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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화/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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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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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유사 사례와 비교4. 사례
4.1. 일반4.2. 우상화 교육
4.2.1. 영유아 세뇌4.2.2. 역사 왜곡
4.3. 초상화 집착
4.3.1. 재난에서의 초상화 집착
4.4. 동상 집착4.5. 1호 사진4.6. 피휘, 이름 강조
5. 북한 주민들의 반응
5.1. ~2010년대5.2. 2020년대
6. 김정은 시대 이후
6.1. 김정은 우상화 강화&선대 격하
6.1.1. 반론
6.2. 김주애 우상화 징조

1. 개요

파일:김일성김정일동상.jpg
평양 조선혁명박물관 인근에 세워진 김일성김정일동상.
2023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일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 동상에 헌화하는 모습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를 일컬을 때 쓰는 표현 예시.
이름을 굵은 글씨로 강조해서 표기해야 한다.
나는 북한에서 하느님을 보았어요
북한을 방문한 아프리카 독재국가 인사가 한 것으로 알려진 말[1] 출처[2]

북한의 지도자 우상화에 대해 다룬 문서.

2. 특징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주체의 최고성지로 더욱 숭엄하게 꾸리고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수령님들의 동상과 태양상을 정중히 모시도록 함으로써 수령님들께서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함께 계시며 우리 인민과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시도록 하였습니다.
2016년 5월 7일 김정은이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중 #
그 누구를 막론하고 남을 쳐다보며 우상화하면 자기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되고 능히 자체의 힘으로 할수 있는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는 무엇을 하나 하자고 해도 비굴하게 낮추 붙어 맹목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꼭두각시노릇을 하게 된다.
2023년 1월 18일 로동신문 기사 <자주성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고 존엄이다>의 일부. 북한의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것과는 무관한 내용으로, 외국을 의존하며 우상화하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 있으나 북한은 자주권을 견지하며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켰다는 내용이긴 하다.[4] 그러나 이 문단의 내용만 보면 북한이 김씨 3대를 신격화하여 북한 주민들을 김씨 3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에 너무나 적합한 표현이다.

북한은 근대 이후 국가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가장 극단적인 곳으로 악명 높다. 사실 우상화보다도 '신격화'에 가까운데, 실제로 북한에서는 지도자가 곧 신으로 간주되며 지도자에 반기를 드는 행위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어 처형으로 다스리게 된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걸쳐 이루어지는 3대 세습의 결과다.

북한에서 우상화를 주도하는 기관은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로,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와 함께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부서다. 선전선동부가 지시를 내리면 만수대창작사와 같은 하위 기관에서 우상화 선전물을 제작하는 식이다.

이는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10대원칙은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교시, 당의 로선과 정책을 사업과 생활의 지침으로, 신조로 삼고', '글을 쓸때에는 언제나 수령님과 장군님의 교시, 당문헌을 정중히 인용해 그에 맞추어 전개'하며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 당의 로선과 방침, 지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겨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수령에게 무조건 복종하라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우상화가 기독교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김씨 일가는 신이며, 이들의 말이 복음이고, 이들에 대한 찬양가는 찬송가이자 성가인 데다 시조인 김일성이 쓴 책은 경전(성경)이며 체제선전시설이 곧 성당, 교회다. '10대원칙'십계명에 대응되며, 갖은 명목으로 걷어가는 현금과 현물[5]은 대체로 김씨 일가 우상화에 사용되므로 헌금에, 월급에서 공제되는 금액은 십일조에 대응된다.[6] 심지어 사회주의 대가정론(수령-당-인민은 하나)이 삼위일체와 유사하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것을 넘어 대놓고 북한에서 '3위1체'라는 표현이 쓰인다! 실제로 탈북자 지원단체 등에서 유튜브에 북한의 자아비판 재현 영상을 보면 개신교인들 이라면 비판 사회자(인도자)가 있고 주민들(회중)이 참여하고 김일성의 교시나 저작(성경)을 인용하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비판하는 프로그램 구성이 낮익을 것이다. 교회에서 하는 QT모임이나 기도모임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성경이 아닌 김일성 교시나 저작만을 인용한다는 점, 잘한 점이나 좋은 점을 나누는 것이 아닌 자신 및 호상(참석자 상호간)을 비판하는 것만 한다는 점, 삶을 나누거나 기도 제목을 공유하는 등의 행위가 없다는 점 뿐이다.

김일성, 김정일을 대놓고 인간태양이라고 묘사하는데도 북한 당국은 김씨 일가에 대한 찬양이 전혀 우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5년 '개인숭배가 아닌 영웅숭배'라는 궤변을 남긴 것은 물론 김씨 일가는 단순히 '위대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참고로 북한은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를 군부대에서부터 시작해 왔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로동당원들로 구성된 군부대에서는 세습에 대해 아무런 반발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김주애ICBM 발사 현장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3. 유사 사례와 비교

20세기의 많은 국가들은 최고 지도자들의 미덕을 칭송하는 데 있어 극단에 이르렀습니다. 아마도 로마 제국 말기[7]나 심지어 고대 이집트 시대[8] 이후로 세계는 개인숭배가 그토록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마오쩌둥의 중국이나 이오시프 스탈린의 러시아와 비교하더라도 여전히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가) 눈에 띕니다.
안드레이 란코프기고한 칼럼

크리스토퍼 히친스기고한 칼럼

나무위키에서 지도자 우상화를 다루는 항목이 별개 문서로 분리될 정도로 길어진 것이 북한의 지도자 우상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실태를 보면 북한은 농담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거대한 사이비 종교 국가라고 봐도 될 수준이다.[9]

일례로 8월 종파사건 당시 소련 대사였던 리상조(李相朝, 1915~1996)는 자신이 숙청될 것을 직감하고 1958년 "북한에선 스탈린 따위는 가볍게 넘어설 수준의 김일성 개인숭배가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김일성의 진상을 폭로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10] 지금과 같은 김씨 일가 백두혈통 체제의 시작이 8월 종파사건이었으므로 김일성이 북한의 권력을 장악한 초기에도 우상화가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11]

특히 대부분의 국왕들이 통치권을 상실하면서 공화제나 입헌군주제가 된 20세기 중반 이후 강한 우상화가 이루어진 국가들은 상당수가 제2세계에 포함되었던 상황에서 북한은 압도적으로 심한 케이스인데 대표적으로 우상화된 지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마오쩌둥,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엔베르 호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하다못해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12]도 북한만큼은 아니었다.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시절의 적도 기니가 북한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지도자 우상화를 펼치긴 했으나[13] 조카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의 쿠데타로 축출되고 처형당하면서 10여 년만에 끝나고 말았다.[14] 이들 중 차우셰스쿠와 니야조프는 아예 북한의 우상화를 벤치마킹했다.

