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Tygyn Darkhan
1. 개요
동부 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 중부 사이에 거주하는 야쿠트인 출신의 영웅이자 정복자. '트근 다르한'으로도 많이 불린다.2. 역사
16세기 후기 레나강 중상류 일대 한갈라스 부족 출신으로 그의 부족이 있었던 투이마다 계곡과 사이사라 호수 기슭은 옛날부터 대규모의 가축, 하인 및 노예들을 가졌고 용맹한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갈라스 부족 등 동남부 일대의 야쿠트 부족들은 한갈라스 부족의 첫 시조인 '바드(사하어: Бадьы)'[1] 시기부터 경제가 부유했다. 그러나 퉁구스족의 반란으로 바드는 목숨을 잃었고 두 아들 중 '문난'이 올랐으나 그 역시 퉁구스족과의 전투 중에 사망했다. 문난의 첫째 아들인 튀귄이 뒤를 이어 토욘(족장)이 되었다.전설에 의하면 그는 키와 몸집이 큰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한갈라스 족장에 올라서 주변의 이민족이자 할아버지 및 아버지의 원수였던 퉁구스족들을 토벌해서 다른 곳으로 쫓아냈다. 튀귄 다르한은 퉁구스족을 이겨서 복속시킨 것 뿐만 아니라 1625년부터 전쟁으로 사하 남부의 주요 부족들을 통합시켰으며 한갈라스 부족 중심의 민족 연맹 및 토욘국을 세우기도 했는데 사하 연맹이라고 부른다. 튀귄 다르한 통치 하의 사하 연맹은 남은 퉁구스족 및 주변의 유카기르, 사모예드족들도 복속시켜서 다민족국가로 거듭났으며 튀귄 다르한의 통일 전쟁 및 정복이 끝났으나 사하 연맹의 전성 시대는 계속 이어졌다.
그의 하인들 중에서 복속된 민족들 출신들도 적지 않았다. 이중에는 이국적 외모를 가진 하인들도 있었는데 바로 카자크 출신의 러시아인이었다. 이들은 야쿠트인들의 의심을 받았으나 튀귄은 오히려 이들을 잘 접대해주었다. 이후 그들은 모습을 감추었다가 1620년대 말에서 1630년대 초기에, 나중에 많은 러시아인들을 이끌고 튀귄이 있는 곳 근처에 요새를 세웠다. 2년 전 튀귄이 그들의 요청에 따라 준 황소 두 마리 가죽끈으로 원하는 만큼의 땅을 경계로 삼았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야쿠트인들과 튀귄은 카자크들이 세운 요새를 침공했다. 그러나 활과 화살, 기마병으로 무장했었던 야쿠트인들과 달리 총으로 무장했던 카자크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1632년 사하 연맹은 러시아로부터 멸망했으며 튀귄은 포로로 붙잡혔으며 옥살이를 하다 피부병으로 죽었다고 한다.[2]
3. 야쿠트인들의 애호
비록 결말이 비극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사하를 통일하여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던 점과 러시아로부터 저항했던 점 때문에 많은 야쿠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3], 튀귄에 대한 애호가 남다르다고 한다.튀귄과 관련된 전설들도 많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