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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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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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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Ius Romanum
영어 Roman law
프랑스어 droit romain
독일어 Römisches Recht

1. 개요2. 로마법의 구분
2.1. 존재 형식에 따른 구분2.2. 적용 주체에 따른 구분2.3. 시기에 따른 구분
3. 로마법의 체계
3.1. 소권법3.2. 로마법상 민사사건의 소송절차
3.2.1. 법률소송(Legis actio)3.2.2. 방식서소송(formula)3.2.3. 비상심리절차(cognitio extra ordinem)
4. 관련 어록5. 한국에서의 로마법 공부6. 여담

1. 개요

Iuris praecepta sunt haec: honeste vivere, alterum non laedere, suum cuique tribuere.
올바르게 사는 것, 타인을 해치지 않는 것,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 이것이 법의 계명(誡命)이다.
Digesta Liber I, 1, 10, 1. Ulpianus libro prima regularum.
학설휘찬 제1권 제1장 제10절 제1문. 울피아누스 『법규집』 제1권 발췌.

로마법고대 로마의 법이다. 고대 이후에도 중세 및 근대에 유럽보통법(ius commune)으로 재해석되어 현행법으로 활용되었으며,[1] 현대 대륙법민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프랑스민법전[2]이나 독일민법전[3] 등 성문 민법전에도 로마법에서 비롯된 법개념이 많은 부분 계수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민법을 계수한[4] 일본제국민법의 영향[5]을 받은 대한민국 민법에도 로마법에서 비롯된 법개념이 많이 있다. 또한, 국제법이 로마 만민법을 기초로 고안되었는데,[6] uti possidetis와 같은 로마사법상의 개념들이 국제법상 개념으로 재해석되어 차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로마법 사료는 동로마 제국 시대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편찬한 로마법 대전(corpus iuris civilis)이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탈리아를 탈환함에 따라 로마법 대전도 함께 전해졌다가,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를 상실한 뒤 서유럽에서 로마법은 수백 년간 잊혔다. 11세기에 와서 이탈리아에서 로마법 대전이 재발굴되었고, 이르네리우스(irnerius)를 중심으로 연구되면서 볼로냐 대학교가 창립되기도 한다.

2. 로마법의 구분

로마인들은 로마법을 공법(ius publicum)과 사법(ius privatum)으로 구분하였다. 로마사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즉 민사문제를 다루는 법규범이며, 로마공법은 공동체(국가)와 사람의 관계, 즉 행정 및 형사 문제 등을 다루는 법규범이다. '로마법'이라 말하면 보통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부터, 아우구스투스를 거쳐, 디오클레티아누스까지 로마에서 통용되던 법을 칭하며, 이 시기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흔히 '고전(기) 로마법(classical roman law)'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로마사법이 주로 논의되었으며, 로마공법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2.1. 존재 형식에 따른 구분

로마법 고전기에 활동했던 법학자 가이우스(Gaius)에 따르면, 로마의 법(ius)은 법률(lex)[7], 평민회의결(plebiscitum), 원로원의결(senatus consultum), 원수의 칙법(constitutio principis), 정무관의 고시(edictum)[8], 법학자의 해답(responsa prudentium) 형태로 존재하였다. 법률과 평민회의결은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 법 제정 이전에는 구분되었으나, 호르텐시우스 법 제정으로 평민회의결이 법률과 동일하게 효력을 갖게 되면서 평민회의결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졌다.

로마법 대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학설휘찬(digesta)』은 법학자의 해답을 사료에서 발췌하여 편찬한 전집이다. 『칙법휘찬(codex)』과 『신칙법집(novellae)』은 원수의 칙법을 모아엮은 전집이다. 로마법학 교과서로 쓰였던 『법학제요(institutiones)』를 포함하여, 로마법대전은 이르네리우스의 발견 이후, 그 자체가 서유럽에서 로마법으로 통용되었다. 편찬 주체인 동로마 제국은 로마법 대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주로 사용하였다. 서유럽에서 발전한 로마법 법학은 라틴어역인 로마법 대전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주 언어로 사용했던 동로마 제국의 법학을 '비잔티움 법학'이라는 명칭으로 구분하였다.

