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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183c><colcolor=#fff> 백지연 白智娟 | Baik Ji Yeon | |
출생 | 1964년 8월 5일 ([age(1964-08-05)]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4cm, 55kg, 255mm, AB형 |
가족 | 4녀 중 막내, 외아들 강인찬(1996년생), 며느리 정지수(1995년생) |
학력 | 서울인왕초등학교 (졸업) 풍문여자중학교 (졸업) 명지여자고등학교[1] (졸업)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심리학 83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 / 석사[2]) |
데뷔 | 1987년 MBC 공채 아나운서 |
경력 | 역대 최연소, 최장수 뉴스데스크 앵커 |
종교 | 개신교(예장통합)[3] |
링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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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2. 상세
1987년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재학 중 문화방송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하여 입사하였고, 1988년 5월 9일을 기점으로 사상 첫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가 된다.[4] 재학 중 입사했는데 입사하자마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된 것이니 최연소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인 셈이다. 이후 파업이나 1년간의 유학을 제외하고 1996년 8월 9일까지 뉴스데스크를 진행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최장수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리하면 그녀는 최초[5], 최연소[6], 최장수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이다.[7][8]MBC 뉴스데스크 진행 시절(왼쪽의 남자 앵커는 강성구) |
아나운서 시절 사진 |
원래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뉴스 앵커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져 회사 차원에서 그녀를 기자 신분으로 전환하길 원했고[9], 그래서 직종 변경 시험을 통해 1990년 MBC 국제부 기자가 되어 뉴스 앵커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10] 1992년 10월 2일 MBC 노조의 50일 파업에 동참하며 뉴스데스크에서 하차됐고, 1993년 4월 12일 다시 복귀했다. 1994년 9월 16일 영국 유학으로 하차했고, 1995년 10월 2일 뉴스데스크로 복귀했다. 이후 아들을 임신하였고, 1996년 8월 9일 뉴스데스크에서 만삭의 몸으로 하차했다. 그나마 입덧이 없었기에 마지막까지 진행이 가능했다는 후문. 1994년 9월 16일이었는지 1996년 8월 9일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승승장구에서 마지막 방송 후 느낌에 대해 털어놓았다. 끝까지 밝게 인사하자 "안 울어?"라는 주변 스태프의 질문이 있었고, 이후 송별회까지 울지 않았으나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고.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거의 모든 것을 뉴스데스크에 바친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울었다고 한다. 여성들의 출산 후 경력단절이 현재보다 더 심했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게 지금보다도 박했던 1990년대였기에 출산 직전의 만삭 상태에서도 끝까지 참고 방송을 진행한 것이며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한 후 방송계에 복직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러움이 폭발해서 그런 것도 있다.
출산 후 복직하여 주로 아침 시간대 뉴스를 진행하다가, 1999년 3월 MBC를 퇴사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명예퇴직 광풍 속에서도 MBC 측에서 극구 만류했는데, 훗날 이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살아보고 싶었다"며 짧게나마 퇴사 이유를 밝혔다. 이후 각종 CF를 촬영하였고,
2001년에는 KBS2의 시사터치 코미디파일의 MC로 출연한 적도 있다.
2004년 YTN에서 프리랜서 앵커 자격으로 '백지연의 뉴스Q'를 진행하였다. (지금은 YTN 소속 앵커가 '뉴스Q'를 진행하고 있다.) 이후 2007년 SBS 라디오 '백지연의 SBS 전망대[11]'를 진행했고, (이 역시 지금은 SBS 소속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있다.) 2008년부터 tvN 끝장토론, 2009년부터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등을 진행하다 2013년에 모두 종영하였다.
한편, 저술 활동도 병행했는데, 주로 자기 경험을 소재로 한 자기계발서를 집필하였다. 'MBC 뉴스 백지연입니다', '앵커는 닻[12]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 '자기설득파워', '나이스 포스', '뜨거운 침묵', '크리티컬 매스',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등이 있다. 트위터에 많이 남겨 호응을 받았던 인생 관련 구절들도 한데 모아 사진과 함께 '나, 너'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문학 활동도 시도했는데, 소설 '물구나무'를 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커뮤니케이션 교육가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기업체가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 나가는지에 대해 전문적으로 봐 주는 일을 한다고. 자기만의 기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CJ E&M에서 활동하면서 그때 나온 것이 끝장토론과 피플인사이드다.
2015년에는 MBC 입사 동기인 안판석 감독의 제안으로,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지영라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약올리는 재벌 사모님 역할이었는데, 어울린다는 평이 많았다. 또 MBC에서 파일럿 예능으로 '빅 프렌드'를 진행하였다.
MBC에 있을 당시 여성 아나운서 중 최장신이었다고 한다.
