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아시아
1.1. 한반도
2. 북아시아3. 북아메리카4.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5. 유럽6. 서아시아7. 중앙아시아8. 아프리카9.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10. 관련 문서11. 참고 문헌1.1.1. 고조선1.1.2. 삼국시대1.1.3. 남북국시대1.1.4. 고려1.1.5. 조선1.1.6. 북한
1.2. 일본1.3. 류큐1.4. 중화권1.4.1. 중화인민공화국1.4.2. 중화민국 및 대만1.4.3. 홍콩1.4.4. 마카오1.4.5. 상나라1.4.6. 주나라1.4.7. 춘추시대1.4.8. 전국시대1.4.9. 전한1.4.10. 후한1.4.11. 5호 16국1.4.12. 남북조시대1.4.13. 수나라1.4.14. 당나라1.4.15. 5대10국1.4.16. 송나라1.4.17. 요나라1.4.18. 금나라1.4.19. 서하1.4.20. 원나라1.4.21. 명나라1.4.22. 청나라
1.5. 몽골[clearfix]
1. 동아시아
1.1. 한반도
1.1.1. 고조선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어서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고고학적인 자료를 보면 정가와자 문화로 비정되는 시기인 기원전 6세기에서 연나라와의 전쟁이 있기 이전인 기원전 290년대 무렵까지가 랴오닝성 전역과 지린성 일부, 한반도 북부를 제패한 전성기로 보이며 기원전 323년에 연나라에 맞서 천자의 칭호인 왕을 칭할 정도였다. 다만 이 당시의 기록이 왕의 이름과 재위기간도 알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빈약한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위만조선 시대는 대체로 강성한 편이었으며, 우거왕대에 멸망하긴 했지만 우거왕에 대한 한무제의 침략 동기가 강성해진 위만조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전성기로 볼 수가 있다.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위만 | BCE 194 | ? | ? | 전성기 |
알 수 없음 | ? | ? | ? | |
우거왕 | ? | BCE 108년 6월 | ? |
1.1.2. 삼국시대
1.1.2.1. 부여
기록이 없다. 그나마 단편적인 기록을 토대로 분석하면 대소왕 초기~중기 시기가 전성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1.1.2.2. 고구려
고구려의 경우 전성기가 100년을 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수림왕부터 안장왕까지 기간은 무려 160년에 달하며 안원왕까지 포함한다면 170년이 넘는다.[1] 장수왕의 치세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때 닦아놓은 기틀이 멸망 때까지 그대로 갔다. 중흥군주로는 평원왕과 영양왕이 꼽힌다.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17대 소수림왕 | 371년 10월 | 384년 11월 | 13년 1개월 | 전성기 |
18대 고국양왕 | 384년 12월 | 391년 5월 | 6년 5개월 | |
19대 광개토대왕 | 391년 5월 | 412년 10월 | 21년 5개월 | |
20대 장수왕 | 412년 10월 | 491년 12월 | 79년 2개월 | |
21대 문자명왕 | 492년 | 519년 | 27년 | |
22대 안장왕 | 519년 | 531년 5월 | 12년 | |
23대 안원왕 | 531년 5월 | 545년 3월 | 13년 10개월 | |
25대 평원왕 | 559년 3월 | 590년 10윌 | 31년 7개월 | 중흥기 |
26대 영양왕 | 590년 10월 | 618년 9월 | 27년 11개월 |
1.1.2.3. 백제
백제는 근초고왕~근구수왕 때 전성기였다가 이후 100여 년간의 침체기와 혼란기를 거친다. 한 때 비유왕~개로왕 때 중흥, 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으나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실패했고 24대 왕인 동성왕이 중흥의 발판을 닦은 후 무령왕 ~ 성왕에 이르는 중흥을 거쳤다가 관산성 전투의 패전으로 50여 년간의 침체와 쇠퇴를 겪었다. 그리고 30대 왕인 무왕 때 다시 중흥하여 의자왕 15년까지 유지되었다.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8대 고이왕 | 234년 | 286년 11월 | 52년 | 발전기 |
11대 비류왕 | 304년 10월 | 344년 10월 | 40년 | |
13대 근초고왕 | 346년 9월 | 375년 11월 | 29년 2개월 | 전성기 |
14대 근구수왕 | 375년 11월 | 384년 4월 | 8년 5개월 | |
24대 동성왕 | 479년 11월 | 501년 11월 | 22년 | 중흥기 |
25대 무령왕 | 501년 11월 | 523년 5월 7일 | 21년 6개월 | |
26대 성왕 | 523년 5월 | 554년 7월 | 31년 | |
30대 무왕 | 600년 5월 | 641년 3월 | 40년 10개월 | 재중흥기 |
31대 의자왕 | 641년 3월 | 660년 9월 1일 | 19년 6개월[2] |
1.1.2.4. 신라
신라의 경우 지증왕 때 기틀을 잡고 이후 진흥왕 때 고구려, 백제, 가야를 모두 제압하고 영토를 3배로 불리며 상대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나, 진흥왕의 공세로 크게 몰락한 백제가 다시 안정을 찾고 중흥을 바탕으로 한 여제+왜 삼각동맹으로 인해 진지왕 이후의 신라는 외교적으로 고립, 한동안 수세적으로 몰리게 되어 유지에 급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삼국통일전쟁 시기가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만,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 치세 전반기는 말 그대로 신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과 같았던 시기라 국력이 절정에 올랐던 전성기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교과과정에서도 통일 이전 신라의 전성기는 진흥왕대로 잡는 편이다.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22대 지증왕 | 500년 | 514년 | 15년 | 전성기 |
23대 법흥왕 | 514년 | 540년 | 26년 | |
24대 진흥왕 | 540년 | 576년 | 36년 |
1.1.2.5. 가야
1.1.2.5.1. 금관가야(전기 가야)
