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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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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

1. 개요2. 특징3. 역사
3.1. 조선시대3.2. 근현대
4. 전설: 조선 시대에는 잡채로 국정을 살폈다?5. 대한민국중화요리6. 그 외 국가의 야채볶음 음식7. 기타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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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근, 양파, 고기, 표고버섯, 시금치[1] 등을 기름으로 볶은 뒤 삶은 당면을 간장양념으로 같이 볶는 요리. 마지막에 참기름을 넣고 버무려서 완성한다. 쫄깃한 당면 식감과 야채와 고기, 그리고 양념의 조화로 자극적이지 않아 많은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 대표 국민 요리이다. 잔칫상, 명절상, 생일상에 자주 올라가는 음식 중 하나이다.

2. 특징

본래는 이름에 菜(나물 채)를 쓴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각종 야채에 고기같은 재료를 더 넣어서 볶아서 만드는 요리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당면을 주재료로 각종 야채와 고기나 해산물들을 보조 재료들과 함께 볶아서 만든 요리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한국 잡채를 국수의 일종으로 분류할 정도로 면의 비중이 높아졌다. '잡채'의 '채'는 중심에서 멀어졌지만 오히려 본래 이름인 '회'(볶는다)라는 특징은 여전하다. 순대만두처럼 일제감정기 이후 당면 공장으로 인해 당면이 보급되었고 양을 늘리기 위해 넣었다가 지금과 같은 요리로 변형이 되었다.

후술할 중식당 잡채 짜후이와 명칭만 동일하지 완전히 다른 요리인 상황이라 한국어 위키백과 '잡채' 항목에 해당하는 다른 언어판 항목도 전부 한국 잡채만을 다루고 있다.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아예 잡채 항목 - 채소로 리다이렉트됨조선식 잡채 항목[2]을 따로 만들었다.

쉽게 쉬어버리고 식으면 떡처럼 뭉치는 음식이므로 맛있게 먹으려면 만든 직후 되도록이면 한번에 빨리 먹는 것이 좋다. 냉장보관을 하면 좀 더 오랫동안 먹을 수 있긴 하지만 당면이 딱딱해지고 라면처럼 꼬부러져서 맛이 급격히 나빠진다. 이때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서 데워먹으면 좀 낫다.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한국 음식 중 하나이다. 특히 파독 광부 간호사들 에피소드에서도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독일인을 대접할 때 가장 좋은 반응과 가장 먼저 빈 접시가 나가는 게 잡채일 정도로 해외에서도 아주 인기 많은 한식이고 서양 채식주의자에게는 비빔밥과 더불어 비건 음식으로 유명하다. 기름으로 볶는 면 요리라 본고장 한국에서도 느끼하여서 김치랑 같이 먹는 음식인데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스파게티처럼 먹는 모습에 한국인들이 도리어 놀라기도 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갈비, 냉면 등과 같이 자극적이지 않은 한식이라는 점 때문에 아예 한식 코스요리로도 들어가고 단품메뉴와 술안주로도 인기가 많다.

여러 가지 채소, 버섯, 고기를 잘게 썰고 당면을 따로 불려서 준비하는 등 만들 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그런 것에 비하면 보조 반찬이기 때문에 특별한 날에 먹는 경우가 많다. 만들기는 엄청 번거로운데 취급은 애매한 조연에 불과하고 보관도 어려우니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중국집 잡채 하듯이 불린 당면과 재료들을 한데 넣고 같이 간을 해서 볶으면 사실 훌륭한 메인메뉴가 된다. 심지어 업소용 고화력도 필요 없다. 잔칫날 잡채가 맛이 애매한 이유는 대량생산을 위해 재료를 따로 익혀서 버무려 주기 때문인데, 그냥 작정하고 메인으로 하면 당면까지 간이 잘 배어서 딱히 조연도 아니다. 애초에 중국집에서 한국식 잡채를 안주로 팔고 잡채밥이 인기 메뉴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수고가 들어간다는 것은 똑같지만, 메인메뉴를 만드는 거라 생각하면 딱히 더 수고롭지도 않은 음식이다. 당면이 이나 (, , 파스타 등)과 같은 주식용 탄수화물 역할을 하고 다양한 고명재료와 양념이 맛을 내준다고 생각하면 딱 파스타 비슷하게 한 끼가 되는 일품요리(한 그릇 요리)로 완성되며 여기에 피클(김치 등) 정도를 곁들이면 된다. 외국(특히 서구권)에서 인기가 좋은 요리지만 잡채를 먹는 외국인들은 보통 '파스타 비슷한 메인디쉬' 로 생각하고 먹지 한국처럼 반찬으로 생각하고 빵이나 밥과 곁들여먹는 경우는 드물다. 불고기랑 섞어 먹어도 맛있다.

