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c0013><colcolor=#fff> | |||
출생 | 1899년 3월 11일 | ||
덴마크 콩겐스 륑뷔 소르겐프리 궁전 | |||
사망 | 1972년 1월 14일 (향년 72세) | ||
덴마크 코펜하겐 | |||
재위기간 | 덴마크 국왕 | ||
1947년 4월 20일 ~ 1972년 1월 14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c0013><colcolor=#fff> 가문 | 글뤽스부르크 가문 | |
이름 | 크리스티안 프레데리크 프란츠 미카엘 칼 발데마르 게오르그 (Christian Frederik Franz Michael Carl Valdemar Georg) | ||
아버지 | 크리스티안 10세 | ||
어머니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 | ||
형제자매 | 크누드 | ||
배우자 |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1935년 결혼) | ||
자녀 | 마르그레테 2세, 베네딕테, 아네마리 | ||
신장 | 198cm | ||
종교 | 루터교회 (덴마크 교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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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 증조부 크리스티안 9세, 조부 프레데리크 8세, 아버지 크리스티안 10세와 함께. |
신붓감으로 니콜라이 2세의 딸들인 마리야 여대공과 아나스타시야 여대공이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1918년에 러시아 황족들이 모두 처형당하면서 결혼은 무산됐다. 이후 육촌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올가 공주와 1922년에 약혼하였으나 파혼당했고,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딸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와 1935년에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마르그레테 2세, 베네딕테, 아네마리 등 세 딸이 태어났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서 1953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개정하여 살리카법을 폐지하고 장녀 마르그레테 2세를 후계자로 세웠다. 물론 동생인 크누드 왕자의 반발이 있긴 했으나 어찌저찌 무마했다.[1] 후에 크누드의 두 아들이 모두 귀천상혼을 했고 자식이 없거나(잉골프 백작) 딸만 셋 있는 관계(크리스티안 백작)로 현재는 별 차이가 없는 상황.
그리고 이때 왕위 계승법을 변경하기 전까지는 크리스티안 9세의 모든 남계후손에게 계승 자격을 주었기 때문에 노르웨이 왕국과 그리스 왕국의 글뤽스부르크 왕조 남성들도 계승 자격이 있었으나, 이때부터 크리스티안 10세의 후손에게만 계승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변경되어 노르웨이와 그리스 출신 글뤽스부르크 왕족들은 덴마크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되었다. 어차피 다른 왕족들은 개정된 계승법을 적용하면 계승 순위가 몇십위권으로 밀리는지라[2] 크리스티안 10세의 후손들이 핵 맞고 싹다 죽어버리거나 하지 않는 이상(...) 의미도 없다.
2. 가족관계
2.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프레데리크 9세 (Fredrick IX) | <colbgcolor=#fff3e4,#331c00> 크리스티안 10세 (Christian X) | <colbgcolor=#ffffe4,#323300> 프레데리크 8세 (Fredrick VIII) | |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 |||
헤센카셀의 루이제 (Louise of Hesse-Kassel) | |||
스웨덴의 로비사 공주 (Louise of Sweden) | |||
칼 15세 (Karl XV) | |||
네덜란드의 루이세 (Louise of the Netherlands) |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 여공작 (Alexandrine of Mecklenburg-Schwerin) | |||
메클린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Friedrich Franz III, Grand Duke of Mecklenburg-Schwerin) | |||
메클린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 (Friedrich Franz II, Grand Duke of Mecklenburg-Schwerin) | |||
로이스쾨스트리츠의 아우구스타 (Princess Augusta Reuss of Köstritz) | |||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Anastasia Mikhailovna of Russia) | |||
러시아의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 (Grand Duke Michael Nikolaevich of Russia) | |||
바덴의 체칠리에 공녀 (Princess Cecilie of Baden) |
2.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1녀 | 마르그레테 2세 (Margarethe II) | 1940년 4월 16일 | 앙리 드 라보르드 드 몽페자 슬하 2남[3] |
2녀 |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를레부르크 공비 베네딕테 (Benedikte, Princess of Sayn-Wittgenstein-Berleburg) | 1944년 4월 29일 | 제6대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를레부르크 공 리하르트 슬하 1남 2녀[4] |
3녀 | 그리스의 왕비 아나마리아 (Anne-Marie, Queen of Greece) | 1946년 8월 30일 | 콘스탄티노스 2세 슬하 3남 2녀[5] |
3. 여담
- 레고 마니아였다고 한다. 취미가 레고 조립이고 생일 선물로 진상받은 신제품 12볼트 기차(사운드 센서가 들어있어서 호루라기로 조종이 가능하다고 한다.)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1] 크누드 왕자와 카롤리네 마틸데 왕자비 부부는 의회에서 세습 왕자/왕자비(덴마크어: Arveprins / Arveprinsesse) 칭호를 받으며 연금도 유지되었다. 둘의 장남 잉골프 백작 역시 귀천상혼을 했음에도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보상으로 현재까지 연금을 받고 있다.(차남 크리스티안 백작은 아니었고, 왕족 지위를 유지한 장녀 엘리자베스 공주도 아니었다.) 잉골프 백작의 회고에 의하면 계승법이 변경된 후 크누드 왕자의 생전에는 프레데리크 9세와 크누드 형제는 부부끼리 공식행사에서만 만났으며 개인적인 교류를 거의 안해서 잉골프 역시 사촌들인 마르그레테와 베네딕트, 아네마리와도 사이가 데면데면했다고 한다.[2] 개정 전 기준으로 하면 노르웨이 왕가의 계승순위가 상당히 높아진다. 계승법이 개정된 1953년 기준으로 당시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프레데리크 9세의 숙부)의 계승서열이 4위였고, 크리스티안 10세의 남계후손은 현재 단절될 예정이기 때문에 계승법을 유지했다면 노르웨이 왕가가 덴마크 국왕을 할 수도 있었다.[3] 프레데리크 10세, 요아킴 왕자[4] 베네딕테 공주는 동생 아네마리와 달리 슈탄데스헤어 가문 출신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계승권을 포기하지 않아서 현재도 계승순위 제일 마지막에 있지만, 자녀들은 독일에서 자랐기 때문에 계승권이 없다.[5] 그리스의 왕세자 파블로스 등. 아네마리가 콘스탄티노스 2세와 결혼하면서 본인과 자손들의 계승 자격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덴마크의 왕위 계승권이 없다.[6] 외할머니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이 니콜라이 1세의 친손녀였고, 외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는 파벨 1세의 차녀 옐레나 파블로브나의 증손자였기 때문이다. 프레데리크 외에도 로마노프 왕조의 피를 이어받은 국왕으로는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 네덜란드 국왕 빌럼 3세, 영국 국왕 찰스 3세,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