그나마 있는 기록을 살펴본다면 금관국은 창업군주인 수로왕 시대가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진변한 지역에서 작은 나라끼리 분쟁이 일어났을 때 수로왕에게 판결을 구할 정도로 영향력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은 광개토대왕의 남정 직전인 4세기 후반부 이시품왕 시기가 신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므로 전성기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야는 모든게 추측의 영역이긴 하다.1.1.2.5.2. 대가야와 아라가야, 소가야(후기 가야)
반파국(대가야), 즉 후기 가야의 전성기는 5세기 후반~6세기 초반. 당시 어느 왕 재위기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불분명하지만 이 때 백제가 개로왕이 살해당하고 헤롱거릴 때 전북, 전남 동부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신라의 앞마당이 된 낙동강 대신 섬진강 유역을 통해 국제 무역을 계속했으며, 가야 역사상 유일하게 중국에 사신을 보내 국제적으로 가야국의 위치를 공인받기도 했다. 또한 안라국의 가실왕은 훗날 가야금을 만들었다. 반파국과 안라국만큼은 아니었지만 고자국 역시 5세기에 해상무역을 통해 발전했다.1.1.3. 남북국시대
1.1.3.1. 발해
발해의 경우 기록이 적어서 후기의 상황에 대해 알 순 없지만 대체적으로 대건황 사후로 쇠퇴기에 들어선 것으로 본다.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3대 문왕 | 737년 | 793년 | 56년 | 발전기 |
10대 선왕 | 818년 | 830년 | 12년 | 전성기 |
11대 대이진 | 830년 | 857년 | 27년 | |
12대 대건황 | 857년 | 871년 | 14년 |
1.1.3.2. 통일신라
통일신라는 676년 삼국통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오랜 전란기를 끝내고 안정을 찾아 토지와 인구가 늘어나는 한편, 통치제도가 정비된 것에 힘입어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았으며 이 전성기는 신문왕~혜공왕에 이르는 100년 동안 이어졌다. 삼국사기 시대구분상 무열왕계가 대를 이어 즉위한 중대와 겹친다. 후기의 경우 장보고의 청해진으로 잠시 전성시기가 다시 오기도 했다.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30대 문무왕 | 661년 6월 | 681년 7월 24일 | 20년 | 최전성기 |
31대 신문왕 | 681년 7월 30일 | 692년 8월 22일 | 11년 23일 | |
32대 효소왕 | 692년 7월 | 702년 8월 28일 | 10년 1개월 | |
33대 성덕왕 | 702년 7월 | 737년 2월 | 34년 7개월 | |
34대 효성왕 | 737년 2월 | 742년 5월 | 5년 3개월 | |
35대 경덕왕 | 742년 5월 | 765년 6월 | 23년 1개월 | |
36대 혜공왕 | 765년 6월 | 780년 4월 | 14년 10개월 |
1.1.4. 고려
- 광종부터 성종까지는 노비안검법, 최승로의 시무 28조 등의 영향으로 짧은 전성기를 누렸으나 목종 때에는 유행간과 김치양의 횡포로 나라가 흔들렸다.
- 현종의 여요전쟁 승리 이후 100여 년간. 이 시기는 내정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매우 강성했던 시기다. 특히 문종 사후 그의 아들들 재위 기간엔 당대 최강국인 요나라(거란)의 사신이 지각하자 이를 놀리는 기록도 남아 있을 정도이며.[3] 최대 부국이었던 송나라(중화)로부터는 조공사가 아닌 "국신사"로 대우받았다.
- 그러나 예종 사후 고려는 급격하게 쇠락하고 말았고, 무신정권과 원 간섭기라는 기나 긴 외우내환의 세월동안 다시는 재흥을 꾀하지 못했다. 공민왕 시기에서 재흥의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01대 태조 | 918년 | 943년 | 25년 | 발전기 |
04대 광종 | 949년 | 975년 | 26년 | 전성기 |
05대 경종 | 975년 | 981년 | 6년 | |
06대 성종 | 981년 | 997년 | 16년 | |
08대 현종 | 1009년 2월 기축일 | 1031년 5월 23일 | 22년 | 최전성기[4] |
09대 덕종 | 1031년 5월 갑술일 | 1034년 9월 17일 | 3년 | |
10대 정종 | 1034년 9월 계묘일 | 1046년 5월 18일 | 12년 | |
11대 문종 | 1046년 5월 정유일 | 1083년 7월 18일 | 37년 79일 | |
12대 순종 | 1083년 7월 신유일 | 1083년 10월 23일 | 3개월 3일 | |
13대 선종 | 1083년 10월 병신일 | 1094년 5월 2일 | 11년 | |
14대 헌종 | 1094년 5월 임인일 | 1095년 10월 7일 | 1년 142일 | |
15대 숙종 | 1095년 10월 | 1105년 10월 2일 | 10년 | |
16대 예종 | 1105년 10월 병인일 | 1122년 4월 6일 | 17년 |
1.1.5. 조선
일반적으로 15세기 전체를 조선의 전성기로 치는 편이다. 태조, 정종 때는 발전기였고 이후 태종, 세종, 문종 때는 최전성기였다. 단종 이후로는 계유정난의 악영향으로 약간 둔화되지만 여전히 성종 때까지는 전성기였다. 하지만 연산군 10년에 벌어진 갑자사화 이후로 조선은 점점 침체기로 빠진다. 그 뒤 중종, 인종 때 침체기가 지속이 되었다. 다만 이 때는 약간 침체된 수준에 가까웠으나 명종 때 오면서 윤원형과 정난정의 횡포로 국력이 점점 약화되면서 혼란기로 빠져든다. 선조 때 약화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거의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국력이 계속 피폐해졌다.임진왜란 종전 이후에 피폐해진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어느정도 회복되어 나가는 듯 보이다가 광해군이 즉위하는데 이후에도 중립외교 시도 등으로 어느정도 피폐해진 국력이 조금씩 회복되는 듯 했지만, 대북파의 횡포와 연이은 옥사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은 계속 피폐해져 갔다. 인조 때는 이괄의 난, 정묘호란, 이충경의 옥사, 유효립의 옥사 등이 일어나면서 계속 국력이 피폐해졌고 병자호란에서 패배하면서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피폐해진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다시 시도되는데 효종, 현종 때 들어서면서 피폐해진 국력은 점점 회복되기 시작하고 국력이 점점 회복세로 접어든다. 현종 치세 말기에 터진 경신대기근 때문에 국력이 약간 쇠퇴한 적이 있었지만, 숙종 때 마침내 중흥의 발판을 놓는데 성공했고, 영조, 정조 때는 중흥에 성공하는데 영정조 치세인 18세기 중후반은 왜란과 호란으로 피폐해진 국력이 거의 안정된 중흥기로 분류한다.