4. 사례

4.1. 일반

파일:화성-13 명판 확인.jpg
화성-13 TEL의 김정일, 김정은 찬양 명판[내용]
파일:102183178-vert.jpg
김정은이 장성들에게 특별 하사한 백두산 권총 사진.
손수 도안까지 그려가시며 태양궁전을 사소한 손색도 없이 꾸리시기 위해 마음쓰신 이야기, 영상사진문헌들의 액틀색갈까지 가늠해보시고 사적물의 영구보존문제에 대하여 세심히 관심하신 사연, 태양궁전의 벽체와 바닥돌의 재질과 색갈, 문양 그리고 문손잡이와 장식세부에 이르기까지 지도하신 사실 등 금수산태양궁전을 최상의 수준에서 일떠세우시며 바쳐오신 그 노고를 어떻게 한두마디로 다 전할수 있겠는가.
인민들이 아무때나 금수산태양궁전에 찾아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인사도 드리고 휴식도 할수 있게 금수산태양궁전주변을 공원으로 잘 꾸리도록 하시기 위해 보아주신 설계형성안은 그 얼마인가. 태양궁전광장에 원림을 조성하고 꽃들을 많이 심을데 대하여서와 화단형성방법, 잔디문제에 이르기까지 밝혀주신 세심한 지도, 녹지들 사이사이에 길을 내주며 사람들이 앉을 자리도 만들어줄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사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딸랑이 짓만 하는건 아니다. 김철웅이 설명했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조직지도부 간부5과기쁨조라고 불린 유래가 그 예시다. 5과 공연조 소속은 결혼하면 은퇴해서 대부분 20대 초반을 넘기지 않음에도 20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데도 공연을 하는 공연자를 보고 김일성이 "저 아이는 나이가 꽤 돼보이는데도 아직 결혼을 안했어?"라고 묻자 5과 간부가 "수령님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결혼이 대수겠습니까? 저희는 인민들을 위해 밤낮 고민하시는 수령님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습니다"라고 북한 기준으로도 좀 심한 딸랑이 짓을 했는데 김일성은 딱히 별 다른 대답은 안하고 웃으면서 지나갔지만 이것을 본 다른 과 간부들이 아무리 김일성 앞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까지 아첨을 하냐면서 비아냥삼아 5과를 너희들이 무슨 엘리트냐 너희는 그냥 '기쁨조'라고 놀린 게 퍼졌다.

또 다른 사례로는 정춘실이 있다. 그녀는 김일성이 죽은 후 오라버니 김정일을 위해 죽겠다는 둥 아버지 김일성을 위해 3년상을 치르겠다는 둥 떠들면서 정말 3년이나 상복을 입는 둥 유난을 떨었으나, 김정일의 심기를 거슬러서 "난 그런 누이 둔 적 없다!"는 김정일의 짜증과 함께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나 버렸다.

4.2. 우상화 교육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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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화 교육 과정에서 자행되는 악행들도 가히 가관인데 북한의 우상화 교육은 비교육적인 허위 정보 유포와 정치적 사상 세뇌로 점철되어 있어 육체적 폭력만 없을 뿐이지 엄연한 아동 학대나 다를바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34] 하다못해 무기개발 인력, 해킹 인력, 농업 같은 분야의 자신의 '과제'를 이해하는 인력 등을 양성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내용도 가르치기는 하지만 저런 내용이 곳곳에 있는 것이 문제다. 특히 예술 분야가 이런 경향이 아주 심하다.

하술할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어린아이들에게 북한 수준의 세뇌 교육을 한 독재국가는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어린이들을 세뇌시킨 국가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국가로 꼽히는 마시아스 응게마 치하의 적도 기니민주 캄푸치아, 지도자가 심각한 괴짜였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시기의 투르크메니스탄 정도밖에 없다.[35] 사실 독재자들이 자신의 정치 사상을 어린이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거의 독재자들의 클리셰 수준으로 흔한 일이지만 북한은 이들 중에서도 특히 아동 세뇌가 독보적인 수준이다.

북한에서 우상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은 '사회정치적 생명'이 끝난 사람들이 가는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이나 최고 엘리트 양성 기관 중에서도 가장 혹독하다는[36] 금성학원 컴퓨터 수재 양성반 이렇게 두 곳밖에 없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평생을 우상화 강연을 들으며 살아야 한다.

북한 학교에서의 우상화 교육의 실태를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15년 6월 16/23일 MBC 통일전망대 방영분 북한은 왜? <어린이 우상화 교육> 2부작을 참고하도록 하자. 1부 2부 성통만사에서 작성한 '증오를 배우다'라는 글도 보면 좋다. #

4.2.1. 영유아 세뇌

북한에서는 영유아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부모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더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라고 교육하고 있다.이러한 세뇌 교육이 이루어지니 4살짜리 아이에게 엄마 보고 싶냐고 하자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던가[46], 동갑인 다른 아이에게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자 "김일성 원수님"이라고 답했다거나[47], 이름을 부르면 말을 겨우 할 정도의 아이가 지도자의 출생과 약력을 달달이 외우는 등 북한의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주입식 인간개조'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런 모습들을 본 북한 특파원은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어린 꼬마들이 요절(要節)을 암송하는 것과 닮았다'고 표현하며 북한 우상화의 종교성을 알아차리며 "인간의 정이 있는 곳에 공산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인상이었다.", "낳은 자식에게 젖을 물리며 새근히 잠든 아기의 미소를 보는 엄마의 특권, 보람찬 모습은 없어야 한다는 북한의 오늘이었다."고 북한의 유아 세뇌를 표현했다. 1972년 9월 5일 경향신문 기사

그런데 웃긴 것은 북한은 2024년 4월 5일 로동신문 기사 <인간의 정신문화생활이 극도로 빈궁화되여가는 사회>에서 '어느한 자본주의나라'가 부모들이 젖먹이를 안전한 장소에 버려야 한다는 해괴한 법을 만들어 이런 법 아닌 《법》의 비호하에 반인륜적이고 비인간적인 악행이 노골적으로 감행되고 있다고 이를 '자본주의사회에서 말세기적풍조가 성행하게 된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폭로해주는 단적인 실례'라고 비난했다. 해당 기사에서 미국의 자극적인 인터넷 문화로 인한 참극들은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명확히 밝히면서 그 법이 만들어진 나라는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부터 신뢰성이 매우 낮을뿐더러 상술한 과거 북한의 행각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4.2.2. 역사 왜곡

