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aesarea / قيصرية로마의 사실상 첫 황제이자 황제의 대명사가 된 카이사르에서 유래된 도시.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필라델피아, 라리사, 라오디케아. 셀레우키아, 프톨레마이스, 하드리아노폴리스, 테오도시오폴리스, 유스티니아노폴리스 등의 경우처럼 매우 많은 곳에 지명으로 붙어졌다. 그중 현재까지 이어지는 터키의 카이세리 (카파도키아 주도), 이스라엘의 케사리아 (유대 주도), 알제리의 셰르셸 (마우레타니아 주도) 등이 유명하다. 그밖에 변형된 형태로 '새로운'이 붙은 네오카이사레아 (터키 니크사르)도 있다.
2. 목록
- 카이사레아 마그나 - 시리아의 샤이자르
- 카이사레아 게르마니카 - 터키의 카흐라만마라슈
- 카이사레아 안티오키아 - 터키의 '피시디아의 안티오크' 유적
- 아르카 카이사레아 - 레바논의 아르카.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의 출생지
- 킬리키아의 카이사레아 - 터키의 아나자르부스 유적
주도였던 곳들은 따로 항목을 만들어 두었다
2.1. 카이사레아 마리티마
Caesarea Maritima 혹은 카이사레아 팔레스티나이
아랍어 قيسارية
히브리어 קיסריה
아크레와 텔아비브 사이의 옛 유적지이자 관광지. 한국 개신교가 사용하는 성경 번역본에는 '가이사랴'로 음역되었다. 기원전 22년 헤롯 대왕에 의해 세워졌다. 로마 제국기 유대 속주의 주도이자 군단기지였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로마 유적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형을 언도한 본디오 빌라도가 실존인물임이 발굴로 확인된 곳이기도 하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15년 안타키아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해 카이사레아 마리티마 또한 파괴되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대주교 에우세비우스가 유명하다.
십자군 전쟁기에는 거대한 요새가 세워졌고, 카이사레아 영주는 예루살렘 왕국의 주요 제후 중 하나였다. 1265년 맘루크 왕조의 정복 후 파괴되어 작은 마을로 남았다가, 1884년 보스니아인들이 정착하여 키사리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고, 원주민들을 축출한 후 1952년 유대인 주류의 신도시 케사리아를 세워 현재에 이른다. 2011년 이스라엘 정부는 카이사레아 유적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2.2. 카이사레아 카파도키아이
자세한 내용은 카이세리 문서 참고하십시오.Caesarea Cappadociae. 혹은 카이사레아 에우세비아 혹은 카이사레아 폰티.
2.3. 카이사레아 마우레타니아이
자세한 내용은 셰르셸 문서 참고하십시오.Caesarea Mauretaniae. 혹은 올 카이사레아.
3. 카이사레아 필리피
자세한 내용은 카이사레아 필리피 문서 참고하십시오.Caesarea Philippi. 골란 고원의 바니아스 유적. 성경의 가아사랴 빌립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