당면을 제외한 재료들을 볶은 뒤 푹 삶은 당면에 간장, 참기름 등 양념과 함께 비비면 덜 번거로우면서 덜 기름지고 야들야들하니 훨씬 맛이 좋다.

북한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요리로 보인다. 선박 조난으로 넘어온 북한 병사와의 인터뷰에서 "(남한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잡채'라는 이름도 몰랐던지 "마른 국수"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낯설었던 듯하다. 물론 잡채는 조선시대부터 먹던 요리인 만큼 북한에서도 먹는 요리이며 요리책에도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당면을 넣어 변형된 형식의 잡채를 가정에서 먹게 된 지는 반백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다. 원래 형태의 잡채를 알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당면을 넣은 잡채와 매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뇨병에는 좋지 않은 음식이다. 당면이 혈당수치를 대단히 많이 올리기 때문이다. 잡채를 요리해 먹는다면 천사채로 대체하거나 아예 빼고 먹는 것이 좋다.

3. 역사

3.1. 조선시대

흔히 잡채에 대하여 단순히 재료를 각각 구별하여 썰어 넣는 요리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원래 잡채라는 요리는 대동법이 보편화하기 이전에 전국 팔도에서 진상한 재료를 각각의 특성에 맞게 다듬어 올리던 요리이다.

잡채가 대중적인 요리였던 옛 중국과는 반대로 조선에서는 진귀한 궁중요리 가운데 하나였는데 중국에서의 잡채는 적당히 있는 재료를 집어넣는 대중식이자 생활식 요리였지만 조선에서는 수랏상으로 오르다 보니 각종 좋은 특산물로만 만드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궁중요리의 법도 자체가 팔도의 다양한 식재료를 고루 사용하는 것이다. 조선 팔도의 무수한 식재료 중에서 다채로운 나물, 채소, 고기 등을 각기 따로 손질하여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요즘 흔한 당면잡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난이도의 진미였다고 전해진다.

애초에 잡채는 원래 당면이 아니라 꿩고기를 가늘게 찢어서 만들던 고추잡채와 비슷한 음식이었다. 여기다가 조리법도 간편하게 몽땅 한번에 볶는 식도 아니고 고생 많이 들어가는 찜이나 삶음 과정을 거친 뒤 젓가락으로 잡기 좋게 가늘고 길게 썰어내어 모양을 가지런히 내어 놓는 등 모양새 내는데도 상당히 정성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사실 지금 현대의 한국 잡채인 당면 잡채도 만드는게 상당히 번거로운 음식이다. 이외에 지금의 당면 대신 찹쌀전병을 썰어 야채와 버무려 만드는 레시피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잡채는 기록이 많지 않고 월과채라는 비슷한 것의 레시피가 알려져 있다.

궁중요리인지라 조선의 역대 왕들로부터 사랑받던 요리였지만 특히 광해군이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광해군 시절의 문신 이충은 잡채 요리를 잘 해서 광해군의 총애를 얻어 호조판서의 자리로 올랐고 우찬성까지 했으며 죽은 뒤에는 광해군으로부터 우의정으로 추증받는 영광을 누렸다. 참고로 이충의 잡채 요리 비결은 다름 아닌 온실이었다. 그는 땅을 파서 넓은 방을 만들고 겨울철에는 안에서 채소를 길러 겨울에 구하기 힘든 신선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광해군에게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3] 덕분에 이충은 세간에서 "잡채판서" 혹은 "잡채상서[4]"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3.2. 근현대

근대 한국의 요리책에서 잡채는 원래 나물류로 분류하던 음식이었다.[5] 현대의 당면 잡채는 1919년 일제강점기 황해도 사리원에 당면 공장이 생기면서 나타났으며 이는 비슷한 시기의 요리책인 「조선요리제법」에서부터 당면이 들어간 잡채가 최초로 등장한다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신문에서도 오늘날과 유사한 잡채 제법이 확인된다. # 만두순대에 당면을 넣게 된 것과 유사한 경로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원조 한국식 잡채는 원래 간을 하지 않고 대신 수라간에서 준비한 간장과 초장[6]을 이용해 알아서 찍어 먹는 방식이었으나 당면을 이용한 잡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당면 특유의 텁텁한 맛이 강하기 때문에 소금이나 참기름 간을 하여 '무침' 형태가 되었다.

현대에 면이 없는 잡채는 대표적으로 전주시콩나물잡채[7]를 들 수 있다.

4. 전설: 조선 시대에는 잡채로 국정을 살폈다?