2.2. 적용 주체에 따른 구분

로마법은 로마 시민권자 사이에서 적용되었던 시민법(ius civile), 시민권자가 아닌 자들과의 관계에서 적용되었던 만민법(ius gentium), 자연에 존재하였기에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었던 자연법(ius naturale), 정무관의 고시에 의해 개별적으로 적용되었던 명예관법(ius honorarium)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만민법과 자연법은 엄밀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어 쓰였으며, 엄격했던 시민법보다는 유연하게 적용되었던 명예관법이 널리 쓰였다. 특히, 명예관법은 로마법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3. 시기에 따른 구분

고대 로마는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존속한 고대 국가로서, 로마법 역시 시기마다 그 내용과 특징에 차이가 있다. 흔히 로마법 교과서나 논문에서는 로마 건국 때부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때까지의 로마법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9]

3. 로마법의 체계

3.1. 소권법

현대법은 실체법(예: 민법)과 소송법(예: 민사소송법)으로 구분되나, 로마사법은 소권법 체계였다. 로마법에서 재판을 소구(訴求)하려면 관할정무관[18]이 원고에게 소권(actio)을 부여해야 했다. 고대 로마가 존속했던 기간이 매우 긴 만큼, 시대별로 소송절차의 형식은 차이를 보였으나, 고전기까지 쓰였던 방식서소송(formula)에서는 소권을 인정받아야 법정[19]에 피고를 소환한 후 심판인(iudex) 앞에서 사실관계를 진술하며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공법의 경우(특히 로마형법)에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기소할 수 있는 만인기소제(publica accusatio)였다.

3.2. 로마법상 민사사건의 소송절차

로마법상 민사소송절차는 시기순으로 법률소송(Legis actio), 방식서소송(formula), 비상심리절차(cognitio extra ordinem)가 존재했다. 각 소송절차에 대한 상세 설명은 아래 하위문단에서 다룬다.[20]

그 밖에 소송 이외의 절차로는 현재의 가처분 및 가압류과 비슷한 구제절차인 특시명령(interdictum), 패소 채무자에 대한 승소 채권자의 강제집행신청인 판결채무이행청구소권(actio iudicati), 파산절차의 일환으로서, 현재의 공경매제도와 흡사한 전재산매각(venditio bonorum)[21]이 있다.

3.2.1. 법률소송(Legis actio)

고대 로마 초기에 쓰인 소송절차로,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고대 로마 초기에 존재했던 옛 소송절차라서, 개략적인 설명이 단편적으로 남아있을 뿐, 상세한 설명은 남아있지 않다. 가이우스가 『법학원론(institutiones)』 제4권 제12절에서 법률소송에 관해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가이우스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더이상 쓰이지 않아 거의 망각된[22] 상황이었기에, 가이우스의 설명은 신빙성을 의심받곤 한다. 그러나 이 서술을 제외하고, 법률소송에 대해 설명하는 문헌은 찾기 어렵다.

법률소송의 주요한 특징은 지나칠 정도의 '엄격한 요식성'에 있다. 그 예로, 가이우스는 법학원론 제4권 제11절에서 벌채된 포도나무에 관한 법률소송을 언급한다. 12표법에는 벌채된 수목(樹木)에 대하여 규정되어 있다.[23] 이에 따라 원고는 법정에서 포도나무가 불법으로 벌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원고는 요식문언의 흠결을 이유로 패소했다. 원고가 나무(arbores)라 부르지 않고 포도나무(vitis)라 주장했다는 것이 패소 이유였다. 이러한 법률소송의 엄격한 요식성은 소송을 원하던 사람들이 법률소송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었고, 소권이 법률소송보다 유연하게 인정되었던 방식서소송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된다.

가이우스는 『법학원론』에서 다섯 가지 법률소송을 소개하였다.