하단의 분류와 같이 숙종 시절의 경우, 영정조 시절의 앞에 위치한 중흥준비기로 보기도 하나, 조선 후기 당시 인식은 태평성대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19세기 수많은 한글 소설이나 구전 설화들의 시작이 '숙종대왕 호시절에'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숙종 치세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워낙 치세가 길었기 때문에, 각종 변란과 기근 또한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전성기에는 그림자도 있는데 태조~태종 시기 왕자의 난 등 칼부림이나 숙청, 단종~성종 시기 계유정난, 세조 찬위, 단종복위운동, 이시애의 난, 남이의 옥, 폐비 윤씨 사사 등의 정치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고 세조 때 공신들의 횡포도 그 시기 전성기의 그림자로 꼽힌다. 숙종, 영조, 정조 때의 중흥준비기 및 중흥기에도 그림자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수많은 환국 및 역모와 반란 사건, 임오화변 등으로 붕당정치의 균형이 뿌리뽑힌 것이 그 때 중흥기의 그림자일 것이다. 이후 조선은 붕당정치의 균형이 뿌리뽑혀서 19세기때부터 세도정치라는 몰락과 파멸의 쇠락기를 겪게 된다.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01대 태조 | 1392년 8월 5일 | 1398년 10월 14일 | 6년 | 발전기 |
02대 정종 | 1398년 10월 14일 | 1400년 11월 28일 | 2년 | |
03대 태종 | 1400년 11월 28일 | 1418년 9월 9일 | 17년 | 최전성기 |
04대 세종 | 1418년 9월 9일 | 1450년 3월 30일 | 31년 | |
05대 문종 | 1450년 3월 30일 | 1452년 6월 1일 | 2년 | |
06대 단종 | 1452년 6월 1일 | 1455년 6월 24일 | 3년 | 전성기 |
07대 세조 | 1455년 6월 24일 | 1468년 9월 22일 | 13년 | |
08대 예종 | 1468년 9월 22일 | 1469년 12월 31일 | 1년 | |
09대 성종 | 1469년 12월 31일 | 1495년 1월 20일 | 25년 | |
17대 효종 | 1649년 6월 22일 | 1659년 6월 23일 | 10년 | 회복기 |
18대 현종 | 1659년 6월 28일 | 1674년 9월 17일 | 15년 | |
19대 숙종 | 1674년 9월 22일 | 1720년 7월 12일 | 45년 | 중흥준비기 |
20대 경종 | 1720년 7월 17일 | 1724년 10월 11일 | 4년 | |
21대 영조 | 1724년 10월 16일 | 1776년 4월 22일 | 52년 | 중흥기 |
22대 정조 | 1776년 4월 27일 | 1800년 8월 18일 | 24년 |
1.1.6. 북한
1990년대 중반에 터진 고난의 행군 시절 이전까지만 해도 기본적인 생계는 보장되는 수준이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1950년대부터 1960년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한국과 비교하면 197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1980년대 이후부턴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하지만[5] 북한 자체로만 보면 5~60년대엔 경공업 기반, 70년대 후반부턴 농업 기계화를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어획량도 많아서 명태를 무상으로 지급하기까지 했다. 1974년에는 무세국가를 표방하기도 했다. 광물 수출 등으로 제한적 풍요를 맛보기도 했다.그러나 주체농법이라는 사이비 농법이 시행되고 북한의 80년대 3대 실정, 불필요한 우상화와 군사력 증강, 류경호텔의 무리한 건립으로 1980년대 중후반기부터 착실하게 망조가 드는 중에, 남한에서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제행사를 치른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평양학생대축전이라는 맞대응식 돈지랄 정책을 벌이고, 동구권 공산국가들의 붕괴로 인해 해외 교역도 차질이 생기자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결국엔 1995년 고난의 행군으로 극빈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북한은 20년에 걸쳐 고난의 행군으로 입은 피해를 극복해나갔고 주민들도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일궈나가며 김정은 시기인 2010년대 후반은 북한 역사상 가장 먹고살기 좋았던 시기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19와 쇄국 정책의 직격탄을 맞아 이조차 무효화되었고, 아직도 북한은 세계 최빈국 신세일 정도로 가난하다.
1.2. 일본
- 아스카 시대 후기부터 헤이안 시대 전기까지
- 에도 막부 성립 이후부터 에도 막부 붕괴 이전까지.
이 시기에 에도 막부가 이끄는 일본은 장기간 안정을 유지하면서 전성기를 이어나갔으며, 이 때 쌓아둔 자본은 일본이 근대화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본격적인 근대화는 아니었지만 포르투갈, 네덜란드를 비롯한 당대 서구 열강들과 조금씩 접촉하며 근대적인 학문과 기술, 문물들을 알아가던 시기도 이 때였다.
- 러일전쟁 승전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일본 제국
이 시기는 일본인들에게는 영광스런 시절이었지만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치욕적인 시절이자 흑역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 일본 서민들의 삶의 질은 전시 체제에 돌입한 후부터는 그야말로 지옥같은 시절이 이어졌다.[6] 다만 서구권 국가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과도 어깨 싸움은 할만한 근대화를 이뤄냈다는 측면에서는 이견이 없다.
