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老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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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마타[1]의 노포 타카기야 시니세.
대대로 한가지 업을 물려 내려오는 역사가 오래된 점포를 뜻하는 말.
일본어로 '시니세(老舗, しにせ)'라 읽으며, 중국에서는 '노점'(老店, 라오뎬)이라는 표현을 쓴다.[2]
한국에서 쓰이는 '노포(老鋪)'는 1990년대에 언론에서 일본의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그렇다보니 오래된 가게라는 말을 놔두고 일본어를 들여왔다는 비판도 있다.# 1960년대에 국어사전에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가게라는 의미로 수록되었다고 하지만 이또한 일제강점기에 정착된 일본어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을 국어로 착각하여 해방 직후 사전에 수록된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일본에서 쓰던 표현을 그대로 들여온 이유는 역사적, 환경적 이유로 1세기 이상 오래 운영하는 가게가 드물기 때문에 이런 가게를 일컫는 고유 표현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역사가 50년은 넘어야 노포로 인정받지만 한국에서는 개업한 지 20년~30년만 지나도 노포라고 여겨진다. 이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50년 넘도록 한 가게가 유지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사정에 맞게 기준이 변한 것이다.
1.1. 역사
노포는 오래된 전통이 있는 가게나 기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전통이란 짧게는 100년, 길게는 천 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들을 가리킨다. 크기로는 영세한 음식점부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까지 다양하다. 구찌, 프라다, 에르메스도 모두 유럽의 노포에서 비롯되었다.서유럽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16세기 이후 세계적인 은 교역의 활성화 속에서 풍부한 잉여 생산물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했다. 몽골 제국의 멸망으로 세계 교역망이 붕괴한 후 명나라는 해금정책을 실시하며 해상 무역을 통제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 대륙의 영향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한반도 지역은 함께 세계 무역망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후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가 다시 만들어진 16세기의 은 중심 세계 무역망에 슬금슬금 참여하는 와중에도 고려 시대 이후 세계 무역망에서 배제된 조선은 고립된 지리적 원인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대한 적대 의식으로 인해 세계 무역망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국제 무역을 통한 이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해진 조선의 지배층은 기존의 성리학적 지대물박(地大物博) 사상을 유지, 강화하며 상업과 기술 진흥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조선에서는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여 노포의 기원이 될 상점이나 기업이 형성되지 못했고, 장사를 하더라도 대대손손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고려시대에는 상업을 국가 경제를 구상하는 중요한 영역으로 인식하였고, 상업이 부진한 경우에는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고 장려하고자 했다. 예컨데 시전을 운용해서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받아냈던 것은 조선과 같았지만, 만약 시전의 벌이가 시원찮다 싶으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장사를 할 정도로 상업활동 자체에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사실 고려를 세웠던 태조 왕건부터가 상업활동을 통해 세력을 키운 지방 호족 출신이었다. 신라 말기부터 해상과 강을 이용하여 상업 활동을 하고 그것을 기반 삼아 지방 세력으로 성장한 호족들이 많았는데 왕건의 집안 또한 그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또 고려를 건국한 호족세력 중에는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세력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당연히 상업이 중시될 수 밖에 없었다.게다가 당시 생활 전반에 깔려있던 불교 역시 상업활동에 호의적이었고, 사원 스스로도 상업에 적극 참여했던 시대상과도 맞물려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에서는 농업은 천하의 근본이 되는 산업이라 하면서도 상업은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이익을 취하는 산업이라 하여 천하게 여겼으며 그로 인해 사농공상 사상이 퍼졌다. “상업을 쫓는 행위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는 일이다”고 여겨 조선 조정에서는 꾸준히 중농억상 정책을 펼쳤으며 시전이나 보부상 등은 철저히 국가의 등록 하에 움직여야 했다. 또한 일찍이 과거제가 발달하여 신분 이동이 쉽다보니 대대손손 직업을 세습하기보단 한양에 가서 출세하는 것을 더욱 중시하였고 직업을 물려받고 사는 사람은 '능력 없는 자'라며 천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국이나 일본, 유럽도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특별히 자유무역을 권장하거나 상업을 진흥하려 한 전근대 국가는 찾기 어렵다. 상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상인들로 하여금 군주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게 하였고 군주 입장에서도 적국의 배를 불려주려는 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아 서유럽에서는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자유 무역을 통제하려 들었다. 