3.2.2. 방식서소송(formula)

방식서소송(formula)은 관할 정무관의 소송지휘에 따라 소송당사자가 주장하는 (법적 및 사실적) 쟁점의 요지를 기재한 방식서를 작성하고, 작성된 방식서에 따라 비전문가인 심판인이 판결하는 소송이다. 방식서소송은 법률소송보다 덜 엄격했기 때문에 법률소송의 대체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원수정 시기에 비상심리절차가 일부 민사사건에 도입된 이후, 방식서소송은 점차 비상심리절차로 대체되었다. 결국 324년 1월 23일 콘스탄티우스 2세 / 콘스탄스 공동황제의 칙법에 의해 폐지된다. 방식서소송은 크게 법무관이 주관하여 원고가 소권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는 법정절차(in iure), 심판절차에 부칠 방식서를 확정하는 쟁점결정(litis contestatio), 일반시민인 심판인 앞에서 사실문제를 심리하여 판결을 확정하는 심판절차(apud iudicem)로 나뉘었다.
재판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피고를 법정에 소환해야 했다. 방식서소송에서 피고의 법정소환은 원고의 소송 고지로 시작되었다. 이를 법정소환(in ius vocatio)이라 한다. 소송고지를 받은 피고는 출석을 못할 경우에 일정액을 지급하겠다는 법정출두담보계약(vadimonium)을 문답계약 형식으로 당사자와 체결하거나, 보증인을 내세워 법정출두를 담보해야 했다. 양 당사자가 법정에 출두하면 원고는 관할정무관 앞에서 사건에 대해 진술하면서 소송을 신청했고, 피고는 변제제공 또는 원고의 주장을 인낙(confessio in iure)하여 즉시 사건을 종결시키거나 원고의 주장을 부인하며 소송신청포기를 요구하거나 항변을 제시하는 등 주장사실에 대해 항변하였다. 피고가 원고의 주장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다면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피고에 대한 원고의 강제집행을 허용하였다.
법정절차에서 법무관은 원고가 주장하는 소권의 존부만을 판단했을 뿐이었다. 사건 자체에 대한 판결은 심판인의 권한이었다. 따라서 관할 정무관은 원고에게 소권을 부여하는 경우 심판인에게 당해 사건에 대한 심리를 지시할 방식서를 작성했다. 관할 정무관과 원고는 심판인에게 부칠 방식서의 작성을 목적으로 피고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이를 법정신문(interrogatio in iure)이라고 한다. 법정신문에서 피고는 자신의 답변에 구속되었다. 방식서에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일치하는 사실은 물론, 피고의 항변도 기재하였다.
쟁점결정의 대상이 되는 방식서는 정해진 형식이 있었다. 방식서의 서두에는 심판인지명(nominatio iudicis)이 기재되었다. 심판인은 당사자가 심판인 후보를 추천하여 관할정무관이 지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다음에 기재되는 내용은 소구원인(demonstratio)과 소구취지(intentio)였다. 소구원인에는 소구의 원인이 되는 사실이 기술되었으며, 소구취지에는 소송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이 기술되었다. 그리고 이 방식서는 심판인에게 전달되어 심판절차를 방식서 내용에 맞추어 구속해야 했기 때문에, 방식서에는 관할정무관이 심판인을 상대로 판결권한부여(condemnatio) 및 재정권한부여(adiudicatio)를 지시하는 부분도 존재하였다. 판결권한부여 항목에는 심판인이 증거에 따라 유책판결 또는 원고패소판결을 선고하라고 지시하였으며, 금전배상도 이 부분에서 지시하였다. 법정절차에서 금액이 확정되었을 경우에는 확정된 액수도 이 부분에 기재되었다. 재정권한부여는 금전배상의 예외로써 다른 이행조치도 심판인의 재정에 둔다는 단서로써 작용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고의 항변이 있다면 그 피고의 항변을 기술하였다(exceptio). 원고의 재항변 및 원고의 재항변에 대한 피고의 재재항변도 방식서 말미에 기재하였다.
사실심리가 종결되면 심판인은 방식서에 기재된 판결권한부여 내용에 따라 판결을 선고하였다. 심판인은 방식서의 내용을 수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방식서에 기재된 내용과 사실관계가 다르면 원고패소판결을 선고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만, 이 경우 쟁점결정이 무효가 되는 것일 뿐이었으므로 원고는 이에 관하여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3.2.3. 비상심리절차(cognitio extra ordinem)