- 6.25 전쟁 이후인 1969년 세계 GDP 2위 시기부터 일본 거품경제가 한창 끼던 1996년까지의 시기 및 버블시기의 영향이 남아 경제 문화적 융성을 이루던 1990년대 초반까지.
이때는 사회적으로도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자랑했으며, 평화헌법 체제 아래 경제 올인 전략을 펼쳐 경제적으로 국민소득이 제1의 세계 국가 중 1위를 자랑하던 시기였다.
1.3. 류큐
- 쇼신 왕 ~ 쇼네이 왕
이 당시 류큐는 한중일 삼국 사이의 무역 허브 역할로 엄청난 돈을 벌였으며,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접촉하기도 했었다.
1.4. 중화권
1.4.1. 중화인민공화국
- 개혁개방 정책 이행기 ~ 2010년대 중반까지: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나, 국력 측면이나 사회적 변화 측면에서 봤을 땐 미국인들이 보통 1990년대 당시의 미국을 최고로 꼽듯 중국인들은 보통 최빈국을 완전히 벗어나면서 중진국에 진입하고 GDP 2위를 달성한 후진타오, 원자바오 집권 시기인 2000년대~2010년대 초반을 전성기로 꼽는 사람이 많다.[7] 그러나 시진핑 집권 후인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부터는 1당 독재를 넘어 시진핑의 1인 독재 장기집권이 가시화되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노골적인 견제, 홍콩 민주화 운동 문제 등 눈으로도 보이는 내외부적인 문제가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여기에 2020년대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안일한 초기 대처와 중국 공산당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한 전랑 외교로 인해 전세계적 전염병 유행의 발원지로 지목되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제제를 받는 등 고립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4.2. 중화민국 및 대만
- 장제스의 북벌 완수(1928년) ~ 중일전쟁 이전 : 일명 '남경 10년'. 청말민초의 혼란상이 정리되면서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본격적으로 나라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산업, 경제, 주거 방면에서 전방위적인 개혁이 실시되었으며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고 국공내전으로 타이완 섬으로 쫓겨나면서 망했다. 즉, 중화민국이 중국 대륙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은 이 시기와 2차대전 종전 직후 잠시뿐이고, 그나마도 군벌들과 공산당과 드잡이질을 해야 했다.
국부천대 이후에도 대만 지역 자체적으로 보면 적당한 경제성장과 사실상 중화권 유일의 민주 체제를 갖추면서 양안관계와 미중 갈등 속 선봉장 격으로 나름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1.4.3. 홍콩
- 영국령 홍콩 후기: 머레이 맥클레호스 총독이 부임한 1970년대 초부터 홍콩 반환이 이루어진 1997년까지가 해당된다. 이때의 홍콩은 67폭동의 혼란을 바로잡고 1974년 염정공서를 설립하여 부정부패를 단속하는 등, 오늘날의 선진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중국에 반환된 1997년과 그 이후에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을 강타한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중국 중앙정부의 정치적 간섭이 갈수록 심해지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져서 예전같지 않다.
1.4.4. 마카오
1.4.5. 상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무정(상) | 기원전 1250 | 기원전 1192[9] | 58년 |
1.4.6. 주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문왕(주) | 기원전 ??? | 기원전 1046[10] | 50년[11] | |
무왕(주) | 기원전 1046 | 기원전 1043[12] | 3년[13] | |
성왕(주) | 기원전 1043 | 기원전 1021[14] | 22년 | |
강왕(주) | 기원전 1021 | 기원전 996[15] | 25년 | |
선왕(주) | 기원전 828 | 기원전 782[16] | 46년 |
1.4.7. 춘추시대
1.4.7.1. 정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정무공 | 기원전 771 | 기원전 744[17] | 27년 | |
정장공 | 기원전 743 | 기원전 701[18] | 42년 | |
정간공 | 기원전 565 | 기원전 530[19] | 35년 |
1.4.7.2. 제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제환공 | BC 685 | BC 643[20] |
제경공 | BC 547 | BC 490[21] |
1.4.7.3. 진(晉)
진문후 재위기간 BC 780~BC 746[22]진헌공 재위기간 BC 676~BC 651[23]
진문공 재위기간 BC 636~BC 628[24]
진양공 재위기간 BC 627~BC 621[25]
진도공 재위기간 BC 573~BC 558[26]
1.4.7.4. 초나라
초무왕 재위기간 BC 740~BC 690[27]초문왕 재위기간 BC 689~BC 675[28]
초성왕 재위기간 BC 671~BC 626[29]
초목왕 재위기간 BC 625~BC 614
초장왕 재위기간 BC 613~BC 591[30]
초혜왕 재위기간 BC 488~BC 432[31]
1.4.7.5. 진(秦)
진목공 재위기간 BC 659~BC 621[32]1.4.7.6. 오(춘추시대)
합려 재위기간 BC 514~BC 496[33]부차 재위기간 BC 495~BC 473[34]
1.4.7.7. 월나라
구천 재위기간 BC 496~BC 464[35]1.4.8. 전국시대
1.4.8.1. 제나라
제위왕 재위기간 BC 378~BC 343(사기), BC 356~BC 320(죽서기년)[36]제선왕 재위기간 BC 342~BC 324 사기, BC 319~BC 301 죽서기년[37]
제민왕 재위기간 BC 323~BC 284, BC 300~BC 284[38][39]
1.4.8.2. 조나라
조양자 재위기간 BC 457~ BC 425[40]조무령왕 재위기간 BC 325년~ BC 299년
조혜문왕 재위기간 BC 298년~ BC 266년[41]
1.4.8.3. 연나라
연소왕 재위기간 BC 311~BC 279[42]1.4.8.4. 위나라
