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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 왕족 칭호로써 | 제후 칭호로써 | ||
남성형 | 여성형 | 남성형 | 여성형 | |
한국어 | 공작·대공(大公)·대군[1] | 군주(君主) 또는 제후(諸侯)[2], 대공[3] | ||
라틴어 | Princeps[4] | Principissa | (좌측과 동일) | |
영어 | (Royal) Prince | (Royal) Princess | (Sovereign) Prince | (Sovereign) Princecess |
독일어 | Prinz[5] | Prinzessin | Fürst[6] | Fürstin |
프랑스어 | Prince (Royal) | Princesse (Royale) | Prince (Souverain) | Princesse (Souverain) |
이탈리아어 | Principe (Reale) | Principessa (Reale) | Principe (Sovrano) | Principessa (Sovrano) |
스페인어 | Príncipe (Real) | Princesa (Real) | Príncipe (Soberano) | Princesa (Soberano) |
러시아어 | [ruby(Царевич, ruby=Tsarevich)] | [ruby(Царевна, ruby=Tsarevna)] | [ruby(Князь, ruby=Knyaz)] | [ruby(Княгиня, ruby=Knyaginya)] |
에스페란토 | (Reĝino) Princo | (Reĝino) Princino | (Suverena) Princo | (Suverena) Princino |
중세 이래 유럽사에서 사용된, 영역제후 작위 및 가문 작위(왕실 작위)이다. 특히 왕자(王子)들이 이 작위를 많이 받아서 통상 '왕자'의 번역으로 흔히 알려져있으나, 왕자들'도' 받을 뿐 왕실 혈통 여부와 별개의 작위이며, 심지어 유럽 안에서도 모든 왕자들이 받느냐(영국) 장남만 받느냐(에스파냐) 등이 가지각색이다.
2. 어원과 의미
어원은 크게 라틴어 계통(Prince)과 게르만어 계통(Fürst)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라틴어의 경우 로마 황제가 가지던 많은 직위 중 하나인 프린켑스(Princeps)[7]에서 비롯하였다. 로마 황제의 직위인 '군 통수권자'에서 황제 그 자체를 의미하도록 차용된 임페라토르(Imperator)나, 비슷하게 로마 황제의 직위였던 '수석대제관' 혹은 '최고사제'에서 교황의 칭호로 변모한 폰티펙스 막시무스처럼 로마 황제의 칭호가 이후 유럽 군주의 명칭으로 굳어진 예이다. 게르만어에서는 first와 어원을 공유하며, 태생이나 혈통이 고귀한 자, 으뜸인 자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봉건제 이전 부족제 시절에는 족장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이렇듯 양자 모두 '수석', '으뜸', '고귀함' 등을 내포하였기에 상통하는 말로 취급되었다.[8]우리가 흔히 아는 프린스는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 군주들이 영역 제후로서 자기 지위를 비정하기 위하여, 혹은 가문의 권세에 의지하여 작위 계승자의 권위를 보장하고자 프린켑스 칭호를 수여한 것으로, 서양의 프린스는 고귀한 혈통 내지 특권자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라틴어 어원 Prince에서는 세습적 개념이 아니었으나, 이와 상통하던 Fürst에서는 세습적 개념이 강했고, 중세 유럽의 주요 세력은 게르만인이었기에 곧 그러한 의미로 굳어진다.
현대 대한민국은 공화정으로 귀족 작위가 없는 관계로 저러한 개념 자체가 없기에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힘들어 하고, 번역하기도 힘들어한다. 굳이 맥락에 따라서 역어를 대응하자면, 적어도 비영역제후로서는 전근대 조선에서 왕자들에게 수여한 작호인 "대군"이 해당하지만, 현대 한국인들은 조선의 작호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세자 세손 대군 군 공주 옹주에 더해서 인척으로는 세자빈, 부원군(국구), 부마 이 정도까지만 바로 꼽을 수만 있어도 적지 않게 아는 축에 속하니, 동일한 문화권의 바로 직전 왕조의 작위체계도 잘 모르는데, 다른 문화권의 한참 이전 시대의 작위체계는 더욱 난망한 셈이다.(...)
반면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중국은 친왕이나 왕 작위 개념에 대해 친숙하고, 일본은 아직도 황실과 친왕 작위가 살아있는 관계로, 서양의 프린스를 과감하게 친왕으로 번역해버리기도 한다. 다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동서양 간 작위체계의 상이성, 유럽 내에서조차 혼동할만큼 세분화한 프린스의 용법 등이므로, 중국이나 일본의 번역조차 항상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9]
군주의 칭호가 Prince인 나라를 Principality라고 하며, 모나코의 군주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여왕의 부군(쉽게 말해 남편)에게 Prince (consort) 칭호를 주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즉, 원래 군주를 의미한 단어가 후대에는 예우 상의 작위로 왕족에게 쓰이게 되어 부군이나 왕자들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서양에서의 프린스는 사실 왕자라기보단 통치가문의 후손들에게 특권으로 쓰이는 호칭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Prince Eugen으로 잘 알려진 사보아 공자 오이겐이고 과거 왕가의 후손들도 직계를 가리지 않고 방계 왕실의 후손도 작위는 성년이 되어서 받지만 태생적으로 프린스 칭호를 쓸수 있었다. 이는 현재 왕위 계승권이 많이 멀어진 영국 왕실 방계 후순도 마찬가지
이 외에도 "군주"로 적지 않게 번역된다. 가령 마키아벨리의 저서 《Il Principe》(영어: The Prince)는 한자로는 《군주론》이라 옮긴다.
