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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1 13:29:22

리일규


<colbgcolor=#000><colcolor=#fff> 리일규
Ri Il-kyu
파일:리일규(1).jpg
출생 1972년 ([age(1972-01-01)]세)
평양시[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현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1기)
가족 배우자, 자녀
학력 평양외국어학원 (프랑스어과 / 졸업)
쿠바 아바나대학 (프랑스어과 / 졸업)
평양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 / 졸업)
경력 쿠바 북한대사관 3등(대외직급 1등) 서기관
북한 외무성 정책종합국 과장
북한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겸 당세포비서[3][4]

1. 개요2. 생애
2.1. 탈북2.2. 한국에서의 활동
3. 경력4. 언론 보도5. 여담6. 방송 출연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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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전직 외교관.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정무참사로 재직하던 2023년 11월 무렵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입국했고,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로 탈북 사실이 공개되었다. 대한민국 입국 이후에는 언론·방송 인터뷰를 통해 북한 체제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2. 생애

파일:2013년리일규.jpg
2013년 청천강호 억류 당시 파나마로 파견된 리일규 (왼쪽)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났고, 김정일의 프랑스어 통역원을 하고 조선중앙통신 방송기자를 하다가 통일전선부 산하 무역회사에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알제리쿠바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평양외국어학원과 쿠바 아바나대학, 1995년 평양외국어대학을 거쳐 1999년 외무성에 입부했다.

2011년 첫 해외 근무지로 쿠바 대사관의 3등서기관(대외직급은 1등서기관)으로 발령받았다. 2013년,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지대공 미사일과 MiG-21 전투기 부품을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다가 미국 정보당국에 포착되어 대북제재 위반으로 압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5] 리일규 본인이 밝힌 바로는, 자신은 쿠바에 청천강호가 온 줄도 몰랐고 첫 해외 발령지에서 이런 사건의 수습이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을 뒤집어 쓰고 앞길이 막힐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사건 처리를 맡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수습을 맡아 각종 관련 법을 공부하여 파나마 당국과 법리를 다퉈 1년 뒤 재판에서 승소하고 청천강호의 억류를 해제, 선원과 선장을 석방시켜 김정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평양외무성에서 2016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정책종합국(1국) 과장, 이후 2019년까지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로 근무했다. 2018년 9월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이사회 위원장방북 행사 등을 총괄하며 이때 처음으로 김정은과 대면했다.

2019년, 쿠바 대사관의 정무참사(정치 담당 참사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맡았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한국-쿠바 수교의 저지였다. 물론, 임무는 실패했고 쿠바는 한국과 수교를 했다.

2.1. 탈북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BBC코리아와의 인터뷰

탈북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노력에 대한 불평등한 평가, 그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 때문이었다. 북한 외무성은 주로 권세 있는 집안 출신이 많다. 일반적으로 노동계급, 군인계급, 사무원계급, 농민계급으로 나뉘는데 리일규 본인은 사무(事務) 출신으로 사회성분이 노동자나 군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해 최하위 직급으로 입직하여 성실히 노력해 고위직에 올랐다고 밝혔다.

북한 엘리트 외교관 이일규의 망명을 위한 쿠바 탈출기🔥🧳🛫ㅣ이만갑 684회
2019년 8월, 리일규는 대사관의 자금사정에 보탤 목적으로 쿠바북한식당을 개업하고자 허가를 받기 위해 평양으로 들어가 후배였던 외무성 대표부지도과[6] 부국장을 만났다. 부국장은 개업 허가를 위해 뇌물을 요구했지만 리일규는 당장 자금 여력이 없어 추후에 꼭 줄테니 참아달라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후배 부국장은 앙심을 품고 실적 평가에 불이익을 주고 정치적인 누명을 씌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등 리일규를 4년 동안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한다. 2023년 과로로 인한 목디스크로 오른팔 마비 증상이 생겨 의료 사정이 열악한 쿠바가 아닌 멕시코의 병원에서 치료받고자 외무성 대표부지도과에 출국 허가를 요청했으나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거부당했다. 불과 몇주 전 다른 외교관이 치료목적 출국을 허가받았고 보통 답신이 오는데까지 2주가 걸리는데 자신의 요청은 하루만에 칼같이 거부당했으니 후배 부국장이 배후에 있음을 짐작한 리일규는 격분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와 장인, 장모가 모두 사망한 것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결심에 일조했다고 한다.