2017년 이후로는 아예 방송계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사실상 방송계를 은퇴했다. 다만, SNS 활동은 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생기면서 꾸준히 글을 올리는 중이다.
3. 아들의 친자여부에 관한 유언비어 사건
1999년, 백지연이 전 남편과 합의이혼한 시기에 PC통신을 시작으로 '아들이 남편의 친아들이 아니라 불륜으로 인해 얻은 자식'이라는 괴소문이 떠돌았다. 이에 친자검사를 의뢰하였고, 백지연의 아들은 전 남편의 친아들이 맞다고 인증되었다.이런 어이없는 소문을 퍼트린 장본인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주통일신문>이라는 극우 성향의 한인대상 언론을 운영하는 배부전(a.k.a. 사이먼 배)이었다고 한다.[13] 배부전이 해명하기를, 자신은 "버스 안의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유명인들을 취재한 결과, 백지연의 아들이 배다른 아들이 맞다는 걸 확신했다"라고 한다. 즉 카더라 통신을 기정사실인 양 가짜뉴스처럼 만들었다는 것. 당시 배부전은 PC통신 하이텔의 공개 정치포럼인 큰마을에서 임욱과 더불어 극우 성향 어그로로 악명높던 인물이었다. MBC 보도
결국 백지연은 배부전을 고소하였고, 법원은 배부전에게 명예훼손혐의로 1년형을 선고하였다. 중앙일보 참고로 지금도 배부전은 '극우 활동'이라며 헛소리를 시전하고 있는데, 바로 그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에서도 언급되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4. 여담
이렇게 외친 사람은 당시 25살의 소창영 씨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소 씨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내귀에 도청장치 문서 참조. 2010년 뉴스데스크 40주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강성구 앵커 멘트 다음으로 저였어요. 그런데 정말 낯선 남자죠. 낯선지 몰랐죠. 속보가 계속 들어오니깐 넘지 않은 선을 넘은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다 했는데 너무 벌어진 일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죠." 라며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기도 했다.
5. 범 현대家(가) 사돈이 되는 그녀
2023년 5월 9일 한 언론 단독 기사에 따르면, 그녀의 외아들 강인찬 씨[15]가 정몽원 HL그룹 회장[16]의 차녀 정지수 씨[17]와 오는 6월 2일(2023년) 화촉을 밝힌다고 단독 기사를 보냈다.[18]두 사람은 2년 전쯤 만나 교제해왔고, 지난해 말 양가 상견례 후 결혼 날짜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외아들 강인찬씨도 미국 유수의 디자인 대학을 최근 졸업한 후,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혔다.
단독 기사참조.
관련기사
여담으로 백지연은 예비 며느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 아들을 키우며 기도를 할 때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그 아이(며느리)도 축복해 주세요'라고 함께 기도했는데 '내가 평생 기도했던 네가 그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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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명지고등학교[2] 석사 학위 논문 : 텔레비전 뉴스 제작과정에 관한 참여과찰 연구 : MBC 9시 뉴스의 사례를 중심으로 (2019)[3] # 온누리교회 집사이다.[4]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에도 정민경, 최경미 아나운서가 뉴스데스크 보조앵커를 맡은적이 있지만 프로그램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5] 고정앵커로서는 최초이지만, 70년대~80년대 초 여성 아나운서들이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적이 있다.[6] 뉴스 고정앵커로 활동을 시작할 당시(1988년 5월 9일)의 나이는 겨우 23세였다.[7] 아침뉴스까지 포함하면 10년이상 진행하였다.[8] 주말을 포함한 전체 남녀 앵커 랭킹은 엄기영(13년 3개월), 이득렬(12년 6개월)에 이어 3위.[9] 앵커로서 역할이 커지면서, 백지연에게 각종 행사진행 섭외가 들어오자, 이를 부담스럽게 느낀 회사 측에서 기자로 보직을 변경하길 원했다고 한다.[10] 이후 김주하와 배현진도 같은 코스를 밟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뉴스데스크를 오랫동안 진행했던 공통점이 있다.[11] 주로 SBS 전ᆞ현직 뉴스 앵커들이 진행한다. 과거에 봉두완, 진중권의 경우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진행했었다.[12] 닻은 영어로 anchor로, 앵커의 철자와 같다.[13] 같은 극우인데도 모종의 갈등이 있었는지, 지만원 시스템클럽의 커뮤니티에서도 그에 대한 평판은 그다지 좋다 보기 힘들다. #[14] 거기에 그것도 저 난동을 부린 소창영은 백지연과 동갑이다.[15] 단독 기사에 실명을 밝혔다. 이는 실명을 밝히기를 꺼렸다는 건데, 최초 보도인 셈.[16]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동생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회장의 아들[17] 미국 유수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HL그룹 미국법인에서 첨단신사업 발굴 업무를 맡고 있다.[18] 두 사람 모두 실명으로 기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