3. 분류
유럽에서는 작위(칭호)의 서열 순에 앞서서 신분의 서열이 우선시된다. 일반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군주의 서열을 가장 높게 보고, 군주의 일족을 그 다음으로 두며, 귀족은 그 아래의 서열로 여긴다. 귀족 중에서도 대귀족이나 상급 귀족의 서열 구분이 있는 나라에서는 마찬가지로 작위가 아니라 해당 신분의 서열이 우선시된다.프린스의 경우에는 군주나 제후의 칭호로 쓰이기도 했고, 그들 일가 구성원 및 후손의 전용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이때 Prince는 같은 신분 내에서는 대체로 공(Duke)[10]보다 급이 낮다. Fürst(제후)의 영어 번역어인 Prince가 공(Herzog)보다 낮은 지위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같은 군주라는 지위에서 공국의 군주보다 낮다는 이야기이지, 엄밀하게 다른 국왕에 예속된 신하 신분인 공작보다 낮은 신분이라는 것이 아니다.[11] 영방국가에 주권이 인정되지 않았을 때의 '자칭' Fürst이거나, 프랑스의 일부 프린스처럼 같은 신하 신분일 경우에만 신하 신분인 공작보다 열등한 것이다.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는 서열의 도식적 구분은 적절하지 않지만, 굳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황제 > 왕 > 공(군주) > Fürst(군주) ≥ 프린스(왕족) > 공작 ≥ 프린스(신하) > 후작(Marquess) > 백작 > 자작 > 남작 |
반면 작위 계승권자나 친족으로서의 칭호이자 프랑스-영국의 Prince 작위를 역수입한 독일의 Prinz는 소속 가문의 대표 작위에 따라서 서열이 다르게 취급된다.[12]
3.1. 군주 또는 제후를 뜻하는 Prince[14]
특정 작위를 가리키는 경우와 사학적 학술용어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후자는 주로 "영역제후"라고 번역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영주(중세) 문서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문단에서는 특정 작위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대중적으로는 공작이나 후작으로 번역되지만 사실은 군장의 의미에 가깝다. 애초에 오등작에 맞추어 주로 번역되는 작위들과 아예 기원과 계통이 완전히 다른 일종의 영외등작인데, 오등작으로써 주로 번역되는 것들이 고대 로마 및 프랑크식 관료제의 관직들을 기원으로 하지만,[15] Prince는 부족제 전통에서 부족장이나 그에 준하는 고위귀족 등 제1인자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 초 이 지위를 지닌 자들은 그냥 부족 시절부터 지배계급이었다가 봉건제로 전환될 때 어물쩍 합류하였거나 피정복되어 신종하였거나 차라리 공격자 측이었다가 집단적으로 전향해온 경우가 많았다. 이는 웨일스인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던지, 동슬라브족을 세습지배한 루스 바이킹들의 크냐지 및 볠리키 크냐지(대군장) 직위라던지 하는데서 드러난다.
따라서 러시아의 경우 최상급 귀족인 크냐지(Князь)는 번역시 영어로 Prince, 독일어로 Fürst다. 러시아 귀족 작위체계는 크냐지(Князь) - 그라프(Граф) - 바론(Барон)의 3체제이다. 그라프와 바론은 독일의 백작(Graf), 남작(Baron)을 그대로 도입하여서 1대1로 대응이 되지만, 공작(Herzog)은 도입하지 않고 고유의 크냐지가 그 지위를 대체하였는데, 이 지위는 그 어원 상 공작(Duke)이 아닌 Prince로 번역된다.[16][17]
이 칭호를 사용하는 곳(후국)들은 다음과 같다.
- 모나코[18],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구 리페, 샤움부르크리페, 로이스,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발데크피르몬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웨일스[19]의 군주.
- 헝가리 왕국에서 쪼개진 구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군주(fejedelem), 루마니아 왕국의 전신인 구 왈라키아 공국, 구 몰다비아 공국의 보야르들의 우두머리인 보이보드
이들이 다스리는 제후국은 독일어로는 Fürstentum이라 하는데, 이것을 한국어로 '공국'으로 번역하면 영어로는 Duchy, 독일어로는 Herzogtum과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일반 매체에서도 이 개념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 공국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드물게 독일사 관련 서적 중 일부에서 후국이나 후작령으로 번역하는 정도이다. 나무위키에서는 Herzogtum을 공국으로 Fürstentum을 후국(侯國)으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공국'으로 번역되는 Principality 또한 후국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
3.1.1. 독일어권에서의 Fürst
'군주'라는 뜻으로, 독일어권에서 어떤 작위의 군주나 제후를 폭넓게 부를 때 쓰던 용어였다. 즉, 후작보다는 군주, 제후로 번역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특히 선제후(Kurfürst)나 주교후(Fürstbischof) 등의 용례를 보면, 독일어 Fürst는 한자의 '후(侯)'와 상통하는 측면이 많다. 동양의 후(侯)도 원래는 씨족 국가의 군주를 의미하던 칭호였으나, 점차 격이 낮아져 제후의 칭호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제후 신분을 대표하는 어휘로 쓰이게 되었다.신성 로마 제국에서 Fürst는 황제의 직속 봉신이라면 누구든 자칭할 수 있는 범칭 정도로 쓰였으나, 선제후(Kurfürst)가 모든 제후 중 가장 우월한 지위로 공인되고 공작(Herzog)이 그 다음의 서열로 규정되면서, 선제후나 공작은 점차 Fürst를 자칭하길 꺼리고 그 지위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Fürst는 공작보다는 낮은 제후들을 통칭할 때 사용된다. 이때의 Fürst는 '제후'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16세기 무렵부터 공작보다 낮은 작위의 영지들을 후국(Fürstentum)으로 통합하는 것을 황제에게 승인받아, Fürst를 공식 칭호로 내세우는 제후들이 등장했다.[20] 하지만 Fürst의 서열이나 위상은 공식적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는데, 1648년에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영방 국가에 주권이 공인되자, 공작보다 낮은 영방 국가의 제후들은 스스로 선제후나 공작 예하의 백작(Graf)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소유한 영지들을 후국으로 통합하여 공식 칭호를 Fürst로 내세우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공국 미만의 모든 세속 영방 국가가 후국으로 전환한 것은 아니었으나, Fürst는 주권을 행사하는 세속 제후 신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고, 다른 군주나 제후에게 예속된 백작 이하와는 구별되는 위상을 갖기 시작한다.
즉, 17세기 중반부터 독일어권의 Fürst는 공작보다는 낮지만 백작보다는 우월하다는 점에서 후작으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비록 서유럽권에서는 Markgraf에서 기원한 Marquis(Marquess)가 후작으로 통용되었으나, 이 무렵 신성 로마 제국의 Markgraf는 딱히 백작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지위는 아니었고, 당시에도 서유럽권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Markgraf를 Margrave로 옮겨 자신들의 후작과는 명백하게 구분해왔다. 따라서 독일권의 Markgraf(Margrave)은 변경백으로 번역하는 것이 딱히 잘못된 번역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Fürst는 서유럽에서는 Prince로 통용되는데, 문제는 서유럽에서 Prince는 공작(Duke)과 유사하거나 더 높은 칭호로 통한다. 때문에 영어 번역을 참조하여 Fürst 계열의 어휘를 '공(公)'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출간되고 있는 서적을 비롯하여 나무위키의 여러 문서에서도 Fürst 계열 어휘는 공(公)과 후(侯) 중 어느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여 난잡하게 번역되고 있다. 언어의 사회성을 고려하면 대대적으로 수정하자는 움직임이 없는 한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1.2. 신성 로마 제국의 주교후의 번역시 Prince-bishop
(한국어) | (대)주교공, (대)주교후 |
(독일어) | Fürst(erz)bischof |
(영어) | Prince-(arch)bishop |
3.2. 일부 왕자 및 왕손에게 주는 작위로서의 Prince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용례로, 일부 왕자(王子)나 왕손(王孫)들이 받는 작위로서의 Prince가 있다. 이 경우 Royal'을 앞에 붙여서 다른 프린스와 구별하기도 한다. 보통 "Prince of 국명"을 쓰고 거기에 부가하여 다른 작위도 이어서 불렀다.단, Prince 그 자체는 왕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위'이며, 따라서 모든 왕자가 곧 Prince인 것도 아니다. 독일계 국가에서는 군주의 모든 직계 적자 후손들에게 왕자를 의미하는 Prinz(英 Prince) 작위가 주어졌지지만, 에스파냐의 경우 설령 적출이라도 장남만 Principe(英 Prince) 작위를 받는다.[21] 영국의 경우 현대에 Prince 작위를 주는 조건이 완화되었다.