비상심리절차(cognitio extra ordinem)[28]는 황제가 임명한 전속재판관[29]이 법률심리와 사실심리를 모두 주재하고 판결하는 점에 있어서 방식서소송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비상심리절차에서는 소권(actio)이라는 용어 대신에 소추(persecutio)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상소(appellatio)를 허용하였다.[30] 비상심리절차는 원수정기의 시작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일부 민사사건에 한하여 시행되었으며, 점차 방식서소송을 대체하였다. 결국 324년에 방식서소송이 폐지되면서 민사소송절차는 비상심리절차만 남게 되었다.

4. 관련 어록

로마법이야말로 로마인의 특성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 것이며, 로마의 위대함과 영광에 대한 강력한 증인인 것이다.
프리츠 슐츠, 《로마법의 원리》(이상훈 역, 277-8면에서 전재)
로마법이 인류의 생활에 그처럼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로마법 자체가 로마의 긴 역사 동안 풍부한 경험의 축적을 통하여 인류의 어느 법질서보다도 다양한 선례를 후대에 전승시켜 주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지만, 결정적이었던 점은 로마법이 단순한 경험적 소재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인 정신적 노력의 산물이었고, 그래서 후대인들이 그것을 통해서 "법적 사고의 문법"을 배우고 합리적인 논변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로마법도 로마사회만큼이나 제약된 역사적 소산으로서 결코 이상적인 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이 법 자체의 이상에 도달하려고 노력할 때 거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했고, 로마법을 공부한 수많은 법학도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흔히 오해하듯이 이러한 매력은 로마법이 그때그때 case by case로 구체적인 사안을 형평에 맞게 해결하려고 한 데서,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로마의 법률가들에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법적인 직관"이 작용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로마법이 2000년을 넘어서도 수긍이 가는 법적 규율을 발전시켰다면, 그것은 법이념을 살피고, 그 이념을 삶 속에 구현시키기 위하여 합리적인 공준(dogma)을 마련하고 이를 이성적인 논변으로 전개시키고, 무엇보다도 그 실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권위를 향유했던 로마법률가들의 의식적인 학문적 노력 덕분이었다. 로마법은 결코 case law가 아니었다. 후대인들이 로마법으로부터 많은 것을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인들이 많은 것을 그 속에 집어넣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최병조, 《로마법강의》, 227-8면

5. 한국에서의 로마법 공부

저자가 「로마법원론」의 초판을 낸 것은 1954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벌써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1960년에 개정판을 내기는 했지만, 개고를 하는 도중에 다른 바쁜 일이 생겨, 부득이 뜻했던 작업을 도중에 포기하다시피하여 그 당시로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지 못하였음을 늘 아쉽게 생각하면서 23년을 지내버렸다.

그러면서도 「로마법원론」이 오늘날까지도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해온 것은, 그 내용이 충실하였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 시장성이 없는 책이라는 이유에서 경쟁자라고 할까 다른 학자의 이 방면의 저술이 전연 없었던 데 전적으로 기인한다는 것을 저자는 잘 알고 있다. 그 동안 로마법의 교과서를 저술할 것을 몇몇 젊고 유능한 학자들에게 권유해 본 바도 있으나, 역시 그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중략)

