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6aa7><colcolor=#fecc00> 웁살라 Uppsala | |
행정 | |
국가 |
|
주 | 웁살라 주 |
시간대 | UTC+1/+2 |
인문 환경 | |
인구 | 177,074명 |
인구밀도 | 3,600명/km² |
면적 | 48.77km² |
기후 | 냉대 습윤 기후(Df) |
홈페이지 |
- 스웨덴어: Uppsala
1. 개요
스웨덴 동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웁살라주의 주도. 스톡홀름과는 70km 정도 떨어져있으며 통근열차로도 갈 수 있다. 스웨덴 루터파의 중심지이기도 하다.2. 역사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감라 웁살라(Gamla Uppsala)가 과거 웁살라의 중심지로, 현재 시 중심지는 과거에는 외스트라 아로스(Östra Aros)로 불렸다. 스웨덴 이교도의 중심지였으며, 옛 이교도 신전에는 북유럽 신화의 우상들이 있었다고 한다. 13세기까지만 해도 감라 웁살라가 중심이었으나 과거 북유럽 신화 신전 터에 세워졌던 감라 웁살라 대성당이 불타면서 성왕 에리크 9세의 유물함이 현재 대성당 자리로 옮겨졌고, 1435년 웁살라 대성당이 완공되었다.1477년,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프손(Jakob Ulvsson, 1430~1521)의 노력으로 웁살라 대학교가 세워졌다. 이는 중세 북유럽의 학문 발전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후 수세기 동안 웁살라는 스웨덴 지식인의 산실로 기능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이 확산되면서 웁살라는 종교적·정치적 변동의 중심에 섰다. 1593년 웁살라 종교회의(Uppsala möte)에서 루터교가 스웨덴 국교로 확정되었으며, 이로써 웁살라 대주교좌는 스웨덴 교회의 최고 지도기관으로 유지되었다. 17세기 스웨덴 제국의 확장과 함께 웁살라 대학교는 국가 관료제 인재 양성의 핵심 기관으로 성장하였다. 1702년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60년대 ~ 1970년대에 걸쳐 많은 역사적 유산들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스웨덴에서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웁살라는 스웨덴 내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학문·생명과학·기술 연구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웁살라 대학교와 슬루(SLU)[1]는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성장하여 생명공학, 제약, 환경과학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3. 경제
대학교가 있는 만큼 연구소들이 많이 위치해있다. 최근에는 웁살라 대학교의 주도로 바이오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4. 볼거리
- 웁살라 대학교 (Uppsala universitet) :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칼 폰 린네,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 1701~1744)[2], 다그 함마르셸드, 잉마르 베리만 같은 유명인 외에도 노벨상을 수상한 여러 학자들을 배출한 명문 고등교육기관이다. 원래는 종교 교육기관이었으며, 1595년 시기스문드의 가톨릭화 정책에 반발하여 열린 웁살라 종교회의가 이 대학에서 열렸다.
- 웁살라 대학교 식물원 (Botaniska trädgården) : 1787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가 웁살라 대학교에 기증한 땅에 조성된 식물원.
- 웁살라 대학교 도서관 (Uppsala universitetsbibliotek) : 1620년 설립된 웁살라 대학교 도서관으로 북유럽 최대의 희귀본 소장처 중 하나로, 약 5백만 권 이상의 인쇄도서와 1만 점이 넘는 필사본, 지도, 악보, 사진, 아카이브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6세기경 제작된 고트어 성경 사본으로, 은색 글씨와 자색 양피지로 만들어진 희귀본인 은성서가 유명하다.
- 웁살라 대성당(Uppsala Domkyrka) : 1258년 만들어진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성왕으로 추앙받는 에리크 9세 외에도 독립시조인 구스타브 1세 바사와 그의 둘째 아들 요한 3세 및 막내딸 엘리자베트(Elisabet Gustavsdotter Vasa 1549~1597), 칼 폰 린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초대 루터파 웁살라 대주교 라우렌티우스 페트리(Laurentius Petri 1499~1537) 등 스웨덴의 유명 인사들이 묻혔다. 스톡홀름의 대성당(Storkyrkan)과 더불어 스웨덴 국왕의 대관식을 양분한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위층의 보물관에는 스웨덴 왕족들이나 대주교들의 보물들과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 웁살라 성(Uppsala Slott) : 1549년에 처음 건축된 이 성은 대대적인 리모델링, 확장 및 기타 개조 공사를 거쳤다. 웁살라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끝낸 스웨덴 왕들이 만찬을 열었던 성. 크리스티나 여왕은 이 성에서 고종사촌 오빠인 츠바이브뤼켄-클레부르크 궁정백 카를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
- 감라 웁살라 (Gamla Uppsala) : 웁살라 시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유적지로 스칸디나비아 고대 종교·정치·의례의 성소로 기능하였다. 다만 웁살라에서 거리가 좀 있어서 웁살라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 린네 정원 (Linnéträdgården) : 웁살라 대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으로 원래 1655년 의학 교수인 올라우스 루드베크 가 계획하고 심었으며 , 17세기 후반에 약 1,800종의 다양한 식물이 있었지만 1702년 웁살라 시 화재로 피해를 입었다. 1693년 루드베크는 정원 옆에 오늘날 린네 박물관으로 알려진 집을 지었는데, 이곳은 1743년부터 린네의 거주지였고, 1778년 린네가 사망한 후 1934년까지 웁살라 대학교 직원들의 거주지였다.
- 린네의 함마르비 (Linnés Hammarby) : 웁살라에 위치한 유서 깊은 저택으로 칼 린네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