또한 제후인 통치가문의 적자 후손들도 Prince 작위를 쓴다. 가령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사부아 공자 외젠은,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의 증손자이기는 해도 본가에서 분리되어 사보이아카리냐노 가문을 만든 할아버지 톰마소 프란체스코(Tommaso Francesco di Savoia, Principe di Carignano)는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의 막내아들이었고, 외젠의 아버지 외젠 모리스는 톰마소 프란체스코의 막내아들으로 프랑스의 작위였던 수아송 백작위와 드휴 백작위를 가졌으며,[22] 외젠은 또 외젠 모리스의 막내아들이다. 그러니 Prince(Principe)를 단순하게 왕자로 일괄 번역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물론 이 경우는 영역제후도 아니므로, 공작도 아니고 후작도 아니다. 그저 통치가문[23]의 후손으로 고귀한 혈통을 나타낼 뿐이다.
다른 제후국이나 왕국보다 끗발을 높인 오스트리아(獨 Erzherzog, 英 Archduke, 韓 대공)[24]와 러시아의 경우(露 Великий Князь, 英 Grand Duke, 韓 대공)[25][26]도 각각 왕족이면 대공 칭호를 수대를 내려가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27] 단, 적법한 결혼으로 태어난 적자에게만 쓰였는데, 근친혼이나, 신분에 맞지 않으면 결혼을 안 하던가, 결혼을 해도 자식이 없던가 하는 식이었기에 숫자가 적절히 조절되었다. 다른 귀족 가문도 차남 이하는 장남 보험용으로 하나 정도 남기다가 성직자나 군인이 되도록 하여 숫자를 줄여왔다.[28][29] 특히 가톨릭 교회는 성사를 치른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만 적자로 인정하였고, 훗날 개신교 제후도 적자들만 상속권이 있었으며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귀족의 지위가 상속되지 않았던 바, 역시 숫자가 조절된 것이다.
참고로 러시아 황족에게 주어지는 러시아 대공(Grand Duke/Grand Prince of Russia)이나 합스부르크 가문의 구성원에게 주어지는 작위인 오스트리아 대공(Erzherzog von Österreich), 올덴부르크나 비텔스바흐 가문의 후손에게 주어지는 작위인 공작(Duke)[30] 등과 같이 실제 통치를 하는 군주가 아니라 한 나라의 왕자(혹은 공자)에게 주어지는 예우상의 작위에 불과한 프린스(Prince)는 실제 통치 군주로서의 Prince와는 활용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왕자를 의미하는 프린스의 정식 표기는 Prince 이름 of the United Kingdom이었다.[31] 그러나 왕자를 의미하는 예우상의 작위가 아닌, 실제 국가를 통치하는 프린스는 위의 표기와 다르게 이름, Prince of 지명로 이름이 앞에 오도록 표기했다. 정식 호칭도 달랐는데, His/Her Serene Highness The Prince of 지명로 표기한다. 현재 군주의 작위가 프린스인 모나코를 예로 들자면, 현재 모나코의 군주인 알베르 2세는 모나코 공자 시절엔 His Serene Highness Prince Albert of Monaco[32]로 불렸으나, 군주로 즉위한 이후엔 His Serene Highness The Sovereign Prince of Monaco로 불리고 있다.
동아시아의 세자에 대응하는 호칭은 Crown Prince다.
여담이지만, 현재에도 옛 유럽 통치가문의 정식 후손들은 모두 형식적이지만 Prince 칭호를 쓰고 있다.[33]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인 사우드 가문(House of Saud) 사람들이 다 합쳐서 15,000명 정도 되는데 직계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가 prince라고 불린다. 따라서 양녕대군 16대손 이승만이 외국에서 자신을 프린스라고 얘기했다고 해도 딱히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34] 즉, prince와 왕자가 1대1로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3.2.1. 프랑스에서의 Prince
3.2.1.1. 프랑스 왕국에서의 Prince
독일어권에서는 Herzog보다 위계가 낮은 Fürst를 주로 떠올리는 반면, 프랑스 및 그 영향을 받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등 서유럽에서는 보통 Prince라 하면 왕실 구성원으로서 왕국에서 왕 아래 가장 높은 계급이나 가문작위 보유자를 의미했다.[35] 물론 Prince라고 전부 같은 것은 아니었고, 앙시앵 레짐 하 프랑스에서는 Prince 간에 서열 구분이 있어 아래와 같이 분류했다. 대체적으로 왕족이거나 통치가문이면 공작(duc)보다 위였고 아닐 경우 공작보다 아래였다.참고로 프랑스의 Prince는 Prince de Condé (콩데 대공)나 Prince de Conti (콩티 대공)처럼 작위로 사용된 경우도 여럿 있으므로 작위의 성격과 신분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3.2.1.1.1. Famille du roi
왕의 가족들 (Royal Family)프랑스의 아들딸이라고도 한다. 정확히는 왕의 자녀들은 프랑스의 아이들, 왕의 손자녀들은 프랑스의 작은 아이들이라고 불렸으며 본래는 프랑스의 아들딸이라는 칭호만 있었으나 루이 13세의 남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 드 프랑스가 자신의 딸들의 서열을 위해 프랑스의 작은 아이들이라는 칭호를 만들자 주장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이들은 왕의 직계 가족으로 현직 국왕 본인, 왕비, 왕대비, 왕자녀들, 그리고 왕과 왕태자의 친손자녀들과 그 배우자들이다. 외손자녀는 포함되지 않는다. 흔히 알려진 '왕실'과 동일한 뜻. 즉, 해당 작위는 우리가 프린스 하면 흔히 떠올리는 왕자의 의미에 더욱 가까운 작위이다.