북한에서 가르치는 한반도의 역사는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김일성이 태어나기 전의 '혼돈'의 시기와 김일성이 태어난 후의 '창조'의 시기로 나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어의 우수성과 민족적 특성은 절세 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아래 더욱 더 빛을 뿌리게 되었다
(김일성이) 우리 민족어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식민지 동화 책동을 감행하던 일제를 때려 부수고 잃을 뻔했던 우리의 말과 글을 찾아줬다. 우리 말 속에 남아있던 사대주의, 교조주의적 잔재들을 말끔히 가셔내고 그것이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화어로 활짝 꽃펴나도록 세심히 이끌어줬다
절세 위인(김일성·김정일)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사상과 따뜻한 손길이 있었기에 우리의 말과 글은 발전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말과 글은) 오늘 최고령도자 동지(김정은)에 의하여 더욱 세련되고 풍부화되고 있다

사실 1967년 유일사상체계 확립 이전까지도 김일성 가족에 대한 언급은 없다시피했으나 유일사상체계 확립 이후 가족들에 대한 우상화도 시작된 것이다. #

4.3. 초상화 집착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태양상(북한)
, 초상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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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는 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단순한 초상화가 아닌 '지도자 그 자체'로 대접받는다. 북한 당국에서 주민들이 초상화 대우를 '직접 수령님을 대하는 것처럼 하라'고 당부(?)했다. #

1967년 이전에는 혁명력사연구실이나 공공기관 외에는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리지 않았으며, 김일성 초상화가 곳곳마다 걸리기 시작한 것은 갑산파 숙청 사건 후인 1968년부터다. 처음에는 굳은 표정의 정면상 초상화를 썼다가[59] 1년 후 약간 몸을 비껴선 모습[60]으로 변경[61]되었다. 이 초상화는 1960년대에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이며 26년간 쓰이다가 김일성 사후 우리가 잘 아는 '태양상'으로 변경되었다.이건 뭐 지오프론트도 아니고...
2022년 남한에서 '김일성 전기'를 출판한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이휘성)[68]가 입수한 2004년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지시에 따르면 전쟁이 발생할 경우 인민의 첫 번째 의무는 대피가 아닌 백두혈통 우상화 선전물을 1호모심실에 이동하여 보위하는 것이다.
* 북한에서는 휴지가 귀한 물건이라 휴지를 사서 쓸 형편이 안되는 가정에서는 로동신문 따위의 신문지를 휴지 대용으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때 김부자 의 사진이 인쇄된 부분은 절대로 휴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이들의 얼굴이 나온 페이지는 특별히 좋은 잉크로 인쇄되며 아예 접으면 안 된다.
* 김만철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 생전에는 결혼식을 올릴 때 초상화 앞에 꽃다발을 놓고 큰절을 올린 뒤 '위대하신 수령님께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합니다'고 하고는 돌아서서 초상화를 배경삼아 결혼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다.
* 자식이 실수로 초상화를 훼손하면 부모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과장 안 보태고 북한에서 실수로 김일성 초상화를 훼손한 사람의 가족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가족보다 더한 탄압을 받는 셈이다! 하다못해 일본 제국마저 이봉창[69],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후 그들의 일가족들을 감시할지언정 '불령선인'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감옥에 집어넣고 고문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막장 중 막장이다. 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노인들은 "차라리 '왜정' 시기가 낫다"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 1979년부터 2014년 경까지 일부 북한 지폐에는 김일성 얼굴이 들어갔다.[70] 상기한 초상화 집착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 보인다[71] 당연히 2014년까지 지폐를 버리는 것은 수령 모독으로 간주되어 엄하게 처벌받았다.
* 통일부가 발간한 2024년 북한인권보고서에는 코로나 19 시기 김정은은 김정은이 법 기관 시찰 도중 김일성·김정일 사진이 걸려 있는 장소가 난방이 안 되는 걸 보고 "우리 선대 수령님들을 냉방에 모셨다"며 관련자를 문책했다는 증언이 실려 있다. #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저 초상화들을 모든 집과 기업소에 건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부자가 그리울 때마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출처

단 초상화 유리가 깨지면 창문 유리로 대체하는 것으로 보이고, 직장에서 초상화를 닦다가 떨어졌는데 이런 경우 위로 보고해야 하고 결국 떨어트린 당사자 뿐 아니라 직속 상사와 직장장 모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직장 차원에서 적당히 무마하고 자아비판으로 끝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도 결국 사람이 사는 사회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4.3.1. 재난에서의 초상화 집착