이제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로마법 교과서의 부재상태를 면하게 하기 위하여서라는 이유에서 이 책을 내면서 바라는 것은 하루 빨리 로마법에 깊은 연구가 있는 소장학자가 이 책의 생명을 끊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현승종, 『로마법』 (일조각, 1982), 서문.[31]
오늘날 교육 여건은 필자가 로마법을 공부하기 시작하던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교수가 되어 강의를 개설하던 시기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다른 곳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서울대학교의 경우 도서관 서비스도 아주 많이 개선되어 로마법과 같이 열악한 분야도 이제는 도서관에서 비교적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자료의 활용 역시 전세계적인 발전의 덕택으로 연구와 공부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문영역으로서의 로마법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다. 연구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학습을 위해서도 여전히 그러한데, 우리나라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쉽게 접근 가능한 관련 자료가 별로 없다는 점이 제일 중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로마법학의 성과물 자체가 빈약하여 우리말로 된 자료에 한계가 명백하고, 오늘날 우리나라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외국어가 거의 영어로 편중되면서 전통적으로 유럽의 각국어로 성과물이 발간되어 오히려 영어로 쓰인 논고가 소수에 불과한 로마법과 같은 분야에서 학생들이 정보를 얻기가 매우 힘들게 변해가고 있다. 역으로 영어 외의 외국어 자료가 대종을 이루다보니 우리나라 현실에서 도서관의 자료로 입수되는 것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자료도 영어 외의 외국어로 된 것 들이다보니 자료 자체를 물리적으로 구한다는 것이 바로 해독과 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활용에 제약이 불가피하다. 필자도 수업 중 이런 저런 자료가 좋은 것이 도서관에 있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학생 중 누군가가 그것을 직접 참조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른 나이에 로마법에 대한 순수한 학문적 흥미를 얻을 수 있는 학부 때와 달리 전문직업인으로서의 바로 앞 미래를 철저히 계획하고 진입한 로스쿨생들에게는 로마법은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학점을 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지라-註] 관심의 강도가 이미 그에 못 미치는 것도 있지만, 외국어 자료 해독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 만나는 로마법 원사료의 독해가 일반 법학도에게 기대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가 어떤 방식으론가 타파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필자로서는 안타깝게도 갈수록 비관적이다. 결국 문제는 향후의 과제로 귀결된다.
최병조, "법학전문대학원 로마법 수업의 현황과 과제: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의 경험을 중심으로", 「법사학연구」 제51호(2015), 21~22면

매우 어렵다. 최병조 『로마법강의』(박영사, 1999), 현승종·조규창 『로마법』(법문사, 1996)[32] 단행본이 로마법 교과서의 기본을 갖추었으나, 현재는 두 책 모두 절판이라서 구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로마법을 직접 다루는 논문이나 현행법 교과서에 짤막하게 연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나 접할 수 있을 뿐, 교과서로 쓸 수 있는 책을 시중에서 입수할 수 없다. 또한, 로마법 전공자가 많지 않아 로마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는 로마법 교과서가 많이 있으며, 매우 오랫동안 연구되었기에 자료도 풍부하다. 따라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알면 로마법을 공부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33] 또한, 적어도 초·중급 수준의 라틴어를 알고 있으면 더욱 유용하다. 로마법 개념은 거의 라틴어 명칭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34]

한국에서 잘 알려진 로마법 교과서는 막스 카저(Max Kaser)의 두 권짜리 『로마사법Das römische Privatrecht』 책이다. 제1권(1971)은 고전기 로마법을, 제2권(1975)은 고전기 이후 로마법을 다룬다. 현재에는 롤프 크뉘텔(Rolf Knütel) 교수와 세바스티안 로셰(Sebastian Lohsse) 교수[35]가 편집을 이어받아 『로마사법Römisches Privatrecht』(2016)이라는 이름으로 판을 개정하여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 외에도 파울 외르스(Paul Jörs)·볼프강 쿤켈(Wolfgang Kunkel) 외 4인이 저술·증보한 『로마법Römisches Rrecht』(1987) 등이 있으며,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조지 모소라키스(George Mousourakis)이 저술한 『로마사법 기초Fundamentals of Roman Private Law』(2012) 등이 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 침머만(Reinhard Zimmermann)의 『채무관계법The Law of Obligations』(1996)은 비교법적 연구를 통해 로마 채권법을 상세히 다룬다. 아돌프 베르거(Adolf Berger)의 『로마법 백과사전Encyclopedic dictionary of ROMAN LAW』(1953)은 로마법에서 쓰는 용어를 사전풀이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다 영어로 쓰여있어서 로마법 초심자가 활용하기에 용이하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로 유명한 한동일 교수[36]의 저서 『법으로 읽는 유럽사』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하여 로마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6. 여담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로마법 전공 교수는 변호사시험 갤러리에서 유명하다.[37] 그가 출제위원장으로 참여한 2025학년도 법학적성시험에서도 로마와 관련한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다.[38]