위문후 재위기간 BC 445~BC 396[43]위무후 재위기간 BC 395~BC 370[44]
1.4.8.5. 진나라
진효공 재위기간 기원전 361년~기원전 338년[45]혜문왕 재위기간 기원전 337년~기원전 311년[46]
소양왕 재위기간 기원전 306년 ~ 기원전 251년
진시황 재위기간 기원전 246년 ~ 기원전 210년[47]
1.4.8.6. 초나라
초도왕 재위기간 BC 401~BC 381[48]1.4.9. 전한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한문제 | BC 180 | BC 157 |
한경제 | BC 157 | BC 141[49] |
한무제 | BC 141 | BC 87[50] |
선제 | BC 74 | BC 48[51] |
1.4.10. 후한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광무제 | 25 | 57[52] |
한명제 | 57 | 75 |
한장제 | 75 | 88 |
1.4.11. 5호 16국
1.4.11.1. 전진
부견 재위기간 357년 7월 ~ 385년1.4.12. 남북조시대
1.4.12.1. 북위
도무제 재위기간 386~409명원제 재위기간 409~423
태무제 재위기간 423~452
효문제 재위기간 471~499
1.4.12.2. 유송
유유 재위기간 420~422유의륭 재위기간 424~453
1.4.12.3. 양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비고 |
무제 | 502년 4월 30일 | 549년 6월 12일 | [53] |
1.4.13. 수나라
시호 | 즉위연일 | 퇴위년일 |
수문제 | 581년 3월 4일 | 604년 8월 13일[54] |
1.4.14. 당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당태종 | 626년 9월 4일 | 649년 7월 10일 |
당고종 | 649년 7월 15일 | 683년 12월 27일[55] |
측천무후 | 690년 10월 16일 | 705년 2월 22일[56] |
당현종 | 712년 9월 8일 | 756년 8월 12일[57] |
당헌종 | 805년 8월 9일 | 820년 2월 14일[58] |
1.4.15. 5대10국
1.4.15.1. 후주
시호 | 즉위연일 | 퇴위년일 |
시영 | 954년 | 959년 |
1.4.16. 송나라
1.4.16.1. 북송
시호 | 즉위연일 | 퇴위년일 |
송태종 | 976년 11월 15일 | 997년 5월 8일 |
송진종 | 997년 5월 8일 | 1022년 3월 23일 |
송인종 | 1022년 3월 23일 | 1063년 4월 30일 |
1.4.16.2. 남송
시호 | 즉위연일 | 퇴위년일 |
송효종 | 1162년 7월 24일 | 1189년 2월 18일 |
1.4.17. 요나라
시호 | 즉위연일 | 퇴위년일 |
요태종 | 927년 12월 11일 | 947년 2월 24일 |
요성종 | 982년 10월 14일 | 1031년 6월 25일 |
1.4.18. 금나라
시호 | 즉위연일 | 퇴위년일 |
금태종 | 1123년 9월 27일 | 1135년 2월 9일 |
금세종 | 1161년 10월 27일 | 1189년 1월 20일 |
금장종 | 1189년 1월 20일 | 1208년 12월 29일 |
1.4.19. 서하
시호 | 즉위연일 | 퇴위년일 |
숭종 | 1086년 8월 21일 | 1139년 7월 1일 |
서하 인종 | 1139년 7월 | 1193년 10월 16일 |
1.4.20. 원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쿠빌라이 칸 | 1260년 5월 5일 | 1294년 2월 18일[59] |
1.4.21. 명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영락제 | 1402년 7월 17일 | 1424년 8월 12일 |
홍희제 | 1424년 8월 13일 | 1425년 6월 26일 |
선덕제 | 1425년 6월 27일 | 1435년 1월 31일 |
홍치제 | 1487년 9월 22일 | 1505년 6월 8일 |
1.4.22. 청나라
시호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숭덕제 | 1626년 10월 20일 | 1643년 9월 21일 |
순치제 | 1644년 | 1661년 |
강희제 | 1662년 | 1722년[60] |
옹정제 | 1723년 | 1735년 |
건륭제 | 1735년 | 1795년[61] |
1.5. 몽골
2. 북아시아
3. 북아메리카
- 미국 : 사실 독보적인 세계 패권국가이자 초강대국인 미국 특성상 19세기 후반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성기이기는 하나 굳이 미국이 잘 나가던 시기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이 시기 모두 스포츠를 넘어 각 시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종목별 GOAT[63]인 스포츠 스타가 있었으며, 해당 전성기가 끝나고 거품이 꺼지며 최악의 경제 침체를 겪게 된다.
- 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대공황 이전까지 : 일명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이 시기는 재즈, 사교클럽, 플래퍼 문화 등 대중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베이브 루스와 잭 뎀프시 등등 스포츠계에서 슈퍼스타가 나오며 미국이 절정기로 치닫고 있었다. 사실상 미국 독주 체제가 완전히 완성된 시절. 다만 알다시피 거품 제거를 못 해 10년도 못 가 대공황을 맞았다.
- 냉전의 종전부터 대침체 사태까지
이 중에서도 21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미국인들은 1990년대를 미국 최고의 호황기로 꼽는 편이다. 미국과 함께 전 세계를 양분하였던 초강대국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이 종료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하드파워는 물론 소프트파워 면에서도 그 어느 국가도 넘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시로 1990년대 문화의 상징이었던 마이클 잭슨, 마이클 조던 등의 스타들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2000~2010년대의 스타들은 연예계는 관심이 없다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의 경제적 호황기는 거품 경제였다는 평이 많으며,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꺼지고 9.11 테러와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과 더불어 결정적으로 대침체를 겪으면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삶의 질 하락과 심리적인 위축을 겪게 되었다.
