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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 및 왕실의 구성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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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위한 명예군주 | 태상황/태상왕 | 태상황후/태상왕비 | - | 태황태후/대왕대비 | |
퇴위한 군주 | 상황/상왕 | 상황후/상왕비 | - | 황태후/왕대비 | |
군주의 친부 | -/대원군 | -/부대부인 | - | 국구, 국태부인 | |
군주 | 황제/왕 | 황후/왕비 | 여제/여왕 | 국서 | |
군주의 궁인 | 환관/내시 | 후궁 | 상궁 | 남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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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후계자(자녀) | 황태자/왕세자 | 황태자비/왕세자빈 | 황태녀/왕세녀 | 부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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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왕실 명칭 | Prince | Queen Consort | Princess | Prince Consort | |
황실에서 사용하는 단어, 왕실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다른 경우 '/' 기호로 구분한다. | |||||
-기호는 동아시아 황실 및 왕실 체제에서 해당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없거나 관련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
1. 國書
국가 원수가 국가의 이름으로 보내는 외교문서. 나라의 역사나 문장 따위에 대한 책이라는 뜻도 있다.전근대에서 국가 원수는 대부분 군주(국왕 또는 황제)가 맡고 있었지만 국가원수가 직접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관료들 가운데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을 뽑아서 일종의 대필을 하게 했다.[1] 일반적으로는 왕명의 출납이나 행정문서 등을 담당하며, 국서 작성을 전담하는 한림원 등 기관에 소속된 관료들이 썼다. 특히 중요한 안건의 경우에는 군주가 신임하는 이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현대에도 국가수반이 보내는 친서 등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전이나 연설 담당비서관이 쓴다.
대필과 다른 점은 실제로 그 글을 작성한 사람이 고스트라이터가 되고 저자가 왕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국가를 대신해 외국에 보낼 외교문서를 내 손으로 작성한다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집안의 족보나 묘지명에도 "내가 왕명을 받들고 우리 왕을 대신해 외국에 보내는 국서를 지었다"고 기록을 남겼고, 국서를 받는 상대국에서도 그러한 문장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물론 그런 사람을 발탁해서 국서를 쓰게 한 군주까지 두루 안목 있는 군주로 호평받았다.
일단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격인 문서다보니 국서의 형식이나 표현은 물론 서문의 들여쓰기 하나까지도 그 글을 제후국에 보내느냐 천자국에 보내느냐 혹은 대등한 관계에 있는 교린의 나라에 보내느냐에 따라 달랐고, 국서에서 국가원수인 군주가 자신을 자칭하는 대명사나 상대에 대한 호칭, 작성 서식 및 용어와 그것을 작성하는데 사용할 종이의 재질과 규격까지 구분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거 잘 써서 "오, 이거 누가 썼냐. 문장력 좋은데?"라고 칭찬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어 잘못 써서 국가간 외교적 마찰, 심지어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2] 조선 초기 조선과 명나라의 긴장 관계를 유발시킨 유명한 표전문제 사건이나, 좀 더 이전으로 올라가면 왜국이 수양제에게 보낸 국서에서 "해 뜨는 동쪽의 천자, 해 지는 서쪽의 천자에게 글을 보내니 별고 없으신지?"라고 쓴 것이 수양제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던 것이 그 사례.
또한 유교적 가치관이 존재했던 동아시아에선 전임 및 현 군주의 휘나 군주 및 선대 군주, 왕실 등에 대한 계보나 정통성 등에 대해 민감했었으므로, 이를 고려하여 작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예를 들어 현 군주의 휘가 국서에 들어가는 경우나 유교적 가치관을 건드리거나, 선대 군주 등에 대한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는 외교 문제로 빚어지기도 하였다.
2. 임금의 사위
임금의 사위에 대한 내용은 부마 문서 참고하십시오.