[1] 산마리노는 지금도 여전히 ius commune를 현행법으로 사용한다.[2] 프랑스민법전(나폴레옹민법전)은 로마법의 후신인 대륙법계 법학제요 체계를 바탕으로 제정되었다. 법학제요 체계는 크게 人, 물건, 소유권취득방법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3] 독일민법전은 로마법의 후신인 대륙법계 판덱텐 체계를 바탕으로 제정되었다. 판덱텐 체계는 학설휘찬의 내용을 이론적·체계적으로 재구성한 총칙, 물권, 채권, 친족·상속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4]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당시 유럽에서 널리 전파되었던 프랑스 나폴레옹 민법전을 일본법에 계수하기 위해 프랑스 법학자인 귀스타브 에밀 보아소나드(Gustave Émile Boissonade)를 법률 고문으로 초청하여 민법전 제정 작업을 의뢰하였고, 1888년(메이지 21년)에 소위 '보아소나드 민법'을 공포하였다. 보아소나드 민법은 나폴레옹민법전 내용과 당시 프랑스 민법 이론을 계수한 것이었는데, 이후 메이지 정부가 독일 민법전 제1초안(독일민법전은 1900년에 제정됨) 중심 독일 민법 요소들을 계수하는 것으로 민법전 제정 방향을 전환하면서, 보아소나드 민법을 수정한 민법전이 1896년 3편과 1898년 2편 이렇게 두 차례로 나뉘어 공포되어 1898년에 시행하였다. 이것이 소위 '메이지 민법'이라 불리는 일본제국민법이다. 보아소나드 민법은 메이지 민법의 기초가 되긴 했으나 공포되었을 뿐 시행된 적은 없었다. 일본에서는 이 보아소나드 민법을 두고 일본舊민법(특히 재산편)이라 칭하기도 한다. 메이지 민법은 프랑스 민법을 계수하다가 독일 민법을 계수하였기에 프랑스법적 특징과 독일법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현재 대한민국 민법 제320조 유치권을 물권으로 구분하는 것은 조선민사령에 의해 의용된 메이지 민법(의용민법) 제295조를 그대로 계수한 것인데, 이는 유치권을 담보권의 일부로 보던 보아소나드 민법의 영향이다. 보아소나드 민법의 기초가 된 프랑스의 나폴레옹민법전은, 항변권(exceptio) 중 하나로서 유치권을 이해하던 로마법의 전통을 이어받아, 유치권을 일반적인 권리로 규정하지 않았다. 프랑스법은 유치권을 마치 '동시이행의 항변권'과 유사한 담보권으로 이해하였으며, 로마법처럼 별도의 일반규정 없이 개별적으로 인정되어 오다가, 최근인 2006년이 되어서야 담보법을 개정하여 프랑스민법전 제2286조에서 담보 일반으로서 유치권을 명문화한다. 반면에 독일민법전 제273조에서는 유치권을 채권으로 구분한다.[5] 일본제국이 패망한 직후 일본은 일본제국민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여 일본국민법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크고작은 개정을 거듭하며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일본 민법과 한국 민법을 비교해보면 생각보다 다른 부분이 꽤 있다고 느낄 것이다[6] 다만 로마의 만민법(ius gentium)은 로마 시민과 이방인의 관계(주로 로마 시민권자와 시민권이 없는 속주민과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률이었으므로, 국가 간 관계를 주로 규율하는 현대의 국제법과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7] 제정법을 의미한다. 불문법 체계에서도 제정된 성문법은 존재한다[8] 여기서 고시를 공포할 권한이 있는 고대 로마의 정무관은 안찰관(aedilis, '조영관'이라고도 번역함), 법무관(praetor, '법정관'이라고도 번역함), 속주총독(proconsul 또는 praeses)이었다.[9] 이와 같은 시기 구분에 대하여는 Max Kaser/Rolf Knütel/Sebastian Lohsse. Römisches Privatrecht. 22 Aurlage. C.H.Beck. 2021. 참조. 이 같은 시기 구분법은 현대 로마법 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시기 구분법이다. 주로 독일 로마법 학계의 설명을 참조하였기에 본문에는 독일어 표현을 병기한다.[10] 특히 스토아 학파[11] 로마법과 고전 그리스 철학과의 관계의 연구로 유명한 학자로는 오코 베렌츠(Okko Behrends)가 있다.