일본은 에도 시대 내내 쇄국 정책을 유지했으며 지배층만이 이익 추구를 위한 국제 무역에 참여할 수 있었고, 서유럽의 경우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상인들 및 부르주아들이 정치 권력을 획득하고 정책 집행에 개입하기 시작한 근대에 와서야 국가 수반인 상인 스스로 국가를 이용해 상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들이 전근대 시절부터 상업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기보다는 억상정책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상업이 발전할 정도로 국제 교역을 통해 잉여 생산물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포라는 개념의 발상지인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가게가 많지 않다.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한국에도 여전히 노포가 존속하고 있다. 서울에만 해도 80년이 넘는 오래된 가게들이 10곳이 넘고, 이문설농탕 같이 120년 넘는 역사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버금가는 역사를 지닌 노포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이렇게 100년 가까이 영업을 하는 음식점들은 대부분 모두 다 개업 날짜가 적힌 증거 자료를 가게 안의 벽에 걸어놓거나, 1대 사장님부터 역대 사장님들 사진을 걸어놓기도 한다. 최근에는 6시 내고향 등의 방송에서 국내의 노포를 발굴,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현대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노포가 생기기란 어렵다. 소규모 점포의 대다수가 생계형 자영업이고, 좁은 주거 면적으로 인한 아파트 위주의 주거 문화와 재개발이 잦은 도심 환경 때문에 한 가게가 오래 유지되기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가게의 평균 수명은 5년 정도에 불과하고, 심하면 1달 단위로 가게 간판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한국에서는 역사가 30년~40년이 되도 노포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일본에 노포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던 에도 시대의 사회 제도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에도시대의 일반 평민(백성)은 영주의 소유물로, 야반도주를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거주지를 절대 바꿀 수 없었다. 지금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꿈을 이룰 수도 있지만 에도시대에는 조상대대로 이어온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것외엔 다른 길은 없다시피했다.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려면 기존의 통념을 배제하며 시대를 바꾸겠다는 혁명가적 모습이 필요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모두가 높은 자리로 오를 수 있다는 꿈을 품었던 센고쿠 시대에 비천한 출신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인물을 제외한다면 일본사에 그다지 이름을 남길만한 평민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또한 앞서 말한 센고쿠 시대를 경험하며 엄청난 전쟁을 겪었던 일본인들은 더 이상 신분상승을 꿈꿀 수 없는 사회가 된다면 전쟁 없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 중국과 달리 과거제가 전혀 실시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3] 그 결과 대대로 가업을 이을 수밖에 없는 문화와 높은 장인정신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문화에 일본 특유의 와(和) 문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가능하다.[4] 해당 지역에 토착한 이상 업종 변경을 시도해 튀는 변화를 시도하는 대신, 대를 이어 순종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 외에 특정 브랜드나 제품만을 사용하는 일본인 특유의 보수적인 소비 경향으로 안정적인 수요가 존재한다는 부분 등이 요인이라 볼 수 있다.[5] 또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본토 공습이 있었긴 하나 주된 전장이 본토가 아니었기에 노포들이 살아남은 것도 주요 이유이다. 재개발이 거의 없고 보수적인 도시 환경도 한몫 한다.
여기에 일본에서 노포가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의 경제구조와 복지때문이다. 이런 노포들은 대부분 1950년대부터 이 일을 시작한 노년층 점주가 대부분인데, 이 사람들은 일본의 단카이 세대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제 부흥기때부터 쌓아온 연금혜택으로 샐러리맨이었다면 진작에 은퇴했을 나이에 영업을 해도, 물가 대비해 낮은 가격을 유지해도 생계에 문제가 없었다. 매장은 진작에 대출상환이 끝나 자기 건물이고 설비도 자기 설비고 싸게 팔아도 점주들이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음식점을 소일거리처럼 할 수 있었고 오랜 기간 쌓인 단골 네트워크는 재료비와 원가 재투자를 자연스럽게 이끈다. 한국에서 이런 맛집 노포를 찾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자영업자들이 복리후생 걱정을 안해도 될만큼 부대수입이 확실하거나, 매장, 설비를 자기 소유로 하기엔 너무 부동산이 비싸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식당 건물이 점주인 집은 그것만으로도 경쟁력이고 맛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자조적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다만 이러다보니 일본의 노포 가운데는 시설이 상당히 노후화된 곳도 적지 않다. 오래된 여관을 가보면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를 느낄 수 있으나 냉난방 시설이 노후화 되어있어서 춥고 덥다. 또한 음식점들은 위생적인 면에서도 미흡하다. 오래 된 가게에서 꾸준히 장사를 하기 때문에 위생 관념이 부족한 편이다. 주방을 리모델링 하는 경우도 드물다. 실제로 일본의 노포라고 불리는 가게들을 가보면 규모가 큰 장어덮밥[6] 같은 식당의 주방은 볼 수 없지만 소규모의 노포들은 바로 앞에서 조리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방에 기름때나 음식을 조리하며 소스나 건더기가 튄 흔적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세스코 병해충 관리서비스에 가입한 식당들은 그에 비하면 실험실 수준.
