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10 19:51:42

원손


황실 및 왕실의 구성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구분 직계 남성 배우자 직계 여성 기타
퇴위한 명예군주
태상황/태상왕 태상황후/태상왕비 - 태황태후/대왕대비
퇴위한 군주
상황/상왕 상황후/상왕비 - -
군주 황제/ 황후/왕비 여제/여왕 황태후/왕대비
(국장/국구),국태부인
국서
군주의 궁인
환관/내시 후궁 상궁 남총
군주의 후계자(자녀)
황태자/왕세자 황태자비/왕세자빈 황태녀/왕세녀 부마
군주의 자녀
황자/왕자 황자비/왕자비 (공주,황녀)/(공주,옹주) 부마/의빈
군주의 후계자(형제)
군주의 후계자(손자)
군주의 형제
군주의 장남,장손
군주의 친부
군주의 숙부모
황태제/왕세제
황태손/왕세손
황제(皇弟)/왕제(王弟)
원자,원손
대원왕/대원군
황숙(皇叔)/왕숙(王叔)

 
 
 
대원비/부대부인
 

 
장공주
 
 
대장공주
-
중국(-3C ~ 20C 초)
황제
황태자
친왕,군왕
황후
황태자비
친왕비,군왕비

 
공주,군주,현주
황태후
 
부마
고려(원 간섭기 전->후)
->국왕
태자->세자
공(公),군(君)
왕후->왕비
태자비->세자비
공비(公妃),군비(君妃)

 
왕녀->공주
태후
 
부마
조선
임금
세자
대군,군(君)
왕비
세자비
부부인,군부인

 
공주,옹주
왕대비
부원군,부부인
부마->의빈
일본
천황
황태자
친왕,
황후
황태자비
친왕비,왕비
여성 천황
 
내친왕,여왕
황태후
 
 
영국

웨일스 공
HRH Prince
왕비
웨일스 공비
공작부인
여왕
 
HRH Princess
Queen+이름
 
Prince+이름
각 항목에는 가장 대표적인 용어 하나만 표기하며, 황실과 왕실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다를 경우 '/' 기호로 구분한다. 두 단어가 밀접한 관계에 있거나 각기 다른 서열과 지위를 가질 경우 ',' 기호로 구분하여 표기한다.
-기호 또는 빈칸은 동아시아 황실/왕실 체제에서 해당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없거나 관련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 경우를 나타낸다. 당시에는 이러한 경우 특별한 호칭 없이 이름이나 관직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본 틀에서는 문헌 기록이 없더라도, '왕세녀', '국서'처럼 근현대에 새롭게 자리잡은 번역어의 경우 포함해 기재한다.
별칭이나 그 외 나라의 용어는 황실/왕실 용어 및 별칭 표를 참고.
}}}}}}}}} ||


원손(元孫)은 세자적장자이다.

임금의 적장손, 또는 아직 왕세손으로 책봉되지 않은 왕세자의 맏아들을 뜻한다.

원자처럼 반드시 정실부인인 세자빈 소생의 첫 아들이 지정되며, 왕세자의 후궁이 낳은 다른 아들들이 위로 몇이나 있어도 반드시 세자빈의 아들이 원손이 된다. 원손 명호를 받은 뒤 훗날 아버지가 왕이 되면 자연히 승계하여 원자가 된다.

원손은 왕위계승 서열 제2순위이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왕의 손자로서 아버지를 이어 2번째로 왕위계승권을 가지는 '세손'의 지위에 책봉된다. 세손의 지위에서 왕위에 오른 임금으로는 소성왕, 충렬왕, 단종, 정조, 헌종 등이 있다.

원손의 존칭은 나이가 어릴 때는 '아기씨'로 불린 기록이 여럿 있으나, 관례를 치를 나이인 아홉~열살 정도엔 더는 '아기씨'로 불리지 않았다.[1]

이때의 호칭은 문헌으로 남은 것이 없으나, 유추해 볼 법한 기록은 있다. 원손의 부인을 '원손부인'이 아닌, '원손빈(元孫嬪)'이라 부른 기록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세자빈과 같은 빈급으로 원손의 부인을 칭한 것으로 보아, 아마 잠재적인 왕위 후계자의 지위를 인정받아 '원손 마노라' 또는 '원손 마마'로 불리었을 것이다. 이는 원손빈 역시 마찬가지.[2]
[1] 왕자/왕녀, 왕세자子/왕세자녀 역시 신생아일지라도 좀 더 격식 있는 호칭인 '자가'의 호칭도 두루 썼다. 혼인 전 아기씨로만 불렸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자가 항목 참고.[2] 세손으로 정식으로 책봉되면 '각하'라고 불렸다. 정조가 세손 시절 '저하'라고 불린 것은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죽은 뒤 사실상 동궁의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사도세자가 살아 있을 적엔 정조 역시 '세손 각하'라고 불렸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