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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티펙스 막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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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Pontifex Maximus
파일:August_Labicana_Massimo_Inv56230.jpg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겸직하던 황제 아우구스투스. 머리를 가리는 베일은 고대 사제들의 가장 상징적인 복장이다.

1. 개요2. 어원3. 역사
3.1. 로마 왕국3.2. 로마 공화국3.3. 로마 제국3.4. 기독교 세계에서의 폰티펙스 막시무스
4. 역대 폰티펙스 막시무스

1. 개요

고대 로마의 국가사제단(Collegium Pontificum)의 최고 사제. 직역하면 '최고 신관'이다. 고대 로마를 다루는 몇몇 책에서는 '최고 제사장'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후 가톨릭교황을 일컫는 칭호가 되었다.

2. 어원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신관들이 자신들의 임무들 중 하나인 테베레강의 나무 다리를 건설하고 수리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다리(pons)'와 '건설하다(facere)'를 결합하여 폰티펙스(Pontifex)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에 따르면, 사제들이 테베레 강을 가로질러 엄숙한 희생제를 거행하기 위해 '폰스 서브리키우스(pons sublicius)'를 건설했기 때문에 그런 용어가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밝힌 사제들의 직무 목록에는 다리를 건설하고 수리한다는 게 없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에 다리가 건설되기 전부터 로마 사제들이 폰티펙스로 불렸다면서, 강력하고 절대적인 주인을 의미하는 옛 라틴어 단어 폰티스(pontis)에서 파생되었다는 설과 '희생할 수 있다'라는 의미의 포티스페케레(potisfacere)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을 제시했다.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폼피펙스(pompifex: 공공 행렬의 지도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을 제기하며, 다른 학자들은 현재는 사라진 에트루리아어나 사비니어 단어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막시무스(maximus)는 '가장 위대한'. '가장 높은'이라는 뜻인 라틴어 최상급 형용사이다.

3. 역사

3.1. 로마 왕국

리비우스에 따르면, 로마의 국가사제단은 로마 왕국의 2번째 국왕인 누마 폼필리우스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누마는 희생제 방식과 시기, 종교 자금의 감독, 모든 공공 및 민간 종교 기관에 적용되는 규율, 대중에 관한 교육, 장례 의식 등 전반적인 로마의 종교 의식 체계를 고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이를 진지하게 믿지 않으며, 사비니족, 에트루리아, 고대 그리스 등 주변 민족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가지면서 종교 체계를 점진적으로 마련했으리라 추정한다.

국가 사제단의 주요 임무는 렉스(국왕)에게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왕이 지명한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평생 사제단에 속한 폰티펙스를 이끌었다. 로마 왕국 시기의 사료가 지극히 한미하기 때문에, 이 시기의 폰티펙스 막시무스들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 알려진 내용도 신화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3.2. 로마 공화국

리비우스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군주제가 무너진 뒤 '성물들의 왕(Rex Sacrorum)'이라는 직책을 창설했다. 이들은 이제까지 왕이 행하던 종교적인 직무와 제사를 도맡았지만, 오직 신전에서만 생활해야 하고 행정관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원로원 의석을 차지할 수도 없었다. 이 실권 없는 직책이 만들어진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폰티펙스 막시무스가 국왕이 가졌던 종교적 권위까지 얻어 지나치게 강해지는 사태를 막으려는 조치였던 듯하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로마 공화국 시기에도 로마 다신교를 국가종교로 삼은 국가의 최고직책이었다. 공화국 초기에는 폰티펙스 5명뿐만 아니라 각각의 신에게 평생 봉사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플라멘 15명을 직접 지명했고, 베스타 여사제와 아우구르 등 사제단의 다른 구성원들도 역시 지명했다. 이들 전원은 파트리키로, 신들은 고귀한 계급 출신 사제들에게 받기를 원하리란 이유로 이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플레브스와 파트리키간의 투쟁이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로마를 유지하기 위해 플레브스들과 타협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급기야 기원전 300년, 호민관 퀸투스 오굴니우스 갈루스 등의 주도로 폰티펙스와 아우구르의 숫자를 2배로 늘리고 평민도 로마 사제직을 맡을 수 있게 하는 오굴니우스 법이 통과되면서, 평민들이 사제단의 일원으로 대거 편입되었다. 이후 기원전 254년 티베리우스 코룬카니우스가 평민 최초로 폰티펙스 막시무스에 선임되었으며, 기원전 104년 선거를 통해 폰티펙스와 플라멘을 뽑는 법이 통과되었다. 다만 이 법에서는 로마 시를 구성하는 35개 부족 중 역사가 더 오래된 17개 부족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렇듯 평민들이 사제단에 진출하고 폰티펙스 막시무스도 평민이 선임될 수 있게 되었지만, 공화국 역사 내내 대다수의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파트리키 신분이었다. 또한 플라멘 중 가장 높은 지위와 권위를 지닌 플라멘 디알리스(flamen dialis, 유피테르를 섬기는 제사장)는 폰티펙스 막시무스만이 뽑을 수 있었으며, 베스타 여사제 역시 여전히 파트리키 신분의 처녀들만 선발되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사전에 로마 사제단 원로들로부터 폰티펙스 디알레스 후보자 3명을 추천받고 후보자의 자격을 면밀히 조사할 뿐만 아니라 '디알리스의 아내'로 선정될 후보의 부인 역시 조사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공식 거주지는 소위 도무스 푸블리카(Domus Publica)로 일컬어졌으며, 베스타 여사제가 모여 사는 집들과 비아 사크라(Via Sacra: 신성한 거리) 사이에 위치했다. 그는 종교 행사 때 레지아(Regia: 왕궁)에서 여러 종교적 임무를 수행했다. 리비우스는 폰티펙스 막시무스가 맡은 임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1. 역병, 낙뢰 등의 재해 시 임시 의례 실시.
2. 신에게 바친 모든 사원과 성지 및 시설 봉헌.
3. 로마 달력을 정기적으로 개편. 계절에 따라 달력을 맞추기 위해 윤일을 추가해야 하는 시기를 정함.
4. 매장 의식을 집행하고 조상 숭배 의례 실시.
5. 입양과 고인의 유언에 따른 상속 절차 관리.
6. 파트리키들의 협의에 따른 결혼 주관.
7. 공중 도덕 규제 및 위반자에게 벌금 부과.
8. 고위 행정관의 공식 기록과 행정관 목록, 그들의 결정에 대한 기록 및 연중 주요 행사에 관한 기록 보관.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플라멘과는 달리 엄격한 금기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 및 군사 경력에 별다른 장애를 입히지 않았다. 단지 폰티펙스 막시무스이면서 법무관, 집정관 등 고위 행정관을 겸할 경우, 다른 고위행정관들과는 달리 보라색 줄무니가 있는 토가인 '토가 프라이텍타(Toga Praetexta)'를 착용할 수 없고, 머리를 토가 일부로 덮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야심만만한 인사들은 최고 행정관인 집정관뿐만 아니라 한 번 맡으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평생 역임할 수 있는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탐냈으며, 이를 뽑기 위한 선거전은 매우 치열했다.