3.2.1.1.2. Princes du sang
Princes of the Blood.[36]방계 왕족으로 재위 중인 국왕의 증손자녀들, 그리고 전직 국왕의 적자[37]들의 남계 후손들이다. 즉, 왕위를 물려받아야 할 장남과 그 직계 후손이 아닌 방계 왕족들이 이 계급에 해당된다. 따라서 원칙상으론 위그 카페의 모든 부계 적자 후손들은 Princes du sang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 모든 방계 왕족들이 Princes du sang가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Princes du sang 작위가 발루아 왕조를 거쳐 부르봉 왕조 시대에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루아 왕조와 부르봉 왕조의 가장 마지막 공통 중시조인 성왕 루이 9세의 후손이 아닌 방계 후손들은 Princes du sang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라틴 제국의 황족이던 카페-쿠르트네 가문 (Capetian House of Courtenay) 역시 그 예로, 부계로 따지면 루이 9세의 증조부인 루이 7세의 동생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Princes du Sang의 칭호를 받지 못했다. 물론 이들은 이에 반발하여 수 차례 이의를 제기하며 Princes du Sang를 자칭했지만[38] 백년전쟁을 거치면서 강해진 왕권 앞에선 일개 귀족의 청원 따위는 묵살되었다. 심지어 발루아 왕가 치세에는 부르봉 가문의 직계 분가인 부르봉-카렌시 가문조차 Princes du sang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1530년에 가문이 아예 단절될 때까지 왕실추밀원에도 입각하지 못했다.[39]
Princes du sang 작위를 가진 이들 중 가장 왕위 계승 서열 높은 자에겐 Premier prince du sang (First Prince of the Blood)라는 작위를 주어 다른 Prince du sang들과 차별성을 두었는데, 우리가 알만한 대표적인 Prince du sang 가문들은 대부분 Premier prince du sang을 한 명 이상 배출해냈다. 부르봉 왕조의 시조인 앙리 4세, 부르봉-오를레앙 왕조의 시조인 루이필리프 1세 역시 Premier prince du sang의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한 것이었다. 한국사로 치면 조선 후기 대원군 작위를 작위의 하향조정을 특별히 면제받아 계속 세습한 대원군가 종손이나 중국사로 치면 청나라의 마찬가지로 작위의 하향조정을 특별히 면제받아 친왕 작위를 계속 세습한[40] 소위 철모자왕과 비슷한 개념이다. 역대 Premier prince du sang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역시 Prince du sang와 마찬가지로 발루아 왕조를 거쳐 부르봉 왕조에 완성된 것이므로 최초의 Premier prince du sang 역시 발루아 왕조 중기부터 임명되었다. Premier prince du sang은 6개 가문과 14명이 있었고 이 중 4명은 프랑스 국왕이 되었다. 추가적으로 부르봉-방돔 가문의 앙투안 드 부르봉과 앙리 드 부르봉은 각각 공동왕, 단독왕으로서 나바라(나바르)의 국왕에 올랐다.[41]
가문 | 이름 | 기간 | 비고 |
발루아-오를레앙 가문 | 루이 도를레앙(Louis d'Orléans) | 1465 ~ 1498 | 오를레앙 공작, 루이 2세. 밀라노 공작, 루이지 1세[42]. 나폴리 국왕, 루이지 3세[43]. 발루아-오를레앙 왕조의 창시자. |
프랑수아 당굴렘 (François d'Angoulême) | 1498 ~ 1515 | 앙굴렘 백작, 프랑수아. 밀라노 공작, 프란체스코 2세[44].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창시자. | |
발루아-알랑송 가문 | 샤를 달랑송(Charles d'Alençon) | 1515 ~ 1525 | 알랑송 공작, 샤를 4세. |
부르봉-몽팡시에 가문[45] | 샤를 드 부르봉(Charles de Bourbon) | 1525 ~ 1527 | 부르봉 공작, 샤를 3세. 몽팡시에 백작, 샤를. 반역죄로 추방.[46] |
부르봉-방돔 가문[47] | 샤를 드 부르봉(Charles de Bourbon) | 1527 ~ 1537 | 방돔 공작, 샤를. 부르봉 가문의 수장. |
앙투안 드 부르봉(Antoine de Bourbon) | 1537 ~ 1562 | 방돔 공작, 앙투안. 나바르 공동왕, 안토니오[48]. | |
앙리 드 부르봉(Henry de Bourbon) | 1562 ~ 1589 | 방돔 공작, 앙리[49]. 나바르 국왕, 헨리케 3세[50]. 부르봉 왕조의 창시자. | |
부르봉-콩데 가문 | 앙리 드 부르봉(Henry de Bourbon) | 1589 ~ 1646 | 콩데 대공 (Prince de Condé), 앙리 2세. 앙리 4세의 5촌 조카[51]. |
루이 드 부르봉(Louis de Bourbon) | 1646 ~ 1686 | 콩데 대공 (Prince de Condé), 루이 2세. 대(大) 콩데(Le Grand Condé). | |
앙리 드 부르봉(Henry de Bourbon) | 1686 ~ 1709 | 콩데 대공 (Prince de Condé), 앙리 3세. | |
부르봉-오를레앙 가문 | 루이 도를레앙(Louis d'Orléans) | 1709 ~ 1752 | 사르트르 공작, 루이[52]. 오를레앙 공작, 루이[53]. |
루이 필리프 도를레앙(Louis Philippe d'Orléans) | 1752 ~ 1785 |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리프 1세. | |
루이필리프 조제프 도를레앙 (Louis Philippe Joseph d'Orléans) | 1785 ~ 1793 |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리프 2세. 필리프 에갈리테[54]. | |
루이필리프 도를레앙(Louis Philippe d'Orléans) | 1814 ~ 1830 |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리프 3세.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 1세. 부르봉-오를레앙 왕조의 창시자. |
3.2.1.1.3. Princes légitimés
Legitimated Princes.국왕의 서자로 공인된 이들과 그들의 남계 후손들이다. 친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들은 제외된다. 대표적으로 앙리 4세의 사생아, 세자르 드 부르봉을 시조로 하는 방돔 가문이 있었다.[55] 이들은 왕위 계승권은 없었지만 준왕족으로 대우 받았고 여성의 경우 대부분 부르봉 가문의 분가의 남성들과 정략결혼을 했다.
3.2.1.1.4. Princes étranger
Foreign Princes직역하면 외국 군주들'[56]이지만 타국 통치가문을 말하는 게 아니라 특수한 몇몇 가문들을 말한다. '준왕족' 대우를 받는다고 적혀있는 대부분의 가문이 이에 속한다.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타국 통치가문의 방계가문이지만 프랑스 귀족에 속하는 가문들이다. 가장 유명한 가문으로는 로렌 (로트링겐) 가문의 분가로 위그노 전쟁 당시 활약한 기즈 가문[57], 이탈리아 사보이아 가문의 프랑스계 분가인 사부아느무르 가문 등이 있다. 두 번째는 소국의 통치가문으로 프랑스 궁정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모나코 공(Prince)인 그리말디 가문이 있는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프랑스계 프린스이다.[58] 마지막은 주권국의 계승권을 가진 국내 귀족으로 로앙 가문과 라 트레모이예 가문 등이 있었다.
3.2.1.1.5. Princes de titre
Titular Princes.프린스 칭호만 가지고 있으면서 주권국의 계승권과 관계가 없을 경우 이에 속한다. 이쪽은 작위의 서열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 관습적으로 공작급이나 그보다 아래로 보았다. 실질적으로 대공급 프린스는 그 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Prince 작위는 대부분 Princes de titre 신분이었다.