출국을 거부당한 후 일주일 만에 탈북을 실행하게 되었는데, 원래라면 외교관이어도 여권을 본인이 소지하지 못하고 대사관에 맡겨놓아야 했다. 때마침 코로나19 봉쇄로 오랜 기간 여권이 방치되어 유효기간이 만료되었고 새 여권을 신청해 의도적으로 수령을 미루다가 탈북 실행일 저녁에 받아 여권을 수중에 확보할 수 있었다. 새벽 5시행 비행기표를 미리 예매해놓고, 탈북 6시간 전인 밤 10시에 아내와 아이를 불러 "외국에 나가 살자"는 말로 탈북할 결심을 밝혔다. 자가용을 대사관 건물 주차장에 두었기에 차를 가지러 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새벽 2시에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당시 앞집에 다른 북한 외교관 가족이 살고 있어서 밤에 나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길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모아둔 달러를 비롯한 소지품을 챙겨둔 가방을 가져오는 것도 잊고 급하게 탈출했다.

일가족은 쿠바를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해 제3국[7]으로 이동했고, 그 국가에 주재한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제3국의 공항 경찰이 리일규의 정치적 망명을 거부하면서 쿠바로 송환하겠다고 통보하고 리일규와 가족을 공항에 억류했다. 다행히 해당국의 대한민국 대사가 도착하여 문제는 해결되었으며[8] 2023년 11월경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미국 국무부 파텔 부대변인은 2024년 7월 18일 브리핑에서 리일규의 한국 망명과 관련한 논평 요청에 대해 "북한 정권의 참혹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 주민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2.2. 한국에서의 활동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로 탈북 사실이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다수의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북한 관련 포럼 및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년 8월 2일, 영국 BBC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북한주민은 도널드 트럼프가 자국에 더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2024년 8월 27일, 민주평통 사무처를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했다. 강연에 앞서 수석부의장 김관용과 접견하고 차담 시간을 가진 후 사무처장인 태영호가 자신의 사무실을 둘러보게 했는데, 태영호를 대하는 모습이 마치 직장 상사를 대하는 부하 직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외교관 후배이자 학교 후배로서 선배인 그를 깍듯하게 모신 듯하다.#

2024년 9월 26일, 민주평통 제21기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2024년 11월 15일, 통일부-인권위-권익위 북한인권 공동토론회에서 북한 외무성과 재외공관이 2016년부터 2023년 사이에 주고받은 북한 인권 관련 외교전문 12건을 공개했다. 해당 전문은 북한 외교관으로 근무할 당시 직접 입수해 탈북할 때 가져온 것으로, 다른 전문의 추가적인 공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5년 2월 9일, 16일, 이제 만나러 갑니다 684, 685회에 前 북한 외교관 자격으로 출연하여 자신이 왜 탈북을 하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김정은에 대해 증언했다.

3. 경력

4. 언론 보도

5. 여담

6. 방송 출연

7. 관련 문서


[1] 대한민국 헌법과 국적법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주민과 후손들은 외국 국적을 따로 취득하지 않은 이상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을 보유하게 된다. 북한에 행정권이 미치지 않음에 따라 북한주민은 남한 국적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남한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표기를 하지 않는다. 대법 96누1221 판결[2] #[3] 리일규 프로필 참조[4] 정무참사의 경우, 대한민국의 공무원 급수와 대응하면 2급 공무원으로 취급된다.[5] 사실 무기 거래는 아니었고 쿠바가 자국의 전투기를 북한에 위탁수리를 맡기기 위해 보낸 것이었다고 한다.[6] 해외 북한 대사관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부서이다.[7] 하바나에서 유일한 새벽 5시 비행기는 파나마행 비행기이다. 고로 제3국은 파나마로 추측됨.[8] 대사가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니 우리 대한민국에서 보호하겠다고 말하니까 자신의 외교관 신분과 근거를 밝혀도 들은 척도 안 하던 공항 경찰들이 전부 물러났다고 한다.[9] 리일규 프로필 참조[10] 정무참사의 경우, 대한민국의 공무원 급수와 대응하면 2급 공무원으로 취급된다.[11] 시가 120~150갑을 중국으로 밀수하는데 한 달에 15,000~30,000달러를 벌 수 있었다고 한다.[12] 이 별명은 2000년대 초반 외교관을 일컽는 말로 평양에서 유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