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공의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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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곱 보편 공의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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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그리스어: Γ΄ Σύνοδος τῆς Κωνσταντινουπόλεως, 라틴어: Concilium Constantinopolitanum Tertium, 영어: Third Council of Constantinople)는 680년 황제 콘스탄티노스 4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소집한 기독교의 제6차 보편 공의회이다. 160명의 주교가 참석하여 단성론자들을 저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능력과 뜻, 인성의 능력과 뜻을 선포했다. 이 공의회에서 제정된 규범은 없다.2. 역사
이 공의회의 배경에는 단의론이 있다. 로마 황제 이라클리오스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다 망해갈 뻔한 동로마를 살려놓았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에는, 이미 수차례의 공의회로 단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성론파들이 있었고 단성론파와 칼케돈파의 갈등은 국가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세르기오스는 단의론을 제시한다. 이는 그리스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신으로서의 본성 두 개가 다 있지만, 단일한 의지를 지닌다는 이론으로, 단성론파와 칼케돈파의 갈등을 봉합하려 한 것이다. 처음에는 로마의 호노리오 1세 교황도 지지하였고 제국의 교회가 일치를 이루나 했는데 후임 교황 요한 4세는 단의론에 반대하였다.결국 이라클리오스 황제의 사후 콘스탄스 2세 황제를 거쳐 콘스탄티노스 4세 시대에 가서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개최하여 단의론을 배척함으로써 단의론은 완전히 폐기되었다. 덤으로 단의론에 찬성했던 호노리오 교황도 파문해 버렸다. 이로서 단성론 교회와 칼케돈 교회의 일치는 영영 물 건너가 버렸다.여담으로 이때 라벤나 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아닌 로마 교구로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