집에 불이 나거나 홍수로 집이 물에 잠길 때 재산, 가족보다 지도자 초상화부터 챙겨 탈출해야 한다. 지도자의 사진을 챙기려다가 재해에 휩쓸려서 희생되고, 안 챙기면 끌려가서 처형당하고... 실제로 초상화를 건지려다가 정작 중요한 인명이 희생되어 공분을 사는 뉴스도 나온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이를 '전세계를 감동시켰다'고 포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북한 주민들에게 "수령, 영도자의 손길만 꼭 잡으면 그 어떤 재난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으며 설사 죽음을 향해 마주 향해 가는 길이라도 영생할 수 있는 믿음", "죽어서도 그 품('수령님들'의 품)에 안겨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은 최후의 열망"이 굳게 자리잡았다는 증거로 포장한다고... 이 정도면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사이비 종교다. 연구에 따르면 이는 일제의 천황 숭배를 참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초상화를
목숨바쳐 보위한 열네살 중학생
그 어머니의 아픈 심정 헤아려
사랑의 친필도 안겨주신 원수님
2023년 12월 5일 로동신문에 실린 <조선소년단축하단 축하시 '위대한 어머니께 영광드려요'>에서 인용
그 준엄했던 나날엔 70년의 인민을 마지막으로 검증하려는듯 또 다른 시련이 들이닥쳤다.조국의 최북단에 무섭게 터진 라선의 대홍수는 아름다운 거리와 인민의 보금자리를 삽시에 휩쓸어갔다. 참혹한 재난의 광경앞에서 우리도 가슴치며 보고 세계도 깜짝 놀란 하나의 눈물겨운 사실이 펼쳐졌다. 물결에 휘말려 숨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움켜쥔 손에는 가슴에 정중히 모시였던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휘장이 있었다. 또 보였다. 흙속에 묻혀 다같이 숨진 한 가족, 두살 난 아이는 할머니등에 업혀 숨지고 그 어린 자식을 업었어야 할 어머니의 잔등에는 하나의 배낭이 지워져있었다. 그 배낭속에는 물 한방울 스며들지 않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가 정히 보존되여있었다.[74]
세상에 이런 인민이 어디에 있는가!
돈도 아니고 가산을 쥐고 죽은것도 아니다. 제살붙이부터 등에 업은것도 아니다. 숨을 돌릴새도 없이 순간에 들이닥친 죽음앞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태양의 영상만을 가슴과 두손에 꼭 품고 눈을 감은 사람들,
명줄이였다. 죽어도 그것만은 놓을수 없는 운명의 명줄이였다. 그것이 바로 죽어서도 그 품에 안겨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싶은 최후의 열망이었고 바로 그것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 품고 사는 당에 대한 이 나라 인민의 깊은 사랑이고 산악같은 믿음이다.
2015년 10월 7일 로동신문 동태관 정론 《위대한 우리 인민 - 조선로동당창건 70돐에 삼가 이 글을 드린다》 중[75]
그의 이름은 엄송화, 25살의 꽃나이처녀, 우리는 그의 얼굴은 보지 못하였다. 그와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하였다. 다만 이제는 온 읍거리가 환하게 더 밝게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태양상모자이크벽화앞에 찾아가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최후의 그밤을 상상해볼뿐이다. 물사태와 밀려오는 통나무들을 손으로 밀고 가슴으로 막아내며 수령님들의 태양상을 필사적으로 보위하던 그의 불붙는 눈빛과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얼굴이 생생히 살아온다.마지막으로 물살에 휘말려들면서도 그 통나무들을 다 끌어안고 떠내려갔던 로동자처녀, 캄캄한 밤에 누가 시킨 사람도 없었고 누가 지켜본 사람도 없었다. 평시에는 말이 없고 한마디 칭찬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던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그였지만 왜 그밤에는 그렇게도 불사신처럼 광란하는 란파와 그렇게도 무섭게 싸웠던가. 대사하치기전투에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호위하여 한몸그대로 방패가 되시였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을 그대로 닮은 이 시대의 청춘, 길영조[76]영웅의 수령결사옹위의 25초를 다시 보는것과도 같이 그의 최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이 평범하게 여겨지리만큼 목숨을 내걸고 나섰던 수령결사옹위의 주인공들이 이 크지 않은 피해지역에 헤아릴수없이 많았다.
시의 책임일군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폭우가 지나간 다음날 아침 감탕우에 낸 외통길로 흘러가는 수재민들의 행렬과 함께 걷던 그는 하나와 같이 정히 보에 싸고 함에 넣은것을 목에도 걸고 가슴에도 꼭 감싸안고 가는것을 보고 왜 짐들은 없는가, 그건 무엇인가고 물었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라고 하면서 우리는 이 초상화만 간직하면 된다, 쌀도 집도 당에서 다시 다 마련해주기때문에 걱정할것이 없다, 제일 큰 근심은 우리 원수님께서 우리때문에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 하는 생각이라고 대답하는 그 말을 듣고 우리 라선사람들이 이렇게도 훌륭한 사람들이였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져내렸다고 하였다.
듣고들어도 끝이 없었다. 무너지는 집을 눈앞에 보면서도 혁명사적지와 영생탑부터 지켜야 한다고 정신없이 달려갔던 사람들, 한손에는 초상화를 받들어모시고 다른 손에는 안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물속을 헤치면서 가다가 물살에 말려드는 순간 혈육들과의 손은 놓쳤어도 초상화만은 더 안전하게 받들어모신 그 농장원, 선봉초급중학교 교직원들이 밀려오는 물속에서 의식을 잃고 떠내려오는 한 녀성을 구원하였을 때 옷은 다 찢겨지고 몸엔 온통 상처투성이였지만 놓치지 않으려고 꽉 구부린 팔에는 배낭이 매달려있었다. 그속에도 다름아닌 물방울 하나 스며들지 않은 우리 수령님들의 환하신 태양상초상화가 정히 보존되여있었다.
취재수첩에 넘쳐나는 이 라선땅의 모든 이야기는 이런 눈물없이는 적을수 없는 사실들이다. 우리만이 보고 들은것이 아니다. 이곳에 많이 오는 외국인들까지도 소문이 아니라 제눈으로 다 보고 조선에 대하여, 우리 인민에 대하여 이름할수 없는 충격과 감동에 휩싸였다.[77][78]
온밤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 큰물을 피해 오는 조선사람들을 잠시 우리 건물에 들어와있게 했댔는데 전 깜짝 놀랐습니다. 가산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어른이고 아이고 가슴에 꼭 안고있는것이 있어서 무엇인가고 물었더니 조선의 위대한 령도자들의 초상화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같으면 돈이나 물건부터 건지고 제 목숨부터 생각했을것인데 이런 깨끗한 인민들을 처음 봅니다.…
라선에 와서 오래전부터 경영활동을 하고있는 한 외국인녀성이 한 이 말은 세계가 본 조선의 진짜모습이고 세계가 탄복하는 조선의 진짜본태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보다 깊은것은 아직은 다 모를것이다. 가산보다도, 혈육보다도, 숨이 지면서도 왜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그렇게도 가슴에 품고 절대로 놓지 못했으며 거기에서 뿌듯한 만족을 느꼈는가를.
그 대답을 우리가 줄수 있다.그것은 바로 당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수령님들의 태양의 모습을 가슴에 안으면, 우리 원수님의 따뜻한 손길만 꼭 잡으면 억만금을 잃어도 다시 얻을수 있고 설사 몇번을 죽어도 다시 태여날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인민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마음에 세운 자기의 운명철학이다.
2015년 10월 10일 로동신문 동태관[79] 정론 <나선땅에 펼쳐진 전화위복의 기적> 중.

4.4. 동상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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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집권 직후인 1948년부터 만경대혁명학원에 젊은 자신의 동상을 세울 정도로 동상을 좋아했는데 후계자들도 이를 물려받아 북한은 세계에서 지도자 동상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김일성 하나만의 석고상과 흉상, 동상 다 합쳐서 3만 5천 개[82]나 될 정도로 하도 많이 만들어서 북한은 이런 거대 동상의 제작 기술만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카더라도 있을 정도다.[83]

4.5. 1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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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일가의 우상화를 위해 단순히 세뇌교육을 하는 것을 넘어 같이 찍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사진이다.

4.6. 피휘, 이름 강조

북한에서 지도자는 '신'이므로 지도자 이름도 '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이름으로 간주되어 피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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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한 주민들의 반응

고난의 행군 이전이면 모를까 김정은 시기 이후에는 큰 효과가 없다. 해외발 정보를 통해 김씨 일가와 북한 체제에 대한 진실이 널리 퍼져 있기에 북한의 허무맹랑한 우상화 선전이 더 이상, 최소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93]

5.1. ~2010년대

5.2. 2020년대

6. 김정은 시대 이후

이렇듯 더 이상 기존 선전이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 우상화 방법도 바뀌고 있다.