3. 여왕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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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왕실 명칭 | Prince | Queen Consort | Princess | Prince Consor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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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壻 / Prince Consort
여왕의 남편의 호칭.[3] '여왕의 남편'이나 '여왕의 부군'이라고 풀어서 표현하기도 한다.[4]
영어로는 Prince consort라고 하며,[5] 간혹 King consort라고 한다.[6] 여왕과의 결혼으로 공동 즉위한 남편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칭호인데, 남편이 즉위하면 왕이 되기 때문이다. 유럽사에서는 'Jure uxoris'라는 개념 때문에 여왕의 남편을 공동 왕으로 삼은 사례가 종종 있어서 국서와는 구별이 필요하다.[7]
동아시아에서는 신라와 동여국 말고는 여왕의 남편이 없었다.[8]
옛날에는 남성 중심 사회였다보니 가정에 전념한 왕비와 달리 국서는 별개의 문관·무관 벼슬을 받아 여왕과 맞벌이를 했다.[9]
3.1. 실존 인물
3.2. 가공 인물
4. 國瑞
나라에 길한 일이 있을 조짐.5. 局署
관청과 그 부속기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관서(官署)와 같은 말이다.[1] 물론 국왕이 직접 친필로 국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2] 당연히 일부러 그러한 규정을 어겨서 상대를 도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흉노가 한나라에 보내는 국서의 규격을 한나라 것보다 크게 하고 용어도 한나라를 물먹였다던가.[3]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는 신라 여왕의 부군인 음갈문왕과 혜성왕을 가리키며 왕의 배필(王之匹)이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에 쓰여진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는 국서가 여왕의 남편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신라는 여왕이 3명의 국서를 두는 삼서의 제도(三壻之制)가 있었다고 한다.[4] 여기서의 부군(夫君)은 남의 남편의 높임말로, 여왕의 남편을 가리킬 때만 쓰이는 호칭은 아니다.[5] King과 Queen은 성별 형태만 다른 동격의 칭호이며 왕비가 영어로 Queen consort이니 국서는 영어로 King consort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가부장제에서는 남편이 아내보다 우위이니 King이라는 칭호가 Queen보다 높아보인다고 국서에게는 King보다 한 단계 낮은 Prince의 칭호를 쓰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남성 국왕의 대관식에서는 부인인 왕비도 왕좌에 나란히 앉아서 공동 대관식을 하지만 여성 국왕의 대관식에서 남편은 공동 대관식을 하지 않고 부인인 여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 맹세를 한다.[6] 국서에게 King consort 칭호를 쓰는 유럽 국가는 나폴리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스페인 뿐이다.[7]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라 여왕이 부왕의 왕녀였는데 그 남편도 왕인 경우를 오류라고 착각하기도 한다.[8] 신라는 선덕여왕의 부군 음갈문왕과 진성여왕의 부군 혜성왕이 있었으며, 진덕여왕의 경우 부군에 대한 기록이 없다. 동여국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여왕의 남편을 금취(金聚)라고 불렀다. 중국의 측천무후는 국서 없이 남총들만 두었고, 일본의 히미코 여왕도 남편이 없었고, 여성 천황들은 즉위 전에 남편이 있었을지라도 재위 중에는 모두 독신 상태였다. 동아시아는 아니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베트남의 리 소황은 혼인하고 얼마 안 되어 남편에게 선양해 황후가 되었다.[9] 가정적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조차 영국 육군 원수 계급을 받았는데, 빅토리아 시대 당시에는 여성 군주가 군직위를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A] 국서가 아니라 공동 왕이었다.[11] 칭호는 Re consorte(King consort).[12] 원래는 국서였는데 아내 리 소황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황제가 되었고, 이후 그녀와 이혼하여 황위를 먹튀했다.