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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2:40:01

올덴부르크 왕조

1. 개요2. 역사3. 본가와 분가 목록4. 초기 가계도
4.1. 엘리마르 1세 ~ 크리스티안 6세4.2. 디트리히4.3. 크리스티안 1세 ~ 한스
5. 역대 종가 및 수장6. 가문 전체 구성원 및 계승 순위7. 여담

1. 개요

파일:올덴부르크 가문 기본 문장.svg
올덴부르크 가문의 문장
독일 올덴부르크 출신의 왕조.

2. 역사

시조는 올덴부르크 백작 엘리마르 1세로 1448년 전까지 올덴부르크 백국을 다스렸다. 이하는 올덴부르크의 백작 크리스티안 7세덴마크 국왕으로 즉위하기 전의 역대 올덴부르크 백작이다.올덴부르크 백작 크리스티안 7세칼마르 연합의 맹주인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세로 선출되면서 올덴부르크 왕조의 수장인 크리스티안 1세의 후손들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왕실이 된다.

이하는 올덴부르크 왕조의 본가인 덴마크 왕실로부터 분가한 올덴부르크 백작가. 올덴부르크 왕조의 최초의 분가이다.덴마크 국왕으로 선출된 크리스티안 1세는 고향인 올덴부르크 백국을 동생 게르하르트에게 물려줬고, 올덴부르크 백작위는 게르하르트의 후손들에게 상속되었으나, 1667년 안톤 귄터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단절되었다. 이후 올덴부르크 백작위는 다시 크리스티안 1세의 후손들인 덴마크 국왕이 겸임하다가 크리스티안 7세 대에 이르러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의 공작인 러시아 제국파벨 1세와 영지 교환을 통해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은 덴마크령 홀슈타인 공국으로 재합병되었고, 올덴부르크는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차자 계열[1]로 넘어가 공국이 되었고,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쳐 대공국으로 승격되었다.

올덴부르크 왕조 본가는 1863년 프레데리크 7세가 자녀 없이 사망하면서 단절되었다.

올덴부르크 왕조는 많은 분가들이 있었지만 크게 보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 왕조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로 나뉘어진다.

프레데리크 1세의 삼남 아돌프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를 창립했다.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는 1751년부터 1818년까지 스웨덴의 왕위를 차지했고, 종주인 카를 페터 울리히가 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홀슈타인고토로프 왕조의 종가는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가 되면서 러시아 제국의 황실이 되었다.

프레데리크 1세의 장남 크리스티안 3세의 삼남 한스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 왕조를 설립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 왕조는 여러 분가로 나뉘어졌지만 19세기가 되기도 전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베크 가문 빼고 모두 단절되었고, 1931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도 단절되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베크 가문은 1825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가문으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1863년 올덴부르크 왕조 본가의 마지막 수장이자 덴마크 국왕프레데리크 7세가 자녀 없이 사망해서 올덴부르크 왕조 본가가 완전히 단절되자,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인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사남 크리스티안 9세가 덴마크 왕위를 계승했고, 1931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이 단절되자,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수장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가 올덴부르크 왕조의 수장이 되어서 현재까지 그의 후손들로 이어지게 된다.

3. 본가와 분가 목록

4. 초기 가계도

올덴부르크 백작인 사람만 기재했으며, 그 외 올덴부르크 백작이 아닌 사람들과 여자는 생략.

4.1. 엘리마르 1세 ~ 크리스티안 6세

4.2. 디트리히

4.3. 크리스티안 1세 ~ 한스

5. 역대 종가 및 수장

칼마르 연합의 군주로 즉위한 이후 1863년까지는 올덴부르크 가문 본가의 수장인 덴마크 국왕이 올덴부르크 가문 전체의 수장이었지만 1863년 단절되면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의 수장이 올덴부르크 가문 전체의 수장[4]이 되었다. 그러나 1931년 단절되면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가 올덴부르크 가문 전체의 수장 지위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그의 후손이 전체 수장의 역할을 이어받게 된다.

6. 가문 전체 구성원 및 계승 순위

현재 올덴부르크 왕조의 수장이자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수장은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다.

글뤽스부르크 왕조 본가는 살리카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여성의 계승권은 없다. 따라서 크리스티안 10세의 후손인 현 덴마크 왕족[5]와 그녀의 후손, 그리고 마르그레테 2세의 여동생 베네딕트 공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계승권이 없고, 마르그레테 2세 이전에 분가한 남성 왕족과 크리스티안 9세의 후손으로 덴마크 왕족이었다가 국왕 허락 없이 결혼한 남성들과 후손들만 계승권이 있다. 여담으로, 마르그레테 2세, 베네딕트 공주의 여동생인 아네마리 전 그리스 왕비도 당연히 계승권이 없지만 남편 콘스탄티노스 2세가 계승권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 손자들은 계승 서열에 있다.

이하는 계승 순위. 글뤽스부르크 왕조 본가부터 본가와 가까운 분가순이다.

7. 여담


[1] 파벨 1세는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프리드리히 4세-카를 프리드리히-표트르 3세로 이어지는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직계였으며, 초대 올덴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는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로 이어지는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차자 계열이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의 형이 스웨덴 국왕 아돌프 프레드리크이다.[2]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 공작 알렉산더의 차녀. 안톤 귄터와는 11촌이다.[3]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공동왕인 펠리페 1세후아나 1세의 차녀. 이사벨의 오빠와 남동생이 신성 로마 황제카를 5세, 페르디난트 1세다.[4] 같은 해에 올덴부르크 가문 본가가 세습하던 덴마크 왕위는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크리스티안 9세에게 돌아갔다.[5] 원래는 크리스티안 9세의 모든 남계후손에게 계승 자격을 주었기 때문에 노르웨이,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왕자들도 계승 자격이 있었으나, 프레데리크 9세 때부터 크리스티안 10세의 후손에게만 계승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변경되어 노르웨이와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왕족들은 덴마크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되었다.[A] 글뤽스부르크 왕조 본가.[A] [A] [A] [A] [A] [A] [B] 덴마크 글뤽스부르크 왕조.[C] 노르웨이 글뤽스부르크 왕조.[C] [C] [B] [B] [D]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왕조.[D] [D] [D] [D] [D] [D] [E] 윈저 왕조.[E] [E] [E] [E] [E] [E] [E] [E] [D] [B] [B] [B] [B] [B] [B] [B] [F]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F] [F] [F] [F] [F] [F] [F] [ㄹ] [F] [F] [F] [F] [G]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G] [G] [G] [G] [G] [G] [G] [G] [G] [G] [G] [G] [G] [G] [G] [G] [G] [74] 크리스티안 2세도 있긴 한데 크리스티안-프레데리크 이름을 돌려쓴 이유가 크리스티안 1세-프레데리크 1세-크리스티안 3세 3대가 이름을 돌려쓰면서 확립된 규칙이다. 크리스티안 2세는 본인 아들들의 이름을 아버지 한스의 이름을 따 한스나 처가인 합스부르크 가문막시밀리안 1세의 이름을 따 막시밀리안으로 지었다.[75] 올해 1월초까지만 해도 3곳이었으나 마르그레테 2세의 퇴위로 본국인 덴마크가 빠지게 되며 2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