6.1. 김정은 우상화 강화&선대 격하

2024년부터는 선대 김일성과 김정일을 지우고 자신을 띄우는 정황도 드러난다.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은 북한 주민들 속에서 김정일 지우기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고 해도 김일성 지우기는 반발을 불러올 수 있으며,[111] 그동안 존재를 숨겨왔던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의 우상화도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고 보았다. # 애초에 김정은이 통치한 지가 12년이 넘으며 권력을 확고히 장악했으니 김정은 우상화에 방해될 요소도 없다고 판단해 선대 지우기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고영환은 김정은의 권력 장악은 확실해 보이나 간부들과 주민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고용희 우상화를 하면 할수록 김정은의 취약한 기반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임을 알아챘는지 국가보위성사회안전성 차원에서 비공개, 비조직 녹화편집물을 단속하면서 고용희 선전 영화[112]를 회수해 삭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순수한 백두혈통에 떳떳치 못한 가족력이 없다면 생모를 공개 못할 이유가 없는데[113] 김정은 생모 선전 영화를 회수 삭제하라는 것을 보면 김정은이 반쪽짜리 혈통이 아닌가'는 것을 눈치챈 상황. # 조선로동당 39호실 고위 관리를 지낸 리정호는 원래부터 할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 할아버지에게 악감정이 있던 게 힘이 생기며 할아버지를 지울 수 있게 되었고, 고용희 관련 영화를 삭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용희의 배경이 김정은의 가장 큰 콤플렉스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존재를 숨기려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

6.1.1. 반론


종합해보면 기성세대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우상화 속도를 조절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6.2. 김주애 우상화 징조