- 멕시코
- 아즈텍, 마야 문명 시기
물론 마야 문명의 경우 멕시코 일대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아즈텍과는 달리 멕시코 뿐만 아니라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같은 다른 중미 국가들도 마야 문명권에 속해 있었기에 멕시코 딱 한 나라의 역사라고만 하기엔 애매하다 거기다가 식인 문화와 폭압적 정치 때문에 피지배 소수 멕시코 원주민들에게 있어서도 거의 암흑기였다 - 멕시코 제1제국 성립 ~ 미국-멕시코 전쟁 이전까지
위의 중남미 원주민 문명은 스페인 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의 전근대 시기인데다가 특히 마야의 경우 멕시코를 비롯해 과테말라나 벨리즈 같은 다른 중앙아메리카의 인접국들도 공유하는지라 멕시코 자체만의 역사라고 보기 애매하지만 이 시기야 말로 실질적인 멕시코의 전성기라 볼 수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직후 아구스틴 1세에 의해 멕시코 제국이 등장하면서 그 거대한 누에바에스파냐 영토의 대부분을 통째로 가지게 되었다. 그 영토의 크기는 중미 대륙 전역과 현 미국 중부의 일부와 미 남부, 서부를 통째로 가진 정도. 물론 아구스틴 1세가 쿠데타를 당하는 등 여러모로 정치적인 병폐가 있긴 했으나 적어도 근현대 멕시코만의 역사를 언급할 때 독립 이후부터 미국-멕시코 전쟁 전 까지의 시기를 전성기로 보는게 중론이다.[64]
4.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5. 유럽
에게 해(에게 문명) - 고대 로마 시절, 대항해시대 이후 짧게는 벨 에포크 시대, 넓게는 제2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67],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일 쇼크 이전까지[68],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당시, 독일 통일 이후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5.1. 로마 문명
5.2. 서유럽
- 영국: 윌리엄 2세 ~ 헨리 1세, 헨리 2세 ~ 리처드 1세, 에드워드 1세 시대, 에드워드 3세 시대, 헨리 5세 시대, 리처드 3세 ~ 헨리 7세, 헨리 8세, 엘리자베스 시대 ~ 제임스 1세, 찰스 2세 즉위 후 영란전쟁 이후부터 빅토리아 시대 ~ 짧게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넓게는 제2차 세계 대전까지[73],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오일 쇼크 이전까지[74], 마거릿 대처 시절, 토니 블레어 시절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 독일: 독일 제국 시대
통일 이후 단기간에 더욱 가파른 산업 성장을 이루어 1차대전 직전에는 본국의 생산력이 영국을 능가하였으며 당시 과학, 기술, 예술의 다수 분야에서 세계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전후 고속 성장 시대 (라인강의 기적), 독일 통일 이후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 오스트리아: 카를 5세부터 페르디난트 1세세까지를 최전성기라 하고 레오폴트 1세부터 마리아 테레지아시대까지를 중흥기라 한다. 다만 카를 5세는 1521년 이후 오스트리아를 페르디난트 1세에게 위임한데다가 플란데런에서 자라나 오스트리아인 군주로 보기에는 어렵다.
5.3. 동유럽
- 헝가리: 헝가리 왕국 시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대
- 체코: 보헤미아 왕국 시기
- 폴란드: 브와디스와프 1세 ~ 카지미에시 3세 시대, 지그문트 1세 ~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시대
- 발트 3국
- 발칸반도
- 러시아: 표트르 대제 시기부터 알렉산드르 1세까지의 러시아 제국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저지하고 전후 빈체제의 일원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을 전성기로 볼 수 있다. 이후로는 전근대성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 및 타 열강의 견제 등으로 기울어진다.
5.4. 북유럽
5.5. 남유럽
- 이베리아 반도
- 이탈리아반도
- 그리스: 폴리스 시대 및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3세 시절의 마케도니아 왕국 시절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들였는지 그 조그만 나라의 무역 수입이 프랑스 전체 세입을 뛰어넘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1503년 후에도 1669년 크레타의 상실 전까지는 유럽에서 알아주는 경제 대국이었다.
- 튀르키예
- 제2차 빈 공방전 이전까지의 오스만 제국 :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부터 2차 빈 공방전 직전까지, 유럽에서 '악마의 수호를 받는 무적의 군대'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에 못 따라가 점점 쇠퇴하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유럽 열강들의 동네북으로 전락했으며, 명맥만은 잇고 있다가 1922년에 멸망했다.
- 튀르키예 공화국 : 케말 파샤 정권 시기 (1923 ~ 1938) : 튀르키예 공화국의 역대 정권들 중 강력한 리더십과 통치력을 가졌던 안정적인 시기여서 그런지 튀르키예 국민들 사이에서도 케말 파샤 정권기때가 살기 좋았다며 평하는 이들이 있다.
6. 서아시아
7. 중앙아시아
-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집권기
- 키르기스스탄: 예니세이 키르기스(고대), 2005년, 2010년, 2020년(색깔혁명 시기) - 다른 주변 국가들이 독재국가들인 것과 달리 이 시기의 키르기스스탄은 민주화되어 독재가 약했다.
- 신강의 위구르: 카라한 칸국, 서요[78]의 지배, 차가타이 칸국의 통치시기, 모굴리스탄 칸국, 야르칸드 칸국,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8. 아프리카
- 리비아: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집권기 초,중반[80]
- 나미비아: 샘 누조마 집권기
- 짐바브웨: 쇼나 왕조 시대
- 우간다: 분뇨로 왕국 시대
9.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 라오스: 란상왕국 시기(특히 술리나봉사 왕 시기)
- 싱가포르: 1980년대 후반기 ~ 현재진행형
사실 1인당 GDP로만 보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잠시 주춤했다가 2000년대 중반 리셴룽 총리 집권 이후 도박 산업을 유치하면서부터 다시금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홍콩에 중국 본토의 영향이 점점 증대되면서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금융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경찰국가, 심지어는 잘사는 북한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의 고강도의 사회 통제는 싱가포르 사회의 선진화에 제약이 되고 있다.[81]
- 필리핀: 1950 ~ 60년대
왕조 국가의 역사가 있는 다른 동남아시아의 나라들과 달리 필리핀은 스페인, 미국의 식민화 이전 이슬람교가 강세였던 민다나오 섬 등 남부 지역을 제외하면 왕조 국가의 역사가 거의 전무하다.