원래 신성 로마 제국 소속이었으나 프랑스 왕국의 영토 확장으로 편입된 영역제후들이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국왕의 신하가 되면서 기존 프랑스 왕국의 백작과 동일하게 취급되기를 꺼렸으므로, 기존에 자칭하던 'Fürst' 칭호를 프랑스어로 옮긴 'Prince' 칭호 사용을 요청한 것이 그대로 승인된 것이다.
3.2.1.2. 프랑스 제국에서의 Prince
프랑스 제1제국에서 Prince는 모든 작위들 중 가장 높은 서열의 작위였다. 프랑스 제국의 작위 등급은 다음과 같다.- 대공과 공작(Princes and Dukes)
- 황실대공(Princes of the Imperial Family)
- 제국대공(Prince Imperial)
프랑스 황제의 확정 상속인, 즉 제국의 황태자에게 주어지는 작위로 나폴레옹 2세에게 주어졌던 작위이다. 나폴레옹 2세에게는 추가적으로 로마왕 (King of Rome)이라는 작위도 주어졌다. 해당 작위는 프랑스 제2제국에도 있었는데 제2제국의 황태자이자 나폴레옹 3세의 아들이던 루이 나폴레옹은 영국군 장교로 줄루 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했다. - 프랑스 대공 (Prince of France)
황제의 가족에게 주어졌던 작위로 보나파르트 왕조의 일원이 아닌, 외젠 드 보아르네 (나폴레옹의 양자)나 조아킴 뮈라 (나폴레옹의 매제) 등도 해당 작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해당 작위의 프랑스어 명칭은 princes français인데 princes français를 영어로 번역하면 French Prince가 된다. 따라서 어찌보면 Prince of France라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일 수 있다. - 주권대공(Sovereign Prince)
해당 작위는 제국 직속 산하의 제후국 (Principality)을 다스리는 군주에게 주어졌던 작위로 장 란이나 장바티스트 쥘 베르나도트 등이 해당 작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 대영지를 보유한 공작(Duchies Grand Fiefs)
프랑스 제국에서 유일하게 Prince보다 높은 Duke로 광활한 영지를 지닌 공작을 의미했다. 다만 이들에게 영지를 직접 다스릴 권한 (주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 승리대공(Victory Princes)
고대 로마에 존재하던 승리 칭호 (Victory Title)에서 유래된 작위로 주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이의 공을 세우기 위해 주어졌다. - 승리공작(Victory Dukedoms)
승리대공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에 존재하던 칭호 (Victory Title)에서 유래된 작위로 주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이의 공을 세우기 위해 주어졌다. - 그 외의 공작위(Other Dukedoms)
- 제국백작(Counts of the Empire)
프랑스 제국의 백작위는 성씨+백작으로 불렸는데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총 251개의 백작위가 있었다고 한다.
- 제국남작(Barons of the Empire)
백작위와 마찬가지로 성씨+남작으로 불렸다고 하며 총 1,516개의 남작위가 있었다고 한다.
- 제국기사(Knights of the Empire)
총 385개의 기사작위가 있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위의 한국어 번역들은 공식적인 번역은 아니다.
프랑스 왕국 시절만 해도 프랑스의 Prince는 주로 왕자와 같은 신분으로 사용되었고 작위로 사용된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공작(Duc/Duke)과 후작(Marquis) 사이에 해당하는 작위였으나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 전 유럽을 영향력 아래에 두면서 차츰 Prince가 대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4. 번역의 어려움
왕위 계승자, 왕자, 군주의 종친, 귀족 제후, 군주에 대한 칭호로써 무려 4~5개의 뜻을 동시에 나타내는 단어인 탓에 번역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심지어 귀족 제도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옛 일본 제국의 화족 제도에서 프린스 작위를 그냥 공작으로 번역해버렸기에[59] 그 뜻을 온전히 나타낼 역어가 없는 붕 뜬 단어가 되어 있다.독일어에서는 남자친족은 Prinz, 제후작위는 Fürst로 구분하는데, Fürst 자체가 독일어권을 벗어나면 그 용례가 적어서인지 영어권이나 불어권에서도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Prince라고 통칭한다. 보통 명확한 구분이 필요할 때는 주권을 가진 제후를 Sovereign Prince라고 표현한다.
영역제후 작위에 대한 게 아니어도, 군주로 해석해야 할 부분을 왕자로 번역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서양권 매체에서 왕자나 공주는 보이는데 왕이 안 보이고 왕자나 공주가 가장 높은 신분으로 나온다면 십중팔구 작위로서의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60]가 유명한 사례. 왕보다 높은 존재는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비슷하지만... Prince of Monaco를 모나코 왕자라고 오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찬가지로 영국 왕세자의 칭호 '프린스 오브 웨일즈(Prince of Wales)'를 웨일즈 왕자로 오역하는 경우도 흔하다.
소국 군주로서 칭호와 왕위 계승자로서 칭호인 프린스를 일괄적으로 대공(大公)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웹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번역어인데다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러한 의미로써 등재되어 있는 단어일 정도로 저명성이 높다.[61] 다만 상기했듯 독일 지역에서 귀족 작위로서 Prince(Fürst)는 Duke(Herzog)보다 낮은 작위인 관계로(...) 공작보다 높다는 느낌을 주는 대공이라는 번역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래도 대공이라는 번역은 적어도 왕자의 칭호와 소국의 군주 칭호라는 의미 자체는 둘 다 포함하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개선된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위 문단에서도 말했듯 이 혼선은 비단 한국어에서만이 아니라 프랑스어와 영어에서도 동일한지라 나름 핑계거리는 있다(...). 영어나 프랑스어의 Sovereign Prince 같은 단어를 참고한다면, 독일어의 퓌르스트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는 '제후공(諸侯公)'이라는 역어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소수 견해로 군(君)이라는 글자가 원래는 군주를 칭하는 일반 명사지만, 작위 인플레로 왕위 계승자에게 주는 단어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프린스와 일맥상통하다고 보아, 프린스를 군(君)으로 번역하자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군주론(君主論)의 원제는 Il Principe, 영어로는 The Prince이다. 즉, Prince를 군(君)으로 번역한 실제 사례가 이미 있다. 이 경우 Principality/Fürstentum는 군주국으로 번역이 가능하며, 통치자로서 Prince는 군주 또는 대군주, 왕족으로서 Prince은 군 또는 대군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영미권에선 조선의 대군을 Grand Prince로 번역하기도 한다. 다만 작위로서 군작은 오등작보다 계급이 낮기 때문에[62] 프린스의 번역어로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위의 Fürst에 대한 설명 문단에서도 언급했듯 후(侯) 혹은 제후(諸侯)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영어의 'kings and princes' 라는 표현은 한국어로 '왕후장상'과 거의 완벽하게 합치되는 표현으로 온갖 높으신 귀족들을 가르키는 말이다. 다만 이미 변경백 (Markgraf/Marquis/Marquess)를 후작 (爵)으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후(侯)로 번역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서양 언어에서는 비교적 일관적인 뜻이 존재하는 단어이지만, 한국어의 현대 언중들 용법에는 합치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 문맥에 따라, 번역자가 재치를 발휘하여 의미를 살려야할 단어이다.