김정은의 딸 김주애에게 4대 세습을 하려는 정황이 지속적으로 포착되는 바 김주애 우상화가 이루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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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은 전 세계 독재국가의 살아있는 교과서라 불리기에 아프리카 독재 국가들이 북한의 독재 노하우를 배우러 북한으로 견학을 올 정도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로버트 무가베,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2] 북한 외교관들의 온갖 썰들에 대해 다룬 문서다.[3] 상단 영상 속 기사 초반에 북한의 선전용 동요 세상에 부럼없어라가 나온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북한 어린이들이 지도자와 (북한은 일당제 국가라 조선로동당을 그냥 '당'이라고 부른다.)의 품에서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의 동요로, 후렴이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 우리의 집은 당의 품"으로 시작한다. 후렴에는 수령은 아버지, 당은 어머니, 인민은 자식이라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반영되었는데, 이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북한의 우상화와 국민 세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4] 이 구절 다음에는 "나라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주성이 없이 남을 쳐다보며 의존하고 그 나라의 눈치를 보면 궁극에는 눈뜨고 망국멸족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5] 세금이 아니다. 북한은 1974년 4월 1일 "세금"을 폐지한 명목상 무세국가다. 때문에 '세외부담'이라는 이름 하에 온갖 명목으로 현금과 현물을 가히 착취 수준으로 걷어간다. 당국은 "세금"을 걷은 것이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6] 그나마 십일조는 자발적으로 내는 것이지 교회에서 사전 공제를 하지는 않는다![7]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며 황제를 로마의 수호신 그 자체로 일컬었다.[8] 파라오를 태양신 의 현신이자 라의 아들로 일컬었다.[9] 주체사상을 '김일성교'라는 문자 그대로의 종교에 빗대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사후세계의 부재를 들어 종교 그 자체로 보기는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교와 마찬가지로 주체사상을 종교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는 것 정도는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10] 리상조는 이 문서를 소련에 보내고 3년 후인 1961년에 소련으로 망명했으며 1989년 9월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6.25 전쟁은 김일성이 주도한 남침이라는 사실을 강연을 통해 증언하기도 하였다.[11] 스탈린도 위압적 우상화로 악명이 높았는데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불과 10년 만인 1958년에 이를 압도했다는 소리다. 스탈린 우상화를 경험한 소련인들조차 러시아어로 번역된 북한 선전 잡지들의 김일성 우상화 내용들을 보면서 너무 웃기다는 이유로 이 선전 잡지를 '유머 잡지'로 여기며 일부러 구독하고 밥상머리에서 가족끼리 읽으면서 같이 웃을 정도였다는 것에서 북한의 지도자 우상화 수준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된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12] 투르크메니스탄은 원래 소련에 속했던 국가였다. 니야조프 역시 인류 역사상 가장 우상화를 극단적으로 시행한 지도자 중 하나로 꼽히며 전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13] 응게마는 북한과 유사하게 자신에게 초자연적 힘이 있다고 국민들에게 선전했으며, 심지어 1978년에는 대놓고 '마시아스 응게마 외의 신은 없다'는 프로파간다 문구까지 만들기도 했다.[14] 참고로 스탈린과 마오쩌둥 우상화가 김일성 우상화의 원류이며 차우셰스쿠와 응게마, 니야조프의 우상화의 원류는 김일성이다.[15] 이는 하술할 사회주의 대가정론도 마찬가지.[16] 공식 애도기간은 10~11일. 100일은 암묵적인 애도기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17] 물론 이때 술을 마셔 놓고 '장군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맨 정신으로 버티냐'고 해서 빠져 나간 경우도 많다.[18] 김일성 사망 당시 선포된 애도기간은 3개월이었으며 인민무력부 간부 중에서도 술을 마시다가 적발돼 공개처형당한 사람이 있었다. 북한 출신 월간조선 기자가 작성한 기사[19] 김정일 사망 공표 거의 직후인 2011년 12월 19일 밤 11시 30분에 탈북하다가 체포된 일가족에게 김정은은 "이런 때에 월경하는 자들은 모두 역적이니 그 일족의 3족을 멸족해버리라."며 막말을 내뱉었다.[20] 당장 강나라가 김일성의 사망 날짜 하루 뒤에 태어나 공식 생일을 바꿨다.[21] 전자를 패배시킨 것은 미국이었고 후자는 오히려 북한이 미국에게 졌다고 봐도 무방하다.[22] 출처: 강광식 편저, 북한의 실태 - 분야별 경험자료 및 예비적 고찰, 198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9&142쪽[23] 물론 이들도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 미리 뽑아 놓고 모의접견에서는 김정은은 닮은 사람까지 내세우며 엄격한 훈련을 거치게 한다.[내용]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 보아주신 <화성-13>형 발사대[25] 현지지도 대상이 되는 가정은 이를 반기는 마음 절반, 싫어하는 마음 절반이다. 먼저 방문 준비를 위해 환경이 개선되고(페인트 칠부터 시작해서 동네 진입로까지 싹 다 새로 깔린다.) 기본 군중(핵심계층) 중 '접견자'라는 북한에서 최고의 끗발을 날릴 수 있는 뒷배가 생기기 때문에 절반은 기쁜 마음이지만 방문 이후 다녀간 집 자체를 돈이 있건 없건, 지원이 있건 없건 방문 시점의 그 상태 그대로 유지시켜야 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이 같이 생긴다.[26] 대규모 혁명박물관과 기념물을 넘어 모든 공장, 기관, 학교, 농장, 군대에 설치되어 1990년 기준으로 정확히 37,950개에 달했다.[27] 이게 사실 매우 중요한데 실제로 '집중학습'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김정은이 그처럼 탁월하고 세련된 영도로 적대세력의 도전을 짓부시고 자력 부강한 나라를 열어 놓았다면서 왜 우리에게 식량도 땔감도 공급해주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우상화 선전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여긴다. 사실 후술하듯 이제 북한도 해외 정보가 많이 유입되어 북한 체제의 진실이 어느 정도 알려졌기 때문에 우상화 선전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28] 물론 북한에서는 이를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심이 강한 우리 민족의 심리적 습성을 드러낸다"고 포장한다.[29] 그나마 경범죄를 다루는 곳이기에 3~6개월형에 그치고 있다.[30] 곡 이름은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31]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1923년에 김일성이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친부 김형직의 뜻에 따라 만주 팔도구-평양 만강도까지 14일 동안 천리길을 걸었다. 참고로 이때 김일성은 만 10세였다.[32] 가장 신성시(?)되는 답사지는 김정일의 거짓된 생가인 백두산 밀영이다. 김정은 시기에 들어서는 '백두의 칼바람을 맞아봐야 선대의 혁명성을 알 수 있다'며 백두산 답사를 강요하는데 애초에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백두의 칼바람'을 맞기는 커녕 스위스에서 편안한 유학 생활을 보낸 김정은이 자신은 남들이 모르는 것을 다 통달한 것마냥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33] 평양에서는 만수대 동상, 각 도에서는 도청 소재지 인근의 동상[34] 실제로 서양권에서는 사리분별력과 판단능력이 성인에 비해 떨어지는 어린이들에게 정치적 사상을 주입하는 것은 정서적 학대로 여긴다. 미성년기에는 다양한 견해와 생각을 직·간접경험해야 균형 잡힌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북한은 이 정서적 학대를 북한에 사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그것도 국가적 차원에서 강제적으로, 지속적으로 자행하고 이를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35] 특히 니야조프의 국민 세뇌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1 ~ 2세대 내에 완전히 쓸모없고 현대 사회에서 살 수 없는 젊은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북한의 세뇌는 그보다 훨씬 극심하다. 니야조프의 후임 독재자인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도 학생들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가르치는 등의 세뇌 교육을 자행했다.[36] 과장 좀 보태면 인도 공과대학교에 비견될 수준.[37] 내용은 대략적으로 '국가는 모든 어린이들을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주체형의 혁명가로 교육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는다'이다.[38] 양말도 깨끗한 양말로 갈아신어야 한다.[39] 이는 논문에서 다루는 내용이 북한 체제에 반하지 않으며, 따라서 연구해도 괜찮다는 근거가 있음을 김씨 일가의 어록을 통해 증명해보여야 하기 때문이다.[40] 2024년 4월 30일 로동신문 기사 <당조직관념은 곧 혁명적 수령관이다>에서 "당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곧 수령이 안겨준 사회정치적 생명을 저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벌써 죽은 목숨이나 같다."