기원전 82년 술라의 내전에서 승리한 종신 독재관에 취임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기원전 81년 폰티펙스를 선거에서 뽑는 도미티아 법을 폐지했다. 그러면서 폰티펙스를 15명으로 늘리고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포함한 기존 사제단의 협의하에 폰티펙스를 뽑게 했다. 기원전 65년 폰티펙스 막시무스에 선출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술라의 법을 폐지하고 도미티아 법을 재도입했으며, 폰티펙스를 16명으로 늘렸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 벌어진 후, 집정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원로원을 회유하기 위해 폰티펙스를 사제단의 협의하에 뽑는 체계로 환원했다.

3.3. 로마 제국

카이사르 사후, 그의 동맹자였던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폰티펙스 막시무스로 선출되었다. 그는 나중에 옥타비아누스와 갈등을 벌이다가 정계에서 완전히 밀려나 시골로 은퇴해야 했지만, 기원전 13년 사망할 때까지 직위를 유지했다. 레피두스가 사망한 후, 폰티펙스 막시무스 직위는 아우구스투스의 손에 들어갔고, 이후 이 직책은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를 자처한 로마 황제들의 여러 칭호 중 하나가 되었다. 황제는 종교 의식을 주관할 때 이 직책으로 자주 거론되었으며, 황제가 부재할 시 프로마지스터(promagister)가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직무를 대행했다.

한편, 제국 시대에는 한 씨족 당 한 명만이 사제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으며,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사제 직위를 소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황제 2명이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둘 중 한 명만이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맡았다. 그러나 238년 푸피에누스발비누스가 원로원에 의해 공동 황제로 추대되었을 때는 두 사람 모두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맡았으며, 군인 황제 시대에 등장한 반란자들은 아우구스투스와 더불어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거리낌없이 칭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대표적인 종교로 자리잡는 과정에서도, 로마 황제들은 여전히 폰티펙스 막시무스 칭호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379년,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이교 관습을 모조리 타파하겠다고 결심하고 폰티펙스 막시무스 직책에서 물러났다. 380년 2월 27일 서방 황제 그라티아누스와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공동으로 반포한 테살로니카 칙령에서는 로마 주교 다마소 1세와 알렉산드리아 주교 페트로스 2세를 '폰티펙스'라고 칭했다. 이후 황제들은 로마 다신교와 깊은 관련성이 있는 폰티펙스 막시무스 대신 폰티펙스 인클리투스(pontifex inclytus: 고귀한 사제)를 사용했다.

3.4. 기독교 세계에서의 폰티펙스 막시무스

황제들이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포기한 후, 이 호칭은 레오 1세, 그레고리오 1세 등 훌륭한 업적을 이룬 로마 교황들을 칭송하는 의미로 종종 쓰였지만, 다른 주교들에게도 가끔 사용되었다. 서기 5세기에 활동한 아를의 주교 힐라리우스와 리옹의 에우케리우스, 11세기 노르망디 공국의 베네딕도회 수도사 란프랑코는 각 교구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뤘기 때문에 몇몇 라틴어 연대기 작가들에 의해 폰티펙스 막시무스로 일컬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르네상스의 발흥으로 고대 로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본격적으로 교황의 칭호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이후 가톨릭에서 '폰티펙스'는 지역 교회의 모든 사제들을 이끄는 대사제로서 주교를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고,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주교들의 으뜸인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을 의미했다. 현재도 'pontificalis'라는 라틴어 형용사는 가톨릭에서 주교와 관련된 것을 뜻하며, 영어에서도 'episcopal'(episcopus, 주교)보다는 'pontific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전자는 성공회를 가리키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4. 역대 폰티펙스 막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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