5. 파생: 프린세스
Princess는 Prince의 격이 떨어지고, 유럽에서 여권 신장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Prince에 대응되는 여성형으로 '나중에 만든 단어'인지라 당연히 군주로서의 사용은 별로 없고[63] 보통 프린스의 아내, 왕족 여성에게 쓰이는 칭호이다.6. 나무위키에 등재된 군주 및 제후(프린스, 보이보드) 목록
- 블라드 가시공 - 왈라키아 공국의 보이보드
- 슈테판 3세 - 몰다비아 공국의 보이보드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프로이센 왕국의 재상. 빌헬름 1세 시대에 비스마르크후(Fürst von Bismarck)를 받았다. 퇴임 후 빌헬름 2세에게 받은 라우엔부르크 공작(Herzog zu Lauenburg) 작위는 본 문서와는 다른 작위이며, 일대작위였던 탓에 그의 사후 폐지된다.
- 카를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 - 프로이센 정치가. 하노버 지역의 귀족 출신으로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재상의 자리에 올라 무기력했던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를 보좌하여 프로이센 왕국을 지켜냈다.
- 후녀디 야노시 - 트란실바니아의 보이보드, 헝가리 왕국 섭정
- 필립 마운트배튼 -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국서,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공[64]
7. 관련 문서
[1]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사용된 왕족의 칭호로 간주되기에 사용되는 번역어이다. 본래 군(君) 칭호는 고구려에서 왕족에게 부여하였고 고려에서는 왕자들만 사용한 특수한 칭호였으나, 오등작 체계가 정비되면서 사용되지 않는다. 이후 원 간섭기에 원나라의 요구로 제후국의 격식에 맞는 관제를 도입하면서 부활하고 제후가 책봉하는 작위 칭호로 격이 낮아졌다. 또한 외국의 작위들은 보통 오등작 체계에 맞춰 번역하는 관례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군(君) 칭호로 번역하는 경우는 드물다.[2] (특히 영역의) 통치자를 일컫는 말로 쓸 때 사용한다. 맥락상 군주론처럼 독립적 통치자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면 "군주", 영역제후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면 "제후"로 번역한다.[3] 현대 유럽의 소규모 독립군주국의 군주에 대한 역어로, Grand Duke 등과 Prince를 포괄한다.[4] 고대 로마사에서는 당연히 황제 및 초기 제정(원수정)을 가리킨다. 중세사에서도 문맥에 따라서는 종종 학술용어로서 중세 성기에 출현한 하부 통치계급인 성주층(castellan)에 대비되어 중세 초기부터 존재해온 상부 통치계급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5] 왕족이 퓌르스트급 작위를 받을 때 대신 수여된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 Fürst von Wales)처럼 영역제후 작위에서 비롯한 경우는 Prinz라고 옮기지 않으니 주의.[6] 원래는 공작(Herzog)보다 낮은 변경백·방백 등의 영역제후들을 폭넓게 일컫는 통칭이었으나, 16세기 무렵부터 공작보다 낮은 여러 작위들을 Fürst 단일 작위로 통합하는 것을 황제에게 승인받는 형태로 공식 칭호로 사용하는 제후들이 등장했다. 전자는 그냥 '제후'로 번역되며, 후자는 서열상 공작보다는 아래이므로 후작이 적절하나 어원상 원래 그냥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문제로 인해 '대공'이나 '공작', '후작' 등 중구난방으로 번역된다. 그래서 그냥 아예 '퓌르스트' 혹은 영어식의 '프린스'로 그대로 음차하는 경우도 있다.[7] 어원적으론 Primus(맨 앞)와 -ceps(움켜쥐는 자, 취하는 자)로 이루어져있다. 흔히 제1시민으로 번역되지만, 어원을 그대로 직역하여 수령으로도 번역 가능하다.[8] 이외에도 같은 유래의 단어로 산스크리트어의 프라타마(prathama), 그리스어의 프로토스(prōtos)가 있으며 더 근원을 거슬러가면 모두 궁극적으로는 인도유럽조어의 어근인 *per-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9] 예컨대 영역제후로서의 prince(fürst)도 친왕으로 번역하면 오해하기 쉽다. 이는 황족이나 왕족과는 무관한 지위이기 때문이다.[10] 독일어로는 헤르초크(Herzog).[11] 원래 군주의 봉신이 봉신의 봉신보다 격이 더 높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섬기는 자의 지위가 섬김을 받는 자의 지위에 종속되었기에 "누구를 섬기느냐?"가 아주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동안 가장 흔한 작위였던 백작의 경우 군주에 직속된 영역제후들과 그렇지 못하고 다른 제후의 봉신인 자들 사이에 서열상 현격한 차이가 있었고, 심지어 성주층 백작이 영역제후층 백작의 봉신이 되는 것도 흔한 상황이었다.[12] 예컨대 동일하게 Prince를 사용하더라도, 국왕이 부여하여 His Royal Highness로 불리는 일국의 왕자(Prinz)들은 공작보다 높다고 할 수 있었지만, 공작이 부여하여 His Grand Ducal Highness나 His Serene Highness로 불리는 대공자나 공자는 당연히 공작보다 낮은 위치였다. 또한 백작가의 공자들은 당연히 백작보다도 낮은 지위였다.[13] 차라리 "Prinz"나 "Prince"로 불러주는 게 덜 헷갈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 중세 초의 관습에 따라 그냥 똑같이 작위명으로 부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툴루즈 백국에서는 백작 본인 말고도 가문원과 후손들 또한 "백작"으로 불렸다. 심지어 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스트리아 대공의 경우 대공( 및 후대의 황제) 본인이든 다른 가문원이든 구별 없이 "Erzherzog 이름 von Österreich"으로 불렸는데, 심지어 방계라도 귀천상혼으로 상속 자격을 상실한 것이 아닌 한 사용할 수 있다.[14] (독일의 작위 Fürst, 슬라브어권의 voivode, 러시아의 Князь)[15] 공·후·백작으로 Dux, Marchio, Comes 등은 기본적으로 노르드 바이킹 중무장 해적이나 마자르족 유목 경기병 마적단의 내습을 각 거점에 배치된 최소한의 수비병력으로 방어하는데 특화된 방어자 측 국경군 사령관이나 군관구사령관, 혹은 지방행정장관에서 비롯하였고, 자작으로 옮기는 Vicecomes는 그러한 관직(특히 Comes)의 보좌역이었다. 