민간 속설에 따르면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요리 특성상 잡채가 수라상으로 오르지 않거나 질이 나쁨을 보고 그 형편을 짐작게 하기 위하여 즉, 공무 시간이 아닌 밥을 먹는 중에도 국정을 살피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수라상으로 오른 잡채 중 문제가 발생한 재료를 담당하는 지방에 대해서는 자연히 임금의 관심이 돌아가도록 하는 장치라는 것. 하지만 탐관오리들이 잡채만 열심히 만들어서 실상이 잘 전해지지 않았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잡채 하나 때문에 방납 폐단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다. 조선의 중앙집권형 관료제 시스템은 당대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깜짝 놀랄 만큼 체계적으로 짜여 있었으며[8] 팔도의 작황과 상태는 각 고을 수령들과 관찰사들이 올리는 장계와 보고서를 통해 정리하는 것이지, 무슨 청동기 시대도 아니고 왕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만으로 전국의 상황을 알아야 할 만큼 주먹구구이지 않았다.

실제 방납의 역사를 살펴봐도 이는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특산물의 상납일을 왕명으로 지시받았는데 현재 작황이 좋지 않거나 더 나아가 아예 나지 않는다고 해서 보내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불충으로 형벌을 받을 일이고, 아무리 좋게 풀려도 파직을 각오해야 할 일이다. 때문에 지방 수령들은 자기 고을의 특산물이 더 이상 나지 않아도 다른 지방에서 따로 사서라도 상납을 해야 했으며, 이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조차 '방납의 폐단' 단락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방납의 진짜 폐단이지, 고작 잡채 때문에 임금의 눈이 가려지고 지방에서 비리가 판쳤다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허무맹랑한 썰에 불과하다.

잡채에 팔도의 온갖 재료가 들어가게 된 이유가 '팔도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서'라는 것일 수는 있으나, 실제로 그랬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성리학 특유의 상징성에 불과하다. 즉 '왕은 식사를 할 때조차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지, 조선이 진짜로 밥상머리에서만 민심을 살필 정도로 안이해 빠진 나라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잡채 하나로 한정하지 않고 수라상 전체의 음식을 기준으로 하면 이 속설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전국에서 올라온 특산물이 밥상으로 올라오는데다, 당대 최고의 요리사라는 사람들을 데려다 요리했는데도 특정한 음식만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작황이 나쁘다는 뜻이니 공납을 줄이는 등의 조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5. 대한민국중화요리

대한민국중화요리점에서는 중국음식을 만들 때 쓰는 큰 프라이팬에 당면, 야채, 고기를 넣고 기름으로 볶은 잡채 말고도 고추잡채라는 메뉴를 취급한다. 고추, 피망 등의 야채에 야채와 결을 맞추어 썬 돼지고기를 기름으로 볶아내는 중국 요리 '칭자오러우쓰(qīngjiāo ròusī, 青椒肉絲(청초육사))'가 그 원형이다. 한국식으로 맛이나 형태가 다양하게 재구성되곤 하지만, 원 요리인 청초육사의 핵심은 '푸른 야채+고기 볶음조리'에 있으므로 의외로 원형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고추잡채의 경우 식사류인 고추잡채밥으로 먹기도 하지만 탕수육처럼 제대로 단품요리로 먹을 경우에는 꽃빵을 곁들여 나온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중화요리점에서 잡채밥을 주문하면 당면이 들어간 잡채밥을 내놓는다. 경상도 반점에서는 짜장소스를 끼얹어 준다. 상기하였듯 한국의 1970 ~ 1980년대에는 당면 잡채도 명절날 아니면 먹기가 힘들었는데 잡채밥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도 그 즈음이기 때문이다.[9] 당면이 싫다면 고추잡채밥을 주문해야 한다. 잡채밥은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주범 김승일의 최후의 식사로 유명해지기도 했다.[10]

군산에는 지역 명물로 매운잡채가 존재하는데 고추잡채와는 다른 음식으로 지역 분위기상 분식으로 분류한다.