하지만 경제불황과 인구감소 등 변화상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가게 및 회사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7] # 게다가 소비세 인상과 코로나19로 닫고 있는 곳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었던 곤고구미를 비롯해, 의류 회사였던 레나운(レナウン)[8]과 오사카의 100년 전통 복어집이자 랜드마크였던 '즈보라야'(づぼらや)가 있다.[9]
일본의 노포 수는 세계 1위 수준으로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업체 혹은 가게의 수가 약 3,100여 곳이 넘는다. 2위인 독일의 3배가 넘는 수이다. 사전
중국에서는 이러한 가게를 '라오뎬(老店, 노점)'이라고 부른다.[10] 원래 중국에서도 일본 못지 않게 1세기 이상 장수하는 가게가 많았고, 공산화 이후에 상점과 기업이 국유화되는 가운데서도 기존의 사장과 임원들은 지분만 국가에 넘기고 관리인으로 전직하면서 직책을 보장받는 식으로 노포가 존속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상당수는 파괴되었지만 마오쩌둥마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 점포 1,600여 곳은 살아남아 수백 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제약회사 퉁런탕(동인당)이다.
1.2. 목록
- 일본
- 게이운칸(慶雲館, 경운관):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로 야마나시현에 위치한 료칸이다. 무려 705년에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1300년 넘는 시간동안 운영 중이다. 여관 이름도 게이운 시대(704년~708년)에 세워져서 그렇게 지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1.3. 여담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대 후반부터 노포의 이름값에만 기대어 불친절함, 불결함을 전혀 고치지 않는 가게들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 반작용으로 인해 젊은 요리사들이 열정을 갖고 새로 시작한 젊은 가게들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충걸 GQ 편집장의 글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는 일부 노포를 대상으로 백년가게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인증된 가게는 전용 엠블럼을 달 수 있게 하고 있다.
2020년대 노포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자 노포 맛집이라는 이상한 용어가 덩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말로 치환하면 옛집 맛집으로 겹말이 되는 틀린 문법이다. 맛있는 노포 혹은 오래된 맛집이라고 해야 옳다.
2. 老圃
부산에서 '노포' 하면 거의 십중팔구 노포동터미널과 노포역을 지칭한다.
3. 弩砲
자세한 내용은 발리스타 문서 참고하십시오.4. 기타: 합성어의 줄임말
No와 '포'로 시작하는 단어로 만든 합성어의 줄임말.- 보정(뽀샵질) 안한 사진(No + Photoshop)
- 잉글랜드의 축구 클럽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준말
-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음경 (No + 포경수술)
[1] 남자는 괴로워의 배경이 된 곳.[2] 한자는 다르지만 밖에서 영업하는 가게란 뜻의 노점(露店)과 발음이 비슷하여 착오하기 쉽다.[3] 메이지 유신으로 사회가 근대화되고 나서야 대학교 진학 등을 통한 신분 이동이 가능해졌다.[4] 일본의 와(和) 문화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지낸다"라는 뜻으로서 일본은 규칙을 지키고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자신들의 본분에 다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라든지 혼네-다테마에 문화 역시 와(和) 문화에서 파생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튀는 문화를 싫어하며 튀는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을 배척한다. 또한 규칙을 깨는 사람을 경멸 수준으로 보는데, 이러한 국민성, 이러한 와(和) 문화는 일본적 개인주의의 근간으로 불리며 일본의 사회 구성에 작용하는 그 뿌리로 보고 있다.[5] 가성비 또는 '현존 최고사양'을 중시하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신뢰성'과 '익숙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때문에 다소 성능이 타사 제품보다 낮고 조작법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익숙하고 신뢰하는 제품을 구매한다. 일본 제품 상당수가 잘라파고스화됐던 건 이러한 소비자들의 소비 경향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6] izuei umekawa-tei 8대를 이어온 장어덮밥 노포[7]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의 자영업자가 모두 3대 이상 가는 것은 아니다.[8] 메이지 시대인 1902년에 창립했으며, 한국에서도 화신그룹과 동일그룹을 통해 1990년대까지 진출해 있었다. 아놀드파마 브랜드가 가장 유명하다.[9] 2020년 9월 15일에 폐업했다. 폐업 당일 안내문에 간사이벤으로 'ほな、さいなら'(안녕히 가이소)라 썼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10] 다만 한국에서는 露店과 혼동될 수 있는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