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c0013><colcolor=#fff> | |||
출생 | 1353년 3월 | ||
덴마크 쇠보르 성 | |||
사망 | 1412년 10월 28일 (향년 59세) | ||
덴마크 플렌스보르 (현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플렌스부르크) | |||
재위기간 | 덴마크 여왕 | ||
1387년 8월 10일 ~ 1412년 10월 28일 | |||
노르웨이 여왕 | |||
1388년 2월 2일 ~ 1412년 10월 28일 | |||
스웨덴 여왕 | |||
1389년 2월 24일 ~ 1412년 10월 28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c0013><colcolor=#fff> 가문 | 에스트리드 가문 | |
이름 | 마르그레테 발데마르스다테르 (Margrete Valdemarsdatter) | ||
아버지 | 발데마르 4세 | ||
어머니 | 슐레스비히의 헬비그 | ||
배우자 | 호콘 6세 (1363년 결혼 / 1380년 사망) | ||
자녀 | 올루프 2세 | ||
종교 | 가톨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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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덴마크 에스트리드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노르웨이 군주 겸 스웨덴 칼마르 연합 초대 군주. 총 3개국의 왕위를 겸한 여왕으로, 3국을 합쳐 칼마르 연합을 결성했다.군주로서 Dronning(Queen, 여왕)이 아닌 Frue(Lady, 여군주)라는 칭호를 사용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여왕은 아니라는 논란이 있다. 그래도 당시의 교황 보니파시오 9세로부터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의 여왕'으로 칭해져 여왕으로 간주되며, 왕조는 다르지만 600년 뒤 동명이인 여왕이 즉위하여 마르그레테 '2세'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2. 생애
덴마크 국왕 발데마르 4세와 슐레스비히의 헬비그의 막내딸로 태어나 노르웨이 국왕 호콘 6세[1]와 결혼해 외아들 올루프[2]를 낳았다.1375년에 아버지 발데마르 4세가 죽자 올루프를 덴마크 국왕으로 즉위시키면서 본인은 덴마크의 섭정이 되었고, 1380년에 남편 호콘 6세가 죽자 올루프를 노르웨이 국왕으로도 즉위시키며 노르웨이의 섭정까지 겸했다. 그러나 1387년, 올루프가 후사 없이 요절하자 그녀가 후견인 자격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양국의 임시 군주가 되었다. 1388년, 스웨덴 국왕 알브렉트에게 불만을 품은 스웨덴 귀족들이 그녀를 끌어들였고[3], 1389년, 알브렉트의 군대를 격파하여 스웨덴의 왕위까지 차지했다.
마르그레테 1세는 언니 잉에보르(Ingeborg)의 외손자인 포메른의 에리크를 1389년에 노르웨이 국왕으로 즉위시켰고, 1396년에는 에리크에게 덴마크와 스웨덴의 왕까지 겸하게 했으며, 1397년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을 합쳐 칼마르 연합을 결성했다. 마르그레테 1세는 공동 통치자로 남아 에리크의 공동 통치자 지위까지 자신이 섭정하면서 죽을 때까지 3국을 사실상 단독 통치했고, 1412년에 플렌스부르크에서 흑사병에 걸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