- 나우루: 1970 ~ 80년대
10. 관련 문서
- 각국 명군이 통치한 기간과 각국의 전성기는 큰 연관이 있다.
11. 참고 문헌
[1] 다만 중간에 껴 있는 문자명왕 시기에 대외적 통제력을 잃는 모습이 나오고 나제동맹에게 밀려나면서 무령왕을 위시한 백제에게 철저히 밀리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안장왕 때 들어와 다시 백제를 압박하고 북위의 평주 용성을 공격하는 등 공세로 전환해 전성기를 유지하였다. 안원왕 시기에는 쇠퇴기로 알려져 있으나 의외로 안원왕 재위기간에는 말년의 후계 문제를 제외하면 큰 사건 없이 조용한 치세가 이어졌다.[2] 655년의 정변 이전까지 한정한다면 전성기 못지 않은 힘을 보여주었다. 다만 그 후엔 갈피를 못잡다가 멸망한다.[3] 선종 문서 참고.[4] 현종과 그의 아들 덕종, 정종, 문종 때까지를 최전성기로 보기도 한다.[5] 애초에 1960년 남한 인구가 이미 북한의 약 2.2배였다. (세계은행 기준 남한 2501만, 북한 1142만.) 즉, 국력 자체로만 보면 광복 직후부터 이미 벌어지기 시작한 것. 당연한 말이지만 인구가 적으면 경제성장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6] 당장 무진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베리아 출병, 중일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치른 시기가 이 시기이다. 천황과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목숨 따위는 바치라는 식의 군국주의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던 것이다.[7] 이 시기도 1당 독재인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시진핑 시대보다는 온건했기 때문이다.[8] 다만 마카오의 부는 사실상 도박 산업으로 쌓은 것이라 좀 평이 미묘하기는 하다.[9] 단, 이 기간은 실제 전성기라기보다는 중흥기에 더 가깝다.[10] 인재들을 등용하여 주나라의 힘을 키웠다.[11] 사기 기준[12] 상나라를 멸망시켰다.[13] 상나라를 멸망시키기 이전까지 포함하면 13년.[14] 이 세 왕대가 주나라의 전성기다.[15] 아버지 성왕과 함께 집권기간이 성강지치라 불렸다.[16] 주나라의 중흥기.[17] 호나라를 멸망시켜 세력을 떨침.[18] 종주국 주나라의 공격을 막아내고 노나라, 송나라 등과 싸우면서 패권을 펼침. 준패자에서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것도 정나라의 전성기임을 설명 가능하다.[19] 자산이 있을 때 한정. 이때는 정나라의 중흥기다.[20] 정확히는 관이오가 상국일 때 한정.[21] 안영 집권시기 한정.[22] 주평왕을 도와 낙읍 천도에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분수 유역으로 세력을 떨쳤다.[23] 순식의 계책을 받아들여 차도멸괵을 하여 진나라의 힘을 크게 떨쳤다.[24] 이렇게 갭이 생겼던 이유는 진문공은 근 20년 동안 유랑을 했기 때문이다.[25] 진문공의 패권을 상당히 유지했음.[26] 13~14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매우 총명하여 진문공의 패업을 되일으킨 중흥기였다.[27] 당시 강남 지역의 나름 강대국인 수나라를 복속시킴[28] 식나라를 멸했다. 미인으로 유명한 식규를 차지하기 위해서인건 안 비밀[29] 패자가 되려 한 송양공을 이겼고, 진(晉)나라와 싸울 정도로 강력함을 과시했다.[30] 춘추오패다.[31] 오나라의 침략과 이어 백공승의 난 등으로 쑥대밭이 된 상태에서 집권하여 현명한 대신들의 보좌를 받아 장기간 재위속에 초나라를 다시 중흥시켰으며 대외적으로는 진, 채나라를 멸국치현시켰다.[32] 백리해, 건숙 등의 현자를 등용해 국력을 키웠다.[33] 오자서와 손무를 등용해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34] 월나라를 쳐서 한때나마 속국으로 만들었고, 회맹을 주도할 정도로 강력함을 과시했다. 단, 오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간 암군이기도 하다. 이유는 오자서 말 안 듣고 백비말 듣고 구천을 살려줘서 복수할 기회를 줘버린 셈이라..[35] 부차에게 당한 한을 풀기 위해 부차의 똥을 핥아서 병을 진단하는 등의 신임을 받아 풀려난 뒤 범려, 문종과 함께 국력을 키워 오나라를 멸해 패자가 된다.[36] 글항아리 사의 김영문이 번역한 동주 열국지도 죽서기년의 그것을 따랐다. 처음에는 초장왕처럼 막장 짓을 하다가 추기의 간언을 듣고 위에서 탈출한 손빈을 등용해 국력을 키움.[37] 손빈과 전기를 등용해 당시 강국이었던 위나라를 상대로 승리하였다.[38] 전자가 사기, 후자가 죽서기년.[39] 연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고, 송나라를 멸해 그 땅을 독차지함. 단, 재위 후반기에 연나라의 악의에게 털려서 좀 미묘하다.[40] 삼진을 분할해 조나라의 기반을 세웠다.[41] 근거는 염파와 인상여의 활약으로 천하의 진나라 소양왕이 감히 조나라를 노리지 못했다.[42] 악의를 등용하여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43] 서문표를 등용해 업 지방을 안정시키고, 악양을 등용하여, 중산국을 멸했다.[44] 문후 시절의 패권을 어느 정도 유지하였다.[45]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실천하고 당시 강대국인 위나라를 물리쳤다.[46] 장의의 연횡책을 활용해 전국 7웅들을 쥐고 흔들었다.[47] 통일 이전까지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통일 이후에는 폭군 기질을 보여서 미묘하다.[48] 오기를 등용해 부국강병을 실천했다.[49] 부친인 문제와 함께 문경지치라 하여 한나라의 황금기를 만들었다.[50] 흉노를 떡실신 시켰지만 전쟁통에 경제가 망가져 당대 백성들이 고생했다.[51] 전한의 중흥기.[52] 강희제 등과 함께 중국사의 명군으로 꼽힌다.[53] 물론 47년이라는 기간동안 전성기를 유지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외부로는 위의 명장 양대안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고 낙양을 점령하기도 했으나 내부로는 소연의 유독 황족을 총애하는 경향 때문에 백성들을 수탈하고 살해하는 등 쇠퇴의 길을 걸었다.