남작으로 대응하는 Baro는 비록 관직은 아니어도 어쨌든 자유민으로서 '법제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지위였다.[16] 러시아에서 Герцог(Gertsog)는 서유럽권 공작(英 duke, 獨 herzog)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17] 이런 식의 취사선택과 혼합은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노르만 왕조 정복 이래 노르드인 전통의 백작(earl), 대륙 전통인 공작(Duke)과 남작(Baron), 기사(Knight), 앵글로색슨 전통인 말단 행정관(Shire reeve)을 혼성한 통치구조를 구축하였고, 웨일스 정복 후에는 웨일스에 한하여 Prince(Fürst)를 도입하였다.[18] 모나코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Fürst, 프랑스 왕국에서는 Princes étranger(Foreign Princes)에 해당한다.[19] 원래 웨일스인이 세운 나라였고, 영국이 정복 후 왕국 확정상속인에게 관습적으로 수여했을 뿐, 왕자(Prinz)가 아닌 영역제후(Fürst)에 해당한다.[20] 16세기 이전에 황제가 공식적으로 Fürst로 승인했다는 이야기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제국제후(Reichsfürst)'로 지정한 것인 경우가 많다.[21] 계승자 이외의 왕자들은 인판테(infante), 계승자 이외의 공주들은 인판타(infanta)로 따로 칭해진다.[22] 그래서 Eugène-Maurice de Savoie-Carignan, comte de Soissons et de Dreux라고 불렸다.[23] 외젠에게는 사보이아 가문[24] 단, 오스트리아의 대공은 오스트리아 대공국 군주(대공) 자신과 함께 그 직계 후손에게도 주어졌던 것으로, 오스트리아 황제의 직계 적자후손에게는 Erzherzog und Prinz von Österreich라는 작위가 주어졌다. 따라서 오스트리아의 황족도 Prince를 사용했다고 봐야한다.[25] 정확히는 Grand Prince이나, 영미권과 불어권에선 일괄적으로 Grand-duc라고 번역한다. 물론 그들도 해당 번역이 의미 상 오역인 것은 알고 있다.[26] 19세기 말 황제의 증손자부터는 Prince of Russia(러시아 공작) 작위를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27] 그 외 브라질 제국이나 멕시코 제국에선 그냥 Prince(ss)로 칭했고 황제의 손자까지만 사용할 수 있었다.[28] 성직자의 경우, 남자는 신부, 여자는 수녀. 특히 유력한 제후 가문이라면 요지의 주교나 대주교, 혹은 수도원장이 되고는 하였다. 수도원의 경우 남자든 여자든 스스로 수도원을 세워서 원장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29] 군인의 경우, 중세 내내 많이 보이는데, 대개 가문의 재산이 상속 받는 인원보다 적었으므로 외부에서 기회를 잡고자 기사가 되고 용병으로서 전장이나 마상창시합을 전전하는 예가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장자상속제가 확산될수록, 병역의 금납화와 더불어 군조직의 관료제화 및 상비군화가 진행될수록 더 강해졌다.[30] 올덴부르크 등 독일의 대공국 중 일부는 대공세자를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에겐 'Prinz von Oldenburg'와 같은 예우 작위를 내렸고 바이에른은 공국 시절부터 공작의 혈족에게 바이에른에서의 공작(Herzog in Bayern)이라는 작위를 내렸다. 이는 게르만족 특유의 분할상속 전통의 영향으로, 중앙집권이 완료되어 더 이상 영지를 분할하지 않게 되었는데도 명목상으로나마 작위라도 분할하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많은 국가들이 Prinz 작위로 대체했지만, 일부 국가에선 여전히 Herzog 작위가 하사되었다. 더 과거로 가면 중세 남프랑스 툴루즈 백작 등에서도 보이는, 흔한 전통이다.[31] 다만 영국 내부에서는 그냥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이름으로 표기했다. 또한, 이후 왕자에게 공작위가 주어지게 된다면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지명의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32] 그러나 알베르 2세는 태어나자마자 모나코 공세자로 임명되었기에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앞의 칭호가 정식 칭호인 적은 없었다. 그의 공식적인 칭호는 His Serene Highness The Hereditary Prince of Monaco, Marquis of Baux였다.[33] 유럽의 Legitimated Princes는 일단 왕실족보나 귀족족보에 오른 사람만 Legitimated Princes 칭호를 쓸 수 있다. 당연히 정식 후손이 아니면 Legitimated Princes뿐만 아니라 Princes도 쓸 수 없다. 하다 못해 Princes라도 쓰려면, 족보에 못 올라도, 왕족의 가족관계 증명서에 이름이 올라야 한다.[34] 엄밀히 말하면 조선왕조/대한제국이라고 해서 작위 및 칭호 체계가 없던건 아니기에, 대군/친왕이나 대원군/대원왕같은 군호나 왕호가 프린스의 위치에 가깝다. 중동의 씨족사회처럼 전주 이씨 모두에게 칭호를 돌리는 관례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황적이탈한 고무로 마코를 더이상 Princess Mako of Akishino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당연히 현지 작위 체계가 있다면 현지식을 따른다. 오히려 왕손이라도 세대가 지나면 오히려 군작을 내리지 않아서 왕족이 아님을 은연중에 나타내 왔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프린스를 자칭한 건지 아닌지는 이승만 본인만이 알았겠다. 왕손이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면, Royal blood, Royal offspring, Royal descendant라고 설명하면 된다. 사실 당시 열강인 일본인도 아닌 동아시아인(가끔은 일본인마저도)이 누굴 만나려고 하거나 이러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귀족, 왕족쯤 되면 그나마 덜 무시 받기때문에 필요에 의해 사칭한 것으로 여겨진다.[35] 이들은 독일어로 번역할 때 Fürst가 아닌 Prinz로 번역되었기에, 양자 간 구분은 가능하였다.[36] 한국어 위키백과에선 혈통친왕이라고 번역하고 있다.