는 구절이 존재한다. 자유아시아방송 기사[41] 무역관계로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42] 김정은의 생일은 북한에서는 기념일이 아니다.[43] 물론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44] 김일성 시기에는 태어난 지 75일이 된 아이들은 누구나 탁아소에 보내졌다. 김정일, 김정은 시기에도 이런지는 불명.[45] 이 글에는 '특별 교실' 사진이 담겨 있다. '특별 교실'에는 김일성 생가 만경대를 본뜬 모형이 있다.[46]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싶다면 연계를 지어줬다고는 하지만 부모를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 '불편이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북한의 보육원은 일반적인 집보다는 시설이 좋았다고 하지만 애초에 국가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친부모와 가정으로부터 아이들을 분리한다는 것은 김일성 시기 북한 외에는 민주 캄푸치아 정도만이 할 수 있던 일이다.[47] 다만 이는 아이의 진심이 아니라 보육원이 강요한 대답이긴 하다.[48] 조선인민군의 전신으로 날조 주장하는 가상의 군대. 실제 김일성은 중국공산당 간부이자 소련군 대위였다. 중국/소련과 연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49] 실제로는 170여 명이 순사 5명(보조원 2명 포함)이 있는 작은 마을을 침투해 오발로 2살짜리 아이와 요리사를 죽인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성과도 전혀 없는 전투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50]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 버금가는 포지션의 전투인 '무산지구 전투'는 "적들이 전멸당했다고 선전하던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강대한 역량으로 자라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계속 철추를 내리고 있다는것을 실지로 보여준 전투"로 자찬하지만 이 전투는 실제로는 김일성의 최측근 최현의 전공을 훔친 것이다. 자세한 것은 대홍단군 문서 참조.[51] 수십만 병력을 무찔렀다는 것은 북한에서도 주장하지 않았는데 과거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의 구체적 전과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위대한 전투라고 하니 이런가 보구나'하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더 높긴 하다. 북한에서도 보천보 전투의 의의가 '일본놈을 몇 명 죽인데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단 북한에서는 보천보 전투 당시 참여한 일본군이 2000명이었으며, 이들 중 200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전사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그것도 1:10으로 싸웠는데 1 쪽에게 10 쪽의 90%가 몰살당했다는 내용이다.[52]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고려항공평양나고야를 잇는 전세편을 운항하였다.[53] 고등학교 시절까지 일본에서 살았고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아 정황상 재일교포 북송의 피해자로 보인다.[54] 그 가이드는 뒤이어 "더 넓은 의미로 포착해 조선에 침입 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외국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혁명투쟁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1866년의 샤먼호 사건이나 1875년의 강화도 사건 등에까지 빠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라며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운요호 사건을 모두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막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아무 근거도 없는 북한의 허위 날조이며 무엇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당시 김응우는 고작 만 18세의 새파란 소년이었다.[55] 그 일본인의 말로는 전술한 발언이 "안중근은 김일성 주석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그런 일을 한 바보이기에 (한일병합을 막는 데에) 실패했다"는 뉘앙스로 말한 것 같았다.[56]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먹자판, 놀자판만 벌이고 조선총독부에 스스로 투항한 매국노'로 간주한다.[57] 실제 출생지는 소련이다. 과거에는 하바롭스크로, 현재는 우수리스크로 추정된다.[58] 다만 김정은은 출생지 성역화가 없으며 대내적으로도 출생지를 그다지 알리지 않는다. 이는 김정은이 김정일과 몰래 동거하던 재일동포 고용희에게 태어나 김일성이 죽을 때까지 김정은의 존재조차 몰랐기 때문이다.[59] 옆에 있는 김정일 초상화는 김일성 집권기에 그려진 초상화가 아니라 김정일이 노동당 총비서에 등극한 직후인 1997년 10월 9일 공개된 초상화다.[60] 즉, 향수를 뿌려야 했던 초상화는 바로 이것이다. 사진은 북한에서 그린 초상화를 중국에서 복제한 것인데, '김일성동지'가 한자로 적혀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그렸다.[61] 전문가들은 정면 사진은 죽은 사람의 초상 사진처럼 보이기 때문에 재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의견은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정면이 아닌 비껴선 자세여서 김일성도 신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후자가 사실이면 주체사상에 기독교적 요소가 많이 스며들어 있음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셈이다.[62] 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되면 공민 자격을 말소할 정도로 대놓고 비국민 취급한다. 감히 존엄의 초상화를 볼 자격도 없다는 이유로 달지 않는다. 정치사회적 생명은 끝난 것.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63] 박남기, 장성택이 처형 전 마지막으로 재판을 받은 곳이다. 여기 올 정도면 완전통제구역과 마찬가지 이유로 정치사회적 생명이 끝난 것이다.[64] 대신 기내 안내방송에 찬양 문구가 들어간다. 참고로 지도자 우상화가 북한 못지 않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유일한 항공사 투르크메니스탄 항공은 2022년 부자 세습 전까지 초상화를 걸었다.[65] 다만 과거에는 진짜 이러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66] 하필이면 빨간색인 이유는 빨간색을 '공산혁명의 상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67] 화강석 단까지 한꺼번에 대피시킬 수 있다.[68] 1988년생. 고려인이 아니라 한국으로 귀화한 러시아인으로, 중학생 때부터 한 민족이지만 너무나 다른 길로 간 남북한에 흥미를 느껴 2011년 한국으로 이주했고 2017년 서울대학교에서 북한 군대의 사회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 사학과 강사 겸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69] 심지어 당시 일본은 천황을 대놓고 '현인신'으로 일컬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일제도 안 한 일을 북한은 버젓이 했다는 말.[70] 2014년 경부터는 김일성 얼굴이 만경대고향집(김일성 생가)으로 바뀌었다.[71] 사실 독재국가에서 독재자 얼굴이 화폐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이승만 얼굴이 화폐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72] 그나마 초상화를 건지면서 아내의 목숨도 똑같이 건지라고 했기 때문에 다른 사례들보다는 훨씬 나은(?) 셈이다.[73] 정확히는 양손으로 둘 다 잡고 있었는데 거센 물살 때문에 딸의 손을 놓치면서도 초상화만큼은 놓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딸보다 초상화를 더 꽉 잡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74] 이와 거의 유사한 사례를 데일리NK에서 보도하기도 했다. # 물론 해당 기사에 따르면 라선 주민들은 이 여성의 모습에 충격받고 그녀가 처벌이 두려워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냐며 합리적 의심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고위급 탈북자는 이에 대해 "나선 지역 주민들은 한국 드라마나 외부 정보를 많이 접하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식보다 초상화를 챙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접한 기회가 비교적 많은 주민들이라고 할지라도 우상화 세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75] 동태관은 해당 논설을 쓰고 하루 뒤 "1990년대부터 시대정신이 맥박 치는 정론들을 수많이 발표하여 일심단결 된 조선의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하고 천만군민을 당정책 관철에로 힘 있게 불러일으키는데 특출하게 공헌한 인물"로써 김정일훈장을 수여받았다.[76] 1963~1992. 인민군 비행사이자 편대장으로, 1992년 12월 23일 인민군 공군사령부 59추격비행연대(원산갈마비행장)에서에서 열병식을 앞두고 비행훈련을 하던 도중에 비행기가 고장나 김일성 동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알고 탈출하라는 관제소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행기의 기수를 바닷가 쪽으로 돌린 군인이다. #1 #2[77] 여기서 '이름하다'는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부르는 말을 붙이다.'