[54] 천하통일만 한 게 아니라 나라도 잘 다스려 국고가 가득 차 세금을 받지 않는 해도 있었다고 한다.[55] 고구려, 백제를 신라의 도움을 받아 멸했다.[56] 외치는 몰라도 내치는 괜찮았다.[57] 단, 말년의 실책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안사의 난 이전까지를 전성기로 인정하는 편이 많다.[58] 당나라의 중흥기.[59] 원나라의 일본 원정 실패라는 실책이 있기는 하다.[60] 중국사 최고의 명군으로 거론되기도 한다.[61] 과거에는 중국사 최후의 명군으로 평가받았으나, 현재는 거품이 끼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에 따라 위의 옹정제를 실질적인 중국사 최후의 명군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일단 그럼에도 건륭 초기 내지 중기, 18세기 중후반까지는 청나라의 전성기로 볼 수 있다.[62] 1625년부터 사하인 부족들을 통일하였다.[63] 미식축구와 함께 미국의 국기로 불리는 농구, 야구의 GOAT인 조던과 루스가 이 시기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64] 다만 멕시코라는 국가가 어떤 경제적 성공을 통해 스스로 개척하고 성장해서 이뤄냈다기 보다는 그냥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그 넓은 영토 통째로 독립해서 어부지리로 생긴 전성기나 다름없다. 한 마디로 유지할 역량도 없는 금수저인 아들이 독립해버린 격이다. 그래서 길게 유지를 못하고 이웃 국가인 미국에게 패권 경쟁에서 바로 밀리고 영토도 뺏겨버린 것.[65] 다만 이 때는 빈부격차가 심했다.[66] 온두라스와의 축구전쟁과 좌익 반군과 우익 정부군과의 내전이 발발하기 이전 전간기와 1940, 1950, 60년대 당시 엘살바도르는 중미 지역에서 현재 중앙아메리카의 부국인 파나마나 코스타리카 못지 않게 경제적으로 잘 사는 국가 중 하나였다. 물론 정치가 잘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군부 쿠데타와 민정의 내분이 자주 빈발했다,[67] 유럽 관점에서 볼 시, 모두가 알다시피 벨 에포크 시대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끝을 맞이했으며, 이후 전간기때는 미국에게 세계의 주도권을 완벽히 내주기 시작한다. 그래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어느정도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했었지만 2차 대전 이후로는 유럽이 식민지를 뺏기면서 슬슬 위상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 유럽쪽에선 그나마 소련이 대항마 역할을 했지만, 그마저도 동구권의 붕괴로 세계의 패권은 미국이 사실상 쥐게 된다. 물론 지금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려고는 한다만, 아직 이들도 미국을 따라오기엔 매우 부족하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2차 대전 이후로는 위상이 어느정도 하락했어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어느정도 번영을 누렸지만, 오일 쇼크로 인해서 이마저도 슬슬 무너진다. 그래도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때 어느정도 부활하는 듯 해서 독일 통일 이후에 잠시 중흥기를 누리는 듯 보였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에 다시 무너지고 이후로는 유럽의 경제적 위상마저 무너진다.[68] 이 때는 유럽이 식민지를 뺏기면서 어느정도 위상이 하락했어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위상을 누렸다.[69] 2차 포에니 전쟁을 기점으로 지중해의 최강자 자리까지 일사천리로 떠올랐으나, 킴브리 전쟁을 기점으로 군인의 사병화가 심해지며 마리우스와 술라를 필두로 한 로마 내전이 간헐적으로 벌어졌다.[70] 아우구스투스가 즉위한 기원전 27년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한 서기 180년까지의 기간[71] 로마 역사상 최전성기[72] 동로마는 고대 로마와 단절 없이 이어졌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중흥이라 할 수 있다.[73] 1차대전 종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도 경제적으론 지표상 미국과 엎치락 뒤치락하였으나 명목상 세계의 패권국이었다.[74] 이 때는 패권을 미국에 내주기는 했어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전성기를 누렸다.[75] 정치적 자유가 없었던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에 비하면 비교적 정상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76] 이란의 역사로 간주되기도 한다.[77] 호라즘의 수도였던 우르겐치(코네우르겐치)는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다. 하지만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은 오우즈계 투르크이며, 옛 호라즘 왕조의 투르크 주민들은 킵차크계에 해당되었다.[78] 거란계 유민들이 세웠지만 대다수가 튀르크였고, 문화, 사회, 경제 등은 여전히 튀르크를 계승했기에 튀르크족 역사로 보기도 한다.[79] 어느정도 불안정한 모습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아랍권에서 현재까지 거의 유일하게 개방적이고 개혁과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잘 정착된 나라 중의 하나이며, 치안도 리비아 국경 지대만 제외하면 크게 불안정한 사회도 아니다.[80] 경제적인 면에 국한된 부분만 보면 확실히 전성기로 볼 수도 있다.[81] 다만 급격한 민주화로 사회가 오히려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83] 싱가포르 내에서도 딱히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82] 물론 향후 전성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