6. 그 외 국가의 야채볶음 음식

파일:attachment/잡채/info.jpg
한국 잡채와 가장 근접한 중화요리, 청초육사(고추잡채)
炒粉, 雜燴/杂烩(잡회), záhuì(짜후이)라고 하며 이름 그대로 잡다한 재료를(雜, 잡) 모아 볶은(燴, 회) 요리이다. 다만 고기가 잡다하게 모일 일은 많지 않았으니 거의 대부분이 채소일 뿐. 따라서 채소만 잡다하게 모여 있으면 잡채이니 이것 말고 다른 형식의 잡채 같은 것은 없고 이에 지역별로 잡채의 정의가 다소 달라진다. 간단하게는 어떤 채소가 들어가느냐가 달라지고, 추가적으로 이걸 데치느냐 찌느냐 볶느냐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서도 지역 특색을 많이 탄다. 심지어 생야채를 그대로 썰어 내어 놓아도 정의상 잡채에 해당한다. 특히 기름을 좋아하는 광둥성 지방에서는 잡채의 재료를 고르게 익힐 수 있도록 일정한 크기로 채 썰어낸 뒤 땅콩기름이나 돼지기름을 붓고 냄비에 볶아 내어 주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흔히 알려진 중국 요리로서의 잡채다.

지역색도 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사용 가능한 채소의 종류가 바뀔 수 있다보니 중국에서 잡채를 달라 하면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우리가 잘 아는 고추 같은 것이 가득한 잡채도 있는 반면 지방에 따라서는 생 머위고수잎이 잔뜩 들어간 잡채가 나오기도 하며 꽃빵을 곁들이기도 한다.

단순한 메뉴인 만큼 중국에서는 (비록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지역을 막론하고 상당히 대중화한 반찬으로, 한국에서도 김치를 요리가 아닌 당연히 밥상에 있어야 하는 기본 세팅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짜후이 역시 중국에서는 원래 요리로서 취급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김치를 따로 메뉴에 적어두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반면 한국에서도 김치 맛으로 식당을 판별하듯이 중국에서도 잡채가 식당 맛의 척도가 되기에 허투루 할 수 없는 까다로운 음식이기도 하다.

대만에서는 잡채탕(雜菜湯, 짜차이탕)이라는 요리가 있는데 채미탕(菜尾湯, 차이웨이탕)이라고도 하며 각종 잡다한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인' 일종의 찌개 비슷한 음식이다. 한국 잡채와 중국 짜후이는 각종 재료를 '볶은' 요리라는 점에서 비슷하기라도 하다면 타이완의 잡채탕은 애초에 완전히 다른 국 요리이다. 그래도 간혹 중국당면을 넣고 끓이는 경우도 있다.

미국식 중화 요리의 일종인 찹 수이는 중국 잡채(짜후이)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오키나와참프루도 채소가 주가 되어 여러 가지 재료를 볶아 만드는 요리이다. 오키나와식 잡채라고 할 수 있는 요리로 고야(여주)를 주 재료로 하여 돼지고기와 함께 볶아 낸 '고야 참프루'가 유명하다. 또한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영향으로 스팸을 재료로 쓰는 경우도 있다.

필리핀 요리 중에 판싯(Pancit)이라는 게 있는데, 한국의 잡채와 제법 흡사하다고 한다.

7. 기타

8. 관련 문서


[1] 야채 색상의 조화와 영양의 균형을 중시한다.[2] 중국, 일본은 전통적으로 한국과 관련된 대상에 대해서 한국보다는 조선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한반도는 조선반도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롬에서 한국어 번역을 하면 '북한'이라고 표기된다.[3] 고려시대 이규보의 〈괴토실설〉에서도 초겨울인 10월에 이규보 집안 사람들이 땅을 파서 지하 온실을 만드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다만 이규보 본인이 사계절의 이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노발대발해 그 온실을 헐어버리고 목재는 땔감으로 써버렸다.[4] 장관급 벼슬인 판서를 고려시대에는 상서라고 불렀다. 원 간섭기에 관제가 제후국으로 격하되면서 판서가 된 것이 조선시대로도 그대로 이어졌지만 상서라는 이름 자체는 여전히 흔적이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판서는 구한말부터 대신(大臣)이 되었다.[5] 이경애, 「1600년대~ 1960년대 조리서에 수록된 잡채의 문헌고찰」, 순천향대학교, 식품영양학과, 2013.08.04[6] 원래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는 수라에서는 두 종류의 밥 뿐만 아니라 임금의 기호에 맞게 간장과 초장을 동시에 진상하였다. 대부분 초장은 무르고 세자가 잡곡밥과 함께 먹는 경우가 많았다.[7] 군 급양 레시피로도 콩나물이 들어간다.[8] 조선왕조실록에는 각 고을의 수령뿐만 아니라 도민의 이름이나 신분도 하나하나 실려 있다. 심지어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이름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9] 참고로 더불어 유행했던 중국집 메뉴는 갈비탕이었다.[10] 이는 공범인 김현희의 증언에 의한다.[11] 참고로 해당 포스터는 미국의 화가 노먼 록웰의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의 패러디이다.[12] 참고로 김준호의 아버지는 오랜 지병으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살아 계셔서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