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카 유적
랍보스 신전 유적
1. 개요
아랍어 قنوات영어 Qanawat
시리아 남부의 도시. 수와이다에서 동북쪽으로 5km 가량 떨어져 있다. 인구는 약 9천명이고, 전부 드루즈인이다. 고대 도시인 카나트에서 유래했고, 시내에는 로마 시기 유적이 다수 남아있다. 해발 1200m의 하우란 산지에 위치하여 날씨는 시원한 편이다.
2. 역사
바실리카 유적
바샨-하우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기원전 14세기 아마르나 서신에서 카누로 언급되었다. 헬레니즘기에는 카나타 (Κάναθα)로 불렸고, 기원전 1세기 헤롯 대왕과 나바테아 왕국 간의 각축장이었다. 결국 나바테아가 승리했으나, 서기 1세기 들어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데카폴리스 연맹에 소속되었다. 2세기 들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콜로니아 (식민도시)로 지정하며 셉티미아 카나타로 명명되었고, 아라비아 속주에 편성되었다. 637년 카나타는 이슬람 제국령이 되었고, 이후 쇠퇴하여 9세기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1596년 오스만 제국 세금 문서에 카나와트는 하우란 산작의 바니 나시야 나히야에 속한 마을로, 무슬림 12가구와 기독교도 5가구가 거주했다. 주민들은 20% 세율로 4750 악체를 납부했다. 18세기 무렵 버려졌던 도시는 1820년대 레바논 산지에서 이주한 드루즈 인들이 정착하며 부흥했다. 초기 정착민인 6가구의 드루즈 인들은 로마 시기의 도로와 빈집을 재활용했다. 1860년대 레바논 산지의 혼란이 가중되자 2차 이주가 이루어져 카나와트의 인구는 크게 늘었다. 그중 1830년대 이집트의 징집 명령에 대항해 봉기했던 이브라힘 알 하자리가 지역 유지로 부상했고, 1840년 그가 사망한 후에는 아들 후사인이 이어받았다. 하자리 가문은 1860년대 하우란의 주도권이 알 함단 부족에서 바니 알-아트라쉬로 넘어간 후에도 그에 복속한 채로 카나와트를 통치했다. (알 아끌 후국)
3. 카나타 유적
바실리카 유적
바실리카 전면부
님파이온 (분수대) 유적
사진의 주요 유적들 외에도 9열의 극장, 수도교 등이 남아있다. 신전의 주신인 랍보스는 핼라화된 현지 신이었다. 세라이 혹은 세라야라 불린 신전은 본래 2세기에 세워졌다가, 4-5세기경 성당이 되었다. 카나트 유적은 1895년 독일 학자 헤르만 부카르트의 방문으로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