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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22:53:47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


파일:Viliami-Tungī-Mailefihi.jpg
이름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Viliami Tungī Mailefihi)
1. 개요2. 상세

1. 개요

1888년 12월 1일 - 1941년 7월 20일.

빌리아미는 통가의 정치인이자 귀족이다.

2. 상세

집안은 통가타푸 섬에 위치한 도시 무아(Muʻa)의 지역인 Tatakamotonga에 근거를 둔 귀족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귀족인 Tungī Halatuituia였고, 아버지 Siaosi Tukuʻaho는 1890년부터 1893년까지 통가 총리를 지냈다.

통가의 투포우 칼리지와 시드니의 뉴잉턴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뉴잉턴에는 통가 귀족 7명이 재학했다고 한다. 통가가 작은 나라라 고급 교육을 받기 어려워 21세기에도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에서 통가 상류층들은 교육을 받고 있다.

이후 1916년에 당시 국왕인 조지 투포우 2세에 의해 왕세녀였던 살로테의 남편으로 간택되어 결혼하였다. 당시 통가 왕세녀의 지위는 취약하였다. 왕세녀의 어머니인 라비니아 베이옹고가 의회나 국민 사이에서 반대를 받던 왕비였고, 후비인 아나세이니 타키포의 딸을 왕위에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통가인들이 감리교의 파벌이 나눠져 갈등하던 것도 커다. 공화주의자도 일부 있었다.

빌리아미는 1923년 통가 총리에 올라, 1941년 사망 때까지 총리로 재직했다.

아내인 살로테와 아들 넷을 두었다. 1남 타우파하우 왕세자는 통가 총리를 거쳐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가 된다. 2남 Uiliami Tuku‘aho 왕자는 일찍 죽었다. 3남 Sione Fatafehi 왕자는 외가쪽의 작위인 Tu'ipelehake를 이어 받았고 아버지처럼 통가 총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