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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18:55:04

영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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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興郡 / Yŏnghŭng County
영흥군
永興郡 / Yŏnghŭng County
국가 대한민국
광복 당시 면적 2,192㎢
광역시도 함경남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 1읍 11면
시간대 UTC+9

1. 개요2. 역사3.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4. 고적5. 출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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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함경남도에 존재했던 군. 서쪽은 평안남도에 접하며, 동쪽은 동해에 면한다.

영흥은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금야군으로 불리며, 1952년 이래 군의 서부지역은 요덕군이 되었다.

2. 역사

조선 왕조 삼대 계국백
朝鮮王朝三大啓國伯
화령 완산 안변
영흥군 행정구역 변천사
영흥대도호부
(永興大都護府, 1413)[1]
영흥군
(永興郡, 1895)
금야군
(金野郡, 1977)
한사군 시대에는 임둔군(臨屯郡) 화려현(華麗縣)이었다. 옥저의 영역이었고 고구려에 복속된 후에 장령진(長嶺鎭) 혹은 당문(唐文)·박평군(博平郡)이라 하였다. 진흥왕신라가 차지했고 이후 남북국시대에 신라와 발해의 경계 지역이었다.

고려시기 명칭은 화주였다. 이후 조휘탁청의 반란에 의해 몽골 제국(원나라)으로 넘어가 쌍성총관부의 처소가 설치되는 등 이름이 쌍성으로 불렸으며 공민왕 때 되찾고 화령이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향. 이성계가 명나라에 조선과 함께 국호로 제안했던 화령이 바로 이곳이다. 조선 왕조가 영원히 흥하라는 의미로 영흥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른바 흥왕의 땅(興王之地, 흥왕지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추존 환조)의 집으로 알려진 영흥본궁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쟁쟁한 도시들이었던 안동, 강릉 등과 함께 대도호부로 지정되면서 지역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1895년에는 23부제의 시행으로 함흥부 영흥군이 되었다.

함흥차사유래가 된 박순이 죽었다는 용흥강(영흥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원산만(元山灣)이 영흥만으로도 불리는 것. 북한 치하에서는 아래 사유로 졸지에 금야강, 금야만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의 명칭인 금야는 김일성의 작명이다. 1975년경 김일성이 조선왕조가 흥하라는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 검은 금이 많이 나고,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금야(金野)군으로 명명되었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다른 사례들만큼 노골적으로 불온한(?) 명칭은 아니지만, 김일성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높다.

넓은 영흥 평야가 펼쳐져 있고, 금야군은 2008년 기준으로 인구 21만명으로 여전히 북한의 군 가운데 많은 인구를 자랑하고 있다. 60년대 남한의 군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3.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파일:함경남도 영흥군기.png

파일:영흥군.jpg
여기에서는 광복 당시의 영흥군 현황에 대해 서술한다.

영흥군은 광복 당시 1읍 11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횡천면, 요덕면, 선흥면의 서부 산악지대를 제외한 나머지 읍면은 대체로 평탄하다.

4. 고적

영흥읍에는 누정인 군자루(君子樓)가 서 있다. 순령면에는 조선 환조의 옛집인 영흥본궁이 있었다고 하지만, 컬러사진을 찾아볼 수 없는 관계로 6.25 전쟁 중 파괴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5. 출신인물


[1] 줄여서 영흥부(永興府)[2] 섬이 아니라 호도'반도'이다. 실제로 원래는 호도라는 섬이었는데 육지와 연륙되어 반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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