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a80d53><colcolor=#ffffff> 스웨덴 바사 왕조 제2대 국왕 에리크 14세 Erik XIV | |
출생 | 1533년 12월 13일 |
스웨덴 스톡홀름 트레 크로노르[1] | |
사망 | 1577년 2월 26일 (향년 43세) |
스웨덴 외르뷔후스 외르뷔후스 성 | |
재위 | 스웨덴 왕국의 왕 |
1560년 9월 29일 ~ 1569년 1월 | |
배우자 | 카린 몬스도테르 (1568년 결혼) |
자녀 | 비르기니아(사생아), 콘스탄티아(사생아), 시그리드, 구스타브 |
아버지 | 구스타브 1세 바사 |
어머니 | 작센라우엔부르크의 카타리나 |
종교 | 로마 가톨릭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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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바사 왕조의 2번째 국왕으로 레발(Reval)을 포함한 에스토니아 공국을 정복했으나 재위 후반에 보인 정신 이상과 귀족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로 이복동생들에게 폐위당했다.2. 생애
근대 스웨덴의 국부인 구스타브 1세 바사와 작센-라우엔부르크의 카타리나의 유일한 아들로, 1557년 칼마르를 포함한 스몰란드를 영지로 받아 칼마르 성에서 거처했다.1561년 웁살라 대성당에서 스웨덴 역사상 매우 화려한 대관식을 거행하며 즉위했으며, 동시에 아르보가 법령을 체결해 이복동생들에게 주어진 공작으로서의 강력한 권한을 전부 철폐시켰다. 특히나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폴란드 국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의 누이 카타지나 야기엘론카 공주와 결혼한 동생 요한을 그립스홀름 성[2]에 수감시켰고 동시에 그의 핀란드 공국[3]도 몰수했다.
같은 해, 핀란드 출신의 제독 클라스 크리스터손 호른(Klas Kristersson Horn 1517~1566)을 레발으로 파견하여 현지 지배층인 발트 독일인의 특권을 보장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에스토니아 북부를 점령했다. 이러한 확장 정책은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와의 갈등을 낳았고 1563년 전쟁을 선포하면서 북방 7년 전쟁이 발발했다. 에리크 14세는 나름 전쟁을 잘 수행했으나 정신 이상을 보이며 1567년 스투레(Sture) 가문[4]의 주요 인사를 처형했다.
스투레 일가에 대한 가혹한 처사와 정신 이상, 평민 출신의 카린 몬스도테르와의 결혼에 분개한 스웨덴 귀족들은 동생 요한과 칼을 중심으로 합세하여 1568년 그를 폐위시켰다. 요한은 스웨덴 국왕 요한 3세로 즉위했다.
폐위당한 그의 가계는 스웨덴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했으며 에리크 14세는 1577년 외르비후스에서 사망했다. 나중에 그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독살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으며 그의 독살에 관한 내용이 스톡홀름의 스웨덴 역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3. 기타
- 공식적인 스웨덴 국왕은 에이리크 6세부터 시작하나 그는 에리크 14세라 칭했는데, 이는 스웨덴의 마지막 가톨릭 웁살라 대주교였던 요한네스 망누스(Johannes Magnus 1488~1544)가 집필한 '고트족과 스웨덴의 모든 왕의 역사(Historia de omnibus Gothorum Sveonumque regibus)'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리크 14세는 요한네스 망누스의 책을 진실로 받아들였고, 스웨덴이 얼마나 길고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졌는지 과시하고자 XIV(14)를 자신의 세로 채택했다.
그리고 자신을 폐위시킨 막내동생이 이걸 똑같이 따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