라는 뜻의 '형언하다'와 유사한 의미의 말이다.[78] 물론 외국인들이 이런 행동들을 보면 북한 체제의 광신성만 느끼지 감동을 받을 리는 전혀 없다. 실제로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은 이에 대해 '북한에는 진싼팡(金三胖, 김씨네 3대 뚱보) 사진을 신성시한다는 법이 있다'고 조롱했다. 베플의 댓글 참조 애초에 남한 사람들에게도 가산과 가족을 버리고 지도자 초상화만 챙겨서 대피하는 행동은 정신 나간 행동 취급만 받는데 하물며 외국인들에게는 최악의 막장 부모이자 다윈상 수상감으로만 느껴질 뿐이다.[79] 정확히는 동태관 외에도 다른 논설위원 2명이 함께했다.[80] 그 교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3명의 목숨을 미필적 고의로 앗아간 것이 아니라 '초상화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81] 13명이 아닌데 3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있다.[82] 이 중 전신 동상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으로만 72개 정도고 나머지는 흉상이나 석고상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겠지만.[83] 가격 대비 퀄리티가 훌륭해서 아프리카 이곳저곳에서 동상 제작 수주를 받아 외화를 벌어들였을 정도다. 2022년 7월 30일 북한의 만수대창작사가 베냉 코토누에 30m 높이의 여군인상을 만든 것이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84]29억 2천만 원어치. 실제 동상 사진[85] 한반도 야간 위성지도를 보면 밝은 빛이 빽빽하게 들어찬 남한과는 정반대로 북한은 평양 외에는 희미한 점들만 보이는 거의 섬나라처럼 보일 정도이며 평양의 불빛도 인구가 평양의 1/10 정도인 춘천시만도 못하다.[86] 북한 전기는 품질이 매우 나쁘다. 발전소도 낡아 전기가 갑작스럽게 끊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87] 북한 웹사이트 소스 코드를 열어 보면 개행을 막기 위해 '수령' 따위 문자열 앞뒤로 HTML <nobr> 태그를 적용하여 절대 줄이 바뀌지 않도록 처리됨을 확인할 수 있다.[88] 북한 웹사이트 소스 코드를 열어 보면 김씨 삼부자 이름에는 인라인 CSS 태그 font-size:110%; font-style:bold; 를 적용하는데 이는 글자 크기를 1.1 배로 설정하고 굵게 표기하도록 하는 코드다.[89] 사실 이는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이 원조로, 1970년대 초부터 이랬다.[90] 이 지역 출신인 '김제원'이라는 농민이 소련군정 하에서 북한의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분배받게 되었다는 것에 감격하여 수확한 쌀 30가마니를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바쳤다는 이른바 애국미헌납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91] 여긴 김일성이 "조선 왕조의 흥업을 바란다"는 뜻이라는 이유로 바꾸었다.[92] 의외로 북한에 '김일성시'라는 도시는 없다.[93] 물론 북한 측에서는 자신들이 은폐해온 김씨 일가의 학정과 실정의 진실이 드러나며 북한 주민들의 지지와 신뢰감이 떨어진 것을 '제국주의자'들이 김씨 일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지지와 신뢰감을 떨어뜨려 북한의 단결력과 공고성, 불패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김씨 일가를 '사상문화적침투책동'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우기고 있다.[94] 참고로 김만철의 탈북 시점은 한국에서 6월 항쟁은커녕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직후였던 명백한 군사독재 시절이었고 당시 북한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다는 사실과 일본잘 사는 나라라는 사실까지 숨겨 (당시 최전성기였던)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착각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북한이 해외 정보를 21세기 이상으로 극단적으로 차단하던 시절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그런 시절부터 김일성에 대한 불신을 품었다는 것이다.[쪽잠에줴기밥] 고난의 행군 때부터 나온 전형적인 우상화 날조 선전. 김정일이 인민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느라 잠은 야전 승용차에서 쪽잠, 식사는 '무우오가리(무말랭이)와 절인 오이, 까나리'/염장무가 든 소박한 줴기밥(주먹밥) 한 덩어리만으로 때웠다는 내용으로저래서 80kg 넘긴 거구나. 2024년 현재까지도 수십 년째 우려먹고 있다. 기본가격만 한화 수억 원인 벤츠 S클래스에 수억 원을 또 들여 방탄 개조한 차량을 야전 승용차로 썼고 소고기연어알, 캐비어가 들어가 재료비만 계산해도 하나당 6만 원인 줴기밥을 먹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96] 북한 주민들도 이런 책들을 훼손하는 것이 처벌을 받는 '범죄'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책 한 권을 모두 태워 버리며 증거(?)를 인멸하기 때문에 처벌할 수도 없다. 장마당에서 책을 파는 장사꾼들도 실용적인 책들을 선호하지 김일성 부자 초상화가 들어간 책은 절대 사지 않는다.[97] 노작과 문헌마저 화장실 휴지로 사용해 초상화만 남고 너덜너덜 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검열로 적발되면 반동분자로 몰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각해 버린다. 초상화를 남겼다는 것은 그 부분을 휴지로 썼다가 당할 후환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예감하게 해 준다.[98] 人民班. 북한 행정 조직의 가장 작은 단위로, 20~40가구 정도로 구성된다. 한국의 과 유사하다. 양육문제, 청소 노력동원, 공공질서 유지 등 거주지역 내 현안을 담당한다.[99] 참고로 북한 당국은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와 김일성의 탄생이 동시에 일어난 1912년 4월 15일을 "('자본주의의 상징'이 침몰하며) 서방세력의 몰락을 알리고 ('인류의 태양'이 떠오르며) 동방세력의 부상을 알리는 길조", "'위인'의 탄생은 충격적 사건을 동반한다" 등 소름끼치는 고인모독 발언을 태연하게 하고 있다.[100] 덤으로 타이타닉 영화가 북한에서 인기가 많고 지미 카터미국 대통령이 김일성에게 선물한 영화라는 소문이 북한에서 돌고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북한에서 타이타닉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진 영화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쪽잠에줴기밥] [102] 사실 2006년 중국 단둥연길 지역에서 들어온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서적들이 북한 내에도 퍼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이 '쪽잠에 줴기밥'으로 버텼다는 주장이 주민들을 완전히 기만한 날조된 선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03] 김정은이 손수 전국의 청년들에게 "강성국가건설의 어려운 부문에서 혁신을 창조한 청년들의 성과를 축하하면서 나라가 어려운 시기(전시를 의미)에 직면한다면 전 세대(항일빨치산과 6.25 전쟁 참전 세대)의 정신세계를 본받아 조국수호전에 나서라"는 축하문(?)을 보낼 정도였으면 김정은이 직접 이런 행위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04] 해방 전 김일성이 화약제조법을 창안해 제조했다는 폭탄을 의미한다.[105] 다만 현 북한의 우상화 방침을 보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활동이 민중들에겐 마치 축지법처럼 느껴졌다'는 비유적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106] 북한에서는 이를 '의식주에 대한 국가적 책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107] '정성사업’이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존귀한 물건이나 대상을 손질하고 가꾸는 일’, ‘정성함’이란 ‘정성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넣어 두는 함’을 뜻한다.[108] 로동당이 수십 년간 세뇌를 위해 사용한 대표적인 곡이다.[109] 그 이전에 친근한 어버이 뮤직비디오에서 선공개되었다.[110] 여기서 고영환은 김정은의 초상화를 학교 외벽&교실에 건 게 김정은 본인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뛰어 넘어 마르크스레닌과 같은 공산주의 사상이론가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신관 준공식에는 내각종합청사에 걸려있었다가 2010년 철거된 마르크스, 레닌 초상화가 다시 걸렸다.[111] 사실 고난의 행군 이전 김일성 시기에는 배급제와 무상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등 경제적으로는 김정일 시기보다는 확실히 나은 편이었기에 때문에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김정일보다는 김일성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마치 한국의 극우층들이 전두환이 집권한 1980년대를 경제적 호황기로써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112] 2011년 제작된 85분짜리 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 여기서는 고용희의 실명이 언급되지 않으며, 해당 소식을 전한 소식통도 고용희를 '총비서의 생모'로만 언급했다. 북한의 일부 고위 간부와 군 지휘관만을 대상으로 한 영화였다고 한다.[113]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의 생모를 공개하고 우상화한 바가 있다.[114] 2024년 김일성 생일 당시 로동신문에서 김일성에 대한 찬양이 전직 지도자에 대한 의례적인 찬양 수준으로 축소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반론] 다만 정주년임을 감안하여 예전과 똑같이 했기 때문에 내년에도 이렇게 할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