[12] 키케로는 기사 계급으로서, 법정에서 소송당사자를 변호하는 변론가로 명성이 높았다.[13] 한국어로는 법학제요, 법학원론이라고도 번역하기도 한다. 라틴어 institutiones는 '입문'이라는 의미를 지닌 보통명사이다.[14] 가이우스는 1세기 무렵의 법학자로, 로마법 교과서인 institutiones를 저술한 저자로 유명하다. 가이우스의 풀네임은 알려져있지 않으며, 그 자신은 사비누스 학파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의 institutiones는 로마법 대전의 instutiones와 구분하고자 Gai institutiones라고도 지칭한다. 한국어로는 법학제요, 법학원론이라고도 번역하기도 한다. 최병조 교수는 그 자체로 법률이기도 한 로마법 대전의 institutiones와 구분하기 위해 가이우스의 저서를 법학통론, 로마법 대전의 institutiones를 법학제요로 달리 번역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15] 학설휘찬에서 많이 인용되는 로마법학자인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율리우스 파울루스가 바로 고전기 후기에 활동한 로마법학자이다.[16] 번역 시 접두어 spät-와 nach-가 모두 '뒷 시기'로 이해되어 오역할 수 있음에 주의한다. 접두어 spät-는 영어 late 의미, 접두어 nach-는 영어 post 의미와 같다.[17] '비속법', 혹은 '통속법'이라는 명칭은 20세기까지의 로마법 학계에서 고전 후 시기를 바라보는 멸칭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로 20세기 로마법학자인 프리츠 슐츠(Fritz Schulz)는 비속법이라는 용어 사용을 피했다. 근래의 로마법 학계에서는 이 시기 역시 주목하고 있다.[18] 대부분 법무관 관할이었다[19] 고대 로마에서는 광장(forum)에 모여 재판을 개시하였다.[20] 이 하위문단 내용은 김래영, "소유권유보부계약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2018, 11–20면을 저자 본인이 직·간접 인용하였다(r47).[21] 기원전 105년에 집정관직을 역임한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Publius Rutilius Rufus, 기원전 158년 ~ 기원전 78년 이후 사망)가 법무관직을 역임할 때 도입한 강제집행 절차이다. 언제 법무관직을 역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서, 이 절차가 처음 집행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집정관직을 수행하기 전으로 추정할 뿐이다.[22] 가이우스에 따르면 법률소송은 아이부티우스 법(Lex aebutia)과 율리우스 법(Lex Iulia)에 의해 전면 폐지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이부티우스 법의 제정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율리우스 법은 카이사르가 활동하던 시기에 제정된 법률인지, 아우구스투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제정된 법률인지 불분명하다. 따라서 언제 법률소송이 전면 폐지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공화정 후기에 법률소송절차가 존재했더라도, 사실상 쓰이지 않는 상황이었다.[23] 12표법 제8표: 타인의 나무를 불법으로 벌채한 자는 한 그루당 25아스를 배상한다(qui iniuria cecidisset alienas arbores, lueret in singulas aeris XXV).[24] 제물을 걸고 승패를 내기한다는 의미에서 신성도금(神聖賭金)이라고 번역한다.[25] 가이우스의 『법학원론』 제4권 제16절에서는 소송목적물이 1000아스(로마의 주화)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경우에는 500아스를 신성도금으로 걸고, 소송목적물이 1000아스 미만의 가치를 지닌 경우에는 50아스를 신성도금으로 걸었다고 전한다.[26] 상대를 포박하여 법정으로 끌고오는 행위를 말한다. 체포와 흡사하지만 공권력이 아닌 사인(私人)이 행한다는 점이 다르다.