사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긴 하지만.[24] 물론 장르적으로 비댄스 분야도 기회는 있지만, 트렌드 자체가 완전 발라드보단 힙합이나 알앤비 쪽으로 많이 넘어온 상태기도 하다.[25] CNN의 경제 전문 기자로, CNN에서 오랫동안 경제 전문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경제 전문가이다.[26] 출처[27] 출처[28] 앨범이 희귀한데다 방시혁의 데뷔작이라는 이유로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29] 그래미 어워드 투표권을 갖게 되었으며 2020년 그래미 어워드부터 수상자를 결정할 투표권 행사가 가능해졌다.[30] 이후 배슬기가 리메이크해서 디지털 싱글로 발표.[31] 원곡은 2000년에 데뷔한 걸그룹 티니의 'One Fine Day'.[32] 이후 김수찬이 리메이크 했다. 특히 보통의 리메이크와는 다르게 원곡자인 방시혁이 직접 프로듀싱을 해주었다고 한다.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2004년에도 스칼렛이라는 신인 걸그룹이 리메이크 하기도 했었다.[33] 가온 차트 기준 2010년 8월 월간차트 1위.[34] 가온 차트 기준 2010년 1월 월간차트 1위.[35]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빛과 소금, 푸른 하늘, 한동준, 박학기 등 음악성 있는 많은 가수들과 함께 했던 기획사인 동아기획에서 최초로 내놓은 여성 아이돌그룹이었다. SeeU와는 다르다.[36] 해외에서 받은 곡은 저작권료를 그 나라에서 한 번 떼고 와서 비율이 약간 다르다.[37] 후기(코스모스) 졸업이기에, 졸업 인원이 적었다. 참고로 1997년 2월의 전기 졸업식에서 인문대학 졸업생은 284명이었다.[38] ‘친척관계’ 방준혁·시혁 총수 대열에...“회사 일궈 리스트서 만난 첫 사례”[39] 박진영은 미국 진출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회사에선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회사 돈은 못주니 굳이 하고 싶으면 설립자라도 개인 돈으로 하라고 했고, 그렇게 1년간 개인 돈 쏟아부어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면 회사 돈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허나 이때 박진영은 본인 저작권료까지 죄다 회사에 주던 시절이라 결국 둘은 미국의 아는 신혼부부 집에 비싼 시계를 하나 선물해주고 기어들어가 비좁은 방 한칸에 두명이 지냈다고 한다. 음악장비들은 차고에 겨우 세팅했다고.[40] 다만 그 직후 바로 귀국한 것은 아니고, 박진영이 좀 더 미국 시장을 파보겠다고 하자 추가적으로 곡 만드는 작업을 한참 진행해 놓고 나서 귀국했다.[41] 해당 곡은 백지영이 부른 내 귀에 캔디.[42] SM의 유영진도 본인 소속사 가수를 제외하고는 리메이크를 허용하지 않으며, 천재노창 역시 자신이 만든 트랙을 inst로 푸는 것을 싫어한다고 알려졌다. 천재노창의 경우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비트 위에 랩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수준 낮은 랩이 올라가는 것 자체가 싫다고 한다. 김동률, 양희은 등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가사가 위주인 싱어송라이터 몇몇 역시 리메이크를 꺼리는 편.[43] 그래도 박용택의 은퇴식 한정으로 박용택의 전설의 응원가를 하루 허용해주기는 했다.[44] 특히 진은 어느 순간부턴 대놓고 형이라고 한다. 근데 재미있는 건 반말하던 방시혁도 어느순간부턴 멤버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다. 방탄소년단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같이 늙어가고 있는 중인지라 존중의 의미도 담아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45] G-DRAGON의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고 너무 잘하기 때문에 질투가 난다는 표현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46] GD는 당시에도 국내 톱 아이돌이고 한류스타이기는 했지만 지금만큼의 위상은 아니었다. 그 사이 국내 1티어에서 세계 1티어 문화 거물이 된 방시혁은 말할 것도 없다.[47] 이 발언은 "미국 프로듀서에게 받은 노래를 영어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미 K-POP이 아니다"라고 왜곡되기도 했다. #[48] 이슬람교의 대표 성지 메카와 붙어있는 그 제다 맞다.[49] 해당 곡은 방시혁이 2008년 프로듀싱했던 바나나걸 4집 수록곡 '꽃'과 동일하다.[50] 한때 초록창에서 방시혁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찰지구나'가 뜰 정도였다.[51] god 4집 Chapter 4의 수록곡 '모르죠'도 방시혁 사랑 얘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