[13] 아내 마르그레테 1세가가 덴마크의 군주가 되기 전에 죽어서 덴마크의 국서였던 적은 없다.[14]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Kongegemal(King consort)이 아닌 Prinsgemal(Prince consort)이라고 불리는데 불만을 표시했으며, 2017년 8월에는 "죽어서는 아내의 곁에 묻히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15] 아내가 Groussherzogin(Grand Duchess)이었지만 그는 Prënz(Prince) 칭호였다.[16] 국서 겸 총리대신으로, 비범하게도 연이어 세 여왕들의 국서가 되었는데, 심지어 라소헤리나와 라나발로나 2세는 선왕 라다마 2세의 왕비들이었다. 사실 메리나 왕국 후기에는 여왕들은 그냥 얼굴마담이고 실권은 총리가 다 쥐고 있었다.[17] 아내가 군주로서 재위 1년을 못 채우고 죽자 그 뒤를 이어 차기 군주가 되었다.[18] 국서로서 Prins(Prince) 칭호였다가 아내로부터 양위를 받아 왕이 되었다.[19] 왕세녀의 남편이라서 미래에 아내가 여왕으로 즉위하면 국서가 될 예정이지만, 2024년 기준 아직 국서는 아니다.[20] 프랑스 국왕이었지만 스코틀랜드 왕국에서는 공동 왕으로 삼아지지 않았고, 그저 King consort 칭호의 국서였다.[21] 칭호는 King consort. 아내 메리와 사촌 관계의 왕족이었다. 그는 King consort 칭호에 만족하지 않아 공동 왕으로 임명해주길 요구했고 이는 아내 메리와 대립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22] 칭호는 Rey consorte(King consort). 아내 이사벨 2세와 사촌 관계의 왕족이었다.[23]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되어 있다. 여왕의 남편으로서 갈문왕에 봉해졌다. 위서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추가적으로 김용춘, 을제도 선덕여왕의 남편이라고 써 있다.[24]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되어 있다.[25] 아즈텍 황제였지만 에카테펙에서는 그저 국서였다.[26] 빅토리아 여왕은 그에게 King consort 칭호를 주고 싶어했지만 의회의 반대로 Prince consort 칭호를 줬다.[B] 국서가 아니라 공동 대공이었다.[A] 국서가 아니라 공동 왕이었다.[A] 국서가 아니라 공동 왕이었다.[30] 공동 왕이 된 이유는 윌리엄 3세 본인도 메리 2세의 남편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프린세스 로열 메리라고 불리는 메리 헨리에타의 아들로서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31] 원래 나폴레옹 1세가 황제였고 마리 루이즈는 그의 황후였으나, 그는 황제 퇴위 후 유배되었고, 파르마의 통치자가 된 마리 루이즈는 그를 외면했다.[A] [33] 포르투갈에서는 국서가 여왕과의 사이에 후사를 봐야 공동 왕이 되는데, 그는 자식을 두기 전에 죽어 Príncipe consorte(Prince consort)에 머물렀다.[34] 포르투갈에서는 국서가 여왕과의 사이에 후사를 봐야 공동 왕이 되는데, 결혼하고 1년 반 동안 Príncipe consorte(Prince consort)였다가 자식이 태어나자 공동 왕으로 삼아졌다.[35] 카파도키아 국왕이었지만 폰토스 왕국에서는 그저 국서였다.[36] 보라보라 국왕이었지만 타히티 왕국에서는 그저 국서였다.[37] 총리대신을 겸직했다.[38] 아내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국서가 되었으나, 국서로 지낸지 1년도 안 되어서 사망했다.[39] 약혼만 했고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아서 예비 국서 상태이다.[40] 사후에 영혼결혼식으로 국서가 되었다.[C] 국서가 아니라 공동 왕이다.[C] 국서가 아니라 공동 왕이다.[43] 설정상 아델 왕국은 부부가 공동 통치한다.[C] 국서가 아니라 공동 왕이다.[45] 작중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46] 실사 영화 한정으로 아내 자스민이 아그라바의 군주로 즉위하여 국서가 되었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도 알라딘과 자스민이 결혼하지만 왕위 계승 여부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47] 작중 아내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은 정식적인 여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48] 사실 라다곤에게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49] 국서로서의 공식적인 호칭은 로이드 프론테라 그대로이며, 주변 사람들도 이를 그대로 사용한다.[50] 로아크 대공가의 주인이라서 대공이라고 불린다.[51] 전처 엘리자베타가 반정을 통해 에흐몬트의 새 황제가 되자 재결합하여 국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