[37] 1714년 7월에 루이 14세가 자신의 서자인 멩 공작과 툴루즈 백작을 Princes du sang으로 인정하고, 다른 왕족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가진다고 선언했지만 1715년, 루이 14세가 사망하자 고등법원은 이를 무효화 시키면서 다시 적자의 후손만 Princes du sang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38] 프랑스 정부에선 쿠르트네 가문의 Princes du Sang 칭호를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이 보유한 작위로만 호칭했다.[39] 이는 부르봉 가문에 대한 일종의 견제이기도 했다.[40] '세습망체'라고 한다.[41] 앙리 드 부르봉은 프랑스의 앙리 4세이기 전에 나바라의 헨리케 3세였다.[42] 1499년부터 1512년까지.[43] 1501년부터 1504년까지.[44] 1515년부터 1521년까지.[45] 부르봉-몽팡시에 가문은 부르봉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 샤를 3세의 아내, 쉬잔 드 부르봉이 부르봉 본가의 후계자였고 부르봉 본가이 단절될 경우 부르봉-몽팡시에 가문이 부르봉 본가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부르봉-몽팡시에 가문이 그 정통성을 이어 받아 부르봉 본가가 되었다.[46] 샤를 드 부르봉은 부르봉 가문의 방계 가문이던 부르봉-몽팡시에 가문의 후계자였고 그의 아내였던 쉬잔 드 부르봉은 부르봉 본가의 후계자였다. 샤를은 아내와 결혼한 이후 합법적으로 부르봉 공작위와 영지를 상속 받았는데 아내가 사망하자 부르봉 공작위에 대한 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 루이즈 드 사부아 (루이자 디 사보이아)가 혈족관계 상 자신이 더 쉬잔과 가까운 사이라며 부르봉 공작위를 요구했고 샤를에게 정략결혼을 제안했다. 그러나 후사가 없던 샤를은 자신보다 14살이나 많은, 55세의 폐경기의 여성과의 결혼을 거부했고 이를 빌미로 프랑수아 1세가 반역죄라는 죄목으로 샤를을 추방시켰다. 이후 샤를은 이탈리아로 망명하여 프랑수아의 숙적이던 카를 5세의 군대 지휘관으로 복무하며 충성을 맹세 하였으나 후에 카를이 프랑스를 공격할 때 전사하고 만다.[47] 샤를 드 부르봉-몽팡시에가 반역죄로 추방된 이후 부르봉-방돔 가문이 부르봉 본가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가문의 수장임을 상징하던 부르봉 공작위는 주어지지 않았다.[65] 우리가 아는 그 부르봉 왕조와 스페인의 보르본 왕조, 보르본 왕조의 방계 가문인 보르보네-양시칠리아 왕조, 그리고 현재 룩셈부르크의 대공위를 차지하고 있는[66] 부르봉-파르마 가문 모두 부르봉-방돔 가문의 직계 후손이다.[48] 아내인 호아나 3세가 나바라(나바르)의 여왕으로 즉위하자 공동 왕으로 즉위했다.[49] 1562년에 즉위. 이후 자신의 사생아였던 세자르 드 부르봉 (César de Bourbon)에게 방돔 공작을 물려주었다.[50] 1572년부터 1610년까지 재위. 참고로 프랑스의 왕으로선 1589년부터 1610년까지 재위했다.[51] 루이 1세 드 부르봉-콩데의 손자로 루이 1세 드 부르봉-콩데는 나바라의 공동 국왕이던 앙투안 드 부르봉-방돔의 동생이자 제 1대 방돔 공작인 샤를 드 부르봉-방돔의 아들이었다.[52] 1703년부터 1723년까지.[53] 1723년부터 1752년까지.[54] Philippe Égalité. 평등한 필리프라는 의미로 혁명 이후 스스로 자신의 모든 작위를 버린 뒤 개명한 이름이다. 왕족이면서 프랑스 혁명에 참여하여 자금을 조달했으나, 프랑스의 왕위를 노리고 혁명 세력의 통수를 치려던 것이 발각되어 역으로 처형당하고 만다.[55] 부르봉-방돔 가문은 역사상 2번 있었는데 1차 부르봉-방돔 가문은 1393년, 부르봉 가문의 창시자이자 초대 부르봉 공작이던 루이 1세의 4대손, 루이가 방돔 백작에 오르면서 개창되었으며 이때의 부르봉-방돔 가문은 prince du Sang 계층에 속해있었다. 이후 앙리 4세의 할아버지였던 샤를 드 부르봉 시절 부르봉-방돔 가문이 부르봉 가문의 본가가 되었고, 후에 3대 방돔 공작이자 나바르 국왕이던 앙리 드 부르봉이 프랑스의 앙리 4세가 되면서 자신의 서자에게 쓸모 없어진 방돔 공작위를 물려주면서 2차 부르봉-방돔 가문이 탄생했다.[56] 프랑스어와 영어 모두 외국이라는 뜻보다는 다른 또는 다른 곳, 바깥이라는 뜻에 가깝다. 원래 뜻이 바깥이었고, 외국이라는 뜻은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즉, 직역하자면, 영역 바깥의 군주들이라는 뜻이 된다.[57] 이들은 카롤루스 대제의 후예이기도 하다.[58] 정확히는 독일의 Fürst와 프랑스의 Prince에 모두 속한다.[59] 그래서 일본 화족의 공작은 번역 시 Duke가 아닌 Prince로 번역한다.[60] 내용을 잘 뜯어보면 왕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prince가 아니라 소행성 B-612호의 군주로서의 prince라는 걸 알 수 있다.[61] 표준국어대사전 기준으로 Duke와 Prince 구분은 "대공"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대공국과 공국의 정의 및 용례에서나 드러나는 편이다. 따라서 Duke든 Prince(Fürst)든 간에 독립국 군주라면 "대공"으로 불러도 괜찮다. 물론 현대가 아닌 중세~근대풍 배경이라면 Grand Duke나 Grand Prince 등이 범람할 테니, 이 경우까지 대공이라고 번역해버리면 심히 곤란한 상황이 초래된다.[62] 정확히는 후(侯)와 실질적 권력은 같지만 공인되지 못한 경우 사용하던 단어였다.[63] 역사상 Princess의 칭호였던 여성 주권 군주는 모나코 공국의 루이즈 이폴리트와 안티오키아 공국의 콩스탕스 정도가 있다.[64] 그 외에 이 논쟁에서 후보로 거론된 작위로는 영연방 공(Prince of the Commonwealth), 대공(Prince Consort), 왕국 공(Prince of the Realm, 적절한 번역인지는 불확실), 왕공(Prince Royal) 등이 있었다. 여기서 Prince Consort를 번역한 대공은 일반적인 대공 작위가 아닌 유럽 여왕의 국서를 칭하는 대공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유럽에서, 왕가의 황태자나 여왕의 부군(夫君)을 이르는 말'이라고 지정되어 있다.
[65] 부르봉 공작위는 1527년 이후 계속해서 공석이었다가 앙리 4세가 즉위한 이후 자신의 사촌이던 앙리 2세 드 콩데 대공에게 작위를 넘겼다.[66] 장 대공의 아버지인 펠릭스 공자가 부르봉-파르마 가문 출신인지라 자연스럽게 룩셈부르크 대공가 구성원들 역시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구성원이 되었지만 장 대공의 자녀가 본가와 귀천상혼으로 갈등을 겪게 되자 장 대공은 본가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어머니인 샤를로트 여대공의 가문명인 나사우-바일부르크를 왕조명으로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는 화해를 했기 때문에 룩셈부르크 대공가 구성원들은 모두 부르봉-파르마의 공자/공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