[27] 안찰관 관할 사건인 경우에는 안찰관이 주재하였다.[28] extraordinaria cognitio, extraordinaria inudicia 등으로도 불린다. 사전적 의미는 ‘비상심리절차’나 ‘특별심리절차’라 번역되나, 내용적 의미로는 ‘(황제/원수의) 직권심리절차’에 더 부합한다. 그래서 ‘직권심리절차’라 번역하기도 한다.[29] 이들도 iudex라고 불렸다. 그러나 사인(私人)이었던 방식서소송의 심판인(iudex)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비상심리절차의 iudex(전속재판관)는 근위 장관(praefectus praetorio), 로마 시장(praefectus urbi), 곡물 조달 장관(praefectus annonae), 치안 장관(praefectus vigilum) 등 황제가 임명한 장관이 맡았으며, 법학자인 배석판사(adsessor)가 재판과 관련하여 전속재판관과 함께 사건을 심리ㆍ심판하였다.[30] 로마는 공화정 시기에 이미 몇몇 특별한 재판을 제외하고, 형사 재판에 대한 상소를 법률(lex)로써 허용하고 있었다. 이를 provocatio라고 한다. 그러나 민사 사건은 상소가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원수정기에 비상심리절차가 민사사건에 도입되고 appellatio(상소)가 허용되면서, provocatio와 appellatio는 동의어가 되었다.[31] 세상에 이보다 처절한 서문도 찾기 어려울 것이지만, 이때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시점까지도 대한민국 내의 사정은 약간만 나아졌을 뿐이다.[32] 현승종·조규창 공저 『로마법』은 형식상 현승종 교수가 죽여 달라고(...) 한 교과서의 개정증보판이지만, 실상은 조규창 교수의 단독 저서이다. 조 교수가 스승 현 교수의 선행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간행한 것이다.[33] 로마법은 영어로 쓰인 자료보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쓰인 자료가 더 풍부하다. 앵글로색슨 관습법에서 출발한 영미법과 다르게 대륙법은 로마법의 직계 후신이기 때문이다.[34] 최근에는 생성형 AI의 발달에 힘입어 인공지능번역 수준도 높아졌고, 고전어 번역 수준도 비교적 준수한 편이다. 이러한 인공지능 도구의 도움을 받아 외국어나 고전어를 잘 알지 못해도 대강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35] 롤프 크뉘텔 교수는 2003년판(제17판)부터 2014년판(제20판)까지, 세바스티안 로셰 교수는 2016년판(제21판)부터 개정작업을 맡았다.[36] 2024년 9월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임용되었다.[37] 로마법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임용되는 학자들 절대다수가 민법 또는 민사법 전임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는 로마법(특히 로마사법)이 현행 한국 민사법체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일각에서는 로마법을 민사법의 세부분야로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현재 한국 대학에서 로마법 전임 교수를 두고 있는 학교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법과대학 뿐이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역시 로마법 전임을 두지 않고 있으나, 패컬티 내 민법 전임 중 로마법을 전공한 교수가 두 명 있다.[38] 2025학년도 법학적성시험에서는 언어이해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관련 지문이 2건, 논술에서 로마니스텐(Romanisten. 역사법학파 중 로마법학자)인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와 관련한 논거지문이 1건 출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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